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진보진영의 성매매근절주의 입장에 대한 반론

>>성매매는 남성들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필요악 아닌가요?

성매매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던 가장 오래된 직업이며, 필요악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과 같은 범죄들 역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고 근절되지 않았지만, 인류는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성매매가 필요악이라면, ‘누구의 필요에 의해 누가 피해를 입는 것인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남성들의 성적욕구를 위해 성매매를 인정하는 것은 여성차별과 여성(Gender)폭력을 인정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유산이며,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사회악일 뿐입니다. 

 

<반론>---> 매춘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던 가장 오래된 직업인 이유는 남성들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타의 이유로 남편을 잃은 여성, 가족에서 쫓겨난 여성, 죄를 지은 여성 등등 빈곤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수단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인도의 매춘을 봐도 알 수 있다. 빈곤이 사라지지 않고, 여성들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매춘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역사상 매춘이 사라지지 않은 단 하나의 이유다. 남성의 본능 운운하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는 자본의 권력과 축적비밀을 수요와 공급에서 찾는 것처럼 비사회과학적 인식의 전형을 보여줄 따름이다. 성욕문제가 초점이 아닌 것이다. 남성성욕의 문제는 생존수단을 선택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이지 매춘의 존립근거와는 무관하다.

매춘이 가부장적 사회의 유산이라면, 가부장적 사회가 지독히도 잔존하고 있는 사회와 가부장제와 가장 거리가 먼 자유화된 여성이 많은 나라에서 하나같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매춘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현실은 가부장제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데, 매춘이 갈수록 증가하는 현상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여성의 인권이 전반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춘이 증가하는 것도 설명이 안 된다. 그 모든 현상을 모두 젠더 정치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것이다.

또한 매춘을 살인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성노동자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살인은 피해를 주며 타인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한편, 성구매자는 구매행위를 통해 자본축적을 하는 것도 아니요,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니다. 그가 얻는 이득이라고는 쾌락, 필요의 충족이다. 그는 빈곤에 의해 성노동자가 된 여성의 섹스를 소비한다.  

 

 

 

 

>>성매매가 왜 여성에 대한(Gender) 폭력인가요?

성매매는 남성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폭력입니다. 남성들은 생물학적 본능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성을 파는 방식이 아닌 여성의 몸을 사는 방식으로 그 욕구를 해결하려고 해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남성지배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살 수 있는 성’ = ‘여성의 성’ = ‘남성에 의해 취득, 점유될 수 있는 성’이라는 이중규범이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단적으로 식품위생법에서 (합법적인) 유흥접대부를 ‘부녀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보여집니다.

군대에서 회사에서 남성들의 성구매행위는 놀이문화로 접대문화로 공공연히 허용되고 있는 반면, 성판매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한 사회적 낙인과 매장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성구매자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허용도가 높을수록 한 여성의 성매매 경험을 더욱 매도하는 구조는 가부장제 이중성문화의 논리로써 설명될 수 있습니다.

 

<반론>---> 매춘이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말은 뭔가 더 분석될 것을 남긴다. 성노동에 성폭력이 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단지 우리사회가 성노동을 바라보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에 의해 포착된 재현의 질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이 맥락에서 '폭력'을 말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남녀거래에 있어 여성을 파는 쪽의 입장에 서게 강요 하는가 일 것이다. 여성이 불리한 위치에 선다는 것은 성뿐만 아니라, 남녀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거래에서 일반화된 관계성일 것이다. 이 불리함은 빈곤에서 비롯되었고, 또한 여성들에게 사회활동의 많은 기회들이 닫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은 두가지 선택에 직면하곤 한다. 결혼에 의해 가족의 소유물화된다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운 노동력이 되어 시장에 내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이 시장은 가족의 통제권과 소유권을 부여받은(또한 가족부양의 의무를 책임지는 제도적 대표성으로서의 남성권력) 남성간의 경쟁질서로 가득하다.

결혼에 있어서 여성은 프로포즈를 받는 쪽의 입장에 서게 되며, 성관계에 있어서도 요구받는 쪽에 서게 되며, 성거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관계성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즉, 프로포즈자체가 폭력은 아니며, 요구하는 자체가 폭력은 아니고, 거래를 하는 것이 폭력은 아니다.

폭력은 항상 여성을 피해자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생계를 박탈하고 있는 자본축적, 그리고 여성에게서 성욕을 박탈하고 '비여성'이게끔 통제해온 남성 중심의 소유권을 비롯한 가족제도 및 국가정책일 것이다. 매춘여성과 부인의 성이 다른 점은 매춘여성은 성욕이 박탈된 '비여성'이고, 부인은 성욕이 주종관계에 의해 생식수단(생식수단이 아니라 성욕이 성욕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으로 전락하고 가족구조안에 구속되고 통제되고 소유된 것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점의 차이다. 이러한 기본적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치경제학적 측면에서 볼 때 '여성'들의 자유는 자유로운 노동력이 될 자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비여성'인 매춘여성들의 필요에 의한 자유는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거래에 있어 구매자는 그렇게 형성된 사회질서속에서 향유하는 소비자로 나타난다. 구매자는 자신의 필요를 교환을 통해 충족한다. 우리는 여기서 성구매자가 상품생산사회 일반의 소비자와 똑같이 어떤 '필요'를 충족하는 소비자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거래가 폭력이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 폭력의 내재성은 그녀가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와 필요를 충족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사회적 질서다. 이렇게 폭력과 그것의 메카니즘을 분석하지 않고, 무한정 확대적용하는 한 폭력은 인간성에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생태계 본질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성거래는 곧 성폭력이라는 도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인식은 아주 퇴보적인 조치들을 낳을 뿐이다. 모든 성거래가 성노동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리고 성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게끔 노동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투쟁과 성노동자의 주체성에 중심을 두는 정치학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배적 거래형태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고, 폭력으로서의 사회질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매춘여성이 '비여성'으로 존재한다는 나의 생각은 가족구조안의 '엄마'로 대표되는 '대문자 여성'에 매춘여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현실 속에서 '여성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형성과정에 있어 매춘여성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빠져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매춘여성은 '비여성'이고, 이들의 주체성은 대문자 '여성'안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의 정책은 이러한 실례를 증명한다. 대문자 '노동자'가 '비노동자'를 배제하듯이, 대문자 '여성'은 '비여성'을 배제한다. 배제는 또한 포섭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것은 정규직노동자이며,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제함으로써 권력과 교섭지위를 갖는다. 오늘날 이런 패턴은 대문자 '여성'의 정치에도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비노동자'를 낳고, '비여성'을 또한 낳는 과정이다. 우리의 현실은 비노동자와 비여성이 주위에 득실댄다. 여기에 비노동자로부터, 그리고 비여성으로부터 각각 출발하는 정치학이 탄생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 위의 질문과 성매매근절주의 입장속에서 나온 대답들은 사회당 홈페이지의 올려진 내용들이다. 그 대답밑에 나의 대답을 반박형태로 추가했다. 이것은 비단 사회당이라는 특정 단체의 입장만이 아니다. 주요한 논리는 모든 성매매근절주의 입장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