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일반 노선과 역량: 서문」 『총명한 유물론』 제3집 여름호
책임저자: 한동백
저자: 김민규·김성식·김의진·김진국·노준엽
서문
L15✬ R15
현시기 한국의 자본주의에서 민중의 이익을 쟁취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 길의 해명에서 우리는 민중의 이익이 실현되는 하나의 사회상태, 즉 현존하는 사회상태에 있어 비약이라 할 그러한 최종 목표로서의 사회상태를 제출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예속화된 자본주의 경제가 민중의 이익 일반을 침해한다면, 우리는 그 경제적 조건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상태를 정면으로 제출함으로써 민중의 이익 일반의 침해라는 이 고질병을 치유할 그 길을 마련할 수 있는가?
만약 그 사회상태에의 상을 민중이 자기 관념으로 승인하지 않는다면, 또 그 조건이 정말로 강고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야흐로 그 상은 현존하는 사회상태에 관한 상에서 사람에 관한 사업에의 상으로 상승한다. 민중의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사회적 부조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주체의 활동성에서 비로소 민중의 이익 옹호 그 자체는 그 이익을 전취하는 데 나설 수 있는 단일한 이해관계의 인간을 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의 지양으로부터 조직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경험적으로 역사적으로나, 현존하는 것으로서나 개개인의 각이한 이해관계의 고수는 또다른 이해관계와의 불화이며, 이는 더 큰 단일한 이해관계의 시스템에 포괄된다고 하더라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민중의 이익 옹호는 상호 배타적 〈하나〉로서의 당파 속에서 개개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정치를 함유하는 것이다. 민중의 이익 옹호의 진리는 민중의 정치화이다.
* * *
한 개인이 자기 이익을 관철, 옹호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불가피하게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떠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다면적인 것에 이끌린다. 이는 자기 이익을 옹호하는 모든 개인을 단지 인간이 아니라, 정치적 인간으로 실존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익의 관철, 옹호의 필요충분조건이 곧 하나의 정치적 인간인 것은 아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치적 인간은 힘을 가져야만 한다. 다시 말해, 민중의 이익이 관철되기 위해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교체를 필연적으로 수반해야 한다면, 현존하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영구화에 이해관계를 가진 자들, 즉 현존하는 사회상태에서의 지배계급과 권력 투쟁을 해야 하고, 투쟁에서는 힘이 요구된다. 한편으로 권력 투쟁에서 주력군·동맹군-예비대를 쌓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하다.
정치에서의 힘, 즉 정치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실로 그것은 물리학에서 규정하는 힘과 한 치의 차이만을 지닌다. 그것은 개개인을 동원하는 정도인데, 이 동원 작용은 관념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 하나의 신체─하나의 물체로 실존하는 개개인을 물리적으로 운동하게끔, 그러나 단지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에 합치하는 데로 운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 운동 작용을 유발하게 하는 행위는 시대마다 일정한 제약성을 가진다. 전근대에서 이 운동 작용은 인구 대다수에 있어서는 다소 공공연하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노예주는 노예를 이용하여 자신 정치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봉건 지주는 예농이 바치는 지대를 통해 자신 정치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다─그리고 노예와 농노에게는 정치적 동원에 대한 자신의 동의를 표할 권리가 없다. 동의의 부재 속에서 점증하는 불만은 강력한 폭압을 통해서 잠재워졌으며, 정치력 형성에서 대중적 동의의 원리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성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운동 작용은 인구 대다수에 있어서도 공공연한 폭력에서 은폐된 폭력과 이른바 문명화된 폭력으로, 노골적인 야만에서 세련됨으로 이행한다. 이는 개개인 사이의 보편적 관계가 부르주아적 상품 교환 관계로의 물화, 즉 두 교환자 사이의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 관계라는 추상으로 정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력의 교환은 가상적으로는 ‘자유’로우며, ‘평등’해야─‘등가 교환’─하는데, 야만적이고 공공연한 폭력은 폭력의 교환으로서는 가상적으로라도 ‘자유’와 ‘평등’을 위반한다. 다시 말해, 교환 원리가 최고도로 발달한 사회 형성에 있어 일방적이고 공공연한 폭력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전 분야에서 교환 원리의 일색화와 대립한다. 따라서 그것은 부르주아 법률, 즉 또다른 폭력─그 자체 특수한 은폐된 폭력에 의해 저지당한다.
이렇듯, 자본의 지배는 폭력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그것의 변형을 수반하고, 변형된 폭력은 자본의 자기 목적을 관철하는 데로 개개인에게 실제적 압력을 가하는데, 당연히 이 실제적 압력은 법률만이 아니라 고도로 집단화된 계급적 이익의 맹렬한 옹호와 공격을 통해서도 가해진다(이때에도 그것은 최대한 ‘공동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법적 외피를 쓰려 한다). 사회 전반에서 물질적 규제력의 주동성이 시퍼렇게 실재하는 탓에 정치력의 요체는 그대로 동원력을 척도로, 아군의 편을 확장하고 적의 편을 축소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은폐된 폭력─이는 폭력의 피규정자 스스로가 자기 행위의 근거가 타자의 폭력에 실존함을 모르는 채 작용하는 폭력이다. 경험적 사례로서 이는 자본-임노동 관계, 자본의 이데올로기 추종─애국주의, 인종주의 등 잡다하나, 보수화에서 광범위한, 그리고 대표적인 당위를 갖춘 것으로서 문제시되는 것은 특히 능력주의의 ‘자발적 신봉’이다─, 합법적 기만, 국가법적 권위에의 맹목적인 당위 설파까지 아우른다. 판매할 것은 오직 자신의 노동력뿐이라 열악한 노동 조건마저 승인하면서, 그것이 외적 작용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진정한’ 의지의 산물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따라서 그것을 폭력 작용의 외부에서 고찰하는 한 직접 생산자의 관념. 자본주의 경제에서 은폐된 폭력은 교환 원리에 철저히 지배된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로 자신을 채찍질함은 ‘능력’을 충분히 쌓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나태함’과 등가이며, 이 이데올로기에 의거한 보다 ‘낮은 지위’의 타인에의 멸시는 자신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로서 ‘합리적인’ 등가이다. 은폐된 폭력은 부르주아 국가에서 거대한 소외이다; 문명화된 폭력─이는 한 사회상태에서 폭력의 실존이 부득불 상시적임을 승인하고, 그 외적 폭력을 폭력의 종언의 조건으로 인식함을 전제로 행사되는 폭력이다. 이는 행사되는 폭력이 강력한 정치적 동의 속에서 승인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영국·일본 등의 제국주의자는 종종 자국이 식민지에서 자행했던 광기 어린 학살, 그리고 자국민에의 군사적 동원의 폭력을 전적으로 승인하면서, 이를 두고 ‘인류 진보의 촉진제’였다고 한다. 또한 당적 규율의 집행은 하나의 폭력이다─동시에 그것은 당의 성원 사이에서 전적으로 승인된 폭력이다. 문명화된 폭력은 한 실존이 타자 실존에 가하는 노골적인, 직접적인 폭력에 당위가 부여되는 것으로써, 은폐된 폭력이 시민사회와 헌법 국가의 위기 속에서 더는 자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인 가상태로서 존재할 수 없음을 폭로한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그것은 정치력의 쌀이며, 자기 자신의 당위를 오랜 시간 증명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증명 과정을 위한 복잡다단한 행위로부터 노골적인 야만이 가일층 억눌러지고, 정동을 어루만지는 노력이 만개한다. 이는 현대에서 정치의 세련됨을 규정한다.
하지만 특수한 분야에서 힘의 축적이 그와 다른 특수한 분야에서 힘의 쇠퇴 부재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심지어 어떠한 것으로서 힘의 축적의 발생학적 전제로서 매개의 그 시스템에 따라, 그것은 다른 어떠한 것으로서 힘의 쇠퇴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만약 두 타자가 나란히 정치력의 안정적 공고화의 전제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런 일은 정치투쟁에서 흔하다. 이는 우리가 역사에서 단순히 표상적으로 취해 온, 표명되는 〈당파적으로 단일한 이해관계〉가 실제적인 것으로서의 〈당파적으로 단일한 이해관계〉와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계급 당파는 실제로, 개별적으로는 노동자와 마찰을 빚을, 또 빚을 수밖에 없는 중간지대에 속하는 광범위한 분자를 내부로 영입하면서도, 또 중간지대화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끊임없이 붙잡아야만 한다. 현재에 한 두리에 결속시킨 개개인은 미래에, 예측할 수 없는 집단적 분화의 주체가 되며, 이는 무진장하다. 또한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 일반으로서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산업종사자의 반대물로서의 특수한 산업종사자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때에는 어떤가? 이 경우 외부로 표명되는 이해관계와 정치적 입장은 정말로 다종다양한 양상을 띤다. 모두가 즉자적으로도 동일한 이해관계를 지닐 정도로 ‘객관적 정세’가 “언젠가” 무르익은 때, 저 복잡한 건에 대해서는 신경 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소망은 공허한 것이다. 〈당파적으로 단일한 이해관계〉는 시간적 연관 내부에서, 그리고 현상적으로는 특수한 이해관계들의 실제적 보편자─특수하게 규정된 크기를 가진 다양한 것의 통일─로서만 실존한다.
정치력을 축적하는 일은 어느 한 특수 이해관계 분야에 속하는 개개인에게만 동의와 지도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특수 이해관계 분야에 속하는 개개인을 정치력의 증강에 합치하는 식으로 동의를 확보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이 경우 특수자의 이해관계는 주체 역량의 요소를 제한다면 상호 적대적인 두 계급의 이해관계로─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분열된다. 이 경과가 생겨나는 이유는, 사회구성체의 자기 지양의 내적 필연성에 따른 것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 하 축적의 주요 부분이─기계제 대공업, 첨단 공업 등 선도 산업 부문─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집단과 유일하게 판매할 수 있는 게 노동력일 뿐인 집단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있다. 개개 특수자의 이익 옹호와 이익의 실현 여부는 부득이하게 이 주요 산업 구성 부문의 강제적 규정을 받는다─그리고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제약은 의지적인 것과 무관하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체 역량의 요소를 자의적으로 제할 수 없다. 다수 나라의 실지 정치에서 표지되는 대립의 주요 구성은 한쪽 계급, 즉 노동계급 당파를 지니지 않은 채 있다. 이는 표지되는 ‘계급적 이익’이 개개 임노동자와 개개 자본가의 감성적 이해에 기초해 있기에 야기된다. 즉, 이익에의 감성적인 것이란 어떠한 조건 하에서는 대개 참된 이익과는 상충한다. 물론 지배계급은 그 예외에 있다. 톺아봐야 할 것은 피지배계급의 이익과 실제 감성적으로 제출되는 이익의 괴리에 있다(실제로는 이 괴리조차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자기 지양의 일반적 경향 속에서만 규정된다). 이는 앞으로 이 문건에서 밝힐 것이다. 근본 주제는 투쟁 상 다양한 사태 매개에서의 주체 요소의 의지적 조건, 그리고 그 주체 요소에 의해 창출되는 의지적 조건이다.
“민중의 이익을 대표한다”면서 이 조건을 무시하는 것이 교조주의의 본질이다. 교조주의자들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자기 지양에서 관념의 대상적 활동태로서 의지의 정점을─민중의 혁명성, 통일된 일반 의지─현존하는, 또 현재적인 특수 의지로서 주체 요소와 무매개적으로 일치시킨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유효한 인구 대다수가 노동계급의 참된 이익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실제로는 자신이 처한 계급적 현실과 상충되는 이익을 부르짖고 있을지라도, 교조주의자는 그들이 처한 계급적 현실에서 제출되었어야 할 그 참된 이익의 이해를 실제로 그들이 벌써 자기 의지와 욕망으로서 소유하고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교조주의자들에 의해 대중적 동의를 구하는 목표로 행해진다는 운동도 심각한 오류 속에서 벌어진다.
진정 우리가 사활을 걸고 논급해야 할 것은 민중 이익의 정치적 옹호자들이 무엇을 해야지 민중 스스로가 자신의 참된 이익을 자신의 감성적인 견해와 일치시킬 수 있게 할 수 있는가이다. 이론적인 것은 이 일치의 지성적 역량(intellektuelle Potenz)이다. “비판의 무기는 ⋯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인 힘은 물질적인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론도 그것이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인 힘으로 된다. 또한 이론은 대인(對人)적으로 증명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1
오늘날 운동은 1987년 직선제 개헌이라는 지배계급의 수동혁명,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사회주의 세계의 세계사적 퇴행과 함께 끊임없이 이 일치의 노력으로부터 멀어져 왔는데 그것은 다양한 과정으로 일어났다: 하나는 가장 흔한 것으로, 민중의 참된 이익에의 수정주의적 편향으로의 퇴행이다. 이는 최소강령주의를 받들어 운동에 기회주의를 유포하였다. 모든 사회구성체 분석은 죽은 개 취급을 받았고, 모든 정치 토의는 무원칙한 부르주아 아류성을 띠었다; 또다른 하나는 화석화된 ‘원칙’의 숭배로, 대중과의 모든 일치의 노력의 공백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는 교조적 고립주의이다. 이 입장이 역량의 정치적 의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운동에서 국민적 전망의 공백의 틈에서 경제주의·조합주의가 번성하였다. 경제주의란 노동운동에서 ‘경제적인 것’만 취급하는 경향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경제 투쟁을─임금 투쟁, 단투·단협 사수, 조합 관리─노동운동과 동일시하는 경향이다. 한 나라에서 경제적인 것과 경제 투쟁은 다르며, 대개 경제 투쟁에 사활을 걸며 조합 업무에 ‘빠삭한’ 종파는 한 나라에서 경제적인 것에 대해 무지하여 정치투쟁에서 대중에게 유효한 경험을 심어줄 매개지(媒介知)를 생산할 수 없다.
이 오류들은 이 오류가 또다른 저 오류와 부단히 상호 침투하며 실존한다.
* * *
한국에서 87년 헌정이 공고화하자 성장해 가던 역량은 시민사회로 분해하였다. 이는 역량의 힘의 무게추를 크게 변동시켰는데, 그것은 현장과 의회의 양분 속에서 둘을 연계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 상황은 1972년 10월 유신 이래 1987년 6월 혁명까지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보장되지 못한 채 관변 선거가 대중에게 그 어떠한 유의미한 기대조차 줄 수 없었던 데에 반해, 87년 헌정 개시 이래 선거의 민주주의적 합법성이 대두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선거로 집중하며 끊임없이 조성되었다.
역량은 87년 헌정이 형성 전, 군부 파시스트 정권하 제한적이고 기만적인 선거 치러지던 시기에 정치 행위를 벌인 탓에 이론적으로는 의회 진입의 필요성을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먼 훗날의 사정으로서 유예하고 있었다. 이런 유예는 당연하게도 각각의 역량이 몸담는 제 그룹의 ‘청사진’에 근거했다: 그것은 조직 사업의 일단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보장, 민주주의적 합법성의 전취에 두는 것부터 역량을 모아 매개 고리 없는 급진적인 혁명 조치의 실현에─러시아식 ‘제헌 의회’, ‘민중 권력’, ‘노동자 국가’─두는 입장까지, 실로 다양하게 실재했다. 거의 모든 조직 사업에서 대중이 의회 선거의 판도에 이목을 집중하게 되는 상황은 상대적으로 덜 고려되었다. 1987년 12월 16일, 군부 파시스트 두목의 하나였던 노태우가 첫 번째로 치러진 ‘자유선거’에서 당선되자 현장과 의회와의 연계에 관한 사업의 중요성이 더욱더 대두하였다. 이는 역량의 한쪽에서 의회주의를, 다른 한쪽에서는 ‘원칙’이라는 외피 속에서의 교조주의를 부추겼다. 이 질병은 변칙적인 현상을 고려하는 올바른 전략 노선을 쌓음으로써만 치유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는 타성의 소용돌이에서 부침을 겪었다.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전망’─직선제 개헌 후 민중의 혁명적 의지가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는 삿된 소망이었다. 민주정의당으로 대표되는 군부 파시스트들은 1990년 1월 22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라는 자유주의 부르주아와 민간 파시스트를 유연하게 흡수(민주자유당으로의 3당 합당)해 나가면서 스스로의 파시스트적 기질을 연성화(軟性化)하였고, 이로써 형식적 민주주의의 보장 하에서도 안정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 성격은 신한국당에 고스란히 인계되었는데, 이 당의 당파적 속성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 폭로 후 김영삼이 검찰 관료의 방해 공작을 뿌리치고 11월 24일 소위 ‘5·18 특별법 제정’을 수용할 것을 시사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전두환과 노태우 등의 군부 파시스트 일당의 재판 회부를 주도했음에도 그 당에 있어 공공연한 것이었다.
1990년에는 동구 사회주의 세계가 흔들리는 조건 속에서는 청산주의가 자라났다. 그것은 서방세계에서 축성된, ‘좌익’ 외피를 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알튀세르, 네그리, 들뢰즈 등─수입하는 의지적 원천이었다. 이는 대학가에서 사회구성체론에의 학문적 성장을 억압하고, 학생운동의 자산인 학생의 학문 정신을 타락시켜 학생운동의 운신의 폭을 축소하였다. 1991년 사회주의 세계의 거대한 후퇴는 이 흐름을 가일층 가속화하였다. 전략 노선 부재 속에서 역량이 쌓았던 성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배적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이상의 줄포기가 이어졌다. 당대 동구 사회주의의 역사적 퇴행 속에서도 단지 교조적으로 결의를 다지고자 하는 일부 그룹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그 결의의 과격한 껍데기가 무색하게 1년을 버티지 못했다.
우리는 역량의 상승과 하강이 부단한 주객 변증법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창조해왔음을 본다.
야기된 조건이 명백한 악재라면, 우리가 이를 주체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 극복할 수 있는 악조건이 있고, 극복할 수 없는 악조건이 있다면 그 한계는 어찌 규정되는가? 대중의 관심이 선거에 집중되었을 때, 군부 파시스트 지배가 약화하였을 때, 기존 역량의 형식을 새 전략에 조응하는 형식으로 교체하는 것 또한 하나의 특수한 조건을 창출하며, 이 특수한 조건에 따른 주체적 노력이 요구된다. 현장과 의회를 연계하여 대중의 이목을 끄는 행위는 실로 과학적 예측의 외부에 있을 다양한 우연적인 것 속에서 역량의 상승을 가져올 수도, 또는 부침의 연속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당대의 상황에서 올바른 전략 노선을 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비록 이로 인한, 갖가지 새로운 오류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할 수 있더라도) 신 전략을 짜는 것은 낡은 노선을 고수하는 것에 비할 바 없이 타당하나, 그것이 악조건을 돌파하는 데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에 관한 고려 또한 신 전략 노선 창조의 벽두에서 부침을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든 고심을 내려놓고 의회 진입의 부르주아적 정형을 따르는 길, 즉 의회주의의 편향이 등장하며, 한편으로는 모든 고심을 내려놓고 낡디 낡은 ‘원칙’을 교과서적으로 반복하는 교조주의의 편향이 등장한다. 치밀한 전략을 세우기 위한 구체 분석의 자산 없다면, 풍파는 한쪽으로의 편향을 순식간에 몰고 온다. 이 갈팡질팡 속에서 노동 성원의 자연발생성을 주 자원으로 하는 노동조합만이 팽창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정말이지 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여해 본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 그것은 죽어가는 역량 최대의 안식처가 되었다.
1980년대 전반에서 해외 특별잉여가치의 전유에 있어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성장과 6월 혁명 후 노동자 대투쟁은 대공장 임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향상하였고, 귀족 노동자를 대거 양산하였는데, 이는 조합의 재정을 튼실하게 하는 한편 우경 조합주의를 번성케 하였다. 이 시기부터 그 분화가 미미했던 재야 운동과 학생운동, 노동조합은 각자의 명확한 분리성을 확보하였다. 이 성과는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약칭 ‘민주노총’)의 조직으로 그 결실을 거둔다.
87년 수동혁명에서 일련의 반동은 급진적인 재야인사와 학생운동가 경력을 가진 직업적 활동가에게 의회주의를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의회주의는 최소강령주의의 맹아였고, 성숙한 최소강령주의로서 그 당적 실현의 시초는 1997년에 결성된 건설국민승리21(약칭 ‘국민승리21’)이었다. 이 당이 출현하기 전 벌써 1990년 민중당이 결성된 바 있었으나, 열악한 대중적 기반 아래에서 인천부천민주노동자연맹의 일부 직업적 활동가와 소수의 재야인사만으로 구성된 이 당은 머지않아 자연 소멸하였다.
국민승리21은 가지각색의 조합주의자들 및 1995년 9월 24일에 결성된 진보정치연합의 최소강령주의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당이었다. 그것은 이 당과 이 당을 인계한 민주노동당의 지도자들과 상급 중간역들이 민주노총의 1기 1대 지도자들과 크게 겹친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으며, 결성의 목표부터 당의 주의·주장 또한 경제주의적 요구의 그것을 넘지 못하였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당은 그간의 경제 투쟁으로 비대화한 노동조합의 인사를 흡수함으로써 단시간에 외연적 힘을 조직할 수 있었으며, 이때문에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실재하던 직업적 활동가와 대중 운동가를 결속할 수 있었다. 2000년 국민승리21의 대중적 지반은 민주노동당 결성으로 이어졌다.
당은 2000년 4월 13일에 치러질 제16대 총선에서 “원내 입성”을 목표로 하였으나, 1.18%의 득표율로, 정당 등록의 최소 득표선인 2%를 넘지 못하였다. 재조직된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두었고, 선거법 개정 속에서 당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2004년 4월 15일에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당은 10석의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의회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당의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87년 헌정 이래 현시기까지 활동가의 재생산 기지는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다. 대학가에서는 수정주의 이데올로기가 번성하였고, 1990년대에는 세계 사회주의의 대대적인 후퇴, 정보기관의 공작에 의한 소위 ‘북한 인권 실태’ 흑색선전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학생운동 지반은 미래 운동 인자를 확보하는 데 일대 난제에 빠졌다. 국가보안법이 역량의 외부에서 역량을 파괴하는 데 주력했다면, 1990년부터의 일련의 상황은 역량의 정치력을 내부에서 분해하였다.
2000년대 중후반기에는 민주노동당과 노동조합의 팽창이 두드러졌지만, 진보에 대한 청년·학생에서 의식적인 것은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그리고 매우 복잡한 시사점을 던진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의제는 학생에게 적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호평은 학생운동의 조직화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더 넓은 부위의 청년의 보수화를 막지 못했다. 당은 또한 2000년대 후반 이래 유의미한 양적 성장 없이, 정체를 맞았다. 당내 다양한 그룹의 종파주의는 외부의 적대 세력이 그것을 악용할 만큼이나 돌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은 당무를 통해 현실 감각을 갈 수 있었다. 당에서 법제를 검토하고, 법안을 발의하는 것, 민중과 의회를 잇는 제도적 창구와 비제도적 창구의 활용, 의회의 다양한 부르주아 당파와의 유연한 동맹 속에서 주적을 취급하는 일, 민주주의적 관료로서의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전문성의 선취, 의회에의 대중적 관심 속에서 진보적 시책의 전국적인 의제화 등. 그것은 훌륭한 예행연습이었으며, 정치투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당의 이 정치적 경험이 곧 권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은 당이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당적 자산을 운용해야 한다. 특히 이 시기는 연성 파시스트당인 한나라당과 정권을 압박하면서 제18대 총선 이래 조성된 불리한 국면을 돌려세우는 것이 민주노동당과 여타 부르주아 자유주의 당파의 일대 과제이기도 했고, 그 과제는 오는 선거에서의 승리와 연계되었다. 2010년 6월 2일 제5회 지선 치러진 후 ‘반MB연합’, ‘빅텐트론’ 등의 다양한 ‘통합’에 관한 상이 부르주아 정치판에서 제기되었다. 민중 역량에 있어서 선거 전략은, 무엇을 해야만 한국의 선거제도 상 산개된 당파를 단일 깃발로 통합하여 표의 분산 없이 최대 당선자를 낼 수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귀결되었다. 2011년 1월부터 토의가 진행되었고, ‘미래 진보와 체인지 2012’의 대담을 통해 당내에 통합 의지가 강고하게 실재함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었다. 같은 채 9월 25일에는 당대회에서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부결되었으나, 노동조합, 당원, 기성 지지자 등 기층은 통합을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었다. 11월 초 당은 국민참여당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19일에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와 합당을 공식화하고, 12월 13일 통합진보당으로 재편되었다. 이는 민중 당파가 선거제도 상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음을 의미했지만, 또한 당의 기성 역량이 통제하기 까다로운, 새로운 종파주의를 유입하여 당의 통일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은 다음 해 4월 11일의 제19대 총선에서 총 13석(제18대 국회 의석보다 6석 증가함)의 의석을 획득하였으나, 이는 당내 역량의 내용적 통일성의 부재 속에서 획득한 것이었으므로, 당의 분열과 혼란은 깊어져 갔다. 국민참여당을 위시로 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까지 대거 합세한 당내 종파 사이의(당연하지만, 당이 1997년 탄생에서부터 그 뿌리가 최소강령주의였다는 것, 즉 당이 부르주아 정치성에서 아직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또한 지적되어야만 한다) 극렬한 다툼은 선거 후보 경선에서 정점에 달했다. 종국에 당은 다시 분열하였다.
정당에서 내용적 통일성을 강화함이 단순히 차이 일반의 기계적 또는 화학적 결합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한 당 역사에서 실천적 경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내용적 통일이 힘의 집중의 조건이지, 힘의 집중이 내용적 통일의 조건이 아님은 명백하다. 당의 통합은 외면적인 것의 외연적 힘의 상호 병치와 외연량의 증가에 등호를 붙였으나, 실제로는 외면적인 것이 내면적인 것으로 지양되지 않는 한 특수한 외연적 힘의 상호 병치는 서로 반대 작용을 통해 외연량의 감소를 가져온다. 이는 추상적인 ‘당의 통합’에 기댄 트로츠키의 8월 블록 책동이 결과적으로 8월 블록의 해산을 막지 못한 데 반해 볼셰비키는 당의 통일 대오를 보존했다는 데서도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21세기에 구 볼셰비키의 당 조직 방식을 한국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즉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40년이 넘게 교조적으로 반복되는 소위 ‘당 건설’과 같은 고루한 식의─, 이 또한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내놓을 수 없을지니. 1990년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일련의 ‘당’들의 내적 제약은, 그것이 당 건설에 있어서 새 형의 방식의 모색에서 이행적인 것임이 충분히 고려되는 속에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평가와 비판은 현실적인 정당 제도의 지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당’과 최상의 규율을 담보하는 당의 변증법적 일치를 위한 중간물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현존하는 현실적인 정당 제도의 위에 놓인 ‘당’ 및 ‘당적 노력’을 순전히 부르주아 정치성에 매몰된 현상이라 단순화하는 것일 뿐인데, 이야말로 모든 현실적인 발판에의 경멸이며, 문제 해결과 동떨어져 있다.
민중 역량의 시련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파쇼적 탄압에서 정점에 당도했다. 2013년 11월 5일 박근혜 정권은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했고,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이 건을 인용함으로써 당은 강제 해산되었다. 당의 해산 이래 역량은 크게 분해되었으며, 그 후과는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다. 해산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당’이 만들어졌고 또 남아있는 ‘당’들이 각종 프로그램을 벌이고 있으나, 2008년 이래 민중 역량의 분해는 지속되고 있다.
우경 조합주의와 최소강령주의의 당적 구현은 한편으로는 그 반대의, 그러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기회주의인 전투적 조합주의를 추동하였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현재까지 대중에게 있어 아무런 정치적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채 내부 동력만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 아이러하게도, 조합주의의 원칙적 반대를 표명하는 교조주의자들의 유일한 자산이 이 전투적 조합주의이다. 정치투쟁의 뒤편에서 써클로 남아있는 교조주의 제 그룹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태에 관한 통일적이고 종합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분석을 경제주의의 가장 좌경적인 슬로건, 정형화된 주장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겉보기에만 계급 투쟁적인 수사만을 고장난 카세트 테이프마냥 끝없이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예컨대 교조주의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의존하는 산발적인 대공장 임금 투쟁에서 이들은 “이 투쟁은 전체 빈곤한 임노동자의 경제 투쟁 의지를 자극하여 지배계급을 압박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애석하게도, 1997년 공황 이래 대중적 주목을 받은 대부분의 임금 투쟁은 대공장 임금 투쟁이었는데, 이 대규모 노동조합의 경제 투쟁 자체 그리고 심지어 그 ‘성과’조차 빈곤 임노동자의 경제 투쟁 의지를 자극하기는커녕 주로 기성 대공장 임노동자 조직의 규모만을 확장했다. 이는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속에서 고착화하였다.
세계 자본주의의 현 국면, 특히 인공지능 첨단 산업 부문의 발전 속에서 노동 대중이 점차적으로 정체적 과잉인구화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강고한 조직력을 갖춘 노동조합이 적(籍)을 둔 고임금 작업장은 출신 성분상 노동계급 당파에 적대적이거나, 모호한 관점을 가질 중간계급 인자로 채워지고 있고, 이들로 무장한 대규모 노동조합의 보수화는─우경 조합주의, 부분 이해관계에의 천착, 전문가주의, 연대 원칙의 훼손─삽시간에 일어나고 있다. 이는 대공장 경제주의가 실질 임금의 전 국민적 상승에서 근본적인 한정성의 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희생에 빚지며 오늘날까지도 임노동자가 자본과 싸우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강고한 기지로 되어 있다는 것, 작업 현장에서 우경화를 막는 두터운 방파제로 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를 타개할 수 없다.
교조주의자들은 그 속에서도 소망의 재료를 발견하는데─바로 인공지능을 위시로 한 과학기술혁명이 다수 노동 대중을 빈곤자로 전락시켜 필연적으로 혁명전야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좋다─그러나 이 ‘해명’을 제출하는 교조주의자는 왜 1929년 대공황기에 급진화는커녕 파시즘 역병이 창궐했는지부터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개선을 통해 역량의 대중적 권위를 획득하는 데서 주동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노력 없이 떨어진 조건이 자신에게 자연히 복무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혁명은 하나의 급성적인 국면에서 완수되지 않는다. 그것의 전야(前夜)는 우리 노력의 결산으로서만 조성된다. 우리가 호기(好機)라고, 신심에 차 미숙하게 ‘진단’하는 국면이 실제로는 보수주의자들의 호기인 경우는 역사에서 참으로 다양한 실례로 확인할 수 있다─혁명은 장기적인 과정이자 과업이다.
역량의 진로에서 오류의 축적은 그 오류의 고유한 방식, 형식을 관습화하였다. 가장 중대한 것으로, 동구 사회주의의 대붕괴 이래 사회구성체 분석이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그 경과는 작게는 써클에서부터 크게는 소위 ‘대중 정당’까지 악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구성체론의 저발전은 역량을 매개 정치투쟁에서 우익의 악성 선동에 극도로 취약한 체질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대중을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을 사회개선에 있어 너무나도 빈번히 토의되는 농·공업 육성, 사회보장 사업의 확대, 세제 개선, 소상공인 보호책, 실업 해소 주거 개선, 지역 개발 등을 놓고 보더라도, 이는 경제주의적 수사나 아류적 행태로─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부르주아의 견해에서 왼쪽 깜빡이를 켜는 식─설득력을 지닐 수 없는 분야임이 명백하다. 이에 관한 개선책은 한국 자본주의의 체질을 통일적으로 고려한 것, 즉 확립된 사회구성체론에 입각한 분석을 통해서만 명징하게, 또 세밀하게 제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시기까지 소위 ‘대중 정당’이라 일컬어지는 정당 조직에서 이에 관한 심도있는 토의를 조금도 발견할 수 없다. 대중적 권위는 성립케 할 대중적 동의는 이 속에서 황무지로 남게 되며, 역량은 몰아치는 우경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디아마트〉는 실천적 경험을 통해 역량의 강화에서 이 관성과 오류들의 극복이 절실한 과제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 관성과 오류가 사회구성체의 구체 분석에 입각한 일반 노선의─이는 지적·도덕적 권위의 획득을 위한 모든 이데올로기적 지침을 포괄한다─구성 속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오직 이 속에서만 문명화된 폭력과 세련됨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과업의 취급에서 특히 〈디아마트〉는 청년의 정치적 관점을 급진화가 우리 활동성의 재생산을 포괄하는 정치투쟁의 기초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임을 절실히 느낀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세계에서 현존하는 역량은 청년에게 끊임없이 불어오는 우경화 광풍조차 막는 데서 우리는 연패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우리는, 매우 빈약한 자료와 견강부회만을 제시하며 청년 우경화의 실존마저 부정하는 그룹도 보았다. 이는 현실에서 소망을 찾지 않고, 소망으로 현실을 왜곡하려는 안일함의 표현인데, 이 안일함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결과만 낳을 뿐이다.
우리는 청년이 더는 시대에서 진보의 얼굴이 아님을 승인해야 한다─시대에서 진보의 얼굴은 부단히 변화하는 역량의 배치 구도 속에서 가지각색의 계층으로 대표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아직 청년이 역량에서 놓는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청년의 급진화는 다른 계층과 세대의 그것과는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직업적 활동가의 재생산, 역량의 보존과 확장, 정치투쟁에서 대중성 확보, 전술의 유동성을 허용하는 상황의 조성에서 배타적인 지위를 지닌다. 청년에게서 정치적 동의를 구하는 것, 청년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것, 청년에게 선전하는 것 등─그리하여 청년에게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 역량의 힘은 이것으로써만 회복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는 우리에게 또 주객-변증법적 난점을 시사한다: 청년을 급진화함이야말로 일정 정도의 역량의 힘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닌가? 청년을 급진화함은 청년에게 혁명 의식을 주입하는 일이고, 혁명 의식을 주입하는 것은 지성의 힘, 즉 비판의 무기이다. 지성의 힘의 양이 일정 정도에 이르러 감성적인 실천으로 옮겨갈 때 그것은 물질적 힘, 즉 무기의 비판으로 된다. 그런데 비판의 무기는 여하간 무기의 비판을 전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당장에 ‘혁명적’이라고 취급되는 지성을 외부에서 주입하려 한다면, 이 주입은 제일 먼저 무기의 비판으로 되어 있는 보수성의 벽에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이 전제로서 무기의 비판 또한 그것의 전제로서 비판의 무기를 자기의 전제로 지닌다.
이 반성의 단초적인 전제─이야말로 우리의 시급한 과제라 해야 할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의 세계사적 후퇴 속에서 전망의 부재는 하나의 보수적인 무기의 비판으로서, 단초적인 전제였다. 학교에서 민중 역량은 이 전제의 지양된 적의로서, 혁명적 부정으로서 단초적인 전제를 빚지 못하였다.
이 전제는 그 대타자인 전제에의 내재 비판으로. 즉 그 전제의 단순 섭취가 아니라 생명 과정으로서 포섭 속에서 형성·조직된다. 따라서 보수적인 무기의 비판의 전제가 동구 사회주의의 퇴락 속에서 형성된 것인 만큼, 민중 역량의 전제는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긍정적인 것을 발굴·분석하고 이를 한국 자본주의의 일국적 전망과 잇는 작업으로써만 형성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90년대의 뱃머리가 청산주의를 향하고 있던 탓에, 이 과업은 오랫동안 방기되었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무기의 비판의 전제는 경로-의존적이 되어, 현존하는 과제는 더욱더 고도로 난해한 것으로─선전과 선동의 기술적 차원까지 포괄하는─남아 있다.
우리는 또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한국에서 명확한 계급적 전망은 참으로 민족문제의 전망 속에서만 정초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민족 경제의 축성, 즉 축적·자본 투하·소비와 공급·산업 체질의 신식민주의적 예속으로부터 해방은 민족문제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민족문제의 본질은 대중의 감성적 이익과 참된 이익을 일치시키는 데서 주요 목표이자 수단이 될 대규모 사회개선 조치에서, 다시 말해 경제 혁명의 예비에서부터 주요 모순을 구성한다. 상호 배타적인 성질을 띠었던 계급적 이익이 조정 가능한 것으로 되는 사정도 이 민족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또는 비약적으로 풀 것인가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요컨대 그것은 근대의 벽두 이래 우리가 배타적 소유의 폐지에서 돌파해야 할 모든 계제에 걸쳐 실존한다.
현재 발 딛고 있는 억압적인 권력의 지배하에서 그것은 민중에게 유의미한 정치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 조치의 유효성과 한계를 규정한다. 예를 들어 먹거리 물가의 인하에 관해서만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 농산업의 육성과 그 육성의 토대를 황폐화하는 외래 제국주의 농업의 구축(驅逐)을 선행적으로 취급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개혁 조치가 실업의 어느 정도의 해소까지 고려해 두고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자본주의적 축적에서 민족 산업이 안정적 순환을 위한 재정적·금융적 토대에 관한 상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 상은 곧장 재정 기반과 금융적 토대의 자립에 관한 경제학적 상을 요구하는데, 특히 그것의 대규모의 국가독점적 조절 기제를 전제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GMK) 하에서 발전 순환 양식이 해명되어야만 한다.
혹자는 이것이 왜 민족문제에 속하는가 하며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그것들은 서로 이질적인 계급으로 실존하는 민족 성원의 다수를─따라서 그것은 민족과 다르지 않다─구성할 개개인의 경제적 생활과 이익에 엮여 있다는 점에서 민족의 이익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 민족문제는 예속적 독점자본과 민중 사이의 가장 첨예하며 완성된 형의 적대적 모순의 표현이다. 민족문제는, 현상적이며 즉자적으로 제기되는 ‘계급적 이익’─임금 투쟁을 매개로 한 이윤의 분배─과는 차원이 다른, 더 높은 것이다. 이 더 높은 것은 명백히 실질 임금의 인상에 관한 문제이나, 산발적인 임금 투쟁의 경과 속에서가 아니라 민족 경제라는 전체, 민족문제의 본질에서의 산업적 조정 속에서만 해명될 수 있는 문제이다. 외래 제국주의의 국내로의 정치·군사적 개입은 이를 빼놓고 해명될 수 없으며, 또한 그 외래 제국주의의 정치·군사적 개입은 이 분야에서 예속, 즉 국민경제의 신식민주의적 예속을 끊임없이 강화한다.
이에 관해 연구할 때 우리는 소비에트 경제학자 S. A. 븰리니야크(Bylinyak)가 지적한 대로, “일부 주변부 나라들의 가속화된 경제 발전과 심지어 일부 서구 나라들과 1인당 GNP의 균등화조차도 항상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주목한다면, “경제 발전이 독립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수반하기 위해서는 특정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는 방식의 변화”이고2, 이 변화에서 신식민주의 원리의 관철은 산업 연관의 불균형성과 비유기성3, 농업과 같은 경제적 안보 요소의 저발전4으로 표현된다. 이 파행적인 산업 순환에서 피해를 보는 제 계급은, 이 순환으로 하여 특혜를 입는 매판적-독점자본과 적대적 특질을 띠며 민중 범주로 결속될 수 있을 것이다. 븰리니야크는 또한 (1980년대에서) 한국의 경제사를 명시적으로 지목하며, 경제적 신식민주의 원리의 관철이, 초과 이윤을 용이하게 확보하기 위한 의도에서 제공되는, 제국주의 나라의 일정한 보조 없이는 성숙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5 또다른 소비에트 경제학자 N. A. 시모니야(Simoniya)는 아시아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선도적인 국가 독점 구조의 기원과 현재의 사회경제적 구조적 특징에 따라 하위 그룹”6을 나눌 때 두 번째 하위그룹에 속하는 집단─“지역 민간 기업(점차 독점 수준에 도달함), 강력한 국가 통제, 그리고 다국적 기업(TNC)의 대규모 참여가 결합되어 국가 독점 구조가 형성된 국가 및 지역”으로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한국”을 실례로 든다.7 그에 의하면 이 두 번째 하위그룹은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으나, “전체 경제 구조가 세계 제국주의 경제 체제에 매우 긴밀하게,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통합 과정의 연속성은 민족 독립적인 경제 구조가 확립되는 단계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나라의 경제는 “식민지적 통합 국면(phase of colonial synthesis)을 거쳐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자본의 국제화 국면(phase of internationalization of capital)으로 직접 나아가”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기원에 내재한 종속과 예속의 제 요소는 이후의 발전과정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8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한국에서 계급의 이익과 민족의 이익의 객관적-변증법적 일치가, 매판적-독점자본에의 적대적 특질을 띠면서 실존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식민주의적 예속에서 임노동자를 포함하는 민족 성원의 다수, 즉 산업의 민족적이고 유기적인 연관에 이해관계를 지니는 도시 소생산자, 농민, 지식인, 심지어 소자본가의 이익의 보장이 오직 노동계급 당파의 주체 역량으로써 시책이 될 수 있음을 정치적 경험으로 창출할 때 비로소 계급적 당파는 본질적인 혁명─경제 혁명을 추진할 물질적 힘을 창조해낼 지성적 역량을 가진 계급적 당파로 이행한다. 그 경우 정치적 경험이란 예속성이 (신)식민지 일국 또는 반(半)국민국가를 매개로 하여 작용하는 전 민족의 족쇄임을, 그리고 그 예속성을 해리(解離)하는 것과 이익의 보장이 일치함을 생동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디아마트〉는 민족의 이익을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계급적 이익과 반대되는 것”으로, “민족주의적 편향”에 속하는 것으로 놓는 모든 시도에 전적으로 반대한다. 정치적 동의의 동토에서 그 동의를 전취하기 위한 모든 정치적 경험을 창출하는 행위에서 별미는 모두 민족문제에 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민족문제의 온전한 취급만이 역량을 무한히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민족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대외적 요소로서 민족 주권을 수호하는 각 자주적인 민족 정권과의 관계, 민족 주권을 유린하는 제국주의 국가와의 관계 문제가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 문건은 역량 전반에서 사회구성체론 재장전을 꾀하고, 역량 유지·강화에서 일반 노선의 구성이 어떠한 긴요함을 가지는지를 총 15부 59장의 주제화를 통해 논구하고 노선을 규정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특히 문건에서 세분화된 매 주제의 선정과 배치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특히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과업에 집중되어 있다. 이 문건은 한국 자본주의의 일국적 특질, 즉 한 나라의 사회구성체와 지배계급, 주체 요소에 관한 물음을 다루며, 특히 소비에트의 신식민주의론의 실제와 변천을 종합하고 한국 자본주의에서 신식민주의 원리의 역사-논리적 작동 메커니즘을 논구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경제 혁명에 있어 역량이 당면한 목표를 제시한다. 목표는 현존하는 사회구성체의 교체에의 성격을 규명하며, 이에 따르는, 또 수반되는 조직화, 전략·전술, 특히 전술에서 선전·선동과 지적·도덕적 권위의 물음을 취급한다. 한편으로 목표 구현에 있어 대외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문헌은 국내의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리고 국제 연대를 통해서 성장할 반군국주의 투쟁의 진로를 모색하며, 민족통일에서 제기되는 주요 범주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각국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이 분석을 통해 문건은 국제무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 투쟁 속에서 역량이 취해야 할 관점을 제시한다.
2026년 8월 8일
- K. Marx, „Zur Kritik der Hegeischen Rechtsphilosophie“, MEW, Bd. 1, Berlin: Dietz-Verlag, 1981, 385.

- S. A. Bylinyak, „Ekonomicheskiy neokolonializm“, Mirovoe kapitalisticheskoe khozyaystvo i razvivayushchiyesya stran' Vostoka, Moskva: Nauka, 1986, 8.

- 예컨대 다국적 기업과의 계약은 “대개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전략에 부합할 때에만 성사”되며, “그에 반해 해당 국가 차원에서 추진되는 사업의 대부분은 난관에 봉착”한다. “이것이 바로 산업 수출 가공 지역의 계획과 실제 운영의 결과”인데, 직접 지배 없이, “수출 지역의 존립 가능성이 다국적 기업의 계획에 달려 있”게 됨으로써 산업간 유기적 연관에 균열이 야기되는 이 분업 체제를 그는 “신식민주의 분업”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자본주의 중심부가 가장 효율적인 생산 형태에 노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 체제이다.” (Ibid., 16.)

- Ibid., 22-4.

- “예를 들어, 한국이 수출 지향 경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 동맹국인 미국의 지원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동남아시아와 극동 지역 국가들을 포함하는 태평양 공동체 창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이 지역에는 주변부 수출 산업 생산의 주요 중심지가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계획에는 이 지역을 국제 자본주의 분업 체계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Ibid., 19.)

- N. A. Simoniya, Destiny of Capitalism in the Orient, Moskva: Progress Publishers, 1985, 238.

- Ibid., 239.

- Ib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