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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지] 피해자를 더 괴롭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신청 조사, 농성장 철거로 힘들었던 9월 1일, 2일의 일기

 

농성장 일지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여성가족부앞에서 농성장을 차린 것이 벌써 두달이 넘어간다. 소속이 불투명한 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다. 양옆에서 날 감시하는데, 지켜준다고 생각하며 고마워해야 하는건가, 눈빛도 좋지않고, 어디서들 왔을까.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깔끔하게 하얀셔츠입은 남성들이 텐트쪽을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얘길한다. 그중에 한사람이 저렇게 해도 여성가족부에서는 꼼짝도 안할거라고 하며 건물뒤로 사라진다. 무슨 뜻일까.

 

지난 목요일은 힘들었다. 몸이 아파 한발자국 떼는것도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안좋았다. 11시까지 노조로와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한것 조사를 받으러 가야한다고 해서 임이 하나도 없는 몸을 이끌고 노조에 도착했고 아침부터 또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하루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하루가 고생길이었다.

가는길 오는길, 가서 조사과정이 마치 내가 큰 죄를 지은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고 내가 말하기가 힘든 대목에 잠시 망설이면 조사관은 마치 죄인을 취조하듯이 내가 잘못을 했으니 말하지 못하는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대했다. 유도신문 하듯이 내가 망설일때마다 “아줌마, 다 알고 있으니 말하세요.”하고 독촉했다. 뭘 다 안다는걸까. 다 알면 왜 묻는거야.

얼른 이 끔찍한 시간이 끝나길 바라는 맘에 더러워도, 기분이 나빠도 물어보는 대로 다 답했다. 몹시 불편하고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오늘 내몸이 몸살이나서 많이 아프니 조금 빨리끝내주세요 하고 부탁까지 했다. 그런데 4시간 30분을 내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자고 한것 말고는 꼼짝없이 질문에 답했다. 지독한 사람이다. 아무리 멋모르고 묻는대로 답하는 내가 혼자 앉아 있다해서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가는길 오는길 조차 힘들어 발가락에 물집이 다 잡혔다. 지친몸을 이끌고 농성장에 9시 반이 돼서야 도착했다. 그렇게 장시간을 조사받았는데 조사관 얼굴도 기억이 안난다. 지겨웠다.

 

농성장에 와보니 그시간까지 나를 기다려주는 동지들이 지키고 있었다. 참 고맙다. 민우회에서 촛불문화제를 성대하게 치렀다하고 물티슈도 한박스나 주고갔다. 문화제도 못보고 하루종일 고생만했다.

 

수정씨는 나를 금속노조 노안부장과 보내고선 밤늦도록 오지 안으니 한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도착해서 하루종일 있었던 얘길하니 속상해서 막 울어버린다. 괜히 얘기했나 싶다. 그래도 말이라도 하고나니 속이 좀 시원했다. 어디를 가든지 수정씨가 같이 안가면 불안하다. 하루종일 불안했다.

 

이날밤에 좋은 동지 한사람을 또 만나게 됐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을 했던 조성웅 동지란다. 첫인상이 옛날시대라면 장군감이었을 사람으로 보인다. 지금 요새시대로 보면 좀 그렇다. ^^ 산적같은 조검 험한 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동지인데, 제법 붙임성있게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내가 없는 문화제에 즉석에서 미완성 시를 지었단다. 조그만 수첩을 꺼내서 피곤에 지친 내게 그시를 읽어주겠다고 꺼낸다.

‘이 자리가 치유의 자리일지니’ 시가 슬프고, 마지막 구절엔 위로가 되었다. 이런 시인과 같은 동지들과 얘길하고 있으면 나도 시인이 된 착각에 빠진다. 어쨌든 좋았다.

 

지친몸에 늦게 잠이 들었는데 아침일찍 달리는 차소리에 잠이 깼다. 조성웅동지는 벌써 일어나 앉아있다. “와 벌써 일어났어요. 더 자요.”한다.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다. 함께 지난밤 농성을 한 민주노총 여성위원장님은 아직도 잔다.

 

아침일찍부터 그런데 심상치가 않다. 자꾸 농성장 구석구석에서 우리쪽을 쳐다보는 눈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건물 안에서는 관리인들이 심란하게 신경을 쓴다. 농성장 뒤편에는 언제 갔다놨는지 포크레인이 있고, 모르는 얼굴들이 무전기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것이 분주하다. 노조 사무실에 가있던 수정씨도 조금후에 왔고 얼마후 건물주 관리인 과장이라는 사람이 농성장을 치우겠다고 한다. 안된다 했더니 어디서 왔는지 남자용역, 여자용역들이 꾸역꾸역 나타났고 농성장을 밀기 시작한다.

 

그동안 내 주변에서 정체도 모르게 나를 감시하던 수상한 인물들이 약속이나 한것처럼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앉아있는 텐트를 끌어내기 시작한다. 시민들 눈치를 보아가면서 수정이가 텐트속으로 갑자기쏙 들어가 버리고 용역깡패들이 아랑곳 없이 밀기시작하고, 나는 속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야 여자 용역깡패들이 수정이를 강제로 끌어내고 나는 저만치 넘어진체 텐트는 치워지고 있었다.

지나가시던 아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진 내 핸드폰을 주워주고 “못일어나겠어요?” 묻더니 지나간다.

나쁜놈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일을 한단 말인가. 저들은 짐승만도 못한짓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텐트는 다 뜯겨지고 조금후에 갑자기 내눈앞에 포크레인이 오는것이 보인다. 그순간 아무 생각도 안났다. 오로지 가서 누워야 겠다는 생각밖에 안났다.

한바탕 정신이 없다가 박승희여성위원장님과 여자셋이 허탈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락받은 동지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때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분회장님 부부가 아이와함께 돌잔치때 들어온 돈 중에 일부를 투쟁기금으로 주겠다고 찾아왔다가, 오는날이 장날이라고 온김에 잘 싸워주고 갔다. 김형우부위원장님과 노조 사무처동지들이 오고, 마리농성장 친구들, 재능지부 동지들, 가까운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다 모였다.

 

오후가 되어 두 번째 침탈을 하려고 중구청 철거반이라는 사람들이 생긴것도 정말 족제비 같은 것들이 잔뜩화서 텐트를 치우겠다고 한다. 시민들이 다니기가 불편하여 민원이 들어온다고 야단이다. 조금 있다가 경찰병력이 동원됐다. 여경들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기아차 분회장님의 돌백이 아기를 유모차채 들어서 옮기려고 한다. 3명의 여경이 아기를 들어올리는데 그 옆에는 임신8개월의 만삭이된 금속 여성부장도 있었다. 정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할짓이 있고 안할짓이 있지, 저것들이 하늘 무서운것도 모르고 간난 아기와 임산부까지 손을 대려하다니, 민중의 지팡이라고 한느 경찰들이 저런짓까지 하다니, 세상이 말세다. 나는 “이것들아, 여기 임산부도 있다.”소리를 쳤다. 한여경이 유모차를 내려놓게 하고 지네 상관인지 가서 물어본다. “임산부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러더니 여성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선다.

저녁 7시에 침탈 규탄집회 후 텐트를 다시 쳤다. 그런데 이번엔 경찰들이 떼거지로 몰려왔고 용역과 건물주, 중구청이 합세해서 못치게 난리를 친다. 경찰들은 힘없는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깡패를 도와주고 있다.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갈만한 사건이다. 경찰이 어떻게 매번 이럴수가 있던 말인가. 결국 많은 동지들이 온힘다해 싸와 연대의 힘으로 텐트를 다시쳤고, 경찰관은 구두 한짝과 부러진 붉은색 민중의 지팡이 하나를 떨어트리고 갔다.

 

이날 바람같은 사나이, 김기식 동지도 소식을 듣자마자 씩씩거리면서 달려왔다. 혹여 여성둘이 어디 다치기라도 했을까봐 잔뜩 화가난 얼굴을 하고선 “누님, 괜챦으세요?” 하며 수정이를 찾는다. 그얼굴과 말을 들으니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루종일 3번에 걸친 전쟁을 치루고 우리는 지친 몸을 추르셔서 깔판을 펴고 술을 한잔했고 농성장을 다시 꾸몄다.

우리가 텐트를 새롭게 정리하는 옆에는 밤새 몽구산성을 따라 여가부 산성이 지어졌다. 이것들이 하는짓은 약속이나 한것마냥 다 똑같다.

 

다음날 아침일찍 몸을 추슬러서 피켓을 달고 이것저것을 여성가족부 펜스 산성에 붙이고 나니 여성가족부 주변이 이미지 실추가 더된다. 그냥 두면 작고 초라한 텐트 두 개를 건드려서 여가부 건물이 더 지저분해 진 것이다. 그 아침에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나더라 양심도 없이 남의 가게앞에 텐트를 쳤다고 당장 치워달란다. 이 말을 나에게 하기전에 건물 관리인들과 함께 웃으며 얘길나누더니 나에게 와서 호통을 친다. 건물관리인들과 그런 말을 한것 같다. 편의점 아저씨랑은 싸우기 싫어서 아무소리 안하고 아저씨 뒤에서 무전기 들고서서 웃고있는 건물관리인에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줬다. 그덕분에 목이 상해서 99일문화제때 민들레처럼을 못불렀다.

 

이번에는 건물 청소하는 사람이 화분에 물을 준다면서 호수로 텐트옆에서 물을 뿌리기 시작한다.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다. 텐트 안에있는 침낭까지 다 젖어 버렸다. 급히 금속노조 정유림 여성부장에게 전하해서 스티로폼을 새로 사다깔고 한바탕 정리하느라 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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