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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30
    중동에 간 사나이 3

중동에 간 사나이 3

김대위는 아기를 안고 가는 처 조영희를 보고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들을 태운 택시는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오늘 만나야 할 여러 인물이 순서 없이 하나씩 떠올랐다. 침대에 누워 있을 할머니와 주변 인물들, 거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손을 내밀 하얀 손들이 눈에 선했다. 할머니는 사형제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할머니는 늙은 입을 오므리며 ‘내 가문의 자식들, 내 새끼들’을 부르며 가족들을 보듬어 안곤 했다. 특히 김대위의 아버지는 셋째였지만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날 할머니가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69년 7월 16일 장사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있는데 아폴로 11호를 발사하는 순간이 중계되고 있었다. 아버지 형제들이 장례 결산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 방에서 큰어머니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리고 사색이 된 채 할머니가 혼절하셨다고 말을 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로켓이 홀로 날아가고 형제들이 모두 할머니 방으로 몰려가 의사를 부르고 물을 떠다 얼굴을 씻기고 팔다리를 주물러 댔다. 김대위는 인류의 꿈을 싣고 떠난다는 로켓을 보면서 아버지가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착각이 들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머리를 식힌다고 아버지는 장자를 읽고 계셨다. 아버지가 마지막에 무엇을 펼쳐 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회사일로 머리가 꽤나 복잡하셨던 모양이다. 장자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그랬을 수 있으나 장자가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할머니 말대로 명이 거기까지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을 수도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 초상 앞에 차를 올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김대위가 월남에 가기 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초상에 향을 올렸으나 월남을 다녀온 후로는 차를 올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우주론은 불교에 가까우셨다. 우주는 다른 우주에 싸여 있다고 믿으셨다. 그 우주는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 싸여있고, 언젠가 어렸을 때 그 말을 들을 때 양파가 생각났다. 김대위도 아버지에게 누구나 한번은 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아버지 그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어요?’ ‘우주가 있지.’ ‘그 끝에는 요?’ ‘그 끝에 어떤 놈이 서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군가 있지 않겠냐?’ ‘하느님이요?’ ‘글쎄다. 누군가는 지키고 있어야 우주가 별 탈 없이 운행을 하겠지.’ 김대위는 그 말이 거의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농담인지 알지를 못하였다. 아버지는 소탈하시고 웃음도 많고 농담도 잘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그렇지 못했다. 사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많았다.

 

강변에 개나리꽃이 노랗게 길 따라 피었고 갈대숲이 파랗게 새순이 올라 햇살 아래 반짝거렸다.

“날이 제법 풀렸군. 한해가 벌써 이렇게 가다니 믿기지가 않아, 세월이란 참!”

김대위는 머릿속을 지우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아기의 발을 만져 보았다. 손톱 때가 끼어 있는 손으로 보송보송한 아기 발을 문질렀다. 두꺼운 털실로 만든 양말 안에 있는 아기 발이 느껴졌다. 처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곤색 줄무늬 양복을 입는 남편이 어쩐지 촌스러워 보였다. 짧은 소매에서 나온 앙상한 팔목 뼈가 마음에 걸렸다. 여자 손톱처럼 긴 손톱들과 손톱 아래 낀 기름때와 햇살아래 더욱 선명한 손등 피부주름에까지 기름때가 스며들어가 거뭇거뭇해 보였다.

김대위는 마른 손바닥으로 아침에 나오면서 면도한 턱을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왜요?”

“아니야.” 김대위는 손가락을 비비며 엄지손가락을 이빨 사이에 끼어 물어뜯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삶의 길, 그리고 자부심과 열등감,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있지도 않지만 어쨌든 의식하지 않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작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때로는 불편해 차라리 멀리 떨어져 그저 짐작만 하고 있기가 편하기는 했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기가 잠을 자면서 발을 움찔거렸다. 영희가 아기를 가슴에 안으며 이불을 감싸 아기 얼굴을 덮었다.

차창 밖은 삼월의 훈훈한 봄바람이 불면서 길옆에 핀 개나리들이 노란 화단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지난번 월급은 아직 안 나오나 봐요?”

영희는 아기를 만지며 지나가는 투로 한마디 던지고 김대위 안색을 살폈다.

“이번 주까지 준다고 했으니까? 이번에 안주면 똑 한바탕하러 가야지.”

“또 싸워요?”

“이게 다 삶이야. 안주면 싸워서 받고, 또 일하고, 또 싸우고. 기사 아저씨 안 그래요?”

그 말에 기사도 얼굴이 펴지며 금색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라디오 소리를 줄이더니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죠. 싸움 많이 했죠. 저도 공장 다니다가 월급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 짓 지겨워 이거 한다 아닙니까. 한번은 석 달째 못 받았는데 어찌나 화가 나는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작당을 했다 아닙니까. 그래서 다음날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대표로 말하기로 한 놈에게 눈짓을 주자 공장장 앞에서 공구를 바닥에 냅다 던지면서 당장 돈 내 놓으라 말이야, 하고 소리를 치며 한바탕 했지요. 그게 신호가 되가지고 우리도 덩달아 연장을 집어 던지고 공장장 앞에 모여들었는데 구경하던 다른 놈들까지 우르륵 모여 들어서 나중에는 우리가 다 겁이 나더라니까요. 덕분에 한 번에 해결되고 짤리기는 했지만.”

김대위보다 서너 살은 더 먹어 보이는 사내는 그 마음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이 끊이지 않았다. 기사는 말을 마치더니 흥얼거리며 자신의 추억을 떠 올리며 가끔 히죽거렸다.

김대위는 고개를 끄떡이며 바지 주름을 잡고 구두를 손으로 문질러 먼지를 쓸어 내렸다. 나오면서 닦았는데 금세 먼지가 내려앉았다.

“영 불편 하는구먼.”

“그래도 잘 어울려요.”

“그냥 작업복 입고 아무 곳에나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업복이 제일이야. 평상복차림으로 올걸 그랬어.”

양복이 싫다는 것을 영희가 억지로 입혀 마지못해 투덜거리며 옷깃을 당기거나 웃옷 단추를 풀었다가 다시 채우곤 했다.

“아기가 잠을 아주 잘 자네.”

김대위가 이불을 살짝 들쳐 새근거리며 자는 아기를 쳐다보았다. 이제 막 백일 지난 아기는 첫 외출인데 잠만 자고 있었다. 영희는 아기가 잘 보이도록 팔을 느슨하게 풀어 아기 얼굴이 드러나도록 했다.

“낮에야 그렇죠.”

아기를 쓰다듬는 처 손가락이 뽀얗게 살이 올라 있었다. 아직 붓기가 다 가시지 않아 볼이며 가슴이나 다리가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다.

“어디 가시나 봐요?”

기사가 거울을 흥얼거림을 멈추더니 따분한 눈으로 물었다.

“예, 잔치가 있어서요.”

“부모님인가요?”

“아니요. 큰 집이요.”

기사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김대위가 말을 해준 한남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한강을 빠져나가려다 승용차 속도가 조금 더디어 졌다.

“뭐가 하나 또 간 모양입니다.”

강변을 내려다보며 기사가 혀를 끌끌 찼다. 그가 쳐다보는 아래 갈대밭에 경찰과 일반시민 서넛이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김대위는 그 모습을 보고 대충 그게 뭔가를 알았다. 강변에 죽어 있는 시체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 사이로 언뜻 가마니가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기 뭐합니다만, 꼭 저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안 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저것 어느 공돌이나 공순이가 저렇게 되었을 겁니다. 십중팔구 말이죠. 시골에서 어지간히 올라왔나요. 아마 하루에도 저런 것 서너 구는 발견이 될 겁니다. 내 짐작인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법이 있겠습니까? 뭐가 있겠습니까? 어린 것들이 싸구려로 팔려와 공장에 뿌려놓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시키는 세상인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한강에 왔다가 뭐가 잘못돼서 저런 일 생기는 거고, 아니면 살기 빡빡하니까 스스로 저리 했을지도 모르고요. 한두 번 봐야지요.”

기사가 처와 김대위 안색을 살펴 가며 떠들어 댔다. 김대위는 뒤로 서서히 물러나는 갈대숲의 광경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택시가 문이 커다란 저택 앞에 서고, 김대위 부부가 택시에서 내려섰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이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집 주변에 잘 닦인 승용차들이 반짝거리며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커다란 앞마당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숲처럼 울창하게 서 있고 열 살 전후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3층짜리 주택 입구 현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사내 서넛이 김대위를 가족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모두 사촌들이었다. 김대위는 다가서서 그들과 악수를 하고 어깨를 잡아 안았다. 영희도 따라와 고개인사를 하였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혈색이 좋지 않으니 고생이 많다고 인사들을 건넸다. ‘고생이라고’ 김대위는 큰 사촌형의 인사성으로 던진 말이 귀에 걸렸으나 웃어넘겼다. 그저 인사일 뿐이거니 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인상을 구길 필요도 없고, 사촌들끼리 모였을 때 말다툼하지 말라고 영희가 신신당부했었다. 특히 영희의 의견에 의하면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었다. 사실 종종 종교와 정치적인 의견으로 감정까지 상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이들 집안에서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는 중요했다. 김대위에게 정치적 입장은 종교 못지않는 중요한 문제였다. 다른 사촌들은 별 관계가 없으나 아버지 형제들과의 의견 차이는 너무 크고 종종 다투어 버릇이 없는 놈이나 뭘 모르는 이상한 종자로까지 치부되어 있었다. 김대위에게는 아버지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가급적 집안 행사에 참여를 하지 않고 따로 겉돌고 있으나 늘 그럴 수는 없었다.

주택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이 나오고 큰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처의 손을 잡고 아기를 안아 들었다. 김대위는 얼굴을 환하게 웃으며 뒤를 따라 나오는 큰아버지와 그의 사촌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받았다. 한쪽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조카들이 2층에서 내려오다 마주치자 인사를 하였다. 열댓은 될 그들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니 소파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고운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다. 머리를 뒤로 넘기고 쪽을 틀었고 마르고 붉은 볼과 총명한 눈이 반듯한 코가 인상적인 모습 그대로 늘 당신에게는 아기인 김대위를 반겨 주었다.

“오, 어서 오너라! 그 아기를 안고 싶구나, 어서 다오, 어서! 아이구 내 새끼.” 하며 김대위의 손을 잡고 큰어머니에게서 아기를 건네 안아 볼을 비볐다. 절을 하겠다고 하자 손을 내치며 병중에 인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거절하였다. 병중이긴 하나 아직 목소리가 맑았고 분명한 발음을 했다.

“그래 백일을 잘 지냈니? 집에서 식구끼리 했다고 조용히 했다고 하더구나?”

“예.”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 너의 성격이 곧아서 문제다. 내가 그래서 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늘 걱정이야. 세상이 그렇게 내 뜻대로 된다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이 놈 눈 봐라, 어이구 발질하는 것 좀 봐, 이놈도 한 성질 하겠는 걸.”

김대위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할머니가 사촌 동생을 통해 선물을 전해 주었던 터라 서운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처는 부엌으로 불려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노인은 자는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며 나머지 가족들을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김대위는 다른 사촌들에게 이끌려 다른 방으로 가서 술자리에 앉았다.

“월남이 오는 여름을 못 넘긴다는군.” 이미 노인의 얼굴이 완연한 큰아버지가 그의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월남이 문 닫으면 죄 중동으로 몰리겠군. 이 불경기를 이겨내려면 말이지. 지금 중동만한 시장이 없잖아요.” 둘째 큰아버지가 말을 받았다. 그는 중견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업자였다. 형제 중 가장 키가 컸고 말랐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둘째 큰 아버지는 계산에 밝았고, 이기적이란 말을 들었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그 말은 절대적인 개념이 되어 늘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거기서 기름 캐다가 팔아먹으면 돈 좀 되겠네요.” 작은아버지가 짧은 목을 더욱 짧게 감추며 머리를 흔들어 대며 즐거운 듯 키득거렸다. 김대위는 담담하게 쳐다보았지만, 가끔 어떤 일로 그가 떠오르면 그 특유의 웃음이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정보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그의 눈은 항상 빛나고 뭔가를 끊임없이 추궁하는 듯 한 야성적인 속성이 넘치는 사내였다. 가끔 김대위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일삼는 그였지만 언젠가 소리치며 다툰 후로는 서로 친한 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그는 불편한 아버지 형제 중 하나였다.

“미국도 난리가 아니니,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포드도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재선은 힘들겠어.”

큰아버지가 술잔을 돌리자 김대위도 한잔을 받았다.

“미국은 관두고 이 나라 꼴도 말이 아니잖아요. 먼 데모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요즘 최루탄 가루 때문에 대학가는 물론이고 장사꾼들 이야기를 들으니 신촌 쪽을 다닐 수가 없다고 합니다. 빨갱이라도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둘째 큰아버지도 취기가 올랐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소리 지르듯 말을 했다.

“박정희도 난처한 모양입디다. 더 세게 밀자니, 반발이 좀처럼 누그러뜨려 지지 않고 그렇다고 한발 물러나자니 억지로 만든 유신투표 결과가 허사가 될 것 같고.”

그 말을 듣고 작은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입이 근질거리지만 꾹 참고 있었다.

“그 양반이 좀 심해, 정치보다는 장사했어야 어울리는 사람인데 말이야. 너무 세게 밀어붙이면 반작용도 큰 법인데 뭔가 씌운 모양이야. 안 그래 이 서방?”

김대위 옆에 앉아 있는 유일한 이 집안 사위를 보고 큰아버지가 말을 걸어 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끄떡이고 있었다.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고 머리가 온통 희게 변해 중늙은이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자 대리점을 열어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죠! . 학생들이든, 대통령이든 할 만큼은 하는데 방향이 틀리다 보니 계속 충돌하는 거고, 뭐 방법이 있겠습니까? 굶는 것 보다야 좀 무리가 있어도 경제를 살리는 쪽이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형님들이 잘 아시겠지만요.”

“바로 그 말이 내 말이라니까. 매형!”

작은아버지는 손뼉을 치며 그 작은 목과 큰 머리를 흔들어 댔다.

“관건은 경제겠지. 경제가 계속 죽을 쓰면 닉슨처럼이야 되지 않겠지만, 부담이 가는 거고, 경제에 돌파구를 뚫으면 힘을 받겠지.”

“닉슨은 말도 하지 마라. 사내가 그 정도로 하늘이 준 자리를 내놓나. 미국 애들은 깡이 없어요. 민주주의는 잘 할지 몰라도 정치는 우리 박통한터 더 배워야지. 정치를 국민들 뜻대로 하자면 그것이 제대로 한 나라가 굴러 가겠냐?”

조카들은 큰아버지의 그 말에 소리죽여 웃기만 했다.

“확실히 회사가 죽느냐 사는 냐는 인재가 있어야해, 거 뭐냐? 현대건설 같은 경우 거기 젊은 간부 하나가 있는데 무지하게 똑똑하다고 하더라고. 나도 한번 얼핏 지나가다 봤는데, 눈이 쫙 째진 게 엄청나게 야무지게 생겼더라고. 대학 다닐 때 데모도 했다는데, 우리 회사에도 그런 젊은 간부하나만 있으면 크게 될 것 같은데.”

둘째 큰아버지는 머릿속의 어떤 장면을 생각하며 달아오른 얼굴에 술을 한잔 더 들이켰다.

“형님, 내가 그런 인물 소개시켜 줄까요. 그런 친구들 몇 알고 있는데.”

“제대로 된 놈 하나 소개시켜 주라, 뭔가 잡아먹을 듯 무서운 놈으로 말이야. 이 천하를 이 손바닥에 넣고 주물럭 거릴만한 통이 큰 놈으로.”

“그렇게 손이 큰 놈이 있겠습니까, 손 큰 놈 너무 좋아 하시다가 형 잡아먹히면 어쩌려고요.”

“그것도 능력이다. 회사만 키울 수 있다면야, 이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회사 욕심이 커지는 법이야.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 그것은 야망이 없는 인재를 가지고는 힘든 일이지.”

김대위는 맑은 소주를 따르면서 눈을 감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누가 뭔가를 물으면 그저 간단히 고개를 끄떡이거나 웃어 줄 뿐이었다. 누군가 느닷없이 ‘영자의 전성시대’란 영화를 봤다는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면서 따라 웃었다. 조카 중 하나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웃으며 ‘별들의 고향’도 곧 개봉할 것이라는 말을 거들자 웃음이 더 번졌다.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나 연예로 옮겨졌을 때, 사촌 동생 하나가 그의 어깨를 치며 잠깐 나가자고 말을 했다.

둘은 다른 방으로 건너와 담배를 하나씩 나누어 피워 물었다. 그는 군에서 보안대에서 근무하다가 정보부 소속 공무원을 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이끌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보면 정보부가 아니라도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었다. 지만 자주 만나지 못해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 그는 담뱃재를 털며 눈웃음을 치며 김대위에게 물었다. 그것은 일상적인 안부이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근래에서 일하지 못하지만 늘 그렇지 뭐.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배관 일을 하러 다니지 뭐.”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형수 애 날 때 가보지도 못해서 하여간 성격 유별나다니까. 돌잔치는 할 거지?”

“글쎄. 아마 그때 중동에 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을 들었으려나 모르지만.”

“들었어. 꼭 그렇게 가야 하나? 아직 애도 어린 데.”

“나도 서른이 넘어가는데 아이하고 살 집이라도 장만을 해야 하잖아.”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그,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할머니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그런 걱정 덜어 버릴 텐데. 형 같으면 빌딩이라도 하나 사 줄 걸.”

“할머니가 무슨 재벌이냐. 그리고 내가 거지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너는 어떻게 지내? 애들은 크겠다.”

“이제 네 살이야. 한번 키워봐 얼마나 이쁜 지 말이야.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좋아서 미칠 지경이라니까.”

“지금은 정보부 일을 잘돼?”

“할 만하지. 가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을까 생각이 들지만 뭐 먹고사는 직업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나도 더 늦기 전에 밖에 나갔다가 오려고 말이야.”

“어디를 가는데?”

“좀 멀 리가. 처는 못 마땅해 하는데, 한번은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서. 중동 쪽에 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왜 또 중동이야?”

“요즘 그쪽이 대세잖아. 정부 차원에서 중동으로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거든. 지금 돈 나올 곳은 그곳밖에 없어. 정부도 월남 철수 이후 중동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어. 나도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그쪽 생활 좀 해보고 오려고. 셋째 작은아버지도 동의하고.”

“사우디?”

“아마 가게 되면 그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기왕에 가장 업체들이 많이 나가 있는 곳이지 말이지.”

“잘하면 만나겠네.”

“그래서 형한테 미리 말하는 거야. 누가 먼저 나갈지 모르지만 나가면 그곳에 가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중동까지 가서 소주를 마시자고. 그거 나쁘지 않지.”

“형,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일로 기석이형을 만났는데, 형 소식을 묻더라고. 그래서 근래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해 주었지.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하고.”

“그렇지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를 못했지. 지금은 뭐하나 모르겠군.”

“다들 자기 길을 가고 있겠지. . 학교에 남아 있는 형들은 교수를 꿈꾸고, 아니면 취직을 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거나 누구야 형하고 친했던 형처럼 이러 저러한 조직사건에 연루되어 있겠지.”

“근데 형은 왜 그들과 헤어진 거야? 들리는 말에는 사소한 말싸움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

“뭐 말싸움까지야, 그럴 일이나 있겠어. 그런데 뭐 아까 중동에 간다는 말 말고 딴 할 말이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형이 중동에 가는 것을 작은아버지가 조금 우려를 하셔.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만 늘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걱정이 되시겠지. 다 젊었을 때 이야기 일 뿐이지. 그나저나 너라도 작은아버지 걱정 끼쳐 드리지 말고 잘해라.”

김대위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둘이 여러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창가에서 맑았던 하늘이 우중충하게 변하더니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다시 한 번 아이들 안더니 내 새끼라고 하며 아기를 볼에 비볐다. 김대위 가족이 밖으로 나오자 기사가 승용차를 열어 주었다.

사촌 동생이 밖까지 나오며 우산을 들어주며 승용차를 탄 김대위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잘 가 형, 가기 전에 한번 연락을 할 게.”

김대위는 그 말에 그의 어깨를 만져주며 차를 타고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3주일 후, 김대위는 사우디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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