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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7
    중동에 간 사나이5
  2. 2009/05/10
    중동에 간 사나이 4

중동에 간 사나이5

간호사실에서 간호사 둘이 안내실로 나오면서 흐린 날씨와 신경질을 부리는 환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여성 환자가 지나가면서 고개를 끄떡이며 인사를 하자 둘이 살짝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뒤에 있는 간호사들이 혹시 자신에 대해 이야기라도 할까 봐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그녀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라도 하라지, 어차피 그렇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을 테니’ 막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꺾어지는 곳 모퉁이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녀는 공중전화를 지나치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두어 발걸음 다시 돌아가 동전 떨어지는 구멍에 손가락을 살며시 넣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손을 꺼내니 손바닥에 동전이 세 개가 있었다. 그녀는 동전을 집어넣고 좋은 일이 생길 거로 생각했다.
 
소나기가 몰려오자 비둘기가 조급한 날갯짓으로 병원 옥상 난간에 앉았다가 다시 난간 아래쪽으로 날아 들어갔다.앞마당 검은 회색빛 아스팔트가 금세 검게 무늬를 그리며 변하기 시작했다.소나기가 바닥을 때릴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아스팔트 위로 차바퀴 무늬를 찍으며 흐르는 빗물을 가르며 부드럽게 굴러갔다.블록 틈새로 솟아난 잔디에 먼지가 씻긴다.놀란 비둘기 떼가 난간 아래쪽으로 더욱 몰려들고,우산이 없는 간호사 셋이 머리에 손을 대고 비명을 지르며 본관으로 뛰어왔다.비를 만난 택시가 한 사람이라도 태우려고 병원으로 들어와 기다렸다가 손님을 태우고 정문으로 빠져나갔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떠들썩하게 잡담을 나누며 평상복 차림으로 현관 앞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불어 댔다.그들은 외국에 나가려고 예방접종을 하고 집으로 가는 중동파견 노동자들이었다.둥근 어깨를 으쓱 이며 악수를 하거나 서로 어깨를 치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며 하나 둘 헤어졌다.몇은 우산을 펼치고 내리막길인 정문으로 걸어가고 몇은 택시를 나누어 타고 나갔다.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니 시끌시끌했던 병원현관에 조용했다.그들이 떠난 공허한 자리에 다른 환자들이 현관에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비가 오는 것을 우두커니 서서 담장 아래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임동호는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를 보고 언제 비가 그칠지 가늠해 보았다.열린 창으로 마른 먼지 냄새와 습한 공기가 들어왔다.병원3층 높이의 버들 나무 한 그루 잎들이 맑은 날보다 더욱 푸르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잎들과 잎들 사이로 빗물이 흘러 떨어지며 바람이 부는 듯 가늘게 떨어 댔다.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기는 했지만,차츰 하늘이 맑아져 계속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아침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올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우산을 가져올까 생각을 하다 귀찮아서 그냥 온 것이 후회되었다.할머니가 대문까지 우산을 들고 나올 때 받았어야 했다.비를 맞으면서 나갈 만큼 반기는 곳도 딱히 어디 가서 즐길 여유도 없었다.조금 있다가 나가자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다.건강 검진을 하며 여러 대의 예방 주사를 맞아뻐근한 어깨를 돌려 보고 움찔해 보았다.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대기실 나무 의자가 놓인 자리로 가서 앉아 가방을 열고 낡은 책을 꺼냈다.접어놓은 곳을 펼쳐들었다.작은 글자들이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묵은 냄새를 풍기며 검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호가 병원 로비에 있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정문을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 잎에 비가 그치지 않고 두드려 댔다.촘촘히 쌓인 은행잎이 서로 그림자에 가려 건들거리고 가끔 부는 바람에 한 움큼씩 물방울을 뿌려댔다.한동안 내린 비는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서쪽에 하늘에 무지개가 뜨더니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이미 태양은 기울어 금세 저녁놀을 펼쳐질 것 같았다.
책 속에 푹 빠져든 동호는 밖의 일을 잠깐 잊었다.가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병원 로비는 환자들과 면회자들로 붐볐다.소독약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디선가 간호사가 사람을 부르는 소리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한 곳이었다.환자들의 시선은 부드럽고 말이 별로 없었다.문 열리는 소리나 차바퀴 멈추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링거 병을 옮기는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다시 책에 빠져들었을 때,이번만 읽고 일어나야지 생각을 하였을 때였다.
“그 책,재밌나요?”
목소리가 떨리고 깊은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책에서 눈을 떼고 쳐다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머리가 짧은 여인이 옆자리에서 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느라 그녀가 옆에 앉아 있는 줄 몰랐다. 생글거리는 커다란 눈이 더욱 커졌다. 사람의 눈동자를 이렇게 선명하게 쳐다보기는 처음이었으리라. 그녀의 짧은 머리가 실핏줄이 보이는 엷은 살짝 덮고 있었다. 그녀 뒤로 한풀 꺾인 초여름 태양빛이 로비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눈동자가 진한 눈이 임동호를 보고 어색함과 생소함을 지우려 웃었다. 친척 누군가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역시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 책이요.”임동호는 그제야 그녀의 질문을 알아들었다.
“소설이에요.그러니까,주절거림의 바다죠.”동호는 책을 덮으며 앞장을 보여주었다.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이었다.그런데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했는지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책이네요.헌책 인가요.나도 독서에 몰입할 수 있다면.”여인은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었다.동호는 그녀 넘어 안내실 넘어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보았다.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두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책 속에 빠져 있었다.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그렇죠.누군가 읽었던 책이죠.한번은 지방에 일을 갔는데 하숙집에 이 책이 있더군요.그 집 아들이 썼다는 방이었는데 그가 읽었던 책이었나 봐요.”
구석에 눕혀 놓은 책을 들었을 때,진득한 먼지가 묻어 있었다.작년 여름에 갔었던 전주역 근처의 현장 하숙집이었다.어두침침한 그 방구석에 비스듬하게 있던 곰팡이 나는 미성년을 그렇게 만났다.현장이 끝나도록 읽지 않고 구석에 버려두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읽으려고 가져왔다.오늘도 병원에 오는 길에 차분해지려고 가져와 읽고 있었다.
“누구 문병을 오셨나요?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
“신체검사가 있어서요. 멀리 떠나거든요.” 멀리 떠난 다는 말에 끝을 조금 흐렸다.
“멀리요. 어디?”
그녀는 호기심 많은 눈이 빛이 났다.얼굴이 지나칠 만큼 희었다.조금만 더 희었더라면 백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마른 몸이 환자복이란 포대에 들어가 헐렁거리고 있었다.
“중동이요.더운 곳에 일하러 나가죠.취업이 됐거든요.무척 더울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두렵기도 하고요.나가기 전에 무슨 병이 있나 검사를 하더군요.여러 가지 주사를 놔 주고 주의도 주더군요.그곳에도 풍토병이 있나 봐요.사람하고 기후만 다른 게 아니라 땅이 틀리면 그 땅에 사는 것 모든 것이 다른 가 봅니다.”동호는 손가락을 흔들며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가는 군요. 멀리 간다고 해서 지방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얼굴이 밝아 보여요.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부럽군요.”그녀는 임동호에게서 혈색이 맑은 물처럼 걸림 없이 잘 돌아가는 신선함을 느꼈다.깨끗한 피가 튼튼한 혈관을 거침없이 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그녀는 깊은숨을 들여 마셨다.흰 좁고 둥근 이마에 얼핏 그늘이 짙었다.
“병원에 오래 계셨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다닌 지는 조금 됐어요. 가끔 입원을 해요. 저도 검사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니요. 더는 말 안 할래요. 신체검사는 아직 더 해야 하나요?” 여자가 따분하듯 고개를 돌려 밖을 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녀 가는 어깨를 감추는 환자복 셔츠 구김이 물결치듯 생겼다 사라졌다.
“다 했어요.비가 와서 그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본 거죠.”
“비가 와서 저도 나와 보고 싶었어요.로비로 내려왔을 때,아는 사람인가 했는데 아쉽게도 아니네요.”
한 여인이 링거 병을 들고 가면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밖에 산책하러 나간다고 한다.팔을 가슴에 안고 링거 지지대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고 그림자가 길게 그녀를 따라갔다.
“ 저분이 암에 걸렸다는 것이 느껴지세요?”그녀는 속삭이듯 말을 했다.
“암이요?전혀.”
“암이라는 게 묘해요.어제까지 괜찮았던 사람이,함께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웃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까,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아요.전혀 다른 세계,다른 차원으로 떨어진 느낌이죠.마치 마지막이라는 열차를 타러 가는 대기소에 앉아있는 기분.마치 죽어 있는 사람이 살아서 걸어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생명력이 없는 인형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녀는 입을 다물고 살짝 웃어 보였다.눈이 가늘어지고 웃음을 머금은 것이 말하며 뭔가를 생각한 듯하다.
“멀리 떠나시는데 못할 소리 한 것 같아서.”그녀는 입을 막았다.
“아니요,사실 이렇게 품을 팔려고 멀리 떠나는 게 좋은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고요.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가는 길이라 즐겁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막상 가려고 하니까 여러 생각이 들어요.이를테면 뭔가 환상을 좇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사막에 대한 낯섦도 있고,그냥 뭔지 모를 외로움이나 우울함도 있어요.그게 결국 내가 왜 가지?혹은 꼭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지요.그래도 가야겠지요.”
“일 때문에 나가면,혹시 중동인가요,사우디?”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검지를 쳐들더니 지도를 찍으며 말을 하듯 사우디를 꺼냈다.
“그렇죠.사우디아라비아로 가요.요즘 대부분 그쪽으로 가잖아요.마치 오래전에 계약이나 해 놨듯이 다 몰려가죠.미 서부에서 금광이라도 발견한 듯 말이죠.”사우디를 맞추자 동호의 약간 들뜬 목소리로 그곳을 이야기하자 어느덧 열사의 땅,모래 폭풍이 분다는 그곳 가는 흙냄새가 코끝에 살며시 스치고 지나갔다.
“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같은데 현장 일을 하시네요.내가 현장 일을 잘 몰라서,대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로 아는데.”그녀는 뼈대만 있는 건물에 짐통을 지고 올라가는 늙은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죠.”그는 손가락을 펴서 펼쳐보였다.그 안에는 사람이 알 수 없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 데요?”
“용접을 해요.용접은 아시죠.그렇죠,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쇠로 된 일은 다 하거든요.저는 배관이 전문이라 그 일로 갑니다.”
“그럼 기술자네요.흔히 말하는 막노동이 아니라,대부분 그렇게 말하잖아요.”
“다 같아요.건물을 짓는데 시멘트와 벽돌만으로 어림도 없거든요.실은 현장을 들어가 보면 많은 직종이 있어요.그곳에서 대부분 하루하루 전표나 일당을 받고 있어요.다 같은 막노동이지요.”손가락을 꼽아 보며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여인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임동호는 말을 마치고 책을 잡고 전체를 한번 넘겨보았다.시계를 보았다.대기실에 불이 들어오고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늘에는 흐린 구름이 껴 있었다.또 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는 검사가 다 끝났나요?”
“내일까지요.”
“많이 아픈가요?”
“꽤요.거의 모든 곳에,정말 내 이야기는 하지 않을래요.그쪽 이야기해요.나도 비행기 타고 싶어요.한 번도 타보지 못했거든요.”
“나도 그래요.기대가 되네요.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보면 까마득할 거예요. 10층만 올라가도 사람이 손가락만 하게 보이거든요.”
임동호도 약간 우쭐하게 생각했지만,노가다가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는가 생각이 들면서 곧 기분이 가라앉았다.이내 둘이 잠깐 침묵이 흘렀다.자리를 일어서서 가야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그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먼저 일어나기 싫었다.서로 앞만 보고 있다가 어설프게 눈이 마주치자 둘의 속을 서로 알기나 한 듯 멋쩍게 웃었다.
“병원은 지루해요.고무로 만든 과자를 씹는 느낌이랄까.”
“현장에서도 그래요.늘 근거 없이 지방을 떠돌아다녀야 하거든요.일을 마치면 술집에 가든지 하숙집에 가서 누워 있어야 하는데 그 둘 다 취미가 없으면 다방이라도 가서 텔레비전을 보든가 이불 속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해요.어떨 때는 나 자신도 잊어요.그런 적 있으세요?아주 몽롱해 지죠.그 상태가 지나면 몽롱도 못 느낄 때가 있어요.가끔 그래요.때로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있으면 내가 아저씨들 친구인 것 같아요.전쟁을 겪고,마치 월남에 다녀온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떡였다.그녀는 혼자 있는 어두운 방을 생각했다.기계만 가득한 텅 빈 작업장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이 가지 않는 매캐한 재료 냄새가 나곤 했는데,그럴 때면 어깨가 떨릴 만큼 어떤 전율을 느끼곤 했다.도망치려고 돌아서면 미닫이문이 흔들리고 있었다.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마치 허공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차라리 공장이라도 그의 몸을 옥죄어 주는 것이 살아가는 한 줄기 숨통을 열어 주고 있었다.
동호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얼굴을 비볐다.쓸데없는 소리를 했군,하고 후회를 하였다.지나가는 노인이 걸음도 잘 걷지 못하면서 멍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얼굴의 주름이 흘러내릴 듯 늘어져 있었다.그에게는 인상 쓰듯 쳐다보는 눈동자와 곧 주름 안에 사라져 버릴 엷은 입술만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중동에서는 얼마나 가 있을 건가요?”
“모르겠습니다.기본 계약은1년이에요.연장을 많이 한다더군요.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지겹겠네요.아니 신나기는 일이겠네요.”
“글쎄요.지겹든,신나든 일을 하다 보면 잊겠지요.더위 때문에 다 잊을 수도 있겠죠.그쪽은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동호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공장에 다녀요.끔찍한 일이죠.어쩌면 다행이기도 하고요.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떡였다.그리고는 천정을 쳐다보며 머리를 뒤로 제쳤다.숨을 길게 들여 마셨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공장에 있을 거예요.싸늘하게 누워 있으면 친구들이 기계 사이로 늘어서서 내려보겠죠.그 소름끼치는 청색 바지에 흰 실내화를 신고 말이죠.그 발아래 누워서 형광들 쳐다봐야 한다니.”
.......”
“마치 서 있는 시체들처럼 서서 일하고,그 사이로 성난 개가 으르릉거리듯 남자들이 다니죠.덜떨어진 어른들이죠.나이를 먹으나 젊으나 늘 자신이 사내라는 것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다니죠.특히 여자들에게요.그렇지 않으면 당장 어린애처럼 엉엉 울 것 같은가 봐요.”
.......”
“나도 떠나고 싶어요.항상 날이 밝으면 또 그 자리인 것을 느끼곤,내가 시들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떠날 수 있다면.”
둘 다 잠깐 말도 듣기도 멈추었다.그녀와 동호는 거의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 쉬었다.그녀는 혼잣말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떡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외국까지 가서 노동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동하거나 여자들 틈에서 으르릉거리나 봐요.”
“글쎄요.모르겠습니다.나는 여자들과 일을 해보지 않아서.”
“현장에는 여자가 없겠죠?”
“가끔 있기는 하지만,나이가 많아요.사십 넘어 남편 따라 현장에 나온다더군요.”
“불행한 여자들이겠네요.여자는 그 자체로 불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병은 공장에서 얻은 건가요?”
그 말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그렇다고 말을 하려다가 대답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그녀는 무릎을 의자에 올려놓고 팔로 무릎을 감싸고 턱을 무릎에 댔다.동호는 긴장감보다는 어떤 안락한 의자에 막 앉아 그 포근함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부드러운 햇살이 두 사람에게 드리우고 있었다.그는 등을 깊게 앉고는 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얼굴을 매 만졌다.마치 서로 없는 듯 상상 속에 상대를 맞이하고 뜻하는 대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것 같았다.그것은 꿈과 같은 기분이었다.
60년대 여성들은 병이 들면 스스로 앓다가 죽어갔다고 하는데, 70년대 살아서 병원이라도 가요.자신의 망가진 만큼을 확인이라도 할 수 있는 거죠.지금의 공장이란 그런 곳이죠.”
“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떠돌아다녔어요.주변에서 공장 생활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한번은 전자회사에서 일하는데 출근하는 여공들을 본 적이 있어요.몇 년씩 일을 했다고 하데요.그녀들을 쳐다보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어요.이 좁은 공장에서 수년씩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말이죠.한편으로 그만큼 나는 돌아다니는 일이 익숙해져서 그렇겠지요.아마 나는 그 좁은 공장에서 일한다면 얼마 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올 겁니다.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모양입니다.돌아다니는 것이 죽도록 싫을 때도 있기도 하지만 또 가방을 싸고 이동을 합니다.싫다고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 내 팔자인가 봅니다.”
“전자회사 말고 다른 공장에서는 일 안 하셨나요?”
“많은 공장을 돌아다녔죠.주로 여공들이 일하는 공장이요.한번은 무척 더운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있었어요.무엇을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옷감이 널려 있었고 재봉도 있었고 염색도 했어요.둥그런 천장이 높기는 했지만,벽 두께가 너무 엷어 겨울에는 추위가,여름에는 더위가 지독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죠.여름 휴가철에 휴업을 이용해 일했는데,정말 덥더군요.쓰러질 지경이었죠.이곳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나?궁금하더군요.그해만 서너 명이 더위에 쓰러졌다고 하더군요.한쪽에서 환기 시설을 하고 우리는 배관을 끌어대는 일을 했어요.지금은 그나마 나을 겁니다.난방 시설도 했으니까요.겨울에는 동상에 걸려 발에서 물이 흐른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왜 그토록 일을 해야 하는지 화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아는 형이 거기서 한 여성을 만났는데,눈이 둥글고 키가 작았어요.통통하게 생겼는데 아마 얼굴만 그럴 겁니다.손이 가늘고 길었거든요.한번은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는데,형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하더군요.그 말이 묘하게 들렸어요.마치 지방에서 술집이나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하는 말 처럼요.그곳이 지겹다고 하데요.형은 그럴 수 없다고 했죠.다음 현장이 지방이었거든요.만약 서울이었다면 함께 올랐을 텐데요.우리는 옮길 때 몰래 그곳을 빠져나왔죠.”
.......”
한번은 셋에서 공장 부근을 잡초와 흙먼지 쌓인 보도,담장 따라 정처 없이 걸을 때가 생각났다.달리 갈 때도 마땅치 않았고 할 일도 없었다.어깨 정도밖에 오지 않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따라왔었다.무슨 생각을 했을까.아무 생각도 없는 놈팡이에게 운명을 맡기려 하다니.
대기실 로비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병실로 이동하였다.
“저녁 시간이에요.”여인이 실내화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지 않나요?”
“가야 하는데,야간 회진도 있고.”엄지손톱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했다.
“어,벌써 이렇게 되었네.비도 그쳤고.”
동호는 느리게 일어서며 어깨를 돌려 보았다.책을 가방에 넣었다.
“비가 그쳤으니 떠나야 한다네.심장은 느리게 뛰고 몸은 갈수록 쳐지네.이별 인사를 하고 싶은데,가방을 들어줄 사람 없고 시계만 째깍거리네.”
그녀가 노래 가사를 읊듯 그럴듯한 말을 하며 유리로 된 벽으로 가까이 가서 밖을 향해 섰다.
“그럴 듯한 말이네요.”
“가끔 시인이 되고 싶어요.그저 멋진 시를 읊고 싶기도 하고.공부를 했다면 시인이 되었을 거예요.그런데 공장이라니.”그녀의 눈동자가 깊은 황혼빛을 머금었다.그 눈 속에 그녀는 황혼이 지는 언덕에 서서 느티나무에 기대고 저녁놀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장을 시로 쓰면 되잖아요.”
“그곳은 그대로 둬야 해요.그 자체로 너무나 가슴 저린 시어들이니.먼지들이 날리고,찜통 같은 더위와 추위,여공들의 울음소리가 기계 소리에 묻히고,어찌할 수 없는 의지와 감상들,마르고 파리한 손가락들이 섬세하게 움직이죠,그리고 때 묻은 이불과 작은 웃음들,어질어진 실내화,버리진 컵에 담긴 화초들.”
그녀와 나란히 밖을 보고 섰다.
“그것도 시네요.정말 가봐야 하겠어요.나 때문에 회진을 놓칠 것 같으니.”동호가 아쉬운 듯 갈 듯이 여자에게 말을 하자 그녀는 유리벽을 노크하듯 두드려 댔다.그러더니 돌아서서 웃으며 말을 했다.
“아까,그쪽을 보는 순간 서로 말이 될 것 같았어요.전에 친구가 있었는데,늘 그렇게 책을 보고 있었어요.지금은 그 친구를 만날 수 없었지만,그냥 안녕하고 헤어지기에는 젊은 나이에 노동 때문에 너무 멀리 가는군요.우리 나가서 저녁 먹을까요?혹시 환송회가 잡혀 있지 않다면요.”
“아니요.그런 것 없어요.누가 나를 위해 환송회를 하겠어요.그래 주신다면 기꺼이 감사드리지요.”
“전혀.옷 갈아입을 동안 기다려 준다면요.”
 
“세상에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을 때에서야 깨달았어요.”
여자는 가볍게 걸으며 그의 팔짱을 끼었다.흰색 셔츠와 청바지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버스를 타러 병원을 내려가며 그렇게 말을 했다.종로 쪽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둘이 버스를 타고 뒷좌석으로 갔다.
“뭘 먹어야 하죠?”
“뭐든 지요.오늘 밤에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국물을 먹고 싶어요.”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잘해 주시는데.”
“할머니하고 같이 사세요?”
“예.부모님은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요.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할머니하고만 살고 있어요.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신 분이죠.중동에 가겠다고 했더니 우시더군요.전쟁 때에는 남편을 잃고,일찍 자식과 며느리를 잃고,남은 손자 하나가 멀리 일을 하러 간다니,그게 기쁜 일은 아니죠.불행한 사람은 늘 눈물을 흘립니다.설사 기쁜 일이라도.”
“그래서요?”
“함께 울었죠.”
“돈을 벌면 어떻게 하시게요?”
“글쎄요.집을 살까요?무허가라도 사면 내 집이 되니까요.일제 사진기도 사고,텔레비전도 사고 싶고요.남들도 다 그렇게 사더군요.뭔가 달라졌으면 해요.지금과는 다르게,완전히 말이죠.그리고 할머니에게 넓은 안방을 드리고 싶어요.”
“공항에 들어올 때볼 만하겠어요.목에는 사진기를 걸고 커다란 전자제품에,검게 탄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색안경도 쓰고 들어오겠죠.하지만,삶이1년 만에 얼마나 변할 수가 있을까요.”여자는 활짝 웃었다.
“안되면2, 3년을 일하죠.”
“그래도 안 되면요?”
5, 10년을 안 들어 올 거예요.그냥 지금이 싫어요,지겨운 건가요,하여간 변해야 해요.몇 년 만 있으면 서른인데,서른이 되기 전에,서른을 넘기면서 여전히 현장에 서서 장갑을 끼고 살갗이 벗겨진 어깨로 짐을 나른다는 것은 너무 우울하거든요.”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게 보이려고 해요.현장에 있기에는 그쪽은 너무 예민한 사람 같아요.하지만,현실이잖아요.떠나기 전에 힘을 내세요.힘들게 일을 해야 하잖아요.오늘만이라도.멋지진 않지만 조촐하게 환송식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군요.환송식,책이나 읽으면서 며칠을 보낼까 했는데,그런 행운을 주다니.더구나 이렇게 또래 여자와 같이.”
둘이 종로3가에 내려 아래로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종로 거리에 차들이 붐비고 기름 냄새기 길을 덮고 있었다.젊은이들이 머리를 기르고 짧은 반소매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배회하고 있었다.종로1가 쪽으로 내려가거나 위로 올라가거나 그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리 속에 방황하는 개미들처럼 자연스런 행렬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가끔 경찰들이 서 있고 휴가 나온 군인들이 어깨 걸고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임동호는 입을 꾹 다문 검게 탄 사내들이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일 때,그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여자는 기분이 좋은 듯,가볍게 동호의 팔을 잡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을 맞추어 걸었다.여자의 팔이 너무 가볍게 걸쳐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여인은 너무 말라 있었다.그러고 보니 다른 여인들도 그처럼 말라 있기는 했다.그녀가 길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보다가 기사 하나를 동호에게 보여 주었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를 수주한 기업인이 검은 양복을 입고 중동사람과 함께 악수를 하는 사진이었다.그 옆에 젊은 간부가 활짝 웃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중동으로 나갔겠네요.그곳에는 여자도 술도 없잖아요.남자들은 그 둘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하던데,어떻게 버틸까요.”
“난 지금까지 없이 살아왔는데.”
“거짓말.”
“다 하는 말들이에요.남자들에게 술과 여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이 없는 거겠죠.항상 뭔가를 추구해야 하잖아요.그곳이 중동이 아니라 북극이라도 가겠죠.돈이 된다면,그곳에서 건축 일을 할 수 있다면요.”
동호는 신문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음식점이 많은 골목으로 들어갔다.좁은 무교동 골목이었다.낮은 지붕과 물기 젖은 골목,고기 굽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집집이 젊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나이 든 여인들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돈을 지급하고 술을 마시면서 고민이나 울분을 쏟아 내는 골목이었다.성을 없애는 창부 촌이나 종교적 행위로서 자신의 고뇌를 푸는 곳에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사람이 있고 고뇌가 있고 터질 듯한 심장이 있는 곳은 분명히 같은 장소일 것이다.둘이 들어가 앉은 곳은 낮은 지붕이 있는 술집이었다.그녀가 무조건 일곱 번째 집에 들어가자고 해서 그리 들어왔다.둘이 막걸리와 순댓국밥을 시켰다.
“집안 이야기 좀 해 보세요?”
“할머니랑 살고,재미없는 일을 해요.그리고 저도 곧 멀리 떠날 거예요.아주 멀리.”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에요.말 안 할래요.저는 비밀로 가득 찼어요.하지만,뒤집어 보면 볼품없는 망가진 어린이 화장품 가득한 장난감 상자 같은 거지만.분명한 것은 그쪽과 나이도 비슷하고 사는 것도 비슷해요.더는 개인적은 것은 묻지 않기요.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에요.우연히 주운 동전과 같은 거요.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를 들었는데 누가 동전을 놓고 간 거예요.아무것도 아니지만,기분이 좋잖아요.”
“공중전화와 동전이라고요.”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도,누가 이 이야기를 해 주었지.그때도 여자였던 것 같다.
“아,이 지독한 담배냄새.안에는 담배냄새 가득하고,계속 걸을 수도 없고.”
그녀는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천장에는 담배 연기가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었다.음식이 나왔지만,그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국물만 몇 수저 뜰 뿐이었고 다 먹은 것은 물 뿐이었다.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단지 말을 할 뿐이었다.이런저런 떠다니는 이야기들,그녀는 마치 소설처럼 자신의 감정을 여러 행태로 끄집어냈다.어쩌면 함께 있는 것이 소설을 읽는 것일지 몰랐다.
“왜 이름이나 나이를 묻지 않아요?다들 처음 만나면 묻잖아요.”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요.아마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하지만,묻지 않으니 내가 말을 하게 되네요.”
“조금만 있다가 나가요.얼굴이 좋지 않아요.힘들어 보여요.”
“어떤데요?”
“창백해졌어요.처음에 하얀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갈수록 더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아요.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담배 연기가 참을 수 없지만,정말 견디기 어렵네요.어쨌든 환송식을 해 주려고 나왔으니,!잔을 드세요.멀리 떠나는 당신의 젊음을 위해!”
그녀는 작은 소주잔을 입에 대고 천천히 한잔을 다 마셨다.동호는 점점 들뜬 기분이 사라지고 가라앉았다.
“모든 상황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지 않나 봐요.그쪽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요.얼굴이 금방 변하시네요.나온 것이 후회되시죠?”
“아니요.그게 아니라,사실 조금.”
“우리 나가요.왜들 저렇게 피워 댈까요.마치 담배를 태우면 모든 고민이 타들어 갈 줄 아는 것 같아요.종교도 저런 종교는 없을 거예요.그쪽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네요.”
불쾌한 기분으로 그녀는 뛰쳐나갔다.
“음,한결 났네요.차들의 기름 냄새가 더 좋네요.소음도 그렇고,그것들은 마치 모든 문제는 간단하고 보잘 것 없다는 듯 떠들어 대지 않잖아요.”
그녀는 도로와 인도 경계인 난간에 올라서더니 마른 팔뚝을 쭉 뻗어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을 했다.수줍음 많은 친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춤을 추고 나와 주변을 놀라게 하는 느낌이었다.그녀는 긴 팔을 뻗었는데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기라도 할 태세였지만,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그저 가슴을 열고 싶어 할 뿐이었다.그녀를 뒤에서 보고 있으니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진한 공기가 검은 안개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힘없이 내려와 쳐졌다.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대자 놀라 듯 떨었다.그의 손이 동호임을 알자 물 뿌린 화초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났다.
“다시는 그런 담배연기가 있는 곳으로 가라면 죽어버릴 거예요.”
......”
“함께 걸어요.우리 명동으로 갈까요.기분 좀 네 개요.”
그녀는 동호의 팔을 끌었다.
“걷기에는 너무 먼데.”
“그 정도로 괜찮아요.”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헤어지자는 말로 들리는 데요.”
무교동을 지나 명동을 가면서 그녀는 밝은 표정이었다.진열장에서 마네킹이 입은 옷을 구경하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했다.거의 한 바퀴쯤 돌았을 때,그녀는 기침하기 시작했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늘 하는 생각이지만.”
“왜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루하루가 채워지는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속에 던져지잖아요.”
“희망에 찹시다.아직 우린 점잖아요.시간이 많아요.”
“내일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어떤데요?”
“역시 병원에 있겠지요.하얀 포대 위에 누워서 오늘을 생각하겠지요.그리고 아무것도 없어요.또 공장으로 가거나,텅 빈 방을 지켜야 할 테니.”그녀는 갈수록 기침을 심하게 했다.
“병원으로 갑시다.너무 멀리 왔어요.밤이 되니까 기온이 떨어 지내요.”
“잠깐만,걸어요.그래도 괜찮죠.아까 그곳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요.멋진 환송식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요.충분해요.그쪽만 아니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방에 있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악수 한 번 했을 거예요.인사할 누구도 걱정할 그 어떤 친구도 동료도 없어요.있어도 그저 그런 느낌일 테지요.중동에 가서 오늘 이 순간들을 몇 번이나 생각할 거예요.”
얼마나 걷다가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에요.”
“공중전화에서 동전을 줍듯 말이죠.”
“그래요. 혹시 1년 후에, 그때도 생각이 난다면, 이 병원으로 오세요. 만약, 그때도 보고 싶다면요. 그때 이름도 가르쳐 줄게요. 1년 후에 중동에 다녀온 사람 얼굴을 알고 보고 싶어요.”
1년 후에도 병원에 있게요?”
“아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죠.”
“우리 점 한번 볼까요?”
“무슨 점을?”
“여기서 내려서 첫 공중전화를 보면 무작위로 번호를 눌러서 전화해 보는 거예요.남자가 받으면 못 만나는 거고,여자가 받으면 우린 또 만나는 거예요.”
“난,그런 미신을 믿지 않는데.할머니가 극도로 싫어하셔서.”
“난 믿어요.”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다.
“그럼 해 봅시다.그런데 남자든,여자든,누가 받을 확률은 상당히 떨어지는데.”
“누구든 받을 거예요.받을 때까지 할 거예요.”
둘을 버스에서 내렸다.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에 공중전화는 병원 정문 옆에 있었다.그녀는 첫 번째 부스로 들어가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떡이더니 나왔다.
“남자,여자요?”
“말 안 할래요.”
“내가 알아맞혀 볼까요?”
“뭔데요?”
“안 걸렸어요,그런 전화번호 없다고 했을 거예요.”
“천만에요.”
“아니라니까.그것이 인생이에요.아무것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요.”
“당신은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믿음이 아니라 현실이에요.”그녀가 몸을 부슬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동호가 어깨에 손을 대자 여자는 몸을 움츠러들었다.
“난 괜찮아요.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어요.오늘 조금 무리했어요.”
“나 때문에.”
“아니요.잘 가세요.부디 건강하게 일하시다 오세요.그것은 덥잖아요.”
“사람이 사는 곳이니 금방 적응할 겁니다.가난한 사람은 생명이 질기잖아요.”
“글쎄요.갈게요.”
둘은 손을 가볍게 잡고 이별 인사를 했다.
1년 후에 누구를 찾을까요?”
“이은미를 찾으세요.”
“이은미?”
그녀는 팔짱을 끼고 언덕진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3일 후, 임동호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맑은 날, 오후였다. 이은미라는 여인을 그곳에서 만날 확률은 극히 적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로비에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하려다가 3층에 올라갔다. 아마 그곳이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층에 올라가 안내소에 가니 간호사 한명이 앉아 있었다. ‘이은미 환자’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은미 씨요?”
“은미 씨요.” 그녀는 차트를 살펴 보더니 얼굴을 들어 안경 너머로 동호를 쳐다보았다.
수술 들어갔는데요.”
수술이요?”
“가도 못 만나실 거예요. 꽤 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차트를 덮더니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수술인데요?”
“위 절개 수술인데, 은미씨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그녀는 쳐다보지 않고 말을 했다. 관계가 불분명하면 더 이상 말을 해 줄 수 없다는 투였다.
친구인데,제가 내일 어디로 떠나는데 얼굴 좀 보려고요.”
아마 보기 어려울 거예요.수술이 끝나도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다음에 와 보는 게 좋으실 거예요.”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 거릴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동호는 간호사가 가리켜 준 2층 수술실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수술실 앞에는 몇 사람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든 여인이 울먹이며 무어라고 하자,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이 은미는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중년 부인을 보니 이은미와 닮았다. 그녀는 다리가 아픈지 무릎을 자주 주물렀다. 그녀 옆에 앉아 있는 친구인 듯한 여인 둘이 있었는데 한명은 둥근 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한명은 긴 머리가 눈에 들어 왔다. 그녀들은 곁눈질로 임동호를 쳐다보았으나 동호는 모른척하였다.
어차피 만나기는 글렀으니 그저 조금 앉아 있다가 가자는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온 것 이 후회도 되었지만 오지 않았더라면 더 신경이 쓰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날이 맑고 밟아 더운 초여름 공기가 열린 창을 통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일이며 이 모든 공기와 분위기, 잡음들과 한가한 시간은 끝이다. 그 모든 것은 쓰레기통에 쓸려 들어가듯 자신과 멀어질 것이다.
그는 사색에 잠겨 있다가 그의 가슴속에 그 어떤 미묘한 그리움이 가실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실을 빠져나오면서 복도를 꺾어져1층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공중전화가 있어서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동전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멈칫 뒤를 쳐다보았다.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냥 나오려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자 동전이 동전 구멍으로 떨어져 내렸다.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뭔가 텅 빈 가슴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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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 4

임동호는 노인을 쳐다보니, 쌍꺼풀진 눈이 쳐지고 눈알이 충혈되 취기가 한껏 올라 있었다. 짧은 손마디와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젓가락질해 김치 조각을 집어 올려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넘기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말이야, 나이가 어릴 때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질 알지만, 하긴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일을 때려  치우지 못했지. , 며칠만 한다던 일이 사십 년을 훌쩍 넘겼어. 사실 별수 없으니 이 일을 했을 테니 달리 할 일이 있어야지. 트럭 타고 서울 올라오는 행렬 따라 고향 길 나섰고, 이기붕 죽었다는 소문 듣고 미아리에 새끼줄 들고 가서 말뚝 박아 내 땅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살았는데 말이야. 그저 하루하루 돈을 버는 맛에 질퍽거리며 현장을 떠도는 거지. 돈이라는 게 매일 쓰이는 거잖아. 개 팔자도 아니니 누가 알아서 밥을 줄 리도 없고.”

“이기붕 땅이라니요? 옛날 부대통령 말하는 건가요.”

4 19가 난 직후였지. 세상에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왕을 뒤집어 버린 사건이었어. 백성이 그래본적이 있었나? 얼마나 놀랬으면 전쟁을 치렀던 이승만도 하야하고 이기붕일가가 자살했겠겠어. 권력이 덧없다는 말이 그걸 두고 하는 말이지만, 부대통령쯤 한다면 총 맞아 죽는데도 할 만하지 않겠나?? 평생 땅을 파고 사는 것보다야 났지. 다 있는 놈들 이야기지. 하루는 일하려고 나오려는데 이기붕이 죽었다는 거야그네 땅에다 말뚝 박으면 내 땅이 된다고 소문이 나서 민가민가 했지만, 혹시나 하고 말뚝하고 새끼줄 들고 미아리로 갔었지. 거기에 가보니 벌써 곳곳에 새끼줄을 치고 움막을 쳤더군. 나도 틈을 봐서 말뚝 박고 천막 쳐놓고 다음날 또 올라가 보니 앞 움막이 내 줄을 침범했더군. 그래서 주인을 불렀더니 작고 시커먼 농사꾼 같은 놈이 나오기에 따졌지. 그랬더니 놈이 하는 말이, 시골에서 막 올라와서 이기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살림을 깔려고 하는데 집터가 작은 것 같아 내 땅을 조금 먹고 들어왔다는 거야.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딱해 보이기도 하고 해서 양보를 했지.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니까.”

임동호는 이기붕의 죽음이란 말을 들으니 장남의 손에 들린 총과 겨루어진 총구, 발사되는 탄알이 거물 정객의 머리카락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터지는 공기가 느껴졌다.

“내가 한번은 큰 건물을 짓는다기에 가보니 도면이라는 것을 주는데 죄 영어라, 뭐 하는 놈들이 있나? 그래 대충 생긴 대로 걸어 놨더니 미국 감리가 와서 어이없어 웃더니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 거라.”

임동호는 노인의 신세타령을 듣다 보니 노인의 이야기 따라가다 정석기형이 떠올랐다. 한 달간 일을 같이하면서 그는 머릿속을 온통 뒤엉킨 끈들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석기 형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여야 하는 주문을 걸어 놨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이 일그러질 만큼 땅을 파고 옮겼을 텐데, 왜 노동자의 팔자는 바뀌지 않을까 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뒤틀렸을까? 우공이산도 산은, 산맥의 지형이 서너 번은 바뀌었을지언정 자신의 팔자를 바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에베레스트 산도 과거의 노동자의 산물일지 모른다. 노동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리 높게 흙을 파다가 쌓겠는가? 파미르 고원도 그럴 거고. 우주에서 여자들이 들락거리는 부엌까지, 사상과 전통 종교를 넘어 노동자는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건설을 하며, 노동자든 자본가든 사기꾼이 사기를 치고 할머니가 틀니를 씻는 이 시간에도 노동자가 세계를 가공해 가고 있다. 숱하게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해도 역시 노동자의 운명이 왜 바뀌지 않는가.

지겨운, 지독한 노동일,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단지 지겨울 뿐이고 지루하고 지독할 뿐이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는 게 재미를 느끼기에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빌어먹을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함께 일했던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젊은 김씨가 그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노동일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니까, 고작 오줌 똥을 쌀 뿐이야, 그 외에는 일만 해야 한다니까’ 말이 이빨 사이로 새, 불분명한 말이었지만 뜻은 정확한 말이었다. 노인이 이 빠진 김씨를 이야기할 때 그가, 그의 푸념이 떠올랐다.

“김가 녀석은 틀렸어, 몸이 그렇게 굼떠서 말이지. 그나마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하루도 쉬지 않으니 일을 데리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놈들이지, 차라리 중동이나 다녀와서 한몫 잡고 때려치울 것이지.”

 

임동호는 조선소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건설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장을 떠돌아다니며 일당을 받고 일을 하지만 생각처럼 조선소에서 일할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가끔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려다가도 자존심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조선소 일은 답답하기도 했다. 늘 현장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쐬어 온 탓에 한곳의 정착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며 청춘을 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그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내친김에 중동에 가려고 신청서를 접수해 둔 상태였다. 노인 말대로 한몫 잡고 장사라도 한다면 큰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꿈이 부풀어 있었다.

남들은 넣는 대로 되어 중동으로 간다고 하지만 벌써 서너 달 째 번번이 중동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게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거의 포기할 무렵, 정석기 선배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의 소개로 사람을 소개받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 감독감과 면접시험 때 거들먹거리며 기능에 대한 호기나 자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었다.

“월 30십 만원도 좋고 40십 만원도 좋습니다. 중동에 일하고 싶습니다. 여기보다는 났겠지요. , 이 손을 보십시오. 여기 굳은살 말입니다. 누구는 중동에 가려고 손을 부풀리고 세면 바닥에 문지른 다니지만, 이 굳은살은 오로지 쇠를 만져 생긴 것입니다.” 손바닥을 내 보이는데 무엇을 달라고 하는 꼭 구걸하는 손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쳐가는 느낌이었을 뿐이다. 남들 중동에 가서 집을 샀네, 땅을 샀네 하는데 번번이 체불되고 낮은 단가에 매일 한대가리씩 채우고 앉아 있는 것만큼 무능하고 바보스러운 짓이 없었다. 자존심은 다 상하지만 그래도 갈 수만 있다면 이득이 아닌가, 중동에 가면 떠돌지 않고 계약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뭐든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닌 현장에서 한 달째 체불이 되어 급기야 회사에 쳐들어가 사장 멱살을 잡고 싸우게 되었다. 이틀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별짓을 다해 돈이 해결되어 기분이 좋아 김노인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김노인은 계속 떠들어 댔다. 바닥에 물기가 흐르고 노동일을 하는 몇이 주변에서 비죽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고 주인 할머니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일은 말이야 절대로, 즐겁게 적응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익숙해지는 거지. 모든 꿈이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김노인이 목에 넘기기 어려운 쓴 약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곤 소주를 마셨다. 입을 쓱 닦고는, “노동은 인간의 몸과 같아, 계속 사용을 하면 늙거든, 늘 하지만 항상 더 나아지기보다는 못해지지 말이야. 어떤 놈은 숙달되어 괜찮다느니,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차라리 무감각해졌다는 말이 맞을 거야. 생각을 해봐, 인간도 기계나 다름이 없거든, 쓰면 소모되는 거야. 그렇지 않겠어? 밥도 한 삼일 굶으면 더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듯이일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말이야, 나이가 들어 예전에 다친 곳이나 무리한 곳이 하나 둘 이상이 생기더란 말이지. 그래서 아, 이치가 그렇구나 하는 거지. 그래서 옛날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잖아. 젊어서 한 공수 쉬는 것이 보약이라고. , 마시자고. 그게 세상을 탓할 일인지, 나를 탓할 일인지 말이야,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럴듯한 말이었다. 노인은 나이를 헛먹지 않았다.

“노동일을 하는 인간들은 참 이상해, 뭐 이상하다고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뭐랄까 성격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거든. 아까 말이지, 사장 놈을 붙들고 소리를 지를 때, 다 자기 말만을 하거든.”

“뭐가요?” 동호는 노인이 헐겁게 박혀 있는 이빨과 꼭 맞지 않는 위아래 입술의 율동을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

“사장새끼, 돈 없다고 버틸 때, 답답하니까 자기 심정을 드러내잖아. 어찌나 속으로 우스운지. 누구야 저기 전라도에서 왔다는 그 친구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잖아. ‘우리 어머니가 아프단 말이야 돈 내 놔!’ 하고 말이지. 나중에는 엉엉 울더구먼. 쪽 팔려서.”

“진짜 아픈가 보지요.”

“그럼 어머니 아픈 걸 거짓말 해겠어. 어디가 아파도 단단히 아프니까 그 말이 튀어나왔다는 말이지. 내 말은 왜 그때 사장한테 울부짖느냐 말이지. 그리고 박씨도 그렇잖아. ‘내 딸 등록금은 어떡하라고’ 사장을 윽박지르데.”

“절박하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아저씨도 참.”

“그렇겠지. 근데 왜 우리가 그런 사정까지 이야기하면서 일한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가 말이지. 그냥 당당하게 일 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될 것을.”

“아, . 아저씨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어요.” 동호는 노인이 주름을 잡아가면서 키득거리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오후의 모습은 촌극을 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하마터면 그런 말을 내뱉으며 사장에게 하소연 겸 분노를 터트릴 뻔했다. ‘애가 굶어 학교에 못하고 있어요. 돈 주세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려다 자신이 왜 이 못난 사장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아마도 동호는 그들보다 형편이나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동호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절박해서 수치심보다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확실히 사장은 돈이 없어 보였다. 임동호보다는 열 댓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사십 대 초중반인 사장은 혀를 차기도 하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는 일꾼들을 보면서 사정을 하기도 했다. 더러는 아는 사람들이었고 더러는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한씨라는 말이 걸진 사내가 사장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대변을 보겠다고 신문지를 달라고 했을 때 놀란 여직원은 사색이 되어 밖으로 나가버렸고 사장은 그의 팔을 잡고 이러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 좀처럼 돈을 언제 주겠다고 말하지 않던 사장은 그제 며칠만 더 참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사장은 위 건설회사에서 돈을 주어야 임금이 해결된다고 버텼는데 대변을 보겠다는 행동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한가 놈, 갑자기 옷을 벗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야. 미리 말이나 하고 그 짓을 해야지. 하긴 가끔 일꾼들이 그 짓을 할 때가 있었지. 아예 나는 사장 책상에 누울까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야.” 노인은 마치 엉덩이를 깐 한씨에게 기회를 놓친 것처럼 아쉬워하며 말을 했다.

“앞에서 고추를 봤어야 했는데, 자네는 봤나? , 그걸 못 보다니.”

“아니요. 뒤에 있어서요. 볼품없는 것 봐서 뭐하게요.”

“궁금하잖아. 한씨 놈 툭하면 계집이 어쩌니저쩌니 했는데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거든.”

“그나저나 사장이 약속한 날 돈이 나와야 하는데요.” 동호는 소주를 마시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판단해 보았다. 머릿속에 돈이 나와 받아 쥐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장이란 족속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늘 거짓말을 달고 다닌다니까. 벌써 몇 번을 미루고 또 미루었잖아. 안주면 이번에는 책상에 눕든, 똥을 싸든, 놈을 잡아다 코브라스틱을 걸든 이번에는 제대로 해 봐야지.”

“하청업자들이란 게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그러니까 왜 공사를 따서 일하는 놈들 못 할 일 시키느냐고, 능력이 없으면 일당이라도 뛰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 남들처럼 돈 벌어서 땅땅거리고 살고 싶은가 보죠. 이 망할 장갑을 벗어 버리고 놀면서 돈을 버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큭 취하는군. 하여간 기다려 봐야지. 이번에는 내가 아주 오줌 똥을 놈에게 갈겨버릴 테니까. 돈 몇 푼 때문에 별 이야기를 다 하네, 염병. 불쌍한 노가다 같으니. 동호 말이야. 내가 공무원도 해보고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는데, 사는 게 늘 전전긍긍하게 되어 있어. 자기 일을 하기 전에는, 사실 자기 일도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저 한몫 잡거니 하고 시작했지만 역시 그 일이 다 그일 이더군. 뭘 해도 마찬가지야. 그러거니 하고 살아야지. 이제는 이 일도 얼마 해 먹지 못하겠지만. 아마 난 저 80년대가 오기 전에 땅 속에 묻혀 있을지 몰라.”

“땅속에요. 그곳에 가거든 쇠 만지는 일은 그만 하세요.”

그 말에 노인은 숨이 넘어가듯 웃더니 한잔 더 들이켰다.

노인을 부축하며 술집을 나왔을 때는 열 시쯤 되었다. 노인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간다고 하면 통금은 간신히 벗어날 것 같았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종로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술 취한 혹은 야근에 시달린 또래나 그보다 어린 친구들이 옆으로 길게 놓인 의자에 앉아 피곤한 몸을 흔들리고 있었다. 저들에게 각기 나름대로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 이름 안에 담긴 뜻은 그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으나, 유감스럽게 사회적으로 공돌이 공순이의 처지에서 그 이름의 의미를 상실한 그저 번호와 같은 인간이 누구인가 식별을 위한 표피적인 의미만 부여되어 있으리라.

차장도 다리가 아픈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 입구 기둥에 서서 건들거리는 버스 따라 앞으로 뒤로 흔들리며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흐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깊게 떨어져 동호 어깨에 기대어 코를 골았다. 그의 코골이 소리에 매일의 노동에 지친 호흡이 흘러나오고 뼈다귀들이 될 대로 되라는 듯 흐느적거렸다. 노인은 꿈속에서도 일할 것이다. 그는 애당초 노동자로 태어났으며 노동자로 길러졌고 노동자로의 처지에 맞는 하류인생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너 무산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

정석기는 술잔을 기울이며 동호에게 물었다.

“예? 무산자라니요?”

“너 노동일을 언제부터 했나?”

“그야 국민학교 졸업하고나서요.”

“한자는 좀 아냐?”

“이름은 쓰죠.”

“무산자란, 없을 무, 만들어 낼 산, 아들 자인데, 쉽게 말해 몸뚱어리로 먹고사는 가진 것 없는 놈들을 이르는 말이지. 달리 말하면 죽을 때까지 몸뚱어리를 굴려야 먹고 살 수가 있지. 누가 나에게 그 말을 해 주었는가 하면, 김대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난 번 싸울 때, 월남에서 만난 함께 일했던 친구요?”

“그렇지, 한 번 봤구나. 그 친구가 무산자를 말을 해 줄때는 잘 몰랐는데 그게 철학이더라고. 늘 살면서 절절하게 느끼거든. , 내가 무산자구나 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넌 오늘 네가 지진 된 용접봉을 다 기억하겠냐? 그저 그런 거지.”

 

버스 차장이 졸다가 앞으로 휘청거리다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기대고 서서 주변을 살펴본다. 노곤하고 피곤한 하루가 통금을 향해 올라서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루가 그렇게 간 것이다. 지나간 하루가 그렇고 올 하루가 그렇고, 한 바퀴 돌 때마다 한발 한발을 올려놔야 할 인생인데 좀처럼 변화가 없다. 석기형 말대로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장이 약속했던 돈이 며칠 미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사장은 당분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일꾼들은 그럴 처지가 안 되었다. 늘 돈에 쪼들리고 있었고 돈을 받으려고 계속 쫓아다닐 수도 없고 다른 현장으로 가야 했기에 모여서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너 돈이 나올 것 같아, 안 나올 것 같아?” 김노인이 사람들과 현장을 가로질러 사무실 쪽으로 가면서 동호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리 싸워도 돈이 없으면 안 나오지 않겠어요.”

“글쎄, 그럴까. 내가 보기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이 있는데 며칠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나쁜 놈이죠.”

“그렇지.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희한한 일은 끝까지 싸우면 없다는, 정말 없다는 돈이 나온다는 게야. 어쩌면 일도 중요하지만 일하고 돈 받는 법도 중요하지.”

“일하고 돈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요.”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것을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질퍽거리는 현장 뜰 진흙탕을 건너뛰며 일곱 사내가 그들이 올리다가 만 철골 건물을 옆으로 하고 걸어갔다. 흙탕을 건널 때 청바지의 입은 동호는 자신의 아래 모습을 보았다. 사무실로 올라갈 때 스치듯 지나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리문을 통해 보니 귀를 덮으려고 하는 생머리가 답답하게 보였다. 마른 볼과 가늘고 긴 눈썹,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 튀어나온 목젖과 헐렁한 세로 줄무늬 티, 옷 속에 감추어진 마른 어깨뼈가 느껴졌다. 돈을 받으려고 걸어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남루하고 볼품없는 모습들이었지만 전과는 다른 모습이 느껴졌다. 지치도록 일을 하고 가정생활에 시달리고 그 많은 삶의 무게를 어떻게들 버틸까.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아. 현장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그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거든.”

김노인이 사무실로 들어가기 직전 돌아보며 동호에게 말을 했다. 노인은 사무실을 들어가면서 느닷없이 돈을 내놓으라고 악을 썼다.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동호도 깜짝 놀랐으나 그 말에 홀리듯 빨려 들어가 자신도 돈을 달라고 큰 소리로 여기저기 둘러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데모하는 거야!”

나이를 먹은 직원 하나가 가로막으며 기죽지 않으려고 맞대응했다.

“데모고 나발이고 일했으면 돈을 줘야 할 것 아냐. 네가 돈 줄 거 아니며 비켜 사장 어디에서!”

덩치도 크고 힘이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강형이 관리자와 으르릉거리며 첫 기세가 붙자 지지 않으려고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듯 가슴을 붙였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내 놓으라는 거지 현장에서 일하는 놈이 개 할 짓이 없어 여기에 왔겠어. 콱 대가리를 뭉개버리기 전에 비키지 못해.”

강씨가 주먹을 쳐들어 치려는 태세를 취하자 그는 움찔했다. 그의 주변에 동호도 김씨 노인도 모여들어 뭔 일이 터지면 죄 뛰어들어 밟아 버릴 기세를 보이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툭하면 떼로 이러면 어쩝니까?”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거 아니야. 돈만 줘봐!”

“지금 사장님 없습니다.”

“시발, 도망가면 대수야.”

“도망이라니요, 말조심 하십시오.”

“말조심이나 마나, 돈 내놓으라니까.”

강씨가 그를 밀치니 그가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욕지거리를 했다. 그걸 보고 강씨가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렸다. 그때 김노인이 나서서 말로 하자면서 강씨를 뒤로 빼고 지난번에 분명히 어제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주는가? 더 이상은 양보하지 못한다고 말을 했다.

“우리도 그 현장에서 까졌어.”

“그래서 임금을 못 주겠다는 거야!”

서넛 되는 다른 직원들은 당황한 얼굴로 일손을 멈추고 한쪽에 모여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나이가 많은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상무라는 사내가 안쪽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며 무슨 일인가 물었다. 동호는 점잖은 체하는 그의 말투와 슬쩍 흘겨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표가 누구야!”

상무가 점잖게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반말하지만, 일꾼들에 대표가 어딧고 안 대표가 어딧어!”

그때 여자처럼 가늘고 째지는 목소리의 한씨가 나섰다.

“누가 반말했다. 그래요. 여여러 사람이 말하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대화는 당신들끼리하고, 우린 돈이나 달란 말이야.”

“왜 또 바지 내리게요.”

“못할 것도 없지.”

그가 바지를 벗자 단숨에 바지가 내려가고 회색 반바지 팬티가 드러났다. 근처에 있던 여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댔고,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지금 사장님 안 계시니 내 연락해 볼게요. 거기 김대리 사장님 통화되나?”

그는 손을 저으며 덩치가 큰 사내에게 물었다.

“예, 아직 안 되고 있습니다.”

“다 짜구만.”

“짰다니요! 지금 사장님 부인이 암으로 병원 수술하려고 입원을.”

사장 부인이 암이라는 말에 동호는 좋았던 기세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 말을 직원 얼굴이 침울하게 굳어졌다. 다른 이들도 뭔가를 해야 하는데 다른 말을 못하고 멈칫하였다. 분명히 처음 들어올 때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때 느닷없이 김노인이 책상을 발로 걷어차자 책상이 한쪽으로 밀리더니 위에 있던 책장이 한 바퀴 돌아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내 마누라도 지금 암에 걸렸는데 병원도 못 가고 있어!”

그 말은 마치 댐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물처럼 동호의 귀에 울렸다. 사실일까, 왜 이런 의심을 할까? 노인이 일부러 그랬나? 그 말을 하자 다시 사무실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각자의 사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돈을 받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조금은 개운하지 않은 날이었다. 사장은 서너 시간 후에 돈을 가지고 와서 해결해 주었다. 그는 시간이 나지 않아서 하루 이틀만 미루려고 했다고 했지만, 일꾼들이 그렇게 급하니 자신도 억지로 시간을 내어 해결해 준다고 했다. 사장 처가 암에 걸린 것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걸 거짓말할 사람도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김노인은? 모르겠다.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거짓이 아닐까 동호는 생각했다. 그 말을처음 들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거짓이 어떻게 나왔을까? 거짓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아무도 그에게 그 말이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날 돈을 받은 것이다.

그날, 술에 취해 김노인은 부축하여 집까지 함께 간 날, 아주머니를 봤었다. 마른 몸에 후덕한 모습, 손에 염주가 걸려 있었다. 그 밝은 모습에 암에 걸렸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동호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을 때,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었다. ‘난 이 집안 가장이야. 늦으면 어때, 난 가장으로서 떳떳하다고’ ‘아이고, 맞습니다. 가장님 술 맛있게 드셨습니까?’

아주머니는 인사를 하고 허세를 부리는 아저씨를 밝은 빛이 쏟아지는 집으로 들어갔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주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노인이 어떻게 그날 돈이 나올 수 있을 것을 알았을까? 아마 김노인은 어떡하든 그 날 돈을 받고 싶었던 것일 거다. 다른 사람도 그렇고. 또 김노인은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무엇이 생각이 많다는 것일까?

그날 집에 들어가니 전보가 와 있었다. 두일 개발에서 온 중동에 갈 수 있는 취업 통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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