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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1
    <88만원세대> 마지막 소고(2)
    COOL LEFT

<88만원세대> 마지막 소고

프레시안에 올라온 한윤형씨의 글을 읽었는데 더 이상 88만원 세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은 변희재 좋은 일만 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88만원 세대>를 가지고 학교에서 토론회를 조직할 정도로 열광적인 옹호자이긴 했지만 말이다.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할겸 그냥 생각나는데로 주저리주저리...써본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긴장감


이 책이 태생적으로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음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에 썼던 개인적 독후감에도 그렇게 썼지만 '세대'와 '계급' 사이의 방황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경제'와 '정치'라는 갈등도 눈에 들어왔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문제' = '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상식적인 해결책"을 찾자는 게 전반적인 책의 내용임에 불구하고 책의 말미에서는 약간 뜬금없이 청년들의 연대와 화염병, 바리케이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게 심상치 않았다.

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 수 있는, 책에 제시된 정책대안이라는 것은 (비록 한국 상황에서는 그것도 진보적인 것이지만) 우파도 능히 수용할 수 있는 '상식적인 제도'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저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젊은 세대를 정치화 하기 위해 구태여 '연대'라는 말을 끄집어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점은 많은 독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정치적인 고민을 많이 해보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연대가 뭐야?'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좌파에서는 '우린 이미 노동자와 연대하고 있는디? 여기서 뭘 더? 누구랑?' 대충 이런 반응이 나왔던 것 같고 최근에는 우파가 '우리 젊은CEO끼리 연대하자 앗싸! ' 뭐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저자들의 구상이 어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해 당사자들의 각성, 연대 그리고 당사자 운동의 촉발을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계급과 세대, 경제적 해결과 정치적 해결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긴장관계는 독자의 사회적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해소되었다. 하지만 어떤 담론이라도 내적인 모순과 긴장을 가지니까 담론 자체가 치명적 한계를 가졌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당사자 운동? 지식인 팬클럽?


담론 차원이 아니라 운동의 구체적인 양태가 중요했는데, 막상 이 책의 저자중 한명인 우석훈 씨는 세대 측면에서나 사회적지위로 보나 88만원 세대와는 매우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고민거리를 만들어준다. (박권일 씨는 88만원 세대로 봐야 할 듯 싶다.)

내가 대학생 신분으로 청소년 운동에 뛰어들 때와 비슷한 처지로 생각되는데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진심으로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고자 하면 말 그대로 '후원'은 하되 절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드러내서는 안되는 법이다. 여기서 삐끗하면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게 아니라 그냥 "자기 세력 만들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후원자가 이미 기존에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한 '당사자 운동 모임'에 보조자로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들을 모으고 조직하면 "누구를 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후원자의 편견, 취향이 크게 작용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건 정말 대단히 큰 문제이다. 이 결과 '당사자 운동'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당사자 운동이 아니라 '후원자가 듣고 싶고, 보고 싶어한, 후원자 취향의 운동'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좀 심하면 그냥 "후원자 추종 모임"이 되기도 쉽다. 이런 모임에는 어떻게든 '선생님'의 은덕을 입고자 하는 비겁자만 남기 마련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주로 계급적) 편견"이 작용할때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만약 지식인이 '가난한 집 자식들보다 좀 사는 집 애들이 논리적이고 자기 주장을 잘한다'는 식의 편견을 가진다면 그 모임에 어떤 이들이 뽑히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안봐도 DVD아닌가? (우석훈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게 절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석훈씨를 알지도 못한다. 우석훈씨가 널리 알려지기도 전인 과거에 소위 당사자 운동을 후원한다는 이들에게서 그런 일들이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88만원 세대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 일들이 과연 위에서 언급한 함정들을 잘 피해갔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중에 이 '당사자 운동'의 결과물이 말해줄 것이다. 이부분은 논쟁이 아닌 결과물로 자신을 증명하면 된다. 지켜보겠다.


















세대 내, 세대 간 연대가 안된 이유는 뭘까?

<88만원 세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졸노동자, 전문대생들은 왜 이책을 거의 읽지도 않았고, 혹 읽었다 하더라도 공감을 표하기 어려웠을까? 연대를 강조하는 <88만원 세대>의 메세지가 그 타겟이 되는 사람들의 정서와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중고교 시절, 공부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 그것이 생산적이건 소비적인건 - 을 해왔던 이들은 대학입시 과정을 겪으면서 큰 상처를 받는다.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주는 트라우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학교에 원서를 내면서 빠질 수 밖에 없는 자기 비하.... "나도 시험 못봤어", "나도 공부 많이 못했어"라고 늘 엄살 피우던 친구들이 당당히 명문대에 들어가고 동창회에서 거들먹거릴때 갖게 되는 배신감과 위화감. 이런 경험을 했던 이들이 '88만원 세대여, 토플책을 덮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자!'는 책의 메세지에 공감할래야 할수가 없다.

가상적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두 토플책을 덮고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아마 지도부는 명문대생들이 될 것이고 고졸, 전문대생들은 몸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면 고졸, 전문대생들이 존재하는 운동의 아랫쪽부터 박살나게 된다.이건 누가 봐도 뻔한 시나리오다. 당사자들인 고졸, 전문대생들이 이를 (본능적으로) 예감 못할리도 없다.

그럼 해결책은 뭐였을까? 연대의 기본은 신뢰다. 신뢰가 이뤄지려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마치 과거의 학출 노동운동가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와 같은 움직임이 재연되기란 어려울 것 같다. 88만원 세대 운동을 하려는 서울대생들은 모두 중퇴를 해야하나? 지방대로 편입? 이건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세대내 연대는 그들간에 존재하는 여러 계층과 잠정적인 경쟁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인것 같다.

하지만 세대간 연대에 관해서는 보다 많은 옵션들이 존재했다. 과거에 포스팅하기도 했었지만 예컨대 진보교수들이 많은 대학- 성공회대, 한신대 등 - 에서 등록금 투쟁과 관련해 학생과 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회대의 사례를 보자면 소위 진보교수(강사도 아니고 정교수인데도!)들이 나서서 재단의 대리인인양 행세하는 꼬락서니를 많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무슨 세대간 연대를 하겠다는 건데?
























여전히 <88만원 세대>의 잠재력을 믿는다

<88만원 세대>를 맨 처음 접하고, 열광적인 찬성을 표할 때부터 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택했었다.
비정규직 이야기 맨날해서 뭐 남는거 있나? 노동, 계급 이런 이야기 대학에서 이야기 하면 따당하거든? 그러니까 세대론으로 접근하는게 옳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꾸로, 88만원 세대론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행동을 촉발시키지 못하면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론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걸 두고 계속 담론차원에서 '계급'이 옳으니 '세대'가 옳으니 하면서 논하는 것은 별다른 실익도 없이 변희재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다. 담론보다는 정치력, 기획력의 문제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88만원 세대'라는 용어의 사용을 지지한다. 그것이 세대와 계급을 아우를 수 있는 절묘한 용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좌파의 수권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좌우에 상관없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를 좌파가 나서서 지적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우파보다 좌파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 관점이 이러하기에 사실 나는 '당사자 운동'에 강박되는 흐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연대라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것 같은데 88만원 세대의 문제는 기실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 모두가 '당사자'이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젊은 세대만을 '당사자'로 보고, 이들의 '당사자 운동'을 후원하는 식의 전략을 되려 <88만원 세대>가 열어놓은 새로운 공간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오류였던 것 같다. 젊은 세대(만)을 당사자로 보니 바로 윗세대인 386과 대립구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차라리 청년실업으로 야기되는 재정악화 문제 등을 추가로 제기하면서 문제의식을 보편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작업을 고졸 또는 전문대, 지방대 88만원 세대의 펜을 통해 진행했으면 더욱 의의가 있었을 것이다.)


이슈는 선점했지만 그것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선거 운동식으로 이야기하면 좀 이런 느낌인거다.
 '좌파의 수권능력'을 보여주고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으려면 다른 어떤 것(예컨대 당사자 운동 조직) 보다 88만원 세대를 위한 다양한 법제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입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나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 바가 큰 것 같은데 '이론가'  나 '활동가' 보다 '기획자','정책가'를 지향하는 내 성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저기서 나올 이야기들은 충분히 다 나온것 같다. 이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위해 열심히 뛰면 되는 것 같다.  어째 논의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관점에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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