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영어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홍준이와 얘기를 나눴다.

어색하게 웃으며 홍준이에게 대화신청을 하고선 베란다에 나가 얘기를 나눴다.

 

사과부터했다.

"일주일 동안 잘 지냈냐? 문자 보냈는데 씹기나 하고" 라고 말을 꺼내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했다.

 

승현이와의, 그리고 나와의 일을 다시 정리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말로 홍준이가, 그리고 내가 다치게 했던 그것에 대해 얘기했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고. 어떤 경우에도 무너져선 안되는 게 있다고.

그날의 홍준인 승현이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거라고.

그리고 나 역시 홍준이 너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거라고, 얘기했다.

 

홍준인 말없이 듣고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안함을 무마하기 위해 이 얘기를 하는 건 아니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아줄 수 있겠냐고 했다.

홍준인 웃으면서 사과를 받아준다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왜 이렇게 쉽게 받아주냐고 했다. 오래갈 줄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너를 더 사랑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그날의 일을 잘 정리하고, 홍준이와 잘 얘기 나눈건지 모르겠다.

홍준이가 진심으로 나의 사과를 받아준건지, 선생이라는 나를 민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으레껏 웃으며 상황을 마무리한건지 모르겠다.

긴 텀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돌아본건지,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알겠는 건,

어떤 원칙이 무너졌을 때,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실에 압도당해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상황은 더욱 힘들게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원칙이 무너진,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상황을,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임으로써 원칙이 다시 서고, 더 새롭고 더 단단한 원칙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행위자체에 대한 미안함보단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원칙이 단단하지 못했음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번일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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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6 00:50 2009/06/1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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