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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7
    중동에 간 사나이5
  2. 2009/05/10
    중동에 간 사나이 4
  3. 2009/04/30
    중동에 간 사나이 3
  4. 2009/04/04
    중동에 간 사나이2
  5. 2009/03/25
    중동에 간 사나이 1

중동에 간 사나이5

간호사실에서 간호사 둘이 안내실로 나오면서 흐린 날씨와 신경질을 부리는 환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여성 환자가 지나가면서 고개를 끄떡이며 인사를 하자 둘이 살짝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뒤에 있는 간호사들이 혹시 자신에 대해 이야기라도 할까 봐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그녀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라도 하라지, 어차피 그렇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을 테니’ 막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꺾어지는 곳 모퉁이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녀는 공중전화를 지나치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두어 발걸음 다시 돌아가 동전 떨어지는 구멍에 손가락을 살며시 넣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손을 꺼내니 손바닥에 동전이 세 개가 있었다. 그녀는 동전을 집어넣고 좋은 일이 생길 거로 생각했다.
 
소나기가 몰려오자 비둘기가 조급한 날갯짓으로 병원 옥상 난간에 앉았다가 다시 난간 아래쪽으로 날아 들어갔다.앞마당 검은 회색빛 아스팔트가 금세 검게 무늬를 그리며 변하기 시작했다.소나기가 바닥을 때릴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아스팔트 위로 차바퀴 무늬를 찍으며 흐르는 빗물을 가르며 부드럽게 굴러갔다.블록 틈새로 솟아난 잔디에 먼지가 씻긴다.놀란 비둘기 떼가 난간 아래쪽으로 더욱 몰려들고,우산이 없는 간호사 셋이 머리에 손을 대고 비명을 지르며 본관으로 뛰어왔다.비를 만난 택시가 한 사람이라도 태우려고 병원으로 들어와 기다렸다가 손님을 태우고 정문으로 빠져나갔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떠들썩하게 잡담을 나누며 평상복 차림으로 현관 앞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불어 댔다.그들은 외국에 나가려고 예방접종을 하고 집으로 가는 중동파견 노동자들이었다.둥근 어깨를 으쓱 이며 악수를 하거나 서로 어깨를 치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며 하나 둘 헤어졌다.몇은 우산을 펼치고 내리막길인 정문으로 걸어가고 몇은 택시를 나누어 타고 나갔다.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니 시끌시끌했던 병원현관에 조용했다.그들이 떠난 공허한 자리에 다른 환자들이 현관에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비가 오는 것을 우두커니 서서 담장 아래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임동호는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를 보고 언제 비가 그칠지 가늠해 보았다.열린 창으로 마른 먼지 냄새와 습한 공기가 들어왔다.병원3층 높이의 버들 나무 한 그루 잎들이 맑은 날보다 더욱 푸르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잎들과 잎들 사이로 빗물이 흘러 떨어지며 바람이 부는 듯 가늘게 떨어 댔다.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기는 했지만,차츰 하늘이 맑아져 계속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아침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올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우산을 가져올까 생각을 하다 귀찮아서 그냥 온 것이 후회되었다.할머니가 대문까지 우산을 들고 나올 때 받았어야 했다.비를 맞으면서 나갈 만큼 반기는 곳도 딱히 어디 가서 즐길 여유도 없었다.조금 있다가 나가자는 생각에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다.건강 검진을 하며 여러 대의 예방 주사를 맞아뻐근한 어깨를 돌려 보고 움찔해 보았다.통증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대기실 나무 의자가 놓인 자리로 가서 앉아 가방을 열고 낡은 책을 꺼냈다.접어놓은 곳을 펼쳐들었다.작은 글자들이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묵은 냄새를 풍기며 검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호가 병원 로비에 있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정문을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 잎에 비가 그치지 않고 두드려 댔다.촘촘히 쌓인 은행잎이 서로 그림자에 가려 건들거리고 가끔 부는 바람에 한 움큼씩 물방울을 뿌려댔다.한동안 내린 비는 차츰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서쪽에 하늘에 무지개가 뜨더니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이미 태양은 기울어 금세 저녁놀을 펼쳐질 것 같았다.
책 속에 푹 빠져든 동호는 밖의 일을 잠깐 잊었다.가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병원 로비는 환자들과 면회자들로 붐볐다.소독약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디선가 간호사가 사람을 부르는 소리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한 곳이었다.환자들의 시선은 부드럽고 말이 별로 없었다.문 열리는 소리나 차바퀴 멈추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링거 병을 옮기는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다시 책에 빠져들었을 때,이번만 읽고 일어나야지 생각을 하였을 때였다.
“그 책,재밌나요?”
목소리가 떨리고 깊은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책에서 눈을 떼고 쳐다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머리가 짧은 여인이 옆자리에서 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느라 그녀가 옆에 앉아 있는 줄 몰랐다. 생글거리는 커다란 눈이 더욱 커졌다. 사람의 눈동자를 이렇게 선명하게 쳐다보기는 처음이었으리라. 그녀의 짧은 머리가 실핏줄이 보이는 엷은 살짝 덮고 있었다. 그녀 뒤로 한풀 꺾인 초여름 태양빛이 로비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는 눈동자가 진한 눈이 임동호를 보고 어색함과 생소함을 지우려 웃었다. 친척 누군가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역시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 책이요.”임동호는 그제야 그녀의 질문을 알아들었다.
“소설이에요.그러니까,주절거림의 바다죠.”동호는 책을 덮으며 앞장을 보여주었다.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이었다.그런데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했는지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책이네요.헌책 인가요.나도 독서에 몰입할 수 있다면.”여인은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웃었다.동호는 그녀 넘어 안내실 넘어 벽에 걸린 둥근 시계를 보았다.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두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책 속에 빠져 있었다.어깨와 목이 뻐근했다.
“그렇죠.누군가 읽었던 책이죠.한번은 지방에 일을 갔는데 하숙집에 이 책이 있더군요.그 집 아들이 썼다는 방이었는데 그가 읽었던 책이었나 봐요.”
구석에 눕혀 놓은 책을 들었을 때,진득한 먼지가 묻어 있었다.작년 여름에 갔었던 전주역 근처의 현장 하숙집이었다.어두침침한 그 방구석에 비스듬하게 있던 곰팡이 나는 미성년을 그렇게 만났다.현장이 끝나도록 읽지 않고 구석에 버려두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읽으려고 가져왔다.오늘도 병원에 오는 길에 차분해지려고 가져와 읽고 있었다.
“누구 문병을 오셨나요?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
“신체검사가 있어서요. 멀리 떠나거든요.” 멀리 떠난 다는 말에 끝을 조금 흐렸다.
“멀리요. 어디?”
그녀는 호기심 많은 눈이 빛이 났다.얼굴이 지나칠 만큼 희었다.조금만 더 희었더라면 백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마른 몸이 환자복이란 포대에 들어가 헐렁거리고 있었다.
“중동이요.더운 곳에 일하러 나가죠.취업이 됐거든요.무척 더울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두렵기도 하고요.나가기 전에 무슨 병이 있나 검사를 하더군요.여러 가지 주사를 놔 주고 주의도 주더군요.그곳에도 풍토병이 있나 봐요.사람하고 기후만 다른 게 아니라 땅이 틀리면 그 땅에 사는 것 모든 것이 다른 가 봅니다.”동호는 손가락을 흔들며 설명을 해주고 싶었지만,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 가는 군요. 멀리 간다고 해서 지방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얼굴이 밝아 보여요.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는 자유가 부럽군요.”그녀는 임동호에게서 혈색이 맑은 물처럼 걸림 없이 잘 돌아가는 신선함을 느꼈다.깨끗한 피가 튼튼한 혈관을 거침없이 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그녀는 깊은숨을 들여 마셨다.흰 좁고 둥근 이마에 얼핏 그늘이 짙었다.
“병원에 오래 계셨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다닌 지는 조금 됐어요. 가끔 입원을 해요. 저도 검사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니요. 더는 말 안 할래요. 신체검사는 아직 더 해야 하나요?” 여자가 따분하듯 고개를 돌려 밖을 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녀 가는 어깨를 감추는 환자복 셔츠 구김이 물결치듯 생겼다 사라졌다.
“다 했어요.비가 와서 그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본 거죠.”
“비가 와서 저도 나와 보고 싶었어요.로비로 내려왔을 때,아는 사람인가 했는데 아쉽게도 아니네요.”
한 여인이 링거 병을 들고 가면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밖에 산책하러 나간다고 한다.팔을 가슴에 안고 링거 지지대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고 그림자가 길게 그녀를 따라갔다.
“ 저분이 암에 걸렸다는 것이 느껴지세요?”그녀는 속삭이듯 말을 했다.
“암이요?전혀.”
“암이라는 게 묘해요.어제까지 괜찮았던 사람이,함께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웃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까,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말아요.전혀 다른 세계,다른 차원으로 떨어진 느낌이죠.마치 마지막이라는 열차를 타러 가는 대기소에 앉아있는 기분.마치 죽어 있는 사람이 살아서 걸어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생명력이 없는 인형을 붙잡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녀는 입을 다물고 살짝 웃어 보였다.눈이 가늘어지고 웃음을 머금은 것이 말하며 뭔가를 생각한 듯하다.
“멀리 떠나시는데 못할 소리 한 것 같아서.”그녀는 입을 막았다.
“아니요,사실 이렇게 품을 팔려고 멀리 떠나는 게 좋은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고요.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가는 길이라 즐겁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막상 가려고 하니까 여러 생각이 들어요.이를테면 뭔가 환상을 좇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사막에 대한 낯섦도 있고,그냥 뭔지 모를 외로움이나 우울함도 있어요.그게 결국 내가 왜 가지?혹은 꼭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지요.그래도 가야겠지요.”
“일 때문에 나가면,혹시 중동인가요,사우디?”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며 검지를 쳐들더니 지도를 찍으며 말을 하듯 사우디를 꺼냈다.
“그렇죠.사우디아라비아로 가요.요즘 대부분 그쪽으로 가잖아요.마치 오래전에 계약이나 해 놨듯이 다 몰려가죠.미 서부에서 금광이라도 발견한 듯 말이죠.”사우디를 맞추자 동호의 약간 들뜬 목소리로 그곳을 이야기하자 어느덧 열사의 땅,모래 폭풍이 분다는 그곳 가는 흙냄새가 코끝에 살며시 스치고 지나갔다.
“보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같은데 현장 일을 하시네요.내가 현장 일을 잘 몰라서,대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로 아는데.”그녀는 뼈대만 있는 건물에 짐통을 지고 올라가는 늙은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죠.”그는 손가락을 펴서 펼쳐보였다.그 안에는 사람이 알 수 없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 데요?”
“용접을 해요.용접은 아시죠.그렇죠,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쇠로 된 일은 다 하거든요.저는 배관이 전문이라 그 일로 갑니다.”
“그럼 기술자네요.흔히 말하는 막노동이 아니라,대부분 그렇게 말하잖아요.”
“다 같아요.건물을 짓는데 시멘트와 벽돌만으로 어림도 없거든요.실은 현장을 들어가 보면 많은 직종이 있어요.그곳에서 대부분 하루하루 전표나 일당을 받고 있어요.다 같은 막노동이지요.”손가락을 꼽아 보며 몇 가지를 들려주었다.여인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임동호는 말을 마치고 책을 잡고 전체를 한번 넘겨보았다.시계를 보았다.대기실에 불이 들어오고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하늘에는 흐린 구름이 껴 있었다.또 비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는 검사가 다 끝났나요?”
“내일까지요.”
“많이 아픈가요?”
“꽤요.거의 모든 곳에,정말 내 이야기는 하지 않을래요.그쪽 이야기해요.나도 비행기 타고 싶어요.한 번도 타보지 못했거든요.”
“나도 그래요.기대가 되네요.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보면 까마득할 거예요. 10층만 올라가도 사람이 손가락만 하게 보이거든요.”
임동호도 약간 우쭐하게 생각했지만,노가다가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는가 생각이 들면서 곧 기분이 가라앉았다.이내 둘이 잠깐 침묵이 흘렀다.자리를 일어서서 가야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그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먼저 일어나기 싫었다.서로 앞만 보고 있다가 어설프게 눈이 마주치자 둘의 속을 서로 알기나 한 듯 멋쩍게 웃었다.
“병원은 지루해요.고무로 만든 과자를 씹는 느낌이랄까.”
“현장에서도 그래요.늘 근거 없이 지방을 떠돌아다녀야 하거든요.일을 마치면 술집에 가든지 하숙집에 가서 누워 있어야 하는데 그 둘 다 취미가 없으면 다방이라도 가서 텔레비전을 보든가 이불 속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해요.어떨 때는 나 자신도 잊어요.그런 적 있으세요?아주 몽롱해 지죠.그 상태가 지나면 몽롱도 못 느낄 때가 있어요.가끔 그래요.때로는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있으면 내가 아저씨들 친구인 것 같아요.전쟁을 겪고,마치 월남에 다녀온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떡였다.그녀는 혼자 있는 어두운 방을 생각했다.기계만 가득한 텅 빈 작업장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이 가지 않는 매캐한 재료 냄새가 나곤 했는데,그럴 때면 어깨가 떨릴 만큼 어떤 전율을 느끼곤 했다.도망치려고 돌아서면 미닫이문이 흔들리고 있었다.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마치 허공에 몸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차라리 공장이라도 그의 몸을 옥죄어 주는 것이 살아가는 한 줄기 숨통을 열어 주고 있었다.
동호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얼굴을 비볐다.쓸데없는 소리를 했군,하고 후회를 하였다.지나가는 노인이 걸음도 잘 걷지 못하면서 멍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얼굴의 주름이 흘러내릴 듯 늘어져 있었다.그에게는 인상 쓰듯 쳐다보는 눈동자와 곧 주름 안에 사라져 버릴 엷은 입술만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중동에서는 얼마나 가 있을 건가요?”
“모르겠습니다.기본 계약은1년이에요.연장을 많이 한다더군요.얼마나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지겹겠네요.아니 신나기는 일이겠네요.”
“글쎄요.지겹든,신나든 일을 하다 보면 잊겠지요.더위 때문에 다 잊을 수도 있겠죠.그쪽은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동호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공장에 다녀요.끔찍한 일이죠.어쩌면 다행이기도 하고요.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떡였다.그리고는 천정을 쳐다보며 머리를 뒤로 제쳤다.숨을 길게 들여 마셨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공장에 있을 거예요.싸늘하게 누워 있으면 친구들이 기계 사이로 늘어서서 내려보겠죠.그 소름끼치는 청색 바지에 흰 실내화를 신고 말이죠.그 발아래 누워서 형광들 쳐다봐야 한다니.”
.......”
“마치 서 있는 시체들처럼 서서 일하고,그 사이로 성난 개가 으르릉거리듯 남자들이 다니죠.덜떨어진 어른들이죠.나이를 먹으나 젊으나 늘 자신이 사내라는 것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다니죠.특히 여자들에게요.그렇지 않으면 당장 어린애처럼 엉엉 울 것 같은가 봐요.”
.......”
“나도 떠나고 싶어요.항상 날이 밝으면 또 그 자리인 것을 느끼곤,내가 시들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떠날 수 있다면.”
둘 다 잠깐 말도 듣기도 멈추었다.그녀와 동호는 거의 약속이나 한 듯 한숨을 내 쉬었다.그녀는 혼잣말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떡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외국까지 가서 노동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남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동하거나 여자들 틈에서 으르릉거리나 봐요.”
“글쎄요.모르겠습니다.나는 여자들과 일을 해보지 않아서.”
“현장에는 여자가 없겠죠?”
“가끔 있기는 하지만,나이가 많아요.사십 넘어 남편 따라 현장에 나온다더군요.”
“불행한 여자들이겠네요.여자는 그 자체로 불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모르겠습니다.병은 공장에서 얻은 건가요?”
그 말에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그렇다고 말을 하려다가 대답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그녀는 무릎을 의자에 올려놓고 팔로 무릎을 감싸고 턱을 무릎에 댔다.동호는 긴장감보다는 어떤 안락한 의자에 막 앉아 그 포근함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부드러운 햇살이 두 사람에게 드리우고 있었다.그는 등을 깊게 앉고는 손가락을 펴서 자신의 얼굴을 매 만졌다.마치 서로 없는 듯 상상 속에 상대를 맞이하고 뜻하는 대로 질문하고 답을 하는 것 같았다.그것은 꿈과 같은 기분이었다.
60년대 여성들은 병이 들면 스스로 앓다가 죽어갔다고 하는데, 70년대 살아서 병원이라도 가요.자신의 망가진 만큼을 확인이라도 할 수 있는 거죠.지금의 공장이란 그런 곳이죠.”
“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떠돌아다녔어요.주변에서 공장 생활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한번은 전자회사에서 일하는데 출근하는 여공들을 본 적이 있어요.몇 년씩 일을 했다고 하데요.그녀들을 쳐다보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어요.이 좁은 공장에서 수년씩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말이죠.한편으로 그만큼 나는 돌아다니는 일이 익숙해져서 그렇겠지요.아마 나는 그 좁은 공장에서 일한다면 얼마 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올 겁니다.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모양입니다.돌아다니는 것이 죽도록 싫을 때도 있기도 하지만 또 가방을 싸고 이동을 합니다.싫다고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것이 내 팔자인가 봅니다.”
“전자회사 말고 다른 공장에서는 일 안 하셨나요?”
“많은 공장을 돌아다녔죠.주로 여공들이 일하는 공장이요.한번은 무척 더운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있었어요.무엇을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옷감이 널려 있었고 재봉도 있었고 염색도 했어요.둥그런 천장이 높기는 했지만,벽 두께가 너무 엷어 겨울에는 추위가,여름에는 더위가 지독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죠.여름 휴가철에 휴업을 이용해 일했는데,정말 덥더군요.쓰러질 지경이었죠.이곳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나?궁금하더군요.그해만 서너 명이 더위에 쓰러졌다고 하더군요.한쪽에서 환기 시설을 하고 우리는 배관을 끌어대는 일을 했어요.지금은 그나마 나을 겁니다.난방 시설도 했으니까요.겨울에는 동상에 걸려 발에서 물이 흐른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왜 그토록 일을 해야 하는지 화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아는 형이 거기서 한 여성을 만났는데,눈이 둥글고 키가 작았어요.통통하게 생겼는데 아마 얼굴만 그럴 겁니다.손이 가늘고 길었거든요.한번은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는데,형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하더군요.그 말이 묘하게 들렸어요.마치 지방에서 술집이나 다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하는 말 처럼요.그곳이 지겹다고 하데요.형은 그럴 수 없다고 했죠.다음 현장이 지방이었거든요.만약 서울이었다면 함께 올랐을 텐데요.우리는 옮길 때 몰래 그곳을 빠져나왔죠.”
.......”
한번은 셋에서 공장 부근을 잡초와 흙먼지 쌓인 보도,담장 따라 정처 없이 걸을 때가 생각났다.달리 갈 때도 마땅치 않았고 할 일도 없었다.어깨 정도밖에 오지 않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따라왔었다.무슨 생각을 했을까.아무 생각도 없는 놈팡이에게 운명을 맡기려 하다니.
대기실 로비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병실로 이동하였다.
“저녁 시간이에요.”여인이 실내화를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지 않나요?”
“가야 하는데,야간 회진도 있고.”엄지손톱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했다.
“어,벌써 이렇게 되었네.비도 그쳤고.”
동호는 느리게 일어서며 어깨를 돌려 보았다.책을 가방에 넣었다.
“비가 그쳤으니 떠나야 한다네.심장은 느리게 뛰고 몸은 갈수록 쳐지네.이별 인사를 하고 싶은데,가방을 들어줄 사람 없고 시계만 째깍거리네.”
그녀가 노래 가사를 읊듯 그럴듯한 말을 하며 유리로 된 벽으로 가까이 가서 밖을 향해 섰다.
“그럴 듯한 말이네요.”
“가끔 시인이 되고 싶어요.그저 멋진 시를 읊고 싶기도 하고.공부를 했다면 시인이 되었을 거예요.그런데 공장이라니.”그녀의 눈동자가 깊은 황혼빛을 머금었다.그 눈 속에 그녀는 황혼이 지는 언덕에 서서 느티나무에 기대고 저녁놀을 쳐다보고 있었다.
“공장을 시로 쓰면 되잖아요.”
“그곳은 그대로 둬야 해요.그 자체로 너무나 가슴 저린 시어들이니.먼지들이 날리고,찜통 같은 더위와 추위,여공들의 울음소리가 기계 소리에 묻히고,어찌할 수 없는 의지와 감상들,마르고 파리한 손가락들이 섬세하게 움직이죠,그리고 때 묻은 이불과 작은 웃음들,어질어진 실내화,버리진 컵에 담긴 화초들.”
그녀와 나란히 밖을 보고 섰다.
“그것도 시네요.정말 가봐야 하겠어요.나 때문에 회진을 놓칠 것 같으니.”동호가 아쉬운 듯 갈 듯이 여자에게 말을 하자 그녀는 유리벽을 노크하듯 두드려 댔다.그러더니 돌아서서 웃으며 말을 했다.
“아까,그쪽을 보는 순간 서로 말이 될 것 같았어요.전에 친구가 있었는데,늘 그렇게 책을 보고 있었어요.지금은 그 친구를 만날 수 없었지만,그냥 안녕하고 헤어지기에는 젊은 나이에 노동 때문에 너무 멀리 가는군요.우리 나가서 저녁 먹을까요?혹시 환송회가 잡혀 있지 않다면요.”
“아니요.그런 것 없어요.누가 나를 위해 환송회를 하겠어요.그래 주신다면 기꺼이 감사드리지요.”
“전혀.옷 갈아입을 동안 기다려 준다면요.”
 
“세상에 너무 많은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을 아무거나 먹을 수 없을 때에서야 깨달았어요.”
여자는 가볍게 걸으며 그의 팔짱을 끼었다.흰색 셔츠와 청바지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버스를 타러 병원을 내려가며 그렇게 말을 했다.종로 쪽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둘이 버스를 타고 뒷좌석으로 갔다.
“뭘 먹어야 하죠?”
“뭐든 지요.오늘 밤에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국물을 먹고 싶어요.”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잘해 주시는데.”
“할머니하고 같이 사세요?”
“예.부모님은 어렸을 때 돌아가시고요.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할머니하고만 살고 있어요.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신 분이죠.중동에 가겠다고 했더니 우시더군요.전쟁 때에는 남편을 잃고,일찍 자식과 며느리를 잃고,남은 손자 하나가 멀리 일을 하러 간다니,그게 기쁜 일은 아니죠.불행한 사람은 늘 눈물을 흘립니다.설사 기쁜 일이라도.”
“그래서요?”
“함께 울었죠.”
“돈을 벌면 어떻게 하시게요?”
“글쎄요.집을 살까요?무허가라도 사면 내 집이 되니까요.일제 사진기도 사고,텔레비전도 사고 싶고요.남들도 다 그렇게 사더군요.뭔가 달라졌으면 해요.지금과는 다르게,완전히 말이죠.그리고 할머니에게 넓은 안방을 드리고 싶어요.”
“공항에 들어올 때볼 만하겠어요.목에는 사진기를 걸고 커다란 전자제품에,검게 탄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색안경도 쓰고 들어오겠죠.하지만,삶이1년 만에 얼마나 변할 수가 있을까요.”여자는 활짝 웃었다.
“안되면2, 3년을 일하죠.”
“그래도 안 되면요?”
5, 10년을 안 들어 올 거예요.그냥 지금이 싫어요,지겨운 건가요,하여간 변해야 해요.몇 년 만 있으면 서른인데,서른이 되기 전에,서른을 넘기면서 여전히 현장에 서서 장갑을 끼고 살갗이 벗겨진 어깨로 짐을 나른다는 것은 너무 우울하거든요.”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게 보이려고 해요.현장에 있기에는 그쪽은 너무 예민한 사람 같아요.하지만,현실이잖아요.떠나기 전에 힘을 내세요.힘들게 일을 해야 하잖아요.오늘만이라도.멋지진 않지만 조촐하게 환송식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군요.환송식,책이나 읽으면서 며칠을 보낼까 했는데,그런 행운을 주다니.더구나 이렇게 또래 여자와 같이.”
둘이 종로3가에 내려 아래로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종로 거리에 차들이 붐비고 기름 냄새기 길을 덮고 있었다.젊은이들이 머리를 기르고 짧은 반소매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배회하고 있었다.종로1가 쪽으로 내려가거나 위로 올라가거나 그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리 속에 방황하는 개미들처럼 자연스런 행렬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가끔 경찰들이 서 있고 휴가 나온 군인들이 어깨 걸고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임동호는 입을 꾹 다문 검게 탄 사내들이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일 때,그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여자는 기분이 좋은 듯,가볍게 동호의 팔을 잡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을 맞추어 걸었다.여자의 팔이 너무 가볍게 걸쳐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여인은 너무 말라 있었다.그러고 보니 다른 여인들도 그처럼 말라 있기는 했다.그녀가 길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주워보다가 기사 하나를 동호에게 보여 주었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를 수주한 기업인이 검은 양복을 입고 중동사람과 함께 악수를 하는 사진이었다.그 옆에 젊은 간부가 활짝 웃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중동으로 나갔겠네요.그곳에는 여자도 술도 없잖아요.남자들은 그 둘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하던데,어떻게 버틸까요.”
“난 지금까지 없이 살아왔는데.”
“거짓말.”
“다 하는 말들이에요.남자들에게 술과 여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이 없는 거겠죠.항상 뭔가를 추구해야 하잖아요.그곳이 중동이 아니라 북극이라도 가겠죠.돈이 된다면,그곳에서 건축 일을 할 수 있다면요.”
동호는 신문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음식점이 많은 골목으로 들어갔다.좁은 무교동 골목이었다.낮은 지붕과 물기 젖은 골목,고기 굽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집집이 젊은 친구들이 있었으며 나이 든 여인들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돈을 지급하고 술을 마시면서 고민이나 울분을 쏟아 내는 골목이었다.성을 없애는 창부 촌이나 종교적 행위로서 자신의 고뇌를 푸는 곳에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사람이 있고 고뇌가 있고 터질 듯한 심장이 있는 곳은 분명히 같은 장소일 것이다.둘이 들어가 앉은 곳은 낮은 지붕이 있는 술집이었다.그녀가 무조건 일곱 번째 집에 들어가자고 해서 그리 들어왔다.둘이 막걸리와 순댓국밥을 시켰다.
“집안 이야기 좀 해 보세요?”
“할머니랑 살고,재미없는 일을 해요.그리고 저도 곧 멀리 떠날 거예요.아주 멀리.”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에요.말 안 할래요.저는 비밀로 가득 찼어요.하지만,뒤집어 보면 볼품없는 망가진 어린이 화장품 가득한 장난감 상자 같은 거지만.분명한 것은 그쪽과 나이도 비슷하고 사는 것도 비슷해요.더는 개인적은 것은 묻지 않기요.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에요.우연히 주운 동전과 같은 거요.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를 들었는데 누가 동전을 놓고 간 거예요.아무것도 아니지만,기분이 좋잖아요.”
“공중전화와 동전이라고요.”어디서 들어본 이야기도,누가 이 이야기를 해 주었지.그때도 여자였던 것 같다.
“아,이 지독한 담배냄새.안에는 담배냄새 가득하고,계속 걸을 수도 없고.”
그녀는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천장에는 담배 연기가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었다.음식이 나왔지만,그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국물만 몇 수저 뜰 뿐이었고 다 먹은 것은 물 뿐이었다.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단지 말을 할 뿐이었다.이런저런 떠다니는 이야기들,그녀는 마치 소설처럼 자신의 감정을 여러 행태로 끄집어냈다.어쩌면 함께 있는 것이 소설을 읽는 것일지 몰랐다.
“왜 이름이나 나이를 묻지 않아요?다들 처음 만나면 묻잖아요.”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요.아마 대답하지 않을 거예요.하지만,묻지 않으니 내가 말을 하게 되네요.”
“조금만 있다가 나가요.얼굴이 좋지 않아요.힘들어 보여요.”
“어떤데요?”
“창백해졌어요.처음에 하얀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갈수록 더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아요.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담배 연기가 참을 수 없지만,정말 견디기 어렵네요.어쨌든 환송식을 해 주려고 나왔으니,!잔을 드세요.멀리 떠나는 당신의 젊음을 위해!”
그녀는 작은 소주잔을 입에 대고 천천히 한잔을 다 마셨다.동호는 점점 들뜬 기분이 사라지고 가라앉았다.
“모든 상황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지 않나 봐요.그쪽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요.얼굴이 금방 변하시네요.나온 것이 후회되시죠?”
“아니요.그게 아니라,사실 조금.”
“우리 나가요.왜들 저렇게 피워 댈까요.마치 담배를 태우면 모든 고민이 타들어 갈 줄 아는 것 같아요.종교도 저런 종교는 없을 거예요.그쪽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다행이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네요.”
불쾌한 기분으로 그녀는 뛰쳐나갔다.
“음,한결 났네요.차들의 기름 냄새가 더 좋네요.소음도 그렇고,그것들은 마치 모든 문제는 간단하고 보잘 것 없다는 듯 떠들어 대지 않잖아요.”
그녀는 도로와 인도 경계인 난간에 올라서더니 마른 팔뚝을 쭉 뻗어 하늘을 떠받치는 모습을 했다.수줍음 많은 친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춤을 추고 나와 주변을 놀라게 하는 느낌이었다.그녀는 긴 팔을 뻗었는데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기라도 할 태세였지만,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그저 가슴을 열고 싶어 할 뿐이었다.그녀를 뒤에서 보고 있으니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진한 공기가 검은 안개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힘없이 내려와 쳐졌다.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대자 놀라 듯 떨었다.그의 손이 동호임을 알자 물 뿌린 화초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살아났다.
“다시는 그런 담배연기가 있는 곳으로 가라면 죽어버릴 거예요.”
......”
“함께 걸어요.우리 명동으로 갈까요.기분 좀 네 개요.”
그녀는 동호의 팔을 끌었다.
“걷기에는 너무 먼데.”
“그 정도로 괜찮아요.”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지금 헤어지자는 말로 들리는 데요.”
무교동을 지나 명동을 가면서 그녀는 밝은 표정이었다.진열장에서 마네킹이 입은 옷을 구경하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했다.거의 한 바퀴쯤 돌았을 때,그녀는 기침하기 시작했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늘 하는 생각이지만.”
“왜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루하루가 채워지는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속에 던져지잖아요.”
“희망에 찹시다.아직 우린 점잖아요.시간이 많아요.”
“내일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어떤데요?”
“역시 병원에 있겠지요.하얀 포대 위에 누워서 오늘을 생각하겠지요.그리고 아무것도 없어요.또 공장으로 가거나,텅 빈 방을 지켜야 할 테니.”그녀는 갈수록 기침을 심하게 했다.
“병원으로 갑시다.너무 멀리 왔어요.밤이 되니까 기온이 떨어 지내요.”
“잠깐만,걸어요.그래도 괜찮죠.아까 그곳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요.멋진 환송식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니요.충분해요.그쪽만 아니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방에 있다가 할머니 손을 잡고 악수 한 번 했을 거예요.인사할 누구도 걱정할 그 어떤 친구도 동료도 없어요.있어도 그저 그런 느낌일 테지요.중동에 가서 오늘 이 순간들을 몇 번이나 생각할 거예요.”
얼마나 걷다가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에요.”
“공중전화에서 동전을 줍듯 말이죠.”
“그래요. 혹시 1년 후에, 그때도 생각이 난다면, 이 병원으로 오세요. 만약, 그때도 보고 싶다면요. 그때 이름도 가르쳐 줄게요. 1년 후에 중동에 다녀온 사람 얼굴을 알고 보고 싶어요.”
1년 후에도 병원에 있게요?”
“아마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죠.”
“우리 점 한번 볼까요?”
“무슨 점을?”
“여기서 내려서 첫 공중전화를 보면 무작위로 번호를 눌러서 전화해 보는 거예요.남자가 받으면 못 만나는 거고,여자가 받으면 우린 또 만나는 거예요.”
“난,그런 미신을 믿지 않는데.할머니가 극도로 싫어하셔서.”
“난 믿어요.”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했다.
“그럼 해 봅시다.그런데 남자든,여자든,누가 받을 확률은 상당히 떨어지는데.”
“누구든 받을 거예요.받을 때까지 할 거예요.”
둘을 버스에서 내렸다.병원까지 걸어가는 길에 공중전화는 병원 정문 옆에 있었다.그녀는 첫 번째 부스로 들어가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떡이더니 나왔다.
“남자,여자요?”
“말 안 할래요.”
“내가 알아맞혀 볼까요?”
“뭔데요?”
“안 걸렸어요,그런 전화번호 없다고 했을 거예요.”
“천만에요.”
“아니라니까.그것이 인생이에요.아무것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요.”
“당신은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믿음이 아니라 현실이에요.”그녀가 몸을 부슬거리며 떨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동호가 어깨에 손을 대자 여자는 몸을 움츠러들었다.
“난 괜찮아요.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어요.오늘 조금 무리했어요.”
“나 때문에.”
“아니요.잘 가세요.부디 건강하게 일하시다 오세요.그것은 덥잖아요.”
“사람이 사는 곳이니 금방 적응할 겁니다.가난한 사람은 생명이 질기잖아요.”
“글쎄요.갈게요.”
둘은 손을 가볍게 잡고 이별 인사를 했다.
1년 후에 누구를 찾을까요?”
“이은미를 찾으세요.”
“이은미?”
그녀는 팔짱을 끼고 언덕진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3일 후, 임동호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맑은 날, 오후였다. 이은미라는 여인을 그곳에서 만날 확률은 극히 적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로비에 들어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하려다가 3층에 올라갔다. 아마 그곳이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층에 올라가 안내소에 가니 간호사 한명이 앉아 있었다. ‘이은미 환자’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은미 씨요?”
“은미 씨요.” 그녀는 차트를 살펴 보더니 얼굴을 들어 안경 너머로 동호를 쳐다보았다.
수술 들어갔는데요.”
수술이요?”
“가도 못 만나실 거예요. 꽤 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차트를 덮더니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수술인데요?”
“위 절개 수술인데, 은미씨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그녀는 쳐다보지 않고 말을 했다. 관계가 불분명하면 더 이상 말을 해 줄 수 없다는 투였다.
친구인데,제가 내일 어디로 떠나는데 얼굴 좀 보려고요.”
아마 보기 어려울 거예요.수술이 끝나도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하는데.다음에 와 보는 게 좋으실 거예요.”
간호사는 어깨를 으쓱 거릴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동호는 간호사가 가리켜 준 2층 수술실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수술실 앞에는 몇 사람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든 여인이 울먹이며 무어라고 하자,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이 은미는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중년 부인을 보니 이은미와 닮았다. 그녀는 다리가 아픈지 무릎을 자주 주물렀다. 그녀 옆에 앉아 있는 친구인 듯한 여인 둘이 있었는데 한명은 둥근 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한명은 긴 머리가 눈에 들어 왔다. 그녀들은 곁눈질로 임동호를 쳐다보았으나 동호는 모른척하였다.
어차피 만나기는 글렀으니 그저 조금 앉아 있다가 가자는 마음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온 것 이 후회도 되었지만 오지 않았더라면 더 신경이 쓰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날이 맑고 밟아 더운 초여름 공기가 열린 창을 통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내일이며 이 모든 공기와 분위기, 잡음들과 한가한 시간은 끝이다. 그 모든 것은 쓰레기통에 쓸려 들어가듯 자신과 멀어질 것이다.
그는 사색에 잠겨 있다가 그의 가슴속에 그 어떤 미묘한 그리움이 가실 때 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실을 빠져나오면서 복도를 꺾어져1층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공중전화가 있어서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동전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다.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멈칫 뒤를 쳐다보았다.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그냥 나오려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자 동전이 동전 구멍으로 떨어져 내렸다.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뭔가 텅 빈 가슴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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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 4

임동호는 노인을 쳐다보니, 쌍꺼풀진 눈이 쳐지고 눈알이 충혈되 취기가 한껏 올라 있었다. 짧은 손마디와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젓가락질해 김치 조각을 집어 올려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넘기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말이야, 나이가 어릴 때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질 알지만, 하긴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일을 때려  치우지 못했지. , 며칠만 한다던 일이 사십 년을 훌쩍 넘겼어. 사실 별수 없으니 이 일을 했을 테니 달리 할 일이 있어야지. 트럭 타고 서울 올라오는 행렬 따라 고향 길 나섰고, 이기붕 죽었다는 소문 듣고 미아리에 새끼줄 들고 가서 말뚝 박아 내 땅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살았는데 말이야. 그저 하루하루 돈을 버는 맛에 질퍽거리며 현장을 떠도는 거지. 돈이라는 게 매일 쓰이는 거잖아. 개 팔자도 아니니 누가 알아서 밥을 줄 리도 없고.”

“이기붕 땅이라니요? 옛날 부대통령 말하는 건가요.”

4 19가 난 직후였지. 세상에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왕을 뒤집어 버린 사건이었어. 백성이 그래본적이 있었나? 얼마나 놀랬으면 전쟁을 치렀던 이승만도 하야하고 이기붕일가가 자살했겠겠어. 권력이 덧없다는 말이 그걸 두고 하는 말이지만, 부대통령쯤 한다면 총 맞아 죽는데도 할 만하지 않겠나?? 평생 땅을 파고 사는 것보다야 났지. 다 있는 놈들 이야기지. 하루는 일하려고 나오려는데 이기붕이 죽었다는 거야그네 땅에다 말뚝 박으면 내 땅이 된다고 소문이 나서 민가민가 했지만, 혹시나 하고 말뚝하고 새끼줄 들고 미아리로 갔었지. 거기에 가보니 벌써 곳곳에 새끼줄을 치고 움막을 쳤더군. 나도 틈을 봐서 말뚝 박고 천막 쳐놓고 다음날 또 올라가 보니 앞 움막이 내 줄을 침범했더군. 그래서 주인을 불렀더니 작고 시커먼 농사꾼 같은 놈이 나오기에 따졌지. 그랬더니 놈이 하는 말이, 시골에서 막 올라와서 이기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살림을 깔려고 하는데 집터가 작은 것 같아 내 땅을 조금 먹고 들어왔다는 거야.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딱해 보이기도 하고 해서 양보를 했지.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니까.”

임동호는 이기붕의 죽음이란 말을 들으니 장남의 손에 들린 총과 겨루어진 총구, 발사되는 탄알이 거물 정객의 머리카락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터지는 공기가 느껴졌다.

“내가 한번은 큰 건물을 짓는다기에 가보니 도면이라는 것을 주는데 죄 영어라, 뭐 하는 놈들이 있나? 그래 대충 생긴 대로 걸어 놨더니 미국 감리가 와서 어이없어 웃더니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 거라.”

임동호는 노인의 신세타령을 듣다 보니 노인의 이야기 따라가다 정석기형이 떠올랐다. 한 달간 일을 같이하면서 그는 머릿속을 온통 뒤엉킨 끈들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석기 형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여야 하는 주문을 걸어 놨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이 일그러질 만큼 땅을 파고 옮겼을 텐데, 왜 노동자의 팔자는 바뀌지 않을까 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뒤틀렸을까? 우공이산도 산은, 산맥의 지형이 서너 번은 바뀌었을지언정 자신의 팔자를 바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에베레스트 산도 과거의 노동자의 산물일지 모른다. 노동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리 높게 흙을 파다가 쌓겠는가? 파미르 고원도 그럴 거고. 우주에서 여자들이 들락거리는 부엌까지, 사상과 전통 종교를 넘어 노동자는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건설을 하며, 노동자든 자본가든 사기꾼이 사기를 치고 할머니가 틀니를 씻는 이 시간에도 노동자가 세계를 가공해 가고 있다. 숱하게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해도 역시 노동자의 운명이 왜 바뀌지 않는가.

지겨운, 지독한 노동일,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단지 지겨울 뿐이고 지루하고 지독할 뿐이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는 게 재미를 느끼기에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빌어먹을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함께 일했던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젊은 김씨가 그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노동일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니까, 고작 오줌 똥을 쌀 뿐이야, 그 외에는 일만 해야 한다니까’ 말이 이빨 사이로 새, 불분명한 말이었지만 뜻은 정확한 말이었다. 노인이 이 빠진 김씨를 이야기할 때 그가, 그의 푸념이 떠올랐다.

“김가 녀석은 틀렸어, 몸이 그렇게 굼떠서 말이지. 그나마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하루도 쉬지 않으니 일을 데리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놈들이지, 차라리 중동이나 다녀와서 한몫 잡고 때려치울 것이지.”

 

임동호는 조선소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건설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장을 떠돌아다니며 일당을 받고 일을 하지만 생각처럼 조선소에서 일할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가끔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려다가도 자존심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조선소 일은 답답하기도 했다. 늘 현장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쐬어 온 탓에 한곳의 정착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며 청춘을 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그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내친김에 중동에 가려고 신청서를 접수해 둔 상태였다. 노인 말대로 한몫 잡고 장사라도 한다면 큰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꿈이 부풀어 있었다.

남들은 넣는 대로 되어 중동으로 간다고 하지만 벌써 서너 달 째 번번이 중동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게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거의 포기할 무렵, 정석기 선배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의 소개로 사람을 소개받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 감독감과 면접시험 때 거들먹거리며 기능에 대한 호기나 자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었다.

“월 30십 만원도 좋고 40십 만원도 좋습니다. 중동에 일하고 싶습니다. 여기보다는 났겠지요. , 이 손을 보십시오. 여기 굳은살 말입니다. 누구는 중동에 가려고 손을 부풀리고 세면 바닥에 문지른 다니지만, 이 굳은살은 오로지 쇠를 만져 생긴 것입니다.” 손바닥을 내 보이는데 무엇을 달라고 하는 꼭 구걸하는 손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쳐가는 느낌이었을 뿐이다. 남들 중동에 가서 집을 샀네, 땅을 샀네 하는데 번번이 체불되고 낮은 단가에 매일 한대가리씩 채우고 앉아 있는 것만큼 무능하고 바보스러운 짓이 없었다. 자존심은 다 상하지만 그래도 갈 수만 있다면 이득이 아닌가, 중동에 가면 떠돌지 않고 계약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뭐든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닌 현장에서 한 달째 체불이 되어 급기야 회사에 쳐들어가 사장 멱살을 잡고 싸우게 되었다. 이틀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별짓을 다해 돈이 해결되어 기분이 좋아 김노인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김노인은 계속 떠들어 댔다. 바닥에 물기가 흐르고 노동일을 하는 몇이 주변에서 비죽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고 주인 할머니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일은 말이야 절대로, 즐겁게 적응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익숙해지는 거지. 모든 꿈이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김노인이 목에 넘기기 어려운 쓴 약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곤 소주를 마셨다. 입을 쓱 닦고는, “노동은 인간의 몸과 같아, 계속 사용을 하면 늙거든, 늘 하지만 항상 더 나아지기보다는 못해지지 말이야. 어떤 놈은 숙달되어 괜찮다느니,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차라리 무감각해졌다는 말이 맞을 거야. 생각을 해봐, 인간도 기계나 다름이 없거든, 쓰면 소모되는 거야. 그렇지 않겠어? 밥도 한 삼일 굶으면 더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듯이일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말이야, 나이가 들어 예전에 다친 곳이나 무리한 곳이 하나 둘 이상이 생기더란 말이지. 그래서 아, 이치가 그렇구나 하는 거지. 그래서 옛날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잖아. 젊어서 한 공수 쉬는 것이 보약이라고. , 마시자고. 그게 세상을 탓할 일인지, 나를 탓할 일인지 말이야,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럴듯한 말이었다. 노인은 나이를 헛먹지 않았다.

“노동일을 하는 인간들은 참 이상해, 뭐 이상하다고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뭐랄까 성격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거든. 아까 말이지, 사장 놈을 붙들고 소리를 지를 때, 다 자기 말만을 하거든.”

“뭐가요?” 동호는 노인이 헐겁게 박혀 있는 이빨과 꼭 맞지 않는 위아래 입술의 율동을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

“사장새끼, 돈 없다고 버틸 때, 답답하니까 자기 심정을 드러내잖아. 어찌나 속으로 우스운지. 누구야 저기 전라도에서 왔다는 그 친구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잖아. ‘우리 어머니가 아프단 말이야 돈 내 놔!’ 하고 말이지. 나중에는 엉엉 울더구먼. 쪽 팔려서.”

“진짜 아픈가 보지요.”

“그럼 어머니 아픈 걸 거짓말 해겠어. 어디가 아파도 단단히 아프니까 그 말이 튀어나왔다는 말이지. 내 말은 왜 그때 사장한테 울부짖느냐 말이지. 그리고 박씨도 그렇잖아. ‘내 딸 등록금은 어떡하라고’ 사장을 윽박지르데.”

“절박하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아저씨도 참.”

“그렇겠지. 근데 왜 우리가 그런 사정까지 이야기하면서 일한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가 말이지. 그냥 당당하게 일 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될 것을.”

“아, . 아저씨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어요.” 동호는 노인이 주름을 잡아가면서 키득거리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오후의 모습은 촌극을 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하마터면 그런 말을 내뱉으며 사장에게 하소연 겸 분노를 터트릴 뻔했다. ‘애가 굶어 학교에 못하고 있어요. 돈 주세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려다 자신이 왜 이 못난 사장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아마도 동호는 그들보다 형편이나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동호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절박해서 수치심보다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확실히 사장은 돈이 없어 보였다. 임동호보다는 열 댓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사십 대 초중반인 사장은 혀를 차기도 하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는 일꾼들을 보면서 사정을 하기도 했다. 더러는 아는 사람들이었고 더러는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한씨라는 말이 걸진 사내가 사장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대변을 보겠다고 신문지를 달라고 했을 때 놀란 여직원은 사색이 되어 밖으로 나가버렸고 사장은 그의 팔을 잡고 이러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 좀처럼 돈을 언제 주겠다고 말하지 않던 사장은 그제 며칠만 더 참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사장은 위 건설회사에서 돈을 주어야 임금이 해결된다고 버텼는데 대변을 보겠다는 행동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한가 놈, 갑자기 옷을 벗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야. 미리 말이나 하고 그 짓을 해야지. 하긴 가끔 일꾼들이 그 짓을 할 때가 있었지. 아예 나는 사장 책상에 누울까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야.” 노인은 마치 엉덩이를 깐 한씨에게 기회를 놓친 것처럼 아쉬워하며 말을 했다.

“앞에서 고추를 봤어야 했는데, 자네는 봤나? , 그걸 못 보다니.”

“아니요. 뒤에 있어서요. 볼품없는 것 봐서 뭐하게요.”

“궁금하잖아. 한씨 놈 툭하면 계집이 어쩌니저쩌니 했는데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거든.”

“그나저나 사장이 약속한 날 돈이 나와야 하는데요.” 동호는 소주를 마시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판단해 보았다. 머릿속에 돈이 나와 받아 쥐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장이란 족속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늘 거짓말을 달고 다닌다니까. 벌써 몇 번을 미루고 또 미루었잖아. 안주면 이번에는 책상에 눕든, 똥을 싸든, 놈을 잡아다 코브라스틱을 걸든 이번에는 제대로 해 봐야지.”

“하청업자들이란 게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그러니까 왜 공사를 따서 일하는 놈들 못 할 일 시키느냐고, 능력이 없으면 일당이라도 뛰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 남들처럼 돈 벌어서 땅땅거리고 살고 싶은가 보죠. 이 망할 장갑을 벗어 버리고 놀면서 돈을 버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큭 취하는군. 하여간 기다려 봐야지. 이번에는 내가 아주 오줌 똥을 놈에게 갈겨버릴 테니까. 돈 몇 푼 때문에 별 이야기를 다 하네, 염병. 불쌍한 노가다 같으니. 동호 말이야. 내가 공무원도 해보고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는데, 사는 게 늘 전전긍긍하게 되어 있어. 자기 일을 하기 전에는, 사실 자기 일도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저 한몫 잡거니 하고 시작했지만 역시 그 일이 다 그일 이더군. 뭘 해도 마찬가지야. 그러거니 하고 살아야지. 이제는 이 일도 얼마 해 먹지 못하겠지만. 아마 난 저 80년대가 오기 전에 땅 속에 묻혀 있을지 몰라.”

“땅속에요. 그곳에 가거든 쇠 만지는 일은 그만 하세요.”

그 말에 노인은 숨이 넘어가듯 웃더니 한잔 더 들이켰다.

노인을 부축하며 술집을 나왔을 때는 열 시쯤 되었다. 노인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간다고 하면 통금은 간신히 벗어날 것 같았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종로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술 취한 혹은 야근에 시달린 또래나 그보다 어린 친구들이 옆으로 길게 놓인 의자에 앉아 피곤한 몸을 흔들리고 있었다. 저들에게 각기 나름대로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 이름 안에 담긴 뜻은 그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으나, 유감스럽게 사회적으로 공돌이 공순이의 처지에서 그 이름의 의미를 상실한 그저 번호와 같은 인간이 누구인가 식별을 위한 표피적인 의미만 부여되어 있으리라.

차장도 다리가 아픈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 입구 기둥에 서서 건들거리는 버스 따라 앞으로 뒤로 흔들리며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흐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깊게 떨어져 동호 어깨에 기대어 코를 골았다. 그의 코골이 소리에 매일의 노동에 지친 호흡이 흘러나오고 뼈다귀들이 될 대로 되라는 듯 흐느적거렸다. 노인은 꿈속에서도 일할 것이다. 그는 애당초 노동자로 태어났으며 노동자로 길러졌고 노동자로의 처지에 맞는 하류인생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너 무산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

정석기는 술잔을 기울이며 동호에게 물었다.

“예? 무산자라니요?”

“너 노동일을 언제부터 했나?”

“그야 국민학교 졸업하고나서요.”

“한자는 좀 아냐?”

“이름은 쓰죠.”

“무산자란, 없을 무, 만들어 낼 산, 아들 자인데, 쉽게 말해 몸뚱어리로 먹고사는 가진 것 없는 놈들을 이르는 말이지. 달리 말하면 죽을 때까지 몸뚱어리를 굴려야 먹고 살 수가 있지. 누가 나에게 그 말을 해 주었는가 하면, 김대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난 번 싸울 때, 월남에서 만난 함께 일했던 친구요?”

“그렇지, 한 번 봤구나. 그 친구가 무산자를 말을 해 줄때는 잘 몰랐는데 그게 철학이더라고. 늘 살면서 절절하게 느끼거든. , 내가 무산자구나 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넌 오늘 네가 지진 된 용접봉을 다 기억하겠냐? 그저 그런 거지.”

 

버스 차장이 졸다가 앞으로 휘청거리다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기대고 서서 주변을 살펴본다. 노곤하고 피곤한 하루가 통금을 향해 올라서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루가 그렇게 간 것이다. 지나간 하루가 그렇고 올 하루가 그렇고, 한 바퀴 돌 때마다 한발 한발을 올려놔야 할 인생인데 좀처럼 변화가 없다. 석기형 말대로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장이 약속했던 돈이 며칠 미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사장은 당분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일꾼들은 그럴 처지가 안 되었다. 늘 돈에 쪼들리고 있었고 돈을 받으려고 계속 쫓아다닐 수도 없고 다른 현장으로 가야 했기에 모여서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너 돈이 나올 것 같아, 안 나올 것 같아?” 김노인이 사람들과 현장을 가로질러 사무실 쪽으로 가면서 동호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리 싸워도 돈이 없으면 안 나오지 않겠어요.”

“글쎄, 그럴까. 내가 보기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이 있는데 며칠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나쁜 놈이죠.”

“그렇지.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희한한 일은 끝까지 싸우면 없다는, 정말 없다는 돈이 나온다는 게야. 어쩌면 일도 중요하지만 일하고 돈 받는 법도 중요하지.”

“일하고 돈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요.”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것을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질퍽거리는 현장 뜰 진흙탕을 건너뛰며 일곱 사내가 그들이 올리다가 만 철골 건물을 옆으로 하고 걸어갔다. 흙탕을 건널 때 청바지의 입은 동호는 자신의 아래 모습을 보았다. 사무실로 올라갈 때 스치듯 지나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리문을 통해 보니 귀를 덮으려고 하는 생머리가 답답하게 보였다. 마른 볼과 가늘고 긴 눈썹,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 튀어나온 목젖과 헐렁한 세로 줄무늬 티, 옷 속에 감추어진 마른 어깨뼈가 느껴졌다. 돈을 받으려고 걸어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남루하고 볼품없는 모습들이었지만 전과는 다른 모습이 느껴졌다. 지치도록 일을 하고 가정생활에 시달리고 그 많은 삶의 무게를 어떻게들 버틸까.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아. 현장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그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거든.”

김노인이 사무실로 들어가기 직전 돌아보며 동호에게 말을 했다. 노인은 사무실을 들어가면서 느닷없이 돈을 내놓으라고 악을 썼다.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동호도 깜짝 놀랐으나 그 말에 홀리듯 빨려 들어가 자신도 돈을 달라고 큰 소리로 여기저기 둘러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데모하는 거야!”

나이를 먹은 직원 하나가 가로막으며 기죽지 않으려고 맞대응했다.

“데모고 나발이고 일했으면 돈을 줘야 할 것 아냐. 네가 돈 줄 거 아니며 비켜 사장 어디에서!”

덩치도 크고 힘이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강형이 관리자와 으르릉거리며 첫 기세가 붙자 지지 않으려고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듯 가슴을 붙였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내 놓으라는 거지 현장에서 일하는 놈이 개 할 짓이 없어 여기에 왔겠어. 콱 대가리를 뭉개버리기 전에 비키지 못해.”

강씨가 주먹을 쳐들어 치려는 태세를 취하자 그는 움찔했다. 그의 주변에 동호도 김씨 노인도 모여들어 뭔 일이 터지면 죄 뛰어들어 밟아 버릴 기세를 보이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툭하면 떼로 이러면 어쩝니까?”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거 아니야. 돈만 줘봐!”

“지금 사장님 없습니다.”

“시발, 도망가면 대수야.”

“도망이라니요, 말조심 하십시오.”

“말조심이나 마나, 돈 내놓으라니까.”

강씨가 그를 밀치니 그가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욕지거리를 했다. 그걸 보고 강씨가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렸다. 그때 김노인이 나서서 말로 하자면서 강씨를 뒤로 빼고 지난번에 분명히 어제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주는가? 더 이상은 양보하지 못한다고 말을 했다.

“우리도 그 현장에서 까졌어.”

“그래서 임금을 못 주겠다는 거야!”

서넛 되는 다른 직원들은 당황한 얼굴로 일손을 멈추고 한쪽에 모여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나이가 많은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상무라는 사내가 안쪽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며 무슨 일인가 물었다. 동호는 점잖은 체하는 그의 말투와 슬쩍 흘겨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표가 누구야!”

상무가 점잖게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반말하지만, 일꾼들에 대표가 어딧고 안 대표가 어딧어!”

그때 여자처럼 가늘고 째지는 목소리의 한씨가 나섰다.

“누가 반말했다. 그래요. 여여러 사람이 말하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대화는 당신들끼리하고, 우린 돈이나 달란 말이야.”

“왜 또 바지 내리게요.”

“못할 것도 없지.”

그가 바지를 벗자 단숨에 바지가 내려가고 회색 반바지 팬티가 드러났다. 근처에 있던 여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댔고,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지금 사장님 안 계시니 내 연락해 볼게요. 거기 김대리 사장님 통화되나?”

그는 손을 저으며 덩치가 큰 사내에게 물었다.

“예, 아직 안 되고 있습니다.”

“다 짜구만.”

“짰다니요! 지금 사장님 부인이 암으로 병원 수술하려고 입원을.”

사장 부인이 암이라는 말에 동호는 좋았던 기세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 말을 직원 얼굴이 침울하게 굳어졌다. 다른 이들도 뭔가를 해야 하는데 다른 말을 못하고 멈칫하였다. 분명히 처음 들어올 때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때 느닷없이 김노인이 책상을 발로 걷어차자 책상이 한쪽으로 밀리더니 위에 있던 책장이 한 바퀴 돌아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내 마누라도 지금 암에 걸렸는데 병원도 못 가고 있어!”

그 말은 마치 댐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물처럼 동호의 귀에 울렸다. 사실일까, 왜 이런 의심을 할까? 노인이 일부러 그랬나? 그 말을 하자 다시 사무실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각자의 사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돈을 받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조금은 개운하지 않은 날이었다. 사장은 서너 시간 후에 돈을 가지고 와서 해결해 주었다. 그는 시간이 나지 않아서 하루 이틀만 미루려고 했다고 했지만, 일꾼들이 그렇게 급하니 자신도 억지로 시간을 내어 해결해 준다고 했다. 사장 처가 암에 걸린 것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걸 거짓말할 사람도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김노인은? 모르겠다.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거짓이 아닐까 동호는 생각했다. 그 말을처음 들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거짓이 어떻게 나왔을까? 거짓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아무도 그에게 그 말이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날 돈을 받은 것이다.

그날, 술에 취해 김노인은 부축하여 집까지 함께 간 날, 아주머니를 봤었다. 마른 몸에 후덕한 모습, 손에 염주가 걸려 있었다. 그 밝은 모습에 암에 걸렸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동호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을 때,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었다. ‘난 이 집안 가장이야. 늦으면 어때, 난 가장으로서 떳떳하다고’ ‘아이고, 맞습니다. 가장님 술 맛있게 드셨습니까?’

아주머니는 인사를 하고 허세를 부리는 아저씨를 밝은 빛이 쏟아지는 집으로 들어갔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주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노인이 어떻게 그날 돈이 나올 수 있을 것을 알았을까? 아마 김노인은 어떡하든 그 날 돈을 받고 싶었던 것일 거다. 다른 사람도 그렇고. 또 김노인은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무엇이 생각이 많다는 것일까?

그날 집에 들어가니 전보가 와 있었다. 두일 개발에서 온 중동에 갈 수 있는 취업 통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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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 3

김대위는 아기를 안고 가는 처 조영희를 보고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들을 태운 택시는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 만나야 할 여러 인물이 순서 없이 하나씩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있을 할머니와 주변 인물들, 거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손을 내밀 하얀 손들이 눈에 선했다. 할머니는 사형제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할머니는 늙은 입을 오므리며 ‘내 가문의 자식들, 내 새끼들’을 부르며 가족들을 보듬어 안곤 했다. 특히 김대위의 아버지는 셋째였지만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날 할머니가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69년 7월 16일 장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있는데 아폴로 11호를 발사하는 순간이 중계되고 있었다. 아버지 형제들이 장례 결산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 방에서 큰어머니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리고 사색이 된 채 할머니가 혼절하셨다고 말을 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로켓이 홀로 날아가고 형제들이 모두 할머니 방으로 몰려가 의사를 부르고 물을 떠다 얼굴을 씻기고 팔다리를 주물러 댔다. 김대위는 인류의 꿈을 싣고 떠난다는 로켓을 보면서 아버지가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착각이 들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머리를 식힌다고 아버지는 장자를 읽고 계셨다. 아버지가 마지막에 무엇을 펼쳐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회사일로 머리가 꽤나 복잡하셨던 모양이다. 장자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그랬을 수 있으나 장자가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할머니 말대로 명이 거기까지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 초상 앞에 차를 올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김대위가 월남에 가기 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초상에 향을 올렸으나 월남을 다녀온 후로는 차를 올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우주론은 불교에 가까우셨다. 우주는 다른 우주에 싸여 있다고 믿으셨다. 그 우주는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 싸여있고, 언젠가 어렸을 때 그 말을 들을 때 양파가 생각났다. 김대위도 아버지에게 누구나 한번은 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 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어요?’ ‘우주가 있지.’ ‘그 끝에는 요?’ ‘그 끝에 어떤 놈이 서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군가 있지 않겠냐?’ ‘하느님이요?’ ‘글쎄다.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우주가 별 탈 없이 운행을 하겠지.’ 김대위는 그 말이 거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농담인지 알지를 못하였다. 아버지는 소탈하시고 웃음도 많고 농담도 잘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다. 사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많았다.

 

강변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길 따라 피었고 갈대숲이 파랗게 새순이 올라 햇살 아래 반짝거렸다.

“날이 제법 풀렸군. 한해가 벌써 이렇게 가다니 믿기지가 않아, 세월이란 참!”

김대위는 머릿속을 지우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아기의 발을 만져 보았다. 손톱 때가 끼어 있는 손으로 보송보송한 아기 발을 문질렀다. 두꺼운 털실로 만든 양말 안에 있는 아기 발이 느껴졌다. 처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곤색 줄무늬 양복을 입는 남편이 어쩐지 촌스러워 보였다. 짧은 소매에서 나온 앙상한 팔목 뼈가 마음에 걸렸다. 여자 손톱처럼 긴 손톱들과 손톱 아래 낀 기름때와 햇살아래 더욱 선명한 손등 피부주름에까지 기름때가 스며들어가 거뭇거뭇해 보였다.

김대위는 마른 손바닥으로 아침에 나오면서 면도한 턱을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왜요?”

“아니야.” 김대위는 손가락을 비비며 엄지손가락을 이빨 사이에 끼어 물어뜯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삶의 길, 그리고 자부심과 열등감,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있지도 않지만 어쨌든 의식하지 않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작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해 차라리 멀리 떨어져 그저 짐작만 하고 있기가 편하기는 했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기가 잠을 자면서 발을 움찔거렸다. 영희가 아기를 가슴에 안으며 이불을 감싸 아기 얼굴을 덮었다.

차창 밖은 삼월의 훈훈한 봄바람이 불면서 길옆에 핀 개나리들이 노란 화단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지난번 월급은 아직 안 나오나 봐요?”

영희는 아기를 만지며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던지고 김대위 안색을 살폈다.

“이번 주까지 준다고 했으니까? 이번에 안주면 똑 한바탕하러 가야지.”

“또 싸워요?”

“이게 다 삶이야. 안주면 싸워서 받고, 또 일하고, 또 싸우고. 기사 아저씨 안 그래요?”

그 말에 기사도 얼굴이 펴지며 금색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라디오 소리를 줄이더니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죠. 싸움 많이 했죠. 저도 공장 다니다가 월급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 짓 지겨워 이거 한다 아닙니까. 한번은 석 달째 못 받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는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작당을 했다 아닙니까. 그래서 다음날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대표로 말하기로 한 놈에게 눈짓을 주자 공장장 앞에서 공구를 바닥에 냅다 던지면서 당장 돈 내 놓으라 말이야, 하고 소리를 치며 한바탕 했지요. 그게 신호가 되가지고 우리도 덩달아 연장을 집어 던지고 공장장 앞에 모여들었는데 구경하던 다른 놈들까지 우르륵 모여 들어서 나중에는 우리가 다 겁이 나더라니까요. 덕분에 한 번에 해결되고 짤리기는 했지만.”

김대위보다 서너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사내는 그 마음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이 끊이지 않았다. 기사는 말을 마치더니 흥얼거리며 자신의 추억을 떠 올리며 가끔 히죽거렸다.

김대위는 고개를 끄떡이며 바지 주름을 잡고 구두를 손으로 문질러 먼지를 쓸어 내렸다. 나오면서 닦았는데 금세 먼지가 내려앉았다.

“영 불편 하는구먼.”

“그래도 잘 어울려요.”

“그냥 작업복 입고 아무 곳에나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업복이 제일이야. 평상복차림으로 올걸 그랬어.”

양복이 싫다는 것을 영희가 억지로 입혀 마지못해 투덜거리며 옷깃을 당기거나 웃옷 단추를 풀었다가 다시 채우곤 했다.

“아기가 잠을 아주 잘 자네.”

김대위가 이불을 살짝 들쳐 새근거리며 자는 아기를 쳐다보았다. 이제 막 백일 지난 아기는 첫 외출인데 잠만 자고 있었다. 영희는 아기가 잘 보이도록 팔을 느슨하게 풀어 아기 얼굴이 드러나도록 했다.

“낮에야 그렇죠.”

아기를 쓰다듬는 처 손가락이 뽀얗게 살이 올라 있었다. 아직 붓기가 다 가시지 않아 볼이며 가슴이나 다리가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어디 가시나 봐요?”

기사가 거울을 흥얼거림을 멈추더니 따분한 눈으로 물었다.

“예, 잔치가 있어서요.”

“부모님인가요?”

“아니요. 큰 집이요.”

기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김대위가 말을 해준 한남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한강을 빠져나가려다 승용차 속도가 조금 더디어 졌다.

“뭐가 하나 또 간 모양입니다.”

강변을 내려다보며 기사가 혀를 끌끌 찼다. 그가 쳐다보는 아래 갈대밭에 경찰과 일반시민 서넛이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그 모습을 보고 대충 그게 뭔가를 알았다. 강변에 죽어 있는 시체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 사이로 언뜻 가마니가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 뭐합니다만, 꼭 저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안 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저것 어느 공돌이나 공순이가 저렇게 되었을 겁니다. 십중팔구 말이죠. 시골에서 어지간히 올라왔나요. 아마 하루에도 저런 것 서너 구는 발견이 될 겁니다. 내 짐작인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법이 있겠습니까? 뭐가 있겠습니까? 어린 것들이 싸구려로 팔려와 공장에 뿌려놓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시키는 세상인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한강에 왔다가 뭐가 잘못돼서 저런 일 생기는 거고, 아니면 살기 빡빡하니까 스스로 저리 했을지도 모르고요. 한두 번 봐야지요.”

기사가 처와 김대위 안색을 살펴 가며 떠들어 댔다. 김대위는 뒤로 서서히 물러나는 갈대숲의 광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문이 커다란 저택 앞에 서고, 김대위 부부가 택시에서 내려섰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이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집 주변에 잘 닦인 승용차들이 반짝거리며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앞마당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숲처럼 울창하게 서 있고 열 살 전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3층짜리 주택 입구 현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내 서넛이 김대위를 가족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모두 사촌들이었다. 김대위는 다가서서 그들과 악수를 하고 어깨를 잡아 안았다. 영희도 따라와 고개인사를 하였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혈색이 좋지 않으니 고생이 많다고 인사들을 건넸다. ‘고생이라고’ 김대위는 큰 사촌형의 인사성으로 던진 말이 귀에 걸렸으나 웃어넘겼다. 그저 인사일 뿐이거니 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상을 구길 필요도 없고, 사촌들끼리 모였을 때 말다툼하지 말라고 영희가 신신당부했었다. 특히 영희의 의견에 의하면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었다. 사실 종종 종교와 정치적인 의견으로 감정까지 상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이들 집안에서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는 중요했다. 김대위에게 정치적 입장은 종교 못지않는 중요한 문제였다. 다른 사촌들은 별 관계가 없으나 아버지 형제들과의 의견 차이는 너무 크고 종종 다투어 버릇이 없는 놈이나 뭘 모르는 이상한 종자로까지 치부되어 있었다. 김대위에게는 아버지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가급적 집안 행사에 참여를 하지 않고 따로 겉돌고 있으나 늘 그럴 수는 없었다.

주택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이 나오고 큰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처의 손을 잡고 아기를 안아 들었다. 김대위는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뒤를 따라 나오는 큰아버지와 그의 사촌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받았다. 한쪽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조카들이 2층에서 내려오다 마주치자 인사를 하였다. 열댓은 될 그들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다. 머리를 뒤로 넘기고 쪽을 틀었고 마르고 붉은 볼과 총명한 눈이 반듯한 코가 인상적인 모습 그대로 늘 당신에게는 아기인 김대위를 반겨 주었다.

“오, 어서 오너라! 그 아기를 안고 싶구나, 어서 다오, 어서! 아이구 내 새끼.” 하며 김대위의 손을 잡고 큰어머니에게서 아기를 건네 안아 볼을 비볐다. 절을 하겠다고 하자 손을 내치며 병중에 인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거절하였다. 병중이긴 하나 아직 목소리가 맑았고 분명한 발음을 했다.

“그래 백일을 잘 지냈니? 집에서 식구끼리 했다고 조용히 했다고 하더구나?”

“예.”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 너의 성격이 곧아서 문제다. 내가 그래서 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야. 세상이 그렇게 내 뜻대로 된다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이 놈 눈 봐라, 어이구 발질하는 것 좀 봐, 이놈도 한 성질 하겠는 걸.”

김대위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할머니가 사촌 동생을 통해 선물을 전해 주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처는 부엌으로 불려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노인은 자는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며 나머지 가족들을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김대위는 다른 사촌들에게 이끌려 다른 방으로 가서 술자리에 앉았다.

“월남이 오는 여름을 못 넘긴다는군.” 이미 노인의 얼굴이 완연한 큰아버지가 그의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월남이 문 닫으면 죄 중동으로 몰리겠군. 이 불경기를 이겨내려면 말이지. 지금 중동만한 시장이 없잖아요.” 둘째 큰아버지가 말을 받았다. 그는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업자였다. 형제 중 가장 키가 컸고 말랐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둘째 큰 아버지는 계산에 밝았고, 이기적이란 말을 들었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그 말은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늘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거기서 기름 캐다가 팔아먹으면 돈 좀 되겠네요.” 작은아버지가 짧은 목을 더욱 짧게 감추며 머리를 흔들어 대며 즐거운 듯 키득거렸다. 김대위는 담담하게 쳐다보았지만, 가끔 어떤 일로 그가 떠오르면 그 특유의 웃음이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정보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빛나고 뭔가를 끊임없이 추궁하는 듯 한 야성적인 속성이 넘치는 사내였다. 가끔 김대위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일삼는 그였지만 언젠가 소리치며 다툰 후로는 서로 친한 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불편한 아버지 형제 중 하나였다.

“미국도 난리가 아니니,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포드도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재선은 힘들겠어.”

큰아버지가 술잔을 돌리자 김대위도 한잔을 받았다.

“미국은 관두고 이 나라 꼴도 말이 아니잖아요. 먼 데모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요즘 최루탄 가루 때문에 대학가는 물론이고 장사꾼들 이야기를 들으니 신촌 쪽을 다닐 수가 없다고 합니다. 빨갱이라도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둘째 큰아버지도 취기가 올랐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소리 지르듯 말을 했다.

“박정희도 난처한 모양입디다. 더 세게 밀자니, 반발이 좀처럼 누그러뜨려 지지 않고 그렇다고 한발 물러나자니 억지로 만든 유신투표 결과가 허사가 될 것 같고.”

그 말을 듣고 작은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입이 근질거리지만 꾹 참고 있었다.

“그 양반이 좀 심해, 정치보다는 장사했어야 어울리는 사람인데 말이야.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반작용도 큰 법인데 뭔가 씌운 모양이야. 안 그래 이 서방?”

김대위 옆에 앉아 있는 유일한 이 집안 사위를 보고 큰아버지가 말을 걸어 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끄떡이고 있었다.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머리가 온통 희게 변해 중늙은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자 대리점을 열어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죠! . 학생들이든, 대통령이든 할 만큼은 하는데 방향이 틀리다 보니 계속 충돌하는 거고, 뭐 방법이 있겠습니까? 굶는 것 보다야 좀 무리가 있어도 경제를 살리는 쪽이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형님들이 잘 아시겠지만요.”

“바로 그 말이 내 말이라니까. 매형!”

작은아버지는 손뼉을 치며 그 작은 목과 큰 머리를 흔들어 댔다.

“관건은 경제겠지. 경제가 계속 죽을 쓰면 닉슨처럼이야 되지 않겠지만, 부담이 가는 거고, 경제에 돌파구를 뚫으면 힘을 받겠지.”

“닉슨은 말도 하지 마라. 사내가 그 정도로 하늘이 준 자리를 내놓나. 미국 애들은 깡이 없어요. 민주주의는 잘 할지 몰라도 정치는 우리 박통한터 더 배워야지. 정치를 국민들 뜻대로 하자면 그것이 제대로 한 나라가 굴러 가겠냐?”

조카들은 큰아버지의 그 말에 소리죽여 웃기만 했다.

“확실히 회사가 죽느냐 사는 냐는 인재가 있어야해, 거 뭐냐? 현대건설 같은 경우 거기 젊은 간부 하나가 있는데 무지하게 똑똑하다고 하더라고. 나도 한번 얼핏 지나가다 봤는데, 눈이 쫙 째진 게 엄청나게 야무지게 생겼더라고. 대학 다닐 때 데모도 했다는데, 우리 회사에도 그런 젊은 간부하나만 있으면 크게 될 것 같은데.”

둘째 큰아버지는 머릿속의 어떤 장면을 생각하며 달아오른 얼굴에 술을 한잔 더 들이켰다.

“형님, 내가 그런 인물 소개시켜 줄까요. 그런 친구들 몇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놈 하나 소개시켜 주라, 뭔가 잡아먹을 듯 무서운 놈으로 말이야. 이 천하를 이 손바닥에 넣고 주물럭 거릴만한 통이 큰 놈으로.”

“그렇게 손이 큰 놈이 있겠습니까, 손 큰 놈 너무 좋아 하시다가 형 잡아먹히면 어쩌려고요.”

“그것도 능력이다. 회사만 키울 수 있다면야, 이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회사 욕심이 커지는 법이야.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 그것은 야망이 없는 인재를 가지고는 힘든 일이지.”

김대위는 맑은 소주를 따르면서 눈을 감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누가 뭔가를 물으면 그저 간단히 고개를 끄떡이거나 웃어 줄 뿐이었다. 누군가 느닷없이 ‘영자의 전성시대’란 영화를 봤다는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따라 웃었다. 조카 중 하나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웃으며 ‘별들의 고향’도 곧 개봉할 것이라는 말을 거들자 웃음이 더 번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나 연예로 옮겨졌을 때, 사촌 동생 하나가 그의 어깨를 치며 잠깐 나가자고 말을 했다.

둘은 다른 방으로 건너와 담배를 하나씩 나누어 피워 물었다. 그는 군에서 보안대에서 근무하다가 정보부 소속 공무원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이끌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보면 정보부가 아니라도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었다. 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 그는 담뱃재를 털며 눈웃음을 치며 김대위에게 물었다. 그것은 일상적인 안부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근래에서 일하지 못하지만 늘 그렇지 뭐.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배관 일을 하러 다니지 뭐.”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형수 애 날 때 가보지도 못해서 하여간 성격 유별나다니까. 돌잔치는 할 거지?”

“글쎄. 아마 그때 중동에 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을 들었으려나 모르지만.”

“들었어. 꼭 그렇게 가야 하나? 아직 애도 어린 데.”

“나도 서른이 넘어가는데 아이하고 살 집이라도 장만을 해야 하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그,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할머니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그런 걱정 덜어 버릴 텐데. 형 같으면 빌딩이라도 하나 사 줄 걸.”

“할머니가 무슨 재벌이냐. 그리고 내가 거지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는 어떻게 지내? 애들은 크겠다.”

“이제 네 살이야. 한번 키워봐 얼마나 이쁜 지 말이야.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좋아서 미칠 지경이라니까.”

“지금은 정보부 일을 잘돼?”

“할 만하지. 가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을까 생각이 들지만 뭐 먹고사는 직업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나도 더 늦기 전에 밖에 나갔다가 오려고 말이야.”

“어디를 가는데?”

“좀 멀 리가. 처는 못 마땅해 하는데, 한번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중동 쪽에 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왜 또 중동이야?”

“요즘 그쪽이 대세잖아. 정부 차원에서 중동으로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거든. 지금 돈 나올 곳은 그곳밖에 없어. 정부도 월남 철수 이후 중동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어. 나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그쪽 생활 좀 해보고 오려고. 셋째 작은아버지도 동의하고.”

“사우디?”

“아마 가게 되면 그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기왕에 가장 업체들이 많이 나가 있는 곳이지 말이지.”

“잘하면 만나겠네.”

“그래서 형한테 미리 말하는 거야. 누가 먼저 나갈지 모르지만 나가면 그곳에 가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중동까지 가서 소주를 마시자고. 그거 나쁘지 않지.”

“형,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일로 기석이형을 만났는데, 형 소식을 묻더라고. 그래서 근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해 주었지.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하고.”

“그렇지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를 못했지. 지금은 뭐하나 모르겠군.”

“다들 자기 길을 가고 있겠지. . 학교에 남아 있는 형들은 교수를 꿈꾸고, 아니면 취직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거나 누구야 형하고 친했던 형처럼 이러 저러한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있겠지.”

“근데 형은 왜 그들과 헤어진 거야? 들리는 말에는 사소한 말싸움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

“뭐 말싸움까지야, 그럴 일이나 있겠어. 그런데 뭐 아까 중동에 간다는 말 말고 딴 할 말이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형이 중동에 가는 것을 작은아버지가 조금 우려를 하셔.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만 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걱정이 되시겠지. 다 젊었을 때 이야기 일 뿐이지. 그나저나 너라도 작은아버지 걱정 끼쳐 드리지 말고 잘해라.”

김대위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창가에서 맑았던 하늘이 우중충하게 변하더니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아이들 안더니 내 새끼라고 하며 아기를 볼에 비볐다. 김대위 가족이 밖으로 나오자 기사가 승용차를 열어 주었다.

사촌 동생이 밖까지 나오며 우산을 들어주며 승용차를 탄 김대위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가 형, 가기 전에 한번 연락을 할 게.”

김대위는 그 말에 그의 어깨를 만져주며 차를 타고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주일 후, 김대위는 사우디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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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2

 

2

 

김대위가 신경이 곤두서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감정이 불안정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는 줄곧 만성적인 속 쓰림으로, 신경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지에서 외출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알 수 없는 냄새가 주는 불안함이 양 눈썹에 표시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의 코가 아닌 머릿속을 자극하는 오물 냄새에 신경이 거슬렸다. 사람에게 나는 냄새 같으면서도, 음식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 같기도 하고, 산화되는 쇠에서 나는 녹 냄새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저 민감해서 그럴 수도 있었고, 속이 쓰려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갈대로 엮어 만든 차양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와 탁자 밑 발등에 쏟아지고 사선으로 가른 빛과 그늘을 경계로, 나이테가 넓은 탁자 다리들 사이로, 먼지들이 반짝이며 휘몰아쳐다. 발그림자 한 개가 건들거리고 낡은 구두와 진흙 묻은 창 바닥이, 창가로 기어다니는 딱정벌레가 무늬처럼 앉아 있다가 휭하니 날아갔다. 그곳이 어디였나? 사이공, 담낭, 사이공이었을 것이다. 사이공 다리 보수 공사에 지원을 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그 순간 요란한 타악기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울림이 입체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소박한 악기에 비해 소리가 독특한, 누가 저런 음악을 만들고 들어왔을까? 긴 시간 정제되고 감상의 폭을 넓혀 왔을 음악이다. 그늘진 안쪽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세 여인이 연주자였는데 이마와 목에서 가슴골까지, 팔뚝에 땀을 흘리고 있다. 김대위 오른쪽 반대편에서 미군들이 손짓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백인 둘과 흑인 하나가 사각 탁자에 둘러앉아 맥주를 한 병씩 마시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김대위 바로 앞 탁자에 한 여인이 반쯤 찬 양주 한 병을 세우고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청색 원피스, 아니 청색 아오자이를 입었다. 그랬다. 그녀가 흰 긴 팔을 뻗어 오른쪽 볼을 괸 모습이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주인은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데, 그때 붉은 천을 두른 승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김대위와 박씨 옆으로 지나갔다. 저벅거리는 발자국이 가볍기도 하고 어쩌면 헛것을 봤을 수도 있을,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유령처럼 가볍게 걸었다. 황갈색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그 황색 가사의 색이 어찌나 강렬한지 김대위 눈에는 어렸을 때 봤던 손톱만한 어떤 열매가 생각났는데 도저히 그것이 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찍기만 해도 번질 것 같은 깊은 황갈색 가사를 두른 깡마른 몸과 윤곽이 드러난 광대뼈가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솟은 눈과 진한 눈썹, 두꺼운 입술과 검은 피부, 그의 눈과 깊은 눈동자가 빛나 보였다. 저 눈을 그 어떤 이상을 쫓는 것일까? 삶의 초월,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죽음의 저 밑바닥, 아니 불타는 조국의 해방, 전선 없는 전쟁의 종식, 일상에 일상적으로 학살된 인간들, 지긋지긋한 전쟁과 이국 군인들, 그리고 이 더운나라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역겨운 인간들, 그 틈에 먹고 살자고 허우대를 흔들어 대는 노동자들. 승려는 앞을 똑바로 보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잠깐 지나가면서 김대위와 박씨를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위는 헐렁한 가사를 보면서 그 안에 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총을 잡고 걸어가는 척 하면서 갑자기 돌아서 총알을 쏟아 붓는다. 상상이다. 그럴 리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승려가 지나간 자리에 여인이 누워 뒤척이고 그 너머에 남자 주인이 승녀를 보고 합장을 하더니 주방을 보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승녀는 주인이 안내하는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쪽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미군들이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무더운 오후였다. 푸른 열대야자수 나뭇잎은 더욱 푸르게 빛이나 파란 기울이 아물거리며 솟아오르고, 뜨거운 볕으로 갈대창이 반짝이고, 김대위는 가슴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승려를 보고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때 문득 음악이 멈추었다. 무슨 내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음악이 끝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연주하지 않았으면 했다. 여인 셋이 연주를 했을 뿐이고, 음색만 기억날 뿐, 어떤 박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승려가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무대 가운데 있는 여인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공사를 하다 보았나? 숙소 근처에 살고 있었나? 아니면 기분 탓일지 모른다. 잠시 후, 여인이 깨어나 몽롱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얼핏 김대위와 박씨를 쳐다보았다. 박씨는 재밌다는 듯 여인을 보고 김대위를 쳐다보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박씨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의 누런 이빨과 붉은 잇몸이 보였다. 여인은 이십대 후반 정도 보였으며 앞에 다가서서 말이라도 걸고 싶을만큼 상당한 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인의 쌍꺼풀진 눈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눈동자가 취해 있었다. 대낮인데도 술을 마시다니, 김대위도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밤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았다.

저 새끼들, 여자가 가수라고 말하고 있는데.” 박씨가 미군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고 김대위에게 일러 주었다. 젊은 미군 한 명이 여인에게 휘파람을 불며 손을 들어 보였다. 여자의 눈길을 그들에게 가고, 여인은 주춤거리면서 일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앉았던 의자에 땀이 배겨 있었다. 약간 비틀거리는 여인의 몸매가 갑자기 비대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장난기어린 영어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미군들의 탁자로 다가가서 악수하자 백인 군인 하나가 일어서며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으며 춤을 추었다. 여자는 손을 비틀거리며 어깨에 두른 손을 빠져나와 의자에 앉았다. 여자와 미군들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박씨의 눈가가 붉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는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퍼 올렸다.

재미 하나도 없네. 날은 무지하게 덥고, 여기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 그는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그의 굳은살 배긴 손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왼손 엄지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손톱이 곧 빠져나올 것이다. 김대위는 나가자고 했다.

갑시다. 좀 걸어 보자고, 앉아만 있으니 재미도 없고.”

김대위가 탁자에서 힘겹게 일어서니 무릎이 저렸다. 1시간은 족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박씨가 주인에게 술값을 냈다. 문을 나서 햇살이 뜨거운 밖으로 나오자 뒤로 여인과 병사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소년 하나가 낭패스런 얼굴로, 어쩌면 상기 된 표정일지 모른다, 긴장되어 있던 표정임이 분명하다, 녀석은 이미 마음으로 준비했을, 어느 선상에 오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힘껏 던졌다. 놈의 몸이 투수처럼 반쯤 구부려지며 손에서 검은 그 물체가 손을 떠났다. 그 소년의 선물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올 때, 박씨는 폭탄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그의 몸이 깜짝할 사이에 흙바닥에 던져졌다. 박씨의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말을 알아듣기도 전에 그는 엎드려 귀를 감싸고 있었다. 김대위는 달리 어떤 동작도 취하지 못했다. 검은 물체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얼핏 돌멩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폭탄이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소년은 뭐라고 고함을 치면서 뒤로 돌아 신나게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서 비명이 들리고 탁자가 엎어지는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대위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폭탄이 터지는 상상이 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길을 가는 사람들 이목이 자신과 엎어진 박씨에게 쏠려 있었고, 안에서 소란스럽게 달려나오는 미군과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주인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쥐이어져 있었다. 주인이 화난 목소리로 돌멩이를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얗게 질린 여인이 창가에 서 있었다. 박씨는 어이없는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며 일어나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

망할 꼬마 새끼, 벌써 돌팔매질을 하니 폭탄 잘 던지겠군. 이 나라는 전망이 없다고 말했잖아. 이제 끝물이야. 이놈 저놈 가리지 말고 물건 팔아 한몫 챙겨 떠나야 한다니까.” 박씨는 자신이 엎드렸던 장소와 주인이 내 던지는 돌멩이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 저놈이란 말에 귀가 거슬렸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인마저도 종종 베트콩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소문이 가끔 들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전쟁은 구분하고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구분하기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전선을 애써 지우면서 전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나 긴 전쟁을 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것은 왜 이런 전쟁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자 답이다. 베트남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중에 김대위는, 그 작은 질문이 좀처럼 뇌리에서, 폐부에서, 삶 밑바닥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 것을 안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잠시 후 그 웃음도 사라지고 대신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안에 있는 몇몇은 죽었다. 몇은 다치고,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누가 그랬을까? 승려가? 술 취한 가수가? 아이의 돌은 또 무엇인가? 연기가 솟고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우리 우리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연인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일이다. 기억, 기억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 그런 사고는 전쟁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만한 일들이다. 문제는 이런 지리멸멸한 전쟁이기에, 삶 속에서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일이 촘촘히 꿰져 있기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몸부림을 치는 근본적인 일이기도 하다.

 

화요일 조선소의 싸움은 지루하게 혹은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대위는 현장 사무소 창고에서 동료와 낮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싸움 때문에 아니라 동료들이 조선소 노동자들의 싸움을 핑계로 술을 끄집어내어 고기를 구웠던 것이다. 술이 거의 떨어질 무렵 다른 이들은 싸움을 구경하러 가거나 퇴근을 했다. 사무실에는 소장과 다른 동료 둘이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대위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창고 뒤로 돌아갔을 때 늦은 동쪽 하늘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충 짐작했다. 벽에 그림자가 동쪽으로 향하고 전신주들에 널린 전선들이 더욱 쳐지게 느껴졌다. 멀리 바닷가쪽 갈매기들이 흩어져 날고 크레인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조선소의 기계는 멈추었고 싸움판으로 노동자들이 불규칙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연기가 나고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생소한 광경을 보면서 김대위는 꿈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꿈이 그의 귓가에 폭음을 남겨 놓았다. 귀가로 음악이 주는 울림과 돌멩이가 주는 느낌, 그리고 폭음소리, 그 사람들의 인생은 그 순간 무엇이었을까? 왜 그날 그 장소를 순간의 차이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혹시 그 자체가 기억이 아니라 상상이 아닐까? 가끔 기억조차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다.

그는 싸움이 궁금해졌다. 창고를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창고를 나섰다. 소장은 취한 목소리로 싸움 구경하지 말고 퇴근을 하라고 일러 주었다. 낮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취기가 가시지 않아 뒷골이 당겼다. 젊은 소장은 자주 술판을 벌였다. 눈이 작고 위로 째져 올라간 성깔 있는 눈은 술을 마시면 그의 과거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돈도 더 벌고 싶고 공사도 맡아서 하고 싶은 욕구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현장 사람들은 소장의 소리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못하였다. 그저 일하는 시간에 술을 마시기 때문에 기분을 내며 목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그럴 듯한 무게를 잡고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만 듣고 보면 술처럼 허망할 뿐이었다. 그에게 대모는 남의 일이었으며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이는 그림 한 장 텔레비전에 비쳐지는 뉴스를 현실로 볼 뿐이었다. ‘다 허튼 짓 아닙니까? 우리 같은 일당쟁이 노가다만 불쌍할 뿐입니다. 상여금이 있습니까? 퇴직금이 있습니까? 그나마 이들은 더 났다니까요. 싸울꺼리나 있지 않습니까? 안 그렀습니까?’ 소장은 앞에서 끄떡이는 노인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였다.

거의 오후 7시쯤 되었다. 평소 같으면 퇴근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할 시간이다. 정문 쪽으로 가니 차량 두 대가 불타고 있었다. 본관 건물 앞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고 한쪽 벽이 그을려 있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가려고 경찰과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점심때보다 서너 배는 더 불어나 노동자들을 막고 있었다. 노동자도 그때와는 다르게 더욱 많이 늘어나 숫자만큼 거칠게 행동을 했다.

멀리 돌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노동자들 속으로 떨어져 굴렀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각목과 파이프를 든 노동자들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경찰 곤봉과 엉키었다. 어지러운 고함과 각목 부딪치는 소리, 돌 던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주변을 에워쌌다. 몇 미터 앞으로 나아갔다가 몇 미터 뒤로 물러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돌과 나무토막, 종잇조각들과 최류탄 가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변에는 청색 작업복을 입은 젊은 노동자들의 노기 띤 얼굴이 흰 이를 드러내고 정문을 뚫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같았다. 경찰들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노동자들이 빨리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노동자들이 왜 이러는지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단지 경찰들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이나 언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되면 상점의 문을 열고 손님이 오면 문을 팔고 신문을 읽고 일상을 논하는 그들이 타는 듯 한 용접 불꽃 속에서 머리를 박고 온 종일 지내는 그들의 생각을 어찐 안단 말인가? 조선소 밖의 그 어떤 두뇌와 안구 두 알로 그들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단지 분석을 하려고 대들 것이다. 카메라도 그들의 심장이 어떻게 뛰는 보여줄 수 없으며 정치로 논할 수 없다. 이러 저러해서 노동자들이 이렇게 행동을 할 뿐이라고. 그리고 서류철에 상세히 기록을 하고 곧 다른 사안을 들춰 보며 빨리 잊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말이다.

노동자, 하층 노동자는 깨끗한 제복을 입고 근무를 하거나 뱃지를 달고 배를 앞으로 내미는 자들은 함께 어깨를 두른 다는 것을 거창 표어나 포스터 제작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신분이 다르다는 것, 아닙니까? 신분이’ 아니면 ‘차라리 그들의 어깨에 내 손을 올려놓느니 팔을 자르고 말지, 안 그래?’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더러운 패배자 같으니, 사회의 쓰레기나 치우시지, 아니면 쓰레기통이나 만들던가? 저기 꺼지란 말이야! 부랑자 같으니’ 그들에게 생각하는 뇌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뇌가 있기는 해도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찰들 생각대로 화요일 오후는 여느 때처럼 일하고 쉬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날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교대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며, 조선소에는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행하는 연속극이나 보면서 소주를 들이켜야 할 시간에 돌팔매질이라니. 다른 가까운 부산이나 경북도청에서 지원을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는 형편이 되었다. 공장에 밀어 넣어 해산시키란 말이야, 라는 위에 간부들 만에 그렇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노동자들은 마치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양 격렬하게 정문을 돌파하려고 밀집되어 있었다.

야간자까지 차츰 불어 수천이 되어 정문에 모여들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갈수록 커지는 도시의 밤은 여느 밤처럼 넘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할 시간에, 노동자들은 나오지 않고 근처 지방이나 도시에서까지 경찰이 몰려와 진을 짜고 노동자들과 대치하며 싸움을 벌이며 도로를 차단하였다. 경찰차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불타는 승용차와 본관 유리창을 깨고 전단을 날리는 노동자들을 마주 섰다. 시민이 모여들고 방송사 기자들도 최루탄이 터지는 시위현장에 끼어들어 사진을 찍어 댔다. 조선소와 조선소를 둘러싼 도시가 정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과연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올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일이 어디까지 확산 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군인들까지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 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날은 확실히 후덥지근한 낮이었고 밤이 되자 더위가 조금 누그러뜨려 졌다. 시위 현장에 여기저기 군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시 되었다는 소문에 싸움은 더욱 거세게 일어났으며 노동자들은 끝장이라도 보려는 듯 더욱 싸움에 집중했다. 어둠이 내리자 정문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이 차츰 밀려나기 시작해 노동자들이 조선소 밖까지 진출했다.

경찰 책임자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지휘를 하다가 노동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노동자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노동자들은 기세를 몰아 더욱 세게 밀어붙여 도로를 완전히 점거하고 경찰들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대위는 시위대의 중간에서 전체 대오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한편으로 어떤 해방감을 맛보는 듯했다. 경찰이 정문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을 더욱 힘을 내어 위험을 감수하고 돌팔매질과 각목을 휘두르며 소수 혹은 다수가 어울려 밀리는 곳과 밀어내는 곳을 적절하게 움직이며 조정해 가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아침에 대오를 이끌었던 집행부는 싸움이 커지자 어찌 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저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설사 손을 떼지 않았다 해도 이미 노동자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위가 보기에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들도 단지 울분으로 모여들어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권력에 대응해 어떤 실마리를 풀어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의견이나 선동이 있었지만, 돌발적이었으며 싸우는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견도 있었다.

죽여 버려!” 경찰 하나가 노동자들에게 끌려나오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풀어 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군가 달려가며 경찰의 복부를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로 끌려가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말리는 사람보다 너도나도 뛰어들어 주먹으로 갈기거나 방망이로 등을 두드려 댔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외국인 숙소로 쳐들어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노동자들이 깔깔거리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웃어 댔다. 그 웃음소리가 김대위도 웃게 하였다.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같잖은 이야깃거리로 웃는 웃음과 다르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노동자들의 얼굴이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분노로 보이지 않고 흥분된 얼굴이 흥분되어 보이지 않았다. 일할 때의 얼굴은 지친 듯한, 그늘진 표정들이었으나 조선소 밖으로 나온 얼굴의 표정은 일할 때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증명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의무가 아닌 스스로 나와 스스로 싸움의 규칙을 따라 행동하는 무리, 그들은 서로 봐주고 있었다. 누군가 지휘하며 어디를 막고 어디를 치는 것이 아닌, 서로 눈과 입이 되어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뛰쳐나오고부터는 경찰들의 행동이 다소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이미 스스로 이들을 통제하기에는 노동자들이 수적으로나 도심으로 나와 버린 지경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묘하게 애초 도심으로 진출해 뭔가를 하겠다는 의식이 없었던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저항선이 있었기에 집중을 할 수 있었지만, 경찰의 저항선이 뚫려 버리자 목적을 잃어버린 종이비행기와 같았다. 지도부는 없었고 다음 행동에 대한 지침이 멋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내로 가야 한다니까. 이 기회에 우리의 입장을 알려내야 해!” 누군가 외쳐댔다. 그 노동자 말에 여러 사람이 동의했지만, 다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갖추기에는 아직 준비 정도가 미흡했다.

김대위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나에 망설였다. 그저 따라다닌 것 이외에 할 일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 애초 구경을 왔던 거야.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바로 옆의 노동자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도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외국인 숙소 쪽으로 들락거리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멀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뭐해?” 뒤에서 석기가 어느 틈에 다가와 그의 어깨를 쳤다. 김대위는 그를 보니 얼굴에 취기가 올라 있었다.

이 엄중한 판에 술 마셨나?”

정문을 돌파했는데 안 할 수가 있나?” 그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즐거워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되기는 이제 집에 가야지. 퇴근 시간 지났잖아. 조금 있으면 통금이라고. 푸하하하!” 그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김대위는 얼굴을 문질렀다. 주변의 다른 노동자들은 웃지 않고 있었다. 뭔가 상황의 전환을 바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면 김대위 자신이 그들 쪽까지 왔거나 싸움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그럴 수도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매우 큰 사건 같은데, 정회장이 들어줄까?”

위임제를? 모르지. 그러기는 어려울걸.” 그는 잠깐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도 없었겠지만, 웃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 있다 ‘다시 내일 관리자 새끼들을 또 봐야 한다는 게 지겨워!’ 하고 혼잣말처럼 말을 했다.

회사 생활이라는데, 마치 군대생활처럼 하거든.”

정강이도 까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참을 수 없을 때가 잦지, 이 나이에 굽실거리며 삶을 구걸하기가 쉽지가 않지. 여기 노동자들이 여기까지 나온 이유야 많지만, 꼭 뭐 더 달라고 싸우고 있겠나, 그건 장사꾼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지. 인간적 모멸감이 때로는 모든 걸 걸게 만드는 거지. 간부들은 노동자 알기를 사람 이하로 아니까. 쪽팔려서.”

차라리 노가다나 뛰지?”

그러게 말이야. 아는 형님은 그래도 이곳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있자고 하는데 말이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전망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힘들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 일하고 또 일하고, 거기다 사람 뭐로 알고, 계속 억누르려고 하니 말이야. 무슨 돈 짜내는 원료도 아니고, 어떨 때는 내가 개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이제 우리도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나? 염병.”

그것이 바로 인생 아닌가? 책임져야 할 처와 자식이 있다는 것이, 삶의 무게라는 말이지.”

그렇지 이제 삼십 대야, 누가 그러더군 사십 금방이라고.”

한번 둘러보자고, 싸움이 이 상태로 끝나면 안 될 텐데, 달리 할 일도 목표도 없으니.”

김대위와 정석기는 소강상태로 가는 싸움을 둘러보려고 앞으로 나갔다. 노동자들이 진을 짜고 경찰과 대치를 하기는 하지만 전체가 어찌 움직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주변에 생각이 많은 노동자는 차츰 꽁무니를 빼거나 한발 빠져 관망하고 있었다. 이미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김대위가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시간 째 그들 틈에서 돌아다닌 것이다.

정석기는 한 바퀴 돌더니 술을 마시자고 했다. 김대위는 그의 손에 이끌려 가까이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앉았다. 그 안에는 다른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석기는 소주를 시켜놓고 둘이 마시다가 뒷자리 그들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신이 났는지 술을 주고받았다. 김대위가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아예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 슬며시 빠져 나와 바깥바람을 쐬었다.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줄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내까지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김대위가 옆의 나이 든 노동자에게 물으니 그는 아쉽다는 듯 말을 했다.

그래도 오늘 대단한 싸움을 했잖습니까?”

그럼요. 대단하다 말다요, 신났지요. 나도 이런 싸움 4·19때 서울에서 해보고 처음입니다. 새삼 느끼지만 싸움은 숫자 아닌가 합니다. 보십시오, 숫자가 없으며 이게 어디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경찰에게 반 죽었겠죠.”

깡마르고 볼이 움푹 패인 오십은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손에 돌멩이가 하나 쥐여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까?”

먹고 살려고 전국 안다닌 곳이 있겠습니까? 말 같으면 말굽이 서너 번은 닳아 졌을 겝니다.” 사내는 마르고 주름진 볼을 잡아당기며 그의 말을 따라 그의 인생 여정을 더듬어 보는 듯 했다.

조선소 벌이가 괜찮다고 해서 새끼들 데리고 와서 자리 잡으려고 했더니 위임젠가 뭔가로 갈수록 조건이 나빠지니 말이오. 관리자들은 어찌나 위세를 떠는지 우리 같은 나이 먹은 놈들이야 성질 죽이고 넘어 간다지만 젊은 놈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정회장이 다 직영으로 돌려줄까요?”

턱도 없는 소리마쇼. 시내로 가서 누구 하나 죽어야 한다니까요. 확 뭔가를 불살라 버려야 그때야 ‘어이쿠 놈들이 화가 났구나, 달래야지.’ 하는 거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한두 번 겪어 봅니까. 사람이 만 명이 넘는데 오늘 한 3천 모였습니다. 반도 안 되죠. 그렇다고 다 싸웁니까. 더러는 구경하고 따라만 다니죠. 불구경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요구 사항이 이루어 질 리가 만무하죠. 어떤 놈은 되려 역정을 다 냅디다. 경기도 안 좋은데 데모 질을 한다고 말이요. 내 댁이 우리 식구가 아닌 것 같아 말을 하지만, 멋도 모르고 싸우는 놈들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움을 싸움답게 해야지 싸움이 되는 겁니다. 군대 다녀왔으면 알 겁니다. 고지가 있어야 하고 전술이 있어야 하거든요. 딱 짜서 여기까지 치고 가자해야 하는데, 내 생각인데 정말 시내까지 밀고 가서 일을 벌여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있을 겁니다. 안 그래요?”

네 그렇기는 한데.”

싸우다 어설프게 끝내면 되레 당합니다. 경찰 놈들이 내일이며 죄 잡아들일 거요. 망할 자식들, 그나마라도 이렇게 해 줘야 더는 못하겠지만.”

그나마라니요?”

직영에서 위임제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더한 꼴을 볼지 누가 압니까? 나는 장사꾼들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내가 공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설설 기면 아예 간 쓸개를 빼먹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구경만 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가서 돌멩이 하나라도 더 던집시다. 그게 다 남는 거라니까요. 아닌 것 같습니까?”

그러죠.”

김대위는 키 작은 노동자를 따라 돌멩이를 들고 따라갔다. 그와 몇 번의 돌팔매질을 어둠속에 먼발치에 있는 경찰을 향해 했다.

다음에 또 싸운다면 꼭 시내로 나갈 겁니다. 아니 청와대까지요.”

내가 오늘 이 싸움을 따라다니면서 딱 하나 배웠습니다. 아저씨 한 테요.”

뭘요?”

기회가 있을 때, 돌 하나라도 던져 놓아라, 그게 다 값을 할 것이다.”

그러다마다, 여부가 있습니까.”

김대위는 나이 든 노동자와 헤어져 주변을 돌다가 정석기가 있는 자리로 가니 그 자리에 없었다. 취해 집으로 간 것 같았다.

다른 노동자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어두운 거리에 돌과 부러진 나무들, 날리는 종이들만 쓸쓸하였다. 김대위도 거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장딴지도 부어 그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니 다른 동료가 모두 잠에 들어 있었다. 대충 발만 씻고 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다.

김대위와 그 일행은 다음날 아침을 먹고 가방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일이 잠시 중단되었다. 올라오는 와중에 뉴스를 들으니 조선소폭동 사건이 뉴스에 자주 나왔다. 그날 새벽에 경찰이 독신자 아파트에 들어가 수백 명의 노동자를 검거하였다고 했다. 이제는 그날의 해방감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받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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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 1

 

 

1974년 9월 김대위는 그의 동료 여섯과 함께,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삼포 조선소에서 배관 일을 하고 있었다. 한낮의 태양이 예외 없이 내리쪼이는 고통스러운 햇살 아래, 습기 찬 바다 냄새를 맡으며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 푹 묻혀 일만을 하였다. 그는 삼포만을 배경으로 조선소가 한눈에 보이는 조선소 안 서북쪽 야적장에 있는 사무동 건물 옥상 기계실에서 마감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조선과 같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는 조선소 한쪽에서 부드럽게 부는 늦여름 바람을 맞으며 낮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에 은색으로 반짝이는 파이프들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뜨겁게 달구어지는 파이프를 만지는 일이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걸 이어붙이고 보온을 해야 익은 쌀을 씹을 수 있고 발을 뻗고 이불을 덮을 수가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질 무렵 그의 관심은, 일보다 일하는 한 달 동안 느꼈던 조선소 노동자들의 숨겨진 침묵이랄 수 있는, 그것은 일부러 감추지 않으면 자신을 파멸로 이끌 충동적인 분노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애써 감추며 자신을 비웃는 농담으로 드러내거나 정권욕에 자신을 태우는 늙은 정치인이나 영웅처럼 행세하는 장사치들을 비웃으며 현실을 뒤틀고 있었다. 그러하다는 것을 그들이 즐겁게 웃고 있을 때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숨소리와 한탄, 일상의 우울한 화제들, 서로 비추어 보는 시각에서 존경심으로는 털끝만큼도 없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다. 조선소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회사의 로고도 제작 중인 선박들, 용접소리나 기중기 흔들리는 모습, 간간이 들리는 확성기 소리, 라디오에서 들리는 키 작은 위정자의 정치적인 구호와 연초에 일어난 학생들의 국가전복 음모가 아니었다.

늘 조선소에 팽배해 있는 평범한 순간의 일상적인 삶들. 그것이 뭔가? 애절함, 비애로운, 그리고 약간의 웃음과 굳은 얼굴에서 감추어진 분노, 봄에 산에 오르면 겨우내 두터운 낙엽 속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움직임, 그것일 수 있었다. 현장에서보다 숙소나, 술집, 머리를 마주하고 들이키는 소주잔에서 들리는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은 어느 한 날을 집중하는 듯했다. 구름이 꾸역꾸역 몰려들어 바닷가에 한바탕 비가 뿌려야만 무덥고 찌뿌듯한 날씨를 물리쳐버릴 수 있듯,종알거리는 마누라에 싸대기에 울려 붙이고서야 조용하게 쉴 수 있는 하숙집 남편처럼, 뒤틀리는 속을 비우려면 화장실로 달려가 바지를 내려야 하는 법이다.

그날 919일 갈매기 떠다니는 삼포만에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공기가 팽창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고 밀도가 더해가는 느낌이었다. 마시는 습도 높은 공기는 폐 속에 빨려 들어가 몸의 열을 올리고 후덥지근함으로 머리 꼭대기까지 채워 모래를 채운 인형처럼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김대위는 동료들과 안개 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해 작업복을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속이 불편해 화장실을 찾으며 후덥지근한 공기에 하루가 길게 느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휴일 없이 줄곧 일만 해 한계에 이른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서 그럴 게라고 생각을 했다.

김대위는 화장실에 올 때마다 여섯 개 중 중간에 있는 세 번째 화장실에 들어가 일을 보았다. 그는 세 번째 화장실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면서 본능적으로 중간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몇 번을 들어간 그 화장실이 익숙해졌고 저울의 중심축에 앉아 있는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벽에 쓰인 낙서까지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날도 문에 쓰인 낙서를 읽으며 일을 보고 있었다. ‘낙서금지’의 표어부터 욕설, 선데이서울에 실렸을 법한 명언과 현장의 불만이 다양한 글씨체로 아로새겨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김대위가 좋아하는 문구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귀에 솔솔 스며들었다. 소변을 보며 서너 명의 노동자들의 아침부터 풀리기 전의 탁한 목소리로 긴장된 말을 주고받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노동자들이 출근을 막 시작하고 있던 터라 자신들보다 먼저 와서 일하다 용변을 보는 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았다면 섣불리 했을 내용이 아니었다.

굵직한 목소리의 임자가 안전화를 끌며 따라 들어오는 사내에게 오늘 건조부 야적장에서 아침부터 일을 벌일 거란 말을 하였다. 오줌 소리가 두 개로 늘면서 다른 사내도 ‘시발 이번에는 목숨 걸고 다 엎어버리지. !’ 하는 말로 응수를 하였다. 높고 째지는 듯한 웃음이 들리더니 ‘여럿 죽어나가겠군!’ 하면서 신나서 죽겠다는 세 번째 사내가 있었다. 첫 번째 사내는 대충하다가 도망치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로는 이번 싸움에 무슨 전망이 있겠는가, 책임자가 홧김에 나서기는 하는데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김대위는 그 말을 별다른 생각 없이 들었는데, 자신이 바지를 올리고 문을 열고 나가자 셋 사내가 놀라는 눈으로 김대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 셋은 얼굴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놀라는 여섯 개의 눈동자를 보며 김대위도 당황했으나 표시를 내지 않았다. 그들이 김대위를 살펴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인 것을 보고 어색한 웃음을 주고는 주섬주섬 앞섶을 치키고 하나 둘 아침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화장실밖으로 나갔다.

김대위는 밖으로 나와 노동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열을 지어 달리는 길을 따라 자신이 일하는 건물로 올라갔다. 여느 때와 같은 현장이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현장으로 색다르게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노동자들이 그렇고 삼삼오오 모여 걸어 다니는 노동자들이 그랬다. 김대위는 그들의 말로는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설사 무슨 일이 벌어진 듯 그 일은 김대위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곳 조선소에서는 관계가 없는 불려와 일하는 노무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설사라도 났나 봐!” 김노인이 용접기를 끌어다가 작업 준비를 하면서 김대위에게 말을 했다.

“그런 건 아닌데, 속이 좀 부글거려서요.”

“몸이 안 좋아 보여. 얼굴색이 하얗다니까. 지방까지 와서 아프면 열 받는다니까.”

김대위는 노인을 거두어 홀더선을 연결하고 절단기를 가져다 선을 연결했다. 다른 동료들은 준비를 마치고 담배를 하나 물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거나 삼포만 쪽에 수평을 딛고 우아하게 흰 국화꽃처럼 피워 올라가는 해무를 구경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장갑을 끼면서 손가락 끝이 예민해진 것을 느끼고 혀를 굴려 보았다. 몸이 좋지 않을 때면 손가락 끝이 예민해지고 혀의 돌기가 붓고 입 안이 헐었다. 저녁마다 술을 마셔서 그럴 수도 있었다. 음식도 여전히 자신의 입맛과는 달랐고 차가운 하숙방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아침이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공기를 식혀 선선했지만, 몸에서 땀이 조금 솟았다. 노인 말대로 몸살이라도 날 작정인가 은근히 우려가 되었다.

“밤새 잠을 뒤척이더니만, 객지에서 병났나 봐. 화장실에 두 번씩이나 가고.”

마른 얼굴에 눈만 퀭하게 큰 노인이 다부진 어깨를 으쓱 이며 파이프를 발로 돌리며 걱정스럽게 말을 했다. 노인의 곁눈질을 의식하면서 김대위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배가 또 부글거리지 않기를 바랐다. 노인은 파이프를 자르게 하고 자신은 다른 연장을 준비하러 갔다.

김대위는 노인을 도와 일을 하면서 어떤 이미지와 소리가 뒤섞인, 저편의 사물과 소리가 뒤엉킨 느낌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는 애써 조선소에 인접해 있는 바다 쪽 수평선을 경계로 피워 오르는 구름을 보니, 해무를 배경으로 바다를 이루는 물결의 출렁 임들이 자신이 배 위에 있는 것처럼 흔들어 댔다. 바다 표면을 이루는 잔물결들과 떠다니는 물거품들, 어우러져 반짝이는 햇살이 머릿속의 이미지 조각들처럼 점멸을 반복하였다. 멀리 배 두어 척이 가물거리고 그 뒤로 아침 대기는 구름을 위로 끌어올려 푸른 천구를 만들었다.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조선소 철 구조물과 크레인들이 아직은 어색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야릇한 짠 냄새가 조선소에 가득 찬 듯한, 신경을 거슬리는 냄새에 거부감이 일었다. 그 알 듯 말 듯 한 냄새가 머릿속을 빠져나오지 않고 불분명한 모습으로 마음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간간이 각지고 말라 까칠한 얼굴로 용접 불꽃이 쏘아 댔다. 그는 강렬한 푸른 불빛을 피해 눈을 질끈 감았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용접 불똥이 퉁기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김노인이 앞에서 용접하였다. 뭔가 일어날 듯한 이런 날이면 작업에 집중이 잘 안 되었다. 김대위가 아침 땡볕 아래서 과거를 더듬고 있을 때는 늦여름이 더운 기운이 슬슬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노인이 용접을 멈추고 용접된 부분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는 아련하게 가물거리는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거대한 유조선 움직일 수 없는 조형물처럼 바다에 떠 있고 유조선 위로 갈매기 떼가 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하여간 이날 아침은 여느 아침과 조금 달랐다. 바닷바람에 묻어 있는 소금냄새와 녹슨 쇠 냄새, 용접가스가 후덥지근한 공기 중에 섞이어 있고 삼포만에 가득 찬 더운 공기가 위로 솟지 못하고 풍선에 갇힌 듯 갑갑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의 기억은 월남을 떠나는 72년 봄 다낭항구에 머물러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도 설익은 사과를 씹는 듯한 어색한 아침이었다. 출항하기 직전 갈색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바닷바람이 공기를 서늘하게 식혀 주던 새벽에 소녀는 목맨 시체로 갑판에 매달려 있었다. 흰 아오자이를 입은 소녀의 매달린 몸 뒤로 다낭의 신선한 새벽이 한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작은 비명이 들리고 소녀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편이라고 하는 나이 든 한국 노무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울지도 못하고 잔뜩 주름 팬 얼굴로 소녀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갑판장이 달려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멀리 침을 뱉고는 시체를 배에 태우고 출항을 할 수 없다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빨리 치우지 않으면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고 겁을 주었다. 주변에서 안타까워 혀차는 소리와 노무자를 따라온 월남 여인과 친지들의 잔 울음소리가 갑판 위에 퍼졌다.

김대위는 노무자로 월남에서 2년간 일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는 월남에서 숱한 죽음과 여러 삶들, 다양한 일들을 겪었지만, 그날 마지막 푸르게 포물선을 그린 다낭항에서의 소녀와 감색 옷을 입는 노무자만이 기억에 날 뿐이었다. 가끔 늦가을 선선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날릴 때면 어김없이 그날 그 갑판 위의 눈감은 소녀의 처량한 울음소리, 생선 비린내 그리고 검게 탄 노무자들의 동맥 붉어진 이마와 손등, 미제 물건을 산 두툼한 가방 그들을 따라나선젊은 다른 월남 여인들의 울음이 들렸다.

흰 모직 끈에서 풀어 내린 소녀의 검은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가는 목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눈은 두껍게 부어 있었고 지금껏 월남 숲과 들의 공기를 마셔왔을 오똑한 코와 검붉게 살짝 벌어진 입술은 더는 그녀와 인연을 함께 했던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노무자는 숨을 쉬거나 말을 걸지 못할 여인을 들쳐 없어 깍지를 끼고 떨리는 무릎을 세워 힐끗 뒤를 보고 대위에게 가방을 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의 코끝에 콧물이 뭉쳐 주르륵 흘러구두코에 떨어졌다.

가방을 건네주자 대위보다 서너 살은 더 먹었을 법한 사내가 말을 건네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자신은 장례를 치르고 다음 배로 출발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사람이 어지간히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소. 그냥 놔두고 가야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있어야지요. 아기를 가졌거든요.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모르죠. 시발 불쌍한 아입니다.”

노무자의 마지막 말에 김대위는 고개를 끄떡였다.

김대위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부질없는 다 지난 일들이었다.

“뭔 생각이야?”

그의 앞에서 테크를 하고 있던 김노인이 김대위를 삼포 앞바다로 끌어냈다. 용접 면을 내려놓고 다 됐다고 고대를 내려놓고 한쪽 눈을 감고 수평을 보았다. 질끈 감은 왼쪽 눈에 주름이 잡히고 눈 따라 일그러진 입술이 추켜올려지며 벌어져 누런 이빨 사이로 혀끝이 나와 물려 있었다. 노인의 혀끝이 살살 떨렸다. 앞으로 숙인 옷 사이로 붉게 익은 가슴과 뼈가 앙상한 가슴이 대충 가린 작업복 속으로 보였다. 노인은 자신이 작업한 것에 만족하였다.

“대충하자고 너무 잘해주면 다른 놈들 기죽는다니까.”

김대위도 수평을 보았다. 파이프를 타고 가로로 뻗어 있는 줄과 빛의 반사가 일직선으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연장을 들고 다음 파이프가 놓인 곳으로 옮겼다.

건물 옥상에는 김노인과 김대위 말고도 다른 배관공들이 일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용접기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중함마로 용접 부위를 맞추려고 강관을 두들겨 댔다. 한 대씩 칠 때마다 울리는 쇳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이제 익숙해질 만한데 좀처럼 쇠를 때리는 소리는 거슬리기만 하다.

“김대위 들어봐! 뭔 소란이래?”

김대위도 급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짧은 순간 들리는 그 소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듣자마자 머리카락이 치솟았다. 군중들, 격렬함이 느껴지는 긴박한 목소리와 빠른 발음, 머리가 아닌 졸여지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소리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작은 몸을 펴고 재빠른 걸음으로 운동장을 향한 옥상 난간으로 갔다. 김대위도 렌치를 들고 노인을 따라 걸으며 난간으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뭔 일이야. 전쟁이라도 났다는 건가? 아니면 빨갱이 새끼들이 내려왔나?”

김노인이 신난 듯 밝은 목소리로 아래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김일성이라도 쳐 내려왔다는 말이여.”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용접사들도 고대를 던지고 자신들만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잰걸음으로 노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따분하던 차에 좋은 구경거리 생겼네! 그려. 일 때려치우고 구경이나 하자고.”

노인은 몰려드는 젊은 것들을 바라보며 놀리듯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그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떠들어 댔다. 여기저기서 옳다고 손뼉을 쳤다. 난간에 기대에 밖을 구경하는 일꾼들이 일곱 명이나 되었다.

김대위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작업 시작 전에 화장실에서 만났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김대위는 혹시나 조금 전의 그 사내들이 무리 안에 있는지 살펴봤지만, 그들의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작업 중인 건물 아래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공장에서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분노에 격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선창에 의해 동시에 불만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역시 우발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마치 참지 못하겠다는 듯 떠들어 댔다. 그들의 안전화로 시멘 바닥을 힘주어 밟으며 모여들었다.

두 부류가 합류하면서 잠깐 격해 있던 그들의 목소리가 일상적인 대화로 변했다. 중간에서 웃으며 어깨를 치며 농담하는 사람도 보였다. 잠깐의 소통이 이루어지더니 다시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향해 불만을 터트려 이목을 집중하였다. 주변에 흩어져 일하던 일꾼들이 일을 멈추고 무슨 일인가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긴박한 호흡이 얼핏 스치고 지나가 다시 불거진다. 불규칙한 발걸음과 옷 스치는 소리와 흥분된 음성, 뒤엉킨 생각들과 순간순간 변화하는 움직임들, 일정한 패턴 없이 수십, 수백 명이 한 무리 혹은 여러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다 차츰 더 큰 무리를 이룬다. 보란 듯이 모인 사람들이 야적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하여 다른 곳에서 그곳으로 모여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집단은 불규칙하게 모이고 있었지만, 시간대가 일치시키고 있었다.

“뭔 일이 일어났나 뵈.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우리도 일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영감님. 우리도 콱 뭔가 뒤집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맨 끝에 있는 용접사가 오른 무릎을 세우고 가슴을 대고 분노한 노동자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참가를 하고 싶은지 노인에게 동의를 구했다.

“개소리 하지 말고 구경이나 해. 괜히 지방 일 나왔다가 끼어들었다 팔자에도 없는 경이나 치지 말고. 젊은 놈들이 깡다귀 함부로 부리다가 신세 조지는 것 많이 봤다.”

노인은 용접사 청년의 말을 무시하며 핀잔을 주었다.

노인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노인이 손이 가리키는 쪽은 다른 노동자들이 반대편에서 삼십여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다급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과 급한 손놀림, 그들 뒤쪽에서 말리며 따라오는 하얀 안전모의 관리자와 반대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다른 관리자가 있었다. 멀리 본관에서는 경비병 둘이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인가 둘러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또 한바탕 하겠다는 거야. 얼마 전에도 난리를 죽이더구만.”

노인이 어깨를 으쓱 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만이 뭐야? 저기 봐, 이거 농담이 아닌데. 뭔가 일을 벌일 태세야! 느낌이 있잖아, 전하고 달라.”

용접공이 담배를 꺼내 물며 아예 장갑까지 벗고 구경을 하려고 했다. 뒤에서 다른 작업자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함께 건물 난간에 늘어섰다. 더러는 아래쪽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노동자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 죽여 버려요, 엎어 버립시다!”

그의 말에 아래에서 구경하던 노동자들이 손뼉을 쳐 댔다. 노인은 그 말에 말조심하라고 눈치를 주자 그 젊은이는 앞만 쳐다보며 웃었다.

노동자들이 삽시간에 늘어나 이백여명이 되었다. 그들 무리가 모여들어 떠들어 대는 이야기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리가 이미 준비된 듯 집회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몇 사내가 무리 가운데서 만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무리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들의 손짓이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간혹 동조를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보아 거의 책임자급이 되는 듯했다. 서너 곳에서 뛰쳐나온 노동자들이야적장으로 가더니 역시 책임자급 몇과 다른 노동자들이 마주 서 대강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한두 명의 노동자들이 결합하는 모습이 보이고 공장에서 일손을 멈추고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누가 죽기라도 했다는 거야? 월급이 나오지 않았나? 지난번보다 많이 나온 것 같은데.”

“노인이 목에 두른 수건을 잡아 매며 김대위를 쳐다보며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김대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전히 이 커다란 공장에 남자들만 있어서 그래. 여자들도 있어야 좀 부드러운데 말이지.”

노인의 시답지 않은 말에 다른 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른 말들에 더욱 우스운지 옥상에 웃음이 울려 퍼졌다.

“아저씨 우리도 이렇게 구경만 할 게 아니라 한판 붙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데모하면 노가다 아닙니까? 이럴 때 한풀이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친구들이 반 농담삼아 그 말에 주먹을 쥐고 흔들기도 하고 손에 쥔 공구로 난간을 때려 댔다.

“미친 새끼, 아주 영창을 가고 싶어 환장했구나. 삼포까지 와서 영창 갈래. 남의 싸움에 잘못 나섰다가 다 뒤집어쓰면 지하실 끌려가서 반 죽어. 올 초 박통이 데모한다고 대학생 새끼들 잡아다 사형시킨 것 몰라? 데모 주동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아직 철따구니가 없어 모르지? 한진 방화사건 몰라. 죽어, 뒤진다고 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할 만하니까 하는 거야. 닥치고 구경이나 해.”

노인은 그 풍부한 삶을 바탕으로 손짓해가며 설명을 해있는 사이 야적장 노동자들이 본관이 있는 건물로 방향을 잡았다. 김대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 수평선을 딛고 해는 잔뜩 떠올라 있고 갈매기는 흩어졌다가 모였다 점점이 나르고 있었다. 본관으로 몰려간 노동자들은 전체보다 한 무리밖에 되지 않지만, 조선소 대부분에 소식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쪽 조립공장에서 용접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공장 노동자들이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고 있을 터이다.경비들이 나와 늘어서서 그들을 막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경비들과 몇 번 승강이를 벌이다가 밀쳐내기 시작했다. 경비 두어 명이 멱살이 잡혀 옆으로 내동댕이쳤다. 한두 명은 겁을 먹고 옆으로 물러났다. 그들이 더욱 밀착되어 본관으로 들어가고 경비들이 모여 난감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은 마치 굴속에 빨리어 들어가듯 사라져 버리고 거대한 공장을 이루는 조선소에는 삼포만에서 불어오는 실바람만이 쓸고 다녔다. 갑자기 소란이 사라져 버린 곳에 쓸모없는 바람만 남아 잔상처럼 남은 분위기를 지우려 애쓰는 것 같았다. 노인은 상황이 끝난 것을 선언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구경거리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일을 하려고 난간에서 젊은 일꾼들을 떼어 각자의 자리로 가게 하였다.

“난 한바탕 한다고. 조선 놈들은 항상 용두사미라니까. 목소리야 제일 크지만, 막상 상대 앞에 서면 잔뜩 주눅이 들어 버리고 말거든.” 노인은 마치 진리를 위치 듯 걸걸거리는 웃음과 침을 튀면서 자신이 얻은 개똥철학을 들려주었다.

옥상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일하였다. 노인은 4·19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도시락을 찰랑거리며 가고 있는데, 데모가 여느 때보다 더욱 심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 보니 반쯤 나온 사람들도 일하지 않고 죄 집으로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데모를 하러 가는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날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바보스러워 보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상은 말이야 참 묘하거든. 언제 데모가 끊어진 적이 있나? 그래 대위도 알다시피, 삶과 데모는 늘 역사와 함께 하는 모양이야. 박대통령이 별짓을 다 하지만 데모는 막을 수가 없어. 지금도 서울대에서는 데모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군. 자네들도 뉴스를 봐서 알겠지만 말이야. 공산당들의 장난이 있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거든. 그나마 데모를 하지 않는 족속들이 있다면 노가다들이지. 아니 전혀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워낙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여서 했다 해도 하나마나야. 곧 모래처럼 흩어지고 말거든. 아무 소득도 없이 말이야. 노가다는 공산당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단 말이지. 우린 돌아다니면서 많은 구경을 하고 가끔 참견도 하지만 역시 우리 노가다는 데모와는 거리가 멀어!”

“아저씨도 농담은? 몇 년 전에 한진 상사에서 데모한 것은 뭡니까? 화끈하게 사무실에 불을 질러 버렸잖아요.” 노인의 눈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을 것 같은 애송이 용접사 녀석이 반론을 제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요. 아저씨 말대로 길게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 노가다 판에도 데모가 언제 일어나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아마 데모하면 노가다판이 제일 많이 할 겁니다. 현장 밖으로 나오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노가다 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데모를 하려면 말이야, 보통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요?” 깡마른 봉천동에서 내려온 사내 말에 다른 사내들도 그의 말에 손뼉을 치며 동의를 했다.

“그게 깽판이지 데모야, 데모는 홧김에 하는 게 아니거든. 데모답게 해야지. 아까 봤지? 좍 모여서 작당을 한 다음에 질서정연하게 한곳으로 몰려가는 것. 제게 그냥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준비 많이 해서 하는 거야. 지금 다른 놈들 구경하는 것 같지만, 그쪽으로 온통 신경이 몰려 있거든. 김대위 안 그렇겠어? 마치 군사 작전을 하는 것처럼 말이야. 다 군대 다녀왔잖아. 싸움을 못해서 안 하나 뒷감당을 못하니까 안 하지. 내가 보기에 작당을 한 놈들이 더 되는데 대충 가려서 일단 쳐들어가 항의만 하고 나머지는 상황을 봐서 결합하려고 눈치를 보는 거야. , 주변에 어디 일하는 놈 있어. 지금 들어간 친구들 거반 이백 명 쯤 되는데 그들이 뭐하나 신경을 쓰는 거란 말이지. 내가 현장 소장에게 들었는데 아마 위임관리젠가 하는 것 때문에 데모를 하는 것 같아. 쉽게 말해서 공장에서도 하청을 주겠다는 데 남들 한 1년 하는 것 보니까 생기는 게 없더란 말이지. 상여금이 있나! 퇴직금이 있나? 도급을 많이 해 봐서알잖아. 그게 불만이거든. 안 그래? 직장 잘 다니다가 우리처럼 일당쟁이 비슷하게 되면 돌아버리지. 그렇다고 우리처럼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일을 열나게 하고 몸은 회사에 소속되어 이상한 처지란 말이지.”

“아이들 데려다 놓고 장난치는 거지.” 난간에 기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정회장이 보기에 돈을 조금 덜 들이고 일꾼들 조금 조여 먹겠다 이거지. 그냥 직영으로 돌리면 일이 눈에 안 차나 보지. 우리도 직영은 일 대충 하잖아. 야리끼리 주면 죽을 둥 살 둥 하는데 말이야. 노가다 판에서 대기업을 일으킨 정회장이 그걸 모르겠어?”

“아저씨 그거 근거 있는 말입니까?”

“대충 그렇다는 거지. 내가 그거 알면 국회의원 해먹지. 망할, 우리도 이제 대충 게기고 일이나 하자고. 이 사람들 어찌 됐든 우리보다는 나은 사람들이니 말이야.”

김노인이 먼저 일어나 담배를 구겨 던지고 일하던 곳으로 오니 다른 이들도 따라 각기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위는 다른 친구들 두 명과 구석에 있는 깡통에 소변을 보고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임시로 쳐논 포장이 바람에 펄럭이며 그림자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김노인은 도면을 보고 다음 갈 길을 자로 재보았다.

“대충 하다가 상황 봐서 들어가 버리자고. 괜히 남의 일 커지는데 젊은 놈들 얼떨결에 휩쓸리다가 사고 치면 골치 아프니까. 오전이나 했으면 좋겠구먼.”

“뭔 소리 들었어요?”

“내가 이런 것 한두 번 겪었겠나? 딱 보면 알지. 술집에서 건조부 친구들 하는 말을 들으니 불만이 보통이 아니야. 다음 주면 자신들도 일당쟁이 되는데 눈깔이 나오지. 당장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더구먼. 회사에서 이런 분위기 모르겠어. 대충 일어나면 콱 패버리겠다, 이런 심산이 있겠지. 긴급조치 시대 아닌가? 법보다 무서운 것 있어. 지하실에 끌려가면 반 죽는다고 보면 되는 세상 아닌가.”

노인은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척을 했다. 한 생을 살면서 전쟁을 겪고 4.19혁명과 5.16을 겪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원리쯤이야 할 법하다.

“속은 괜찮나?” 노인은 생각난 듯 물었다. 선박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보니 속에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 쪘다. 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까지 즐겁게 느껴졌다. 어깨가 풀리고 다리도 가벼워진 듯하다. 가슴이 조금 흥분이 된 듯하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월남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이후 행동과 일어날 일들이 여러 가지로 짐작이 되었다.

“조선 놈들은 셋만 모이면 작당을 한다니까.” 노인은 헐렁한 웃옷의 목덜미에서 거북이 목을 쑥 내밀어 젓듯 머리를 빼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노인은 짧은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어 위로 올려 힘껏 펴자 뼈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더니 허리를 굽혀 고대를 잡아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월남에 갔다 왔다며?” 노인이 김대위가 월남에 다녀온 것을 들은 모양이다. 노인은 면을 만지며 쓰려고 하다 물어보았다. 그의 흰 머리가 태양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붉은 녹이 흐르는 미완성된 배가 보이고 거대한 크레인의 사슬이 풀리고 있었다. 흰 구름이 부챗살로 퍼져 하늘을 덮고 갈매기들이 아련하게 공장 지대를 출렁이며 선회하였다.

“거기서도 작당을 했나?”

“아저씨도, 노동일 하는 놈이 작당 안 하면 어디 배길 수가 있나요. 그나마 작당하고 뒤집어엎어 대니 그나마 숨통이 열리는 거죠.”

“김대위, 계급이 대위가 아니라 데모를 하도 해서 대위라고 불리는구먼. 엄청나게 해봤는가 본데.”

노인이 면을 올리고 김대위와 파이프를 올려 임시로 때우기 시작했다. 파란 용접 불꽃이 두꺼운 소리를 내며 울어대고 쇠를 잡은 손에 미세하게 가벼워지며 파이프가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두어 방 더 지지자 손을 슬며시 떼어보니 파이프가 매달려 있다. 용접 가스가 올라가며 메케한 냄새를 풍겼다.

“내가 4.19혁명 때 이화장에 갔는데, 뭐 달리 무슨 데모를 하러 간 것은 아니고 그냥 젊은 혈기에 휩쓸릴 거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이승만 동상을 쓸어 뜨려 목에다 줄을 달고 끌고 다니는데, , 그것참 나는 못하겠데.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런 게 데모구나 싶더구먼. 꼭 누가 보고 있다가 잡으러 올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네는 그때 뭐했나?”

“뭐하기는요. 시골에서 소나 치고 그랬죠. 동네 어른들이 이박사 물러났다고 해서 알았죠.”

“데모를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데. 다 옛날 일이지.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말이야. 각하께서 성깔이 보통이 아니라서. 자기도 총으로 정권을 잡아서 그런지 안 뒤집히려고 독하게 하나 봐! 여차하면 지하실로 데려고 반 죽인다더군.”

노인이 눈을 흘겨 주변을 살피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지나가는 말로 뇌까렸다. 다시 앞으로 나가면서 경비실 쪽을 보니 경찰들이 보였다.

“짭새가 떴네요.”

김대위가 고대를 옮기다 말고 말을 하니 노인도 면을 벗고 그쪽을 보았다. 노인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혀를 끌끌 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대위가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더니 식당 안이 평소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가 정문에서 경찰과 대치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마주 앉아 있는 식탁에 작업복에 녹가루가 잔뜩 묻은 어깨가 쩍 벌어진 노동자가 밥 두 공기째를 먹으며 오전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심한 강원도 사투리에 표현이 감정적이어서 신경을 써서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곳이 있었다. 반주도 걸친 듯 술 냄새가 났다. 오늘작정을 하고 붙을 거란 말과 경찰의 멱살을 잡아 패대기를 쳤다는 말 둥, 오늘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영락없이 일당쟁이 노동자로 전락하고 만다는 둥 말이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어 다녔다.

김대위는 밥을 대충 들다가 본관 쪽으로 나갔다. 경비들과 경찰들 때문에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상황을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경찰과 노동자 간에 고성이 오가고 양쪽이 흥분해 있었다. 태양은 중천에 떴고 그늘로 피할 때가 없었다. 술을 마신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얼굴이 붉게 물들어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경찰이 왜 참견을 하느냐고 항의를 하였다. 경찰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비실 웃으며 상대를 하지 않았다. 명령만 떨어진다면 당장 뛰어들어 몽둥이를 휘둘러 쓰러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사람 그림자까지 땡볕에 타들어 가고 간간히 구름이 태양을 가려 그나마 순간이나마 뜨거움을 잊게 해 주었다. 벌써 서너 번 몸싸움했는지 주변에 쓰레기가 널렸고 잔디와 관상목 가지들이 부러져 있고 흙더미가 뿌려져 있었다.

“회사와는 이야기가 잘 됩니까?”

김대위가 이십대 초쯤 되는 노동자에게 다가가 슬며시 물어보았다. 사내는 내리쬐는 햇볕으로 진한 눈썹을 찡그리며 김대위를 훑어 보았다. 그가 외지에서 온 노동자임을 알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왠 걸요. 택도 없어요.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지요. 피 맛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뭐가 문젭니까?”

“다음 주부터 직영을 그만두고 하도급하라는데 죽으라는 말이죠.”

사내의 말에는 근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눈은 오늘 싸움이 아니라 다음 주를 보고 있었다. 오늘 싸움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 같지는 않았나 보다. 앞에서 고함이 나고 누군가 경찰에게 뛰어들어 발길질하였다. 몇 명의 노동자들이 경찰과 엉겨 붙어 몸싸움하다가 떨어졌다. 그때 본사 건물 쪽에서 회사원 간부인 듯한 사내가 화가 나서 뭐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격분한 노동자가 그에게 손가락질하면서 고함을 치자 그가 손목을 치우라고 버럭 소리를 쳤다. 관리자의 희고 가는 손이 손톱에 때가 낀 검붉은 손을 탁하고 쳤는데, 생각보다 세게 부딪쳤다. 김대위가 그 장면을 보는데 마치 자기 얼굴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울컥하는 기분에 손을 내밀며 ‘저 개자식이’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왔는데, 그 목소리는 흥분한 다른 노동자들의 욕설에 묻히고 말았다. 관리자도 성깔이 보통이 아닌지 어디서 욕을 하는가 맞대응은 하면서 멱살을 잡는 노동자의 가는 멱살을 맞잡고 끌고 본관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다른 사무직 관리들이 함께했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김대위도 덩달아 흥분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하며 달려가려는데 다른 노동자들이 더 빨리 그곳으로 덤벼들 듯 뛰어들었다. 경찰들도 상황을 알아차리고 노동자들을 막고 밀쳐내기 시작했다. 김대위가 막 경찰 있는 곳에 뛰어들려는데 뒤에서 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철호!”

뒤를 돌아보니 경찰에게 달려가는 노동자들 틈에 꺼 부정한 키에 바짝 마른 얼굴이 웃고 있었다.

“하야, 정석기.”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는 월남에서 함께 다리 공사를 따라다니며 일을 했던 용접공이었다. 조선소에 와 있는 줄은 몰랐다. 깡마른 체구에 훤칠한 키가 더욱 커 보였다. 짧게 깎은 머리가 나이보다 더 젊게 느껴졌다. 둘은 뛰어드는 노동자들을 피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둘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노동자와 경찰, 뒤엉킨 사무직 관리자들을 보다가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중동에 품팔이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에 뭔 일이야? 작업복을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아닌가 본데. 노가다 뛴다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인데.”

“이 사람아 중동도 그냥 가나, 뭔가 배워야 나갈 것 아닌가.”

“그래서 그때 용접이라도 제대로 배우라고 했잖아. 빈둥거리며 이것저것 따라 다니까 제대로 된 기술이 하나 없잖아. 그래 제수씨는 잘 있나?”

“잘 있지. 사실 그것 때문에도 나가는 것을 미루고 있어. 두어 달 후에 애를 날 것 같거든.”

“이 사람 그런데 지방생활을 하고 있으면 되나? 제수씨 고생하게.”

“글쎄 말이야.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돈도 벌어야 하지 않나.”

“천하의 김철호가 돈 때문에 쓸려 다닌단 말이야. 그게 말이나 돼. 제수씨가 그렇게 만들었나 보군.”

“근데 석기, 자네는 언제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나?”

“월남에서 온 후로 줄곧 여기에 있었는데, 나도 때려치우고 중동이나 나갈까 생각 중이야. 처음에는 좋은 줄 알고 들어왔는데 갈수록 보다시피 이 모양이네. 차라리 한몫 잡으려면 중동이 나을 것 같아.”

둘은 경비들과 싸우다 떨어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무 그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지난 일들을 나누었다. 정석기도 그렇고 김대위도 이제 서른두 살이 되었다. 정석기는 김대위보다 일찍 장가를 가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김대위도 석기에게 용접을 조금 배웠으나 기술자라기에는 부족하였다. 월남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 일을 했으나 신통치 않아 중동을 가려고 다시 용접을 배우려고 배관사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철호 자네도 팔자가 딱 정해져 있는가 봐! 여기 데모를 하니까 어기적거리면서 찾아오고 말이야. 누가 데모꾼 아니랄까 봐.”

“이 사람아 내가 무슨 데모꾼이야. 옛날에 내가 아니야, 먹고 사는 데 충실해. 나도 이젠 조만간 아빠가 되잖아.”

“그래 그럼 틀려야지. 그런데 자네도 모르게 이곳에 왔잖아.”

“근데 이거 해결 안 되는 거야.”

“모르긴 해도. 아마 해결 안 될 거야. 이미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상당 부분 도급제가 됐는데, 지금 되돌려 주겠어. 정회장이 직접 내려와서 오케이 해야 하는데 하겠냐고. 그럴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지. 정회장은 한번 움켜쥐면 놓는 법이 없는 양반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다른 사람들은 정회장이 자신들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면서 철석같이 믿고 있더라고. 그걸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니 말이야. 아마 이 정도 시끄럽게 하고 있으면 내려오기는 하겠지. 오늘 오후에 온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모르지. 한판 붙을 것 같아. 모든 것이 정회장에게 달렸겠지.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어려워.”

“난 일찍 도망쳐야겠네.”

“그렇게 하라니까. 제수씨 고생 좀 덜하게, 이 사람아. 이젠 자네도 애 아버지야. 홑몸이 아니라고. 그나저나 애 낳고 백일 때 물러나도 한 번 올라가 보게. 서울에 있을 때 두어 달 신세를 졌는데. 근데 몸은 어디서 풀 건데? 처가가 광주 아니던가?”

“글쎄 그냥 서울에서 애를 낳겠다는데. 알아서 하겠지.”

“처가 가기가 마땅치 않으면 이곳에 내려오시라 그래. 우리 집에서 몸 풀면 되니까. 그간 신데도 갚을 겸. 자네도 여기서 일하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하겠어?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데.”

“그 성질 내가 잘 알지. 저기 가서 차라도 한잔하자고. 내가 특별히 가지고 다니는 커피가 있으니. 커피는 월남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여기 커피는 워낙 쓸데없어서 말이야.”

석호는 철호의 손을 이끌고 자신이 일하는 조립공장으로 갔다. 그들 뒤에서는 경찰과 노동자 간에 고성이 오가며 욕설을 해 댔다.

“사람이 더욱 많이 모이고 있는데, 정회장이 오기 전에 일이 터지겠어.”

“자네는 신경 끄라니까. 한번은 터지고 말일이야.”

흥분한 노동자들이 더러는 달려오기도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이고 있었다. 오른쪽 멀리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격렬한 함성이 들리기도 했다. 공장은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함성을 지르며 뛰어가면서 ‘백 바가지 죽이자!’ 소리를 쳤다.

“형님 안 나가요. 철구공장에서 붙었다는데요.”

조립 공장으로 오니 이십 대 초쯤 되는 노동자가 나가면서 석기의 어깨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밖을 둘러보았다. 말투에 다정함이 묻어 있는 절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청년은 은근히 꼭 함께 같으면 하였다. 팔을 잡고 끌려다 김대위가 있는 것을 보고 멈칫거렸다. 이마에 땀이 송글 거리고 진한 눈썹이 움직이며 싸움에 들떠 있었다. 까만 눈동자가 스치면서 김대위의 눈과 마주쳤다. 당신은 누군가? 하는 눈빛이었다. 그의 부탁이 무색하게 기석은 웃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싸우기는 임마, 이 나이에. 난 몇 년 만에 월남 동기를 만났으니 차 한잔해야겠다.”

“형님이 가서 그 큰 주먹으로 짭새들 면상을 한 대 쳐야 될 것 아닙니까?”

자못 아쉬운 마음이 있어나 보다.

“옛말이다. 죽어지내는 것이 장땡이야. 이제는 너희들이 한바탕 해야지.”

“경찰이 더 몰려온다는데요. 군인도 온다는 말이 있어요. 이번에 밀리면 십 년은 죽어지내야 해요.”

“알았어.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이 친구와 차 한잔해야 하니까. 일단 먼저 가 있으라니까.”

“알았습니다. 나중에 오세요. 일 생기면 연락할게요.” 청년은 다른 동료와 본관 쪽으로 달려가고 철호는 석기가 타 주는 차를 들고 공장 한켠에 앉아서 지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월남에서 오래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동안 주변의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밖에 일어나는 일을 구경하거나 서로 농담하며 웃었다. 싸우는 곳을 둘러보고 와서 진행과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그 자리를 빠져 퇴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많으니까, 구경하는 사람도 많고 싸우는 사람도 많고.” 김대위가 주변을 살펴보며 말을 하자, “놔둬. 다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다 들고 일어나 싸우면 혁명 일어나지, 안 그래? 똑같은 처지라도 불만 있는 놈 있고, 감지덕지하는 놈 있는 거 아니겠어. 또 애초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놈이 싸울 일 없는 거 아니야. 전쟁하면 별다르겠어. 다 똑같아. 오늘 일은 완전히 종 쳤구만. 나도 대충 구경이나 하다가 퇴근이나 해버릴까. 저 새끼는 왜 근데 저리 큰 소리로 웃는 거야. 미친 새끼.” 기석은 키가 작고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내를 보고 짜증스럽다는 듯 말하고 침을 뱉었다. 마치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고 할 일 없는 놈이라고 탓하며 빨갱이 자식들이라고 하는 말이 그곳까지 들렸다.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휴식시간이 끝나 오후 일을 마치고 만나기로 하고 둘이 헤어져 김대위는 자신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현장 사무실에는 1시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소장까지 빙 둘러앉아 있었다. 소장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옛날 데모하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손을 펼쳐보이며 소리를 지르고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항의를 하며 싸우는 광경을 신나게 떠들어 댔다. 더러는 그의 손끝을 쫓으며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두어 명을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성남에서 내려온 박씨는 화투 패를 떼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남는 시간에 화투라도 쳤으면 하지만 현장상황이 복잡해 그럴 여유가 없어 보였다. 소장이 다른 사람들 붙잡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 조금 지켜보다가 일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 돌려보내려고 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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