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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를 방어하라고? [사회주의자 통신 2호]

카다피를 방어하라고?

- 리비아혁명과 제국주의 

 

사노위 강령기초위원 양효식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고 민주대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앞장 선 노동운동 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 일부는 현재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다피가 반제국주의 투사이며, 반면 지금 카다피에 반대하여 떨쳐 일어선 리비아 봉기세력은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고 있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반제 반미’가 최고의 잣대인 이들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이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 방어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정치적 본질로 볼 때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건설을 주장하며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이 이러한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 놀아나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반동세력이라 지칭하고,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고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가 바로 그러한데, 이들은 “지금 리비아에 제국주의가 군사침공을 하고 있는 상황과 카다피 반군들의 반동주의적 성격들이 분명하게 폭로되어 정세가 일변한 상황에서는 카다피 방어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노정신 73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지지하고 차베스의 카다피 방어를 비판하는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을 “제국주의에 놀아나는 세력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리비아의 ‘무장한 노동자 민중들’의 ‘무장’한 형태만 보았지 ‘무장’의 내용, 즉 무장반란군들의 계급구성, 요구, 목표는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의 이해에 따라 춤추게 되었다. 저들은 차베스는 물론이고 쿠바조차도 ‘가짜 사회주의’라고 말하면서 리비아 침공을 신중하게 반대하는 진보적 정권들마저도 규탄하고 있다.”

리비아 혁명은 튀니지, 이집트 혁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혁명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예멘, 시리아, 바레인, 사우디 등지로 확산되고 있는 중동 혁명, 아랍권 혁명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 아랍권 혁명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혁명이다. 독재와 폭정에 맞서 민중들이 떨쳐 일어선 것이다. 또한 만연한 실업과 물가폭등 같은 경제위기의 고통으로 인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리비아에서 민중들의 시위와 항쟁은,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달리 초장부터 카다피 정권의 무력 학살로 인해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무장반란군(반군)의 기층은 노동자, 청년층, 빈민들이며, 이들이 지금 카다피 정부군과 일선에서 대치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반군의 상층부에는 카다피 정권에서 넘어온 각료들과 장성들, 친서방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존재하며 이들이 벵가지에 있는 과도국가평의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리비아 혁명을 카다피 축출에 제한시키려 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반면 기층의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은 카다피 타도를 넘어 보다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와 목표 또한 이집트, 튀지니에서 거리에 나선 노동자 민중들이 외친 것과 동일한 ‘독재 타도’이며, “생존권 쟁취”라는 것도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집트, 튀니지를 넘어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 아랍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정협은 리비아 반란의 상층부 인사들이 서방의 개입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반란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니라 반동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87년 6월항쟁에서 상층부를 이룬 김영삼 김대중이 친미세력이라고 해서 6월항쟁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닌 반동적 성격으로 바뀌는가?

 

맹목적으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들은리비아에서 봉기가 시작하자 봉기 세력에 대해 친제국주의 또는 친왕정주의라고 규정해버리고, 봉기의 맥락(중동혁명, 아랍혁명의 맥락)과 독재를 타도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분명한 열망을 처음부터 무시하였다. 리비아의 봉기자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물론 동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봉기자들이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사람들이나 벤알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튜니스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과 그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노정협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게 놀아나서 아랍혁명의 일부로서의 리비아혁명을 부정하고 ‘서방 제국주의 대 반제투사 카다피’의 구도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짓이다.

 

한편 우리는 차베스가 서방의 리비아 침공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반대는 당연하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 이전부터 이미 차베스는 리비아 봉기세력을 비난하고 카다피를 옹호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차베스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기만성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노정협은 이런 사실은 애써 못본 체 하고 교묘하게 ‘리비아 침공 반대’가 쟁점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리비아에 개입하는 목적은 그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가 아니라 반군 내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 대신에 상층부의 친서방 세력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리비아혁명이 급진화 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그리하여 리비아 내 서방측의 이권과 영향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리비아혁명이 사우디 등 친미 왕정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중동 및 아랍권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국주의적 패권과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반군의 상층부만이 아니라 기층의 노동자, 청년층도 한때 카다피의 반격으로 궤멸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봉기세력 · 반군의 성격이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는 세력이나 반동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는 물론이고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 청년층의 주도 아래 있다.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면서 계속해서 카다피 정부군과의 내전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편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하자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며 모든 리비아 사람들이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노위 신문 8호에 실린 “제국주의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기사도 그 중 하나인데, 이 기사는 리비아 노동자계급이 "카다피와 일시적으로 제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타겟이 된 자들(여기서는 카다피 정권)에 대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자동으로 편을 들어야 하나? 현재 놓여 있는 정치적 맥락이나 양측의 전쟁 목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러나 이 반제 공동전선의 목표가 무엇일 수 있겠는가? 카다피와 리비아 노동자들이 어떤 당면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인가?

지금 리비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다피와의 공동전선이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물론 리비아에 개입하고 있는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 이란에 대해 미 제국주의가 벌이는 전쟁위협 책동에 반대하여 북한, 이란을 방어하는 것과 리비아 상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리비아를 방어하라는 것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리비아 혁명을 멈춘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리비아 혁명처럼 북한 혁명이나 이란 혁명이 전개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북한 이란을 방어하라!’가 아니라 당연히 ‘북한 이란 혁명의 승리!’를 내걸어야 한다.

 

리비아 내에서 반군을 비롯한 민주주의 혁명세력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개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혁명 세력이 제국주의자들의 반카다피 개입이 낳아 놓은 효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개입과 공습으로 인해 보안군과 용병대 등 카다피의 탄압기구가 약화되었다는 이유로 이 탄압기구에 대한 지금까지의 투쟁을 중지하고 카다피와 제휴해야 할 것인가? 리비아의 반란세력은 어떤 경로로부터 오는 것이든 그들이 거머쥘 수 있는 무기는 그 무엇이든 거머쥐어야 하며,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우리의 전략은 이집트와 튀니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반란세력의 전투를 도울 수 있도록 사람과 무기로 지원에 나서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나아가 반란세력은 새로운 상황을 이용하여 전투를 밀고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보다 효과적인 전투 단위로 조직하여 빼앗긴 도시들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

 

카다피가 제국주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트리폴리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고를 개방하여 인민을 무장시키겠다”고 말한 걸로 보도되고 있다. 카다피가 통제하는 영토 내에서 민주주의혁명의 지지자들은 무기의 즉각 분배와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의용군 창설을 요구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만약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면 이 의용군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선에서 카다피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하지 않은 채 카다피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체의 점령 시도를 패퇴시키고, 의용군들 자신들이 카다피와 그의 체제를 타도할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전술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제국주의의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 시도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경우를 전제로 해서다.

 

리비아 혁명은 지금 기로에 섰다. 만일 카다피가 제국주의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반란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아랍혁명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와 예멘,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로 혁명의 확산과 이집트, 튀니지에서의 제2 혁명에 당장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카다피를 방어하라’거나 ‘카다피와 제휴하라’는 것은 리비아혁명을, 나아가 아랍혁명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카다피 체제 타도와 함께 아랍 전역에서 제국주의 타도와 자본주의 타도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영구혁명’을 통해서만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의 인민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빵과 평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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