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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민주주의, 지방선거에 대하여 1

현 시기 민주주의, 지방선거에 대하여 1

 

 

이명박 정권은 자기 사람, 골보수 인사들의 행정기관 장악, 공공기관장 낙하산 발령에 그치지 않고 언론과 방송 장악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사법부 장악을 추진하고, 시민단체를 관리해나가려 하는 등 부르주아계급지배에 대한 동의구조, 동의형성 기구를 장악하고 조정해나가려 한다. 대중투쟁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고자 노골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세력 자체는 좀 투박하도 무대포적인 방식과 경향이 있지만,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진영, 특히 뉴라이트를 포함한 전체는 이미 체계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즉 현 이명박 정권은 강압적 통치와 권위주의를 주요한 지배적인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틀림없다. 특히 보수적인 가치를 기강으로 세우려는 점에서는 정치적으로는 신보수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다만, 보수적 기독교가 이에 앞장서고 있고, 이를 시민사회에서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종교가 국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움직이지 못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상대적 자율성의 신념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20년 전의 정권들과 달리 행사되는 방식은 보수적 시민사회의 지지와 여론을 등에 업고 MB시대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압이 주요한 기제라는 점이 MB정권의 특징이다. (하지만 노무현정권 당시에도 부안, 대추리 등에서 충돌이 있으면서도 추진해왔다)

하지만 동의의 기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1)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지향이 사회 전반적인 구조와 문화 등에서 (취약하지만) 정착되어가는 정도(길어야 20년 정도지만) (연약한 기반에 있다면 권위주의적 정치질서와 사회 문화로 재편이 가능하지만, 그렇게 연약하다 할 수 없다.) (2) (실질 권력을 갖고도) MB가 추구하는 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반이 어느정도 갖춰져 있다는 뜻이 된다. 현시기 MB는 강제와 동의가 배합되어, 졸속적이지만 공청회와 언론 등의 수단을 동원해서 동의를 형성하려 한다. 즉 제한되고 왜곡되어 있지만 민주주의의 구조가 시민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3) 노동권, 파업권 제약, 기본권 제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세계적인 추세다. (물론 mb는 모든 권리를 무시하고, 그전의 정권은 일부 제한하고 무시한다는 것의 차이가 있다.) 또한 경제적인 수준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는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즉 사회적 동의의 기제와 문화가 현시기 일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헤게모니론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도 이데올로기적 동의와 명분을 기반으로 하는 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헤게모니는 전술이 아닌 전략적인 문제다. 즉 mb정권이라서, 반동적이어서 선거참여를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레닌의 헤게모니뿐만 아니라 그람시의 헤게모니개념까지 포괄해서 해게모니전략과 선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김영삼정권 전과 달리 선거를 통해 정치 질서를 구축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는 형식을 취해나가는 것이 지금의 비지민주주의, 비지독재의 특징이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전략과 전술도 풍부해져야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은, 이명박 정권과 소위 반 이명박 전선에 서는 세력간의 싸움, 그리고 반이명박 세력 내부의 주도권 싸움과 정치적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런 정치적 국면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계급 역관계와 이데올로기 지형에 미치는 영향, 노동자계급의 대항 헤게모니 형성과 확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지금 정권은 강하니까 대들지 말자. 대들어봤자 우리만 피보는 것 아니야? 대들어서 어떻게 할거야?"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자본가 정권이 이데올로기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자본가는 국가의 폭력(군대, 경찰)만으로 노동자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강압적) 동의에 의해 지배를 하기도 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회사가 없으면 당신(노동자)이 어떻게 일할거야? 이제 파업은 그만두도록 하세.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 이렇게 노동자들은 순한 양이 되어 자본가가 잘 살면 노동자도 잘 살게 되고 회사가 잘 되면 노동자들도 잘 된다고 믿는다. 여기에 지역사회도 동원된다.

또한 자본가는 투표로도 노동자들을 회유한다. 단지 4,5년에 한번 5분 정도의 투표 시간을 주고서 "민주적이니까 순응해라"라는 식으로 말이다. 지배계급은 지식 헤게모니로도 지배한다. 중세시대에는 이런 역할을 종교가 했고 현재에는 부르주아들의 봉급을 받는 지식인들이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교사, 교수, 철학자, 예술가 등이 있다.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이 결여되고 자본의 얼굴을 더 많이 갖는다. 이렇게 하여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거느린다.

이렇게 계급의식이 결여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면 그람시의 표현대로 '현대군주'인 당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가 이탈리아인의 집단의식을 만드는 역할을 했듯 현대군주인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집단의식을 형성하려면, 그람시의 표현을 빌자면 '유기적 지식인'이 필요하다. 이 지식인은 전통적 인텔리겐챠가 아니라 투쟁하는 의식 있는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전위이다. 노동자당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대항 헤게모니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이런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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