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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듣는다-한 에이즈인권활동가의 삶과 노래

격월간<사람>에 연재되었던 윤가브리엘의 노래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다음 달에는 북콘서트도 예정되어 있구요. 
호모포비아가 난무하는 작금에 더욱 더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아래는 북콘서트 웹자보와 신간 보도자료입니다.

->책 사러 가기^^
 



 

 

사람생각 신간안내

 

 

 

 

하늘을 듣는다

| 한 에이즈인권활동가의 삶과 노래 |

 

윤 가브리엘 지음

 

* 책 판매 수익금은 인권센터건립에 사용되며 12월 8일 북 콘서트도 열립니다.

“열다섯 시간을 숨이 턱에 차도록 일하다 지쳐 자취방에 돌아갈 때 내 지쳐버린 밤을 노래가 달래주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며 갈 길이 어디인지 몰라 할 때 가려진 나의 길을 노래가 찾아주었다. 에이즈란 병마가 내 몸을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만들어 뼛속까지 외로울 때 노래가 슬퍼해주었다.”

 

“동성애자를 공공연히 또는 은밀히 변태나 정신병자 취급하는 다수자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이자 HIV/AIDS 감염인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춘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 무릎 꿇기도 하지만 우뚝 일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꿈과 고통, 희망을 절절히 노래한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친다.”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도서출판 사람생각은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지은이 윤 가브리엘

 

윤 가브리엘은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감염인 그리고 에이즈인권활동가이다.

열다섯 살에 집을 나와 20년 가까이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0년대, 평화시장에서 실밥을 뜯던 가브리엘의 관심사는 20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봉제 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다.

사춘기부터 시작된 성 정체성에 대한 번민과 좌절에 아파할 뿐 아니라 가난과 냉대를 혼자 사려야 했다. 열다섯 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노동에 고달파하고 재단판 밑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그를 보듬어준 이들은 미싱사 누나들뿐이었다. 새천년으로 들떠 있던 때 그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연이어 크고 작은 질병이 그를 공격했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 차별’이라는 질병이었다. 그는 환자이지만 누워 있지만은 않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려 인권운동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섰고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방치와 제약회사의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를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7년 전부터, 비감염인에게 그리 대수롭지 않은 바이러스지만 에이즈 환자에게는 폐렴이나 중추신경계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어 치명적인 CMV 바이러스와 질긴 싸움을 하는 한편 에이즈인권 모임의 대표로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환자권리상과 HIV/AIDS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 카노스 등이 공동으로 수여한 감염인 인권상, 2009년 한국인권재단 인권홀씨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인터넷방송 참세상 별라디오의 DJ로 활동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격월간 인권잡지『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한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지은이윤 가브리엘 판형152 * 210 가격13,000원 면수240쪽

발행일2010년 11월 24일 ISBN978-89-88686-54-6 펴낸곳도서출판 사람생각

주문 전화02) 363-5855 이메일 dshrfund@hanmail.net

기획․편집 김정아(010-2640-1895)

◎ 차례

 

서문 기억 속의 나, 노래 속의 나

추천사 진솔한 다큐멘터리 같은 위로와 격려 - 김조광수

 

1_ 떠도는 아이

방랑자

붉은 노을 속으로

집을 떠나다

재단판 밑‘섬집 아기’

 

2_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열다섯 시간의 노동, 사람 그리고 노래

아버지의 죽음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3_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가리워진 길

낙원상가 데뷔

아 하늘이 밉다 목이 타온다

슬금슬금 다가가는 눈빛들

장밋빛 인생

 

4_ 나, HIV/AIDS 감염인이 되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쉼터, 같은 아픔의 사람들

큰형의 야속한 죽음

하늘을 듣는다

늘어가는 바이러스 HIV

거대세포바이러스

망막을 붙잡기 위해

 

5_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다

나누리+

모두에게 접근권을

상덕이

용수철 같은 한영애의 목소리

어려워 마! 두려워 마!

환영받지 못할 세 개의 타이틀

푸제온, 말도 안 돼!

 

6_ 고마운 사람들, 엘라에게 보내는 편지

 

7_ 가브리엘의 에이즈 묻고 답하기

 

 

 

◎ 책 소개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HIV/AIDS 감염인들과

성소수자들(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그리고 한영애님께 바칩니다.”

 

윤 가브리엘은 2008년 7월부터 7개월 간 인터넷방송국 참세상의 별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차분하면서도 슬픔을 띈 그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에 흘렀다. 가브리엘만의 선곡, 가브리엘만의 이야기로 채워진 그 방송은 1년을 넘지 못했지만 그의 노래는 긴 여운을 남겼다. 청취자들은 에이즈 환자로만 알려진 윤 가브리엘이 아니라 음악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깊이 사랑하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삶의 노래가 이제 글로 태어났다. 이 책은 격월간 인권잡지『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되었던 자전적 수필「윤 가브리엘의 노래이야기」를 다시 보완하고 다듬어 엮은 것이다.

 

“그렇게 노래 속에 살다가 내 마음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열다섯 시간을 숨이 턱에 차도록 일하다 지쳐 자취방에 돌아갈 때 내 지쳐버린 밤을 노래가 달래주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며 갈 길이 어디인지 몰라 할 때 가려진 나의 길을 노래가 찾아주었다. 에이즈란 병마가 내 몸을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만들어 뼛속까지 외로울 때 노래가 슬퍼해주었다. 그 고단하고 아팠던 삶에 노래가 위안이었고, 노래 속에서 삶을 배웠다. 노랫말이 나를 생각하게 하고, 삶을 깨닫게 해주고,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자연의 이치가 삶의 이치라는 걸 깨닫게 해준 노래, 삶에 대해 알려주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나에게 노래를 통해 삶을 가르쳐준 사람이 한영애님이었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년에 한 번씩 나오는 한영애님의 새로운 노래들은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이 꼭 있었다.”

 

 

1장 떠도는 아이

책은 ‘떠도는 아이’, 가브리엘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친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구박만 받는 집을 떠난 가브리엘은 공장노동자가 된다. 중학교도 마치지 않은 어린소년이 쉴 곳은 재단판 아래 외에는 아무 곳도 없었다.

박인희의 <방랑자>, 만화영화주제가 <엄마 찾아 삼만리>, 동요 <섬집 아기>가 이 시절 가브리엘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 공장은 여자들만 기숙사 방이 있었고 남자들 방은 따로 없었다. 재단판 밑에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야 했다. 밤늦게까지 일해 피곤한 몸으로 재단판 밑에 자려고 누우면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깨져가는 빙판 위를 뛰어가듯 두려움에 떨며 집을 뛰쳐나온 일, 하지만 뒤돌아보면 뭔가가 잡아당길 것 같아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이 낯선 곳까지 도망 오게 된 일. 이 먼 데까지 왔으니 큰형도, 아버지도, 누구도 날 찾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원하던 집밖의 세상에 나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이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에 울적해지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친어머니가 생각나서 더욱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섬집 아기를 속으로 불렀다.”

 

2장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집 떠난 가브리엘은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먼지 날리는 봉제공장에서 청춘을 보낸다. 80년대 민주화의 열망이 한국사회를 강타하지만 봉제공장 노동자 가브리엘은 자신들을 노래하는 <사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오히려 어리둥절해한다.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마저 찾아와 슬퍼하는 가브리엘에게 미싱사 오야 누나들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한편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괴로움이 더욱 심해진다.

신형원의 <잃어버린 밤> 나훈아 <고향역>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가 여기서 흐른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우리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노래 미싱이라고 한 거 맞지?”누군가 물었고 잠시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미싱 맞네.”다들 신기해하며 웃었다. 노래 가사에 미싱이 나오는 노래가 다 있다며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고들 하였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는 자주 나왔고,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럼 미싱이 돌아야 먹고 살지, 미싱 안 돌리면 누가 밥 먹여주냐?”며 다들 웃었다. 저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전직 미싱사 출신이 아니었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했고, 누군가는 만들 노래가 그렇게 없어 미싱을 노래로 만드느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나른한 게 졸립다며 노래 좀 바꾸라고 누가 소리쳤고 재단사 아저씨는 삼태기 메들리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 메들리를 틀었다. 나 역시 그 노래 사계가 어떤 의미의 노래였는지 몰랐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무엇을 위한 노래였는지 알지 못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패는 청계피복노동조합만큼이나 생소했고 낯설었다. 사람들은 이제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평화시장 공장들은 문을 안에서 잠그고 열다섯 시간 일을 시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군사독재가 뭔지 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스무 살, 1987년 내 최대 관심사는 하루빨리 더 많은 미싱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3장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성정체성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즈음 가브리엘은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만나 평생 위로와 안식과 힘을 얻는다. 자신을 혐오하다 못해 자살까지 결행했지만 실패한 가브리엘은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때 한영애의 노래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이후 한영애의 팬으로 그녀와 인연을 맺고 이 책의 많은 곳에서 한영애가 등장하며 책을 헌사하는 배경이 된다.

낙원상가 데뷔. 양성애자들은 쉽게 알 수 없는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가브리엘. 동성애자임을 인정했으나 그가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곳은 낙원상가 어둠침침한 카페였다. 같은 ‘인류’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는 길게 가지 못하고 연이어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는 가브리엘에게 노래는 다시 위안이 된다.

유재하 <가리워진 길> 한영애 <갈증> <바라본다> 에디뜨 피아프 <장미빛 인생>이 가브리엘 곁에 있어준다.

 

“전화를 끊자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종로를 배회하며 밤 열 시가 넘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그 술집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긴장이 더해졌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여니 음악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하는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종업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알아본 종업원은 웃으면서 바 쪽에 앉으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바와 테이블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니 신기하기만 했다. 종업원은 아까 왔을 땐 일반 손님인 줄 알았다고 말을 꺼냈다. 초저녁에 간혹 일반 손님들이 멋모르고 와서 조심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년의 어떤 남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쯤으로 보이는 그는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하였다. 마담은 그 나이의 아저씨들처럼 적당히 머리숱도 없고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뿌옇게 분칠한 얼굴과 펜슬로 가늘게 그린 눈썹이 좀 이상했다. 그는 내 옆에 앉더니 종업원에게 나에 대해 들었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묻고 이런 곳에 오늘 처음 나온 거냐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하자 “그럼 오늘 데뷔한 거네”라고 했다. “데뷔라뇨?” 하고 되물었더니 이런 세계에 처음 나왔을 때를 데뷔라고 한단다. 무슨 연예인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식성이 뭐냐고 묻기에 뭐 다 잘 먹지만 밀가루 음식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초짜 맞네. 그 식성 말구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 말이야. 그런 걸 식성이라고 해.” 마담이 웃으며 말했다. “아! 예,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연탄불에 달궈진 양철통에 데인 팔목의 상처가 더 씁쓸했다. 자살을 시도한 후 2년여의 시간 동안 남과 다른 내가 남과 똑같은 내가 될 수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밤이면 깊은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얼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과 다른 나를 억누르고 남과 똑같이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영애가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노래해주었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면 남과 다른 내가 있고 그걸 인정하는 것이 자유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성에게 끌리는 게 본능적인 거라고 얘기하듯이 내가 동성에게 끌리는 것 역시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 본능은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나! 남과 다른 나를 인정하고 다시 종로를 찾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4장 나, HIV/AIDS 감염인이 되었다

 

새천년 HIV/AIDS가 가브리엘을 찾아온다. 보건소 직원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는 가브리엘은 오히려 담담했다. 얼마 후 슬픔과 절망은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브리엘을 덮친다. 일을 그만두고 쉼터를 찾아가고, 에이즈와 싸우는 한편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약과도 싸워야 했다. 면역력은 바닥나고 거대세포바이러스가 가브리엘의 목숨을 위협한다. 죽음의 고비까지 간 가브리엘은 다시 되살아난다. 왼쪽 시력을 빼앗기고 청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는 살아났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오면서 에이즈는 저주받은 불치병이 아니라 약만 제대로 투여하면 관리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몸이 그것을 증명했다.

시인과 촌장 <기쁜 보리떡> <가시나무> 복숭아 <햇님> 이문세 <광화문 연가> 속에서 가브리엘은 다시 살아난다.

 

“기운도 없고 정신도 없고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의 손이 내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 손길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누구의 손인지 얼굴을 보려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리워하던 친어머니가 아닐까? 엄마? 엄마? 신음소리처럼 부르다가 눈을 떴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한 그 손길의 여운을 생각하며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친어머니가 생각났던 ‘시인과 촌장’의 기쁨 보리떡을 찾아 들었다.

‘친어머니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 살 때 친어머니와 헤어진 후 친아버지와 키워주신 어머니, 이복형제들과 살면서도 항상 혼자였고 집을 나와서도 늘 혼자였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 아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난 이제 어떡하나! 보건소에서 받았던 충격적인 통보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누가 들을세라 이불을 입에 틀어막고 소리죽여 흐느꼈다.”

 

“다른 질병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2년여를 버텼지만 결국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다시 또 찾아왔다. 지금까지 투병하면서 최악의 몸 상태였던 2006년 봄부터 겨울까지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며 사계절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심하게 결핍된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켰다. 대장에 와서 하루에도 열두 번이 넘는 설사를 하게 하고, 신경계에 와서 다리에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게 하였다. 망막에도 찾아와 눈이 잘 안 보이게 만들었다. 그 겨울은 최악의 절정이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마저 내성이 생겨 새로운 약을 써야 했으나 그 약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약값이 2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난 그 약값을 감당할 돈이 없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우선 약값을 댔다.”

 

“병실에서 주사를 맞으며 눈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나누리+ 친구들은 주사약값 마련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해 한 달에 2백만 원이 넘는 약값을 댔다. 그 주사제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맞아야 했다. 퇴원을 해서는 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간호사 수녀님이 번갈아 가며 주사를 놔주었다. 매일 360cc의 주사제를 두 시간 이상 혈관에 맞으면서 거대세포바이러스와 1년 9개월간의 끈질긴 싸움을 끝냈다. 주사를 끊던 날 나누리+ 친구들과 기념 파티를 하고 쉼터에서 식구들과도 파티를 했다. 이 주사를 끊고 난 후 에이즈치료제인 ‘푸제온’치료에 들어갔다. 나에게 꼭 필요한 에이즈 치료제지만 제약사 로슈가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하지 않아 쓸 수가 없었던 푸제온을 외국의 구호단체에서 어렵게 도움을 받았다. 푸제온을 투여하자 면역력이 오르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HIV가 억제되어 나는 다시 살아났다.”

 

5장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가브리엘은 새 삶을 맞는다. 육체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렸다. 용기를 내어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고백했다.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가브리엘은 세상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에이즈 환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묻어두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질병과 차별의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조장하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에이즈인권활동가가 되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주사약값을 친구, 활동가 동료, 수녀, 의사 등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몸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임을 증명해낸다.

김광석 <서른 즈음에> 한돌 <꼴지를 위하여> 강산에 <넌 할 수 있어> 한영애 <말도 안 돼>가 가브리엘의 투쟁의 깃발이 되어준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쌓일수록 분노도 쌓여갈 때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연락이 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란 곳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보건포럼’이 열리는데 프로그램 중 아시아의 에이즈 문제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얘기를 해야 설득력이 있을 텐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이런 부당한 일들에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부담스런 시선보다 내 안의 분노가 더 컸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HIV/AIDS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서 있자니 마이크를 잡은 손은 떨렸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운 것 가진 것을 따지는 세상에서 나는 꼴찌였고 꼴찌라서 힘들었지만 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을 하며 살아온 나였다. 과거에는 꼴찌라는 게 창피했지만 이제는 당당한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 말하려면 당당해야 하고 당당하려면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것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이즈인권활동이란 새로운 숙제 앞에 놓인 나에게 꼴찌를 위하여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때 나는 HIV/AIDS 감염인으로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6장 고마운 사람들, 엘라에게 보내는 편지

이 장에서는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어 준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한다. 가톨릭레드리본지원센터 회장 로사 수녀가 가브리엘에게 보내는 편지가 뒤를 잇는다.

 

7장 가브리엘의 에이즈 묻고 답하기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문답 형식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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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46,47호 업데이트 됐어요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잡지라 두 달 먼저 시작하고 두 달 먼저 시작하고 두 달 먼저 끝난다.  

11-12월호가 나왔으니 올해는 종친 셈이고, 내년 1,2월에 무슨 일이 생길지, 무슨 이야기를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다들 12개월을 사는 듯 한데 잡지를 만들다보면 난 여섯 고개를 넘으며 살아가는 듯 하다. 그래서 일년이 더 빨리 가는 느낌...  

 

11-12월호 '근로기준법 다시보기'
9-10월호 '누구를 위한 G20인가'

 




 

 

사람이 사람에게 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인권이 내게로 왔다 병역거부자는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가가 되었나
인권이 내게로 왔다 삶의 현장에서 인권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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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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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추가된 문정현 사찰 기록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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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집은 인권이다?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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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4대강, 선택의 마지막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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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주인권회의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 없음’과 사회권
2010 제주인권회의 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2010 제주인권회의 사회권과 함께, 사회권을 넘어
서평 모성에 대한 신화 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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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날린 홀씨 사람을 아는 것이 가장 좋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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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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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모델은 문정현 신부님입니다. 역대 표지모델 중에 가장 유명인사가 아닐까....

 

이번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문정현 신부님 헌정공현(http://cafe.daum.net/hrfund)에 맞춰 사진작가 노순택 님이 사진도 찍어주시고, '추가된 문정현 사찰 기록카드'라는 글도 한 편 기고해주셨지요.

 

이번호 기획은 전태일 40주기에 맞춰 근로기준법에 대해 다뤘습니다. 근기법의 역사와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인권의 관점에서 근기법을 재구성해보자는 제안까지...

 

종이 잡지는 이제 막 인쇄 중이고 사이트도 조만간(?) 업데이트 될 것입니다.

 

아래는 이번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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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릴 때마다,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그놈의 G20 타령은 거의 공해 수준입니다. 내용도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이니 레스토랑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자제하자는 둥 외국인을 만나면 미소를 짓자는 둥 어이없습니다. KBS노조 발표에 따르면 KBS가 G20과  관련해서 이미 방송을 했거나 방송을 준비 중인 특집 프로그램만 60개, 55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G20 성공기원 콘서트와 영화제, 릴레이 명사 강연 등등. 정작 G20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성공리에 치르면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다는데 어찌 올라가는지는 쏙 빠져있습니다. 이 무슨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만 되풀이하는 건강식품 광고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다 엊그제 광화문에서 색다른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세계 67개국이 참전해서 지킨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G20정상회담 의장국이 되었으니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밑에는 한국전쟁이 최대 참전국이 참가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도 되었다는 글귀도 적혀있었습니다.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 G20이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스무 개 나라의 모임이고 영국, 미국, 캐나다 같은 이른바 서방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이니 그럴듯한 주장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이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어려운 이웃나라들은 그걸 원하기나 하는지 살짝 의문이 생깁니다. UN과 같은 공식 국제기구도 아니고 그야말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친목모임 수준인데 괜히 거들먹거리고 호들갑을 피우는 게 꼴사납지나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네 이웃은 누구인가.” 지난해 용산참사 현장에 걸려있던 수많은 플래카드 중 하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네가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쓰러졌는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은 다 모른 척 지나가고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핍박받던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다. 그럼 네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는 사마리아인이 바로 네 이웃이며 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고 이 문구가 용산참사 현장에 걸린 취지도 이해는 가는데 워낙 심사가 삐뚤어진 탓인지 이웃이라고 하면 ‘불우이웃 돕기’가 떠올라 저는 그걸 보면 왠지 불편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지만 지난 며칠 또 한 차례 개신교 때문에 사이버공간이 시끄러웠습니다. 이른바 ‘봉은사 땅 밟기’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졌는데 몇 명의 젊은 개신교 신자들이 늦은 밤 봉은사란 절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고 불탑을 잡고 기독교식으로 기도를 올리며, 불교를 비하하고 절이 무너지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었죠. 동영상이 크게 문제가 되자 담임목사와 젊은 신자들은 봉은사를 방문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개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차별금지법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려다 안 된 제일 큰 이유는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이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고 이를 반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종교계, 특히 보수적 개신교 집단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법무부에서 다시 차별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빌미로 5월부터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신문광고가 실리기 시작하고, 며칠 전에는 “동성애차별금지법이 11월 중 처리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성경을 가지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만 해도 처벌된다”는 문자가 돌고 다음날 법무부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국회에서는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 포럼’이란 행사도 열렸습니다. 그만큼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동성애를 계속 차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07년과는 다르게 매우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일부에서는 동성애를 거부할 권리,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자유 같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기 이전에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저는 종교에는 문외한입니다. 성경 몇 구절을 안다고, 불경을 좀 읽었다고 종교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핍박받는 이웃과 함께하지 않는 종교, 차별받는 이들과 이웃하지 않는 종교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G20 행사에 비하면 아주 초라하지만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로 매우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 이번호 기획도 ‘전태일 40주기, 다시 보는 근로기준법’입니다. 근로기준법이 그러했듯 차별금지법도, 그 어떤 법률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하지만 전태일이 그랬듯이 법률 하나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사건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랜만에 『전태일 평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열여덟 그 시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학교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내신등급은 좀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올해는 또한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의 20주기이기도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전태일에게 그리고 조영래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태일과 조영래의 만남은, 비록 때늦은 안타까운 만남이지만 참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좀 뜬금없지만 이번호에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주최하는 문정현 신부님의 헌정공연을 즈음해 사진작가 노순택의 신부님에 대한 헌사를 실었습니다. 사진이 아닌 잔글씨로 노순택이 기록한 문정현 신부의 행적을 읽으며 문정현과 대추리, 문정현과 용산, 문정현과 노순택의 만남도 생각해봅니다. 《사람》도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의 자리가 되고 그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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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제주인권회를 다녀왔습니다. 태어나서 세 번째 비행기 여행이었습니다. 여전히 공항은 낯설고 비행기 안에서는 바짝 긴장이 되더군요. 운 좋게도 돌아올 때는 처음으로 창가 자리에 앉게 되어 몇 천 미터 상공에서 저녁놀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는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등과 같은 사회권을 다뤘는데 저는 장애인으로 20년 동안 시설에 갇혀 지내다 나와 지금은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김동림 활동가와 함께 다니는 덕분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중증장애인과 같이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본 적은 있지만 비행기는 처음이었죠. 아무리 저가 항공이라지만 탑승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는 항공사였는데 전동휠체어가 등장하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하면서의 번거로움은 그렇다 치더라도 100명을 넘게 태우고 하늘을 나는 최첨단 이동수단에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 하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물론 항공사 직원들은 참으로 친절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나마 교육효과가 있었는지 불편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절한 항공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저만 바라보고 저하고만 상의를 하려 드는 겁니다. 김동림 활동가가 저보다 나이도 더 많고 훨씬 지적(?)으로 생겼으며 대화가 힘든 상태도 아니고 너무도 당연히 저보다는 장애인 이동과 관련해서 아는 것도 더 많은데 말입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흡연실로 가서 “기분 참, 그렇죠?”라고 했더니 사람 좋은 김동림 활동가는 그저 미소만 짓더군요. 동행한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임소연 활동가는 첫 날부터 ‘사회권,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란 제주인권회의의 큰 주제를 보고는 돌봄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중에 돌보는 사람의 입장에 있는 개념이고 활동보조라는 개념은 그 반대라며 저한테 ‘트집’을 잡았는데 괜한 트집이 아닌 것이지요.


이번 제주인권회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환경미화원의 건강권 문제를 짚은 영상이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음식물 쓰레기나 재활용 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거기에 고용된 미화원들의 작업조건은 심각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샤워시설 하나 없는 쓰레기 처리장 옆에 오염된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하나 달랑 달린 컨테이너 박스에서 쉬며 일을 마치면 더러워진 몸을 씻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들의 손과 발,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에도 버스터미널 화장실보다 몇 배 많은 세균이 묻어있는 채로 말이죠. 또 거리에서 청소를 하는 미화원들이 일하는 시간은 대부분 사람이 드문 새벽이고, 쓰레기 처리장은 거의 다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시 외곽의 한적한 공터였습니다. 영상을 보며 ‘나는 왜 하루에도 엄청난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면서 그것이 어떤 이들의 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처리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나?’ 했는데 아마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무시되기 십상인 사람들, 아예 보이지도 않게 가려지고 덮어지고 치워지는 사람들,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수십 권의 책으로도 다 담지 못하겠지요. 이번호 《사람》의 좌담에도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거리 환경정화를 해야 한다며 노점상 특별단속반을 편성하고 노숙인 복지 대책이란 명목으로 노숙인 수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그동안 단속을 하던 출입국관리 직원만이 아니라 이제는 경찰이 직접 나서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니까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음의 눈으로 이들을 찾아 나서고 연대의 손을 마주잡는 것이 정말 필요한 때입니다.


솔직히 제주에서 2박 3일 동안 참 좋고 옳은 말이지만 그래도 어렵기만 한 이야기를 듣느라 많이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혹시 《사람》도 여러분에게 그런 존재가 아닌가 많은 반성을 했지만 이번호도 크게 나아지지는 못한 듯싶습니다.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좋은 질문을 위해서는 잘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저는 가끔 지금은 없어진 FM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인터넷으로 다시 듣곤 합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 몇 천 미터 상공에서 저녁놀을 보며 문득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정리해고에 맞서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가 129일 만에 주검으로 내려온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지부장의 부음을 접하고 그녀가 한 오프닝 멘트입니다. 《사람》을 마감할 즈음 2008년 서울역 앞 철탑에 올랐던 KTX 여승무원들이 마침내 재판에서 이겼다는 기쁜 소식과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이포보에 올랐던 환경운동가들이 무사히 내려왔다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000일을 넘게 싸우면서 두 차례나 철탑에 올라가야 했던 기륭전자 노동자들, 70미터 높이 굴뚝에서 50일을 싸웠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용산 남일당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 다들 잘 계시나요? 우리 목소리 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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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은임추모사업회(http://www.worldost.com). MBC FM <정은임의 영화음악> 2003년 10월 22일 방송.   
**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9-10월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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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봐

딸내미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며칠 전 둘째를 가진 아내와 정밀초음파를 보러 산부인과에 갔는데 자기도 동생을 보겠다며 따라나선 딸내미는 병원에서 또래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난 다섯 살이야. 넌 몇 살이야?” 하고 물으니 딸내미는 천연덕스레 “응, 나는 여섯 살이야” 그럽니다. 우리 아이와 그 아이 모두 네 살이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아내와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30여 년에 걸쳐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한 끝에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 한다』란 책을 펴낸 로버트 펠드먼 박사는 처음 만나는 성인은 10분 동안 평균 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옷이 예쁘다거나 요즘 괜찮다거나 하는 악의 없는 인사치례가 대부분이지만 소위 어른들의 세계에서 얼마나 거짓말이 넘쳐나며 우리가 거짓말에 얼마나 무감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거짓말하면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워터게이트 사건이 떠오릅니다. 솔직히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야말로 금융자본의 온갖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알고도 속아준 관료들의 합작품, 금권사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거짓말은 생리(生理)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이 정부의 거짓말은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이 성적표를 조작하듯 획을 더해 상황일지 숫자를 조작하지 않나, 애초에 없다던 사건 동영상이 자꾸만 튀어나오지 않나, 북한 어뢰의 설계도면이 실렸다는 소책자는 있다가도 없어지니 천안함 사건에서 국방부는 그야말로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경찰의 거짓말도 가관입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자 피해 아동의 가족이 보도를 원치 않는다는 거짓말로 자신들의 실책을 덮으려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문사실을 밝혔음에도 해당 경찰서장이 스스로 나서 사실무근이라며 기자회견을 엽니다. 더 나아가 경찰 수뇌부는 당사자가 부인한 것을 가지고 은폐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우기니 말문이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당장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만 모면하고 코앞에 닥친 곤경만 벗어난다면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를 가리키는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거짓과 진실을 모호하게 할 수도 있고, 거짓을 진실로 바꾸고 진실을 거짓으로 가릴 수도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게지요.

반면 구술생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힘을 빼앗기고 억눌린 사람들의 거짓말에 주목합니다. 거짓말에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의 증언 가운데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사실인지를 가려내는 일보다 왜 그 사람은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었는지, 혹은 왜 사실을 감추고 때로는 침묵하며 거짓을 말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그것이 결국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거짓말로 치자면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만한 것도 없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한민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죄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말, 모든 사람은 의료와 주거, 노동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말도 거기에 담긴 염원과 열망, 지향과는 달리 이 사회에서는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이지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국가의 주인은커녕 잠재적 범죄자, 불순분자, 테러리스트가 되어 권력기관의 사찰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인간이기를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나마 아등바등 하던 일터와 삶터에서 내쫓기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갖은 모멸과 냉대, 그리고 법을 빙자한 폭력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러니 인권이라는 것은 법조문과 선언문에 적힌 글 나부랭이가 온통 거짓임을 폭로하고 그 거짓이 진실이 되게끔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동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타인을 인식하고 다른 이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법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가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아이들은 3~4살부터 상상력이 풍부해지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이라 여길 수 있게 되며 이것이 거짓말을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타인과 교감하지 못하고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새로움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니 우리는 아이들의 거짓말로부터 참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이번 <사람>에서는 청소년 스스로가 말하는 청소년과 학교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학교는 그 자체로 거대한 거짓말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학교 밖에서, 사회 구석구석에서 거짓과 맞닥뜨리고 있을 그들에게 한 편의 시를 전하며 건투를 빕니다. 

 

찍소리  
- 송경동  

찍소리 내고 얻어터진 적 세 번 있다

코 끝이 늘 토마토던 초등학교 담임이  
깨스! 하곤 찍소리만 내봐라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찍!

두 번짼 중3 시절 늦은 밤 자율학습시간 
학생과장 고스터가 찍소리도 내지 마 했을 때
슬리퍼소리 사라지기 기다려 히히 찍!
어떤 개새끼가 찍소리 냈어
마루장 무너지던 소리 온 밤을 터졌다

세 번짼 고3 시절
학력고사도 끝나 널널한데
하루는 게슈타포가 말 같잖은 말을 했다
예를 들면, 찍소리 내지 말고 공부해! 와 같은 말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찌이익! 해버렸다
12년간 주눅든 어떤 것으로부터 설움과
해방감 나른히 몰려오던 한낮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그 뒤로 십여 년 더 지난 오늘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라오며 그 찍소리 몇 번이나 더 해 보았나
똥 누다 말고 찌익! 해 본다
누구도 이젠 나를 치지 않는데
마음에 찡하니 젖어오는 슬픔 한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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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 쓴 글입니다.  
청소년들을 만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제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히 제 아이는 '찍소리' 안 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찍소리도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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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잔 하며 이야기하는 불복종과 세상살이

용산투쟁으로 쫌더 유명해진 인권활동가 박래군을 팔아서(?) 인권재단 사람도 알리고 잡지 <사람>도 알리는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술자리에서 기획된 행사다. 애초에는 '박래군의 토크쇼' 형태였는데 며칠 뒤 다시 만나니 영 부담스러워했다. 환갑도 안 된 나이에 무슨 자서전 출판기념회도 아니고...
 
얼떨결에 1부 사회를 맡게 되었는데 진행이 매끄럽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용산싸움과 420일 동안의 수배생활. 순천향병원, 명동성당, 서울구치소를 전전하며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고민했을지 사람들은 궁금해할까?
 
그는 구치소에서 나와 자신의 이야기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를 궁금해했다. 사실 나도 박래군보다 나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더 궁금하다.^^ 
 
 
 
막걸리 한잔합시다
- 420일간의 불복종과 세상살이
 
용산참사 500일.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인권운동가에게 듣는 420일간의 불복종 이야기.
돈 때문에 싸우고 돈으로 위로받고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자본에 복종하지 않는 삶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
제2의 용산이라 불리는 홍대 앞 두리반에서 막걸리 잔 기울이며
술이 익어가듯 술술술 사는 이야기를 풀어봅시다.
 
때와 곳; 2010년 6월 24일(목) 19시 두리반(2호선 홍대입구역 4번출구)
 
 
 
첫째 판 “420일간의 불복종”
이야기 꺼리:  박래군, 용산을 만나다
                   탈주를 꿈꾸다 
                   용산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불복종이 남긴 것
이야기 손님:   박래군, 이종회, 안종녀 
  
인디밴드 공연
 
둘째 판 “돈 없으면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 인권운동가의 주머니 사정”
이야기 꺼리:   요즘 뭐 부쳐 먹고 사시나요? 
                    빈대떡 신사들의 쩐의 전쟁
                    생계와 활동, 이중생활의 곤란 혹은 비결
                    불복종과 재단의 수상한 만남
이야기 손님:    박래군, 김배균, 박옥순  
 
 
※ 이 행사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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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로호는 발사되지 못했다

육아일기라는 걸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오늘은 역사적인(?) 그 첫번째 글이다.  


우선 주인공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첫째는 31개월 딸내미 유니, 둘째는 석 달 뒤에 태어날 벼리다.  둘째는 성별을 모르는데 담당 의사가 미리 안 알려주기로 유명한 의사란다.  

 

유니는 한창 유행이라는 수족구 의심 환자로, 어제부터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엄마랑 아빠랑 누워 TV를 봤다.  YTN 뉴스였는데  나로호 발사 생중계였다. 아래는 유니와 엄마의 대화.

 

 

"저게 뭐야?" 
"우주선" 
"누가 타고 있어?" 
"아무도 안 타고 있어" 
"그럼 왜 그래?" 
"..." 

 

 

결국 나로호는 발사되지 못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다.
짐작하건대 수족구 병균은 어린이집에 다 퍼졌을 거 같은데...
내일은 유니와 함께 사무실로 출근해야 할 거 같다. 
 
아이폰을 보면 참 인간의 과학기술이 여기까지 왔나 싶다가도 수족구병의 창궐이나 나로호를 보면 허허 이것 참...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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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5-6월호에 급조한 편집인의 글

<사람> 5-6월호가 나왔습니다.

마눌님이 보자마자 그럽니다.

"색 다르네."

전 편집인(박래군)이 구치소에서 보내온 편지를 '편집인의 글'로 때우고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예기치 않게 편집 막바지에 전 편집인이 보석으로 출소하느라 땜방식으로 편집인의 글, 원고를 급조해야 했습니다. (물론 편지도 잡지에 실기는 실었지만)

또 늦어진 변명을 하자면... 칠레 지진사태로 종이 구하기가 힘들었고 편집이 늦어져 인쇄일정도 어그러저버린 탓입니다.

종이잡지를 5년 가까이 만들어왔으면서도 우리 잡지에 쓰이는 종이 펄프가 칠레에서 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밑에서도 썼지만 참 저는 주변과 관계에 무심한 놈인 거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글을 많이 실어 기분이 좋습니다. 편집인의 글에 대해 약간 변명을 하자면, 좋은 글을 소개할 겸 예전부터 한 번 써보고 싶던 방식(서평 방식?)을 도전해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 편집인의 글은 <사람> 5-6월호 서평인 셈입니다. 그런데 서평은 책을 안 읽은 독자도 고려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을 다 읽지 않은 사람들,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제 느낌이 전달될까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또 한 권의 <사람>이나왔습니다.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는 사람들의 연대

 

대구에 있는 병원 하나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 달에 1억5000만 원의 적자가 나고 그렇게 쌓인 적자가 120억 원에 달했다고 하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그 병원은 바로 적십자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십자병원은 공공의료기관으로 저소득층과 이주노동자 같은 취약계층에게 무료진료나 부담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구적십자병원이 만성적자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적십자병원의 의료급여환자 진료 비율은 다른 지역 적십자병원들보다 많게는 두 배가 넘었습니다. 의료급여환자가 1000원짜리의 진료를 받았다면 일반병원에서는 360원을 내야 하지만 적십자병원에서는 190원만 내도 됩니다. 그래서 대구적십자병원이 일반병원이었다면 오히려 흑자를 낼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은 10개월 동안의 임금체불도 감수하면서 폐원만큼은 막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이윤추구보다 공익성에 무게를 두고 만들어지고 운영되었던 병원이 왜 문을 닫게 된 것일까요?


대구적십자병원 폐원 사태를 다룬 이번 호 르포 ‘왜 대구적십자병원은 문을 닫았나’의 앞머리에는 <한겨레21> 기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서울 강북의 빈곤층이 모여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그 기사를 뒤늦게 찾아 읽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 가난하게 죽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픕니다. 아파서 가난해진 것인지 가난해서 아픈 것인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더 가난하고,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식구가 있는 집은 앞으로 더 가난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노인들은 무능하고 젊은이들은 무기력합니다. 나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자포자기가 심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는 더욱 크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인데 기사를 읽으니 가난에 대한 공포가 밀려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위태로움. 벼랑 끝에서 한 발 삐끗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서든지 빈곤층은 면하고 싶다는 생각, 우선 차상위계층에서 벗어나고 봐야겠다는 심리가 절로 작동합니다.
 

<사람>의 르포에서 대구적십자병원이 문을 닫은 것은 국민들에게서 거둔 적십자회비의 단 1%도 적십자병원에 지원하지 않은 채 그 어떤 개선의 노력도 하지 않았던 대한적십자사와 “목소리가 없는 시민들을 위해선 관심과 시선주기를 꺼리는 국회의원과 관계 당국” 그리고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해 따뜻한 눈길, 마음을 주지 않았던 많은 대구시민들”의 합작품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만약 목소리가 없는 시민들,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되찾아 어떤 울림을 낼 수 있었다면 결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저 목청 높고 자신들의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있는 이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 또는 그 어떤 희망의 끝자락을 쥐고 그 침묵의 카르텔에 어떻게든 끼어보고자 했던 이들의 담합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그 목소리, 울림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사회적 고통, 그 중에서도 특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진상규명에는 관심없이 천안함 침몰 사건의 희생자들을 ‘대한의 아들’이자‘순국한 용사’로 일컬으며 유족 돕기 성금모금으로 추모를 독려하고 애도기간을 정해 슬픔을 강요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 고통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춰 이용하려 든다는 의심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반면 “이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을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모든 당위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죽음의 장면을 마구(!)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라는 질문(‘어느 넝마주이가 생각하는 사진과 인권’) 앞에서 과연 우리는 어떠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는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그들의 고통 혹은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밀어내고 가두었던 것은 아닌지, 어떤 명분을 내세워 하나의 의미를 독차지하려는 욕망은 없었는지 되짚어봅니다.
 

어떤 의미부여에 앞서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의 고통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불거진 낙태 찬반 논란과 관련하여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현재의 논쟁 구도에서, 여성은 태아를 죽인 자로서 등장”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없음(‘말하기 어려움, 또는 낙태에 대한 작은 말하기’)은 제도적 차별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각종 억압과 편견들 가운데서 우리가 말하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삼성의 문제가 심각하고 그래서 깊이 있게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또 하나의 가족, 아시아의 삼성’이란 글을 읽기 전까지 삼성에 대한 제 머릿속 사고는 대한민국 국경을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소통과 이해의 전제조건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란 말, 연대가 중요하다는 말은 그저 미사여구였을 뿐 아직껏 제 언어가 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재작년 이맘때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그전까지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청소녀/년들에 의해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100여 일 동안 무수한 말들이 흘러넘쳤고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어깨동무가 있었습니다.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말들에 귀 기울이고, 계속 말하라고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명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의무”(‘김예슬 선언과 나의 스무 살’)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그렇지만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증명되었다 곧 다시 부정되고는 하는 명제 앞에서 다시금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 타인의 언어로만 이야기되어지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말, 그 언어로 재구성되는 관계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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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3-4월호가 업데이트 됐습니다.

<사람> 목차 (2010. 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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