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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논어_손안의 古典 큰 글씨 판>

  • 등록일
    2012/02/08 12:42
  • 수정일
    2012/02/10 02:34

-1. 책 소개

<論語논어_손안의 古典 큰 글씨 판>
역자 : 황종원
출판사 : 보누스('서책'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
가격 : 8,800원
* 내 손바닥만한 크기에, 원문과 음독, 해석만 있다.



0. 읽은 계기
소통과 차단을 갖고 벌였던 모 님과 키배,
정확히는 그 때 그 분이 한 말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나는 [소통하자면서 차단하는 건,
언행불일치까진 아니더라도 자기반성이 필요한 부분.
그 주장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누구한테 개소리를 듣더라도
그 소리가 어째서 개소리인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었고,
그 분이 거기에 이런 대답을 했다.

[지켜야할 규범과 이상적인 도덕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나 공자처럼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당시에 저 얘길 ㅇㅈㅇ한테 했더니 ㅇㅈㅇ 曰,

[논어를 읽어보긴 하고 공자 운운한대?]

저 말을 듣고 논어에 '대체 공자가 뭐랬기에?' 정도의 흥미가 생긴 참에,
서점에서 작고 얇아서 읽기 편해 보이고
가격도 착한 <논어>가 있기에 샀다.
(주석까지 있는 책도 많았지만,
너무 두꺼우면 사기도 읽기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6^^;;; )



1. 시대에 속하다
너무 당연해서 말할 필요도 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표현하기 모호한 감도 있지만,
공자 또한 자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시대와 사회문화를 초월한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
가령 양화(陽貨) 편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와 소인은 돌보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


뭐 임마? 가만 있는 여자는 왜 까냐능? 사우자!!!!
당대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혹은 문제 없는 관점이었을 듯하지만,
오늘날 저런 얘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죄를 지었다 해도 자식이면 숨겨주고 아버지면 숨겨주는 게 정직함이다...같은
구절[자로(子路) 편]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꽤 있을 것 같고,
(적어도 나는 찜찜하더라 6-_-`.`.`. )
그 밖에 걸리는 부분도 찾으려고 하면 꽤 보이겠지.



2. 아이디어집
이런 걸 생각하면 자한(子罕) 편의 이 구절이 마음에 든다.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拜下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마로 만든 모자가 예에 맞지만
오늘날은 명주로 만들어 검소하다. 나는 사람들을 따르겠다.
당하에서 절하는 것이 예에 맞지만 오늘날은 당상에서 절을 하는데 이는 교만하다.
비록 여러 사람과 어긋난다 하더라도 나는 당하에서 절하는 예법을 따르겠다.)


규범에 맞냐 아니냐, 사람들이 따르냐 아니냐를 떠나
자신의 기준을 확고히 해서 그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내용 같아서.
물론 법조문과 용어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모 ex교수처럼 되면 골룸하겠지만.
저 구절은 고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즉, 고전에 뭐라고 쓰였느냐를 떠나
읽고 검토해서 취할 만하다 싶으면 취하고 아니면 버려도 무방하다고 말이다.
(이런 취사선택이 감탄고토(甘呑苦吐)가 되어 버리면 개똥망;;; )
그런 의미에서 고전(古典)이라는 건 일종의 아이디어집 같다.
평소의 생각을 구체화하거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끔 화두를 던져 주는 자료랄까?



3. 논어와 차단(?)
한편, 논어를 훑어보면 그 분이 말한 차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 법한 구절도 꽤 보인다.
예를 들어 안연(顔淵) 편을 보면,

 

子貢問友 子曰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毋自辱焉.
(자공이 벗에 대해 여쭈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충심으로 권고해서 잘 이끌어 주었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만두어 스스로를 욕되지 않게 해야 한다.)


'충심으로 권고해서'라는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만하면 [소통은 개소리를 참고 듣는 것까지 포함하는 건 아니다.]에 부합하는
구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령공(衛靈公) 편을 보면 이런 구절도 있다.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함께 말할 만한데도 함께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말해서는 안 되는데 함께 말하는 것은 말을 잃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으며 말도 잃지 않는다.)


이것도 해석하기에 따라 그 분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겠다 싶다.
아니, 그 분은 '넷우익'이란 집단을 상종 못할 사람으로 보고 계신 듯하니,
이런 구절은 그 분에게 안성맞춤(?)이겠다 싶다.
그런데도 그 분은, [개소리를 듣더라도 그게 개소리임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는 내 주장에,
[사람들이 모두 예수나 공자처럼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라고 했다.

이는 그 분이 논어를 읽어보지 않았거나,
읽어보았더라도 저런 구절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 같다.
그런 탓에 본인이 생각하는(혹은 흔히들 그렇게 여기는) 성인군자의 상징으로
공자를 언급하신 게 아닐까 싶다.



4. 진짜로 아는 것
그 분의 그 주장에서 '공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안다.
공자 자리에 '관세음보살'이 들어가도 되고, 뭐...
그렇긴 해도 <논어> 번역본을 지른 계기가 그 분의 공자 언급이라 얘기해 본 거다.
그런 김에 위정(爲政) 편의 한 구절을 덧붙이고 싶다.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로야, 내 너에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역본의 해석을 놓고 보면,
[앎은 곧 정직함이다.]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하다.
한편, 이거랑 비슷한 얘기를 들은 기억도 있다.
그 때 들은 내용은 [자기가 뭘 아는지 알고 자기가 뭘 모르는지 아는 게, 진짜로 아는 것이다] 정도였다.
('너 자신을 알라'와 일맥상통하는 얘기이려나?
그런데 저 내용의 출처를 몰라서 저게 위 구절의 해석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6-_-`.`.`. )
정직함이든, 자신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아는 거든,
둘 다 필요한 미덕이다 싶으니,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
나도 책 사고서야 알았는데,
손 안의 古典 반양장판으로 5,800원짜리 책이 따로 있다.
(제킬! 알았으면 더 싼 걸로 사는 건데 ㅠㅠㅠㅠㅠㅠ
8,800원짜리도 글씨가 커서 보기 편하니 나쁘진 않지만;;;; )
나처럼 <논어>를 싼 맛에 사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라고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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