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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30
    중동에 간 사나이 3
  2. 2009/04/04
    중동에 간 사나이2

중동에 간 사나이 3

김대위는 아기를 안고 가는 처 조영희를 보고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들을 태운 택시는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 만나야 할 여러 인물이 순서 없이 하나씩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있을 할머니와 주변 인물들, 거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손을 내밀 하얀 손들이 눈에 선했다. 할머니는 사형제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할머니는 늙은 입을 오므리며 ‘내 가문의 자식들, 내 새끼들’을 부르며 가족들을 보듬어 안곤 했다. 특히 김대위의 아버지는 셋째였지만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날 할머니가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69년 7월 16일 장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있는데 아폴로 11호를 발사하는 순간이 중계되고 있었다. 아버지 형제들이 장례 결산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 방에서 큰어머니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리고 사색이 된 채 할머니가 혼절하셨다고 말을 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로켓이 홀로 날아가고 형제들이 모두 할머니 방으로 몰려가 의사를 부르고 물을 떠다 얼굴을 씻기고 팔다리를 주물러 댔다. 김대위는 인류의 꿈을 싣고 떠난다는 로켓을 보면서 아버지가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착각이 들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머리를 식힌다고 아버지는 장자를 읽고 계셨다. 아버지가 마지막에 무엇을 펼쳐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회사일로 머리가 꽤나 복잡하셨던 모양이다. 장자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그랬을 수 있으나 장자가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할머니 말대로 명이 거기까지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 초상 앞에 차를 올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김대위가 월남에 가기 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초상에 향을 올렸으나 월남을 다녀온 후로는 차를 올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우주론은 불교에 가까우셨다. 우주는 다른 우주에 싸여 있다고 믿으셨다. 그 우주는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 싸여있고, 언젠가 어렸을 때 그 말을 들을 때 양파가 생각났다. 김대위도 아버지에게 누구나 한번은 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 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어요?’ ‘우주가 있지.’ ‘그 끝에는 요?’ ‘그 끝에 어떤 놈이 서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군가 있지 않겠냐?’ ‘하느님이요?’ ‘글쎄다.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우주가 별 탈 없이 운행을 하겠지.’ 김대위는 그 말이 거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농담인지 알지를 못하였다. 아버지는 소탈하시고 웃음도 많고 농담도 잘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다. 사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많았다.

 

강변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길 따라 피었고 갈대숲이 파랗게 새순이 올라 햇살 아래 반짝거렸다.

“날이 제법 풀렸군. 한해가 벌써 이렇게 가다니 믿기지가 않아, 세월이란 참!”

김대위는 머릿속을 지우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아기의 발을 만져 보았다. 손톱 때가 끼어 있는 손으로 보송보송한 아기 발을 문질렀다. 두꺼운 털실로 만든 양말 안에 있는 아기 발이 느껴졌다. 처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곤색 줄무늬 양복을 입는 남편이 어쩐지 촌스러워 보였다. 짧은 소매에서 나온 앙상한 팔목 뼈가 마음에 걸렸다. 여자 손톱처럼 긴 손톱들과 손톱 아래 낀 기름때와 햇살아래 더욱 선명한 손등 피부주름에까지 기름때가 스며들어가 거뭇거뭇해 보였다.

김대위는 마른 손바닥으로 아침에 나오면서 면도한 턱을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왜요?”

“아니야.” 김대위는 손가락을 비비며 엄지손가락을 이빨 사이에 끼어 물어뜯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삶의 길, 그리고 자부심과 열등감,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있지도 않지만 어쨌든 의식하지 않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작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해 차라리 멀리 떨어져 그저 짐작만 하고 있기가 편하기는 했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기가 잠을 자면서 발을 움찔거렸다. 영희가 아기를 가슴에 안으며 이불을 감싸 아기 얼굴을 덮었다.

차창 밖은 삼월의 훈훈한 봄바람이 불면서 길옆에 핀 개나리들이 노란 화단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지난번 월급은 아직 안 나오나 봐요?”

영희는 아기를 만지며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던지고 김대위 안색을 살폈다.

“이번 주까지 준다고 했으니까? 이번에 안주면 똑 한바탕하러 가야지.”

“또 싸워요?”

“이게 다 삶이야. 안주면 싸워서 받고, 또 일하고, 또 싸우고. 기사 아저씨 안 그래요?”

그 말에 기사도 얼굴이 펴지며 금색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라디오 소리를 줄이더니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죠. 싸움 많이 했죠. 저도 공장 다니다가 월급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 짓 지겨워 이거 한다 아닙니까. 한번은 석 달째 못 받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는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작당을 했다 아닙니까. 그래서 다음날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대표로 말하기로 한 놈에게 눈짓을 주자 공장장 앞에서 공구를 바닥에 냅다 던지면서 당장 돈 내 놓으라 말이야, 하고 소리를 치며 한바탕 했지요. 그게 신호가 되가지고 우리도 덩달아 연장을 집어 던지고 공장장 앞에 모여들었는데 구경하던 다른 놈들까지 우르륵 모여 들어서 나중에는 우리가 다 겁이 나더라니까요. 덕분에 한 번에 해결되고 짤리기는 했지만.”

김대위보다 서너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사내는 그 마음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이 끊이지 않았다. 기사는 말을 마치더니 흥얼거리며 자신의 추억을 떠 올리며 가끔 히죽거렸다.

김대위는 고개를 끄떡이며 바지 주름을 잡고 구두를 손으로 문질러 먼지를 쓸어 내렸다. 나오면서 닦았는데 금세 먼지가 내려앉았다.

“영 불편 하는구먼.”

“그래도 잘 어울려요.”

“그냥 작업복 입고 아무 곳에나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업복이 제일이야. 평상복차림으로 올걸 그랬어.”

양복이 싫다는 것을 영희가 억지로 입혀 마지못해 투덜거리며 옷깃을 당기거나 웃옷 단추를 풀었다가 다시 채우곤 했다.

“아기가 잠을 아주 잘 자네.”

김대위가 이불을 살짝 들쳐 새근거리며 자는 아기를 쳐다보았다. 이제 막 백일 지난 아기는 첫 외출인데 잠만 자고 있었다. 영희는 아기가 잘 보이도록 팔을 느슨하게 풀어 아기 얼굴이 드러나도록 했다.

“낮에야 그렇죠.”

아기를 쓰다듬는 처 손가락이 뽀얗게 살이 올라 있었다. 아직 붓기가 다 가시지 않아 볼이며 가슴이나 다리가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어디 가시나 봐요?”

기사가 거울을 흥얼거림을 멈추더니 따분한 눈으로 물었다.

“예, 잔치가 있어서요.”

“부모님인가요?”

“아니요. 큰 집이요.”

기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김대위가 말을 해준 한남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한강을 빠져나가려다 승용차 속도가 조금 더디어 졌다.

“뭐가 하나 또 간 모양입니다.”

강변을 내려다보며 기사가 혀를 끌끌 찼다. 그가 쳐다보는 아래 갈대밭에 경찰과 일반시민 서넛이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그 모습을 보고 대충 그게 뭔가를 알았다. 강변에 죽어 있는 시체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 사이로 언뜻 가마니가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 뭐합니다만, 꼭 저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안 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저것 어느 공돌이나 공순이가 저렇게 되었을 겁니다. 십중팔구 말이죠. 시골에서 어지간히 올라왔나요. 아마 하루에도 저런 것 서너 구는 발견이 될 겁니다. 내 짐작인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법이 있겠습니까? 뭐가 있겠습니까? 어린 것들이 싸구려로 팔려와 공장에 뿌려놓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시키는 세상인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한강에 왔다가 뭐가 잘못돼서 저런 일 생기는 거고, 아니면 살기 빡빡하니까 스스로 저리 했을지도 모르고요. 한두 번 봐야지요.”

기사가 처와 김대위 안색을 살펴 가며 떠들어 댔다. 김대위는 뒤로 서서히 물러나는 갈대숲의 광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문이 커다란 저택 앞에 서고, 김대위 부부가 택시에서 내려섰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이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집 주변에 잘 닦인 승용차들이 반짝거리며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앞마당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숲처럼 울창하게 서 있고 열 살 전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3층짜리 주택 입구 현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내 서넛이 김대위를 가족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모두 사촌들이었다. 김대위는 다가서서 그들과 악수를 하고 어깨를 잡아 안았다. 영희도 따라와 고개인사를 하였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혈색이 좋지 않으니 고생이 많다고 인사들을 건넸다. ‘고생이라고’ 김대위는 큰 사촌형의 인사성으로 던진 말이 귀에 걸렸으나 웃어넘겼다. 그저 인사일 뿐이거니 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상을 구길 필요도 없고, 사촌들끼리 모였을 때 말다툼하지 말라고 영희가 신신당부했었다. 특히 영희의 의견에 의하면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었다. 사실 종종 종교와 정치적인 의견으로 감정까지 상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이들 집안에서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는 중요했다. 김대위에게 정치적 입장은 종교 못지않는 중요한 문제였다. 다른 사촌들은 별 관계가 없으나 아버지 형제들과의 의견 차이는 너무 크고 종종 다투어 버릇이 없는 놈이나 뭘 모르는 이상한 종자로까지 치부되어 있었다. 김대위에게는 아버지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가급적 집안 행사에 참여를 하지 않고 따로 겉돌고 있으나 늘 그럴 수는 없었다.

주택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이 나오고 큰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처의 손을 잡고 아기를 안아 들었다. 김대위는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뒤를 따라 나오는 큰아버지와 그의 사촌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받았다. 한쪽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조카들이 2층에서 내려오다 마주치자 인사를 하였다. 열댓은 될 그들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다. 머리를 뒤로 넘기고 쪽을 틀었고 마르고 붉은 볼과 총명한 눈이 반듯한 코가 인상적인 모습 그대로 늘 당신에게는 아기인 김대위를 반겨 주었다.

“오, 어서 오너라! 그 아기를 안고 싶구나, 어서 다오, 어서! 아이구 내 새끼.” 하며 김대위의 손을 잡고 큰어머니에게서 아기를 건네 안아 볼을 비볐다. 절을 하겠다고 하자 손을 내치며 병중에 인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거절하였다. 병중이긴 하나 아직 목소리가 맑았고 분명한 발음을 했다.

“그래 백일을 잘 지냈니? 집에서 식구끼리 했다고 조용히 했다고 하더구나?”

“예.”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 너의 성격이 곧아서 문제다. 내가 그래서 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야. 세상이 그렇게 내 뜻대로 된다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이 놈 눈 봐라, 어이구 발질하는 것 좀 봐, 이놈도 한 성질 하겠는 걸.”

김대위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할머니가 사촌 동생을 통해 선물을 전해 주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처는 부엌으로 불려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노인은 자는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며 나머지 가족들을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김대위는 다른 사촌들에게 이끌려 다른 방으로 가서 술자리에 앉았다.

“월남이 오는 여름을 못 넘긴다는군.” 이미 노인의 얼굴이 완연한 큰아버지가 그의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월남이 문 닫으면 죄 중동으로 몰리겠군. 이 불경기를 이겨내려면 말이지. 지금 중동만한 시장이 없잖아요.” 둘째 큰아버지가 말을 받았다. 그는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업자였다. 형제 중 가장 키가 컸고 말랐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둘째 큰 아버지는 계산에 밝았고, 이기적이란 말을 들었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그 말은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늘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거기서 기름 캐다가 팔아먹으면 돈 좀 되겠네요.” 작은아버지가 짧은 목을 더욱 짧게 감추며 머리를 흔들어 대며 즐거운 듯 키득거렸다. 김대위는 담담하게 쳐다보았지만, 가끔 어떤 일로 그가 떠오르면 그 특유의 웃음이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정보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빛나고 뭔가를 끊임없이 추궁하는 듯 한 야성적인 속성이 넘치는 사내였다. 가끔 김대위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일삼는 그였지만 언젠가 소리치며 다툰 후로는 서로 친한 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불편한 아버지 형제 중 하나였다.

“미국도 난리가 아니니,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포드도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재선은 힘들겠어.”

큰아버지가 술잔을 돌리자 김대위도 한잔을 받았다.

“미국은 관두고 이 나라 꼴도 말이 아니잖아요. 먼 데모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요즘 최루탄 가루 때문에 대학가는 물론이고 장사꾼들 이야기를 들으니 신촌 쪽을 다닐 수가 없다고 합니다. 빨갱이라도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둘째 큰아버지도 취기가 올랐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소리 지르듯 말을 했다.

“박정희도 난처한 모양입디다. 더 세게 밀자니, 반발이 좀처럼 누그러뜨려 지지 않고 그렇다고 한발 물러나자니 억지로 만든 유신투표 결과가 허사가 될 것 같고.”

그 말을 듣고 작은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입이 근질거리지만 꾹 참고 있었다.

“그 양반이 좀 심해, 정치보다는 장사했어야 어울리는 사람인데 말이야.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반작용도 큰 법인데 뭔가 씌운 모양이야. 안 그래 이 서방?”

김대위 옆에 앉아 있는 유일한 이 집안 사위를 보고 큰아버지가 말을 걸어 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끄떡이고 있었다.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머리가 온통 희게 변해 중늙은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자 대리점을 열어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죠! . 학생들이든, 대통령이든 할 만큼은 하는데 방향이 틀리다 보니 계속 충돌하는 거고, 뭐 방법이 있겠습니까? 굶는 것 보다야 좀 무리가 있어도 경제를 살리는 쪽이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형님들이 잘 아시겠지만요.”

“바로 그 말이 내 말이라니까. 매형!”

작은아버지는 손뼉을 치며 그 작은 목과 큰 머리를 흔들어 댔다.

“관건은 경제겠지. 경제가 계속 죽을 쓰면 닉슨처럼이야 되지 않겠지만, 부담이 가는 거고, 경제에 돌파구를 뚫으면 힘을 받겠지.”

“닉슨은 말도 하지 마라. 사내가 그 정도로 하늘이 준 자리를 내놓나. 미국 애들은 깡이 없어요. 민주주의는 잘 할지 몰라도 정치는 우리 박통한터 더 배워야지. 정치를 국민들 뜻대로 하자면 그것이 제대로 한 나라가 굴러 가겠냐?”

조카들은 큰아버지의 그 말에 소리죽여 웃기만 했다.

“확실히 회사가 죽느냐 사는 냐는 인재가 있어야해, 거 뭐냐? 현대건설 같은 경우 거기 젊은 간부 하나가 있는데 무지하게 똑똑하다고 하더라고. 나도 한번 얼핏 지나가다 봤는데, 눈이 쫙 째진 게 엄청나게 야무지게 생겼더라고. 대학 다닐 때 데모도 했다는데, 우리 회사에도 그런 젊은 간부하나만 있으면 크게 될 것 같은데.”

둘째 큰아버지는 머릿속의 어떤 장면을 생각하며 달아오른 얼굴에 술을 한잔 더 들이켰다.

“형님, 내가 그런 인물 소개시켜 줄까요. 그런 친구들 몇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놈 하나 소개시켜 주라, 뭔가 잡아먹을 듯 무서운 놈으로 말이야. 이 천하를 이 손바닥에 넣고 주물럭 거릴만한 통이 큰 놈으로.”

“그렇게 손이 큰 놈이 있겠습니까, 손 큰 놈 너무 좋아 하시다가 형 잡아먹히면 어쩌려고요.”

“그것도 능력이다. 회사만 키울 수 있다면야, 이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회사 욕심이 커지는 법이야.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 그것은 야망이 없는 인재를 가지고는 힘든 일이지.”

김대위는 맑은 소주를 따르면서 눈을 감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누가 뭔가를 물으면 그저 간단히 고개를 끄떡이거나 웃어 줄 뿐이었다. 누군가 느닷없이 ‘영자의 전성시대’란 영화를 봤다는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따라 웃었다. 조카 중 하나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웃으며 ‘별들의 고향’도 곧 개봉할 것이라는 말을 거들자 웃음이 더 번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나 연예로 옮겨졌을 때, 사촌 동생 하나가 그의 어깨를 치며 잠깐 나가자고 말을 했다.

둘은 다른 방으로 건너와 담배를 하나씩 나누어 피워 물었다. 그는 군에서 보안대에서 근무하다가 정보부 소속 공무원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이끌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보면 정보부가 아니라도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었다. 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 그는 담뱃재를 털며 눈웃음을 치며 김대위에게 물었다. 그것은 일상적인 안부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근래에서 일하지 못하지만 늘 그렇지 뭐.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배관 일을 하러 다니지 뭐.”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형수 애 날 때 가보지도 못해서 하여간 성격 유별나다니까. 돌잔치는 할 거지?”

“글쎄. 아마 그때 중동에 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을 들었으려나 모르지만.”

“들었어. 꼭 그렇게 가야 하나? 아직 애도 어린 데.”

“나도 서른이 넘어가는데 아이하고 살 집이라도 장만을 해야 하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그,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할머니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그런 걱정 덜어 버릴 텐데. 형 같으면 빌딩이라도 하나 사 줄 걸.”

“할머니가 무슨 재벌이냐. 그리고 내가 거지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는 어떻게 지내? 애들은 크겠다.”

“이제 네 살이야. 한번 키워봐 얼마나 이쁜 지 말이야.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좋아서 미칠 지경이라니까.”

“지금은 정보부 일을 잘돼?”

“할 만하지. 가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을까 생각이 들지만 뭐 먹고사는 직업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나도 더 늦기 전에 밖에 나갔다가 오려고 말이야.”

“어디를 가는데?”

“좀 멀 리가. 처는 못 마땅해 하는데, 한번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중동 쪽에 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왜 또 중동이야?”

“요즘 그쪽이 대세잖아. 정부 차원에서 중동으로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거든. 지금 돈 나올 곳은 그곳밖에 없어. 정부도 월남 철수 이후 중동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어. 나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그쪽 생활 좀 해보고 오려고. 셋째 작은아버지도 동의하고.”

“사우디?”

“아마 가게 되면 그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기왕에 가장 업체들이 많이 나가 있는 곳이지 말이지.”

“잘하면 만나겠네.”

“그래서 형한테 미리 말하는 거야. 누가 먼저 나갈지 모르지만 나가면 그곳에 가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중동까지 가서 소주를 마시자고. 그거 나쁘지 않지.”

“형,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일로 기석이형을 만났는데, 형 소식을 묻더라고. 그래서 근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해 주었지.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하고.”

“그렇지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를 못했지. 지금은 뭐하나 모르겠군.”

“다들 자기 길을 가고 있겠지. . 학교에 남아 있는 형들은 교수를 꿈꾸고, 아니면 취직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거나 누구야 형하고 친했던 형처럼 이러 저러한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있겠지.”

“근데 형은 왜 그들과 헤어진 거야? 들리는 말에는 사소한 말싸움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

“뭐 말싸움까지야, 그럴 일이나 있겠어. 그런데 뭐 아까 중동에 간다는 말 말고 딴 할 말이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형이 중동에 가는 것을 작은아버지가 조금 우려를 하셔.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만 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걱정이 되시겠지. 다 젊었을 때 이야기 일 뿐이지. 그나저나 너라도 작은아버지 걱정 끼쳐 드리지 말고 잘해라.”

김대위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창가에서 맑았던 하늘이 우중충하게 변하더니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아이들 안더니 내 새끼라고 하며 아기를 볼에 비볐다. 김대위 가족이 밖으로 나오자 기사가 승용차를 열어 주었다.

사촌 동생이 밖까지 나오며 우산을 들어주며 승용차를 탄 김대위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가 형, 가기 전에 한번 연락을 할 게.”

김대위는 그 말에 그의 어깨를 만져주며 차를 타고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주일 후, 김대위는 사우디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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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2

 

2

 

김대위가 신경이 곤두서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감정이 불안정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는 줄곧 만성적인 속 쓰림으로, 신경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지에서 외출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알 수 없는 냄새가 주는 불안함이 양 눈썹에 표시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의 코가 아닌 머릿속을 자극하는 오물 냄새에 신경이 거슬렸다. 사람에게 나는 냄새 같으면서도, 음식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 같기도 하고, 산화되는 쇠에서 나는 녹 냄새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저 민감해서 그럴 수도 있었고, 속이 쓰려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갈대로 엮어 만든 차양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와 탁자 밑 발등에 쏟아지고 사선으로 가른 빛과 그늘을 경계로, 나이테가 넓은 탁자 다리들 사이로, 먼지들이 반짝이며 휘몰아쳐다. 발그림자 한 개가 건들거리고 낡은 구두와 진흙 묻은 창 바닥이, 창가로 기어다니는 딱정벌레가 무늬처럼 앉아 있다가 휭하니 날아갔다. 그곳이 어디였나? 사이공, 담낭, 사이공이었을 것이다. 사이공 다리 보수 공사에 지원을 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그 순간 요란한 타악기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울림이 입체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소박한 악기에 비해 소리가 독특한, 누가 저런 음악을 만들고 들어왔을까? 긴 시간 정제되고 감상의 폭을 넓혀 왔을 음악이다. 그늘진 안쪽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세 여인이 연주자였는데 이마와 목에서 가슴골까지, 팔뚝에 땀을 흘리고 있다. 김대위 오른쪽 반대편에서 미군들이 손짓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백인 둘과 흑인 하나가 사각 탁자에 둘러앉아 맥주를 한 병씩 마시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김대위 바로 앞 탁자에 한 여인이 반쯤 찬 양주 한 병을 세우고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청색 원피스, 아니 청색 아오자이를 입었다. 그랬다. 그녀가 흰 긴 팔을 뻗어 오른쪽 볼을 괸 모습이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주인은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데, 그때 붉은 천을 두른 승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김대위와 박씨 옆으로 지나갔다. 저벅거리는 발자국이 가볍기도 하고 어쩌면 헛것을 봤을 수도 있을,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유령처럼 가볍게 걸었다. 황갈색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그 황색 가사의 색이 어찌나 강렬한지 김대위 눈에는 어렸을 때 봤던 손톱만한 어떤 열매가 생각났는데 도저히 그것이 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찍기만 해도 번질 것 같은 깊은 황갈색 가사를 두른 깡마른 몸과 윤곽이 드러난 광대뼈가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솟은 눈과 진한 눈썹, 두꺼운 입술과 검은 피부, 그의 눈과 깊은 눈동자가 빛나 보였다. 저 눈을 그 어떤 이상을 쫓는 것일까? 삶의 초월,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죽음의 저 밑바닥, 아니 불타는 조국의 해방, 전선 없는 전쟁의 종식, 일상에 일상적으로 학살된 인간들, 지긋지긋한 전쟁과 이국 군인들, 그리고 이 더운나라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역겨운 인간들, 그 틈에 먹고 살자고 허우대를 흔들어 대는 노동자들. 승려는 앞을 똑바로 보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잠깐 지나가면서 김대위와 박씨를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위는 헐렁한 가사를 보면서 그 안에 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총을 잡고 걸어가는 척 하면서 갑자기 돌아서 총알을 쏟아 붓는다. 상상이다. 그럴 리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승려가 지나간 자리에 여인이 누워 뒤척이고 그 너머에 남자 주인이 승녀를 보고 합장을 하더니 주방을 보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승녀는 주인이 안내하는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쪽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미군들이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무더운 오후였다. 푸른 열대야자수 나뭇잎은 더욱 푸르게 빛이나 파란 기울이 아물거리며 솟아오르고, 뜨거운 볕으로 갈대창이 반짝이고, 김대위는 가슴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승려를 보고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때 문득 음악이 멈추었다. 무슨 내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음악이 끝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연주하지 않았으면 했다. 여인 셋이 연주를 했을 뿐이고, 음색만 기억날 뿐, 어떤 박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승려가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무대 가운데 있는 여인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공사를 하다 보았나? 숙소 근처에 살고 있었나? 아니면 기분 탓일지 모른다. 잠시 후, 여인이 깨어나 몽롱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얼핏 김대위와 박씨를 쳐다보았다. 박씨는 재밌다는 듯 여인을 보고 김대위를 쳐다보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박씨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의 누런 이빨과 붉은 잇몸이 보였다. 여인은 이십대 후반 정도 보였으며 앞에 다가서서 말이라도 걸고 싶을만큼 상당한 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인의 쌍꺼풀진 눈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눈동자가 취해 있었다. 대낮인데도 술을 마시다니, 김대위도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밤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았다.

저 새끼들, 여자가 가수라고 말하고 있는데.” 박씨가 미군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고 김대위에게 일러 주었다. 젊은 미군 한 명이 여인에게 휘파람을 불며 손을 들어 보였다. 여자의 눈길을 그들에게 가고, 여인은 주춤거리면서 일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앉았던 의자에 땀이 배겨 있었다. 약간 비틀거리는 여인의 몸매가 갑자기 비대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장난기어린 영어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미군들의 탁자로 다가가서 악수하자 백인 군인 하나가 일어서며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으며 춤을 추었다. 여자는 손을 비틀거리며 어깨에 두른 손을 빠져나와 의자에 앉았다. 여자와 미군들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박씨의 눈가가 붉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는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퍼 올렸다.

재미 하나도 없네. 날은 무지하게 덥고, 여기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 그는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그의 굳은살 배긴 손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왼손 엄지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손톱이 곧 빠져나올 것이다. 김대위는 나가자고 했다.

갑시다. 좀 걸어 보자고, 앉아만 있으니 재미도 없고.”

김대위가 탁자에서 힘겹게 일어서니 무릎이 저렸다. 1시간은 족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박씨가 주인에게 술값을 냈다. 문을 나서 햇살이 뜨거운 밖으로 나오자 뒤로 여인과 병사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소년 하나가 낭패스런 얼굴로, 어쩌면 상기 된 표정일지 모른다, 긴장되어 있던 표정임이 분명하다, 녀석은 이미 마음으로 준비했을, 어느 선상에 오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힘껏 던졌다. 놈의 몸이 투수처럼 반쯤 구부려지며 손에서 검은 그 물체가 손을 떠났다. 그 소년의 선물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올 때, 박씨는 폭탄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그의 몸이 깜짝할 사이에 흙바닥에 던져졌다. 박씨의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말을 알아듣기도 전에 그는 엎드려 귀를 감싸고 있었다. 김대위는 달리 어떤 동작도 취하지 못했다. 검은 물체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얼핏 돌멩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폭탄이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소년은 뭐라고 고함을 치면서 뒤로 돌아 신나게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서 비명이 들리고 탁자가 엎어지는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대위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폭탄이 터지는 상상이 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길을 가는 사람들 이목이 자신과 엎어진 박씨에게 쏠려 있었고, 안에서 소란스럽게 달려나오는 미군과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주인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쥐이어져 있었다. 주인이 화난 목소리로 돌멩이를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얗게 질린 여인이 창가에 서 있었다. 박씨는 어이없는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며 일어나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

망할 꼬마 새끼, 벌써 돌팔매질을 하니 폭탄 잘 던지겠군. 이 나라는 전망이 없다고 말했잖아. 이제 끝물이야. 이놈 저놈 가리지 말고 물건 팔아 한몫 챙겨 떠나야 한다니까.” 박씨는 자신이 엎드렸던 장소와 주인이 내 던지는 돌멩이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 저놈이란 말에 귀가 거슬렸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인마저도 종종 베트콩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소문이 가끔 들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전쟁은 구분하고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구분하기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전선을 애써 지우면서 전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나 긴 전쟁을 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것은 왜 이런 전쟁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자 답이다. 베트남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중에 김대위는, 그 작은 질문이 좀처럼 뇌리에서, 폐부에서, 삶 밑바닥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 것을 안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잠시 후 그 웃음도 사라지고 대신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안에 있는 몇몇은 죽었다. 몇은 다치고,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누가 그랬을까? 승려가? 술 취한 가수가? 아이의 돌은 또 무엇인가? 연기가 솟고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우리 우리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연인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일이다. 기억, 기억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 그런 사고는 전쟁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만한 일들이다. 문제는 이런 지리멸멸한 전쟁이기에, 삶 속에서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일이 촘촘히 꿰져 있기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몸부림을 치는 근본적인 일이기도 하다.

 

화요일 조선소의 싸움은 지루하게 혹은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대위는 현장 사무소 창고에서 동료와 낮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싸움 때문에 아니라 동료들이 조선소 노동자들의 싸움을 핑계로 술을 끄집어내어 고기를 구웠던 것이다. 술이 거의 떨어질 무렵 다른 이들은 싸움을 구경하러 가거나 퇴근을 했다. 사무실에는 소장과 다른 동료 둘이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대위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창고 뒤로 돌아갔을 때 늦은 동쪽 하늘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충 짐작했다. 벽에 그림자가 동쪽으로 향하고 전신주들에 널린 전선들이 더욱 쳐지게 느껴졌다. 멀리 바닷가쪽 갈매기들이 흩어져 날고 크레인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조선소의 기계는 멈추었고 싸움판으로 노동자들이 불규칙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연기가 나고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생소한 광경을 보면서 김대위는 꿈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꿈이 그의 귓가에 폭음을 남겨 놓았다. 귀가로 음악이 주는 울림과 돌멩이가 주는 느낌, 그리고 폭음소리, 그 사람들의 인생은 그 순간 무엇이었을까? 왜 그날 그 장소를 순간의 차이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혹시 그 자체가 기억이 아니라 상상이 아닐까? 가끔 기억조차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다.

그는 싸움이 궁금해졌다. 창고를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창고를 나섰다. 소장은 취한 목소리로 싸움 구경하지 말고 퇴근을 하라고 일러 주었다. 낮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취기가 가시지 않아 뒷골이 당겼다. 젊은 소장은 자주 술판을 벌였다. 눈이 작고 위로 째져 올라간 성깔 있는 눈은 술을 마시면 그의 과거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돈도 더 벌고 싶고 공사도 맡아서 하고 싶은 욕구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현장 사람들은 소장의 소리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못하였다. 그저 일하는 시간에 술을 마시기 때문에 기분을 내며 목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그럴 듯한 무게를 잡고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만 듣고 보면 술처럼 허망할 뿐이었다. 그에게 대모는 남의 일이었으며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이는 그림 한 장 텔레비전에 비쳐지는 뉴스를 현실로 볼 뿐이었다. ‘다 허튼 짓 아닙니까? 우리 같은 일당쟁이 노가다만 불쌍할 뿐입니다. 상여금이 있습니까? 퇴직금이 있습니까? 그나마 이들은 더 났다니까요. 싸울꺼리나 있지 않습니까? 안 그렀습니까?’ 소장은 앞에서 끄떡이는 노인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였다.

거의 오후 7시쯤 되었다. 평소 같으면 퇴근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할 시간이다. 정문 쪽으로 가니 차량 두 대가 불타고 있었다. 본관 건물 앞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고 한쪽 벽이 그을려 있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가려고 경찰과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점심때보다 서너 배는 더 불어나 노동자들을 막고 있었다. 노동자도 그때와는 다르게 더욱 많이 늘어나 숫자만큼 거칠게 행동을 했다.

멀리 돌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노동자들 속으로 떨어져 굴렀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각목과 파이프를 든 노동자들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경찰 곤봉과 엉키었다. 어지러운 고함과 각목 부딪치는 소리, 돌 던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주변을 에워쌌다. 몇 미터 앞으로 나아갔다가 몇 미터 뒤로 물러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돌과 나무토막, 종잇조각들과 최류탄 가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변에는 청색 작업복을 입은 젊은 노동자들의 노기 띤 얼굴이 흰 이를 드러내고 정문을 뚫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같았다. 경찰들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노동자들이 빨리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노동자들이 왜 이러는지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단지 경찰들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이나 언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되면 상점의 문을 열고 손님이 오면 문을 팔고 신문을 읽고 일상을 논하는 그들이 타는 듯 한 용접 불꽃 속에서 머리를 박고 온 종일 지내는 그들의 생각을 어찐 안단 말인가? 조선소 밖의 그 어떤 두뇌와 안구 두 알로 그들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단지 분석을 하려고 대들 것이다. 카메라도 그들의 심장이 어떻게 뛰는 보여줄 수 없으며 정치로 논할 수 없다. 이러 저러해서 노동자들이 이렇게 행동을 할 뿐이라고. 그리고 서류철에 상세히 기록을 하고 곧 다른 사안을 들춰 보며 빨리 잊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말이다.

노동자, 하층 노동자는 깨끗한 제복을 입고 근무를 하거나 뱃지를 달고 배를 앞으로 내미는 자들은 함께 어깨를 두른 다는 것을 거창 표어나 포스터 제작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신분이 다르다는 것, 아닙니까? 신분이’ 아니면 ‘차라리 그들의 어깨에 내 손을 올려놓느니 팔을 자르고 말지, 안 그래?’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더러운 패배자 같으니, 사회의 쓰레기나 치우시지, 아니면 쓰레기통이나 만들던가? 저기 꺼지란 말이야! 부랑자 같으니’ 그들에게 생각하는 뇌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뇌가 있기는 해도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찰들 생각대로 화요일 오후는 여느 때처럼 일하고 쉬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날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교대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며, 조선소에는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행하는 연속극이나 보면서 소주를 들이켜야 할 시간에 돌팔매질이라니. 다른 가까운 부산이나 경북도청에서 지원을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는 형편이 되었다. 공장에 밀어 넣어 해산시키란 말이야, 라는 위에 간부들 만에 그렇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노동자들은 마치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양 격렬하게 정문을 돌파하려고 밀집되어 있었다.

야간자까지 차츰 불어 수천이 되어 정문에 모여들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갈수록 커지는 도시의 밤은 여느 밤처럼 넘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할 시간에, 노동자들은 나오지 않고 근처 지방이나 도시에서까지 경찰이 몰려와 진을 짜고 노동자들과 대치하며 싸움을 벌이며 도로를 차단하였다. 경찰차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불타는 승용차와 본관 유리창을 깨고 전단을 날리는 노동자들을 마주 섰다. 시민이 모여들고 방송사 기자들도 최루탄이 터지는 시위현장에 끼어들어 사진을 찍어 댔다. 조선소와 조선소를 둘러싼 도시가 정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과연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올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일이 어디까지 확산 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군인들까지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 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날은 확실히 후덥지근한 낮이었고 밤이 되자 더위가 조금 누그러뜨려 졌다. 시위 현장에 여기저기 군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시 되었다는 소문에 싸움은 더욱 거세게 일어났으며 노동자들은 끝장이라도 보려는 듯 더욱 싸움에 집중했다. 어둠이 내리자 정문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이 차츰 밀려나기 시작해 노동자들이 조선소 밖까지 진출했다.

경찰 책임자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지휘를 하다가 노동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노동자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노동자들은 기세를 몰아 더욱 세게 밀어붙여 도로를 완전히 점거하고 경찰들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대위는 시위대의 중간에서 전체 대오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한편으로 어떤 해방감을 맛보는 듯했다. 경찰이 정문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을 더욱 힘을 내어 위험을 감수하고 돌팔매질과 각목을 휘두르며 소수 혹은 다수가 어울려 밀리는 곳과 밀어내는 곳을 적절하게 움직이며 조정해 가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아침에 대오를 이끌었던 집행부는 싸움이 커지자 어찌 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저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설사 손을 떼지 않았다 해도 이미 노동자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위가 보기에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들도 단지 울분으로 모여들어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권력에 대응해 어떤 실마리를 풀어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의견이나 선동이 있었지만, 돌발적이었으며 싸우는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견도 있었다.

죽여 버려!” 경찰 하나가 노동자들에게 끌려나오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풀어 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군가 달려가며 경찰의 복부를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로 끌려가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말리는 사람보다 너도나도 뛰어들어 주먹으로 갈기거나 방망이로 등을 두드려 댔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외국인 숙소로 쳐들어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노동자들이 깔깔거리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웃어 댔다. 그 웃음소리가 김대위도 웃게 하였다.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같잖은 이야깃거리로 웃는 웃음과 다르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노동자들의 얼굴이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분노로 보이지 않고 흥분된 얼굴이 흥분되어 보이지 않았다. 일할 때의 얼굴은 지친 듯한, 그늘진 표정들이었으나 조선소 밖으로 나온 얼굴의 표정은 일할 때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증명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의무가 아닌 스스로 나와 스스로 싸움의 규칙을 따라 행동하는 무리, 그들은 서로 봐주고 있었다. 누군가 지휘하며 어디를 막고 어디를 치는 것이 아닌, 서로 눈과 입이 되어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뛰쳐나오고부터는 경찰들의 행동이 다소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이미 스스로 이들을 통제하기에는 노동자들이 수적으로나 도심으로 나와 버린 지경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묘하게 애초 도심으로 진출해 뭔가를 하겠다는 의식이 없었던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저항선이 있었기에 집중을 할 수 있었지만, 경찰의 저항선이 뚫려 버리자 목적을 잃어버린 종이비행기와 같았다. 지도부는 없었고 다음 행동에 대한 지침이 멋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내로 가야 한다니까. 이 기회에 우리의 입장을 알려내야 해!” 누군가 외쳐댔다. 그 노동자 말에 여러 사람이 동의했지만, 다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갖추기에는 아직 준비 정도가 미흡했다.

김대위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나에 망설였다. 그저 따라다닌 것 이외에 할 일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 애초 구경을 왔던 거야.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바로 옆의 노동자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도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외국인 숙소 쪽으로 들락거리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멀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뭐해?” 뒤에서 석기가 어느 틈에 다가와 그의 어깨를 쳤다. 김대위는 그를 보니 얼굴에 취기가 올라 있었다.

이 엄중한 판에 술 마셨나?”

정문을 돌파했는데 안 할 수가 있나?” 그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즐거워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되기는 이제 집에 가야지. 퇴근 시간 지났잖아. 조금 있으면 통금이라고. 푸하하하!” 그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김대위는 얼굴을 문질렀다. 주변의 다른 노동자들은 웃지 않고 있었다. 뭔가 상황의 전환을 바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면 김대위 자신이 그들 쪽까지 왔거나 싸움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그럴 수도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매우 큰 사건 같은데, 정회장이 들어줄까?”

위임제를? 모르지. 그러기는 어려울걸.” 그는 잠깐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도 없었겠지만, 웃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 있다 ‘다시 내일 관리자 새끼들을 또 봐야 한다는 게 지겨워!’ 하고 혼잣말처럼 말을 했다.

회사 생활이라는데, 마치 군대생활처럼 하거든.”

정강이도 까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참을 수 없을 때가 잦지, 이 나이에 굽실거리며 삶을 구걸하기가 쉽지가 않지. 여기 노동자들이 여기까지 나온 이유야 많지만, 꼭 뭐 더 달라고 싸우고 있겠나, 그건 장사꾼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지. 인간적 모멸감이 때로는 모든 걸 걸게 만드는 거지. 간부들은 노동자 알기를 사람 이하로 아니까. 쪽팔려서.”

차라리 노가다나 뛰지?”

그러게 말이야. 아는 형님은 그래도 이곳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있자고 하는데 말이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전망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힘들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 일하고 또 일하고, 거기다 사람 뭐로 알고, 계속 억누르려고 하니 말이야. 무슨 돈 짜내는 원료도 아니고, 어떨 때는 내가 개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이제 우리도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나? 염병.”

그것이 바로 인생 아닌가? 책임져야 할 처와 자식이 있다는 것이, 삶의 무게라는 말이지.”

그렇지 이제 삼십 대야, 누가 그러더군 사십 금방이라고.”

한번 둘러보자고, 싸움이 이 상태로 끝나면 안 될 텐데, 달리 할 일도 목표도 없으니.”

김대위와 정석기는 소강상태로 가는 싸움을 둘러보려고 앞으로 나갔다. 노동자들이 진을 짜고 경찰과 대치를 하기는 하지만 전체가 어찌 움직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주변에 생각이 많은 노동자는 차츰 꽁무니를 빼거나 한발 빠져 관망하고 있었다. 이미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김대위가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시간 째 그들 틈에서 돌아다닌 것이다.

정석기는 한 바퀴 돌더니 술을 마시자고 했다. 김대위는 그의 손에 이끌려 가까이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앉았다. 그 안에는 다른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석기는 소주를 시켜놓고 둘이 마시다가 뒷자리 그들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신이 났는지 술을 주고받았다. 김대위가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아예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 슬며시 빠져 나와 바깥바람을 쐬었다.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줄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내까지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김대위가 옆의 나이 든 노동자에게 물으니 그는 아쉽다는 듯 말을 했다.

그래도 오늘 대단한 싸움을 했잖습니까?”

그럼요. 대단하다 말다요, 신났지요. 나도 이런 싸움 4·19때 서울에서 해보고 처음입니다. 새삼 느끼지만 싸움은 숫자 아닌가 합니다. 보십시오, 숫자가 없으며 이게 어디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경찰에게 반 죽었겠죠.”

깡마르고 볼이 움푹 패인 오십은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손에 돌멩이가 하나 쥐여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까?”

먹고 살려고 전국 안다닌 곳이 있겠습니까? 말 같으면 말굽이 서너 번은 닳아 졌을 겝니다.” 사내는 마르고 주름진 볼을 잡아당기며 그의 말을 따라 그의 인생 여정을 더듬어 보는 듯 했다.

조선소 벌이가 괜찮다고 해서 새끼들 데리고 와서 자리 잡으려고 했더니 위임젠가 뭔가로 갈수록 조건이 나빠지니 말이오. 관리자들은 어찌나 위세를 떠는지 우리 같은 나이 먹은 놈들이야 성질 죽이고 넘어 간다지만 젊은 놈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정회장이 다 직영으로 돌려줄까요?”

턱도 없는 소리마쇼. 시내로 가서 누구 하나 죽어야 한다니까요. 확 뭔가를 불살라 버려야 그때야 ‘어이쿠 놈들이 화가 났구나, 달래야지.’ 하는 거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한두 번 겪어 봅니까. 사람이 만 명이 넘는데 오늘 한 3천 모였습니다. 반도 안 되죠. 그렇다고 다 싸웁니까. 더러는 구경하고 따라만 다니죠. 불구경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요구 사항이 이루어 질 리가 만무하죠. 어떤 놈은 되려 역정을 다 냅디다. 경기도 안 좋은데 데모 질을 한다고 말이요. 내 댁이 우리 식구가 아닌 것 같아 말을 하지만, 멋도 모르고 싸우는 놈들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움을 싸움답게 해야지 싸움이 되는 겁니다. 군대 다녀왔으면 알 겁니다. 고지가 있어야 하고 전술이 있어야 하거든요. 딱 짜서 여기까지 치고 가자해야 하는데, 내 생각인데 정말 시내까지 밀고 가서 일을 벌여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있을 겁니다. 안 그래요?”

네 그렇기는 한데.”

싸우다 어설프게 끝내면 되레 당합니다. 경찰 놈들이 내일이며 죄 잡아들일 거요. 망할 자식들, 그나마라도 이렇게 해 줘야 더는 못하겠지만.”

그나마라니요?”

직영에서 위임제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더한 꼴을 볼지 누가 압니까? 나는 장사꾼들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내가 공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설설 기면 아예 간 쓸개를 빼먹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구경만 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가서 돌멩이 하나라도 더 던집시다. 그게 다 남는 거라니까요. 아닌 것 같습니까?”

그러죠.”

김대위는 키 작은 노동자를 따라 돌멩이를 들고 따라갔다. 그와 몇 번의 돌팔매질을 어둠속에 먼발치에 있는 경찰을 향해 했다.

다음에 또 싸운다면 꼭 시내로 나갈 겁니다. 아니 청와대까지요.”

내가 오늘 이 싸움을 따라다니면서 딱 하나 배웠습니다. 아저씨 한 테요.”

뭘요?”

기회가 있을 때, 돌 하나라도 던져 놓아라, 그게 다 값을 할 것이다.”

그러다마다, 여부가 있습니까.”

김대위는 나이 든 노동자와 헤어져 주변을 돌다가 정석기가 있는 자리로 가니 그 자리에 없었다. 취해 집으로 간 것 같았다.

다른 노동자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어두운 거리에 돌과 부러진 나무들, 날리는 종이들만 쓸쓸하였다. 김대위도 거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장딴지도 부어 그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니 다른 동료가 모두 잠에 들어 있었다. 대충 발만 씻고 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다.

김대위와 그 일행은 다음날 아침을 먹고 가방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일이 잠시 중단되었다. 올라오는 와중에 뉴스를 들으니 조선소폭동 사건이 뉴스에 자주 나왔다. 그날 새벽에 경찰이 독신자 아파트에 들어가 수백 명의 노동자를 검거하였다고 했다. 이제는 그날의 해방감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받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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