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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언니들을 위한 노래를-

노래를 후배가 만들어서, 국회앞 투쟁 마지막 공연 지민주씨의 노래를 듣고 있는 중에

핸드폰으로 들려주었다.

그때는 잘 끊기고 해서 잘 못 들었는데.

오늘 우리집에 와서 직접 들었다.

 

기타선율과 그녀의 노래와 그녀의 목소리와 그의 랩과 그들의 마음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나, 이래서 산다.

 

월드컵 지대위와 월드컵 홈에버 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목요문화제(신촌/7시)에 오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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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Life

지아장커의 [Still Life]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은 오직 하나,

이 영화 볼때 암 생각없이 봤구나..

이렇게 많은 것을 놓쳤었다니-

반성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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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우주에서 숨을 쉬듯,

그렇게 그저 위로해주고 싶었어.

 

토닥토닥-

 

무엇이든,

토닥토닥

 

우린 성장하고 있는 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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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네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소녀의 엄마가 그녀의 시선에서 사라지자,

집 앞 마당에서 그 소녀는 땅을 치며 꺼이꺼이 숨 넘어갈듯,

짐승처럼 울었다고 했다.

 

불안은 그저 나의 살덩이 같았어.

그런거 있잖아.

살점이 베어나간 부분에 다시 돋는 새살,

새살이 돋지만,

상처는 남고,

그 새살은 내 살같지 않는 느낌으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했지.

마치 자신이 이전의 살을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물감.

동질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에게 불안이라는 것은.

그랬다.

못내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든,

내 살점과 같았다.

 

그러니,

무어라고

당신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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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도서관에 갔는데-

열심히 책을 골랐지.

미리 준비한 책을 열심히 검색해서 넘버를 확인하고,

진열된 책장 속을 비집고 들어가 찾고 찾았어,

몇 개는 진열장에서 사라져버린 후여서

사서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

그러고서 빌린 책만 추려서

빌려가지고 나가려 했는데,

 

'회원님은 대출정지 상태입니다'

라고 화면에 -.-;

 

젠장.

 

터벅터벅 도서관에서 나오며 어이없이 허탈하게 웃고 있는게

과외하는 아이의 문자-

 

'쌤, 오늘 과외 못해요'

 

오늘 왜 이래.

 

이랜드 추석투쟁 선전전도 못갔는데-

이럴 줄 알았음,

선전전 가는 건데-

 

젠장.

 

이런 날이 꼭 한달에 한번은 있어-

한달에 한번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쨌든 긍정적 사고가 필요한 9월달.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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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

소통의 절박함.

하나의 경로만.

딱 하나의 경로만.

 

분노의 근원은 어디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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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전경린의 여행집을 다시 읽다.

 

 

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삶은 애욕과 노동이거나 애욕의 노동.

 

여행이란 그야말로 자기 몸과 자아와 의식간의 치열한 합병이고 공속이고 일치일 것이다. 어느 여배우의 농담과 같은 통렬한 고백과 같이.

나, 유일한 가족이여........

 

나마스떼.

 

울거라......

삶은 습관이 아니라 백 번 천 번 거듭되는 자기 갱생이니 산산조각 난 상실 끝에서 본성과 실재를 깨닫고, 그 가난과 정화의 힘으로 너를 낳아라. 진실로........

 

살아지지가 않았다. 아침에 눈 뜰때마다 캄캄한 내부로부터 삶불능이라는 붉은 경고서를 받았다.

 

 

그 순진한 공포와 슬픔의 얼굴이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계급과 순수 혈통과 피부와 눈과 귀와 음성들을 엄밀하게 따져 선택된 쿠마리의 마지막 관문은, 50마리의 물소 머리를 잘라 넣은 칠흑 같이 어두운 방에서 홀로 지새는 것이다. 소리 내지 않고, 울지 않고, 튀어나와 버리지 않고 홀로 피비린내 가득한 밤을 보내고 나오는 일. 그것이 겨우 다섯 살 혹은 네 살 먹은, 어린 성녀의 밤이었다. 그리고 ㅁ자로 꼭 닫힌 사원에서의 긴 유폐.......

 

나는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 다음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담담한 얼굴로 식당을 찾아 낯선 거리로 나섰다.

 

가끔 삶이 가혹해질 때면 성녀 쿠마리의 방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통을 뱃속으로 삼키는 침묵이 중요하다. 곰으로부터 인간이 될 때까지, 인간으로부터 신에 이를 때까지 지그시 견디는 것이다. 슬픔이 50마리 물소 머리를 끌어안은 것같이 무섭고 깊은 것이라해도......

 

- 전경린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타인의 백마디 깨달음의 언어보다

스스로의 하나로 모아지는 침묵이 더 절실해지는 때.

당신의 묘오의 향연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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