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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 1

 

 

1974년 9월 김대위는 그의 동료 여섯과 함께,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삼포 조선소에서 배관 일을 하고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예외 없이 내리쪼이는 고통스러운 햇살 아래, 습기 찬 바다 냄새를 맡으며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 푹 묻혀 일만을 하였다. 그는 삼포만을 배경으로 조선소가 한눈에 보이는 조선소 안 서북쪽 야적장에 있는 사무동 건물 옥상 기계실에서 마감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조선과 같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는 조선소 한쪽에서 부드럽게 부는 늦여름 바람을 맞으며 낮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파이프들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지는 파이프를 만지는 일이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걸 이어붙이고 보온을 해야 익은 쌀을 씹을 수 있고 발을 뻗고 이불을 덮을 수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질 무렵 그의 관심은, 일보다 일하는 한 달 동안 느꼈던 조선소 노동자들의 숨겨진 침묵이랄 수 있는, 그것은 일부러 감추지 않으면 자신을 파멸로 이끌 충동적인 분노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애써 감추며 자신을 비웃는 농담으로 드러내거나 정권욕에 자신을 태우는 늙은 정치인이나 영웅처럼 행세하는 장사치들을 비웃으며 현실을 뒤틀고 있었다. 그러하다는 것을 그들이 즐겁게 웃고 있을 때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숨소리와 한탄, 일상의 우울한 화제들, 서로 비추어 보는 시각에서 존경심으로는 털끝만큼도 없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다. 조선소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회사의 로고도 제작 중인 선박들, 용접소리나 기중기 흔들리는 모습, 간간이 들리는 확성기 소리, 라디오에서 들리는 키 작은 위정자의 정치적인 구호와 연초에 일어난 학생들의 국가전복 음모가 아니었다.

늘 조선소에 팽배해 있는 평범한 순간의 일상적인 삶들. 그것이 뭔가? 애절함, 비애로운, 그리고 약간의 웃음과 굳은 얼굴에서 감추어진 분노, 봄에 산에 오르면 겨우내 두터운 낙엽 속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움직임, 그것일 수 있었다. 현장에서보다 숙소나, 술집, 머리를 마주하고 들이키는 소주잔에서 들리는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은 어느 한 날을 집중하는 듯했다. 구름이 꾸역꾸역 몰려들어 바닷가에 한바탕 비가 뿌려야만 무덥고 찌뿌듯한 날씨를 물리쳐버릴 수 있듯,종알거리는 마누라에 싸대기에 울려 붙이고서야 조용하게 쉴 수 있는 하숙집 남편처럼, 뒤틀리는 속을 비우려면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내려야 하는 법이다.

그날 919일 갈매기 떠다니는 삼포만에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공기가 팽창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고 밀도가 더해가는 느낌이었다. 마시는 습도 높은 공기는 폐 속에 빨려 들어가 몸의 열을 올리고 후덥지근함으로 머리 꼭대기까지 채워 모래를 채운 인형처럼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김대위는 동료들과 안개 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해 작업복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속이 불편해 화장실을 찾으며 후덥지근한 공기에 하루가 길게 느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휴일 없이 줄곧 일만 해 한계에 이른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서 그럴 게라고 생각을 했다.

김대위는 화장실에 올 때마다 여섯 개 중 중간에 있는 세 번째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았다. 그는 세 번째 화장실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본능적으로 중간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몇 번을 들어간 그 화장실이 익숙해졌고 저울의 중심축에 앉아 있는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벽에 쓰인 낙서까지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날도 문에 쓰인 낙서를 읽으며 일을 보고 있었다. ‘낙서금지’의 표어부터 욕설, 선데이서울에 실렸을 법한 명언과 현장의 불만이 다양한 글씨체로 아로새겨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김대위가 좋아하는 문구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귀에 솔솔 스며들었다. 소변을 보며 서너 명의 노동자들의 아침부터 풀리기 전의 탁한 목소리로 긴장된 말을 주고받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노동자들이 출근을 막 시작하고 있던 터라 자신들보다 먼저 와서 일하다 용변을 보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았다면 섣불리 했을 내용이 아니었다.

굵직한 목소리의 임자가 안전화를 끌며 따라 들어오는 사내에게 오늘 건조부 야적장에서 아침부터 일을 벌일 거란 말을 하였다. 오줌 소리가 두 개로 늘면서 다른 사내도 ‘시발 이번에는 목숨 걸고 다 엎어버리지. !’ 하는 말로 응수를 하였다. 높고 째지는 듯한 웃음이 들리더니 ‘여럿 죽어나가겠군!’ 하면서 신나서 죽겠다는 세 번째 사내가 있었다. 첫 번째 사내는 대충하다가 도망치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로는 이번 싸움에 무슨 전망이 있겠는가, 책임자가 홧김에 나서기는 하는데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김대위는 그 말을 별다른 생각 없이 들었는데, 자신이 바지를 올리고 문을 열고 나가자 셋 사내가 놀라는 눈으로 김대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 셋은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놀라는 여섯 개의 눈동자를 보며 김대위도 당황했으나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들이 김대위를 살펴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인 것을 보고 어색한 웃음을 주고는 주섬주섬 앞섶을 치키고 하나 둘 아침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화장실밖으로 나갔다.

김대위는 밖으로 나와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열을 지어 달리는 길을 따라 자신이 일하는 건물로 올라갔다. 여느 때와 같은 현장이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현장으로 색다르게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노동자들이 그렇고 삼삼오오 모여 걸어 다니는 노동자들이 그랬다. 김대위는 그들의 말로는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설사 무슨 일이 벌어진 듯 그 일은 김대위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곳 조선소에서는 관계가 없는 불려와 일하는 노무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설사라도 났나 봐!” 김노인이 용접기를 끌어다가 작업 준비를 하면서 김대위에게 말을 했다.

“그런 건 아닌데, 속이 좀 부글거려서요.”

“몸이 안 좋아 보여. 얼굴색이 하얗다니까. 지방까지 와서 아프면 열 받는다니까.”

김대위는 노인을 거두어 홀더선을 연결하고 절단기를 가져다 선을 연결했다. 다른 동료들은 준비를 마치고 담배를 하나 물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거나 삼포만 쪽에 수평을 딛고 우아하게 흰 국화꽃처럼 피워 올라가는 해무를 구경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장갑을 끼면서 손가락 끝이 예민해진 것을 느끼고 혀를 굴려 보았다. 몸이 좋지 않을 때면 손가락 끝이 예민해지고 혀의 돌기가 붓고 입 안이 헐었다. 저녁마다 술을 마셔서 그럴 수도 있었다. 음식도 여전히 자신의 입맛과는 달랐고 차가운 하숙방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아침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공기를 식혀 선선했지만, 몸에서 땀이 조금 솟았다. 노인 말대로 몸살이라도 날 작정인가 은근히 우려가 되었다.

“밤새 잠을 뒤척이더니만, 객지에서 병났나 봐. 화장실에 두 번씩이나 가고.”

마른 얼굴에 눈만 퀭하게 큰 노인이 다부진 어깨를 으쓱 이며 파이프를 발로 돌리며 걱정스럽게 말을 했다. 노인의 곁눈질을 의식하면서 김대위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배가 또 부글거리지 않기를 바랐다. 노인은 파이프를 자르게 하고 자신은 다른 연장을 준비하러 갔다.

김대위는 노인을 도와 일을 하면서 어떤 이미지와 소리가 뒤섞인, 저편의 사물과 소리가 뒤엉킨 느낌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는 애써 조선소에 인접해 있는 바다 쪽 수평선을 경계로 피워 오르는 구름을 보니, 해무를 배경으로 바다를 이루는 물결의 출렁 임들이 자신이 배 위에 있는 것처럼 흔들어 댔다. 바다 표면을 이루는 잔물결들과 떠다니는 물거품들, 어우러져 반짝이는 햇살이 머릿속의 이미지 조각들처럼 점멸을 반복하였다. 멀리 배 두어 척이 가물거리고 그 뒤로 아침 대기는 구름을 위로 끌어올려 푸른 천구를 만들었다.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조선소 철 구조물과 크레인들이 아직은 어색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야릇한 짠 냄새가 조선소에 가득 찬 듯한, 신경을 거슬리는 냄새에 거부감이 일었다. 그 알 듯 말 듯 한 냄새가 머릿속을 빠져나오지 않고 불분명한 모습으로 마음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간간이 각지고 말라 까칠한 얼굴로 용접 불꽃이 쏘아 댔다. 그는 강렬한 푸른 불빛을 피해 눈을 질끈 감았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용접 불똥이 퉁기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김노인이 앞에서 용접하였다. 뭔가 일어날 듯한 이런 날이면 작업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김대위가 아침 땡볕 아래서 과거를 더듬고 있을 때는 늦여름이 더운 기운이 슬슬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노인이 용접을 멈추고 용접된 부분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는 아련하게 가물거리는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거대한 유조선 움직일 수 없는 조형물처럼 바다에 떠 있고 유조선 위로 갈매기 떼가 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하여간 이날 아침은 여느 아침과 조금 달랐다. 바닷바람에 묻어 있는 소금냄새와 녹슨 쇠 냄새, 용접가스가 후덥지근한 공기 중에 섞이어 있고 삼포만에 가득 찬 더운 공기가 위로 솟지 못하고 풍선에 갇힌 듯 갑갑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의 기억은 월남을 떠나는 72년 봄 다낭항구에 머물러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도 설익은 사과를 씹는 듯한 어색한 아침이었다. 출항하기 직전 갈색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바닷바람이 공기를 서늘하게 식혀 주던 새벽에 소녀는 목맨 시체로 갑판에 매달려 있었다. 흰 아오자이를 입은 소녀의 매달린 몸 뒤로 다낭의 신선한 새벽이 한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작은 비명이 들리고 소녀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편이라고 하는 나이 든 한국 노무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울지도 못하고 잔뜩 주름 팬 얼굴로 소녀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갑판장이 달려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멀리 침을 뱉고는 시체를 배에 태우고 출항을 할 수 없다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빨리 치우지 않으면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고 겁을 주었다. 주변에서 안타까워 혀차는 소리와 노무자를 따라온 월남 여인과 친지들의 잔 울음소리가 갑판 위에 퍼졌다.

김대위는 노무자로 월남에서 2년간 일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는 월남에서 숱한 죽음과 여러 삶들, 다양한 일들을 겪었지만, 그날 마지막 푸르게 포물선을 그린 다낭항에서의 소녀와 감색 옷을 입는 노무자만이 기억에 날 뿐이었다. 가끔 늦가을 선선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날릴 때면 어김없이 그날 그 갑판 위의 눈감은 소녀의 처량한 울음소리, 생선 비린내 그리고 검게 탄 노무자들의 동맥 붉어진 이마와 손등, 미제 물건을 산 두툼한 가방 그들을 따라나선젊은 다른 월남 여인들의 울음이 들렸다.

흰 모직 끈에서 풀어 내린 소녀의 검은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가는 목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눈은 두껍게 부어 있었고 지금껏 월남 숲과 들의 공기를 마셔왔을 오똑한 코와 검붉게 살짝 벌어진 입술은 더는 그녀와 인연을 함께 했던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노무자는 숨을 쉬거나 말을 걸지 못할 여인을 들쳐 없어 깍지를 끼고 떨리는 무릎을 세워 힐끗 뒤를 보고 대위에게 가방을 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의 코끝에 콧물이 뭉쳐 주르륵 흘러구두코에 떨어졌다.

가방을 건네주자 대위보다 서너 살은 더 먹었을 법한 사내가 말을 건네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자신은 장례를 치르고 다음 배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사람이 어지간히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소. 그냥 놔두고 가야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아기를 가졌거든요.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모르죠. 시발 불쌍한 아입니다.”

노무자의 마지막 말에 김대위는 고개를 끄떡였다.

김대위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부질없는 다 지난 일들이었다.

“뭔 생각이야?”

그의 앞에서 테크를 하고 있던 김노인이 김대위를 삼포 앞바다로 끌어냈다. 용접 면을 내려놓고 다 됐다고 고대를 내려놓고 한쪽 눈을 감고 수평을 보았다. 질끈 감은 왼쪽 눈에 주름이 잡히고 눈 따라 일그러진 입술이 추켜올려지며 벌어져 누런 이빨 사이로 혀끝이 나와 물려 있었다. 노인의 혀끝이 살살 떨렸다. 앞으로 숙인 옷 사이로 붉게 익은 가슴과 뼈가 앙상한 가슴이 대충 가린 작업복 속으로 보였다. 노인은 자신이 작업한 것에 만족하였다.

“대충하자고 너무 잘해주면 다른 놈들 기죽는다니까.”

김대위도 수평을 보았다. 파이프를 타고 가로로 뻗어 있는 줄과 빛의 반사가 일직선으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연장을 들고 다음 파이프가 놓인 곳으로 옮겼다.

건물 옥상에는 김노인과 김대위 말고도 다른 배관공들이 일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용접기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중함마로 용접 부위를 맞추려고 강관을 두들겨 댔다. 한 대씩 칠 때마다 울리는 쇳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이제 익숙해질 만한데 좀처럼 쇠를 때리는 소리는 거슬리기만 하다.

“김대위 들어봐! 뭔 소란이래?”

김대위도 급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짧은 순간 들리는 그 소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군중들, 격렬함이 느껴지는 긴박한 목소리와 빠른 발음, 머리가 아닌 졸여지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소리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작은 몸을 펴고 재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향한 옥상 난간으로 갔다. 김대위도 렌치를 들고 노인을 따라 걸으며 난간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뭔 일이야. 전쟁이라도 났다는 건가? 아니면 빨갱이 새끼들이 내려왔나?”

김노인이 신난 듯 밝은 목소리로 아래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김일성이라도 쳐 내려왔다는 말이여.”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용접사들도 고대를 던지고 자신들만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잰걸음으로 노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따분하던 차에 좋은 구경거리 생겼네! 그려. 일 때려치우고 구경이나 하자고.”

노인은 몰려드는 젊은 것들을 바라보며 놀리듯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그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떠들어 댔다. 여기저기서 옳다고 손뼉을 쳤다. 난간에 기대에 밖을 구경하는 일꾼들이 일곱 명이나 되었다.

김대위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작업 시작 전에 화장실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김대위는 혹시나 조금 전의 그 사내들이 무리 안에 있는지 살펴봤지만, 그들의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작업 중인 건물 아래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공장에서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분노에 격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동시에 불만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역시 우발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마치 참지 못하겠다는 듯 떠들어 댔다. 그들의 안전화로 시멘 바닥을 힘주어 밟으며 모여들었다.

두 부류가 합류하면서 잠깐 격해 있던 그들의 목소리가 일상적인 대화로 변했다. 중간에서 웃으며 어깨를 치며 농담하는 사람도 보였다. 잠깐의 소통이 이루어지더니 다시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향해 불만을 터트려 이목을 집중하였다. 주변에 흩어져 일하던 일꾼들이 일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긴박한 호흡이 얼핏 스치고 지나가 다시 불거진다. 불규칙한 발걸음과 옷 스치는 소리와 흥분된 음성, 뒤엉킨 생각들과 순간순간 변화하는 움직임들, 일정한 패턴 없이 수십, 수백 명이 한 무리 혹은 여러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다 차츰 더 큰 무리를 이룬다. 보란 듯이 모인 사람들이 야적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하여 다른 곳에서 그곳으로 모여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집단은 불규칙하게 모이고 있었지만, 시간대가 일치시키고 있었다.

“뭔 일이 일어났나 뵈.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우리도 일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영감님. 우리도 콱 뭔가 뒤집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맨 끝에 있는 용접사가 오른 무릎을 세우고 가슴을 대고 분노한 노동자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참가를 하고 싶은지 노인에게 동의를 구했다.

“개소리 하지 말고 구경이나 해. 괜히 지방 일 나왔다가 끼어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경이나 치지 말고. 젊은 놈들이 깡다귀 함부로 부리다가 신세 조지는 것 많이 봤다.”

노인은 용접사 청년의 말을 무시하며 핀잔을 주었다.

노인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노인이 손이 가리키는 쪽은 다른 노동자들이 반대편에서 삼십여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다급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과 급한 손놀림, 그들 뒤쪽에서 말리며 따라오는 하얀 안전모의 관리자와 반대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다른 관리자가 있었다. 멀리 본관에서는 경비병 둘이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인가 둘러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또 한바탕 하겠다는 거야. 얼마 전에도 난리를 죽이더구만.”

노인이 어깨를 으쓱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만이 뭐야? 저기 봐, 이거 농담이 아닌데. 뭔가 일을 벌일 태세야! 느낌이 있잖아, 전하고 달라.”

용접공이 담배를 꺼내 물며 아예 장갑까지 벗고 구경을 하려고 했다. 뒤에서 다른 작업자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함께 건물 난간에 늘어섰다. 더러는 아래쪽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노동자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 죽여 버려요, 엎어 버립시다!”

그의 말에 아래에서 구경하던 노동자들이 손뼉을 쳐 댔다. 노인은 그 말에 말조심하라고 눈치를 주자 그 젊은이는 앞만 쳐다보며 웃었다.

노동자들이 삽시간에 늘어나 이백여명이 되었다. 그들 무리가 모여들어 떠들어 대는 이야기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리가 이미 준비된 듯 집회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몇 사내가 무리 가운데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무리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들의 손짓이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간혹 동조를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보아 거의 책임자급이 되는 듯했다. 서너 곳에서 뛰쳐나온 노동자들이야적장으로 가더니 역시 책임자급 몇과 다른 노동자들이 마주 서 대강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한두 명의 노동자들이 결합하는 모습이 보이고 공장에서 일손을 멈추고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누가 죽기라도 했다는 거야? 월급이 나오지 않았나? 지난번보다 많이 나온 것 같은데.”

“노인이 목에 두른 수건을 잡아 매며 김대위를 쳐다보며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김대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전히 이 커다란 공장에 남자들만 있어서 그래. 여자들도 있어야 좀 부드러운데 말이지.”

노인의 시답지 않은 말에 다른 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른 말들에 더욱 우스운지 옥상에 웃음이 울려 퍼졌다.

“아저씨 우리도 이렇게 구경만 할 게 아니라 한판 붙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데모하면 노가다 아닙니까? 이럴 때 한풀이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친구들이 반 농담삼아 그 말에 주먹을 쥐고 흔들기도 하고 손에 쥔 공구로 난간을 때려 댔다.

“미친 새끼, 아주 영창을 가고 싶어 환장했구나. 삼포까지 와서 영창 갈래. 남의 싸움에 잘못 나섰다가 다 뒤집어쓰면 지하실 끌려가서 반 죽어. 올 초 박통이 데모한다고 대학생 새끼들 잡아다 사형시킨 것 몰라? 데모 주동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아직 철따구니가 없어 모르지? 한진 방화사건 몰라. 죽어, 뒤진다고 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야. 닥치고 구경이나 해.”

노인은 그 풍부한 삶을 바탕으로 손짓해가며 설명을 해있는 사이 야적장 노동자들이 본관이 있는 건물로 방향을 잡았다. 김대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 수평선을 딛고 해는 잔뜩 떠올라 있고 갈매기는 흩어졌다가 모였다 점점이 나르고 있었다. 본관으로 몰려간 노동자들은 전체보다 한 무리밖에 되지 않지만, 조선소 대부분에 소식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조립공장에서 용접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이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고 있을 터이다.경비들이 나와 늘어서서 그들을 막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경비들과 몇 번 승강이를 벌이다가 밀쳐내기 시작했다. 경비 두어 명이 멱살이 잡혀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한두 명은 겁을 먹고 옆으로 물러났다. 그들이 더욱 밀착되어 본관으로 들어가고 경비들이 모여 난감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마치 굴속에 빨리어 들어가듯 사라져 버리고 거대한 공장을 이루는 조선소에는 삼포만에서 불어오는 실바람만이 쓸고 다녔다. 갑자기 소란이 사라져 버린 곳에 쓸모없는 바람만 남아 잔상처럼 남은 분위기를 지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 노인은 상황이 끝난 것을 선언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구경거리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일을 하려고 난간에서 젊은 일꾼들을 떼어 각자의 자리로 가게 하였다.

“난 한바탕 한다고. 조선 놈들은 항상 용두사미라니까. 목소리야 제일 크지만, 막상 상대 앞에 서면 잔뜩 주눅이 들어 버리고 말거든.” 노인은 마치 진리를 위치 듯 걸걸거리는 웃음과 침을 튀면서 자신이 얻은 개똥철학을 들려주었다.

옥상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일하였다. 노인은 4·19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도시락을 찰랑거리며 가고 있는데, 데모가 여느 때보다 더욱 심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 보니 반쯤 나온 사람들도 일하지 않고 죄 집으로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데모를 하러 가는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날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바보스러워 보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상은 말이야 참 묘하거든. 언제 데모가 끊어진 적이 있나? 그래 대위도 알다시피, 삶과 데모는 늘 역사와 함께 하는 모양이야. 박대통령이 별짓을 다 하지만 데모는 막을 수가 없어. 지금도 서울대에서는 데모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군. 자네들도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말이야. 공산당들의 장난이 있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거든. 그나마 데모를 하지 않는 족속들이 있다면 노가다들이지. 아니 전혀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워낙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여서 했다 해도 하나마나야. 곧 모래처럼 흩어지고 말거든. 아무 소득도 없이 말이야. 노가다는 공산당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단 말이지. 우린 돌아다니면서 많은 구경을 하고 가끔 참견도 하지만 역시 우리 노가다는 데모와는 거리가 멀어!”

“아저씨도 농담은? 몇 년 전에 한진 상사에서 데모한 것은 뭡니까? 화끈하게 사무실에 불을 질러 버렸잖아요.” 노인의 눈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을 것 같은 애송이 용접사 녀석이 반론을 제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요. 아저씨 말대로 길게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노가다 판에도 데모가 언제 일어나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아마 데모하면 노가다판이 제일 많이 할 겁니다. 현장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노가다 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데모를 하려면 말이야, 보통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요?” 깡마른 봉천동에서 내려온 사내 말에 다른 사내들도 그의 말에 손뼉을 치며 동의를 했다.

“그게 깽판이지 데모야, 데모는 홧김에 하는 게 아니거든. 데모답게 해야지. 아까 봤지? 좍 모여서 작당을 한 다음에 질서정연하게 한곳으로 몰려가는 것. 제게 그냥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준비 많이 해서 하는 거야. 지금 다른 놈들 구경하는 것 같지만, 그쪽으로 온통 신경이 몰려 있거든. 김대위 안 그렇겠어? 마치 군사 작전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다 군대 다녀왔잖아. 싸움을 못해서 안 하나 뒷감당을 못하니까 안 하지. 내가 보기에 작당을 한 놈들이 더 되는데 대충 가려서 일단 쳐들어가 항의만 하고 나머지는 상황을 봐서 결합하려고 눈치를 보는 거야. , 주변에 어디 일하는 놈 있어. 지금 들어간 친구들 거반 이백 명 쯤 되는데 그들이 뭐하나 신경을 쓰는 거란 말이지. 내가 현장 소장에게 들었는데 아마 위임관리젠가 하는 것 때문에 데모를 하는 것 같아. 쉽게 말해서 공장에서도 하청을 주겠다는 데 남들 한 1년 하는 것 보니까 생기는 게 없더란 말이지. 상여금이 있나! 퇴직금이 있나? 도급을 많이 해 봐서알잖아. 그게 불만이거든. 안 그래? 직장 잘 다니다가 우리처럼 일당쟁이 비슷하게 되면 돌아버리지. 그렇다고 우리처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일을 열나게 하고 몸은 회사에 소속되어 이상한 처지란 말이지.”

“아이들 데려다 놓고 장난치는 거지.” 난간에 기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정회장이 보기에 돈을 조금 덜 들이고 일꾼들 조금 조여 먹겠다 이거지. 그냥 직영으로 돌리면 일이 눈에 안 차나 보지. 우리도 직영은 일 대충 하잖아. 야리끼리 주면 죽을 둥 살 둥 하는데 말이야. 노가다 판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정회장이 그걸 모르겠어?”

“아저씨 그거 근거 있는 말입니까?”

“대충 그렇다는 거지. 내가 그거 알면 국회의원 해먹지. 망할, 우리도 이제 대충 게기고 일이나 하자고. 이 사람들 어찌 됐든 우리보다는 나은 사람들이니 말이야.”

김노인이 먼저 일어나 담배를 구겨 던지고 일하던 곳으로 오니 다른 이들도 따라 각기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위는 다른 친구들 두 명과 구석에 있는 깡통에 소변을 보고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임시로 쳐논 포장이 바람에 펄럭이며 그림자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김노인은 도면을 보고 다음 갈 길을 자로 재보았다.

“대충 하다가 상황 봐서 들어가 버리자고. 괜히 남의 일 커지는데 젊은 놈들 얼떨결에 휩쓸리다가 사고 치면 골치 아프니까. 오전이나 했으면 좋겠구먼.”

“뭔 소리 들었어요?”

“내가 이런 것 한두 번 겪었겠나? 딱 보면 알지. 술집에서 건조부 친구들 하는 말을 들으니 불만이 보통이 아니야. 다음 주면 자신들도 일당쟁이 되는데 눈깔이 나오지. 당장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더구먼. 회사에서 이런 분위기 모르겠어. 대충 일어나면 콱 패버리겠다, 이런 심산이 있겠지. 긴급조치 시대 아닌가? 법보다 무서운 것 있어. 지하실에 끌려가면 반 죽는다고 보면 되는 세상 아닌가.”

노인은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척을 했다. 한 생을 살면서 전쟁을 겪고 4.19혁명과 5.16을 겪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원리쯤이야 할 법하다.

“속은 괜찮나?” 노인은 생각난 듯 물었다. 선박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보니 속에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 쪘다. 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까지 즐겁게 느껴졌다. 어깨가 풀리고 다리도 가벼워진 듯하다. 가슴이 조금 흥분이 된 듯하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월남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이후 행동과 일어날 일들이 여러 가지로 짐작이 되었다.

“조선 놈들은 셋만 모이면 작당을 한다니까.” 노인은 헐렁한 웃옷의 목덜미에서 거북이 목을 쑥 내밀어 젓듯 머리를 빼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노인은 짧은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어 위로 올려 힘껏 펴자 뼈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더니 허리를 굽혀 고대를 잡아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월남에 갔다 왔다며?” 노인이 김대위가 월남에 다녀온 것을 들은 모양이다. 노인은 면을 만지며 쓰려고 하다 물어보았다. 그의 흰 머리가 태양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붉은 녹이 흐르는 미완성된 배가 보이고 거대한 크레인의 사슬이 풀리고 있었다. 흰 구름이 부챗살로 퍼져 하늘을 덮고 갈매기들이 아련하게 공장 지대를 출렁이며 선회하였다.

“거기서도 작당을 했나?”

“아저씨도, 노동일 하는 놈이 작당 안 하면 어디 배길 수가 있나요. 그나마 작당하고 뒤집어엎어 대니 그나마 숨통이 열리는 거죠.”

“김대위, 계급이 대위가 아니라 데모를 하도 해서 대위라고 불리는구먼. 엄청나게 해봤는가 본데.”

노인이 면을 올리고 김대위와 파이프를 올려 임시로 때우기 시작했다. 파란 용접 불꽃이 두꺼운 소리를 내며 울어대고 쇠를 잡은 손에 미세하게 가벼워지며 파이프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두어 방 더 지지자 손을 슬며시 떼어보니 파이프가 매달려 있다. 용접 가스가 올라가며 메케한 냄새를 풍겼다.

“내가 4.19혁명 때 이화장에 갔는데, 뭐 달리 무슨 데모를 하러 간 것은 아니고 그냥 젊은 혈기에 휩쓸릴 거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이승만 동상을 쓸어 뜨려 목에다 줄을 달고 끌고 다니는데, , 그것참 나는 못하겠데.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런 게 데모구나 싶더구먼. 꼭 누가 보고 있다가 잡으러 올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는 그때 뭐했나?”

“뭐하기는요. 시골에서 소나 치고 그랬죠. 동네 어른들이 이박사 물러났다고 해서 알았죠.”

“데모를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데. 다 옛날 일이지.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말이야. 각하께서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서. 자기도 총으로 정권을 잡아서 그런지 안 뒤집히려고 독하게 하나 봐! 여차하면 지하실로 데려고 반 죽인다더군.”

노인이 눈을 흘겨 주변을 살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지나가는 말로 뇌까렸다. 다시 앞으로 나가면서 경비실 쪽을 보니 경찰들이 보였다.

“짭새가 떴네요.”

김대위가 고대를 옮기다 말고 말을 하니 노인도 면을 벗고 그쪽을 보았다. 노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혀를 끌끌 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대위가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더니 식당 안이 평소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가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마주 앉아 있는 식탁에 작업복에 녹가루가 잔뜩 묻은 어깨가 쩍 벌어진 노동자가 밥 두 공기째를 먹으며 오전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심한 강원도 사투리에 표현이 감정적이어서 신경을 써서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곳이 있었다. 반주도 걸친 듯 술 냄새가 났다. 오늘작정을 하고 붙을 거란 말과 경찰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쳤다는 말 둥, 오늘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영락없이 일당쟁이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둥 말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어 다녔다.

김대위는 밥을 대충 들다가 본관 쪽으로 나갔다. 경비들과 경찰들 때문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상황을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경찰과 노동자 간에 고성이 오가고 양쪽이 흥분해 있었다. 태양은 중천에 떴고 그늘로 피할 때가 없었다. 술을 마신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얼굴이 붉게 물들어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경찰이 왜 참견을 하느냐고 항의를 하였다. 경찰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비실 웃으며 상대를 하지 않았다. 명령만 떨어진다면 당장 뛰어들어 몽둥이를 휘둘러 쓰러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사람 그림자까지 땡볕에 타들어 가고 간간히 구름이 태양을 가려 그나마 순간이나마 뜨거움을 잊게 해 주었다. 벌써 서너 번 몸싸움했는지 주변에 쓰레기가 널렸고 잔디와 관상목 가지들이 부러져 있고 흙더미가 뿌려져 있었다.

“회사와는 이야기가 잘 됩니까?”

김대위가 이십대 초쯤 되는 노동자에게 다가가 슬며시 물어보았다. 사내는 내리쬐는 햇볕으로 진한 눈썹을 찡그리며 김대위를 훑어 보았다. 그가 외지에서 온 노동자임을 알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왠 걸요. 택도 없어요.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지요. 피 맛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뭐가 문젭니까?”

“다음 주부터 직영을 그만두고 하도급하라는데 죽으라는 말이죠.”

사내의 말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눈은 오늘 싸움이 아니라 다음 주를 보고 있었다. 오늘 싸움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 같지는 않았나 보다. 앞에서 고함이 나고 누군가 경찰에게 뛰어들어 발길질하였다. 몇 명의 노동자들이 경찰과 엉겨 붙어 몸싸움하다가 떨어졌다. 그때 본사 건물 쪽에서 회사원 간부인 듯한 사내가 화가 나서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격분한 노동자가 그에게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을 치자 그가 손목을 치우라고 버럭 소리를 쳤다. 관리자의 희고 가는 손이 손톱에 때가 낀 검붉은 손을 탁하고 쳤는데, 생각보다 세게 부딪쳤다. 김대위가 그 장면을 보는데 마치 자기 얼굴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울컥하는 기분에 손을 내밀며 ‘저 개자식이’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는데, 그 목소리는 흥분한 다른 노동자들의 욕설에 묻히고 말았다. 관리자도 성깔이 보통이 아닌지 어디서 욕을 하는가 맞대응은 하면서 멱살을 잡는 노동자의 가는 멱살을 맞잡고 끌고 본관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다른 사무직 관리들이 함께했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대위도 덩달아 흥분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달려가려는데 다른 노동자들이 더 빨리 그곳으로 덤벼들 듯 뛰어들었다. 경찰들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노동자들을 막고 밀쳐내기 시작했다. 김대위가 막 경찰 있는 곳에 뛰어들려는데 뒤에서 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철호!”

뒤를 돌아보니 경찰에게 달려가는 노동자들 틈에 꺼 부정한 키에 바짝 마른 얼굴이 웃고 있었다.

“하야, 정석기.”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는 월남에서 함께 다리 공사를 따라다니며 일을 했던 용접공이었다. 조선소에 와 있는 줄은 몰랐다. 깡마른 체구에 훤칠한 키가 더욱 커 보였다. 짧게 깎은 머리가 나이보다 더 젊게 느껴졌다. 둘은 뛰어드는 노동자들을 피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둘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노동자와 경찰, 뒤엉킨 사무직 관리자들을 보다가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중동에 품팔이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에 뭔 일이야? 작업복을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아닌가 본데. 노가다 뛴다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인데.”

“이 사람아 중동도 그냥 가나, 뭔가 배워야 나갈 것 아닌가.”

“그래서 그때 용접이라도 제대로 배우라고 했잖아. 빈둥거리며 이것저것 따라 다니까 제대로 된 기술이 하나 없잖아. 그래 제수씨는 잘 있나?”

“잘 있지. 사실 그것 때문에도 나가는 것을 미루고 있어. 두어 달 후에 애를 날 것 같거든.”

“이 사람 그런데 지방생활을 하고 있으면 되나? 제수씨 고생하게.”

“글쎄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돈도 벌어야 하지 않나.”

“천하의 김철호가 돈 때문에 쓸려 다닌단 말이야. 그게 말이나 돼. 제수씨가 그렇게 만들었나 보군.”

“근데 석기, 자네는 언제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나?”

“월남에서 온 후로 줄곧 여기에 있었는데, 나도 때려치우고 중동이나 나갈까 생각 중이야. 처음에는 좋은 줄 알고 들어왔는데 갈수록 보다시피 이 모양이네. 차라리 한몫 잡으려면 중동이 나을 것 같아.”

둘은 경비들과 싸우다 떨어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무 그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지난 일들을 나누었다. 정석기도 그렇고 김대위도 이제 서른두 살이 되었다. 정석기는 김대위보다 일찍 장가를 가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김대위도 석기에게 용접을 조금 배웠으나 기술자라기에는 부족하였다. 월남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 일을 했으나 신통치 않아 중동을 가려고 다시 용접을 배우려고 배관사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철호 자네도 팔자가 딱 정해져 있는가 봐! 여기 데모를 하니까 어기적거리면서 찾아오고 말이야. 누가 데모꾼 아니랄까 봐.”

“이 사람아 내가 무슨 데모꾼이야. 옛날에 내가 아니야, 먹고 사는 데 충실해. 나도 이젠 조만간 아빠가 되잖아.”

“그래 그럼 틀려야지. 그런데 자네도 모르게 이곳에 왔잖아.”

“근데 이거 해결 안 되는 거야.”

“모르긴 해도. 아마 해결 안 될 거야. 이미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상당 부분 도급제가 됐는데, 지금 되돌려 주겠어. 정회장이 직접 내려와서 오케이 해야 하는데 하겠냐고. 그럴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지. 정회장은 한번 움켜쥐면 놓는 법이 없는 양반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다른 사람들은 정회장이 자신들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면서 철석같이 믿고 있더라고. 그걸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니 말이야. 아마 이 정도 시끄럽게 하고 있으면 내려오기는 하겠지. 오늘 오후에 온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모르지. 한판 붙을 것 같아. 모든 것이 정회장에게 달렸겠지.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어려워.”

“난 일찍 도망쳐야겠네.”

“그렇게 하라니까. 제수씨 고생 좀 덜하게, 이 사람아. 이젠 자네도 애 아버지야. 홑몸이 아니라고. 그나저나 애 낳고 백일 때 물러나도 한 번 올라가 보게. 서울에 있을 때 두어 달 신세를 졌는데. 근데 몸은 어디서 풀 건데? 처가가 광주 아니던가?”

“글쎄 그냥 서울에서 애를 낳겠다는데. 알아서 하겠지.”

“처가 가기가 마땅치 않으면 이곳에 내려오시라 그래. 우리 집에서 몸 풀면 되니까. 그간 신데도 갚을 겸. 자네도 여기서 일하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하겠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데.”

“그 성질 내가 잘 알지. 저기 가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내가 특별히 가지고 다니는 커피가 있으니. 커피는 월남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여기 커피는 워낙 쓸데없어서 말이야.”

석호는 철호의 손을 이끌고 자신이 일하는 조립공장으로 갔다. 그들 뒤에서는 경찰과 노동자 간에 고성이 오가며 욕설을 해 댔다.

“사람이 더욱 많이 모이고 있는데, 정회장이 오기 전에 일이 터지겠어.”

“자네는 신경 끄라니까. 한번은 터지고 말일이야.”

흥분한 노동자들이 더러는 달려오기도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이고 있었다. 오른쪽 멀리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격렬한 함성이 들리기도 했다. 공장은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함성을 지르며 뛰어가면서 ‘백 바가지 죽이자!’ 소리를 쳤다.

“형님 안 나가요. 철구공장에서 붙었다는데요.”

조립 공장으로 오니 이십 대 초쯤 되는 노동자가 나가면서 석기의 어깨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밖을 둘러보았다. 말투에 다정함이 묻어 있는 절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청년은 은근히 꼭 함께 같으면 하였다. 팔을 잡고 끌려다 김대위가 있는 것을 보고 멈칫거렸다. 이마에 땀이 송글 거리고 진한 눈썹이 움직이며 싸움에 들떠 있었다. 까만 눈동자가 스치면서 김대위의 눈과 마주쳤다. 당신은 누군가? 하는 눈빛이었다. 그의 부탁이 무색하게 기석은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싸우기는 임마, 이 나이에. 난 몇 년 만에 월남 동기를 만났으니 차 한잔해야겠다.”

“형님이 가서 그 큰 주먹으로 짭새들 면상을 한 대 쳐야 될 것 아닙니까?”

자못 아쉬운 마음이 있어나 보다.

“옛말이다. 죽어지내는 것이 장땡이야. 이제는 너희들이 한바탕 해야지.”

“경찰이 더 몰려온다는데요. 군인도 온다는 말이 있어요. 이번에 밀리면 십 년은 죽어지내야 해요.”

“알았어.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이 친구와 차 한잔해야 하니까. 일단 먼저 가 있으라니까.”

“알았습니다. 나중에 오세요. 일 생기면 연락할게요.” 청년은 다른 동료와 본관 쪽으로 달려가고 철호는 석기가 타 주는 차를 들고 공장 한켠에 앉아서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월남에서 오래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동안 주변의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밖에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거나 서로 농담하며 웃었다. 싸우는 곳을 둘러보고 와서 진행과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그 자리를 빠져 퇴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까, 구경하는 사람도 많고 싸우는 사람도 많고.” 김대위가 주변을 살펴보며 말을 하자, “놔둬. 다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다 들고 일어나 싸우면 혁명 일어나지, 안 그래? 똑같은 처지라도 불만 있는 놈 있고, 감지덕지하는 놈 있는 거 아니겠어. 또 애초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놈이 싸울 일 없는 거 아니야. 전쟁하면 별다르겠어. 다 똑같아. 오늘 일은 완전히 종 쳤구만. 나도 대충 구경이나 하다가 퇴근이나 해버릴까. 저 새끼는 왜 근데 저리 큰 소리로 웃는 거야. 미친 새끼.” 기석은 키가 작고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내를 보고 짜증스럽다는 듯 말하고 침을 뱉었다. 마치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고 할 일 없는 놈이라고 탓하며 빨갱이 자식들이라고 하는 말이 그곳까지 들렸다.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휴식시간이 끝나 오후 일을 마치고 만나기로 하고 둘이 헤어져 김대위는 자신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 사무실에는 1시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소장까지 빙 둘러앉아 있었다. 소장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옛날 데모하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손을 펼쳐보이며 소리를 지르고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항의를 하며 싸우는 광경을 신나게 떠들어 댔다. 더러는 그의 손끝을 쫓으며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두어 명을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성남에서 내려온 박씨는 화투 패를 떼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남는 시간에 화투라도 쳤으면 하지만 현장상황이 복잡해 그럴 여유가 없어 보였다. 소장이 다른 사람들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 조금 지켜보다가 일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 돌려보내려고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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