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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간 사나이2

 

2

 

김대위가 신경이 곤두서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짜증이 난다기보다는 감정이 불안정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는 줄곧 만성적인 속 쓰림으로, 신경성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지에서 외출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알 수 없는 냄새가 주는 불안함이 양 눈썹에 표시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의 코가 아닌 머릿속을 자극하는 오물 냄새에 신경이 거슬렸다. 사람에게 나는 냄새 같으면서도, 음식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 같기도 하고, 산화되는 쇠에서 나는 녹 냄새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저 민감해서 그럴 수도 있었고, 속이 쓰려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갈대로 엮어 만든 차양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와 탁자 밑 발등에 쏟아지고 사선으로 가른 빛과 그늘을 경계로, 나이테가 넓은 탁자 다리들 사이로, 먼지들이 반짝이며 휘몰아쳐다. 발그림자 한 개가 건들거리고 낡은 구두와 진흙 묻은 창 바닥이, 창가로 기어다니는 딱정벌레가 무늬처럼 앉아 있다가 휭하니 날아갔다. 그곳이 어디였나? 사이공, 담낭, 사이공이었을 것이다. 사이공 다리 보수 공사에 지원을 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 그 순간 요란한 타악기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울림이 입체적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소박한 악기에 비해 소리가 독특한, 누가 저런 음악을 만들고 들어왔을까? 긴 시간 정제되고 감상의 폭을 넓혀 왔을 음악이다. 그늘진 안쪽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세 여인이 연주자였는데 이마와 목에서 가슴골까지, 팔뚝에 땀을 흘리고 있다. 김대위 오른쪽 반대편에서 미군들이 손짓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백인 둘과 흑인 하나가 사각 탁자에 둘러앉아 맥주를 한 병씩 마시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김대위 바로 앞 탁자에 한 여인이 반쯤 찬 양주 한 병을 세우고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청색 원피스, 아니 청색 아오자이를 입었다. 그랬다. 그녀가 흰 긴 팔을 뻗어 오른쪽 볼을 괸 모습이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주인은 그냥 놔두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데, 그때 붉은 천을 두른 승려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김대위와 박씨 옆으로 지나갔다. 저벅거리는 발자국이 가볍기도 하고 어쩌면 헛것을 봤을 수도 있을, 그래서 더욱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유령처럼 가볍게 걸었다. 황갈색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그 황색 가사의 색이 어찌나 강렬한지 김대위 눈에는 어렸을 때 봤던 손톱만한 어떤 열매가 생각났는데 도저히 그것이 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손톱으로 찍기만 해도 번질 것 같은 깊은 황갈색 가사를 두른 깡마른 몸과 윤곽이 드러난 광대뼈가 다부진 인상을 주었다. 솟은 눈과 진한 눈썹, 두꺼운 입술과 검은 피부, 그의 눈과 깊은 눈동자가 빛나 보였다. 저 눈을 그 어떤 이상을 쫓는 것일까? 삶의 초월, 삶 속에 파묻혀 있는 죽음의 저 밑바닥, 아니 불타는 조국의 해방, 전선 없는 전쟁의 종식, 일상에 일상적으로 학살된 인간들, 지긋지긋한 전쟁과 이국 군인들, 그리고 이 더운나라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역겨운 인간들, 그 틈에 먹고 살자고 허우대를 흔들어 대는 노동자들. 승려는 앞을 똑바로 보고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잠깐 지나가면서 김대위와 박씨를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위는 헐렁한 가사를 보면서 그 안에 총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총을 잡고 걸어가는 척 하면서 갑자기 돌아서 총알을 쏟아 붓는다. 상상이다. 그럴 리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승려가 지나간 자리에 여인이 누워 뒤척이고 그 너머에 남자 주인이 승녀를 보고 합장을 하더니 주방을 보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승녀는 주인이 안내하는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쪽 작은 문으로 들어갔다. 미군들이 여전히 떠들고 있었다.

무더운 오후였다. 푸른 열대야자수 나뭇잎은 더욱 푸르게 빛이나 파란 기울이 아물거리며 솟아오르고, 뜨거운 볕으로 갈대창이 반짝이고, 김대위는 가슴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승려를 보고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때 문득 음악이 멈추었다. 무슨 내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음악이 끝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연주하지 않았으면 했다. 여인 셋이 연주를 했을 뿐이고, 음색만 기억날 뿐, 어떤 박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승려가 사라진 자리를 보다가 무대 가운데 있는 여인을 어디서 본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공사를 하다 보았나? 숙소 근처에 살고 있었나? 아니면 기분 탓일지 모른다. 잠시 후, 여인이 깨어나 몽롱한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얼핏 김대위와 박씨를 쳐다보았다. 박씨는 재밌다는 듯 여인을 보고 김대위를 쳐다보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박씨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의 누런 이빨과 붉은 잇몸이 보였다. 여인은 이십대 후반 정도 보였으며 앞에 다가서서 말이라도 걸고 싶을만큼 상당한 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인의 쌍꺼풀진 눈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눈동자가 취해 있었다. 대낮인데도 술을 마시다니, 김대위도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밤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았다.

저 새끼들, 여자가 가수라고 말하고 있는데.” 박씨가 미군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고 김대위에게 일러 주었다. 젊은 미군 한 명이 여인에게 휘파람을 불며 손을 들어 보였다. 여자의 눈길을 그들에게 가고, 여인은 주춤거리면서 일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앉았던 의자에 땀이 배겨 있었다. 약간 비틀거리는 여인의 몸매가 갑자기 비대하게 느껴지고 그녀의 장난기어린 영어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녀가 미군들의 탁자로 다가가서 악수하자 백인 군인 하나가 일어서며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으며 춤을 추었다. 여자는 손을 비틀거리며 어깨에 두른 손을 빠져나와 의자에 앉았다. 여자와 미군들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울려 퍼졌다.

박씨의 눈가가 붉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는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퍼 올렸다.

재미 하나도 없네. 날은 무지하게 덥고, 여기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 그는 이빨을 딱딱 마주쳤다. 그의 굳은살 배긴 손으로 볼을 쓰다듬었다. 왼손 엄지에 피멍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정도면 손톱이 곧 빠져나올 것이다. 김대위는 나가자고 했다.

갑시다. 좀 걸어 보자고, 앉아만 있으니 재미도 없고.”

김대위가 탁자에서 힘겹게 일어서니 무릎이 저렸다. 1시간은 족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박씨가 주인에게 술값을 냈다. 문을 나서 햇살이 뜨거운 밖으로 나오자 뒤로 여인과 병사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소년 하나가 낭패스런 얼굴로, 어쩌면 상기 된 표정일지 모른다, 긴장되어 있던 표정임이 분명하다, 녀석은 이미 마음으로 준비했을, 어느 선상에 오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힘껏 던졌다. 놈의 몸이 투수처럼 반쯤 구부려지며 손에서 검은 그 물체가 손을 떠났다. 그 소년의 선물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올 때, 박씨는 폭탄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그의 몸이 깜짝할 사이에 흙바닥에 던져졌다. 박씨의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말을 알아듣기도 전에 그는 엎드려 귀를 감싸고 있었다. 김대위는 달리 어떤 동작도 취하지 못했다. 검은 물체가 문 안으로 들어가자, 얼핏 돌멩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폭탄이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소년은 뭐라고 고함을 치면서 뒤로 돌아 신나게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서 비명이 들리고 탁자가 엎어지는지는 소리가 들렸다. 김대위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폭탄이 터지는 상상이 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길을 가는 사람들 이목이 자신과 엎어진 박씨에게 쏠려 있었고, 안에서 소란스럽게 달려나오는 미군과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주인 손에는 돌멩이 하나가 쥐이어져 있었다. 주인이 화난 목소리로 돌멩이를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얗게 질린 여인이 창가에 서 있었다. 박씨는 어이없는 얼굴로, 어설프게 웃으며 일어나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

망할 꼬마 새끼, 벌써 돌팔매질을 하니 폭탄 잘 던지겠군. 이 나라는 전망이 없다고 말했잖아. 이제 끝물이야. 이놈 저놈 가리지 말고 물건 팔아 한몫 챙겨 떠나야 한다니까.” 박씨는 자신이 엎드렸던 장소와 주인이 내 던지는 돌멩이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놈 저놈이란 말에 귀가 거슬렸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인마저도 종종 베트콩에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소문이 가끔 들렸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전쟁은 구분하고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구분하기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전선을 애써 지우면서 전쟁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나 긴 전쟁을 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이다. 그것은 왜 이런 전쟁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자 답이다. 베트남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중에 김대위는, 그 작은 질문이 좀처럼 뇌리에서, 폐부에서, 삶 밑바닥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 것을 안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잠시 후 그 웃음도 사라지고 대신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안에 있는 몇몇은 죽었다. 몇은 다치고, 우리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누가 그랬을까? 승려가? 술 취한 가수가? 아이의 돌은 또 무엇인가? 연기가 솟고 비명이 들렸지만, 이내 우리 우리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연인가? 모르겠다. 그저 그런 일이다. 기억, 기억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래 그런 사고는 전쟁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만한 일들이다. 문제는 이런 지리멸멸한 전쟁이기에, 삶 속에서 그런 중요하지 않은 일이 촘촘히 꿰져 있기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몸부림을 치는 근본적인 일이기도 하다.

 

화요일 조선소의 싸움은 지루하게 혹은 격렬하게 이어졌다. 김대위는 현장 사무소 창고에서 동료와 낮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싸움 때문에 아니라 동료들이 조선소 노동자들의 싸움을 핑계로 술을 끄집어내어 고기를 구웠던 것이다. 술이 거의 떨어질 무렵 다른 이들은 싸움을 구경하러 가거나 퇴근을 했다. 사무실에는 소장과 다른 동료 둘이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대위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창고 뒤로 돌아갔을 때 늦은 동쪽 하늘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대충 짐작했다. 벽에 그림자가 동쪽으로 향하고 전신주들에 널린 전선들이 더욱 쳐지게 느껴졌다. 멀리 바닷가쪽 갈매기들이 흩어져 날고 크레인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조선소의 기계는 멈추었고 싸움판으로 노동자들이 불규칙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연기가 나고 최류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생소한 광경을 보면서 김대위는 꿈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다. 꿈이 그의 귓가에 폭음을 남겨 놓았다. 귀가로 음악이 주는 울림과 돌멩이가 주는 느낌, 그리고 폭음소리, 그 사람들의 인생은 그 순간 무엇이었을까? 왜 그날 그 장소를 순간의 차이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혹시 그 자체가 기억이 아니라 상상이 아닐까? 가끔 기억조차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다.

그는 싸움이 궁금해졌다. 창고를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창고를 나섰다. 소장은 취한 목소리로 싸움 구경하지 말고 퇴근을 하라고 일러 주었다. 낮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취기가 가시지 않아 뒷골이 당겼다. 젊은 소장은 자주 술판을 벌였다. 눈이 작고 위로 째져 올라간 성깔 있는 눈은 술을 마시면 그의 과거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돈도 더 벌고 싶고 공사도 맡아서 하고 싶은 욕구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현장 사람들은 소장의 소리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못하였다. 그저 일하는 시간에 술을 마시기 때문에 기분을 내며 목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그럴 듯한 무게를 잡고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만 듣고 보면 술처럼 허망할 뿐이었다. 그에게 대모는 남의 일이었으며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이는 그림 한 장 텔레비전에 비쳐지는 뉴스를 현실로 볼 뿐이었다. ‘다 허튼 짓 아닙니까? 우리 같은 일당쟁이 노가다만 불쌍할 뿐입니다. 상여금이 있습니까? 퇴직금이 있습니까? 그나마 이들은 더 났다니까요. 싸울꺼리나 있지 않습니까? 안 그렀습니까?’ 소장은 앞에서 끄떡이는 노인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였다.

거의 오후 7시쯤 되었다. 평소 같으면 퇴근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할 시간이다. 정문 쪽으로 가니 차량 두 대가 불타고 있었다. 본관 건물 앞 유리창이 박살이 나 있었고 한쪽 벽이 그을려 있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가려고 경찰과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이 점심때보다 서너 배는 더 불어나 노동자들을 막고 있었다. 노동자도 그때와는 다르게 더욱 많이 늘어나 숫자만큼 거칠게 행동을 했다.

멀리 돌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노동자들 속으로 떨어져 굴렀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각목과 파이프를 든 노동자들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경찰 곤봉과 엉키었다. 어지러운 고함과 각목 부딪치는 소리, 돌 던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주변을 에워쌌다. 몇 미터 앞으로 나아갔다가 몇 미터 뒤로 물러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깨진 돌과 나무토막, 종잇조각들과 최류탄 가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변에는 청색 작업복을 입은 젊은 노동자들의 노기 띤 얼굴이 흰 이를 드러내고 정문을 뚫으려고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같았다. 경찰들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노동자들이 빨리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노동자들이 왜 이러는지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단지 경찰들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이나 언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되면 상점의 문을 열고 손님이 오면 문을 팔고 신문을 읽고 일상을 논하는 그들이 타는 듯 한 용접 불꽃 속에서 머리를 박고 온 종일 지내는 그들의 생각을 어찐 안단 말인가? 조선소 밖의 그 어떤 두뇌와 안구 두 알로 그들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단지 분석을 하려고 대들 것이다. 카메라도 그들의 심장이 어떻게 뛰는 보여줄 수 없으며 정치로 논할 수 없다. 이러 저러해서 노동자들이 이렇게 행동을 할 뿐이라고. 그리고 서류철에 상세히 기록을 하고 곧 다른 사안을 들춰 보며 빨리 잊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말이다.

노동자, 하층 노동자는 깨끗한 제복을 입고 근무를 하거나 뱃지를 달고 배를 앞으로 내미는 자들은 함께 어깨를 두른 다는 것을 거창 표어나 포스터 제작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신분이 다르다는 것, 아닙니까? 신분이’ 아니면 ‘차라리 그들의 어깨에 내 손을 올려놓느니 팔을 자르고 말지, 안 그래?’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더러운 패배자 같으니, 사회의 쓰레기나 치우시지, 아니면 쓰레기통이나 만들던가? 저기 꺼지란 말이야! 부랑자 같으니’ 그들에게 생각하는 뇌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뇌가 있기는 해도 감정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경찰들 생각대로 화요일 오후는 여느 때처럼 일하고 쉬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날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교대로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며, 조선소에는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행하는 연속극이나 보면서 소주를 들이켜야 할 시간에 돌팔매질이라니. 다른 가까운 부산이나 경북도청에서 지원을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는 형편이 되었다. 공장에 밀어 넣어 해산시키란 말이야, 라는 위에 간부들 만에 그렇게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노동자들은 마치 공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양 격렬하게 정문을 돌파하려고 밀집되어 있었다.

야간자까지 차츰 불어 수천이 되어 정문에 모여들었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갈수록 커지는 도시의 밤은 여느 밤처럼 넘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할 시간에, 노동자들은 나오지 않고 근처 지방이나 도시에서까지 경찰이 몰려와 진을 짜고 노동자들과 대치하며 싸움을 벌이며 도로를 차단하였다. 경찰차들이 입구를 봉쇄하고 불타는 승용차와 본관 유리창을 깨고 전단을 날리는 노동자들을 마주 섰다. 시민이 모여들고 방송사 기자들도 최루탄이 터지는 시위현장에 끼어들어 사진을 찍어 댔다. 조선소와 조선소를 둘러싼 도시가 정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과연 노동자들이 정문을 뚫고 나올 것인가 말 것인가, 이 일이 어디까지 확산 될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군인들까지 주요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 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날은 확실히 후덥지근한 낮이었고 밤이 되자 더위가 조금 누그러뜨려 졌다. 시위 현장에 여기저기 군불이 타오르기 시작하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시 되었다는 소문에 싸움은 더욱 거세게 일어났으며 노동자들은 끝장이라도 보려는 듯 더욱 싸움에 집중했다. 어둠이 내리자 정문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들이 차츰 밀려나기 시작해 노동자들이 조선소 밖까지 진출했다.

경찰 책임자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지휘를 하다가 노동자들이 던진 돌에 맞아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노동자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노동자들은 기세를 몰아 더욱 세게 밀어붙여 도로를 완전히 점거하고 경찰들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대위는 시위대의 중간에서 전체 대오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한편으로 어떤 해방감을 맛보는 듯했다. 경찰이 정문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을 더욱 힘을 내어 위험을 감수하고 돌팔매질과 각목을 휘두르며 소수 혹은 다수가 어울려 밀리는 곳과 밀어내는 곳을 적절하게 움직이며 조정해 가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아침에 대오를 이끌었던 집행부는 싸움이 커지자 어찌 해보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저 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설사 손을 떼지 않았다 해도 이미 노동자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위가 보기에 이 싸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들도 단지 울분으로 모여들어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권력에 대응해 어떤 실마리를 풀어 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의견이나 선동이 있었지만, 돌발적이었으며 싸우는 노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견도 있었다.

죽여 버려!” 경찰 하나가 노동자들에게 끌려나오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풀어 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군가 달려가며 경찰의 복부를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로 끌려가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말리는 사람보다 너도나도 뛰어들어 주먹으로 갈기거나 방망이로 등을 두드려 댔다.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외국인 숙소로 쳐들어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노동자들이 깔깔거리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 웃어 댔다. 그 웃음소리가 김대위도 웃게 하였다.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면서 같잖은 이야깃거리로 웃는 웃음과 다르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노동자들의 얼굴이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분노로 보이지 않고 흥분된 얼굴이 흥분되어 보이지 않았다. 일할 때의 얼굴은 지친 듯한, 그늘진 표정들이었으나 조선소 밖으로 나온 얼굴의 표정은 일할 때의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증명했을 때의 기분, 그리고 의무가 아닌 스스로 나와 스스로 싸움의 규칙을 따라 행동하는 무리, 그들은 서로 봐주고 있었다. 누군가 지휘하며 어디를 막고 어디를 치는 것이 아닌, 서로 눈과 입이 되어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자들이 정문을 뛰쳐나오고부터는 경찰들의 행동이 다소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이미 스스로 이들을 통제하기에는 노동자들이 수적으로나 도심으로 나와 버린 지경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묘하게 애초 도심으로 진출해 뭔가를 하겠다는 의식이 없었던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저항선이 있었기에 집중을 할 수 있었지만, 경찰의 저항선이 뚫려 버리자 목적을 잃어버린 종이비행기와 같았다. 지도부는 없었고 다음 행동에 대한 지침이 멋대로 변해 버린 것이다.

시내로 가야 한다니까. 이 기회에 우리의 입장을 알려내야 해!” 누군가 외쳐댔다. 그 노동자 말에 여러 사람이 동의했지만, 다는 아니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갖추기에는 아직 준비 정도가 미흡했다.

김대위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나에 망설였다. 그저 따라다닌 것 이외에 할 일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 애초 구경을 왔던 거야.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바로 옆의 노동자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도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외국인 숙소 쪽으로 들락거리는 노동자들을 쳐다보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며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멀어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서 뭐해?” 뒤에서 석기가 어느 틈에 다가와 그의 어깨를 쳤다. 김대위는 그를 보니 얼굴에 취기가 올라 있었다.

이 엄중한 판에 술 마셨나?”

정문을 돌파했는데 안 할 수가 있나?” 그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즐거워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되기는 이제 집에 가야지. 퇴근 시간 지났잖아. 조금 있으면 통금이라고. 푸하하하!” 그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김대위는 얼굴을 문질렀다. 주변의 다른 노동자들은 웃지 않고 있었다. 뭔가 상황의 전환을 바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면 김대위 자신이 그들 쪽까지 왔거나 싸움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그럴 수도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매우 큰 사건 같은데, 정회장이 들어줄까?”

위임제를? 모르지. 그러기는 어려울걸.” 그는 잠깐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도 없었겠지만, 웃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 있다 ‘다시 내일 관리자 새끼들을 또 봐야 한다는 게 지겨워!’ 하고 혼잣말처럼 말을 했다.

회사 생활이라는데, 마치 군대생활처럼 하거든.”

정강이도 까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참을 수 없을 때가 잦지, 이 나이에 굽실거리며 삶을 구걸하기가 쉽지가 않지. 여기 노동자들이 여기까지 나온 이유야 많지만, 꼭 뭐 더 달라고 싸우고 있겠나, 그건 장사꾼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지. 인간적 모멸감이 때로는 모든 걸 걸게 만드는 거지. 간부들은 노동자 알기를 사람 이하로 아니까. 쪽팔려서.”

차라리 노가다나 뛰지?”

그러게 말이야. 아는 형님은 그래도 이곳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있자고 하는데 말이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전망이 없다는 게 무엇보다 힘들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겠지. 일하고 또 일하고, 거기다 사람 뭐로 알고, 계속 억누르려고 하니 말이야. 무슨 돈 짜내는 원료도 아니고, 어떨 때는 내가 개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이제 우리도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하나? 염병.”

그것이 바로 인생 아닌가? 책임져야 할 처와 자식이 있다는 것이, 삶의 무게라는 말이지.”

그렇지 이제 삼십 대야, 누가 그러더군 사십 금방이라고.”

한번 둘러보자고, 싸움이 이 상태로 끝나면 안 될 텐데, 달리 할 일도 목표도 없으니.”

김대위와 정석기는 소강상태로 가는 싸움을 둘러보려고 앞으로 나갔다. 노동자들이 진을 짜고 경찰과 대치를 하기는 하지만 전체가 어찌 움직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주변에 생각이 많은 노동자는 차츰 꽁무니를 빼거나 한발 빠져 관망하고 있었다. 이미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김대위가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네 시간 째 그들 틈에서 돌아다닌 것이다.

정석기는 한 바퀴 돌더니 술을 마시자고 했다. 김대위는 그의 손에 이끌려 가까이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앉았다. 그 안에는 다른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석기는 소주를 시켜놓고 둘이 마시다가 뒷자리 그들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신이 났는지 술을 주고받았다. 김대위가 한 시간쯤 앉아 있다가 아예 자리를 옮기는 것을 보고 슬며시 빠져 나와 바깥바람을 쐬었다.

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줄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내까지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김대위가 옆의 나이 든 노동자에게 물으니 그는 아쉽다는 듯 말을 했다.

그래도 오늘 대단한 싸움을 했잖습니까?”

그럼요. 대단하다 말다요, 신났지요. 나도 이런 싸움 4·19때 서울에서 해보고 처음입니다. 새삼 느끼지만 싸움은 숫자 아닌가 합니다. 보십시오, 숫자가 없으며 이게 어디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경찰에게 반 죽었겠죠.”

깡마르고 볼이 움푹 패인 오십은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손에 돌멩이가 하나 쥐여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왔습니까?”

먹고 살려고 전국 안다닌 곳이 있겠습니까? 말 같으면 말굽이 서너 번은 닳아 졌을 겝니다.” 사내는 마르고 주름진 볼을 잡아당기며 그의 말을 따라 그의 인생 여정을 더듬어 보는 듯 했다.

조선소 벌이가 괜찮다고 해서 새끼들 데리고 와서 자리 잡으려고 했더니 위임젠가 뭔가로 갈수록 조건이 나빠지니 말이오. 관리자들은 어찌나 위세를 떠는지 우리 같은 나이 먹은 놈들이야 성질 죽이고 넘어 간다지만 젊은 놈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정회장이 다 직영으로 돌려줄까요?”

턱도 없는 소리마쇼. 시내로 가서 누구 하나 죽어야 한다니까요. 확 뭔가를 불살라 버려야 그때야 ‘어이쿠 놈들이 화가 났구나, 달래야지.’ 하는 거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한두 번 겪어 봅니까. 사람이 만 명이 넘는데 오늘 한 3천 모였습니다. 반도 안 되죠. 그렇다고 다 싸웁니까. 더러는 구경하고 따라만 다니죠. 불구경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요구 사항이 이루어 질 리가 만무하죠. 어떤 놈은 되려 역정을 다 냅디다. 경기도 안 좋은데 데모 질을 한다고 말이요. 내 댁이 우리 식구가 아닌 것 같아 말을 하지만, 멋도 모르고 싸우는 놈들도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움을 싸움답게 해야지 싸움이 되는 겁니다. 군대 다녀왔으면 알 겁니다. 고지가 있어야 하고 전술이 있어야 하거든요. 딱 짜서 여기까지 치고 가자해야 하는데, 내 생각인데 정말 시내까지 밀고 가서 일을 벌여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있을 겁니다. 안 그래요?”

네 그렇기는 한데.”

싸우다 어설프게 끝내면 되레 당합니다. 경찰 놈들이 내일이며 죄 잡아들일 거요. 망할 자식들, 그나마라도 이렇게 해 줘야 더는 못하겠지만.”

그나마라니요?”

직영에서 위임제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더한 꼴을 볼지 누가 압니까? 나는 장사꾼들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내가 공부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설설 기면 아예 간 쓸개를 빼먹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구경만 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가서 돌멩이 하나라도 더 던집시다. 그게 다 남는 거라니까요. 아닌 것 같습니까?”

그러죠.”

김대위는 키 작은 노동자를 따라 돌멩이를 들고 따라갔다. 그와 몇 번의 돌팔매질을 어둠속에 먼발치에 있는 경찰을 향해 했다.

다음에 또 싸운다면 꼭 시내로 나갈 겁니다. 아니 청와대까지요.”

내가 오늘 이 싸움을 따라다니면서 딱 하나 배웠습니다. 아저씨 한 테요.”

뭘요?”

기회가 있을 때, 돌 하나라도 던져 놓아라, 그게 다 값을 할 것이다.”

그러다마다, 여부가 있습니까.”

김대위는 나이 든 노동자와 헤어져 주변을 돌다가 정석기가 있는 자리로 가니 그 자리에 없었다. 취해 집으로 간 것 같았다.

다른 노동자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어두운 거리에 돌과 부러진 나무들, 날리는 종이들만 쓸쓸하였다. 김대위도 거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니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장딴지도 부어 그제야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니 다른 동료가 모두 잠에 들어 있었다. 대충 발만 씻고 자리에 들어 곯아떨어졌다.

김대위와 그 일행은 다음날 아침을 먹고 가방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일이 잠시 중단되었다. 올라오는 와중에 뉴스를 들으니 조선소폭동 사건이 뉴스에 자주 나왔다. 그날 새벽에 경찰이 독신자 아파트에 들어가 수백 명의 노동자를 검거하였다고 했다. 이제는 그날의 해방감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받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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