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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일 선본 '도립대학설립' 비판 (경기교육감 선거)

 

(내일 급한 용무가 있어서 자세히는 쓰지 못하겠으나 일단 생각난 것부터 정리해보기로 하겠다.나중에 구체적인 DATA를 수집해 더 자세히 쓸 예정)

경기 교육감 예비후보 권오일씨가 '경기도립대학 설립'을 주요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권오일 후보의 기자회견 브리핑 자료.

 


약속 둘, 입시지옥 해소, 등록금 경감, 경기도립대학 건립


  국내 다른 도들과는 달리 경기도에는 국/공립 대학이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경기 지역이 교육에 있어서도 서울의 주변부로 전락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설립 전 과정에서 유관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경기도의 공립대학으로서 경기 도립대학을 건립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경기 도립대학의 학생 선발은 영어성적이 아니라 학생의 특기, 재능, 잠재력을 기준으로 선발하고 지역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를 도입하여 입시지옥 없고 등록금 부담없는 도립대학을 건립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로 봐주고 싶어도, 이건 영아니다 싶다.

아마도 의도하는 바는 경기도립 대학을 설립한 후 전형방법등을 진보적으로 만들어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에게 교육의 문을 넓혀주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방안이다.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우선 도립대학의 설립과 운영등은 도의회의 의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교육감이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도지사/도의회가 나서지 않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한대로 진보적인 대학이 되려면 진보진영이 (최소한) 도의회를 장악해야만 한다. 도의회가 과연 '영어 성적이 아니라 학생의 특기, 재능, 잠재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이해하고 승인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대두된다.

2) 또한 재정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과연 경기도가 경기 북부와 경기 남부에 각각 한개씩의 캠퍼스(문과, 이과)를 가진 도립대학을 신설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회의스럽다. (그럴 재정적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장애인 교육시설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3)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상 경기 북부와 남부가 인천, 서울에 의해 분단되어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용인에서 경기도립대학 자연과학대에 진학한 학생은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 북부에 있는 대학에 다녀야 하는데 그럴바에는 차라리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더 편하다. (권오일 선본 측은 경기 북부에 자연과학캠퍼스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4) 권오일 선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경기도립대학은 영어 성적이 아니라 특기, 적성 등으로 뽑기 때문에 사교육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경기도립대학이 사교육 경감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려면 다른 무엇보다 경기도립대학이 '이전에 사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받던 사교육을 팽개치고 특기,정석 계발에 힘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신설될 도립대학이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다른 지역의 도립대학의 위상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각도의 도립대학은 대학 진학예정자들의 선호도에서 거의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꼬는 이야기로 들릴까봐 좀 조심스러운데, 만약 도립대학을 신설하면 이 대학은 특기, 적성 계발을 열심히 한 학생보다 공부를 안한 학생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대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단의 조치 - 예컨대 졸업자 전원 취업 보장 과 등록금 전원 무료 - 를 취하지 않으면 신설 도립대학은 다른 도립대학이 걸었던 전철을 피할 수 없다.

5) 경기도립 대학은 설립으로 애초에 뜻한 목표를 이룰 수 없을 뿐더러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도립대학을 설립한다면 어디에 설립할 것인가? 아마도 농지를 대학용지로 전용하거나 산을깎아서 만들어야 할텐데 부지매입,보상, 개발 과정의 난맥상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 굳이 농지를 전용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대학을 신설할 필요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경기 지역의 사립대를 인수하는 방안이다.)



경기도립대학 설립은 진보 교육감 후보의 대표 공약이 될만한 것이 아니다. 일단 온전히 교육감의 권한안에 있는 문제가 아니다(도의회 의결 필요) 또한 선본 측이 노리고 있는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여러가지 문제점을 유발할 터인데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줘도 이익이 나지 않는 장사인셈이다.

차라리 도립 대학을 세울 돈으로 괜찮은 장애인 교육시설, 도서관을 도내 곳곳에 세우는 편이 낫다.

현실적으로 도립 대학 설립 공약이 이룰 수 있는 효과는, '서울시에 비해 교육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경기도 주민 정서'를 자극해서 얼마간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비를 받을) 도립대학 설립 예정지 주민들로부터 표를 모을 수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득표가 과연 "우리 동네에 뉴타운을 설립하겠다"는 뉴타운 공약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도립대학 설립 공약은 본선 경쟁력이 없다. 허점이 너무 많고  득표력도 거의 없어 보인다.
권오일 선본 측은 도립대학 설립 공약을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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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일 선본 '도립대학 설립' 비판 (경기교육감 선거)

(내일 급한 용무가 있어서 자세히는 쓰지 못하겠으나 일단 생각난 것부터 정리해보기로 하겠다.나중에 구체적인 DATA를 수집해 더 자세히 쓸 예정)

경기 교육감 예비후보 권오일씨가 '경기도립대학 설립'을 주요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권오일 후보의 기자회견 브리핑 자료.

 


약속 둘, 입시지옥 해소, 등록금 경감, 경기도립대학 건립


  국내 다른 도들과는 달리 경기도에는 국/공립 대학이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경기 지역이 교육에 있어서도 서울의 주변부로 전락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설립 전 과정에서 유관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경기도의 공립대학으로서 경기 도립대학을 건립하도록 할 것입니다. 또, 경기 도립대학의 학생 선발은 영어성적이 아니라 학생의 특기, 재능, 잠재력을 기준으로 선발하고 지역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를 도입하여 입시지옥 없고 등록금 부담없는 도립대학을 건립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로 봐주고 싶어도, 이건 영아니다 싶다.

아마도 의도하는 바는 경기도립 대학을 설립한 후 전형방법등을 진보적으로 만들어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에게 교육의 문을 넓혀주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없는 방안이다. 몇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우선 도립대학의 설립과 운영등은 도지사/도의회의 소관이다. 아무리 교육감이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도지사/도의회가 나서지 않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한대로 진보적인 대학이 되려면 진보진영이 (최소한) 도의회를 장악해야만 한다. 도의회가 과연 '영어 성적이 아니라 학생의 특기, 재능, 잠재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이해하고 승인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대두된다.

2) 또한 재정의 문제가 대두되는데 과연 경기도가 경기 북부와 경기 남부에 각각 한개씩의 캠퍼스(문과, 이과)를 가진 도립대학을 신설하고 유지할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할 수 있을지 회의스럽다. (그럴 재정적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장애인 교육시설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3)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상 경기 북부와 남부가 인천, 서울에 의해 분단되어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컨대 용인에서 경기도립대학 자연과학대에 진학한 학생은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 북부에 있는 대학에 다녀야 하는데 그럴바에는 차라리 서울시립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더 편하다. (권오일 선본 측은 경기 북부에 자연과학캠퍼스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힌바 있다.)

4) 권오일 선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경기도립대학은 영어 성적이 아니라 특기, 적성 등으로 뽑기 때문에 사교육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경기도립대학이 사교육 경감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려면 다른 무엇보다 경기도립대학이 '이전에 사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받던 사교육을 팽개치고 특기,정석 계발에 힘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신설될 도립대학이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다른 지역의 도립대학의 위상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각도의 도립대학은 대학 진학예정자들의 선호도에서 거의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꼬는 이야기로 들릴까봐 좀 조심스러운데, 만약 도립대학을 신설하면 이 대학은 특기, 적성 계발을 열심히 한 학생보다 공부를 안한 학생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대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단의 조치 - 예컨대 졸업자 전원 취업 보장 과 등록금 전원 무료 - 를 취하지 않으면 신설 도립대학은 다른 도립대학이 걸었던 전철을 피할 수 없다.

5) 경기도립 대학은 설립으로 애초에 뜻한 목표를 이룰 수 없을 뿐더러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도립대학을 설립한다면 어디에 설립할 것인가? 아마도 농지를 대학용지로 전용하거나 산을깎아서 만들어야 할텐데 부지매입,보상, 개발 과정의 난맥상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 굳이 농지를 전용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대학을 신설할 필요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경기 지역의 사립대를 인수하는 방안이다.)



경기도립대학 설립은 진보 교육감 후보의 대표 공약이 될만한 것이 아니다. 일단 교육감의 권한 밖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감 선거의 공약으로는 전혀 맞지 않다. 또한 선본 측이 노리고 있는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여러가지 문제점을 유발할 터인데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줘도 이익이 나지 않는 장사인셈이다.

차라리 도립 대학을 세울 돈으로 괜찮은 장애인 교육시설, 도서관을 도내 곳곳에 세우는 편이 낫다.

현실적으로 도립 대학 설립 공약이 이룰 수 있는 효과는, '서울시에 비해 교육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경기도 주민 정서'를 자극해서 얼마간의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비를 받을) 도립대학 설립 예정지 주민들로부터 표를 모을 수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득표가 과연 "우리 동네에 뉴타운을 설립하겠다"는 뉴타운 공약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도립대학 설립 공약은 본선 경쟁력이 없다. 허점이 너무 많고  득표력도 거의 없어 보인다.
권오일 선본 측은 도립대학 설립 공약을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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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 마지막 소고

프레시안에 올라온 한윤형씨의 글을 읽었는데 더 이상 88만원 세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은 변희재 좋은 일만 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88만원 세대>를 가지고 학교에서 토론회를 조직할 정도로 열광적인 옹호자이긴 했지만 말이다.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할겸 그냥 생각나는데로 주저리주저리...써본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긴장감


이 책이 태생적으로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음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에 썼던 개인적 독후감에도 그렇게 썼지만 '세대'와 '계급' 사이의 방황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경제'와 '정치'라는 갈등도 눈에 들어왔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문제' = '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식적인 해결책"을 찾자는 게 전반적인 책의 내용임에 불구하고 책의 말미에서는 약간 뜬금없이 청년들의 연대와 화염병, 바리케이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게 심상치 않았다.

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 수 있는, 책에 제시된 정책대안이라는 것은 (비록 한국 상황에서는 그것도 진보적인 것이지만) 우파도 능히 수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제도'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저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젊은 세대를 정치화 하기 위해 구태여 '연대'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점은 많은 독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정치적인 고민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연대가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좌파에서는 '우린 이미 노동자와 연대하고 있는디? 여기서 뭘 더? 누구랑?' 대충 이런 반응이 나왔던 것 같고 최근에는 우파가 '우리 젊은CEO끼리 연대하자 앗싸! ' 뭐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저자들의 구상이 어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해 당사자들의 각성, 연대 그리고 당사자 운동의 촉발을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계급과 세대, 경제적 해결과 정치적 해결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긴장관계는 독자의 사회적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해소되었다. 하지만 어떤 담론이라도 내적인 모순과 긴장을 가지니까 담론 자체가 치명적 한계를 가졌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당사자 운동? 지식인 팬클럽?


담론 차원이 아니라 운동의 구체적인 양태가 중요했는데, 막상 이 책의 저자중 한명인 우석훈 씨는 세대 측면에서나 사회적지위로 보나 88만원 세대와는 매우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고민거리를 만들어준다. (박권일 씨는 88만원 세대로 봐야 할 듯 싶다.)

내가 대학생 신분으로 청소년 운동에 뛰어들 때와 비슷한 처지로 생각되는데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진심으로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고자 하면 말 그대로 '후원'은 하되 절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드러내서는 안되는 법이다. 여기서 삐끗하면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게 아니라 그냥 "자기 세력 만들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후원자가 이미 기존에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한 '당사자 운동 모임'에 보조자로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들을 모으고 조직하면 "누구를 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후원자의 편견, 취향이 크게 작용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건 정말 대단히 큰 문제이다. 이 결과 '당사자 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당사자 운동이 아니라 '후원자가 듣고 싶고, 보고 싶어한, 후원자 취향의 운동'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좀 심하면 그냥 "후원자 추종 모임"이 되기도 쉽다. 이런 모임에는 어떻게든 '선생님'의 은덕을 입고자 하는 비겁자만 남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주로 계급적) 편견"이 작용할때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만약 지식인이 '가난한 집 자식들보다 좀 사는 집 애들이 논리적이고 자기 주장을 잘한다'는 식의 편견을 가진다면 그 모임에 어떤 이들이 뽑히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안봐도 DVD아닌가? (우석훈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게 절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석훈씨를 알지도 못한다. 우석훈씨가 널리 알려지기도 전인 과거에 소위 당사자 운동을 후원한다는 이들에게서 그런 일들이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88만원 세대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 일들이 과연 위에서 언급한 함정들을 잘 피해갔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중에 이 '당사자 운동'의 결과물이 말해줄 것이다. 이부분은 논쟁이 아닌 결과물로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 지켜보겠다.


















세대 내, 세대 간 연대가 안된 이유는 뭘까?

<88만원 세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졸노동자, 전문대생들은 왜 이책을 거의 읽지도 않았고, 혹 읽었다 하더라도 공감을 표하기 어려웠을까? 연대를 강조하는 <88만원 세대>의 메세지가 그 타겟이 되는 사람들의 정서와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중고교 시절, 공부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 그것이 생산적이건 소비적인건 - 을 해왔던 이들은 대학입시 과정을 겪으면서 큰 상처를 받는다.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주는 트라우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학교에 원서를 내면서 빠질 수 밖에 없는 자기 비하.... "나도 시험 못봤어", "나도 공부 많이 못했어"라고 늘 엄살 피우던 친구들이 당당히 명문대에 들어가고 동창회에서 거들먹거릴때 갖게 되는 배신감과 위화감. 이런 경험을 했던 이들이 '88만원 세대여, 토플책을 덮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자!'는 책의 메세지에 공감할래야 할수가 없다.

가상적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토플책을 덮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마 지도부는 명문대생들이 될 것이고 고졸, 전문대생들은 몸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면 고졸, 전문대생들이 존재하는 운동의 아랫쪽부터 박살나게 된다.이건 누가 봐도 뻔한 시나리오다. 당사자들인 고졸, 전문대생들이 이를 (본능적으로) 예감 못할리도 없다.

그럼 해결책은 뭐였을까? 연대의 기본은 신뢰다. 신뢰가 이뤄지려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마치 과거의 학출 노동운동가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와 같은 움직임이 재연되기란 어려울 것 같다. 88만원 세대 운동을 하려는 서울대생들은 모두 중퇴를 해야하나? 지방대로 편입? 이건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세대내 연대는 그들간에 존재하는 여러 계층과 잠정적인 경쟁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인것 같다.

하지만 세대간 연대에 관해서는 보다 많은 옵션들이 존재했다. 과거에 포스팅하기도 했었지만 예컨대 진보교수들이 많은 대학- 성공회대, 한신대 등 - 에서 등록금 투쟁과 관련해 학생과 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회대의 사례를 보자면 소위 진보교수(강사도 아니고 정교수인데도!)들이 나서서 재단의 대리인인양 행세하는 꼬락서니를 많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무슨 세대간 연대를 하겠다는 건데?
























여전히 <88만원 세대>의 잠재력을 믿는다

<88만원 세대>를 맨 처음 접하고, 열광적인 찬성을 표할 때부터 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택했었다.
비정규직 이야기 맨날해서 뭐 남는거 있나? 노동, 계급 이런 이야기 대학에서 이야기 하면 따당하거든? 그러니까 세대론으로 접근하는게 옳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꾸로, 88만원 세대론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행동을 촉발시키지 못하면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론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걸 두고 계속 담론차원에서 '계급'이 옳으니 '세대'가 옳으니 하면서 논하는 것은 별다른 실익도 없이 변희재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다. 담론보다는 정치력, 기획력의 문제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88만원 세대'라는 용어의 사용을 지지한다. 그것이 세대와 계급을 아우를 수 있는 절묘한 용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좌파의 수권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좌우에 상관없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를 좌파가 나서서 지적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우파보다 좌파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관점이 이러하기에 사실 나는 '당사자 운동'에 강박되는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연대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88만원 세대의 문제는 기실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 모두가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젊은 세대만을 '당사자'로 보고, 이들의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 식의 전략을 되려 <88만원 세대>가 열어놓은 새로운 공간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오류였던 것 같다. 젊은 세대(만)을 당사자로 보니 바로 윗세대인 386과 대립구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차라리 청년실업으로 야기되는 재정악화 문제 등을 추가로 제기하면서 문제의식을 보편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작업을 고졸 또는 전문대, 지방대 88만원 세대의 펜을 통해 진행했으면 더욱 의의가 있었을 것이다.)


이슈는 선점했지만 그것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선거 운동식으로 이야기하면 좀 이런 느낌인거다.
 '좌파의 수권능력'을 보여주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으려면 다른 어떤 것(예컨대 당사자 운동 조직) 보다 88만원 세대를 위한 다양한 법제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입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나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 바가 큰 것 같은데 '이론가'  나 '활동가' 보다 '기획자','정책가'를 지향하는 내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저기서 나올 이야기들은 충분히 다 나온것 같다. 이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위해 열심히 뛰면 되는 것 같다.  어째 논의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관점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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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논술에 반대해야 한다

대학 입시 자율화에 대한 논란이 점화되었다. 3불 정책 ( 고교등급제, 기부금 입학제, 본고사 금지를 뜻함 ) 전체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만이라도 실시하게 해달라는 것이 명문 사립대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부금 입학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시민사회 전반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것 같고, 고교 등급제는 수혜자인 일부 특목고생들과 그 학부모들을 제외하고는 적극 찬성하는 사람들이 드문것 같다.

문제는 본고사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분분한 데 여기에 더해 본고사와  논술의 경계가 모호해서 논란의 여지가 더 크다. 어떤 이들- 주로 교육당국- 은 본고사와 논술고사를 분명히 구분하는 듯 하지만 이 둘은 구분하기도 어렵고 사실상 구분이 필요치도 않다. 두가지 모두 보통의 공교육을 통해서는 대비가 되지 않는 고난도의 시험으로, '깊이있는 사고를 평가한다'는 허울좋은 명분과는 달리 사교육에 전적으로 의지 할 수 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좌파, 진보진영에서는 본고사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하면서도 논술, 면접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심지어 명망있는 좌파 정치인인 심상정 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사업중에 "청소년을 위한 논술교육"이라는 것까지 마련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존경받는 지식인인 홍세화 씨가 '논술 특강'의 강사로 나섰던 흔적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발견된다. 나는 심상정, 홍세화씨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명망가들조차 논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강사로 나설 정도로 '논술'에 대해 관대한 좌파 지식인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것이다.

본고사에 대해서는 격렬히 반대하는 그들이 어째서 논술에는 관대할까?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좌파 진영에서 "논술고사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한 글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홍세화씨의 강연 중에 한국의 객관식 시험과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를 비교하며 논술형 고사의 우월성을 옹호했던 것이 내가 접한 유일한 '논술고사 옹호론'이었다.

홍세화씨가 이야기 한 구절 하나하나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지는 하나의 정답만이 인정되는 객관식 시험과는 달리 논술형 고사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과 민주주의의 기본인 토론의 기술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우선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은 비단 논술 뿐만이 아니라 고난도의 수학 본고사 - 풀이과정을 평가하는 - 를 통해서도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진보진영은 본고사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논술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는다. 둘다 찬성하거나 둘다 반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수학 본고사는 고액의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만 논술을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모르는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교과과정으로 출제범위가 제한되어있는 수학과 달리 깊이와 넓이에 제한이 없는 논술은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는가에 따라 학생의 결과물이 달라진다. 에컨대 비슷한 수준의 두 학생 A,B를 각각 달랑 학부 수준의 철학만 공부한 이와 박사급의 연구원 - 게다가 토론식 교육에 익숙하다면 금상첨화! - 에게 1년 동안 맡겨본다고 생각해보자. 1년 후 이 아이들의 사고와 표현의 차이는 상당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둘다 열심히 한다는 전제하에서이긴 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논술학원비가 지역별로 60배까지 차이가 나는 이른바 '논술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논술이라는 것은 개인의 사색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 책을 보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논리라면 그 어떤 과목일지라도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수학은? 물리는? 사교육 없이 학생 혼자의 힘으로 논술고사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부모가 교수거나 인문적인 교양을 충분히 쌓은, 그리고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유있는 집' 이라면 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어느 수준에 이를 것이다. (물론  그 수준은 부모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많이 배우지 못하고, 부모가 피곤에 쩔어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서민, 노동계급의 자녀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현실을 잘 모르니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생들도 쩔쩔 맬만한 철학적인 논술 문제를 푼다"며 뻘소리만 나오는 것이다. (프랑스는 학교에서 철학을 배우기나 하지!)  논술은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하고, 사교육의 질에 따라 그 결과물도 다르기 때문에 부와 학벌의 대물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일각에서는 논술 채점위원인 교수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주입된 글쓰기와 깊은 사색을 통해서 얻어진 글쓰기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하던데, 이건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다.

교수들이 일종의 관심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이런 주장은 그저 교수들의 지적 자만-허영심을 보여주는 증례일 뿐이다. 또한 그들은 '비싼 논술 사교육'일 수록 독창적이고 차별적인 논술교육을 제공해주므로 자만심에 빠진 교수들을 속여넘기기도 쉽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사실 속여넘기기 보다는 비싼 논술 사교육일 수록 학생들을 더 훌륭한 사색가로 만들어준다는게 더 문제다.) 명문대에서 시간강사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철학박사가 강남에서 운영하는 1인당 150만원 받는 철학세미나를 상상해보자. 과연 논술 채점위원들은 150만원 짜리 철학세미나 출신의 고등학생과 혼자 많은 사색을 한 학생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워주는 논술 교육의 장점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논술 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민주시민의 소양을 키워주는 교육이냐고.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대학 교수들의 추상적인 관심사에 대해 '대학교수의 입맛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것과 정말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논술고사가 요구하는 글쓰기는 수많은 글쓰기 중에 매우 특이한 한가지 글쓰기 유형에 지나지 않는다. 어째서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는 안되는가? 어째서 자신이 드러나서는 안되는가?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사색이 깊어도 글쓰기가 느리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그래서 글쓰기 요령에 집중하게 되는 논술 교육의 장점이 다른 부작용을 상쇄할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교육에서 논술 교육의 대부분이 첨삭에 촛점을 맞추는 이유가 위에서 이야기한 논술고사의 특징 때문이다.)

좌파진영은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사교육과 학벌 체제를 통한 부의 대물림을 경계해왔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논술'(과 면접)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옳다. 논술고사는 수능보다 사교육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시험이다. 소위 '독창성'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수능처럼 EBS강의로 사교육을 경감시킬 수도 없다.따라서 대학 선발 과정에서 서민과 노동자 계급을 차별하는 주요 기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진보-좌파 진영은 논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대입 '논술고사'에 대한 강경한 반대. 그게 교육문제와 빈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이들의 가장 적절한 포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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