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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01
    나다wom 2호 인문학 수다 : "쩡열을 울린 맑스주의자"(3)
    나래

나다wom 2호 인문학 수다 : "쩡열을 울린 맑스주의자"

"아무나 볼 수 있는 인문학잡지 나다wom"의 정기코너인 '인문학 수다'기사를 모아두는 곳!

[나다wom 게시판 가서 다른 글들도 읽어보기!]

 

인문학 수다: 영화, 철학, 역사, 기타 등등_ 장르는 불문. 종횡무진 수다 떤 기록들 중 재미난 것들만 특별히 엄선(!)하여 선보이는 코너

쩡열을 울린 맑스주의자

나래 | 기타를 가르치고 만화를 그리고 알바도 하며 나다 공간에 함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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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역사 강의』의 저자 한형식을 만나다!

 

음 세미나 책을 정했을 때 “제목이 ‘맑스주의 역사 강의’래. 으, 맙소사.”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막상 읽었을 때는 걱정했던 것보다 용어에 대한 설명도 쉽게 돼 있고 전체적으로 친절해서, 쩡열과 엠건과 나(나래) 셋 다 벙실벙실하면서 책이 참 재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련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같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건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됐고, 항상 이름으로만 알았던 맑스주의의 흐름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래서 책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저자인 한형식 선생님을 초청하자고 했을 때엔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굉장히 기대했다. 마침 가까운 동네에 있는 ‘새움’이라는 세미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한형식 선생님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20대(세 명과 40대 둘!?)들이라고 해서 그런지 꽤 기대하고 오신 듯했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를 넘어설 수가 없다는 거죠.”

 

리에 앉아서 서로 활동 내용과 단체 소개를 하다가 재정, 단체의 유지와 관리에 관해 얘기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유물론에 대한 강의로 이어졌다. 좀 벙찌긴 했는데 중간중간에 유물론은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라는 점을 누차 강조하신 만큼 쉽고 와 닿게 말씀해 주셔서인지 얘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이 사회구조나 삶의 토대가 된다는 이론인데, 개인적인 차원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이 어떤 수단으로 먹고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이론과 주장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론적으로는 폭력적이고 일관적인 규율화에 대해 반대하면서, 막상 폭력적이고 일관적으로 청(소)년을 비롯해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규율화하고 있는 명문대에서 강의하시는 어느 학자분이라던가. 개인의 선택이고,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자는 건 아니지만 왜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이런 현상을 문제 삼지 않고 당연하게 넘어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청소년이 게임을 많이 하게 되면 행복할까요?”

 

장 인상 깊었던 얘기는 셧다운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깊은 고민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주변의 청소년활동가 친구들이 반대운동을 해서 어쨌든 만약 내 주변의 누군가가 찬성한다고 하면 경계의 눈초리를 흘긋흘긋 보냈을 터인데, 한형식 선생님은 애초에 셧다운제에 대한 찬반 여부로 정치적 성향을 가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 잣대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지만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갈렸을까. 

 

부분은 당파성과 이어진다고 하셨는데, 당파성은 이 주장이 누구의 이익관계와 연관이 됐는지 중요하게 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진보진영이 금융과 문화산업으로 연명을 해왔기 때문에 게임 산업에 긍정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금융과 문화산업이 진보진영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지만 마치 음모론을 듣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막상 내가 그런 식으로 어떤 사건을 볼 수 있게 되면 지금 이렇게 듣는 것만큼 재밌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렇다면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건 꼭 좋은 것일까, 청소년이 그래서 게임을 많이 할 수 있게 되면 정말 행복해질까 물어봤을 때 우리는 소심하게 “음… 쪼끔?”이라고 대답할 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그랬을 때에도 제일 좋은 것은 게임회사가 아니겠느냐고, 우리는 과연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하면서 자유주의와 맑스주의의 차이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다.

 

 

“현실을 인식하고 억압을 지워나가는 그 과정이 자유인 거에요.”

 

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우니까 통제할 필요도 없고, 통제하면 안 된다는 태도라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어떤 기술이 발전한 데에는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제하는 장치를 자유를 위한다고 제거해도 결코 이득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현실적으로 대체할 만한 다른 규율 없이 무엇인가를 해체하려 하면 시작은 좌파가 강력한 국가주의와 권위주의를 비판하는 거였을지 몰라도, 끝은 비슷한 흐름을 갖고 시작한 우파와 합쳐진 신자유주의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했다. 이건 아까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더 잘 모르겠는데, 어쩐지 홈스쿨링을 시작했을 때 도시의 소비적인 놀이문화를 엄청나게 잘 소화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여튼.

 

스주의에서 자유는 단지 내가 자유롭다고 선언하거나 어딘가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나를 제약하고 있는 현실적 조건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과 싸우다 스스로 자신만의 규율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소년들한테 이미 사회적으로 확정되어 있는 시스템 안에서 틈을 내 공간을 주고 멋대로 하라는 건 자유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사회의 제약 요소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자기규율화 하는 힘을 키워 나가야 하는데 자유와 규제를 딱 잘라버리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이해는 되지만 어른들이 툭하면 마음대로 하는 것만이 자유가 아니라고 하던 게 생각이 나면서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말씀을 장장 세 시간 동안 해주셨기 때문에 자른 게 많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뽑는다면, 마무리 분위기가 됐을 때쯤 쩡열이 질문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던 것. “근데 이렇게 알고도 실천할 자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한형식 선생님이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위로를 해주시다가 약속이 있으셔서 저녁도 같이 못 드시고 가셨다. 

 

놀라긴 했지만 뭔가 저게 나다가 아니었으면 가능한 상황이었을까 싶어서 재미있었다. 나다 사람들이랑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면서 나다에 사니까 이런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들을 기회가 생겨서 참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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