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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사관과 현대 부르주아 철학에서의 결정론

유물사관과 현대 부르주아 철학에서의 결정론 총명한 유물론 3 여름


Der Determinismus der materialistischen Geschichtsauffassung und die moderne bürgerliche Philosophie1,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4 (5), 1986: 434-42.


HPepperle | 구 민주독일(DDR) 유물론 철학자


L18 R18

AA AB AC AD AE AF AG AH AI AJ AK AL AM AN AO AP AQ AR AS AT AU AV AW AX AY AZ BA BB BC BD BE BF BG BH BI BJ BK BL BM BN BO BP BQ BR BS BT BU BV BW BX BY BZ CA CB CC CD CE CF CG CH CI CJ

‘객관적 법칙들과 인간의 행위’라는 대상에 관한 논의의 틀 안에서, 하나의 입증된 전통을 따라 현대 부르주아 철학에서 대변되는 입장들에도 시선을 던지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주제가 여러 해에 걸쳐 우리 공화국에서 겪었던 다양한 논의들그것들은 이미 50년대 초에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 이 잡지의 많은 연보들을 관통하여 이어지며, 여러 회의들, 무엇보다 제4차 및 제5차 철학대회2의 대상이었다을 되돌아본다면, 부르주아적 견해들과의 대결이 거기서 항상 현존하고 있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의 연관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분하다. 결정론적 고찰 방식을 지닌 역사적 유물론은 관념론적 역사관에 맞선 투쟁 속에서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그에 맞서 스스로를 관철하며, 스스로를 확고히 지켜내야만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대결을 받아들여 그 과정에서 자신들 학설의 이해를 위한 중요한 견해를 발전시켰던 이들은 다름아닌 고전가들 자신이었다. 이것은 특히 F. 엥겔스에게 있어 타당한데, 그는 말년의 서한들에서 최초의 원칙적 비판들에비록 종종 단지 질문에 불과하기도 했지만응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주체적 요인의 역할, 상부구조 현상들과 그 상호작용의 능동적 기능,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적 총체성 원리(Marxschen Totalitätsprinzips)의 의미와 같은 그러한 근본적 관점들을 도출해 내었다. F. 엥겔스는 또한 당대의 그 작업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중요성을 잃지 않은 문제에 대해 거듭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유물사관에 대해 맞닥뜨려야 했던 거친 오해들에 놀라면서, [마르크스의] 원전들에의 연구로 [자신의 연구 방향을] 집중시켰으며, 자신의 토론 상대들에게 무엇보다도 『자본론』,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그리고 그 자신의 저작인 『반뒤링론』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및 고전 독일 철학의 종말』에 관한 소책자를 추천했다. 실제로 이 저작은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특징들에 대한 논증과 체계적 서술의 틀 안에서, 관념론적 비결정론뿐만 아니라, 특히 사회적 고찰에 있어 심각한 편향인 기계적 유물론의 일방성까지도 극복하는 그러한 유물론적 결정론의 관점을 담고 있다. 이 맥락에서 엥겔스가 “노동 발전사에서의 새로운 경향은 사회 전체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3라고 표현했던 것을 참조해야 한다. 앞으로 이 견해가 부르주아 철학의 비판들을 반박하는 데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가 밝혀질 것이다.

 

1930년, 빈 학파의 창시자인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는 자신의 저작 『윤리학의 문제들(Fragen der Ethik)』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철학사에서 자유와 필연성이라는 주제, 특히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 자유롭고, 따라서 의사결정을 허용하며 그리하여 책임 있는 행위가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과 결부되어 끝없이 이어진 논쟁은 순 허구적인 문제이다; 이를 위해 투입된 사유의 노력은 종이와 인쇄 잉크 값어치도 못할 것이고, 애초에 몇 영민한 두뇌의 견해들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철학 안에서의 단 하나의 스캔들에 불과하며, 이쯤해서 끝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명백히도 이 소위 스캔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예를 들어, 울리히 포트하스트(Ullrich Potthast)가 몇 년 전에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론(Freies Handeln und Determinismu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대략 20편의, 다양한 철학 학파 대표자들의 대표적 기고문들이 엮여 있는그 논문 모음집을 집어 든다면 누구나 이러한 견해에 도달하게 마련이다. 그 책의 참고문헌 목록은 540편의 저작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중 480편이 오롯이 1900년 이후 시기의 저술이다.

 

정신분석학에서부터 물리학의 특정 영역에서의 비결정론에 이르기까지의 이러한 견해들의 다양성을 여기에서 모두 탐구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오히려 나는 우리의 견해와 다소간 직접적인 연관 속에 서 있는 입장들, 즉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의 영역에 속하는 입장들에만 집중하고자 하며, 이와 관련하여 곧바로 당초에 하나의 명제를 세우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겨누어진 공격들의 그 커다란 무기고전형적인 것들, 변형된 것들, 언제나 거듭 새롭게 시도된 것들안에서, ‘역사적 합법칙성’이라는 가정의 타당성 없음을 증명하는 데 애쓰는 바로 그 공격만큼 이토록 지속적으로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무덤에서 마르크스가 실로 두 가지 발견을 했다고 하였는데, 하나는 일반적인 역사 운동의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특히 자본주의 사회 질서의 발전 법칙이다. 그렇다면 비판이 바로 이 핵심적인 발견들을 겨냥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지난 세기말 무렵, 사회주의 열망에 맞선,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투쟁이 점점 더 마르크스주의에 그 중심에 두면서 유물사관의 결정론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는 수많은 저작이 출간되었다. 당대의 비난은 지배적이었던 철학에 상응하여 대개 신칸트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신칸트주의, 특히 서남학파형(形)의 경우, 자연과학과 문화과학 사이의 엄격한 분리는 본질적인 것이었다. 오직 전자[자연과학]만이 법칙과학으로 이해되었던 데 반해, 후자[문화과학]는 일회적인 역사적 사건을 단지 기술하는 것에 그쳐야 했고, 이 서술은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보편타당한 가치와 관계 지어져야 했다. 이 입장에서 ‘역사적 합법칙성’은 말도 안 되는 것, 즉 ‘모순어법(Contradictio in adjecto)’이었다. 그 과정에서부분적으로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닌어떠한 논증들이 낱낱이 전개되었는지는 추후에 밝혀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오직, 『유물사관에 따른 경제와 법(Wirtschaft und Recht nach der materialistischen Geschichtsauffassung)』이라는 책을 가지고 직접적인 논쟁을 이끌었으며, 역사적 합법칙성이 목적의식적인 행위와 양립할 수 없음을 입증하려 시도했던 이가 무엇보다 바로 R. 슈탐러(Stammler)였다는 점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유물사관과 그 실천적 적용에 있어 특유의 오류는, 인과적으로 파악 가능한 인식(Erkenntnis)과 목적의식적인 의지(Wollen) 사이에서 매번 상호 배타적으로 결단해야 하는 그 가차 없는 양자택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사회발전의 자연필연적인 행로를 정립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유리하게 이끌고 촉진하며 그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고 여김으로써있다. 그것은 잘못된 상호 교환(quid pro quo)이었다!”4 스탐러는 그 후 흔히 쓰이는 격언이 된 “정확하게 계산된 월식을 일으키기 위해 당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처럼 유물사관을 비난하는 데 집중한 것이 신칸트주의자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세기의 시작 무렵에 다양한 조류의 정치적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했던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은 1898년에, 결정론을 동반한 유물사관이 숙명론을 추동하고 의지적 결단을 마비시키므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썼다. 예수회원 [빅토르] 카트린(Viktor Cathrein)의 여러 차례 판을 거듭해 출간된 저작 『사회주의(Der Sozialismus)』를 집어 든다면, 여기에서도 역시 핵심 요점은 발견된다: “역사적-유물론적 결정론의 이 관점이 인간의 자유를 역사적 고찰로부터 완전히 배제하고, 인간을 필연적인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기계 속의 한 톱니바퀴로 전락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5

 

신칸트주의자들로부터는, (법칙 문제에 대한 두드러진 진술들을 담은) G. 짐멜(Simmel)의 역사철학적 논구들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M. 베버(Weber)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베버는 자신의 과학이론적 및 방법론적 저작들에서 단호히 마르크스주의적 견해에 맞섰으며, 아울러 자신의 역사적 저작들에서도 이른바 구체적 소재를 통해 역사적 유물론의 부당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이라는 저작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음과 같다: 발전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프로테스탄티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의 전제조건이다.

 

누구도 생철학과 실존주의가 심정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없다 하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 전반에 대해 거세게 퍼져 나간 비관주의만으로도 이미 그 결과를 초래했었다. 신칸트주의는 적어도 역사를 과학으로 확립하고자 했다. 생철학이 제시하는 이해(Verstehens)라는 개념은 이러한 요구 조건을 더욱 약화시킨다. 실존주의의 입장은 훨씬 더 과격하다. 만약 실존주의에 의거한 대로 역사의 근본 경험이란 실패의 지속 자체이고, 역사는 늘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사태가 전개되며, 그 속에서 최선의 기획이 결국 정반대로 전도되고, 인간이 명백히 무의미한 사건을 아무것도 바꿀 없는 그러한 자유를 선고받았으며, 심지어 [카를] 뢰비트(Karl Löwith)의 언명에 따라, 오로지 역사에 근거해 방향을 잡으려 하는 것조차 난파 파도에 매달리려 하는 것과 다름없다면, 역사법칙의 가정은 우스꽝스러운 오만이다; 당연히 그것이 결코 결정론의 문제의 그 커다란 중요성을 잃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는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희곡들이나, 혹은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와 뢰비트의 그 두 가지 특징적인 저작들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와 『세계사와 구원사(Weltgeschichte und Heilgeschehen)』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부르주아 철학자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법칙 대신 어떤 류의 운명[론]이 매우 빠르게 자리 잡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실제 역사는 운명으로 가득 있지만, 이는 법칙과는 무관하다(Wirkliche Geschichte ist schicksalsschwer, aber frei von Gesetzen)”6라는 말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물사관에 대한 반론은 더욱 정교해졌으며, 개별 학자 사이에서 구체화(differenzierter)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것들의 원인은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대한 증대하는 이해도에 있으면서도, 무엇보다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이 주제와 관련하여 늘 함께 감당해내어야만 하는 하나의 문제, 즉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면서 엄청나게 확장되고 있는 경제학과 사회학을 위해 다소간 지탱 가능한 철학적 기초를 그들이 필요로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더욱 구체화된 고찰의 한 예로서 야스퍼스를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문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노동의 양상과 분배가 사회 구조와 인간 현존의 온갖 말단에 이르는 것까지 규정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헤겔은 이미 그것을 보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것을 획기적인 통찰 속에서 펼쳐 보였다. 이 연관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다른가령 종교적 또는 정치적원인과 함께 규정되는지 혹은 그것에 의해 제한되는지를 다루는 것은 특수한 역사-사회학적 연구의 과제이다.”7 하지만: “이러한 연관을 역사의 단일 원인론으로 격상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8 사르트르의 후기 저작인 『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Marxismus und Existentialismus)』와 『변증법적 이성 비판(Kritik der dialektischen Vernunft)』에서도 이와 유사한, 더욱 세분화된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사르트르는 노동을 통해 창조된 대상에서 울려 퍼지는 목적성과 반(反)목적성이라는 범주를 통해 주체-객체 변증법에 천착한다.

 

*   *   *

 

1945년 이후 이념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많은 저작에서 나의 초기 주장에 대한 확증을 찾을 수 있다. 베터(Wetter), 칼베스(Calvez), H. 마르쿠제(Marcuse) 등의 저작은 비록 강조하는 바는 상당히 다르지만, 결정론 문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마르쿠제는 저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의 사회학설(Gesellschaftslehre des sowjetischen Marxismus)』에서 의식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 시 규정 방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특유의 구절이 등장한다: “사회주의 이전의 사회를 지배하는 적대적-변증법적 법칙은 자유로운 인류의 역사에 적용될 수 없으며, 이론은 자유의 법칙들을 미리 규정할 수 없기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9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물론 현대의 부르주아 철학에서도 결정론의 문제는 하나의 중심 주제이다. 지면상의 이유로 나는 오직 세 가지 현상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신실증주의와 분석철학의 사회학설들 안에서는, 역사적 합법칙성의 거부가 특징적인 입장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나에게 대표적인 사례인 칼 포퍼(Karl Popper)의 예가 보여주듯마르크스주의에 맞서는 완강한 전선적 대립 속에서 개진된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70)』은 하나의 포괄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역사를 그 합법칙성 속에서 전체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모든 이론은 전체주의에 길을 터준다.” 내용상으로 그 두 권의 방대한 책들로부터는 오직 신칸트주의적 이론들의 재판만이 읽혀 나올 뿐이지만, 그것은 신실증주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 하나의 차이점을 동반한다. 신칸트주의자들이 다름 아닌 문화과학과 역사과학의 객관성을 정당화하고자 했던 데 반해, 포퍼는 이 요구를 포기한다. 역사과학은 개별적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들을 해명하고자 시도한다. 어떠한 사건들이 선택되는지, 어떠한 측면들이 조명되는지, 어떻게 평가되는지이에 대해서는 보편-구속력 있는 관점도, 검증 가능한 가설들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준(準)이론’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그 선택과 평가는 태도와 이해관계의 문제이며, 따라서 전적으로 상대적이다. 그렇지만 그와중에 흥미로운 점은 포퍼가 사회학을 법칙적 과학의 한 분야로 분류했다는 사실이다.

 

역사법칙의 부정, 객관적 상황의 규정력 경시, 혹은 적어도 주관성에 대한 그 과장된 구상을 동반하는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실천철학(Praxisphilosophie)의 학설들, 혹은 우리가 포퍼에게서 발견하는 바와 같은 견해들에 대해다시금 일면적인반격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인데, 이 반격은 프랑스 구조주의의 모습을 띠고 있다. 구조주의자들은 비록 합법칙성 또는 개별성, 그리고 [합법칙성 또는] 주관성이라는 양자택일을 넘어선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것이 예컨대 한 사회형태의, 한 시대의 언어에 고유하게 주어지는 것“전체성의 상대적으로 일정한 구조”를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문제인 한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구조’라는 중심적 개념 뒤에 그 오래된 결정론의 문제가 그저 숨겨져 있을 뿐임은 알기 어렵지 않다. 하물며 이 조류의 대표자들이 조직화된 체계의 구조가 모든 행위에 대해 미리 주어져 있으며, 그것도 그토록 엄혹하고 지배적인 방식으로 주어져 있다고 명시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적어도 모든 비평가가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 구상 속에서 역사가 다시금 소홀히 다루어지고, 진정으로 행위하는 주체를 위한 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수천 년에 걸치는 역사를 이해하는 데 명백히 요구되는 구조변화적 실천(strukturverändernde Praxis)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당연히 이는, 역사를 지속되는 구조들의 변전하는 표면적 현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며, 주요 구조주의자들에게서 여러 변형태로 발견되는 그러한 견해즉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늘 오직 반복해 왔을 뿐이라는 견해(레비스트로스)에 구속되어 있지 않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구조주의적 논증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저서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의사소통 행위 이론(Theorie des kommunikativen Handelns)』을 살펴보자. 하버마스 자신은 이 방대하고도 주목할 만한 저작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말한다. 종교적 전통들과 셸링에 기원을 두는 그의 동기부여적 사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 분열되어 해체되어 가는 근대성의 화해, 즉 근대성이 문화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영역에서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차별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진정으로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이 평화로워진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그러한 공존의 형태를 찾아낸다는 그 구상”10일 것이다. 다른 대목에서 그 사상은 우리의 주제와 더욱 직접적인 관련 속에서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시스템이론과 행위이론을 결합하는 사회 개념을 개발하는 것이 문제였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총체성의 범주 속에서 전개된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사회이론이 그 요소들로, 즉 “한편으로는 행위이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시스템이론으로”11 해체되어 버렸으므로, 현재의 과제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단지 절충주의적이거나 부가적인 방식이 아니라, 주목할 만한 방식(nichttriviale Weise)으로 결합하는 데에 있다.

 

이 과제는, 하버마스가 경제, 국가 그리고 군사 복합체의그것은 상호 의존성, 사태의 강제, 합법칙성에 대한 현대적 표현인데체계적으로 조직된 영역과, 생활세계의 소통적으로 조정되는 영역 사이에 분리를 수행함으로써, 2단계의 사회 개념을 통해 달성되어야 한다. 하버마스는 근대 부르주아 세계의 모든 모순과 모든 사회적 병폐가 바로 소통적으로 구조화된 생활세계의 영역이 자립화된, 형식적으로 조직된 행위 체계들의 명령에 점점 더 종속되게 된다는 점에서 야기된다고 한다. 나는 이 이론 안에서도 극복되지 않은 문제법칙과 자율적 행위라는 문제가 얼마나 깊게 스며들어 요동치고 있는지를 명백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제기된 논제와 관련한 나의 숙고는 드디어 수정주의에 대한 하나의 언급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내게는 유물사관의 결정론과의 싸움이 가장 민감한 핵심 쟁점(neuralgischen Punkte)의 하나가 아닌 그러한 조류의 어떠한 현상도 알려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기의 전환기에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최초의 거대한 수정주의적 공세를 펼쳤을 때, 그는 철학적 차원에서 두 가지 이의를 제기했었다. 변증법의 ‘덫(Fallstrick)’은 치워져야 하며, 역사적 결정론은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베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유물사관의 정당성에 관한 물음은 역사적 필연성의 정도에 관한 물음이다.”12 이때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말년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점점 더 미온적인 결정론자가 되어 갔다고 하며, 자신이 결코 더는 이 [필연성의] 정도를 마르크스-엥겔스적 의미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비쳤다. 베른슈타인으로부터 출발한 이 문제 제기는 러시아의 합법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서유럽 나라의 마르크스주의 논쟁, 그리고 또한 독일 당에도 작용했다. 독일 당의 이론가들은 비록 베른슈타인의 비판을 거부하면서도, 마르크스의 그것에 부합하는 해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일종의 객관주의(Objektivismus)가 특징적이 되었는데, 이는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에서 하나의 근본 결함이었다.

 

이 문제에 어떠한 위상이 부여되는지는, 예를 들어이러한 정치적 소극성과 미성숙한 조건들에 대한 끊임없는 불평이 그 파괴적 영향을 드러낸 후인『유니우스 팜플렛(Juniusbroschüre)』에서 나타난 R. 룩셈부르크의 열정적인 공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R. 룩셈부르크는 당대에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인간은 언제나 특정한 조건들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창조한다”고 가르쳤다고 썼으나, 오늘날에는 그 문장의 두 번째 부분, 즉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역사를 창조한다”를 상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독일 공산당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누구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로의 회귀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역사적 결정론의 문제를 두고 얼마나 치열한 강도와 근본성 속에서 싸움이 벌어졌는지를 안다. 당시에는 물론, 특히나 R. 룩셈부르크에 의해 설정된 강조점들과 관련해서는, 마치 마르크스주의에서 다시금 반대편으로 탈선하는 듯한 그러한 입장들이 대변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오로지 K. 코르쉬(Korsch)와 청년 루카치만을 언급해야 할 따름인데, 『역사와 계급의식(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 속에는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의 구상노동계급의 의식적 행위 속에서 역사적 결정론의 지양이라는 테제를 허용하는 구상만이 문제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는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루카치가 실제로 원했던 바는 1918년 이후 그의 소논문에서 벌써 놀라울 정도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즉,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전까지는 사회발전의 법칙이 프롤레타리아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프롤레타리아 스스로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13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그밖에도 언급해야 할 다른 많은 것이 있다: 좌익급진주의의 견해 속에서 주관성과 객관성이 분열된 현상, M. 아들러(Adler)의 이론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의 저서 『사회주의의 심리학(Zur Psychologie des Sozialismus)』에서 마르크스주의 결정론과의 완전한 작별을 요구했던 H. 드 만(de Man)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것이 필연의 법칙에 대한 모든 믿음의 비밀이다. 즉, 그것의 심리적 기능은 확신의 암시를 통한 의지 강화라는 것이다. 필연성 관념은 자신들의 거대 과업과 미약한 권력 사이의 균형이라는 관념 없이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어리숙하거나 그밖의 이유로 너무나도 나약한 모든 정신적 운동의 사고방식의 특징이며, 그것은 원시성의 징표이자 내적 균형의 결핍을 보여주는 징후이다.”14

 

보다 상세한 분석을 통해, 가령 테이머(Theimer), 대다수 사회민주주의 이론가, 실천철학자, 그리고 코지크(Kosíc), 피셔(Fischer), 마레크(Marek) 등 최근 수정주의의 현상형태 속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결정론 제 문제가 다양한 측면에서 단골 주제이자 주요 공격 대상의 하나를 이루고 있음은 쉽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비판이 가해지는 초점은 물론 저마다 다르다. 테이머의 경우 그것은 꽤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역사적 결정론을 긍정하든가 아니면 거부하든가 해야 한다.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론은 필연적으로 자동주의(Automatismus)이다. 편견 없는 고찰은 역사 안에서 어떠한 결정론도 발견할 수 없다.”15 여타 대표자들의 저작은 더욱 정교한 논증이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주체성의 확장을 저변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벌써 엥겔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마르크스주의적 법칙 이해가 저속하다는 비난을 저변으로 하여 맴돈다. 사회법칙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존재론화되었으며, 즉 자연법칙처럼 파악되었다는 것이고, 주체와 객체가 서로 뒤바뀌었으며, 활동하는 인간의 자리에 “신화화되고, 물화되고, 물신화된 주체: 구조의 자율적 운동(mythologisiertes, verdinglichtes, fetischisiertes Subjekt: die autonome Bewegung der Struktur)”16이 놓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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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문제는 역사적 소재로부터 어떠한 체계적인 관점들이 도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테제 형식으로 요약해 보고자 하는데, 이때 강조해야 할 점은, 다름아닌 낡은, 소위 ‘고전적인’ 반론이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라, 1985년 8월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된 제16차 국제역사학대회가 M. 베버를 둘러싼 논쟁과 더불어 보여주었듯이, 여전히 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1. 문헌 전반에 걸쳐 유물사관의 결정론에서 자유와 책임 있는 행위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견해는 때때로 마르크스의 물음이 철학사에서 반복적으로 토의되어 온 문제, 즉 철저히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행위의 자유와 같은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표현된다. 이에 관해서는, 마르크스가 결코 그러한 방식으로 그 물음을 던진 적이 없었음을 말해야 한다. 오히려 그는이는 청년헤겔학파 시기로부터의 유산인데일체 합법칙성의 실에 매달려 춤추는 꼭두각시가 아닌, 명백히 의식적으로 행위하는 인간(bewußt handelnden Menschen)에서 출발한다.

 

2.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반론은 주로 신칸트주의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으로] 유일한 것이고, [따라서] 반복 불가능하므로, 역사적 사건에서 법칙에 대한 지식에 필요한 일반화의 근거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3. 마르크스가 인과적 접근법과 가치평가적 접근법(kausale und eine bewertende Betrachtungsweise)을 부적절하게 혼합했다는 비난 역시 신칸트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하나의 모순, 즉 유물사관의 불충분성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필연성을 분석하고, 동일한 맥락에서 자본이 피를 흘리며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이 평가에 필요한 척도를 어디서 가져오는가?

 

4.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더불어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그것의 특징적 표지는 의식적으로 형성된 역사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보편타당한 목표 구상들을 요한다. 다시금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구상에 도달하게 되며 그것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마르크스는 이 점에 있어서 비록 스스로에게 커다란 제약을 두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또한 그러한 구상 중 하나이며, 이는 순전히 근거 제시 없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5. 또 다른 핵심적이고 상당히 널리 퍼진 비판점은 야스퍼스가 단일 인과성(Monokausalität)이라는 공식으로 명명한 것에 있다. 용어 자체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역사적 유물론에서 부분적인 진리가 역사의 결정론적 형이상학으로 확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의도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 대다수가 벌써 오래전부터 유물사관에 상당한 통찰력들을 귀속시키는 쪽으로 이행해 왔다. 사회의 건설과 구조를 위한 경제의 역할에의 통찰을 통해 마르크스가 성취해 낸 바는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로써 역사 연구에 비옥한 자극들을 불어넣었으며, 전 시대와 문화를 그것의 구성과 발전 속에서 비로소 이해 가능하게 만들었고, 또한 전통적 역사관이 일방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요소, 국민국가적 관점, 혹은 위대한 인물을 고찰의 중심에 놓았던 그러한 역사관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비판]는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물질적 재화의 생산양식을 사회발전에서 규정적인 요소로 간주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편협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예를 들어, 엥겔스가 말년에 적어 보낸 서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것, 즉 다양한 상부구조 현상의 능동적 규정력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는 반박될 수 없다. 마르크스·엥겔스의 총체성 개념은 이미 여기에서 요구되지만, 이것이 지배적인 요소가 있는 총체성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공격은 바로 이러한 점, 즉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일원론적 관점에 대한 공격이다. 베터는 이미 오래전에 이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사회생활의 개별 영역 사이의 보편적 상호작용만을 주장하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단지 그 안에서 과거에 실제로 종종 [역사 분석에서] 간과되었던 경제적 요소에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에 만족할 터라면, [우리가] 이에 대해 더는 반대하여 말할 바가 없을 것이다.”17

 

6. 오늘날 특히 중요성을 얻은 논증 방식의 하나는 필연적 관계와 상호 관계의 복잡성과 통제 불가능한 다양성을 언급하면서, 법칙에 대한 지식을 부정하거나 법칙에 매우 제한적인 가치만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고찰을 짐멜에게서 비로소 처음으로 접하였는데, 그는 『역사철학의 문제(Problemen der Geschichtsphilosophie)』 속에서 사회적 사건이란 모든 방위로부터 오는, 규정하는 영향들에 종속되어 있으며, 엄밀히 말하자면 심지어 마지막 한 사람의 행위에까지 그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행위는 명백히 어떠한 [이론적] 통제로부터도 벗어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들어 이 고찰의 핵심은, 사람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고도로 복잡한 체계들, 그리고 비상한 고수준의 구조적 분화를 지닌 소위 ‘근대’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만큼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이 체계는 모든 법칙적 통찰을 무력화시킨다고 여겨지며, 그 발전 양상에 대한 예측을 점점 더 불확실하게 만든다.

 

7. 마지막으로, 구조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다른 영역들에서도 커다란 인상을 남긴 비판 하나를 마저 언급해야만 한다. 구조주의는 그 자체로 특이하게도 결정론적인, 아니 초결정론적인 개념틀(hyperdeterministische Konzeption)인데, 왜냐하면 그 안에서 행위하는 개인은 불변하는 구조에 적응한 채로 작동하는 한에서만 비로소 출현하기 때문이다. 목적-지향된 행위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역사에 대한 혐오, 그리고 인과 원리에 정향된 모든 역사 고찰에 맞서는 [경향]이 도출된다. 이에 관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역사에서는마치 자연탐구 분야에도 그러한 유사한 난점이 존재하지 않다는 듯이 [말하면서]폐쇄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면밀히 고찰해 보면 그러한 고찰은 오직 “일련의 끊임없는 역참조(eine Reihe von dauernden Rückverweisungen)”만을 제공할 뿐이다. 즉, 논점이 끝없이 한 가지에서 또다른 한 가지로 빠져들게 되어, 끊임없이 “무한 소급의 위협” 아래에 처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해명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 수정주의의 양상 속에서 발견되며 무엇보다 의식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역사의 요구 아래에서의 결정론의 성격을 문제 삼는 반론, 그리고 마르크스·엥겔스가 자신들의 결정론적 사고방식에 근거하여 내놓았을예를 들어, 역사적 사실 자료에 근거하여 제기되는예측들에 맞서는 모든 비난은 더는 고려되지 않는다. 이에 맞서, 일반적 문제 제기와 관련되는 몇 가지 비판적 강조점이 여전히 부여되어야 한다. 이 모든 반론을 고찰해 보면, 그것들은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때로 고려해봄직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마르크스적 문제의 진정한 핵심을 빗나간다는 점이 드러난다. 당연히 이는 무엇보다도 계급 및 이해관계에 규정된 원인을 지니고 있지만, 그 곁에는 인식의 한계들도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내 견해로 볼 때 무엇보다도 네 가지 핵심적 질문들 속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첫째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대개 필연성이 어떻게 역사 속에 자리 잡게 되는지를 해명하는 마르크스 본래의 접근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유물론적으로 파악한, 인간이 자연과 벌이는 물질적·대상적 대결의 과정에서 대상화된 결과, 즉 사물과 관계의 세계이자 인간의 행위에 결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제2의 자연(zweiter Natur)’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입증하는 헤겔의 대상화 변증법에 대해서는한데 모인 논증들이 보여주듯이비록 그것과 더불어 제시된 [반대] 논증 중 개별적인 것들이 명백히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도 수용되지도, 공격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핵심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늘 스스로를 정말이지 힘들게 하였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거듭 말하자면 청년 루카치를 들 수 있는데, 그는 마르크스주의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역사와 계급의식』을 통해 결정론을 상품 생산과 함께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물화에 결부시켰고, 나중에는 『경제학-철학 수고』를 그 근본적인 마지막 장과 함께 연구한 영향 아래에서 이 관점에서 벗어나는 데 얼마나 큰 고뇌를 들였는지, 그리고 마르크스가 대상화를 통해 훨씬 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을 깨닫는 데 얼마나 큰 수고가 따랐는지를 절실하게 묘사한다.

 

둘째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의 본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상승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특히 마르크스에 의하면 모든 중간적 인식(Zwischenerkenntnisse), 모든 개념(Begreift), 모든 이론(Theorien) 및 법칙 정식화(Gesetzesformulierungen)가 고립(Isolierung), 단순화(Vereinfachung), 정지(Stillstellung) 그리고 이상화(Idealisierung)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파악하지 못하는 자는, 마르크스에 의한 사회과학적 법칙 인식의 본질에 다가서려고 시도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우리 문제를 둘러싼 전체 논쟁 속에서 결코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미 초반부터 이에 대한 가히 전형적인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1895년 3월 12일자로 엥겔스가 C. 슈미트(Schmidt)에게 보낸 그 유명한 서한이 그것인데, 거기서 엥겔스는 다종다양한 경험적 현실에 비추어 가치 법칙의 본질에 관해 이 신칸트주의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비상하게 교훈적인 방식으로 답변한다. 즉, 이 두 측면은 서로 원과 다각형의 관계와 같으며, 이로써 모든 개념과 모든 법칙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나머지 두 가지 문제는 사회법칙의 경향적 성격과, 마르크스에 따라 우리가 역사의 대안적 구조(Alternativstruktur der Geschichte)라고 불러야만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공격을 격퇴하는 데 있어 이 두 가지 문제에는 지극히 큰 중요성이 부여된다. 마르크스·엥겔스가 이에 대해 상세히 견해를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적 문헌에서 이 문제들은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대변자들 역시 마르크스·엥겔스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대안을 언급했을 때, 혹은 지난 세기 러시아의 발전에 관한 물음에 일련의 ‘만약’으로 답변했을 때 과연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자문해 보지 않은 채, 여전히 자동주의와 숙명론 그리고 자본주의의 붕괴법칙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언급된 관점들에 따라 우리 측의 논증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개될지가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연구 작업에서도 계속해서 핵심 주제여야 하며, 교육 과정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6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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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 논문은 저자가 1985년 9월 훔볼트대학교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 분과 학술대회에서 「객관적 법칙과 인간 행위」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연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Vgl.: Objektive Gesetzmäßigkeit und bewußtes Handeln in der sozialistischen Gesellschaft. Materialien des IV. Philosophie-Kongresses der DDR. Berlin 1975; Dialektik des Geschichtsprozesses in der Epoche des Übergangs vom Kapitalismus zum Sozialismus. V. Philosophie-Kongreß der DDR (Protokoll). Berlin 1980.텍스트로 돌아가기
  3. F. Engels: Ludwig Feuerbach und der Ausgang der klassischen deutschen Philosophie. In: MEW. Bd. 21. S. 307.텍스트로 돌아가기
  4. R. Stammler: Wirtschaft und Recht nach der materialistischen Geschichtsauffassung. Leipzig 1914. S. 418.텍스트로 돌아가기
  5. V. Chathrein: Der Sozialismus. Freiburg/B. 1910. S. 201.텍스트로 돌아가기
  6. O. Spengler: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München 1923. Bd. 1. S. 153.텍스트로 돌아가기
  7. K. Jasper: 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München 1955. S. 106.텍스트로 돌아가기
  8. Ebd.텍스트로 돌아가기
  9. H. Marcuse: Die Gesellschaftslehre des sowjetischen Marxismus. Neuwied/(West-)Berlin 1964. S. 141.텍스트로 돌아가기
  10. J. Habermas im Gespräch mit A. Honneth, E. Knödler-Bunte und A. Widmann. In: Ästhetik und Kommunikation. Beiträge zur politischen Erziehung. Jg. 12 (1981). S. 151.텍스트로 돌아가기
  11. Ebd. S. 135.텍스트로 돌아가기
  12. E. Bernstein: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Stuttgart 1899. S. 4.텍스트로 돌아가기
  13. G. Lukäcs: Die Rolle der Moral in der kommunistischen Produktion. In: G. Lukäcs: Gesamtausgabe. Bd. 2. Neuwied/(West-) Berlin 1968. S. 94.텍스트로 돌아가기
  14. H. de Man: Zur Psychologie des Sozialismus. Jena 1926. S. 117.텍스트로 돌아가기
  15. W. Theimer: Der Marxismus. Lehre - Wirkung - Kritik. Bern/München 1960. S. 47.텍스트로 돌아가기
  16. K. Kosíc: Die Dialektik des Konkreten. Eine Studie zur Problematik des Menschen und der Welt. Frankfurt a. M. 1967. S. 57.텍스트로 돌아가기
  17. G. Wetter: Sowjetideologie heute. Bd. 1. Dialektischer und historischer Materialismus. Frankfurt a. M./Hamburg 1962. S. 195.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