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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아담 스미스의 귀납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연역: 경제학에의 로크적 및 스피노자적 관점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추상과 구체의 변증법: 제3장 (5) 총명한 유물론 3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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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스미스의 귀납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연역:

경제학에의 로크적 및 스피노자적 관점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논리적 충돌은 그것과 동시대 철학 사이의 실제적 연관을 수립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다. 영국 경제학자들이 경험적 사실을 의식적으로 파악할 때 사용한 범주들은 당대에 통용되던 철학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영국 경제사상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친 특징적 사실 하나는, 경제학의 최초 이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존 로크였다는 점이다. 로크는 철학에서 경험론의 고전적 대표자였다.

“로크의 견해가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봉건 사회에 맞선 부르주아 사회의 권리 관념의 고전적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은 이후 영국 경제학 전체의 모든 관념의 토대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1

로크의 견해는 영국 경험론 철학(그것의 모든 약점과 함께)과 새롭게 형성된 부에 관한 이론 사이의 매개 고리임이 드러났다. 로크를 통해 경제학은 경험론의 기본적인 방법론적 원칙들, 특히 일면적인 분석적 및 귀납적 방법, 복잡한 현상을 그것의 기본 구성 요소로 환원하는 관점을 흡수했다.

 

그러나 당시 자연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로크 자신에게 있어서조차 경제 현상 연구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 방식은 일관된 경험론이 제시하고 권장했던 그러한 인식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론 경제학자들이 대상의 이론적 규정을 형성하기 위해 실제로 사용한 방법은 그들의 일면적인 인식론적 환상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귀납 논리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론가들은 의식적으로 일면적인 분석 방법을 적용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한 채, 협소한 경험적 접근 원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다수의 이론적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순수 경험론의 논리는 경제적 현실의 현상에 대한 이론적 견해를 전개하는 과제를 감당할 수 없었다. 실제 경제 현실이 부르주아-자본주의적 소유 형태와 봉건적 소유 형태의 복잡한 얽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건에서 경험적 사실에의 직접적인 귀납적 일반화는, 기껏해야, 단순히 서로 다른 것이 아닌 양극적 대립이자 적대하는 두 소유 원리의 상호작용 결과에 대한 정확한 기술만을 낳았을 뿐이다. 로크의 경험-연역적 방법으로는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내적 ‘생리’로 깊이 파고들 수 없었을 것이다.

 

로크 자신이 단순히 본 것을 일반화한 것이 아니라 경험적 사실 속에서 그의 견해에 따라 인간의 영원하고 참된 본성에 상응하는 형태와 계기만을 능동적으로 선별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기본 구성 요소의 추상적-분석적 추출이라는 그 과제, 즉 경험적 사실을 분석하는 과제 자체에서도 특정한 보편적 기준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기준에 따라 어떤 경제 형태는 ‘참된 것’, ‘인간 본성과 합치하는 것’으로 서술되고, 반면 다른 경제 형태는 ‘참되지 않은 것’으로서 소거된다. 부르주아 개인주의적 ‘인간성’ 개념이 모든 부르주아 이론가에게 그러한 기준으로서 사용되었다. 로크는 이러한 견해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다.

 

경험적 사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된 이 부르주아적 과학의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리는 원자 개념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귀납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 로크 시대에 자본주의적 소유 형태는 결코 보편적이고 지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보편적인 사실이 아니었으며, 부르주아 경제학의 출발점인 부의 개념 자체도 소유의 모든 특수한 사례와 종류를 예외 없이 귀납적으로 일반화하여 형성될 수 없었다.

 

그것은 순수 논리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고찰의 도움으로 형성되었다. 자생적인 사회적 동기(spontaneous social reason)는 여기서도 추론적, 오성적 논리의 준칙보다 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경제학은 그 탄생에서부터 뉴턴이 자기 분야에서 직면한, 동일한 논리적 문제에 부딪혔다: 단 하나의 귀납적 일반화를 행하기 위해서조차, 경제학자는 고찰 대상인 현상의 보편적이고도 참된 본성(실체)에 관해 적어도 암묵적인, 약간의 개념을 갖고 있어야 했다.

 

뉴턴이 오직 기하학적으로 규정 가능한 사실의 형태만이 유일하게 객관적인 형태라는 관념 위에서 자신의 모든 귀납을 기초 지었듯이, 경제학자들은 오직 부르주아 사적 소유의 원리에 상응하는 경제 형태만이 참된 형태라고 조용히 전제했다.

 

다른 모든 경제적 관계 형태는 인간의 주관적 오류로서, 인간의 참되고 자연적이며, 따라서 객관적인 본성에 상응하지 않는 형태로서 조용히 제거되었다. 오직 인간의 ‘영원한 본성’실제로는 사적 소유자, 부르주아지의 특수한 본성의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귀결인 사실의 규정만이 이론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모든 이론가는 전적으로 명백한 보편적 기본 원리, 즉 경제의 특수한 사례와 형태의 실체이자 일반적 객관적 본성에 관한 명확한 개념에서 출발해야 했으며 실제로 출발했다.

 

이 실체 개념은 자연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귀납에서는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로크의 인식론은 바로 이 지점실체의 인식 방법, 과학의 보편적인 근원적 토대를 형성하는 방법의 문제에서 침묵했다. 이 토대, 즉 부의 실체에 관한 개념은 경제학자들(로크를 포함하여)이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 없이 순전히 자생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했다.

 

하여간 영국 경제학은 이 난점을, 윌리엄 페티가 경제 현상의 보편적 실체, 부의 실체를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에서, 자유 시장에서 노동 생산물을 양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에서 발견했을 때, 실천적으로 해결했다.

 

경제학자들이 실제로 부의 보편적 실체에 관해 다소간 명확한 개념에서 출발하는 한에서, 그들의 일반화는 이론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어떤 상인, 고리대금업자, 시장 아낙네에 대한 순수 경험적 일반화와 구별되었다.

 

그러나 이는 대상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서로 다른 특수한 부의 형태를 하나의 동일한 보편적 실체의 변형으로 이해하려는 열망과 일치했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이 그 의식적인 방법론적 신념에서 로크의 철학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매우 교훈적인 형태로 그 영향이 드러났다. 그 결과, 사실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경험적 개념의 단순한 무비판적 재생산과 끊임없이 뒤얽히게 되었다.

 

이는 아담 스미스의 저작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노동 개념을 모든 경제 현상의 보편적 실체로 명확히 표현한 첫 번째 경제학자인 그는 가치 생산과 축적에 강제로 관여된 인간의 관점에서 사실에 대한 적절한 이론적 고찰이 경험 자료에의 지극히 비이론적인 기술(untheoretical descriptions)과 끊임없이 뒤섞인 이론을 전개했다.

“스미스 자신은 대단한 순진함을 가지고 끊임없는 모순 속에서 움직인다. 한편으로 그는 경제적 범주 사이에 존재하는 내적 연관 혹은 부르주아 경제 체계의 모호한 구조를 추적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동시에 경쟁 현상에서 나타나는 바대로, 따라서 그것이 비과학적 관찰자에게, 즉 실제로 부르주아적 생산 과정에 관여하고 이해관계를 갖는 바로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그대로 서술한다. 두 파악방식 중 하나는 부르주아 체계의 내적 연관, 말하자면, 그 생리를 꿰뚫어 보는 데 반해, 다른 하나는 생활의 외적 현상을 그것이 보이고 나타나는 그대로 취하여 단지 기술하고, 목록을 만들고, 열거하며, 형식적 규정 아래에 그것을 배열할 뿐이다. 스미스에게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즐거이 나란히 달릴 뿐만 아니라 서로 뒤섞이며 끊임없이 모순된다.”2

스미스 자신은 물론 추상 속에서 실재를 반영하는 두 방식 사이의 모순을 알아채지 못했다. 인식 과정을 순수하게 로크적 방식으로 그려내는 과학자를 여기서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이론적 추상(개념)과 단순한 경험적 추상, 즉 감각적으로 규정된 유사점과 차이점을 언어로 단순히 표현하는 것 사이의 구별을 무시하는 것은 로크의 인식론이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데이비드 리카도는 아담 스미스보다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 걸음의 철학적-역사적 의의는 무엇보다도 경험 자료에 대한 올바른 이론적 고찰의 과제(개념 속에서 이 자료를 표현해내는 과제); 그리고 현상을 직관과 표상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형태로 단순히 기술하고 목록을 만드는 과제를 의식적이고 일관되게 구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다.

 

리카도는 과학(개념 속에서의 사유)이 단순한 관조 및 관념과 동일한 경험적 사실을 다룬다는 것을 매우 잘 이해했다. 그러나 과학에서 이 사실은 더 높은 관점에서그것의 내적 연관의 관점고찰되어야 한다. 이 요구는 스미스에게서 일관되고 고집스럽게 충족되지 않았던 반면 리카도는 그것을 엄격하게 고집했다.

 

과학적 탐구의 본성에 관한 리카도의 견해는 경험주의자 로크의 인식론보다 스피노자의 방법론을 더 연상시킨다; 그는 지속적으로 실체적 관점을 고수한다. [그에게 있어] 모든 개별적 경제 형태, 부의 개별적 형태는 단순히 기술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의 동일한 보편적 실체의 변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도 리카르도와 스피노자는 옳고, 스미스와 로크는 틀렸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이론의 발전에서 리카도의 역할을 모범적인 명확함과 명쾌함으로 평가했다: “ 리카도가 나서서 과학에 외친다: 멈춰라! 부르주아 체계의 생리학의그것의 내적인 유기적 연관과 생명과정의 이해를 위한토대, 출발점은 노동시간에 의한 가치의 규정이다. 리카도는 여기서 출발하여, 과학으로 하여금 판에 박힌 틀에서 벗어나, 과학에 의해 전개되고 기술된 다른 범주들생산과 상업의 관계들이 이 토대, 출발점에 어느 정도로 조응하고 혹은 모순되는지 해명할 것을 강요한다; 실제로는 과정의 표현 형태만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데 불과한 과학이, 그러므로 이 표현 형태 그 자체가, 부르주아 사회의 내적 연관, 실질적 생리학이 의거하고 있는 토대 혹은 그것의 출발점을 형성하는 토대와 어느 정도까지 조응하는지를 해명할 것을; 그리고 일반적으로, 체계의 외관상의 운동과 실제적 운동 사이의 모순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검토할 것을 강요한다. 이것이 바로 리카도가 과학에 대하여 갖는 위대한 역사적 의의이다.”3

 

다시 말해, 리카도의 견해는 복잡한 현상을 그것 다수의 기본 구성 요소로 환원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복잡한 현상을 하나의 단순한 실체로부터 연역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리카도로 하여금 로크적 논리학이 과학에 권고하는 이론적 추상을 형성하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포기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경험적 귀납은 리카도가 직면한 과제, 엄밀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원리노동에 의해 규정되는 가치의 본성에 관한 개념로부터 이론적 규정을 연역해내는 과제에 조응하지 않았다.

 

아담 스미스는, 그가 사실의 단순한 묘사 이상의 의미 있는 무언가를 실제로 생산하는 한에서, 로크로부터 빌려온 자신의 철학적 전제와 자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걸음마다 모순되었으며, 자신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을 행하고 있었다. 반면 리카도는 범주의 이론적 연역이라는 경로를 상당히 의식적으로 선택했다.

 

그의 추론이 갖는 엄밀하게 연역적인 성격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속담처럼 회자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연역의 의의를 올바르게 평가한 것은 오직 마르크스뿐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리카도의 이론적 접근이 갖는 최대의 장점부르주아적 부의 모든 형태를 예외 없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의 다소간 복잡하고 먼 산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경제학의 모든 범주를 가치 범주의 변형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표현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스미스로부터 구별되는 것은, 그에게는 경험적 사실을 기본 개념의 정의 속에 엄밀하게 정식화된 하나의 동일한 관점에서즉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일관되게 그리고 동요 없이 바라보려는 열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입장은 스미스에게도 존재하며, 바로 그것이 그를 이론가로 만든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이 유일한 관점은 아니며, 바로 이 점에서 리카도는 스미스와 결정적으로 갈라선다. 스미스에게서 사실에 대한 이론적 고찰(즉,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사실을 분석하는 것)은 너무나 자주 그것에의 순전한 경험적인 묘사에 자리를 내어준다.

 

리카도는 사실에 대한 이론적 분석의 본성에 관한 올바른 견해를, 자생적으로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발견했다. 그리하여 현상과 범주에 대한 엄밀하게 연역적인 고찰을 향한 그의 열망이 비롯되었다.

 

이러한 연역 개념은, 쉽게 알 수 있듯이, 아직 형이상학적인 것도, 관념론적인 것도, 형식 논리적인 것도 포함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념에서 연역은 사실에 대한 절충주의의 부정과 다름없다. 그것은 모든 특수하고 개별적인 현상의 보편적 본성 혹은 실체에 관한 개념이, 일단 확립되고 나면, 탐구 전체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되어야 하며, 어떤 특수하거나 개별적인 현상의 이해에도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해석에서의(그리고 오직 이러한 해석에서만의) 연역은 경험적 사실에 대한 참으로 이론적인 태도와 동의어이다.

 

리카도 경제학파의 쇠퇴에 대한 첫 번째 형식적 징후는 하나의 확립된 원리(노동가치론)로부터 경제적 범주의 전체 체계를 전개하려는 시도의 포기였다. '속류 경제학'의 대표자들, 그리고 마르크스가 이론의 강단적 퇴락 형태라고 경멸적으로 낙인찍은 잡동사니 편집물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스승의 연역적 탐구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이론가로서 리카도의 주된 미덕각각의 특수한 범주를 가치의 변형 형태로서, 상품을 창조하는 노동의 복잡한 변형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던 바로 그것을 거부했다.

 

속류적이고 강단적인 이론화 형태의 원리는 이러하였다: 만약 모든 실제적 현상에 공통된 하나의 토대(이 경우 노동가치론)로부터 실제적 현상에 대한 개념을 연역하는 것이, 즉각 모순에 봉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면, 그 시도 자체를 일반적으로 포기해야 하며, 또 하나의 설명 원리, 또 하나의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세 번째, 네 번째 원리를 도입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고려하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현실적 시장 가치(가격)를 그 생산에 지출된 필요 [노동] 시간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가정하자. 그것은 단지 일면성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리카도가 믿었던 것이가치가 하나의 단일한 보편적 원천에서 온다고 가정하는 것아니라, 여러 상이한 원천에서 온다고 가정하면 어떤가? 노동에서도 오지만, 오직 노동에서만은 아니다. 자본의 역할도, 토지의 자연적 비옥도의 역할도 과소평가해서는 된다; 유행의 변덕, 수요의 우연성, 계절 영향(방한 장화는 겨울에 여름보다 비싸다), 그리고 작황에 의심의 여지가 없이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곡물과 빵의 가격(‘가치’)에 확실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태양 흑점 수의 주기적 변화가 시장 상황에 끼치는 영향까지를 포함하여 수많은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속류적이고 강단적인 사이비 이론에서 특징적인 이론화 방식을 비판할 때보다 더 신랄했던 적은 없었다. 복잡한 현상을 그것들 사이에 아무런 내적 연관도 없는 다수의 요인과 원리로 설명하는 이 절충주의적 방식은, 마르크스의 적확한 표현에 따르면, 과학의 진정한 무덤이다. 여기에는 더는 이론도, 과학도, 개념적 사유도 없으며, 오직 널리 퍼진 피상적 관념을 경제학 용어의 교조적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것만이 남을 뿐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공인된 과학 전체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존 M. 케인스는, 이제 가치 일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 가치란 공허한 단어,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가 유일한 현실로 인정하는 것은 시장가격(market price)이다. 시장가격은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장 다양한 사정과 요인의 경합으로 규정되며, 여기서 노동은 극히 미미한 역할만 수행한다. 케인스는 예컨대 이자율이 전적으로 자본 소유자들의 기분에 의존하며, 따라서 순전히 심리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이자율은 고도로 심리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고도로 인습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는 편이 아마도 더 정확할 것이다.”4 케인스에 따르면 “불황과 공황은 자생적 낙관의 섬세한 균형이 교란된 데 따른 단순한 결과에 불과하다. 투자 전망을 평가함에서 우리는, 투자가 대부분 의존하는 바로 그 사람들의 신경과 히스테리, 나아가 소화 상태와 날씨에 대한 반응까지도 고려해야 한다.”5

 

당연히 여기에 이론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속류 경제학이 대중적이고 피상적인 관념을 교조적 언어로 번역하면서 개념을 정교화한다고 자처한 데 반해, 현대 부르주아 과학은 자본가의 비합리적 감정들을 스콜라적 표현으로 치장하여 개념으로 둔갑시킨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듯, 그들의 한계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그 정점이었던 리카도 이후 퇴락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퇴락은 물론 거창한 미사여구와 냉철하고 귀납적이며 경험적인 사실 연구에의 호소 등으로 위장된다. 리카도의 연역적 방법에 자신들의 귀납을 대립시킴으로써, 몰락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대변인들은 엄밀한 이론에 맞서 절충주의를 옹호할 뿐이다.

 

모든 범주를 예외 없이 노동가치론의 일관된 입장에서 파악하려는 리카도의 열망은 이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알 수 있듯이, 이 입장은 그 발전 경향을 고려하면 부르주아 경제 체계를 해결 불가능한 적대와 모순의 체계로 파악하는 관점에 필연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리카도와 그의 연역적 방법에 대한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 있는 동력은 다름 아닌 현실에 대한 변호론적 태도이다.

 

따라서 리카도가 경험적 사실을 고찰하는 데에서 연역적 방법을 선택한 것은 합리주의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가 이론적 규정을 전개하는 이 방법을 적용하는 까닭은, 오직 이 방법만이 부르주아 경제의 체계를 다소간 우연적인 인간과 사물의 관계의 총체가 아니라 그 모든 현상에서 정합적인, 하나의 통합적 체계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생산과 부의 분배의 모든 특수하고 개별적인 형태를, 모든 경제적 현상의 보편적 실체이자 현실적 본질을 표현하는 이론인 노동가치론으로부터 연역해내고자 한다.

 

리카도의 이 열망은 이론가로서 그의 절대적 공적이다. 이 열망의 포기는 일반적으로 경험적 사실에 대한 이론적 태도 자체의 포기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다음을 알 수 있다: 현실의 일반적, 이론적 표현으로부터, 엄밀하게 검증된 기본 원리로부터 출발하는 추론 방법이야말로 경험적 사실에 대한 이론적 태도를 보장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유는 필연적으로 절충적 경험주의로 전락한다.

 

리카도는 결코 연구에서 경험적 요소를 배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실에 대한 진정한 이해, 참된 (절충적이지 않은) 경험주의는, 경험적 사실을 자의적 관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일하게 올바르고 객관적인 것으로 논증된 관점에서 고찰할 때에만 관철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사태의 논리에 자생적으로 복종하면서 리카도는 마르크스가 나중에 의식적으로 선택한 이론의 출발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리카도가 현실과 그것을 개념적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이러한 견해에 순전히 자생적인 방식으로 도달했다는 사실, 현실 속에서 그가 다루어야 했던 보편·특수·개별의 변증법에 대한 명확한 관념 없이 도달했다는 사실은, 그의 이론에 각인을 남겼다.

 

그가 활용할 수 있었던 의식적인 철학적 개념연역과 귀납의 관계, 보편과 특수의 관계, 본질과 현상의 관계 등에 관한 것은 그가 실제로 수행한 인식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그의 탐구에 중대한 작용을 하였으며, 일부 경우에는 그의 탐색이 실패한 데 대해 직접적 책임이 있었다.

 

리카도가 실제로 행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형이상학적 논리학이 해석하는 의미로서의 연역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하나의 개념에서 다른 개념을 사변적으로 연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수중에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경험적 사실, 경험적 현상을 그 내적 통일 속에서 이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렇듯 이 방법은 경험적 귀납을 포함한다. 그러나 귀납과 연역이 그의 방법 속에서 순전히 자생적인 방식으로 합치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흠이 없게 해주지는 않는다. 사실을 연구하는 자신의 방법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는 대목에서 그는 연역과 귀납, 보편과 특수의 관계, 법칙과 그 현현 형태의 관계 등에 관한 당대의 통념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논리학의 범주, 그리고 현실을 사유 속에서 재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형이상학적 개념은 이론가로서의 그를 직접적으로 방향 상실에 빠뜨린다.

 

이를 더 분명히 보이기 위해 리카도의 추론 과정을 분석해 보자. 그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는 노동시간의 양을 통한 가치 규정을 자기 체계의 보편적 기본 원리로서 간주하면서 그 원리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다음, 이 보편적 기본 원리를 각각의 특수한 범주에 직접적으로, 매개 없이 적용하여, 그것들이 이 보편적 기본 원리에 합치하는지 아닌지를 점검하고자 시도한다.

 

그는 어디서나 경제적 범주들과 가치법칙의 직접적 일치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대의 형이상학적 논리학과 철학의 정신에 따라 리카도는, 그의 연역의 토대가 되는 보편 규정에 있어 직접적 유(類)개념, 즉 자체 내에 그것을 통해 이해된 모든 현상에 직접적으로 공통된 특징을 포함하고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 추상적 보편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가치 개념과 화폐, 이윤, 지대, 임금, 이자 등의 개념 사이의 관계는 그에게 개념 사이의 유-종 관계로 나타났다. 보편·특수·개별의 관계에 관한 형이상학적 관념에 기초한 이 구상에 따르면, 가치 개념은 화폐, 이윤, 지대 그리고 여타 범주들에 동일하게 공통된 특징만을 포함해야 한다. 같은 정신에서 그는, 어떤 특수 범주도 보편적 개념의 규정 속에 표현된 특성으로 소진되지 않으며, 각각의 특수 범주는 보편 규정 외에 바로 그 개별 범주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추가적 특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어떤 범주를 일반 원리 또는 보편 개념(이 경우 가치 개념)의 규정 아래로 포섭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조작은 보편 개념의 규정 속에 이미 표현되어 있는 것을 해당 특수 범주 안에서 보여줄 뿐이다. 그 다음에는 보편 개념의 규정 이상으로 그 범주 안에 어떤 규정이 현존하는지공통적이고 동일한 특성이 아니라 구별되는 특성을 표현하는 규정를 찾아내야 한다.

 

이 논리적 구상이 경제학의 범주에 적용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화폐는, 다른 모든 범주와 마찬가지로, 가치의 특수한 형태이다. 따라서 현실의 화폐는 그 운동에서 무엇보다 가치법칙에 복종한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은 화폐에 직접 적용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가치 개념에 포함된 규정이 무엇보다 화폐의 이론적 규정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화폐의 첫 번째 규정은 이렇게 연역된다.

 

그러나 이것이 화폐의 구체적 본성을 다 담아내지는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자연히 다음과 같은 물음이 생겨난다. 화폐로서의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가 다른 모든 종류의 가치와 동종의 가치라는 사실 이상의 화폐란 무엇인가, 왜 화폐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화폐인가.

 

화폐의 본성을 연구하고 개별적 경제 현상으로서 화폐에 대한 필연적인 이론적 규정을 형성하는 이 지점에서, 모든 연역은 자연히 멈추게 된다. 연역이 허용한 것은 오직, 가치 개념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화폐 본성의 규정을 식별해 내는 것뿐이었다.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화폐 유통의 실제 경험적 현상 속에서, 가치 개념으로부터 연역된 규정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화폐의 속성을 표현하는 이론적 규정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현실의 화폐에서, 보편적 가치 규정 못지않게 필연적으로 화폐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가치의 다른 모든 존재 형태로부터 화폐를 구별해 주는 성질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이 지점에서 연역은 불가능해진다. 귀납에 의거해야 하는데, 귀납의 목표는 화폐 운동의 모든 사례에 동일하게 내재하는 규정화폐에 고유한 일반적인 속성을 추출하는 것이다.

 

리카도가 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직접적-경험적 귀납을 통해, 즉 화폐 유통의 모든 현상이 예외 없이 공유하는 추상적 일반 속성들을 추출함으로써 화폐 형태에 대한 추가적인 이론적 규정들을 구성한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화폐금속 주화, 금괴, 지폐 등가 동시에 유통되는 화폐시장의 현상을 직접 일반화한다. 그는 금속 주화, 지폐, 금·은괴, 은행 증서, 약속어음 등에 공통된 특성을 찾는다. 이것이 그의 화폐 이론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 노선을 따르면서 리카도는 화폐 그 자체로서의 이론적 규정을 화폐가 실제로 자본에 빚지고 있는 속성과 혼동한다. 화폐 속 자본의 특수한 운동은 화폐 유통 자체의 현상과 아무런 공통점도 갖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는 금융자본의 운동 법칙을 화폐의 운동 법칙으로 간주하며, 역으로금융자본의 법칙을 금속 주화의 단순 유통 법칙으로 환원한다. 화폐 그 자체, 특수한 경제 현상으로서의 화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론적으로 파악되지 않았으며, 아니 오히려 그릇되게 파악되었다.

 

리카도 자신도 이 방법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불가피하게 의존해야 했던 순수 경험적 귀납이 그 본성상 화폐의 본성에 관한 필연적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으며 도출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자각은 결코 순수한 논리적 고려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은행 경영자들 및 금융가들과 부단한 논쟁을 벌였다. 그가 보기에 이들은 화폐를 그 가치적 본성에 부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모순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다. 리카도는 이를 화폐 유통 영역에서 발생하는 온갖 유해한 마찰과 기능 교란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로 하여금 화폐의 진정한 본질과 본성을 파고들도록 추동한 것은 어떤 철학적 논리적 관심이 아니었다.

 

경험적으로 주어진 화폐 유통의 모습은 화폐의 진정한 본성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것화폐의 본성에 조응하지 않는 화폐의 취급, 은행에 의한 화폐의 잘못된 취급의 결과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리카도 자신이 매우 분명히 이해한 바대로, 순수 경험적 귀납은 기껏해야 화폐의 참되지 않은, 화폐의 본성에 조응하지 않는 운동의 일반화된 표현만을 산출할 뿐이며, 화폐의 존재 법칙에 조응하는 화폐 운동의 일반화된 표현을 결코 산출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가치라는 일반 법칙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화답하며, (경험적 현실에서와 같이) 은행장들의 악의, 탐욕, 변덕에 의존하지 않는 화폐(금, 주화, 지폐, 증서 등) 운동 류의 이론적 표현을 찾고자 한다. 그는 실천적 금융가가 과거에 행동해 왔던 방식과는 다르게즉 화폐의 본성에서 연원하는 필요에 부합하게행동해야 한다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화폐의 진정한 본성을 탐색한다.

 

그는 가치법칙으로부터 화폐의 이론적 규정들을 연역함으로써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왜냐하면, 오직 가치법칙만이 화폐의 본성 자체에 포함된 필연적 성질들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화폐 그 자체의 고유한 특징, 즉 가치라는 일반 법칙의 이론적 규정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채 특수한 종류의 가치로서 화폐의 특수성을 구성하는 그러한 특징을 연역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정교한 절차도 가치 규정으로부터 화폐의 특수한 속성을 연역해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싫든 좋든 간에 그것은 이론의 보편 원리로부터의 연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경험적 귀납을 통해서, 즉 금속 주화, 지폐, 국가 은행권,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예외 없이 화폐 유통의 모든 형태로부터 추상적 보편을 추출함으로써 획득되어야 한다.

 

이로써 화폐에 관한 관념은 리카도 학파 이론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리카도의 연역은 실제로 순전히 형식적인 것으로 남아, 이미 보편 개념 규정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만을 현상 속에서 추출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귀납은 이론적이지 않고 순수 경험적이고 형식적인 것으로 남는다; 형식적 귀납은, 현상의 본성과 무연고한 외적 상황의 영향을 통해 현상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현상의 본성에 결속되어 현상에 필연적으로 귀속하는 그러한 측면을 현상으로부터 추상해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리카도 체계 내 연역의 형식적 본성(formal nature)은 그가 이윤이나 잉여가치와 같은 현상을 가치법칙의 영역 안에 포함하려 할 때 한층 더 명백해졌다.

 

가치의 보편 범주에 이윤을 포함시키면서, 리카도는 다음과 같은 역설과 마주했다: 한편으로 이윤은 가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윤은 이미 확립된 보편 규정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만약 가치 범주를 통해 바로 이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할 경우 그것은 일반 법칙과 모순되는 것으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격언을 특정한 카이우스에게 적용해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격언이 진정 그에게 적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개별적 고유성으로서 그것이 다름 아닌 그가 불사인 점을 목도하는 가정적 상황과 다소 유사하다.

 

리카도가 가치법칙으로부터 이윤의 이론적 규정을 연역하려고 했을 때, 즉 그가 가치법칙을 직접적으로 이윤에 적용하려고 했을 때 그가 발견한 것이 바로 그러한 종류의 부조리한 상황이었다. 물론, 리카도 본인은 그 자신이 이 모순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곧바로 노동가치론의 적대자들, 특히 맬서스에 의해 인지되었다.

 

리카르도의 추종자들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는데, 즉 그의 체계에 존재하는 이러한 모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단지 스승의 모호한 표현이나 용어의 불충분성 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용어의 변경, 보다 정밀한 정의 및 표현 등을 통해 순전히 형식적인 수단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리카도 학파 쇠퇴의 시작을 의미했으며, 노동가치론의 원리에 대한 형식적 동의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를 의미했다. 리카도 이론에서 확립된 평균이윤율 법칙과 보편적 가치법칙 사이의 논리적 모순은 지극히 실재적인 모순이고,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 모호한 표현과 부정확한 규정의 산물로 제시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이론의 바로 그 본질, 합리적 핵심을 사실상 기각해 버리는 결과 외에는 아무것도 낳을 수 없었다.

 

리카도 학파 쇠퇴의 첫 번째이자 주요한 징후는 경제적 범주들의 전체 체계를 하나의 보편 원리, 노동시간의 양에 의해 가치를 규정하는 원리,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을 모든 다른 부의 형태의 실재하는 실체이자 원천으로 파악하는 개념으로부터 전개하고자 하는 목표를 사실상 폐기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리카도 이후의 이론 발전은, 일반 법칙과 그것이 실현되는 발전된 형태, 특수자 사이 관계의 변증법을 확고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로 바로 이어졌다. 리카도 이론의 발전은 이론적 탐구 대상에 대한 제 규정의 본질 그 자체 속에 있는 모순의 문제로 넘어갔다. 리카도 자신도 그의 정통적 추종자들도, 현실의 실제적 변증법이 그것을 통해 사유에 자신을 드러낸 바로 그 난관에 대처할 수 없었다. 그들의 추론은 근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남았으며,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관계, 보편·특수·개별의 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를 포함한 자기 자신의 기초적인 논리적 관념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당연히 변증법을 개념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물에 내재하는 모순, 변증법을 개념으로 의식적으로 표현할 수 없음과 표현하려 하지 않음은 추론 속에서 이론 내부의 명백한 논리적 모순으로 나타났다. 형이상학은 일반적으로 오직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는 단 하나의 방법만을 알고 있는데, 이는 모순을 논증으로부터 제거하는 것; 모순을 표현이나 규정 등 모호함의 산물로서 순전히 주관적인 해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리카도는 사실과 그 이론적 표현에 자생적으로 올바른 방식에서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는 형이상학적 추론 방식의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연역은 그에게 여전히 특수한 현상 안에서 대전제, 원래의 보편 개념과 그 규정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만 볼 수 있게 해주는 개념 전개의 방법이었다. 반면 귀납은 이로써 일면적으로 경험적인 것만을 포함한다. 귀납은 현상에 필연적으로 속하는 제 특성을 추출할 기회를; 현상을 그 순수한 형태와 그것에 내재하는 내용에서 표현할 이론적 추상을 형성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연역과 귀납, 분석과 종합, 보편 개념과 현상의 특수성을 표현하는 개념이 모든 범주는 리카도에서 여전히 형이상학적 대립물로 남았으며, 그는 이것을 결합할 수 없었다.

 

그의 체계에서 연역은 사실의 귀납적 일반화라는 과제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분석적 추상을 하나의 체계로 가져오려 할 때, 즉 그것을 종합하려 할 때, 그는 논리적 모순이라는 극복 불가능한 난관에 부딪혔다; 그것은 보편 개념(가치)은 그의 체계 안에서 특수 개념(이윤)과 상호 모순 관계에 있는 것 등으로 드러났다. 적의 포화 아래 이 내부 균열은 벌어졌고, 노동가치론 전체가 붕괴하여 아무런 체계도 없는 짜깁기물로 전락했으니, 이 짜깁기물은 오직 경험적 포괄성만을 자랑할 수 있었을 뿐 실제적 구체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전혀 수반하지 못했다.

 

리카도 시대의 철학과 논리학은 이 모든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에 관한 어떠한 올바른 지침도 제공하지 못했다(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혁명적인 비판적 태도와 결합한 의식의 변증법대상의 규정들 속의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상의 현 상태에 대한 변호론적 태도와 무연고한 추론 방식이었다. 이 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지점자본주의적 생산 체계를 구체적-역사적 체계, 즉 발생에서 그 종말을 향해 전개돼 온 체계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에서 만났다.

 

번역: 노준엽 | 집행위원

 

2026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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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ories of Surplus-Value”, Capital, Vol. 4, Part. 1, 1975, 387.[강조는 나의 것].텍스트로 돌아가기
  2. K. Marx, “Theories of Surplus-Value”, Capital, Vol. 4, Part. 2, Moskva: Progress Publishers, 1968, 165.텍스트로 돌아가기
  3. Ibid., 166.텍스트로 돌아가기
  4. J. M. Keynes,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London: Macmillan, 1938, 203.텍스트로 돌아가기
  5. Ibid., 162.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