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
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두 나라,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한 이 지방에 가서 현장조사하고, 비문과 출토문물을 찾고, 역사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들을 돕도록 하겠다. 이렇게 긴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문자로 기록된 역사자료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조선 두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세워야 한다.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진, 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전쟁이 실패하자 그냥 돌아왔을 뿐이지 분명한 침략이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이때 바로 발해가 일어났다. 이후 동북에는 바로 요족(痢), 금족(金族)이 발흥했다.
그때 중국이 맞닥뜨린 문제는 요족과 금족의 중국본토 침입문제였다. 다음은 몽고족이 문제였는데, 원나라도 역시 당신들을 침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조선과 직접 합동작전을 전개했으나 만주족이 매우 빨리 흥기하여 장백산(백두산) 동쪽에서 요하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이러한 시기에 한족(漢族)또한 일부가 동북지역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 만주족 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만주족은 중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만주족 이전, 원나라 역시 매우 크게 확장했지만 곧바로 사라졌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읽을 때는 종종 부주의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읽었던 여러 서적을 그대로 접수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고, 책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연극중에 당나라 사람 설인귀가 있는데, 그는 바로 동방을 정벌해 당신들을 침략한 사람이다. 우리 연극에서는 그를 숭배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국가이며 여러분 나라도 역시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극이 다시 상연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이 연극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중국에는 베트남을 정벌한 두 영웅 즉 마원과 복파(伏波) 장군이 있다. 베트남의 두 재녀(才女)는 용감하게 항거하다 실패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자진했는데, 장군은 그 목을 잘라 낙양으로 보냈다. 나는 베트남에 갔을 때 두 재녀의 사당에 헌화하면서 마원을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마원을 극구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이 문물과 비석같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 2,3천년에 걸친 관계를 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될 것이다. 이상, 주은래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내용에서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고사는 밝혀져야 한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임시 정부의 이시영 전 부통령에게도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반증해 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림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림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1930년대 장려화와 그 문하생들의 노력으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이 편찬되면서 우리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으며 해방후 백화사기의 편찬으로 다시한번 조선의 역사는 지나인들에 의하여 왜곡 삭제 조작 되었다.
문화일보 2003년 4월 28일 기사.




종 목
국보 141호
명 칭
다뉴세문경
(多紐細紋鏡)
분 류
선사유물
수 량
1개
지정일
1971.12.21
소재지
서울 동작구 상도5동 1-1 숭실대학교박물관
시 대
청동시대
소유자
숭실대학교
관리자
숭실대학교
지금 중국인들의 조선관
중국은 우리의 옛 조선, 4,300년 전에 건국되었던 단군조선은 다 무시하고 2,090년에 기록을 완성했던 사마천의 사기는 인정을 합니다.
첫 번째는 사마천의『사기史記』에 4,700년 전에 있었던 탁록 전쟁에 대한 왜곡입니다. 사마천이라는 사람은 한무제(漢武帝 2,156년 ~ 2,087년) 당시의 사관이었는데, 당시의 한무제漢武帝는 흉노를 물리치고 정복전쟁을 펴고 우리의 북부여를 침범해서. 중화 중심주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던 그런 패권을 추구 했던 군주였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군주 밑에서 벼슬을 한 신하이기 때문에 사마천의 머릿속에도 그런 한무제와 동일한 중화제국을 건설하는 그런 야심에 부흥한 필체를 휘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4,700년 전에 황제와 우리 민족의 영걸지주였던 치우천황이 탁록에서 10년 동안 73회 전쟁을 하는데, 『환단고기』를 보면 치우천황이 황제를 무릎을 꿇어버리게 됩니다.
무릎을 꿇리고 신하로 삼아 오히려 그를 불러다가 삼천궁에 계시는 자부선생을 통해서 우리의 선진화된 문명을 중국에 전수를 해주게 됩니다. 그런 스승의 민족인데 오히려 황제가 치우를 잡아 죽였다 ‘금살치우(擒殺蚩尤)’했다. 이렇게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 사람들의 불의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한 것은 기자조선에 대한 왜곡입니다. 기자조선은 사마천의〈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를 보면. 지금 주 나라의 건국은 3,522년에 잡고 있는데. 기자가 가서 홍범구주를 무왕한테 설해줍니다. 그러니까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했다는 것입니다. ‘봉기자어조선이(封箕子於朝鮮而)’ 뒤에는 ‘불신야(不臣也)’라. 이게 아주 애매한 얘기인데. 봉은 기자를 봉했다는 겁니다.
기자는 목적어고 ‘於’ 다음에는 장소가 나오는데 조선에다가 봉했다 이겁니다. 봉기자어조선. 그런데 불신야라. 기자를 조선의 제후로 봉해줬는데 신하로는 삼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조선, 고조선이라는 것은 중국의 제후국으로서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애매하고도 모호한 얘깁니다. 지금의 중국 역사학자들도. 주나라 보다 1,000년~1,300년 전에 개국한 조선이 주 나라의 제후국이 되는 겁니다. 이 한마디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가 없는데. 이게 중국 사람들의 고조선관입니다.
기자는 조선의 제후로 봉해준 적도 없고, 이 기자라는 기는 원래 산서성 대곡현이 기 땅입니다. 거기에서 자작벼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기자입니다. 이름은 자서여라고 합니다. 기자의 이름은 자서여. 은 나라의 성씨가 자씨. 성탕왕의 성씨가 아들 子자 자씨기 때문에 이름이 자서여인데. 기자의 무덤이 어디에 있냐면 하면, 중국 하남성 상구시 북쪽에 있습니다. 거기서 죽었습니다.
지금은 기자가 활동했던 부근도 하남성 상구현 상구시가 되었습니다. 그 부근을 벗어나지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학자인 유명한 고일강도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그 사람들도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 동방문명의 주인공 치우천황
치우천황이라는 분은 누구인가? 치우천황은『환단고기』를 보면. 치우천황의 업적에 대해서는『환단고기桓檀古記』가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서 너 장을 치우천황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첫 째, 치우천황은 만세의 도술지종이다. 원문에 그렇게 나옵니다. 만세의 도술지종이다. 모든 도와 술의 뿌리가 되는 분이 치우천황이다. 황제와 전쟁을 할 때 큰 안개를 일으켜 가지고 황제를 압박하고 황제는 지남차를 만들어 가지고 도망을 가고 그랬다는 얘기가 현재 역사서에 나옵니다. ‘만세도술지종(萬世道術之宗)’이다.
둘 째, 치우천황은 중국과 한국에서 군신으로서 받들어 왔습니다. 군신. 무신武神의 할애비. 무신지조로서 받들어 왔는데. 이런 것을 보면 치우천황의 역량이라는 것은 돌아가신 뒤에도 한 고조 유방까지도 치우천황에게 계속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걸 보면 역량이 얼마나 깊이 미쳤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치우천황은 특기할 만한 것이 처음으로 철제 무기, 청동 무기를 개발해. 동두철액銅頭鐵額 갑옷을 입고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책을 잘 살펴봐도 부분 부분에 치우는 옛날에 천자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 그런 얘기가 나오고. 또 정연이라는 사람은 치우는 패천하였다. 치우는 천하를 재패했다. 그리고 『포박자抱朴子』를 보면 황제가 동방에 와서 자부 선생을 만나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공부해갔다. 이런 등등의 내용을 보면 치우천황에 대한 실존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 연구결과 중 일부 인용 “五星聚婁”
<단기고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제13대 단군인 홀달단제 50년, 즉 BC 1733 년에 다섯 개의 별이 서로 한군데에 모인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무진 50년 오성취루(戊辰 五十年 五星聚婁)' 라는 글귀로, 무진 50년에 다섯개 별이 루성(婁星) 근처에 모였다는 뜻입니다. 박창범교수팀은 조사 결과 BC 1733 년을 기점으로 하여 5백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오행성이 이보다 가깝게 모인 시기는 그보다 약 1백80년 전인 BC 1953년 2월 25일 새벽 단 한번밖에 없었습니다. 十三世檀君 屹達 在位 61年(BC 1782 ~ BC 1772) 13세단군 흘달屹達(一云 代音達)
己卯元年 甲午十六年 定州縣 立分職之制 官無兼權 政無越則 民無離鄕 自安所事 絃歌溢域
흘달(일운 대음달)
기묘 원년(BC 1782) 갑오 16년(BC 1767) 주와 현을 정하고 직책의 제도를 나누어 세웠다.
관리는 권력을 겸하는 일 없고 정치는 법칙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하니, 백성은 고향을 떠나는 일 없이 스스로 일하는 곳에서 편안하여, 거문고와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넘쳤다.
是歲冬 殷人伐夏 其主桀請援 帝以邑借末良 率九桓之 師 以助戰事 湯遣使謝罪 乃命引還 桀違之 遣兵遮路 欲敗禁盟
이 해 겨울에 은(殷)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정벌하니 하(夏)나라 군주 걸(桀)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임금께서 읍차(邑借)인 말량(末良)에게 구한(九桓)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도록 하니, (은(殷)나라) 탕(湯)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末良)에게) 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夏)나라) 걸(桀)이 조약을 위배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고 하였다.
遂與殷人伐桀 密遣臣智于亮率軍合與樂浪 進據關中 岐之地 而居之設官制
마침내 은(殷)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夏)나라) 걸(桀)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파견하여 견군(軍)을 이끌고 낙랑(樂浪)과 합하여 관중(關中)에 진격하여 빈.기(邠.岐)의 땅에 웅거하며 관제(官制)을 설치하였다.
戊戌二十年 多設蘇塗 植天指花 使未婚子弟 讀書習射 號爲國子郞 國子郞出行 頭揷天指花 故時人 稱爲天指花郞
무술 20년(BC 1763)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하여금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國子郞)은 길을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녀서 사람들은 이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戊辰五十年 五星聚婁 黃鶴來棲苑松
무진 50년(BC 1733) 오성(五星)이 루성(婁星)에 모였다.황학(黃鶴)이 날아와 궁궐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오성(五星) : 수성, 금성, 화성, 화성, 토성
루성(累星) : 西方白虎 七宿 중의 하나
일본의 조선관
일본 사람들은 단군을 아예 부정을 합니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기자는 인정을 하느냐? 인정을 안합니다. 왜? 기자를 인정하면 일본의 역사보다 길어지니까. 주周 나라의 건국이 BCE 1,522년이기 때문에.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를 600년을 늘려서 BCE 600년부터 역사가 시작 하는 것으로 해놨는데 BCE 1,122년부터 고조선이 있었다. 그러면 자기들의 역사보다 길어지니까 그것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사군부터 우리 조선의 역사를 일본 사람들은 가르치고 주입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주 철저하게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우리 역사가 왜곡이 되어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가 직접 문명을 전해준 나라인데 스승의 나라에 대해서 역사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관
북한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북한이 단군릉을 복원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을 했고 역사가 유구하게 진행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단군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많이 알고 있지 못 한 것도 사실입니다.
남한의 실증주의 사관
그런데 우리는 고조선의 역사를 국사 교과서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 하면. 단군이 건국을 했다 그건 한 줄이 나오는데 아무것도 없고 고조선의 토기와 유물을 조사해 보면 2,700년, BCE 700년 부터 고조선의 역사가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강단에 있는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유물만 가지고 구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료史料가 근본입니다. 그리고 그 사료를 증명하고 보조하는 것이 유물과 유적인데.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은 땅을 파서 유물이 나오면 그걸 가지고 역사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자기 집에 족보가 없으면 자기의 뿌리가 없는 겁니까? 그렇듯이 아직 유물이 안 나왔을 수도 있고 그런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문헌 사학은 문헌 사학을 근본으로 삼고 그 다음에 유물 유적을 방증하는 자료로 삼아야 되는데. 소위 실증주의라는 허구에 잡혀 기와 짝이나. 그릇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다 부정해 버립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느냐? 우리 민족의 정신사를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유물, 유적에는 정신사가 없습니다. 그런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는 것이 강단 사학자들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만조선부터 가르치는 남한의 강단사학
옛 조선은 과연 한나라에게 망했나?
전국을 통일한 진(秦 : BCE 221 전국통일 ~ BCE 207 멸망)나라가 15년 만에 망하고 난 후, 한 고조 유방(劉邦)과 초패왕 항우(項羽)가 6년 동안 아주 피가 터지도록 싸웁니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 전한 BCE 206~CE 8)제국을 열게 되는데, 그 7대 임금이 무제(武帝 : BCE 141~ BCE 87)입니다.
오늘의 사가들은 북쪽의 흉노를 굴복시킨 한 무제가 자신감을 얻어 동북방의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番朝鮮)의 부단군이었을 뿐입니다. 또한 진조선(辰朝鮮)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 속에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시대가 마감(BCE 238년)된 것은, 찬적 위만(衛滿)이 번조선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BCE 194년)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BCE 722~ BCE 403,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 위만조선의 진실
그러면 식민주의 사관에 물든 역사학계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위만조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입니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습니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습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BCE 194).
『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조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의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입니다.『사기』에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燕人]이라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안정복의『동사강목』에서는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라 했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乃一强盜]’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위만은 중국 한족의 인물로서,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인 것이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 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됩니다(BCE 194~BCE 108).
- 조선 역사를 부활시킨 동명성왕, 고두막한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합니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합니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입니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입니다. 그래서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립니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합니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고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입니다.
- 왜 중국인들은 부여사를 말살했을까?
북부여가 단군조선을 계승하였습니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라는 게 완전 말살됐습니다.
그 역사의 원형이 『환단고기』 「삼성기」상, 하 두 편과 「단군세기」에 나옵니다. 「단군세기」에는 47대 단군 역사가 나오고 「북부여기」상, 하에는 북부여의 역사가 나옵니다.
「북부여기」상에 해모수 단군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입니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인물입니다. 그런데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습니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습니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이 이 북부여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민족 역사의 맥, 사통의 허리가 잘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국통 맥이 연결이 안 됩니다. 지금 역사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부여의 역사를 중국의 사료에 맞추어 꿰매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덜너덜합니다. 이렇게 꿰매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저렇게 꿰매면 저런 작품이 나오고, 전부 애꾸눈이처럼 찌그러져 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전에 방영했던 주몽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나옵니다.
그게 다 중국 측 사료를 보고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해모수는 북부여의 초대 단군이고 주몽은 6대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인데, 어떻게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란 말인가! 북부여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열국시대의 역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부여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한민족을 제대로 알려면,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알려면 부여사를 알아야 합니다.
한민족 정복을 위한 일본의 식민 정책
일본은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을 하고서 초대 총독으로 부임한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군사작전을 하듯이 우리나라의 향교와 서원과 권문세가를 샅샅이 뒤져 우리의 사서를 싹 강탈해 갑니다. 그것이 약 20여만 권이 되었다고 「제헌국회사」라든가 문정창씨가 쓴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라는 책을 보면, 우리의 역사서를 한 20만권 정도를 일본이 탈취해 갔다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1916년에 다시 3년 동안 조선사를 편찬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의 역사서를 샅샅이 뒤져 중요한 것은 일본으로 다 빼돌려 갑니다. 그러한 내용이 KBS 역사스페셜에서 일본국 국내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박창화씨에 의해서 증언 되었습니다. 일본국 국내 도서관에 조선에서 약탈해 갔던 진귀하고, 희귀한 역사서가 지금도 많이 있다는 것이 증언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3대 총독으로 부임했던 사이토 마코토가 하달한 문화정책 교육시책에 너무도 자세히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가 모든 조선 사람들이 조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래서 민족문화를 말살 시키고. 두 번째로는 그것뿐만 아니라 조선의 무능함을 들쳐 내 그것을 가르쳐서 그들 조상들을 경멸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나서 일본의 역사를 넣어주면 이것이 조선 사람들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이 되고 첩경이 되는 것이다 하면서 그들의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마니시 류의 한국 상고사 조작극
첫 째로 조선사를 편수할 때 책임자가 이마니시 류라는 사람인데 이마니시 류는.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경도제대에서 역사학과 교수를 했는데 47살 때 박사학위 논문이 뭐냐면「단군고」입니다. 단군을 부정하기 위해서 쓴 논문입니다. 그 이마니시 류의 수제자가 이병도이고 이병도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어서, 과거 대학 강단에 있던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이병도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역사는 강단에서는 도저히 회복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 석유환인(昔有桓因)
이마니시 류가 세 가지의 중요한 역사왜곡을 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삼국유사』〈정덕본正德本〉이라는 것입니다. 『삼국유사』〈정덕본正德本〉이라면 정덕은 이때 중국의 연호입니다. 무종 때 연호인데 중국의 1,512년인데. 1,512년에 삼국유사를 중간 하면서 경주부윤으로 있던 이계복(李繼福)이라는 사람이 삼국유사를 중간(重刊)을 하는데. 삼국유사의 원본이 ‘석유환국(昔有桓國)’입니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 ’이것이 원문인데. 이것을 이마니시 류가 영인을 하면서 ‘國’자를 ‘석유환인(昔有桓因)’ 이라고 변조를 하게 됩니다. ‘國’자하고 ‘因’자, 단 한 글자를 고친거지만 우리 민족의 뿌리 역사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하면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 실질적인 나라, 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하는 것인데. ‘석유환인(昔有桓因)’하면 이것은 옛날에 ‘환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가 됩니다. 이것이 완전 신화 아니냐? 석유환국이라면 실사가 되고, 석유환인이라 하면 신화로서 뒤집어 버릴 수가 있는 여지를 갖게 됩니다. 단 글자 하나로 우리 고대사의 목을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당하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역사 왜곡의 현장이 바로 桓國의 國, 한 글자를 고치는데서 시작 합니다.
자료출처: 국제신문
환국(桓國) 환인 계보(7대, 재위년수: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신시배달국 환웅계보(18대,재위년수: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99,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107,B.C.3618, 129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98,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92,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C.425, 욕살):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R>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오행 木: 유(儒) 金: 불(佛) 선(仙) 水: 동선(東仙) 火: 서선(西仙) 도의 전공분야 유지범절(凡節) 불지형체(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우주 주재자 상제님 미륵 천주님 옥황 상제님 백보좌 하느님 목적(目的) 대동(對同) 극락(極樂) 태청(泰淸) 천국(天國) 교리강령 충서(忠恕) 자비(慈悲) 감음(感應) 박애(博愛) 삼극 오황극(五皇極) 일태극(공) (一太極(空)) 십무극(十無極) (三位一體) 무극/태극/황극 법신/보신/화신 옥청/상청/태청 성부/성자/성신 동학을 창시한 최수운(崔水雲) 대신사는 37세 되시던 경신(1860)년 4월 5일, 49일간의 혈성어린 구도가 끝나던 날, 다음과 같은 상제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동경대전』 「논학문」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보냐.『용담유사』 「안심가」갑자(1864)년 3월 10일에 세상을 뜨시면서 “전 40년은 내려니와 후 40년은 뉘련가.“천하의 무극대도가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하시어 자신이 세상을 떠난 지 8년 후에 하느님께서 강림할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상제님으로 부터 직접 받았던 동학의 주문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천주님을 모시고 조화세상을 정해 萬事知(도통)하는 은혜를 영원토록 잊지못한다는 내용의 주문을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았던 주문입니다. 동학을 창시하신 최제우선생은 자신의 사후(死後) 8년 후에 이땅에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하셨고, 문제는 그 하나님이 100년 전에 이땅에 다녀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땅에 오셔서 전한 말씀내용이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道典) 내용입니다.
방대한 도전 말씀중 핵심 내용을 발췌하여, 어린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식으로 풀어놓았다.
증산도 전국청년신도연합회 펴냄/신국판/170쪽 증산도의 진리를 가위질하여 난법난도하는 여러 교단 중 대표적인 문제집단인 대순진리회와 원불교, 통일교에서 저질러온 진리 도용이나 종통조작과 같은 객관적인 사실을 언급해 놓은 책. 한민족의 앞날을 예고했던 `신교총화神敎叢話` 신교총화(神敎叢話)란 무엇인가? 이 책의 분량은 한문 원문으로 약 45쪽밖에는 안되지만, 약 6백 년에 걸친 역사의 흐름과 생활방식, 인간상의 타락, 세계문명발전의 생생한 과정, 우주 운동의 본질, 수도 공부의 중요성, 동방문화의 연원, 모든 세계 종교와 문화의 뿌리가 신교정신이라는 것에 대한 명쾌한 해명, 그리고 한민족이 이 세계사에서 부여받은 위대한 소명 등 실로 방대한 내용을 도적(道的) 경지에서 전해주고 있다. 4대 문명의 뿌리는 수메르 문명!!
* 북부여(고구려) 왕계표 (7대, BC 239∼BC 58)
1 해모수(解慕漱)(45)
2 모수리(慕漱離)(25)
3 고해사(高奚斯)(49)
4 고우루(高于婁)(34)
5 고두막(高豆莫)(22)
6 고무서(高無胥)(2)
7 고주몽(高朱蒙)(56년제위)
* 가섭원부여 또는 동부여(3대, BC86∼AD22)
1 해부루(解夫婁)(39)
2 금와(金蛙)(41)
3 대소(帶素) - 고구려 대무신왕에 의해 멸망(28)
* 고구려 왕(열제)계표(28대, BC37∼서기668)
시조 동명성왕(BC 37-BC 19) 해모수와 유화 고주몽, 다물도
-> 2대 유리왕(BC 19-AD 18) 유리의 지혜, 황조가, 태자 해명과 황룡왕
-> 3대 대무신왕 (18-44) 부여 왕 대소의 죽음,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고두막한 (동명왕)
중국이 우리나라를 수없이 침범해 왔는데, 우리민족의 영웅들에 의해서 전부 패배를 당하게 되는데. 고두막한, 을지문덕, 양만춘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전부 패배를 당하게 되죠.
지금 우리 역사의 제일 왜곡 된 점은 뭐냐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주몽을 동명왕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부여의 다섯 번째 임금이면서 후기 북부여의 창시자인 동명왕 고두막한이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 있습니다.
이분이 한 무제가 우리 동방을 침략할 때 의병을 일으켜 중국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더 나아가서 북부여를 계승해 BCE 108년에 의병을 일으켜 BCE 87년에 해부루를 동부여로 쫓아내고 BCE 60년까지 살았던 우리 민족의 영걸지주였습니다. 고두막한이라는 분이. BCE 108년부터 BCE 60년이니까 48년 동안 제위에 있었던 분인데.
1923년에 낙양시 북쪽에서 연개소문의 셋 째 아들 연남산의 묘지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동시에 동명은 감개하야-동명왕은 천지기운을 받아가지고, 유표천이 개국하시고-표천을 넘어서 나라를 여시고, 주몽은 잉이라야-고주몽 성제는 태양에게서 잉태되어 가지고, 임패수이 개도다-패수에 임해서 나라를 열었다 도읍을 열었다. 해서 동명왕과 고주몽을 분명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 때 연개소문의 가족은 전부 잡혀 갔잖아요. 그래서 그 묘지가 1923년에 발견이 되었는데 거기에 그런 구절이 나옵니다.
- 한사군 조작
일본은 첫 번째로서는 한사군을 조작 합니다. 한사군이 대동강 평양에 있었다고,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사군은 없었다고 얘기 합니다. 왜? 사마천은 한무제 당시의 사람입니다. 한무제가 조선을 침범해서 싸웠습니다. 사마천 『사기史記』에 한사군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사군을 두다. 이 얘기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무슨 진번이니, 인둔이니, 현도니, 낙랑이니 이런 얘기 자체가 없습니다.
『사기史記』〈조선열전朝鮮列傳〉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무제가 침략했던 침략군을 물리쳐 버리고, 조선인이 스스로 다스리는 네 개의 자치사국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을 얘기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이유립씨 같은 사람은 얘기 합니다. 사실 한사군 자체는 평양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숱한 모략을 꾸몄던 이마니시 류는 평양에서 한사군 유물이 나오지 않차 유물을 조작해 한사군유물을 나왔다고, 선전하게 됩니다. 봉리라든가 점재연신삽 이라든가 그런데 한심하게도 그걸 믿고 사학자들은 다시 역사를 씁니다. 그런 역사가 아주 많았습니다.
한나라는 평양까지 접근도 못했습니다. 도적의 무리였던 위만 정권이 수도를 하고 있던 곳이 번조선이기 때문에 지금의 창려 내지는 요하의 하류에 있는 해성시海城市입니다. 그러니까 만주에서도 한참 서쪽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한사군이 있었다고 해도 그 부근에 있었던 것이고, 이마니시 류가 한사군을 평양에 갖다 놓은 것입니다.
- 임나일본부설
또한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조작을 하게 됩니다. 임나라는 것은『환단고기桓檀古記』를 보면 대마도입니다. 대마도는 일본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가야와 고구려와 백제가 일본을 통치하는 전진기지가 대마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임나 본부가 저 한반도 남쪽에 경상남도 지역과 전라남도 지역에 임나일본 본부가 있어 가지고 일본이 200년 동안 한반도를 통치했다. 이렇게 왜곡을 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이마니시 류가 ‘석유환국(昔有桓國)’의‘國’자를‘因’으로‘환인桓因’으로 바꾸고 한사군을 대동강에 갖다 놓고 임나일본부를 만들고. 이마니시 류와 이병도라는 사람은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한 제 1호 원흉이 되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일본의 만행
그런데 일본의 만행이라는 것은 전혀 반성을 못하고 일본교과서에 후소사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고 기술하고 있고 임나일본부설을 역사의 정설인양 가르치면서 우리 민족을 계속 목을 조여오고 있는 그런 국가가 일본인 것입니다.
∥일본 고대사의 진실∥
한반도의 선진 문화가 일본 열도에 전수된 과정
일본은 크게 여섯 차례에 걸쳐서 우리 한반도 그리고 만주에 있는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 이주를 해 갑니다. 제일 첫 번째는 구석기 시대. 구석기시대에는 한반도와 일본이 연륙이 되어 있었습니다. 구석기시대 인들이 BCE 1만년 내지 3만년 전에 일본으로 가서 정착을 해 살았는데. 그것은 일본의 구주의 후쿠오카라든가 또는 한국이라든가 시베리아에서 그런 세석기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것이 동일합니다.
둘째로는 신석기시대 때 조몬 토기를 만들고 하는 문명인들이 한반도에서 가서 그런 문명을 전수해 주게 됩니다. 세 번째가 야요이시대죠. 이건 BCE 3세기에서 ☑AD CE 3세기에 걸쳐 가지고 진출을 하게 되는데, 그때는 특히 고조선과 부여족이 이주해가지고 벼농사와 청동기 문화를 전수해 주는데. BCE 3세기와 ☑AD CE 3세기, 이 때 바로 누가 가느냐 하면, 고구려의 창업공신 협보라는 사람입니다.
고주몽 성제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인 유리명제가 통치를 할 때, 4~5백 명을 거느리고서 평양에 가서 대동강을 따라서 진남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일본 구주의 당진, 가라츠에 도착을 해서 아소산으로 이주를 해서 다파라국이란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것도 『환단고기』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협보가 일본에 가서 다파라국을 세웠다. 야요이시대 때 우리의 고조선과 부여의 백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고분시대 때인데. 부여와 가야와 백제의 기마군단들이 일본의 기내(畿內:기나이)에까지 진출하게 되는 그러한 역사가 네 번째 고분시대이고, 그래서 야마토 정권을 수립을 하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아스카시대로서 아스카는 일본 문명의 뿌리가 되는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때인데. 백제에서 문명을 전수해 가지고 찬란한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가 나라시대 때인데.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뒤에 그 유민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일본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이주사
이렇게 해서 일본의 역사라는 걸 보면 우리민족의 이주사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는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 민족이 문명을, 선진화된 문명을 전수했던 나라기 때문에 일본은 정신적으로 조국이 어디냐? 한국입니다. 정신적인 조국을 배은망덕하게 부정하고 불의를 범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만주에 대한 연고권이 없는 민족
만주 땅이 왜? 중국 땅이냐 하는 것입니다. 청 나라 민족이 만주에서 일어나 중국을 다 들어먹었는데, 청 나라는 백두산 족이라고 자부를 했습니다. 고구려의 직계 후손입니다. 그런데 청 나라가 주체성을 상실해서, 중국을 다 들어먹고 중국에 동화가 되어 버리니까 만주 땅이 중국 땅이 된 것입니다. 언제 중국이 만주를 통치했습니까? 금 나라가 중국 민족입니까?
원 나라가 중국 민족입니까? 요 나라가 중국 민족입니까? 아니잖아요. 전부 만주에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중국은 만주에 대한 연고권이 사실 없습니다. 중화 민족은 만주에 대한 연고권이 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역사를 왜곡해서 중국은 자기 땅에 있는 역사는 모두 자기나라 역사라고. 원 나라, 청 나라, 요 나라, 금 나라 이런 역사를 전부 포함시키다 보니까 우리의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중국의 당태종 수양제와 전쟁을 해가지고 그들을 무릎 꿇렸던 그러한 위대한 나라가 고구려였고. 중국을 적대시 했던 나라였고. 천하의 중심은 고구려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던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편입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天子문화의 원 고향은 어디일까?
천자라는 말은 중국 한족이 먼저 쓴 게 아니라 우리 동방 한민족이 먼저 썼습니다. 그 사실이 중국 사람의 기록에 있습니다. 후한시대의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중국인들은 주변의 다른 민족에 대해 ‘동이서융남만북적(東夷西戎南蠻北狄)’이라 하여 오랑캐로 불렀습니다.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방의 큰 활을 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동이족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중심의 천하사상(중화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제왕을 부르는 ‘천자’라는 호칭은 동방사람이 먼저 썼다고 밝혀 놓았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천자는 부천모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았습니다. 천자는 천지(天地)의 아들이다. 하늘땅 천지부모의 아들인데, 이것을 하늘로 상징해서 하늘의 아들, 천자라고 했습니다.
- 천자에 대한 예(禮)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천자국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주변의 제후들이 천자에게 예를 올린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 요임금으로부터 정통을 물려받은 순임금이 태산에 올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동방의 천자’를 찾아가 조근(朝覲)하는 예를 올렸다는 내용이 『서경』에 “동순망질 사근동후(東巡望秩 肆覲東后)”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순망질(東巡望秩), 동쪽으로 순행하여 산천에 제를 지내고 사근동후(肆覲東后), 동방의 임금님을 알현했다. ‘사근동후’에서 ‘근(覲)’은 『강희자전』에 ‘하현상(下見上)’,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친(覲親)가다, 조근(朝覲)한다고 할 때의 근 자로 ‘제후가 천자를 뵙는다’는 뜻입니다.
왜 순임금은 하나님께 제를 올리고 나서 동방의 천자를 찾아뵈었을까?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 동방 고대문화와 역사의 비밀이 다 들어있습니다. 순은 “제가 이제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고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께 고하고 나서, 자기들을 다스리시는 동방의 천자님을 찾아뵙고 예를 올린 것입니다.
여기서 순임금이 알현한 ‘동후(東后)’는 단군성조님을 말합니다. 사근동후란 고조선의 제후 순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왕검을 찾아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후’ 자를 제후 후(侯) 자로 해석을 하여 ‘가서 동방제후를 만났다’고 왜곡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제후 후 자가 아니고 임금님 후(后) 자 입니다.
-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그러면 조선의 천자문화가 어떻게 중국으로 넘어갔을까?
앞의 기록으로 보면 순임금은 동방 천자로부터 임명받은, 천자의 영향력 하에 살던 제후였는데 4,300년 전인 고조선 초기, 요임금 말엽부터 순임금 때까지 동북아 지역에 9년 홍수가 일어나 중국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때 요임금이 치수관인 곤에게 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으나 곤은 실패했습니다. 곤은 훗날 하(夏)나라를 연 우(禹)임금의 아버지입니다. 옛날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나 치수하는 일 등을 가가계승했습니다.
그래서 우가 아버지를 이어 치수를 맡았으나 방법이 없어서. 이에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더니 천상의 신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를 가면 누구를 만나리라!’는 계시를 내려 주었는데. 그래서 완위산(宛委山 : 회계산)에 가서 부루 태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단군성조의 맏아들 부루 태자(夫婁太子 : 2세 단군)는 단군성조의 명을 받고 오행치수지법(五行治水之法)이 담긴 《금간옥첩(金間玉牒)》을 우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이 내용이 『환단고기』와 후한(後漢) 시대의 조엽(趙曄)이 쓴 사서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옵니다.
우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9년 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을 하고, 그 공덕으로 민심을 얻은 우는 후에 하나라를 열었습니다. 하나라는 순임금으로부터 법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우에게 전한 《금간옥첩》 속에는 치수의 요결뿐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의 도와 동방 고조선의 정치제도, 문화가 수록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국가 경영 지침서를 내려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도, 〈홍범구주(洪範九疇)〉입니다. 이를 줄여서 ‘범주’라고 합니다. 영어 카테고리(category)의 번역어 어원이 바로 4,300년 전 〈홍범구주〉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하여 ‘조술요순(祖述堯舜)하시고 헌장문무(憲章文武)하시니라’(「중용(中庸)」30章). 즉 ‘요임금과 순임금의 사상, 심통, 법통을 근본으로 하고 문왕과 무왕의 국가통치 제도를 본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요순임금의 국가 경영 지침서, 그것이 바로 부루 태자가 전한 홍범구주인 것입니다. 홍범구주의 다섯 번째가 황극(皇極)사상입니다. 황극에 대해 주자는 “황극은 천자의 보위(寶位)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황극은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전부 임금님이 주인입니다. 그만큼 천자의 자리가 지엄하기 때문에, 천자의 역할, 천자의 영향력이 너무도 엄청나서 ‘천하에 미친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황극은 천하지중(天下之中)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황극으로부터 천자사상이 나온 것입니다.
천자제도의 기틀, 동양문화의 근본정신이 담겨있는 《금간옥첩》이 중국에 전해짐으로써 동방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 문화의 토양 속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계기가 된 역사적인 대사건, 세기적인 대사건이 바로 9년 홍수입니다. 이후 전국(戰國 :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을 통일한 진(秦)왕 정(政)은 스스로 천자국을 자처하며 자신을 시황[秦始皇]이라고 칭했습니다. 진시황 이전의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다 왕이었습니다. 흔히 성왕이라 하는 요, 순, 우, 탕, 문 무왕도 다 왕이었습니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漢) 대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인 것입니다.
∥중국 고대사의 진실∥
그렇다면 중국의 고대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중국 고대사의 진실이라는 것은 중국의 초창기의 고대 문명은 완전 우리 민족이 이주해가서 중국의 문명을 열게 됩니다.
신농씨와 중국 한족문화의 역사 시조 황제헌원의 계보
첫 째 우리 환웅천황 때 주곡벼슬을 했던 고시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고시례高矢禮라는 사람은 격석치와 돌을 두드려 가지고 불을 쉽게 만들어내는 방법을 만든 주인공이 고시례입니다. 이 고시씨高矢氏의 후손에 누가 있었냐면 소전씨小典氏와 소호씨少昊氏가 있습니다.
소전씨를 8대 안부련 환웅 때 저 강수에 감병관으로 보내게 됩니다. 강수는 지금의 섬서성 기사년 근처에 있게 됩니다. 소전씨의 맏아들이 신농씨神農氏입니다. 그래서 신농씨는 왕국을 건설해 가지고 8대까지 쭉 내려가게 됩니다. 8대 임금이 유망楡罔이죠. 치우천황에게 유망의 나라가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신농씨의 둘 째 아들이 욱이라는 사람이였습니다. 소전씨의 맏아들이 신농씨고 둘 째 아들이 욱이라는 사람인데. 욱의 10대손이 황제입니다. 황제의 원 뿌리를 캐면 그게 우리 동방의 배달족입니다. 그러면 중국은 전부 황제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황제의 맏아들이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런 것도 의문이 많이 있습니다.
소호라는 사람은 첫 째로는 사마천 『사기』에 보면 오제五帝에 소호가 빠져 있습니다. 황제의 손자인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와 대립을 해서 전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태호복희씨太昊伏義氏의 법을 계승해서. 소호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소호는 황제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만 중국 책에 황제의 맏아들로 나옵니다. 소호가.
그러면 소호, 교극, 손자가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인데. 제곡고신씨가 왕비가 4명 중, 원비는 강원인데 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기의 후손이 세운 나라가 주 나라입니다. 15세. 이 문왕이 기棄의 15세손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부인인 간적이 설을 낳았는데 설의 후손인 탕임금이 상나라, 은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경도의 아들이란 사람이 요堯임금이고 상의 아들이 지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곡이 돌아간 뒤에 지가 임금이 됩니다. 9년 동안 임금을 하다가 요가 반란을 일으켜 가지고 지를 쫓아내고 중국을 다시 통일을 하게 됩니다. 지와의 싸움에서 9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됩니다. 그 다음에 창의昌意, 전욱으로 가면서 쭉 나가다 보면 고양高陽의 아들이 곤鯀이고 곤의 아들이 우禹 입니다.
중국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
그러면 우리가 중국 역사에 삼왕오제 시대가 다 동방 조선족이 만든 것이고 그들이 중국 역사의 고대 시대라고 얘기하는 하, 은, 주 3대가 전부 황제의 후손이고 황제의 뿌리가 배달족이니까 중국 고대사는 전부 우리 한민족의 이주사가 되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게 역사의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후대에는 중국 민족이 통치를 했느냐? 시황제 진시황. 이 사람도 중국 민족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진秦 나라는 서쪽 변방의 민족이었으니까요. 그것도 우리 민족의 혈통이고, 수隋나라 당唐나라 그건 선비족입니다. 그건 역사에서 아주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수나라 당나라 도 선비족으로 중화민족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금金나라, 요遼나라, 원元나라, 청淸나라 이런 모든 나라가 중국민족이 아니죠. 그리고 주원장朱元璋 마저도 그 뿌리는 우리의 동방 조선에 두고 있습니다. 명明나라 까지도.
동북공정의 역사적 배경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결정판 완결판이 뭐냐? 동북공정이라고 얘기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동북공정이라는 것은 2002년에 시작이 되었는데. 서남공정을 통해서 티베트를 완전히 자기들의 역사권내에 편입을 시킨 뒤에 2002년부터 동북공정, 공정이란 프로젝트를 얘기합니다.
이것은 . 첫 째로 남북한이 통일 됐을 때 중국에 있는 조선족을 남북한과 차단을 시키는 목적이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 패권을 겨뤄 자기들이 단결을 하고 강대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왜곡 시켜 국내에 안정을 취하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고 자기들이 동방문명의 천자국이다 하는 그러한 배경을 밑에다가 깔고 있는 것입니다.
고구려 역사도 중국의 변방 역사, 발해의 역사도 중국에 예속된 역사, 더 나아가면 고조선도 중국의 예속 역사 궁극적으로 더 나아가면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 자체도 중국에 부속된 역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이건 아주 목구멍까지 칼을 들이대는 그러한 끔직한 얘기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왜 한민족사를 왜곡 하는가∥
그러면 중국과 일본은 왜 한민족사를 왜곡 하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중국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역사 콤플렉스’
중국이 우리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는 프라이드Pride와 콤플렉스Complex라는 겁니다. 자긍심과 열등감. 그들은 어떤 자긍심을 가지고 있냐면 중국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민족, 중국은 세계의 중심, 인류문명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 아주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고 자기들의 문명이 가장 우월했고 자기들의 역사가 가장 유구했다고 그걸 자랑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교과서에도 철저하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중국 사람들의 프라이드 그러면서도 역사를 직접 연구해 보면 그들의 시원문화는 전부 동이족에서 오는 겁니다. 콤플렉스 그러기 때문에 동이족에서 온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서 역사 왜곡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역사적 열등감
일본이라는 나라는 동북아의 역사에서 제일 꼬래비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모든 것을 조선에서 우리 민족이 문명을 전수해 줬는데. 그러다 보니까 중국인보다 더 큰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지금 미륵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일본 국보 1호가 일본 경도에 있는 광륭사에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인데 일본에서 만든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만든 겁니다. 이건 일본의 학자들도 다 인정을 하니까요.
적송으로 만들었는데 이 적송은 일본에서 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일본의 국보 1호 광륭사 호류사 어, 고류사의 국보1호인 미륵반가사유상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가지고 일본에 보내준 겁니다.
∥중국과 일본의 불의한 야망, 그 종말은∥
∥중국과 일본의 불의한 야망, 그 종말은∥
증산상제님은 우주가을의 정신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중국의 목적은 자신들이 천자국의 위상을 회복해 동북아의 패권과 전 세계의 패권을 추구 하겠다는 것인데. 일본은 중국과 한국을 누르고 동북아의 패권을 추구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칼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 독도 침탈과 역사 왜곡으로서 배은망덕한 행위를 지금도 일삼고 있습니다. 13억의 중국 민족, 1억 3천의 일본민족 그들의 불의한 야망의 종결점은 어디인가?
중국은 동서양의 오가는 발길에 채여 그 상흔(傷痕)이 심하니 장차 망하리라. 이는 오랫동안 조선에서 조공 받은 죄로 인함이니라. (道典 5:402:7∼8)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道典 5:118:1∼2)
장차 서양은 큰 방죽이 되리라.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세상을 불로 칠 때는 산도 붉어지고 들도 붉어져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 잡아 끌어낼 겨를이 없으리라.道典2:139:1∼4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구천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道典4편48장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신명 대접을 잘 하라. 앞으로 신명을 박대하면 살아나기 어려우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선령을 박대하면 살 길이 없느니라.” 하시니라.道典11편407장
신이 떠난 미국 땅은 물방죽이 되리라.” 하시고 “일본은 불로 치리니 종자도 못 찾는다.” 하시니라.道典 5:406:8∼9
세계사 속에서 사라진 한국 고대사∥
역사란 무엇이냐? 역사란 민족의 혼입니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기 때문에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그 민족의 혼을 잃어버린 민족입니다. 혼을 잃어버린 민족은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와 수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수난과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혼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자긍심과 민족의 프라이드Pride와 민족의 자부심 속에서 새로운 영광된 민족. 그런 민족을 건설하는 모든 역량이그 민족의 역사 인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의 가치와 효용이 이렇게 위대한 겁니다.
우리는 찬란했던 고대사의 역사를 회복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만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수가 있습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대한 의식과 현재에 대한 행동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인데. 현재에 대한 의식 자체가 민족혼을 잃어 나약하고 비굴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주체성이 상실된 나라로서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고, 우리의 영광되고 찬란했던 고대의 민족혼을 회복한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한 주인정신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래는 현실이 창조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꿈은 간도수에
- 자연의 춤사위, 팔괘
간도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팔괘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근본을 깨닫는 것은 이 팔괘의 이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음양의 법칙을 알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무 한그루의 생명 운동을 알면 팔괘가 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무 전체를 보면 뿌리와 줄기가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는 음양 한 짝입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땅 밑에 뭏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손(巽)괘’이고 뿌리에서 쭉 뻗어 올라오는 ‘줄기’는 ‘진(震)괘’입니다. ‘진’은 봄기운입니다. 양 기운으로 쭉 뻗쳐 올라옵니다.
진의 성질이 그렇습니다. 진괘를 보면 두 효는 음이고 제일 아래에 양효가 있습니다. 음이 꽉 누르고 있어 반발을 하며 뻗는 양의 힘이 가장 강한 것입니다. 그게 목(木) 기운입니다. 그걸 뇌성벽력으로도 얘기하고, 제우스 신화에서는 번개로도 얘기했습니다. 사람으로는 진괘를 장남, 손괘를 장녀로 비유합니다. 그 다음에 이파리가 있고 꽃이 핍니다. 줄기에서 뻗어 나온 꽃과 열매가 음양 짝이 됩니다. ‘꽃’은 ‘태(兌)괘’, 꽃이 피고 나면 맺는 ‘열매’가 ‘간(艮)괘’입니다. 간은 열매이고, 형상으로 말하면 자연계의 산(山)도 간입니다. 간은 음 기운이 딱 멎어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아래에 음효가 두 개 있고, 위에 간상련으로 양 기운이 음에 묶여 있습니다. 가장 정적이면서 무언가 거대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이 산입니다.
그리고 태가 꽃인데, 간태가 합덕하여 간은 막내아들(小男), 태는 막내딸(小女)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 나아가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생성의 전 과정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음양의 두 요소가 있습니다. 즉, 나무의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원, 나무를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근본이 있습니다. 바로 ‘물’과 ‘불’입니다.
불은 태양에서 옵니다. 그 태양 불이 ‘이(離)괘’입니다. 그 다음에 땅속에 있는 물 기운은 ‘감(坎)괘’입니다. 이 물과 불이 생명의 중추 작용을 합니다. 사람으로는 중남(中男), 중녀(中女)입니다. ‘감(坎)’은 물인데, 하늘에서는 달(月)입니다. 그리고 불[離]은 태양(日)이 근원입니다. 감리일월(坎離日月)
나무의 뿌리와 줄기, 꽃과 열매는 일월의 물과 불 기운을 받아 생성됩니다. 물과 불을 받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섯 괘입니다. 이 여섯 괘를 사람으로 말하면 한 아버지 어머니 밑에 있는 3남 3녀입니다. 이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에서 태어나 하늘과 땅의 변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를 뜻하는 ‘건곤(乾坤)괘’가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 ‘진손’, 꽃과 열매 ‘간태’, 그리고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물과 불 ‘감리’, 천체로 말하면 일월, 이 여섯은 건곤 천지부모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부 팔괘입니다. 이처럼 나무 한그루에서 팔괘의 이치를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 간도수란?
간은 열매입니다. 간은 초목의 열매요, 인간의 열매요, 문명의 열매이며 역사의 열매입니다. 방위로 말할 때는, 문왕팔괘에서 동북방이 간방이라고 했습니다. 동북방에서 변화가 끝나고 새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동북방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동북방에서 변화의 한 주기가 끝납니다. 그래서 동북방을 간방이라고 합니다.
우주 1년 변화의 한 주기에서 선천 봄여름의 생장, 즉 인간을 낳아서 기른 변화의 과정이 끝나고 가을철 성숙으로 들어가는, 여름철에서 가을로 들어가는 우주의 가을철 인간 문명개벽의 변화가 이 지구촌 동북방 간방에서 시작됩니다. 간방에서 선천 변화가 끝나고 가을의 후천변화가 시작이 됩니다.
인류문명도 뿌리문화에서 줄기문화를 거쳐 열매문화로 완성됩니다. 인간도 문명도 우주의 가을철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간도수란 바로 ‘인간과 자연과 문명의 추수정신’을 상징합니다. 이걸 느껴야 합니다. 열매는 ‘씨종자’다. 열매 속에 뿌리, 줄기, 이파리, 꽃 등 변화의 모든 과정이 다 들어있습니다. 열매에는 종과 시가 함께 존재[終於艮 始於艮]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런 변화의 생명, 변화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간방의 한민족, 그 한민족의 삶의 과정이 곧 자연의 봄철과 여름철 과정을 다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간방의 한민족은 인류의 시원문화, 즉 우주의 봄여름철의 성장과정을 다 거쳐 온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이 간방에서 인류의 봄여름 선천 역사가 어떻게 끝나는지, 끝나고서 어떻게 새로 시작되는지[終始]를 압니다. 인류역사의 종시,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이것이 바로 간도수입니다. ‘한 시대(선천)의 끝매듭과 우주의 새로운 시대(후천)의 시작’이 간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간방은 바로 ‘지구의 동북방’,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입니다. ‘한반도는 지구의 핵, 중심 자리’입니다. 동방 조선 땅에서 지금까지의 인류역사가 종결되고 우주의 가을철의 새 역사가 출발합니다. 선천 성자들의 모든 꿈과 소망이 한반도에서 성취됩니다. 이것이 바로 ‘간도수’의 결론입니다.
‘종만물시만물자(終萬物始萬物者)는 막성호간(莫盛乎艮)이라, 간은 만물의 변화를 끝매듭 짓고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곳으로, 간방보다 더 번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간보다 더 번성한 게 없다. 간보다 그 변화가 더 강력한 것이 없습니다. 간방보다 변화의 모습들이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데가 없습니다. 간방 한반도는 분단이 된 채 이념의 극한 대결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최후의 분단국입니다.
성언호간(成言乎艮), 천지 역사의 목적이 동북 간방에서 완성이 됩니다, 이러한 간소식에 대해, 간도수의 결론에 대해 알아야 됩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한민족은 역사의 진실이 왜곡 날조되어 혼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동방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한국인이 되는,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도가 어디 있는가? 시원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혼을 되찾아야 합니다.
뿌리 뽑힌 한민족혼
한반도는 ‘지구의 혈 자리’로서 지구촌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하나로 수렴 통합되는 중심지이며, 선천의 인류문명사가 총체적으로 종결되고 후천 새 역사가 시작되는 중심 땅입니다.
우리의 상고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너무도 오랫동안 왜곡과 말살의 질곡에 갇힌 채 신음해 왔습니다. 역사의 맥이 단절되어 천애의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동방의 한민족! 선천 상극의 인류사에서 강대국들이 저질러 온 온갖 불의가 ‘동북아의 고대사’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 월간개벽참조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설교지원 비상선사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차여입즉효어가 출즉충어국 노사구지지야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주주사지종야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제악막작 제선봉행 축건태자지화야
나라에 현묘한 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고 한다.
그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천제 한웅의 신시배달국역사에 상세히 실려 있다. 실질적인 내용은 유교. 도교. 불교의 삼교의 핵심이 모두 다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 풍류교(천부天父사상, 삼일사상, 하나사상)에서 접목되어 다른 종파로 파생되어 나간 것이다.
이를테면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의 유교의 가르침이요. 매사를 근본(天父, 하나)에 충실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며, 말이 없이도 가르침이 행해지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도교의 근본이며. 모든 악한 일은 짖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석가)의 불교로 변해 간 것이다.
한민족의 종교=신교=유.불.선의 모체→무극대도로 결실
1.신교란 무엇인가?
신교(神敎)란 유.불.선의 진리가 나오기 전에 인류의 정신세계를 이끌어갔던 최초의 시원종교요 우리 인류 정신문명의 모체 종교로서, 이것이 각 민족에 스며들어 오늘날 우리가 신앙하는 유.불.선(도교,기독교) 4대 종교로 발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신교는 우리 한민족의 종교로서 그 신앙대상은 3수 원리로 자존하시는 삼신상제라고 했다.
가. 신교의 제천의식 신교(神敎)란 무엇인가?
신교는 이신설교(以神說敎)의 줄임말로서 '신으로써 모든 인간 교화의 중심을 삼는다' 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태극의 원리에 의해 이 우주에는 인간계와 신의 세계가 병립함을 알았고,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신(神)이 들어서(개입되서) 되는 것임을 올바르게 파악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신 중에서도 인간과 신, 우주를 주재하는 최고의 자리에 계신 분을 '하느님'이라 불렀고 한문으로는 '상제(上帝)' 또는 '삼신상제(三神上帝)로 표기하였다.
'삼신상제'란 3신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상황에 따라 만물을 창조해 내는 아버지(父)의 역할인 조화신(造化神), 창조해 낸 만물을 가르치는 스승(師)의 역할인 교화신(敎化神), 그리고 만물이 각자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스리는 군장(君)의 역할인 치화신(治化神)등 3가지 역할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법도(존재의 원리)와 구원의 법도(변화의 원리)가 모두 3수의 원리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는 동양의 우주론의 3수원리와 한민족의 3·1 철학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류의 주체민족인 한민족의 역사 또한 우주섭리에 따라 인류구원과 완성을 위한 3박자 리듬에 따라 전개되어 왔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天(천일신:天一神) - 조화신→성(性: 心: 感)
地(지일신:地一神) - 교화신→명(命: 氣: 息)
人(태일신:太一神) - 치화신→정(精: 身: 觸)
우리 민족은 환국(桓國)시대부터 우주의 주재자인 삼신 하느님을 신앙하였다. 한국, 한반도, 한글, 한복, 한식, 한옥 등의 '한'은 바로 '하늘'의 줄인 말이라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다. 신교(神敎)는 우리민족이 창시한 고유한 종교이다.
이 신교는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까지 8000년, 9000년 이상 우리 민족의 국교가 되어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신교 정신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그 맥을 이어왔는지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신교(환국) → 배달도(배달국) → 풍류도(단군조선) → 국선도(고구려). 문무도(백제). 화랑도(신라) → 팔관회(고려) → 선비도(조선) → 증산도(대한민국)
신교의 신앙대상은 '삼신상제'였으며, 신교의 신앙의식은 생(봄). 장(여름). 염(가을). 장(겨울)에 부응하는 보은천리적 보본(報本: 은혜에 보답하는 뿌리정신) 제천의식 이었다. 제천의식 장소는 아사달 또는 소도(蘇塗)라 하였으며, 이 장소는 성역으로서 도망자가 들어가면 체포할 수 없었다.
한반도에는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이나 있는데 이곳은 무덤이나 또는 천제를 위한 제천의식에 사용되었던 장소이다. 그리고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은 초대 단군때 천제를 올리기 위해 쌓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최고(最古)의 제천단이다.
이러한 신교는 천신교(天神敎)였으니, 하늘(天)과 신(神)과 천궁(天宮)과 세계의 근본 뜻을 믿고 따르는 고차원적인 종교였다. 이 종교는 비단 지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생활철학으로 동아시아에서 신교문화를 창조하였다. 우리민족은 역사만 위대했던 민족이 아니라, 종교도 정말 위대했다.
중요한 사실은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탄될 때까지 전국의 서당과 향교등에서는 고조선의 역사는 물론 그 이전의 신시국, 배달국의 역사를 가르쳤고, 상고시대에 우리고유의 전통종교가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우리 조상들은 막연한 원시종교 같은 태양신 등을 숭배한 것이 아닌 하늘의 조물주인 하느님을 믿었다.
조선말엽까지도 한민족은 단군의 실재성을 믿고 살아왔다. 수많은 외침(外侵)에도 불구하고 고조선 관련사서가 한일 합방 전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그 살아있는 증거다.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한 이후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일이 바로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것이었다. 상제님을 섬기던 전통은 고종황제 때까지만 해도 끊기지 않고 이어졌던 것이다.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상제님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道의 原典, 道典 1편1장)
태시: 최초의 우주는 빈 상태이다. 무극이 태극으로 변화하면서 하늘과 땅이 생겼다. 태시란 무극이 태극으로 바뀌는 시점, 즉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시점을 말한다.
조화성신: 동양의 신관에는 우주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원신(元神)과, 그 신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인격신 하느님이 있다. 조화성신은 곧 원신을 말한다. 조화신으로서 원신을 주재하여 실제로 천지와 인간 만물을 다스리는 생명과 구원의 하느님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상제님이다.
삼신상제:‘상제’는 동방 민중 신앙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체험적으로 형성된 언어이며, 인간 세상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지존의 주재자를 일컫는 말이다. 신교에서는 특히 ‘삼신상제님’이라 부르는데, 이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드러날 때는 세 가지의 신성, 즉 조화 (造化:父), 교화(敎化:師), 치화(治化:君),의 삼신으로 작용(用)한다는 사상에 근거한다.
신교:‘동서 인류의 뿌리문화, 신교’

존심양성
(尊心養性)
집중관일
(執中貫一)
명심견성
(明心見性)
만법귀일
(萬法歸一)
수심연성
(修心練性)
포원수일
(抱元守一)
성령감화
(聖靈感化)
삼계유일
(三界唯一)
(勿懼勿恐하라.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不知 上帝耶아) 『동경대전』 「포덕문」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고 부르는데, 너는 상제를 모르느냐! 주문을 받으라. 대도를 펴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吾心이 卽汝心也라).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중생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증산 상제님과 (1871~1909)으로부터 종통을 전수받아 이땅에 대도 창업의 씨를 뿌리신 태모 고수부님(1880~1935)의 생애와 생명말씀을 집대상한 증산도 의 경전(慶典)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한 이야기천지의 이법(理法)을 담은 새 문명의 교과서[증산도 도전] 이제 그 말씀을 그림과 함께 만난다. 1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10여 년간 벌인 번역작업 끝에 6개 외국어로 옮겨 출간 증산도의 경전인『증산도 도전』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6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신교총화』란, 이름 그대로 인류 문명의 모체인 제1의 종교인 신교에 얽혀있는 여러 가지 중요 내용을 정리한 이야기입니다.
자하선인과 팔공진인
자하 선인과 팔공 진인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나와 있다.
스승인 자하(1351∼)는 이름이 이고(李?), 자는 덕화(德和)이며 자하(紫霞)는 그의 호로서 광동(廣東)인이다. 태백산 구화동(九花洞)에서 살았고 『신교총화』 저작 당시인 계사(1893)년에 543세라 하였으니, 진정 그가 신선이라면 지금(2009년)은 662세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현재는 당나라 때 8선(仙) 가운데 한 사람인 여동빈과 함께 가야산에서 은거하며 놀고 있다고 한다.(『신교총화』, 1쪽)
팔공 진인(1398∼)의 성은 류(柳)이고 이름은 성성(成性)인데, 팔공산(八公山)에서 항상 기거하여 세인들이 그를 팔공 진인이라 불렀다. 자하 선인의 문인으로 당시 496세였다고 전해지니, 그 역시 신선으로 자연의 품을 거닐고 있다면, 지금은 606세가 되는 셈이다.
『신교총화』, 12쪽 : 전반부는 자하 선인의 말씀이, 후반부는 팔공 진인 자신의 말과 스승 자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신교는 모든 종교와 진리의 모체이다.
신교는 뭇 종교의 조상이며 모체가 되는 뿌리진리이다. ....
말세가 되면 인정이 사욕으로 들끓어 본원을 망각하리라. ....
장차 신시(배달) 시대의 가르침(神市敎)인 신교의 본원을 연구하지도 않으리니 어쩌리요. 제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상실하리라.
(神敎之爲衆敎之爲祖, 爲母之理… 人情多私 忘本源 … 不究神市敎之本源如何也, 亦自失其源)
선천성자들의 도(道)의 연원
도교로 말하면, 노자가 스스로 성을 이씨라고 하였는데 이(李)자는 ‘동방(東方)의 아들’이란 뜻이니 이것은 자기가 동방사람임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무엇이리요.
(爾敎言之, 老子之初生而自指李[東方木也], 李字木子之意, 非東方而何!)
석가로 말하면, 그가 육년 동안 고행을 하여 깨달은 도는 무궁무궁한 ‘삼신의 진리’를 원각(圓覺)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므로 평생의 공덕이 이 천명을 받들어 자비에 힘쓴 것일 뿐이다. (以釋迦言之, 其所耐苦六年而悟道, 不過是尊吾帝釋之無窮無窮無無 窮神理之覺, 圓得如如而來 … 故平生所工, 只此尊天命務慈悲而已)
공자의 가르침으로 설명하면, 공자가 일생 동안 중히 여긴 것은 천명에 순응하고 천도를 공경하여 상제님의 뜻을 높이는 것이었다.(以孔子敎說之, 孔子一生所重, 順天命敬天道, 以尊上帝之意)
예수로 말하면, 그는 상제님의 명을 받고 유대가 망했던 때에 내려와서(유대 역시 진동방의 지파이다) 상제님의 도를 밝혔다. 동방으로부터 서방으로 가서 ‘평등의 교설’로 일세를 흔들어 깨웠으니 이 또한 상제님의 명에 따라 그리한 것이다. (以耶蘇談焉, 耶蘇 不過是受上帝之命, 降于猶太亡國之際[是亦震東方支派地方內], 以說明上帝之道 自東西, 以鼓動平等之說, 以警一世, 亦不過是上帝之一命者而已)
세상에서 행하여지는 삼교의 진리를 보면, 도교에서는 은둔수행하여 장생불사하는 것과 불교에서는 고요히 선정하여 심법 닦는 것과 유교에서는 기강을 펴고 인륜을 밝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모두 신교의 심오하고 광대한 진리에 위배될 수 없는 것이다. (道之行於世, 不過是 老之遁數延命, 迦之抱元含神, 儒之陳紀明倫而已 皆不能違於神敎涵泓廣大)
말세의 인정과 세태
종금 이후로 세로(世路)가 험난하여 천사만마(千私萬魔)가 천리를 어지럽히리라.
(從今以後, 世路尤險, 千私萬魔, 以亂天理矣)
사람이 모두 도도해지고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하늘과 땅이 광명을 상실하리라.(人皆滔滔, 自欺欺人, 天地光明失矣)
사람들이 자기 선조의 도를 알지 못한 채 다만 다른 것에 매달려 있으리라.
(人不知其祖先之道, 而只從他, 便是風麻漢)
사람의 마음이 삿(邪)된 것에 구부러져서(曲) 사도(邪道)에 잘 빠져들고 진실과 허위를구분하지 못하리니 어찌하리요! 또 귀신과 마귀에 홀려서 미친 것 같으리라.
(後世人心多邪曲, 故逕入邪道, 不知眞爲, 奈何! 三鮮九壬後, 人多鬼魔所使而如狂也)
사람마다 하루에 천리를 갈 것이며[日行千里] 집 위에 집이 올라서고[屋上加屋], 집집마다 약국이로다[家家藥局]. 곳곳마다 종소리가 울리고[處處鐘鳴] 사는 모습이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사는 모습과 같으리라. (『신교총화』 32쪽)
인류구원은 새로운 신도의 개벽으로 실현
예로부터 전쟁의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최초에는 손으로 서로 싸우고, 다음에는 나무로, 다음에는 쇠로, 다음에는 물(水, 수소폭탄)로, 다음에는 공중에서 싸우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때에는 사람과 가축이 모두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리라.
마침내 신명(神明)의 도는 신도(神道)의 회복으로써, 인간구원의 도(道)는 새로운 도(道)의 개벽으로써만 가능하리니 연후에 건곤천지가 다시 광명을 회복하게 되리라.
(自古戰爭之法, 隨時而變 最初以手相鬪, 繼而木, 繼而金, 繼而水 大繼而戰于空中之境, 人畜俱滅之境 終則神以神, 道爾, 然後乾坤復明)
세계구원의 빛은 가을의 금(金)시대에 뿌리를 둔다.
인류 구원의 대명의 싹은 가을의 결실기운[金]을 쓰는 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후천의 대명력(大明曆)을 쓰는 날이라.(大明之萌, 根於金之用, 大明曆之日)
우주의 시간대가 성숙운동하는 후천가을의 360일 정역의 광명역수를 쓰게 될 때 세계구원의 대광명이 온 세상에 비쳐오게 된다는 말이다.
혹세무민하는 자는 하늘이 마지막 날 주살한다.
근일에 소위 수도한다는 자들이 왕왕 다른 이들의 재물을 취하고자 하여, 부처에게 빌면 화가 복으로 바뀐다는 말로써 일세를 고동시키고 있다. 어리석은 자들이 이 설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니, 사람을 속인 죄는 하늘의 주살함을 면키 어려울 것이요, 속임을 당한 자도 또한 책임을 면하지는 못하리라.(『신교총화』 4쪽)
이제는 사람들의 몸이 악독해지고 우상숭배에 매달려 복을 구하니 어찌 복이 있으리요! 가히 부끄러워할지니, 바로 이것이로다. 수도자의 행실은 남이 안 보는 데에서도 언행을 삼가해서 양심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만 하나니라.(今人身爲惡, 而祈福于物象, 何福之有! 可愧者, 此也 修道者之行, 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而已)
인류문명은 제사도 안 지내며 조상을 마귀라고 부르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천지 도덕을 말살하는 극단은 현재 서방(兌=西方)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저들은 다만 아버지만 찾고 어머니의 은혜는 모르며 망령된 사탄의 말을 하고 있음이라.
세상에 어찌 하늘은 있는데 땅은 없고,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가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서양사람들은 천부는 높이면서 땅의 어머니는 몰라보니 장래 인류가 모두 금수로 돌아갈 징조라.
이는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주지 않으며 마귀라고 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으리요. 천지가 변혁할 때 먼저 그 종자를 멸하는 것은 서방사람[兌人]들이라.(… 天地變易之時, 先滅其種者, 兌人乎!)
장차 올 서방의 문명이라는 것은 다만 서로 죽이는 마음만을 주장할 뿐이니, 상제님[天帝]께서 반드시 이들을 벌하시리라.(將來兌人之所謂文明, 只主相殺之心而已, 天帝必誅之矣)
1만2천 도통군자와 대교주의 출세
후천 벽두에 1만 2천 명의 도인이 출세한다. 이 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지를 날아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곳곳에 사람 사는 모습은 밤이 없는 성[不夜城]과 같다. 이러한 대문명이 열린 후에 참되고 올바른[眞正] 세계통일의 대교주(大敎主)가 출세하리라.
우리 동방(東方)은 인목(寅木)이다. 임(壬)은 곧 북방 수(水)로서 수생목(水生木)하는 천지의 생성원리 때문이다. 단군 임검(壬儉)의 도(道 : 신교)는 반드시 임성인(壬年에 태어나는 인물로 壬 = 一太極으로 太極帝를 말함)이 먼저 이끌어 갈 것이라. (『신교총화』44쪽)
자신의 때(1893)로부터 100년 쯤 되어 신교문화를 부흥시키는 대교주가 출세하여 새 시대를 이끈다고 하였다. 1만 2천의 도통군자는 선천세상에서가 아니라 개벽 후 후천선경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식으로 출세하게 된다고 전해 주고 있다.
미국은 한국을 도와 주도록 되어 있다.
태녀(兌女 : 미국)가 비록 막강하다 하더라도 진장남(震長男 : 동방한국)에게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조선 한국은 그의 덕부(德夫)가 아닌가.
간태합덕(艮兌合德)의 원리에 의해 미국의 남편되는 한국을 덕부(德夫)라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한민족은 진장남(震長男)의 우주원리에 의해 세계의 종주
오직 우리 배달의 신교[神市敎]는 허허적멸(虛虛寂滅)한 중에 화복을 구하지 않는다. 근세에는 죽어서 영화를 구하니 이는 다 속임을 당하는 헛소리들이라. (『신교총화』6쪽, 23쪽)
세인이 단군묘를 말하나 단군성조는 화신(化神) 승천하여 육신을 남기지 않은 분이기 때문에 천지와 함께 살고 계신다. (『신교총화』27쪽)
우리 신조의 후예로서 중국에 들어가 천하를 다스린 것은 순으로부터 시작하여 원을 거쳐 청나라에서 끝났다. 우리 신족(神族)통일은 순(舜)임금으로 비롯되었으나, 우리 동방에서 다시 그러한 인물이 나오리라. (『신교총화』35쪽)
진(秦) 한(漢) 이후로 당(唐) 원(元) 명(明)나라는 소위 망국의 길이었다. 이는 문약(文弱)에 빠지고 (신교를 경시하여) 더욱이 불교와 허무의 도에 빠져 그러하였는데 우리의 신라로부터 조선때까지도 그와 같았다. (『신교총화』34쪽)
대도(大道)를 닦는 열쇠는 마음을 바꾸어야
대도는 정(正)한 것이어늘 어찌 삿(邪)된 것이 있으리요. 사악한 것에 물든 자는 그 마음이 먼저 바르게 깨져 있지 못한 까닭이라. 이에 세상사람들이 사설(邪說)을 지어내게 됨이니 이 모두 심병(心病)이라.(大道有正, 邪何有婦! 被邪者 其心先不正 故世人之做出邪說者 總是心病)
사람이 잘 닦아 기(氣)를 드리우면 그 형모가 용호(龍虎)와 같이 걸출하고 위풍당당할 것이다.(『신교총화』 25쪽)
한국의 종교 진리가 천하를 통일한다.
오직 우리 나라의 종교가 장차 천하를 건져내는 제1의 진리가 되리라.
(惟我宗敎 之將爲天下一).
동방신시(배달)의 신교진리가 장차 천하에 밝혀지리라. 동방 장남[震長男]의 운이 다시 용솟음치게 되며, 미국[兌小女]이 이를 순종하게 되는 이치는 우주 자연의 변화원리이다.
((神市)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 而小女從之理 自然的)
신시(배달) 천왕의 대도의 조화능력이 광대하니 장차 동[震]ㆍ서[兌]양의 통일 원리는 하낙(河洛) 상수철학의 이수(理數) 가운데 있도다.(神市天王造化能力廣大, 將爲震兌統一, 自在理數中)
신조(神祖 : 단군성조) 때의 옛 영토를 다시 찾게 되리라. 후에 신인합발의 도가 세계에 구원의 광명을 크게 떨치게 되리라.(神祖古域必復, 而後神人之道, 大明 於世)
천지는 비록 붕괴되지는 않으나 (우주 일년 중 빙하기 초기 시간대인) 해(亥)에 이르면 다시 혼돈의 겨울개벽시대로 들어간다. 이 때에는 다만, 모든 진인(眞人)이 성성하게 깨어져 완성된 정신만이 있을 뿐이다.(天地雖不毁, 至 亥而又混沌之世矣˚ 此時, 只在諸z{之惺惺而已)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가 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가람기획)는 로마 사람들이 왜 “빛이 동방에서 왔다”고 생각하였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책이다.저자는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그 동안 메소포타미아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보였다.직접 유적 발굴에 나서 큰 성과를 이룩하였는가 하면 유적의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여 그 동안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수메르 문명의 모체는 환국의 신교 문명!!
선천 소개벽 이후 중앙 아시아 동쪽에서 태동한 환국의 문화는 인류사의 제2변기에 동,서 사대문명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대한 증거는 최근 120여년 동안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약 5,500년전에 오늘의 서양문화의 뿌리인 수메르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연구가(울리,크래머,EH 번즈)들의 결론은 수메르 민족이 고산족의 특성을 가지며 동방에서 왔다는 말을 한다. "하늘에서 내려왔다", " 하늘 산을 넘어왔다"의 기록은 천산 산맥을 넘어서 왔다는 환족의 특성을 보여준다.
왕위가 하늘에서 내려온 승화된 교권과 왕권이 하늘나라에서 부여된 후에 인간은 예성과 신성한 규범을 완수했다.(수메르 제 1 왕조의 '엔릴영웅 비문')이 수메르 인들은 검은 머리의 용모에 한국어 같이 교착어인 수메르어를 썼다. 또 종교 신앙 가운데 지구랏이라는 제천단과 한문화의 흔적들이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들에 뚜렷이 남아있다.(김상일,[인류 문명의 기원과 한])
수메르 문명의 진면목을 밝혀주는 무수한 점토판은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 주인인 인디언이 동북아에서 베링 헤협을 건너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언어,혈액형, 체질, 치아 모양등의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이미 밝혀진 것으로서 미국인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 G. 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북미의 오리건 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는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선 탄소 측정에 의하면 이것은 약 9천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송호수 교수는 1982년 10월 7일에 현지 조사를 하여 미국 워싱턴 인디언 박물관에는 이외에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도구와 동일 한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지적한다.[(한민족의 뿌리 사상).26쪽) 더욱 놀라운 것은 미 대륙의 인디언이 사용한 빗살무늬 토기는 그 모양과 무늬가 한국의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대 환국의 신석기 토기와 구분 할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선천의 마지막 소개벽 이후 1만여년 전 당시에는 베링 헤협이 가교 역할을 하여 이곳을 타고 동방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은 동서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밝(불함)'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장 오래된 개념이라고 지적하면서 한 나라 한 민족속에 '밝(광명)'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 뿐이라고 했다.[불함문화론]
영국학자 '크래머'등의 발굴에 의하여 '머리가 검은 (Black Headed People) 동아시아 인들'이 문명을 다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 세웠다는 것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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