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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임박!] 10월 1일 금요일 다지원 4분학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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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집단적 노동이다. {예술과 다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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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현대사, 인간의 계보학 - 3분학기 개강!!!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다양한 다지원 강좌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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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시작합니다. 젠더와 과학기술의 관계!

 안녕하세요! 다중지성의 정원입니다. 
다중지성의 정원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강좌공간인데요, 오늘 4월 1일 목요일부 젠더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룬 세 명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사회학 이론가 켈러, 하딩, 해러에이를 다룬 완전 소중한!! 강좌가 시작되어 소개해 드립니다. 

과학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몸은 늘 성적 도구이거나, 재생산 도구이거나, 남성의 소유물이거나,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남성'과는 다른 '예외'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가부장성에 문제제기한 대표적인 이론가들로 켈러, 하딩, 해러웨이가 있으며, 오는 2분학기 다지원에서는 조아라 선생님과 함께 젠더와 과학, 페미니즘과 과학의 문제를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함께 공부하실 분들을 찾습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 ^  


(문의: 02-325-2102)


* 할인제도도 참조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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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지성의 정원 2분학기 강좌 3월 29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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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해법일 수 있을까?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본격적인 똘레랑스 비판서!


* 과연 똘레랑스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해법일 수 있는가?

자유주의 관용 정치의 탈정치화 효과를 분석하 면서 정치적인 것의 재구축을 역설한다.

이주민, 여성, 동성애자, 흑인, 유대인, 무슬림에 대한 관용은 제국의 지배적 규범에 대한 도전을 견제하고 봉쇄한다!

◎지은이: 웬디 브라운 ◎옮긴이: 이승철 ◎출판일: 2010년 2월 22일
◎판형: 변형 신국판(145×215) ◎쪽수: 344쪽 ◎정가: 18,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23-7 ◎도서분류 : 카이로스총서 16


http://galmuri.co.kr/bbs/data/prop/tolerance270.jpg


 

1.『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소개

언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의 원인을, 불평등과 부정의가 아닌 “불관용”에서 찾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변화나 평등이 아닌 개인과 권력의 관용을 호소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웬디 브라운의 『관용:다문화 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치이론가 중 한 명인 저자는,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상이자 선으로 칭송받는 관용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최근 20여 년 간 전 세계적으로 부흥한 관용 담론이 생산하는 탈정치적 효과에 대해 상세히 파헤친다.



2.『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출간의 의미

다음과 같은 점들이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을, 우리 시대의 다문화주의와 정치,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로 만들고 있다.

1) “다문화적 관용”의 탈정치성에 대한 문제 제기

오늘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용”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화로 인한 각종 문제들의 궁극적 해결책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관용론자들은 인종차별이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등의 문제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관용적 태도의 부족 때문에 발생하며,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노력을 통해 관용적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러한 표준적 관용 담론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개인의 태도와 감수성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관용 담론은 차이를 가진 소수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차이를 정부나 지배 문화로부터 “관용 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재현한다. 이 책은 오늘날 보편적 선의 외양을 한 다문화적 관용 담론의 이면에 놓인 탈정치화 효과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이다.


2)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오늘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슬람에 대한 배제와 테러와의 전쟁은, 야만에 맞선 문명의 이름하에 행해지고 있다. 대체로 서구 문명의 산물로 간주되는 관용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행태들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서구 및 선진국 국가들의 문명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반면, 이슬람을 비롯한 후진적 국가들의 문명은 불관용적이고 편협하다. 따라서 불관용으로 고통 받는 후진 국가들의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이제 서구의 정의로운 행위이자 문명사적 임무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흔히 폭력을 억제한다고 이야기되는 관용은, 관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식별하고 이 관용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난 대상들에 대한 폭력적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9/11 이후 관용 담론이 어떤 식으로 문명화된 서구와 야만적 이슬람을 대립시키고, 서구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정당화해 왔는지를 폭로한다.

3) 새로운 정치적 기획에 대한 촉구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은 관용 담론이 오늘날 정의와 연대의 가치에 기반한 정치적 기획들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관용 담론은 특정 집단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자 공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사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될 수 없는 고정된 정체성으로 파악한다. 이제 우리는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선언 아래 서로 간의 차이를 관용할 수 있을 뿐, 연대의 가치 하에 새로운 공통성을 생산하고 공동의 행동을 전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관용의 이러한 분할 효과를 비판하고, 권력에 대한 분석과 연대 및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대항 담론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관용: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정치적인 것과 보편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의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2.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의 핵심적 특징

■ 똘레랑스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이다.

1995년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출간되면서 그의 ‘똘레랑스론’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을 얻게 되었다. (홍세화는 최근 2000년에 출간했던 『왜 똘레랑스인가』(필리프 사시에 지음, 상형문자, 2000)을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이상북스, 2010)라는 제목으로 직접 번역하여 다시 펴내며 ‘똘레랑스’가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해 대중화되었던 “똘레랑스” 담론이 어쩌면 당시 막 자리 잡고 있었던 새로운 자유주의적 통치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를 특징짓던 “전쟁 담론”의 빈 공간을 메우며 진보주의자들의 언어로 자리 잡았던 “똘레랑스”는, 어쩌면 사회의 보편적 적대를 부인하는 동시에 이러한 적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급진적 담론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자유주의적 통치와 일종의 공모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옮긴이 후기, 337쪽)

■ 저자는 푸코의 방법론에 따라, ‘관용’ 담론의 계보학을 추적한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역설한
존 로크

신교도에 대한 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한 볼테르

2010년 미국에서 관용 승리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버락 오바마


종교개혁 이후 존 로크의 관용론
“서구 사회에서 통치의 원리로서의 관용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5~16세기 이단자의 처우와 관련해서였다.…물론 자 유주의적 관용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여러 원칙들이 등장한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보다는 종교개혁 시기라고 할 수 있다.…종교개혁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관용의 원리를 정식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로크였다. 로크는 1689년 영국의 왕위 계승자를 둘러싸고 종교 간의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당시, 『관용에 관한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다.…이 『편지』에서 로크는 단지 관용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와 종교적 삶을 구분할 것을 주장하였다. …로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은 각자에게 달려 있으며, 각자에게 맡겨져야 한다.”(405) 이러한 선언은, 장차 근대성의 상징이 될 개인적이고 사적인 신앙인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다.…공동체 내의 다양한 믿음들은, 이제 그 믿음이 어떤 공적 중요성도 없음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66~69쪽)

볼테르의 『관용론』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였던 볼테르는 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에서 벌어진 한 신교도 가장(칼라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였다. 종교적 편견에 의해 조작된 칼라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마음먹은 볼테르는 이 책을 통해 광신과 편견에 의한 진실의 왜곡, 무자비한 고문, 사형 등 야만적 형벌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동서양의 역사와 성서 등을 뒤져 불관용에 대한 반론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찾아나간다. 그는 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하며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개인의 양심과 믿음에 기반한 신앙에 대한 관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한 세기 전 로크의 주장과 볼테르의 관점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관용 담론
“최근 들어 다문화주의 관용 담론이 부흥하면서, 개인보다는 집단에 기반한 관용 개념―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특정한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 대한 관용 개념―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근대 초기, 종교적 이견이나 양심의 자유에 적용되었던 관용은, 이제는 종족, 인종, 민족, 섹슈얼리티의 문제 등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관용이 종교적 믿음이나 타인의 신념에 적용되었던 시기, 즉 관용이 믿음을 사사(私事)화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의 관용은, 종교 및 양심의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라는 평등 개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근대 유럽 역사에서, 관용은 종교의 자유와 치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평등의 조건으로 정식화한 도덕적 자율성과도 별 문제없이 수렴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관용은 평등과 동의어는 아니었으며, 종교 간의 실질적인 평등을 목표로 삼지도 않았다.) 그런데 관용의 대상이 특정한 속성을 갖춘 개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정체성들로 변하게 되면,…관용은 평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실천의 한계를 은폐하고 그것을 보충하면서, (스스로를 완벽한 것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유주의적 평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2~75쪽)
 

■ 다문화시대에 관용론이 갖는 정치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관용은 갈등과 불평등을 포장하고 관리하는 대표적인 ‘탈정치화’ 기제로 기능한다.
관용은 차이와 정체성을 존재론의 수준으로 물화하고, 극복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한다. 또한 차이에 대한 묵인과 갈등 그리고 적대행위의 회피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며, 기존의 체제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관용은 필연적으로 운동을 침묵시키며 실질적인 도전과 저항을 방해한다.

위기에 처한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오늘날 관용 담론은…국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국가 권력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현대 국가는 한편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주권의 약화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표방해 왔던 보편성의 위기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데, 관용 담론은 이러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42쪽)

관용은 중동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착취와 유럽의 적대행위를 정당화한다.
"관용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오늘날 국제적인 차원에서 서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담론으로 기능한다.…관용을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고 비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담론은, 결과적으로 서구의 도덕적 우위와 비(非)서구에 대한 서구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결국 서구를 문명의 편에서 “불관용”을 규제할 수 있는 전도사로 만들고, 이는 현재 해방(liberation)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식으로 관용은 어느새 21세기 서구 제국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용어가 되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7쪽)

미국 사회의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관용의 기만적 효과를 폭로한다.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이 추구하는) “관용의 승리”라는 이름하에 찬양되었고, 이어서 오바마가 자신의 취임식 기도를 동성애에 반대해 온 복음주의 목사와 동성애자 가톨릭 신부에게 동시에 맡긴 것 역시, “관용의 표현”이란 이름으로 옹호되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사람들이 관용의 이름으로 흑인의 종속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흑인들은 이 승리를 관용한 백인들의 미국에 다시 종속된다. 두 번째 사례는 편견의 관용과 동성애자를 향한 관용을 동등하게 취급하면서, 시민권에 관한 복잡한 정치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9쪽)

“유엔 회의장이나 국제 인권 운동 속에서, 관용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로 언급된다. 유럽에서, 관용은 제3세계 이민자들과 집시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유대인과의 갈등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이자, 발칸 반도 분쟁의 해결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 관용은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을 한데 묶어주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책이자, 군대 같은 조직의 동성애 혐오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 그리고 늘어만 가는 증오 범죄에 대한 해독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관용은 2000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이자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던 리버만(Joseph Lieberman) 지지자들이 내건 슬로건이었으며, 조지 W. 부시가 개인의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행정부 각료를 선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19쪽)

“이곳은 일단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로, 벽에는 <책임지기>라는 제목을 단 거대한 열 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 시위, “관용 깃발”을 만들고 있는 초등학생들, 반反유대주의적 폭력에 항의하는 몬태나 주의 시위, 노숙자 지원 캠페인, 세자르 차베스를 기념하는 법정 공휴일 지정, KKK단에 맞서 관용 기금을 모금하는 “레모네이드 프로젝트”, 분쟁지역의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평화의 씨앗”, 유대인과 흑인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인 “이해하기”, 1990년 미국의 장애인법 제정,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안네 프랑크와 보스니아 내전 생존자인 즐라타 필리포비치(ZlataFilipovic)에 대해 배우는 롱비치 고등학생들의 모습.”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213~214쪽)


4. 지은이·옮긴이 소개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의 저자 웬디 브라운]

|지은이|
웬디 브라운 (Wendy Brown)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맑스와 니체, 푸코 등을 이론적 자원 삼아, 후기 자유주의의 정치적 조건들과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분석한 일련의 독창적 저작들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남성성과 정치:정치이론의 여성주의적 독해』(1988),『상처의 상태: 후기 근대의 권력과 자유』(1995), 『역사 바깥의 정치』(2001),『경계에서:지식과 권력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2005) 등이 있으며, 자넷 할리(Janet Halley)와 함께 『좌파 법치주의/좌파적 비판』(2002)을 편집하였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정치합리성 비판과 주권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2009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자끄 랑시에르 등 대표적인 현대 정치철학자들과 함께 『어떤 상태의 민주주의?』를 불어로 출판하였다.

|옮긴이|
이승철 (Lee Seung-Cheol, 1980~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정치와 폭력, 자유주의적 통치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푸코의 맑스』(갈무리, 2004)가 있다.


5.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차례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017
관용:권력의 담론, 통치성의 실천|관용과 탈정치화 혹은 탈정치화로서의 관용

2장 관용:권력의 담론 057
계보학|관용의 대상들:믿음, 진리, 정체성

3장 관용:대리보충―“유대인 문제”와 “여성 문제” 091
유대인|여성|평등과 관용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35
동성 결혼|이슬람 관용하기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179
<관용박물관>의 역사|<관용박물관> 관람기|탈정치화로서의 관용, 관용의 탈정치화

6장 관용의 주체들:문명인 ‘우리’와 야만인 ‘그들’ 243
프로이트|자유주의와 그 타자

7장 관용:문명 담론 283
문명 담론|관용 교육|관용을 베풀기/관용을 철회하기|
관용과 자본 그리고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옮긴이 후기 329
찾아보기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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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과 한국 사회운동의 전망




[『미네르바의 촛불』 출간기념토론회]

촛불1주년과 한국 사회 운동의 전망
- 『미네르바의 촛불』과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중심으로

촛불1주년을 맞이하여 토론회 개최, 도서 출간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미네르바의 촛불』로 촛불 성격에 대한 논쟁도 열띠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과 논쟁을 사회 운동의 전망 속에서 다시금 고민하는 토론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순서
[발표1] 촛불성격을 둘러싼 논쟁의 쟁점들 / 루드 (<다중지성의 정원> 만사)
[발표2] 촛불과 주체: 촛불 그어진 주체 / 한보희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공저자)
[발표3] 촛불과 다중 / 조정환 (『미네르바의 촛불』 저자)
[자유토론]

일시 : 2009년 5월 23일 (토) 저녁 7시
장소 : 다중지성의정원 4층 402호
주최 : 다중넷
찾아오시는 길 : http://daziwon.ohpy.com/147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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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quot;자율적 주체의 봉기&quot; vs. &quot;중간계급의 '욕망 정치'&quot;

‘촛불’ “자율적 주체의 봉기” “중간계급의 ‘욕망 정치’”

조정환-이택광 온라인 논쟁
조 대표 “진행중인 승리” 이 교수 “실패한 행동”
저서 ‘미네르바의 촛불’ 계기 블로그로 4차례 공방

 
 
한겨레 이세영 기자
 
 
» 이택광 경희대 교수(왼쪽)과 조정환 갈무리 대표(오른쪽).
 
“촛불이라는 판타지 너머의 실재를 직시하라.” “촛불이 판타지라는 당신 생각이 판타지다.”

 

‘2008년 촛불’을 둘러싼 논쟁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도서출판 갈무리의 조정환 대표가 논쟁의 두 당사자다. 촛불의 성격을 각각 ‘욕망의 정치’(이택광)와 ‘자율적 봉기’(조정환)로 규정하는 이들의 견해는 촛불을 둘러싸고 형성된 진보적 담론 지형의 양 극단에 위치한다. 그만큼 이해와 공감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표면상 싸움을 ‘도발’한 것은 이 교수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블로그(http://wallflower.egloo.com)에 글을 올려 조 대표의 책 <미네르바의 촛불>에 대해 “정교한 분석이라기보다 (자율주의 정치이념의 우월성을 강변하는)정치 팸플릿의 느낌”을 풍긴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이틀 뒤인 7일 조 대표가 자기 블로그(http://blog.daum.net/nalsee)에서 이 교수의 비판을 “촛불을 유령이나 광기로 보는 조선일보의 시각과 다를 게 없다”고 반박했고, 이를 계기로 비판과 반비판이 꼬리를 물면서 일주일 새 네 차례의 날선 공방이 두 사람의 블로그를 오가며 펼쳐졌다.

 

12일 현재 논쟁의 초점은 이 교수가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도시경관 분석에서 빌려와 촛불 분석에 활용한 ‘환등상’(phantasmagoria·판타지) 개념이 본래의 현실비판적 함의를 담고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요컨대 베냐민이 근대 도시의 풍경을 ‘환등상’으로 묘사할 때는 ‘허상’이란 의미와 함께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동시대인의 ‘유토피아적 열망’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 교수는 단지 ‘허상’과 ‘환상’이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게 조 대표의 생각이다.

 

하지만 대립의 지점들은 이것 말고도 많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촛불 참여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조 대표는 촛불시민을 ‘내적인 차이를 유지하면서 적극적 소통을 추구하는 자율적 주체들’로 규정한다. 대중들의 능력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 교수는 이들에게서 괴담과 유사과학에 휘둘릴 수 있는 “일정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본다. 이런 그의 시선에 포착된 촛불의 주역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우리도 부르주아가 누리는 쾌락에 동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중간계급과 이들의 아들딸”이다.

 

촛불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세우고 혁명적 주체를 만들어낸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이 교수에게 촛불은 사실상 실패한 “중간계급의 행동”이다. 그러나 조 대표가 볼 때 이런 이 교수의 관점은 눈앞의 성과물이 있느냐 없느냐로 성패를 따지는 ‘군사주의적 오류’에 빠져있다. 그에게 촛불은 참여자들이 ‘삶을 가꾸고 갱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행 중인 승리’다.

 

각자 의지하는 이론적 배경도 차이가 있다. 대중의 자율성과 자기해방 능력을 신뢰하는 조 대표의 논의가 네그리의 다중론과 집단지성론에 기반하고 있다면, 모든 정치·사회적 실천을 관통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욕망의 정치’에 주목하는 이 교수는 라캉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논쟁은 조 대표가 “틈 나는 대로 쟁점 주제들을 연재형식으로 다루고 최종적으로 그것들을 하나의 글로 묶거나 재서술하겠다”고 밝힌 데다, 이 교수 역시 “필요할 때마다 조 선생의 비판에 답변을 올리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전하는 블로거들 역시 두 사람의 게시글에 질문이나 훈수성 댓글을 달며 선전을 독려하고 있다.

이 논쟁에 대해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는 “촛불에 대한 담론이 현상기술의 차원을 넘어 이론적 분석과 효과적 저항 전략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촛불이 놓여있던 정치·사회적 맥락이나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경향들에 대한 고려 없이 촛불을 하나의 동질적인 현상으로 몰아가려는 획일성이 엿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조정환(53) 갈무리 대표는 대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긍정하는 급진적 자율주의자다. 반면 이택광(41) 경희대 교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견유주의적 비평가다.

 

조 대표는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과 기관지 격인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민족문학론에 맞서는 노동해방문학론의 대표 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명수배된 뒤 1999년말까지 이원영이란 필명으로 잠행하며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수배 해제 뒤엔 네그리·하트의 자율주의를 현실에 적용하는 일에 매진하며 웹저널 <자율평론>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네그리의 <다중>을 번역했고 <아우또노미아> 등의 책을 썼다.

 

이 교수는 영국 워릭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셰필드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문화비평가다. 전공은 문화 연구와 문화 이론. 귀국 뒤 광운대를 거쳐 경희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 <민족, 한국 문화의 숭고 대상> 등의 책을 썼으며, 지난해 5월부터 <미디어오늘>에 연재한 ‘이택광의 문화읽기’를 통해 영화·드라마·음악에서 정치·사회문제를 아우르는 전방위 비평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세영 기자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의 진행상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정환 님과 이택광 님이 주고 받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들과 그 사이사이마다 이 논쟁에 대해 다들 분들이 언급한 글들 목록입니다. 촛불이 무엇이고, 어떻게 보아야 하며, 우리들의 '실천'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글들입니다.

 

 

 

 

이택광(2009.05.05)  /  조정환의 촛불론  http://wallflower.egloos.com/1902259

 

조정환(2009.05.07)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1]폭동과 봉기  http://blog.daum.net/nalsee/16521637

 

이택광(2009.05.08)  /  조정환의 반비판에 대해  http://wallflower.egloos.com/1903202

 

조정환(2009.05.08)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2] 승리와 패배  http://blog.daum.net/nalsee/16521638

 

marishin(2009.05.08.)  /  '촛불 담론' 논쟁이 본격화하려나  http://blog.jinbo.net/marishin/?cid=13&pid=306

 

레프트21(2009.05.08)  /  촛불1년 평가논쟁  http://blog.naver.com/sin3748/150047269202

 

조정환(2009.05.09)  /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간주곡] 벤야민의 '지금시간'과 구원으로서의 시간  http://blog.daum.net/nalsee/16521641

 

이택광(2009.05.10.)  /  논점이 무엇인가?  http://wallflower.egloos.com/1904092

 

이택광(2009.05.10.)  /  [반론1]촛불의 한계에 대한 지적  http://wallflower.egloos.com/1904221

 

조정환(2009.05.11)  /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 보충자료] 책 머리에  http://blog.daum.net/nalsee/16521642

 

최원(2009.05.11)  /  촛불논쟁 시작?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34835 

 

조정환(2009.05.12)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3]환등상과 중간계급  http://blog.daum.net/nalsee/16521643

 

이택광(2009.05.12)  /  솔직한 고백  http://wallflower.egloos.com/tb/1904821

 

조정환(2009.05.12)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4]촛불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nalsee/16521644

 

최원(2009.05.12)  /  촛불논쟁 관련해서-데모스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38075

 

이택광(2009.05.12)  /  최원씨의 포스팅에 대해  http://wallflower.egloos.com/1904982

 

이택광(2009.05.12)  /  흥행 실패?  http://wallflower.egloos.com/1905017

 

이택광(2009.05.13)  /  [반론2] "촛불은 다중이다"는 명제를 왜 증명해야하는가?  http://wallflower.egloos.com/1905234

 

조정환(2009.05.13)  /  [이택광 반비판. 5] 생산력, 제헌권력, 대도시, 다중  http://blog.daum.net/nalsee/16521646

 

최원(2009.05.13)  /  촛불논쟁관련-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봐라?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41329

 

이택광(2009.05.14)  /  뒤엠-콰인 명제  http://wallflower.egloos.com/tb/190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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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둘러싼 담론폭격에 『미네르바의 촛불』로 맞서자!!!!!

5월 2일 1주년을 앞두고, 담론세계에서 촛불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촛불은 유령이었다, 중간계급의 표현일 뿐이었다, 광기였다....

좌우를 막론하고 최근 논의들 속에서 엘리트 지식인들에 의해 촛불은 그야말로 두 번 죽고 있다는 ㅠ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촛불집회에 줄기차게 참여하며 기록한 생생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blog.daum.net/nalsee) 

냉소적, 환멸적 평가에 맞선 대항담론이 담긴 책을 소개합니다. '날아온 씨앗' 님의 책, {미네르바의 촛불}!!!!

열븐 함께 읽읍시당!!!!!!!!!!!!!!!!!!! (세미나 할 예정인데.. 관심있으신 분은 저 르듀에게 연락을!!!!!!!!!) (쪽지.. 핸펀..)

베스트 보내주세요!!!!!!!!!! (베스트 맞는가..)

 




미네르바 촛불


촛불은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촛불과 거리를 두려는 냉소주의적 촛불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
촛불 1주년 결산, 촛불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촛불 현장에 대한 치밀한 관찰 속에서 발로 쓴 촛불의 역사!
촛불은 승리한다! 억압, 냉소, 기만, 환멸에 대항하여 '미네르바의 촛불'로 맞서자!

◎지은이: 조정환
◎출판일: 2009년 4월 30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4쪽 ◎정가: 1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3-8 04300 / 978-89-6195-003-9 (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19


1. 『미네르바의 촛불』 출간의 의미

일반적 의미

◎ 2008년 5월 2일부터 지난 1년 동안 수 백 만 사람들이 참여한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한다.
◎ 1970년대의 재야운동, 1980년대의 민중운동, 1990년대의 시민운동과 다른 2000년대 촛불운동의 고유한 특질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밝힌다.
◎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촛불의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촛불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주체성으로 정의한다.
촛불봉기의 새로움이 무엇이었던가를 맑스의 노동이론, 푸꼬의 삶권력론, 들뢰즈의 잠재력론, 네그리의 다중론을 통해 조명한다.
◎ 촛불 현장을 누비면서 얻은 생생한 생각들의 기록이며 그것에 기초한 치밀하고 진지한 이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 촛불에 대한 여러 저작들 중에서 유일한 개인저작으로서 여러 문제를 아우르는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 책 전체에 촛불의 역사와 향후 전망에 대한 통일된 방향성을 부여한다.

구체적 의미

◎ 촛불다중론의 관점에서 촛불을 유령으로 보는 보수와 진보 일각의 시각, 그리고 촛불이 중간계급의 행동이라는 사회학적 시각이 다중으로부터의 회피의 다른 양상에 불과한가를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 촛불이 파시즘이라는 시각에 맞서 촛불이야말로 파시즘과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입증한다.
◎ 이른바 ‘웹 2.0 시대’의 사건으로 불린 촛불봉기를 집단지성과 다중지성의 주체화로서 파악할 수 있는 정밀한 관점을 제공한다.
◎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우리 시대에 왜 촛불의 형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밝힌다.
비폭력과 폭력 사이에서 촛불운동의 내적 고뇌와 갈등의 사회구성적 근거를 규명한다.


2. 『미네르바의 촛불』에 나오는 촛불의 이야기들!

“촛불은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사회정치적 차원이다. 2008년에 우리는 촛불이 낡은 사회의 닫힌 문을 밀면서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모습을 뚜렷이 목도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결정에, 일제고사에, 대운하에, 비정규직에, 뉴라이트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항의하며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들려졌던 촛불들, 이것이 사회정치적 차원의 촛불이다. 또 하나는 존재론적 차원이다. 사람들이 손에 촛불을 켜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조차 존재론적 촛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 켜져 있다. 언제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촛불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은 이 존재론적 촛불, 영혼의 촛불을 가시화하고 사회화하는 행동이다.”(5쪽)
― 「책머리에」 중에서

“이 사회의 정치적 엘리뜨들이나 지적 엘리뜨들이 촛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촛불봉기가 시작된 지 1년을 맞아 촛불을 대상화하면서 내려지는 해석들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경찰, 법정, 감옥을 잇는 국가의 물리적 폭력과 대면해야 했던 촛불은 이제 자신에 대한 정신적 환멸과 해석의 폭력 앞에 직면했다. 그 환멸의 시선과 해석적 단죄가 이른바 ‘진보’를 자임하는 엘리뜨들로부터 나올 때 촛불은 역사와 사회로부터 총체적으로 추방당하는 셈이다. (…) 촛불은 죽었으며 더 이상 촛불은 없을 지어다, 라는 심판이 전국가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일까?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어떤 것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에조차도 그 승리는 결코 견고하지 못하며 시간 속에서 녹아내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촛불에 대한 지적 장례의식이 논란거리를 남기면서 쟁론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쟁점에 개입하여 촛불의 범죄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촛불에 대한 냉소나 환멸의 조성을 통해 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최근 발행된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에 실린 글들 일부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촛불의 환멸화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통해, 그리고 다른 일부의 글에 나타나는 촛불의 제헌능력pouvoir constituant 에 대한 긍정을 좀 더 분명한 것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촛불의 살아있는 힘과 그 능력을 다시 한 번 주장하려고 한다.”(17~18쪽)
―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중에서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2008년의 촛불봉기의 시간은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봉기대는 소라광장에서 시작하여 시청광장으로 이동했고 신세계, 퇴계로, 동대문으로 이동했으며 남대문, 명동, 종로, 대학로를 휩쓸었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 청운동, 안국동을 점거했다. 이어 봉기대는 KBS, 한나라당사, 코엑스에서 촛불을 지폈으며 마침내 전국 곳곳에 뒤늦었으나 더 강렬한 촛불들이 켜지고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생명의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벌떼들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듯이 지구상의 여기저기를 밝히며 촛불의 봉기蜂起는 지속되고 있다. 봉기란 글자 그대로 ‘벌떼들蜂의 일어남起’이 아닌가?”(88~89쪽)
―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중에서

“일국적 뉴라이트는 전 지구적 뉴라이트의 기능마디이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통해 FTA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쇠고기 수입재개는 한미FTA 4대 선결과제(쇠고기 수입재개, 약값 재평가제도 개정중단,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강화 방침취소, 스크린쿼터 146일에서 73일로 축소)의 일부이다. 4대 선결과제의 해결이란 먹고 치료하고 타고 보는 것에 설치된 안전망을 철거하라는 것이다. FTA는 광범한 민영화조치를 수반할 것인바,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는 6대 생필품(수도, 전기, 가스, 의료, 철도, 교육)의 민영화를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 촛불이 폭발한 지점은 바로 이 자본순환의 고리에서였다. 촛불은 생명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쇠고기를 기폭제로 하여 터져 나온 것이다.” (164쪽)
― 「뉴라이트 한국과 촛불」 중에서

“촛불은 5년의 수명을 갖는 문제가 아니다. 촛불은 전 지구적 평화를 갈망하는 삶정치적 성찰의 무기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든 혁명적 불빛이다. 거대함을 욕망하지 않으면서 작은 그러나 무수한 것들의 의지를 모아 그려내는 근원적 혁명에 대한 갈망이다. 촛불은 몇 개월의 수명을 갖는 것도 아니며 몇 년의 수명을 갖는 것도 아니다. 촛불은 영원하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꺼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꺼질 수는 없다. 일시적 꺼짐은 촛불의 잠재화일 뿐이지 소멸이 아니다. 비가시화일 뿐이지 비실재화가 아니다. 생명이 영원한 만큼 촛불도 영원하다.”(357쪽)
― 「촛불의 쟁점들」 중에서


3. 지은이 소개

조정환(Joe Jeong Hwan, 1956~ )

지금은 댐 건설로 수몰된 경상남도 진양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에서 일제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고, 1980년대 초부터 <민중미학연구회>, <문학예술연구소>에서 민중미학을 공부하며 여러 대학에서 한국근대비평사를 강의했다. 1989년에 월간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문학운동의 주류였던 민족문학론에 맞서 ‘노동해방문학론’을 제창하여 당시 문학운동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 말, 국가보안법에 의한 전국지명수배령이 내려졌고 1990년에서 1999년말까지 그는 9년 여에 걸친 기나긴 수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한 엄혹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10여 권의 번역서를 펴내는 등 그의 연구와 사유의 과정은 중단 없이 지속되었고 이 ‘발견적 모색’의 긴 시간을 통해 그가 ‘자율주의로의 선회’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1999년 12월 수배 해제 이후 그는 월간 『말』에 1년간 문화시평을 연재하면서 자율주의적 관점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제국 속에서 Within Empire, 제국에 대항하여 Against Empire, 제국을 넘어서 Beyond Empire’라는 의미의 ‘다중문화공간 왑 WAB’(지금의 다중네트워크센터) 을 통해 다중지성과의 접속을 이어 갔다. 그는 또 그 동안 발전시켜 온 현대사회와 사회운동, 그리고 문학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집약하기 위해 ‘조정환의 걸어가며 묻기’라는 연속 저작집을 내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http://waam.net) 공동대표, 웹저널 『자율평론』(http://jayul.net) 상임만사,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다중지성의 정원(http://daziwon.net) 상임강사로 활동하면서 성공회대에서 탈근대사회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저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카이로스의 문학』(갈무리, 2006),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갈무리, 2007), 『레닌과 미래의 혁명』(공저, 그린비, 2008)

편역서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C. 하먼, 갈무리, 1994),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A. 캘리니코스 외, 갈무리, 1995),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C. 하먼 외, 갈무리, 1995),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1』(S. 볼로냐 외, 갈무리, 1997), 『자유의 새로운 공간』(A. 네그리 외, 갈무리, 2007)

번역서 『오늘날의 노동자계급』(A. 캘리니코스, 갈무리, 1994), 『디오니소스의 노동 1』(M. 하트 외, 갈무리, 1996), 『디오니소스의 노동 2』(M. 하트 외, 갈무리, 1997), 『사빠띠스따』(H. 클리버, 공역, 갈무리, 1998),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W. 본펠드 외, 갈무리, 1999),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J. 홀러웨이, 갈무리, 2002), 『무엇을 할 것인가』(W. 본펠드, 갈무리, 2004), 『들뢰즈 맑스주의』(N. 쏘번, 갈무리, 2005), 『다중』(A. 네그리 외, 공역, 세종서적, 2008)


4. 『미네르바의 촛불』의 차례

책머리에

1부 촛불의 논리, 윤리, 그리고 생리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보수에서의 촛불유령론 19
진보에서의 촛불유령론 20
촛불 중간계급실체론 28
촛불 과잉아나키즘론 31
다중으로부터의 도피 35
제헌권력: 대중들, 민중, 천민, 그리고 다중 39
투쟁의 새로운 순환 속에서 운동과 정치 54
승리라는 문제 혹은 감각의 혁신을 위하여 65

파시즘에 대항하는 촛불
근대적 전체주의와 수용소 파시즘 71
탈근대적 전체주의와 삶권력의 파시즘 76
삶권력의 정치적 계급적 토대와 그 전략 78
탈근대 파시즘 속에서 삶정치의 가능성 80
한국에서의 파시즘의 운명: 이명박 대 촛불 81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머리글 87
촛불봉기의 발생조건 89
촛불봉기의 전개과정 93
권력의 대응 변화 106
촛불봉기의 특징과 새로움 107
집단지성과 봉기의 새로운 기술 123
촛불권력의 현재적 장애와 한계 128
촛불봉기의 쟁점과 새로운 과학 131
촛불봉기는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138
맺음말: 미래 운동의 새로운 로두스 141

금융위기와 촛불의 시간
미국발 금융위기와 국유화 145
자본주의 위기의 역사 속에서 서브프라임 위기 147
서브프라이머의 입장에서 본 금융위기 151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촛불 155

2부 촛불 현장에서: 기록과 성찰
뉴라이트 한국과 촛불
현대의 자본순환과 뉴라이트 161
뉴라이트 우파 정부의 성격: 순수자본독재 167
이명박 정부의 반혁명 170
뉴라이트 한국 20년 결산 173
무력 174
법 176
공안탄압 179
언론과 문화 182
화폐정치 185
테러 188
지배의 피라미드와 촛불 192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과 촛불
촛불의 발생계기: 삶정치적 복합문제로서의 광우병 197
노동의 재구성과 촛불 200
촛불과 욕구노동 204
촛불과 코뮤니즘 208
민민연과 애국촛불 212

촛불봉기의 주체성
다중의 형상들 221
문명, 시민, 시장과 촛불 244

촛불봉기의 특이성
중앙지성, 집단지성, 다중지성 247
다중지성의 미네르바 257
질서화와 (자기)조직화 262
삶정치와 그 무기들 279
계획으로서의 촛불과 욕망으로서의 촛불 292

촛불의 헤게모니와 민주주의의 전망
국가권력 293
촛불운동 297
민주주의 311

촛불의 쟁점들
촛불은 오합지졸인가? 329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331
다시 무기의 문제 345
민족주의라는 쟁점 347
금융자유화도 금융국유화도 아닌 다중의 공통되기와 자치 352
촛불은 일시적인 것인가 영원한 것인가? 356

3부 촛불테제
촛불테제 1: 금융위기와 촛불 테제
촛불테제 2: 이명박과 강인한 테제

촛불봉기 일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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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다중넷 제1차 월례발표토론회를 공지합니다.

안녕하세요? 다중넷에서는 구성원 만사들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매월 월례발표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나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표명하는 한편, 그 성과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며 토론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으신 여러분들은 많은 참여 바랍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1년 동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봉기’를 그 주제로 하여, 그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주제>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발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일시>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장소> 다중네트워크 센터

<찾아오는 방법>
http://waam.net/bbs/view.php?id=hydra_intr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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