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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논술에 반대해야 한다

대학 입시 자율화에 대한 논란이 점화되었다. 3불 정책 ( 고교등급제, 기부금 입학제, 본고사 금지를 뜻함 ) 전체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만이라도 실시하게 해달라는 것이 명문 사립대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부금 입학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시민사회 전반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것 같고, 고교 등급제는 수혜자인 일부 특목고생들과 그 학부모들을 제외하고는 적극 찬성하는 사람들이 드문것 같다.

문제는 본고사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분분한 데 여기에 더해 본고사와  논술의 경계가 모호해서 논란의 여지가 더 크다. 어떤 이들- 주로 교육당국- 은 본고사와 논술고사를 분명히 구분하는 듯 하지만 이 둘은 구분하기도 어렵고 사실상 구분이 필요치도 않다. 두가지 모두 보통의 공교육을 통해서는 대비가 되지 않는 고난도의 시험으로, '깊이있는 사고를 평가한다'는 허울좋은 명분과는 달리 사교육에 전적으로 의지 할 수 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좌파, 진보진영에서는 본고사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하면서도 논술, 면접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심지어 명망있는 좌파 정치인인 심상정 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사업중에 "청소년을 위한 논술교육"이라는 것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존경받는 지식인인 홍세화 씨가 '논술 특강'의 강사로 나섰던 흔적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발견된다. 나는 심상정, 홍세화씨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명망가들조차 논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강사로 나설 정도로 '논술'에 대해 관대한 좌파 지식인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것이다.

본고사에 대해서는 격렬히 반대하는 그들이 어째서 논술에는 관대할까?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좌파 진영에서 "논술고사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홍세화씨의 강연 중에 한국의 객관식 시험과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비교하며 논술형 고사의 우월성을 옹호했던 것이 내가 접한 유일한 '논술고사 옹호론'이었다.

홍세화씨가 이야기 한 구절 하나하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지는 하나의 정답만이 인정되는 객관식 시험과는 달리 논술형 고사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민주주의의 기본인 토론의 기술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우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은 비단 논술 뿐만이 아니라 고난도의 수학 본고사 - 풀이과정을 평가하는 - 를 통해서도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진보진영은 본고사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논술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는다. 둘다 찬성하거나 둘다 반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수학 본고사는 고액의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만 논술을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교과과정으로 출제범위가 제한되어있는 수학과 달리 깊이와 넓이에 제한이 없는 논술은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는가에 따라 학생의 결과물이 달라진다. 에컨대 비슷한 수준의 두 학생 A,B를 각각 달랑 학부 수준의 철학만 공부한 이와 박사급의 연구원 - 게다가 토론식 교육에 익숙하다면 금상첨화! - 에게 1년 동안 맡겨본다고 생각해보자. 1년 후 이 아이들의 사고와 표현의 차이는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둘다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서이긴 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논술학원비가 지역별로 60배까지 차이가 나는 이른바 '논술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논술이라는 것은 개인의 사색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 책을 보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논리라면 그 어떤 과목일지라도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수학은? 물리는? 사교육 없이 학생 혼자의 힘으로 논술고사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부모가 교수거나 인문적인 교양을 충분히 쌓은, 그리고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있는 집' 이라면 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은 부모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하고, 부모가 피곤에 쩔어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서민, 노동계급의 자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현실을 잘 모르니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생들도 쩔쩔 맬만한 철학적인 논술 문제를 푼다"며 뻘소리만 나오는 것이다. (프랑스는 학교에서 철학을 배우기나 하지!)  논술은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 사교육의 질에 따라 그 결과물도 다르기 때문에 부와 학벌의 대물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일각에서는 논술 채점위원인 교수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주입된 글쓰기와 깊은 사색을 통해서 얻어진 글쓰기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던데, 이건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다.

교수들이 일종의 관심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이런 주장은 그저 교수들의 지적 자만-허영심을 보여주는 증례일 뿐이다. 또한 그들은 '비싼 논술 사교육'일 수록 독창적이고 차별적인 논술교육을 제공해주므로 자만심에 빠진 교수들을 속여넘기기도 쉽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사실 속여넘기기 보다는 비싼 논술 사교육일 수록 학생들을 더 훌륭한 사색가로 만들어준다는게 더 문제다.) 명문대에서 시간강사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철학박사가 강남에서 운영하는 1인당 150만원 받는 철학세미나를 상상해보자. 과연 논술 채점위원들은 150만원 짜리 철학세미나 출신의 고등학생과 혼자 많은 사색을 한 학생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워주는 논술 교육의 장점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논술 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민주시민의 소양을 키워주는 교육이냐고.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대학 교수들의 추상적인 관심사에 대해 '대학교수의 입맛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것과 정말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논술고사가 요구하는 글쓰기는 수많은 글쓰기 중에 매우 특이한 한가지 글쓰기 유형에 지나지 않는다. 어째서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는 안되는가? 어째서 자신이 드러나서는 안되는가?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사색이 깊어도 글쓰기가 느리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그래서 글쓰기 요령에 집중하게 되는 논술 교육의 장점이 다른 부작용을 상쇄할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교육에서 논술 교육의 대부분이 첨삭에 촛점을 맞추는 이유가 위에서 이야기한 논술고사의 특징 때문이다.)

좌파진영은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사교육과 학벌 체제를 통한 부의 대물림을 경계해왔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논술'(과 면접)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옳다. 논술고사는 수능보다 사교육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시험이다. 소위 '독창성'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수능처럼 EBS강의로 사교육을 경감시킬 수도 없다.따라서 대학 선발 과정에서 서민과 노동자 계급을 차별하는 주요 기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진보-좌파 진영은 논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대입 '논술고사'에 대한 강경한 반대. 그게 교육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이들의 가장 적절한 포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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