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당(Die Linke, LINKE, 2007년 6월 창당) = 슈뢰더의 제3의 길 정권 이후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SPD: 이하 사민당) 좌파가 주도로 만든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hlalternative Arbeit und soziale Gerechtigkeit, WASG) + 구동독 사회주의통일당(Die 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 SED)의 후신인 민주사회주의당(Partei des Demokratischen Sozialismus, PDS)
작성: cheiskra at hanmail.net
좌파당의 등장으로 사민당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좌파당(그 전신의 당들)이 사민당의 왼쪽표를 잠식하자, 사민당이 표를 지키고 좌파당의 의회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복지축소를 골자로 하는 기존의 아젠다(Agenda) 2010을 폐기하고 왼쪽으로 약간 선회하는 동안, 오른쪽에선 기독교민주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CDU: 이하 기민련)이 오히려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민당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한 중도(Die Mitte)라고 전당대회에서 선언하고, 사민당 우파지지층을 흡수하면서 그동안의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아닌 독자집권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당의 등장이 사민당은 물론 기민련마저 좌로 견인하는 형세이다.
<사진: 좌파당 홈페이지>
이러한 정세에서 실시된 지난 일요일(2008년 1월 27일) 헤쎈 주의회 선거에서는, 구동독 지역을 주기반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던 좌파당이, "최저임금제 도입, 反(아동)빈곤, 사민당이 도입한 사회보장 축소(Hartz IV)의 철폐"를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구서독지역 주의회에 입성에 성공했고,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에서도 주의회 진출의 길을 열었다. (물론 2007년 5월 브레멘주 선거에서 좌파당의 한 주체였던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 연합이 8.4%의 지지로 처음으로 구서독 주의회에 진출한 바 있다. 하지만 브레멘은 좌파들이 접근하기 쉬운 '도시'주라, 좌파당의 구서독 '주'의회 진출의 확실한 증거가 되기엔 부족했다. )
보수적인 헤쎈주에서, 사민당은 기존 집권당인 기민련 보다 0.1% 적게 득표했지만, 2003년 선거에 비해 역사적인 득표상승을 기록하면서 의석수는 기민련과 같게 되어, 실제적 선거승자가 되었다. 반면 기민련은 지난 선거에 비해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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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헤쎈 주의회 선거 결과 (총 110석, 투표율 64.3%, 2003년 투표율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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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2008년 득표율 (의석수) / 득표율 변화 / 2003년 득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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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련(CDU) / 36.8 (42) / -12.0 / 48.8
사민당(SPD) / 36.7 (42) / +7.6 / 29,1
자민당(FDP) / 9,40 (11) / +1.5 / 7,9
녹색당(GRÜNE) / 7,50 (9) / -2.6 / 10,1
좌파당(LINKE) / 5.1 (6) / +5.1 / -
공화당(REP) / 1.0 (0) / -0.3 / 1,3
민족민주당(NPD) / 0.9 (0) / +0.9 / -
자유유권자(Freie Wähler) / 0.9 (0) / +0.9 / -
동물보호당(Tierschutzpartei) / 0.6 (0) / -0.2 / 0.8
가족당(Familienpartei) / 0.3 (0) / +0.3 / -
해적당(Piratenpartei) / 0.3 (0) / +0.3 / -
사회평등당(PSG) / 0.0 (0) / 0.0 / 0.0
이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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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당+좌파당+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 GRÜNE)의 의석수가 50%를 넘어 범좌파 주정부 구성이 가능하지만, 사민당은 이후에 있는 다른 주의회 선거 및 2009년 연방의회 선거를 의식한 "좌파당 의회배제 전략"으로, 좌파당과의 연정만은 굳이 거부함으로써, (반면 좌파당은 사민당과 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민의인 좌파정부 구성이 좌절되었고, 따라서 (좌파당에게 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민당이 적극 내세웠던 최저임금제 도입 및 "사회적 독일"이라는 선거 모토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의 우파적 본질이 폭로되었다. (물론 베를린에서만은 사민당+좌파당 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히려 사민당은 녹색당,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FDP: 이하 자민당)과의 연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면, 자민당은 더이상 좌파(사민당+녹색당)의 딱갈이가 아니라는 성토아래 사민당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나찌의 집권을 방조한 사회파시즘론을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대학교 화장실의 위 낙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편 기민련은 녹색당의 배신을 부추기면서, 기민련+자민당+녹색당 연정을 추구하고 있다. 연방정부처럼 기민련+사민당의 주정부 차원의 대연정도 가능하나, 선거과정 중 양당간 골이 깊어져 불가능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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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으로 주정부 구성이 가능한 경우 (과반의석 5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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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적녹 연정 57 (사민당 42 + 좌파당 6 + 녹색당 9): 사민당의 좌파당 배제전략이 걸림돌
2) 신호등 연정 62 (사민당 42 + 녹색당 9 + 자민당 11): 자민당이 거부
3) 자메이카 연정 62 (기민련 42 + 녹색당 9 + 자민당 11): 녹색당의 배신이 관건 (녹색당의 공식입장은 거부)
4) 대연정 84 (기민련 42 + 사민당 42): 사민당의 배신이 관건, 양당 모두 거부
5) 과소정부 (사민당 42 + 녹색당 9 + 좌파당의 묵인)
6) 재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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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알 수 있듯이 좌파당의 주의회 입성으로 약 20년간 지속된 기존 4당(기민련,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체제가 깨지고, 5당체제가 형성되고 있으며, 정부구성을 위한 복잡한 경우의 수가 제시되고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복잡해서 짜증난다는 표정이다.
이외에 주의회 선거임에도 독일군의 아프칸 철군 등 거대 구호를 우선 내세웠던 4차 인터내셔널의 사회평등당(Partei für Soziale Gleichheit, Sektion der Vierten Internationale, PSG)도 선거에 도전했지만(물론 아프칸 독일군 철수는 좌파당의 기본입장이다.), 2003년 선거에 비해 약 300표 잃은 1034표를 얻는데 그쳤다(득표율 0%). 2007년 국가 정당 재정지원 시스템으로부터 약 145만 유로를 받았던 나찌당인 민족민주당(Nationaldemokratische Partei, NPD)은 0.9%로 23972표를 얻었다. 기민련에서도 이들과 연정하고 싶어할지는 모르겠지만 기민련과의 연정을 공약한, 국제 우파 아나키당 Anarchistische Pogo-Partei 소속인 APPD(Anarchistische Pogo-Partei Deutschlands)도 후보를 냈지만, 역시 수치에 잡히지 않는 성적에 그쳤다. (니더작센 주의회 선거에서는, 1956년 서독에서 금지된 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KPD]의 후신으로 1968년에 설립된 공산당[Deutschen Kommunistischen Partei, DKP] 후보 1명이 좌파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 주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아프칸에서의 독일군 철수와 독일 내 미군기지 철군을 주장하는 사회평등당과 술집 생일파티에서 찍은 듯한 APPD의 선거포스터. 특히 APPD의 저 후보는 헤쎈의 '허경영'이라 할만하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좌파당 보다 많은 득표를 했지만, 기민련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증축 정책에 찬성함으로써, 스스로 정체성 파산을 선언한바 있고, 득표율 하락에서 그 결과가 드러났다. 오히려 좌파당이 녹색당 탈퇴자들을 받아 안으면서 녹색정치를 적극 수용했다. (좌파당의 한 강연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적색은 어떻게 녹색인가.') 녹색당의 우파성은, 적적녹 연정을 하도록 사민당을 강제하고 있지 않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론 녹색당 내 일부는 적적녹 연정에 찬성하고 있다.) 1월 29일자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은 1982년 녹색당이 헤쎈주 의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 역시, 사민당이 녹색당과 연정을 거부했던 것을 상기시켰는데, 그런 설움을 겪었던 녹색당이 이젠 좌파당의 의회등장을 꺼리며, 그들과의 연정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신문에 실린 두 장의 대조적 사진은 녹색당의 과거와 오늘을 잘 드러내 주었다. 1985년 결국 사민당이 연정을 수용함으로써 청바지에 하얀 나이키 운동화 차림으로 당당히 헤쎈주 환경부 장관이 된 68의 스타 '피셔'(Fischer)의 빛바랜 사진과, 이젠 다 낡고 더러워져 쓸모없어진 나이키 운동화 사진.(주1) 적색은 녹색일 수 있어도, 정녕 녹색은 적색일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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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www.zeithistorische-forschungen.de/site/40208426/default.aspx>
결국 이번 헤쎈주 선거의 의의는, 복지해체, 공교육해체 등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하고, 외국인 청소년 범죄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선거기간 내내 주요하게 선동한 半나찌인 헤쎈 주지사(기민련)에 맞서, 사민당+녹색당+좌파당의 범좌파 블록이 다수파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사민당-녹색당-기민련-자민당의 좌파당 의회배제를 위한 신성동맹 속에서도, 좌파당이 처음으로 구서독지역의 주의회 입성에 성공했다는 것, 즉 (적어도 헤쎈주에서는 - 니더작센주에서는 좌파당이 7.1% 득표하면서 11석을 획득했지만, 기민련의 압승으로 범좌파 블록이 다수파가 되지못했으며,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계속될 전망이다.) 전반적 좌경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겠다. 물론 실제로 연정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이 의의는 배반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민당이 득표율 상승을 기록하면서 실제적 선거승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민당의 애초 전략이 기민련을 따라잡는 것뿐만 아니라, 좌파당의 의회입성을 저지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사민당은 절반의 성공, 아니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하지만 좌파당이 자신의 근본인 "제3의 길 이전의 사민당"과 "구동독 사회주의통일당"에 대해 (사민주의, 의회주의, 대리주의, 관료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에 대해) 얼마나 좌파적 시각에서 철저히 반성하고 선거에 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좌파당이 반성 없는 과거의 동서독 좌파노선으로, 사민당 보다 표면적으로 왼쪽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민당이 포괄할 수 없었던 신자유주의 시대 인민의 좌파적 열망을 공짜로 쓸어 담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걱정이다.
그 외에 평의회주의 조직이나 다른 노선의 좌파조직의 선거개입은 아쉽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새 주의회는 4월 5일 시작된다.
(주1) 메슈카트(Klaus Meschkat)는 "두치케가 죽은 뒤 68세대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른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에 대해선 '68년 당시 운동의 중심에는 없었던 인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68운동이 가라앉은 뒤, 나 역시 정치권 진출을 제안받았지만 칠레로 건너가 인민전선을 지원했다'며 '68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동지들은 새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도권이 아닌 음지를 택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255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