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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10
    중동에 간 사나이 4

중동에 간 사나이 4

임동호는 노인을 쳐다보니, 쌍꺼풀진 눈이 쳐지고 눈알이 충혈되 취기가 한껏 올라 있었다. 짧은 손마디와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젓가락질해 김치 조각을 집어 올려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넘기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말이야, 나이가 어릴 때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질 알지만, 하긴 나도 그 말을 들으면서 일을 때려  치우지 못했지. , 며칠만 한다던 일이 사십 년을 훌쩍 넘겼어. 사실 별수 없으니 이 일을 했을 테니 달리 할 일이 있어야지. 트럭 타고 서울 올라오는 행렬 따라 고향 길 나섰고, 이기붕 죽었다는 소문 듣고 미아리에 새끼줄 들고 가서 말뚝 박아 내 땅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살았는데 말이야. 그저 하루하루 돈을 버는 맛에 질퍽거리며 현장을 떠도는 거지. 돈이라는 게 매일 쓰이는 거잖아. 개 팔자도 아니니 누가 알아서 밥을 줄 리도 없고.”

“이기붕 땅이라니요? 옛날 부대통령 말하는 건가요.”

4 19가 난 직후였지. 세상에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왕을 뒤집어 버린 사건이었어. 백성이 그래본적이 있었나? 얼마나 놀랬으면 전쟁을 치렀던 이승만도 하야하고 이기붕일가가 자살했겠겠어. 권력이 덧없다는 말이 그걸 두고 하는 말이지만, 부대통령쯤 한다면 총 맞아 죽는데도 할 만하지 않겠나?? 평생 땅을 파고 사는 것보다야 났지. 다 있는 놈들 이야기지. 하루는 일하려고 나오려는데 이기붕이 죽었다는 거야그네 땅에다 말뚝 박으면 내 땅이 된다고 소문이 나서 민가민가 했지만, 혹시나 하고 말뚝하고 새끼줄 들고 미아리로 갔었지. 거기에 가보니 벌써 곳곳에 새끼줄을 치고 움막을 쳤더군. 나도 틈을 봐서 말뚝 박고 천막 쳐놓고 다음날 또 올라가 보니 앞 움막이 내 줄을 침범했더군. 그래서 주인을 불렀더니 작고 시커먼 농사꾼 같은 놈이 나오기에 따졌지. 그랬더니 놈이 하는 말이, 시골에서 막 올라와서 이기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살림을 깔려고 하는데 집터가 작은 것 같아 내 땅을 조금 먹고 들어왔다는 거야. 어찌나 사정을 하는지, 딱해 보이기도 하고 해서 양보를 했지.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니까.”

임동호는 이기붕의 죽음이란 말을 들으니 장남의 손에 들린 총과 겨루어진 총구, 발사되는 탄알이 거물 정객의 머리카락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터지는 공기가 느껴졌다.

“내가 한번은 큰 건물을 짓는다기에 가보니 도면이라는 것을 주는데 죄 영어라, 뭐 하는 놈들이 있나? 그래 대충 생긴 대로 걸어 놨더니 미국 감리가 와서 어이없어 웃더니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 거라.”

임동호는 노인의 신세타령을 듣다 보니 노인의 이야기 따라가다 정석기형이 떠올랐다. 한 달간 일을 같이하면서 그는 머릿속을 온통 뒤엉킨 끈들처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석기 형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여야 하는 주문을 걸어 놨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이 일그러질 만큼 땅을 파고 옮겼을 텐데, 왜 노동자의 팔자는 바뀌지 않을까 하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뒤틀렸을까? 우공이산도 산은, 산맥의 지형이 서너 번은 바뀌었을지언정 자신의 팔자를 바꾸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에베레스트 산도 과거의 노동자의 산물일지 모른다. 노동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리 높게 흙을 파다가 쌓겠는가? 파미르 고원도 그럴 거고. 우주에서 여자들이 들락거리는 부엌까지, 사상과 전통 종교를 넘어 노동자는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건설을 하며, 노동자든 자본가든 사기꾼이 사기를 치고 할머니가 틀니를 씻는 이 시간에도 노동자가 세계를 가공해 가고 있다. 숱하게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해도 역시 노동자의 운명이 왜 바뀌지 않는가.

지겨운, 지독한 노동일,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단지 지겨울 뿐이고 지루하고 지독할 뿐이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는 게 재미를 느끼기에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빌어먹을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함께 일했던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젊은 김씨가 그렇게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노동일이 사람을 멍청이로 만든다니까, 고작 오줌 똥을 쌀 뿐이야, 그 외에는 일만 해야 한다니까’ 말이 이빨 사이로 새, 불분명한 말이었지만 뜻은 정확한 말이었다. 노인이 이 빠진 김씨를 이야기할 때 그가, 그의 푸념이 떠올랐다.

“김가 녀석은 틀렸어, 몸이 그렇게 굼떠서 말이지. 그나마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하루도 쉬지 않으니 일을 데리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놈들이지, 차라리 중동이나 다녀와서 한몫 잡고 때려치울 것이지.”

 

임동호는 조선소에서 잠깐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건설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장을 떠돌아다니며 일당을 받고 일을 하지만 생각처럼 조선소에서 일할 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가끔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까 생각을 하려다가도 자존심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조선소 일은 답답하기도 했다. 늘 현장을 돌아다니며 바람을 쐬어 온 탓에 한곳의 정착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하며 청춘을 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그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내친김에 중동에 가려고 신청서를 접수해 둔 상태였다. 노인 말대로 한몫 잡고 장사라도 한다면 큰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꿈이 부풀어 있었다.

남들은 넣는 대로 되어 중동으로 간다고 하지만 벌써 서너 달 째 번번이 중동행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게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거의 포기할 무렵, 정석기 선배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의 소개로 사람을 소개받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시험 감독감과 면접시험 때 거들먹거리며 기능에 대한 호기나 자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을 낮추었다.

“월 30십 만원도 좋고 40십 만원도 좋습니다. 중동에 일하고 싶습니다. 여기보다는 났겠지요. , 이 손을 보십시오. 여기 굳은살 말입니다. 누구는 중동에 가려고 손을 부풀리고 세면 바닥에 문지른 다니지만, 이 굳은살은 오로지 쇠를 만져 생긴 것입니다.” 손바닥을 내 보이는데 무엇을 달라고 하는 꼭 구걸하는 손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쳐가는 느낌이었을 뿐이다. 남들 중동에 가서 집을 샀네, 땅을 샀네 하는데 번번이 체불되고 낮은 단가에 매일 한대가리씩 채우고 앉아 있는 것만큼 무능하고 바보스러운 짓이 없었다. 자존심은 다 상하지만 그래도 갈 수만 있다면 이득이 아닌가, 중동에 가면 떠돌지 않고 계약기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뭐든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닌 현장에서 한 달째 체불이 되어 급기야 회사에 쳐들어가 사장 멱살을 잡고 싸우게 되었다. 이틀을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별짓을 다해 돈이 해결되어 기분이 좋아 김노인과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김노인은 계속 떠들어 댔다. 바닥에 물기가 흐르고 노동일을 하는 몇이 주변에서 비죽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고 주인 할머니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노동일은 말이야 절대로, 즐겁게 적응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익숙해지는 거지. 모든 꿈이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김노인이 목에 넘기기 어려운 쓴 약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하곤 소주를 마셨다. 입을 쓱 닦고는, “노동은 인간의 몸과 같아, 계속 사용을 하면 늙거든, 늘 하지만 항상 더 나아지기보다는 못해지지 말이야. 어떤 놈은 숙달되어 괜찮다느니,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다고 하는데, 그건 차라리 무감각해졌다는 말이 맞을 거야. 생각을 해봐, 인간도 기계나 다름이 없거든, 쓰면 소모되는 거야. 그렇지 않겠어? 밥도 한 삼일 굶으면 더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듯이일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면 말이야, 나이가 들어 예전에 다친 곳이나 무리한 곳이 하나 둘 이상이 생기더란 말이지. 그래서 아, 이치가 그렇구나 하는 거지. 그래서 옛날 선배들이 하는 말이 있잖아. 젊어서 한 공수 쉬는 것이 보약이라고. , 마시자고. 그게 세상을 탓할 일인지, 나를 탓할 일인지 말이야,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럴듯한 말이었다. 노인은 나이를 헛먹지 않았다.

“노동일을 하는 인간들은 참 이상해, 뭐 이상하다고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뭐랄까 성격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거든. 아까 말이지, 사장 놈을 붙들고 소리를 지를 때, 다 자기 말만을 하거든.”

“뭐가요?” 동호는 노인이 헐겁게 박혀 있는 이빨과 꼭 맞지 않는 위아래 입술의 율동을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

“사장새끼, 돈 없다고 버틸 때, 답답하니까 자기 심정을 드러내잖아. 어찌나 속으로 우스운지. 누구야 저기 전라도에서 왔다는 그 친구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잖아. ‘우리 어머니가 아프단 말이야 돈 내 놔!’ 하고 말이지. 나중에는 엉엉 울더구먼. 쪽 팔려서.”

“진짜 아픈가 보지요.”

“그럼 어머니 아픈 걸 거짓말 해겠어. 어디가 아파도 단단히 아프니까 그 말이 튀어나왔다는 말이지. 내 말은 왜 그때 사장한테 울부짖느냐 말이지. 그리고 박씨도 그렇잖아. ‘내 딸 등록금은 어떡하라고’ 사장을 윽박지르데.”

“절박하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아저씨도 참.”

“그렇겠지. 근데 왜 우리가 그런 사정까지 이야기하면서 일한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가 말이지. 그냥 당당하게 일 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될 것을.”

“아, . 아저씨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어요.” 동호는 노인이 주름을 잡아가면서 키득거리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마치 오후의 모습은 촌극을 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하마터면 그런 말을 내뱉으며 사장에게 하소연 겸 분노를 터트릴 뻔했다. ‘애가 굶어 학교에 못하고 있어요. 돈 주세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려다 자신이 왜 이 못난 사장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아마도 동호는 그들보다 형편이나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동호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절박해서 수치심보다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확실히 사장은 돈이 없어 보였다. 임동호보다는 열 댓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사십 대 초중반인 사장은 혀를 차기도 하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는 일꾼들을 보면서 사정을 하기도 했다. 더러는 아는 사람들이었고 더러는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한씨라는 말이 걸진 사내가 사장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대변을 보겠다고 신문지를 달라고 했을 때 놀란 여직원은 사색이 되어 밖으로 나가버렸고 사장은 그의 팔을 잡고 이러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 좀처럼 돈을 언제 주겠다고 말하지 않던 사장은 그제 며칠만 더 참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사장은 위 건설회사에서 돈을 주어야 임금이 해결된다고 버텼는데 대변을 보겠다는 행동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한가 놈, 갑자기 옷을 벗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야. 미리 말이나 하고 그 짓을 해야지. 하긴 가끔 일꾼들이 그 짓을 할 때가 있었지. 아예 나는 사장 책상에 누울까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야.” 노인은 마치 엉덩이를 깐 한씨에게 기회를 놓친 것처럼 아쉬워하며 말을 했다.

“앞에서 고추를 봤어야 했는데, 자네는 봤나? , 그걸 못 보다니.”

“아니요. 뒤에 있어서요. 볼품없는 것 봐서 뭐하게요.”

“궁금하잖아. 한씨 놈 툭하면 계집이 어쩌니저쩌니 했는데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거든.”

“그나저나 사장이 약속한 날 돈이 나와야 하는데요.” 동호는 소주를 마시며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판단해 보았다. 머릿속에 돈이 나와 받아 쥐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장이란 족속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늘 거짓말을 달고 다닌다니까. 벌써 몇 번을 미루고 또 미루었잖아. 안주면 이번에는 책상에 눕든, 똥을 싸든, 놈을 잡아다 코브라스틱을 걸든 이번에는 제대로 해 봐야지.”

“하청업자들이란 게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그러니까 왜 공사를 따서 일하는 놈들 못 할 일 시키느냐고, 능력이 없으면 일당이라도 뛰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 남들처럼 돈 벌어서 땅땅거리고 살고 싶은가 보죠. 이 망할 장갑을 벗어 버리고 놀면서 돈을 버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큭 취하는군. 하여간 기다려 봐야지. 이번에는 내가 아주 오줌 똥을 놈에게 갈겨버릴 테니까. 돈 몇 푼 때문에 별 이야기를 다 하네, 염병. 불쌍한 노가다 같으니. 동호 말이야. 내가 공무원도 해보고 이것저것 안 해 본 것이 없는데, 사는 게 늘 전전긍긍하게 되어 있어. 자기 일을 하기 전에는, 사실 자기 일도 만만하지는 않지만, 그저 한몫 잡거니 하고 시작했지만 역시 그 일이 다 그일 이더군. 뭘 해도 마찬가지야. 그러거니 하고 살아야지. 이제는 이 일도 얼마 해 먹지 못하겠지만. 아마 난 저 80년대가 오기 전에 땅 속에 묻혀 있을지 몰라.”

“땅속에요. 그곳에 가거든 쇠 만지는 일은 그만 하세요.”

그 말에 노인은 숨이 넘어가듯 웃더니 한잔 더 들이켰다.

노인을 부축하며 술집을 나왔을 때는 열 시쯤 되었다. 노인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간다고 하면 통금은 간신히 벗어날 것 같았다.

버스는 덜컹거리며 종로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술 취한 혹은 야근에 시달린 또래나 그보다 어린 친구들이 옆으로 길게 놓인 의자에 앉아 피곤한 몸을 흔들리고 있었다. 저들에게 각기 나름대로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 이름 안에 담긴 뜻은 그 누구 못지 않게 훌륭한 의미를 담고 있으나, 유감스럽게 사회적으로 공돌이 공순이의 처지에서 그 이름의 의미를 상실한 그저 번호와 같은 인간이 누구인가 식별을 위한 표피적인 의미만 부여되어 있으리라.

차장도 다리가 아픈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 입구 기둥에 서서 건들거리는 버스 따라 앞으로 뒤로 흔들리며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흐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깊게 떨어져 동호 어깨에 기대어 코를 골았다. 그의 코골이 소리에 매일의 노동에 지친 호흡이 흘러나오고 뼈다귀들이 될 대로 되라는 듯 흐느적거렸다. 노인은 꿈속에서도 일할 것이다. 그는 애당초 노동자로 태어났으며 노동자로 길러졌고 노동자로의 처지에 맞는 하류인생의 대우를 받고 있었다.

 

“너 무산자가 무슨 뜻인지 아냐?”

정석기는 술잔을 기울이며 동호에게 물었다.

“예? 무산자라니요?”

“너 노동일을 언제부터 했나?”

“그야 국민학교 졸업하고나서요.”

“한자는 좀 아냐?”

“이름은 쓰죠.”

“무산자란, 없을 무, 만들어 낼 산, 아들 자인데, 쉽게 말해 몸뚱어리로 먹고사는 가진 것 없는 놈들을 이르는 말이지. 달리 말하면 죽을 때까지 몸뚱어리를 굴려야 먹고 살 수가 있지. 누가 나에게 그 말을 해 주었는가 하면, 김대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난 번 싸울 때, 월남에서 만난 함께 일했던 친구요?”

“그렇지, 한 번 봤구나. 그 친구가 무산자를 말을 해 줄때는 잘 몰랐는데 그게 철학이더라고. 늘 살면서 절절하게 느끼거든. , 내가 무산자구나 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넌 오늘 네가 지진 된 용접봉을 다 기억하겠냐? 그저 그런 거지.”

 

버스 차장이 졸다가 앞으로 휘청거리다 정신을 차리더니 다시 기대고 서서 주변을 살펴본다. 노곤하고 피곤한 하루가 통금을 향해 올라서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루가 그렇게 간 것이다. 지나간 하루가 그렇고 올 하루가 그렇고, 한 바퀴 돌 때마다 한발 한발을 올려놔야 할 인생인데 좀처럼 변화가 없다. 석기형 말대로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장이 약속했던 돈이 며칠 미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사장은 당분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일꾼들은 그럴 처지가 안 되었다. 늘 돈에 쪼들리고 있었고 돈을 받으려고 계속 쫓아다닐 수도 없고 다른 현장으로 가야 했기에 모여서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당장 돈이 필요했다.

“너 돈이 나올 것 같아, 안 나올 것 같아?” 김노인이 사람들과 현장을 가로질러 사무실 쪽으로 가면서 동호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리 싸워도 돈이 없으면 안 나오지 않겠어요.”

“글쎄, 그럴까. 내가 보기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장이 돈이 있는데 며칠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나쁜 놈이죠.”

“그렇지.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희한한 일은 끝까지 싸우면 없다는, 정말 없다는 돈이 나온다는 게야. 어쩌면 일도 중요하지만 일하고 돈 받는 법도 중요하지.”

“일하고 돈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요.”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것을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질퍽거리는 현장 뜰 진흙탕을 건너뛰며 일곱 사내가 그들이 올리다가 만 철골 건물을 옆으로 하고 걸어갔다. 흙탕을 건널 때 청바지의 입은 동호는 자신의 아래 모습을 보았다. 사무실로 올라갈 때 스치듯 지나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리문을 통해 보니 귀를 덮으려고 하는 생머리가 답답하게 보였다. 마른 볼과 가늘고 긴 눈썹, 우울해 보이는 눈동자, 튀어나온 목젖과 헐렁한 세로 줄무늬 티, 옷 속에 감추어진 마른 어깨뼈가 느껴졌다. 돈을 받으려고 걸어가는 동료의 뒷모습은 남루하고 볼품없는 모습들이었지만 전과는 다른 모습이 느껴졌다. 지치도록 일을 하고 가정생활에 시달리고 그 많은 삶의 무게를 어떻게들 버틸까.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아. 현장 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그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거든.”

김노인이 사무실로 들어가기 직전 돌아보며 동호에게 말을 했다. 노인은 사무실을 들어가면서 느닷없이 돈을 내놓으라고 악을 썼다. 워낙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동호도 깜짝 놀랐으나 그 말에 홀리듯 빨려 들어가 자신도 돈을 달라고 큰 소리로 여기저기 둘러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데모하는 거야!”

나이를 먹은 직원 하나가 가로막으며 기죽지 않으려고 맞대응했다.

“데모고 나발이고 일했으면 돈을 줘야 할 것 아냐. 네가 돈 줄 거 아니며 비켜 사장 어디에서!”

덩치도 크고 힘이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강형이 관리자와 으르릉거리며 첫 기세가 붙자 지지 않으려고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듯 가슴을 붙였다.

“일을 시켰으면 돈을 내 놓으라는 거지 현장에서 일하는 놈이 개 할 짓이 없어 여기에 왔겠어. 콱 대가리를 뭉개버리기 전에 비키지 못해.”

강씨가 주먹을 쳐들어 치려는 태세를 취하자 그는 움찔했다. 그의 주변에 동호도 김씨 노인도 모여들어 뭔 일이 터지면 죄 뛰어들어 밟아 버릴 기세를 보이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툭하면 떼로 이러면 어쩝니까?”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거 아니야. 돈만 줘봐!”

“지금 사장님 없습니다.”

“시발, 도망가면 대수야.”

“도망이라니요, 말조심 하십시오.”

“말조심이나 마나, 돈 내놓으라니까.”

강씨가 그를 밀치니 그가 서너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욕지거리를 했다. 그걸 보고 강씨가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말렸다. 그때 김노인이 나서서 말로 하자면서 강씨를 뒤로 빼고 지난번에 분명히 어제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주는가? 더 이상은 양보하지 못한다고 말을 했다.

“우리도 그 현장에서 까졌어.”

“그래서 임금을 못 주겠다는 거야!”

서넛 되는 다른 직원들은 당황한 얼굴로 일손을 멈추고 한쪽에 모여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때 나이가 많은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상무라는 사내가 안쪽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며 무슨 일인가 물었다. 동호는 점잖은 체하는 그의 말투와 슬쩍 흘겨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표가 누구야!”

상무가 점잖게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반말하지만, 일꾼들에 대표가 어딧고 안 대표가 어딧어!”

그때 여자처럼 가늘고 째지는 목소리의 한씨가 나섰다.

“누가 반말했다. 그래요. 여여러 사람이 말하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대화는 당신들끼리하고, 우린 돈이나 달란 말이야.”

“왜 또 바지 내리게요.”

“못할 것도 없지.”

그가 바지를 벗자 단숨에 바지가 내려가고 회색 반바지 팬티가 드러났다. 근처에 있던 여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댔고, 들어와서 이야기합시다. 지금 사장님 안 계시니 내 연락해 볼게요. 거기 김대리 사장님 통화되나?”

그는 손을 저으며 덩치가 큰 사내에게 물었다.

“예, 아직 안 되고 있습니다.”

“다 짜구만.”

“짰다니요! 지금 사장님 부인이 암으로 병원 수술하려고 입원을.”

사장 부인이 암이라는 말에 동호는 좋았던 기세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 말을 직원 얼굴이 침울하게 굳어졌다. 다른 이들도 뭔가를 해야 하는데 다른 말을 못하고 멈칫하였다. 분명히 처음 들어올 때 이런 일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때 느닷없이 김노인이 책상을 발로 걷어차자 책상이 한쪽으로 밀리더니 위에 있던 책장이 한 바퀴 돌아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내 마누라도 지금 암에 걸렸는데 병원도 못 가고 있어!”

그 말은 마치 댐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대한 물처럼 동호의 귀에 울렸다. 사실일까, 왜 이런 의심을 할까? 노인이 일부러 그랬나? 그 말을 하자 다시 사무실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각자의 사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돈을 받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조금은 개운하지 않은 날이었다. 사장은 서너 시간 후에 돈을 가지고 와서 해결해 주었다. 그는 시간이 나지 않아서 하루 이틀만 미루려고 했다고 했지만, 일꾼들이 그렇게 급하니 자신도 억지로 시간을 내어 해결해 준다고 했다. 사장 처가 암에 걸린 것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걸 거짓말할 사람도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김노인은? 모르겠다.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마 거짓이 아닐까 동호는 생각했다. 그 말을처음 들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거짓이 어떻게 나왔을까? 거짓말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고 아무도 그에게 그 말이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날 돈을 받은 것이다.

그날, 술에 취해 김노인은 부축하여 집까지 함께 간 날, 아주머니를 봤었다. 마른 몸에 후덕한 모습, 손에 염주가 걸려 있었다. 그 밝은 모습에 암에 걸렸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동호가 늦어서 죄송하다고 했을 때,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었다. ‘난 이 집안 가장이야. 늦으면 어때, 난 가장으로서 떳떳하다고’ ‘아이고, 맞습니다. 가장님 술 맛있게 드셨습니까?’

아주머니는 인사를 하고 허세를 부리는 아저씨를 밝은 빛이 쏟아지는 집으로 들어갔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주머니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노인이 어떻게 그날 돈이 나올 수 있을 것을 알았을까? 아마 김노인은 어떡하든 그 날 돈을 받고 싶었던 것일 거다. 다른 사람도 그렇고. 또 김노인은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무엇이 생각이 많다는 것일까?

그날 집에 들어가니 전보가 와 있었다. 두일 개발에서 온 중동에 갈 수 있는 취업 통지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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