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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4글자를 빼라?

화물연대’ 4글자를 빼라?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오늘 파업에 돌입했다. 어젯밤 최종 교섭에 결렬된 것은 “화물연대”라고 서명주체로 표기하는가의 문제였다고 했다. 국토해양부는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는데 화물연대 명의로 서명하겠다는 주장을 하면서 협상 결렬시킨 것은 미복귀 차주들을 볼모로 화물연대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의도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교섭에 참여한 화물연대 광주지부장과 대한통운 부분회장에게도, 대한통운 사측은 화물연대라는 말을 빼라고 강요했다. “대한통운 광주지사에서 계약해지된 택배사업자 대표” 혹은 “대한통운 광주지사 화물택배 종사자 대표”라는 식의 서명을 강요했다는 것은 뻔하다.

이후에도 화물연대를 주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화물운송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철도노조가 화물연대와 함께 운수노조에 있어서 철도공사 사장넘이 철도노조를 노동자성 논란이 아직 남아 있는 운수노조로 유인해서 철도노조를 몰살시키려는 의도나 똑같다.

여태 수년동안 화물연대와 단체협약을 맺어왔던 것을 말짱도루묵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대한통운 사측의 의도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화물 노동자들에게 해주는 최선의 ‘예우’이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노동자들을 자신의 발 밑에 꿇어 앉혀서 영원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층 정도의 유사근로자로 살게 하거나 혹은 파업을 유도하는 노동정책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언론에는 이미 화물연대와 대한통운이 합의 타결된 것처럼 보도해놓고서, 화물연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결국 화물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이젠 우리 노동자들도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특수고용노동자가 특수해서 인정 못하겠다면, 우리 특수고용노동자들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화물 박종태 열사의 죽음과 이후 전국적인 투쟁 집회가 벌어지고,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한 정권과 대한통운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한 어용노조는 이 투쟁이 확산될 까 두려워서 온갖 비방과 폭력세력 운운하면서 오히려 더 큰 폭력을 가하고 있다. 생존권 투쟁과 노동조합,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작은 투쟁을 해오던 것도 짓밟았기 때문에 죽음으로 몰고 갔다. 또 그 억울한 죽음과 박종태 열사가 외쳤던 당연한 요구들을 남은 우리들이 계속 요구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오늘 새벽에도 쌍용차 부산 조합원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회사가 노노 분열을 노리고 만들어낸 관제데모에 참석한 뒤 회사의 압박과 회유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난 달에도 쌍차 노동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뇌졸중으로 사망한 것에 이어 벌써 두 번째이다.

이명박 정권은 세상을 움직여온 힘이 바로 노동자 민중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노동자와 민중들이 손을 놓고 멈춘다면, 과연 기계와 원료들 만으로 저절로 세상을 움직이고, 생활과 사회적 발전을 할 수 있겠는가!

어제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대회에는 수만명이 모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둘째치고라도, 자칭 노동자 정당, 혹은 진보정당이라던 진보신당 조차, 자신들의 유인물과 발언에서는 이명박은 사죄하라는 구호 이상을 넘어가지 못했다. 아니, 이명박 퇴진하라는 구호를 우리가 외쳐온 게 언젠부턴데, 다시 후진하는가 말이다. 그네들의 정세인식은 이명박 개인 한명을 하야시키면, 어느정도 개선,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천박한 인식이 한심스럽고 허망하기 까지 하다.

우리가 그 자리에 굳이 갔던 것은 저항정신 하나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장기투쟁 노동자들에 대한 더욱 대대적 표적 탄압과 연행, 구속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학습지 노동자들도 가방 찾으러 갔다가도 온갖 구실로 구속되기 일쑤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닌, 바로 노동자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끝까지 사수할 수 있는 세력은 바로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자들이 하는 생존권 투쟁은 이제 단순한 생존권 투쟁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의식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투쟁의 당사자는 노동자와 일개 사측을 넘어서, 노동자와 자본가 정권과의 투쟁이다.

투쟁의 요구를 낮추면서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기를 바라지 말자.

오히려 지금은 우리의 투쟁의 요구에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중간계급 계층들도 합류할 수밖에 없다. 그들고 그걸 인식할 수 있도록,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더욱 정치적으로 폭로하고 공감하고, 그들도 계급적인 정치투쟁의 전망에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노동자와 제대로 의식이 박힌 지식인, 민중들이 끝까지 투쟁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저항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천하되, 정치적 계급적 각성이 필요하겠다.

 

6월 11일 오뚝이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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