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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나는 그러한 전재판관의 관점은 결국 성노동에 있어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요청하는 합법화”를 위한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성성욕’ 운운하고, 현재의 성별구도적 성노동에 있어 ‘양성평등’ 운운하는 것은 성노동자의 입장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남성성욕’ 명분과 ‘양성평등’적 관점이 왜 이론적으로 틀렸는지, 왜 현실적으로 그것이 성노동자의 이해와 점점 반대되는 경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고, 성노동 운동에 있어 어떤 원칙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2.
전재판관은 남성의 성적 욕구는 여성과 비교할 때 신체적인 구조에 있어서 차별성이 있기 때문에 남성의 성욕 해소와 관련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남성의 성욕해소 기회 박탈”의 관점으로 성노동의 현실에 접근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전재판관의 ‘남성성욕’ 운운이 과연 옳은지는 남성의 일반적 성욕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우선 남성 일반은 그가 성노동자가 아니라면, ‘성매매 특별법’ 때문에 생존권에 어떠한 고통도 받지 않는다. 남성 일반의 생존권과 성특법은 무관하다.
그렇다면 성욕의 해소 측면에서는?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다. 남성 일반은 성특법이 존재하건, 하지 않건 거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유사 성행위 업소,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이런 곳이 번성하는 것을 보라. 남성의 입장에서는 성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되든 성욕해소적 측면에서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현실에서 성욕을 해소할 수 없어 고통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특법 때문에 성욕을 해결할 수 없어 자살했다는 남자 얘기를 들어본 바가 없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남성성욕’을 강조하는 걸까? 한계레의 지면에서도 많은 합법론자들이 ‘남성 성욕’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왜 합법화론자들이 성노동자의 권리가 아니라, ‘남성성욕’ 운운하는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제부터 그런 억지논리가 어떤 사회적 맥락안으로 들어서는지 살펴보자.
3.
전재판관의 논리 구조를 살펴 보면 남성성욕의 특성을 성을 사는 것에 있는 것으로 본질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성을 사지 않은데 남성 성욕은 필연적으로 성을 사게 되어있다는 것과 같다. 이 논리의 문제는 성적 거래를 돈이 오가는 일반적 거래로 보지 못하게 하고, 남성적 특성으로 규정함으로써 ‘성별적 차이’로 인식하게 만든다. 또 하나의 문제는 마치 여성은 본질적으로 돈을 주고 남성과 성적거래를 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함으로써, 남성에게는 원죄의식을 동원시키고 여성에게는 성을 사서는 안 된다는 억압규범을 강조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여성은 부득불 성을 팔 수 밖에 없지만, 성을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 논리가 가진 두 측면 모두 철저하게 성적거래에 대해 몰역사적인 관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과 맞지도 않고, 몰역사적인 ‘남성성욕’ 운운이 매춘의 합법화 공론에서 갖는 의미란 무엇일까? 도대체 왜 ‘남성성욕’을 들이대는가? 자, 합법화 논의에서 ‘남성성욕’이 갖는 효과에 대해 현실적인 그림을 그려보자. “남성이 원래 그러니까 남성성욕을 해소하는 길을 마련하자고? 필요악이라 이거지. 좋아, 거기에 얼마간 동의해준다고 하자.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남성성욕을 해소해서는 안되고 성을 사지 않는 여성의 입장도 반영해야 하니까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해야 하는 거 아냐?” 결국 이러한 구도에서 합법화가 공론화될 뿐이다.
성노동자의 권리향상은 배제되고, 철저히 타인의 노동을 향유하는 사용자(남성) 중심주의 문제로 합법화 논의가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노동의 사회적 긍정성 논의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게 되고, 단지 ‘남성성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하는가?’ 라는 법체계적 관점만 자리잡게 된다. 합법화가 남성성욕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요청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어버릴 때 공창제, 혹은 공창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강력한 규제주의적 제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남성성욕과 성생활의 사회적 조건은 합법화 이전이나 그 이후나 실상 별로 달라질 건 없다. 아마도 현실적으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매춘알선업 금지(혹은 규제) 및 노동허가제’라는 형태의 저임금 일자리가 성노동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경찰의 단속보다 무서운 사회적 규제다.
4.
정리하자면, 남성성욕의 특징을 ‘성을 사는 것’으로 본질화함으로써 결국 그것을 하나의 성적인 ‘차이’로 용인하려는 ‘양성평등’의 논리가 나온다. 그리고 뒤따라 평등의 상호성논리에 입각해 성을 사지 않는 것으로 본질화된 여성의 입장을 반영함으로써 국가의 강력한 규제와 통제를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공평하고 매끄러운 논리적 과정인가! 완벽하게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점만을 뺀다면 말이다.
결국 남성성욕을 중심에 놓고 합법화 운운하는 논리는 국가의 강력한 통제에 의한 합법화를 자연스럽게 요청하게 된다. 전재판관은 그것을 법체계적으로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노동자의 권리향상이라는 문제를 부차화시키며, 끊임없이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성노동자의 입장을 완벽히 배제한 채 ‘국가의 강력한 통제에 입각한 합법화’로 흘러가게 된다면, 여기에 이해관계를 같이 할 세력은 엄청나게 많아진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각 정당정치세력들(이들은 어떻게든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표를 갉아먹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강력한 통제에 의한 합법화’로 공론화되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여성단체들, 보수적 도덕주의자들, 양성평등주의자들, 종교단체들, 심지어 ‘성노동자는 괜찮지만, 매춘알선업자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 등등. 아주 다양한 세력이 이해를 같이 할 수 있다.
탈성매매를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의 이해와도 일치할까? 현실적으로 일치한다. 왜냐하면 성노동자의 일이 저임금 일자리가 될 때 오히려 탈성매매가 촉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성노동자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버니까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게 각 정치세력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에 입각한 합법화’를 지지할 수 있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근거들을 각각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법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성노동자들의 입장만 빼고 모두 타협에 들어설 수 있다.
5.
바로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우리(성노동 자율공동체를 위한 연대)는 ‘남성성욕의 해소’와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한국인권뉴스’나 (양성)‘평등연대’와 입장을 같이 하지 않는다.
나는 당면한 현실에서 ‘성노동자의 입장’이라는 원칙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노동자들에 의한 성노동의 자율관리제도라는 우리의 기본 입장에서 보자면, 성노동 네트워크에 모인 여성주의 그룹들의 ‘매춘에 관한 모든 법률의 완전한 철폐에 입각한 비범죄주의’ 원칙을 지지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입법적 공론화 속에 성노동자의 입장과 성노동자의 자율, 그리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협력적 노동자의 자율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싶다. ‘남성성욕’ 운운과 ‘양성평등’적 개념은 현실을 왜곡시키며, 국가의 강력한 통제에 입각한 합법화를 공론화하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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