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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22
    정체, 파열.
    하늘연
  2. 2005/07/17
    불안, 의심, 호흡곤란.
    하늘연
  3. 2005/07/12
    잃어버린, 혹은 잃어져버린.
    하늘연
  4. 2005/06/29
    새벽출정.
    하늘연

정체, 파열.

말없는 구유에 무게를 실었다네.

동냥할 곳 없이 살아보려 우네.

울음은 때로 주저앉음이고,

간혹 지치지 않는 나아감이네.

 

나는, 유리조각을 가득 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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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의심, 호흡곤란.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쓰기 위해 타이핑을 한다는 것, 타이핑을 하기 위해 기억의 잔상들과 내면의 그늘을 구체화한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성찰을 요구한다.

 

나는 왜 여러 사람의 손에서 버려진 공간 아닌 공간을 붙든 채 그곳에서 숨막혀 하는 건가. 왜 백지보다 의미없을 제안서 따위를 써내려가기 위해 내 시간의 숨을 참아야 하는 건가. 나는 과연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나는 과연, 누구에게 시간의 무게를 지우려 하는가.

 

나는 여태 묻지 않았어요. 묻지 않고서도 이해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진한 화장같은 나의 말들과 불편한 어리광들을 굳이 누군가에게 감내시켜가면서까지 그것들을 이해해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늘, 늘, 늘 닿지 않아. 나는 아예 손이란 게 없는 것 같아요. 어깨로만 아무리 애를 써도 차갑고 희뿌연 허공만 남아.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이런 나도 옳은가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이렇게 또 한숨소리에 시간을 실어 보낸다. 내가 욕망하는 관념의 무게를 감당해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나는 나를 신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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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혹은 잃어져버린.

1.

 

10일 동안 내가 있던 공간, 내가 발화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 아마 그랬을 거다.

 

관계'들'이 치열하게 싹을 틔우고 잎이 푸르러가는 동안, 나는 그 관계'들'의 언저리에서 그저 웃음소리를 더해주는 방관자였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상처들을 덧나게 해서 나와 타인들에게 흉터를 남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서툰 범죄자였다.

 

 

2.

 

정말, 그래요. 내가 다른 거라곤 단지 조금 더 아는 것 밖에 없어요. 어쩌면 그 '조금 더' 가 이제 점점 더 줄어가니까 내가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어.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고민할 수 있는, 나만 할 수 있는 건 정말 없으니까. 그나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마저 잃어버리고 있는 느낌이에요. 나는, 선배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싶었어요. 어떤 게 맞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말하는 명제를 이해하고, 옳다고 판단해요. 그렇지만 그게 나의 논리는 아닌 걸.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구요.

 

 

3.

 

손이 닿는 데까지는 늘 솔직해져버려서, 나는 보기보다 관계에 서툰 사람이고, 관계에 대한 확신도 없어서 늘 의심하고 고민하다 지레 상처받고 지쳐버리곤 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언어화된 설명으로 나에 대한 이해를 타인에게 요구하는 건 과연, 그/그녀에게 폭력이 아닐 수 있을까.

 

나는 함께 있기에 그리 유쾌한 사람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나와 시간을 같이 보내 달라고,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건, 혹은- 단지 같이 무언가를 하게 된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 폭력은 아니었을까.

 

 

4.

 

최고라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는 기억의 재잘거림들 속에서 또 나의 위치는 선 밖이다. 나는 공유할 것도, 기억해낼 것도 그닥 남아있지 않다. 나는 일기도 쓰지 않았고, 편지도 많이 쓰지 못했다. 그저 그날그날의 회의를 위해 기록해둔, 비판과 불만으로 가득 찬 평가와 패배감과 자괴감 속에서 토해낸 끄적거림 몇 개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즐겁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실망하진 않았다. 그저, 내가 있음으로 인해 더 즐거울 수 있었던 농활이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과, 타인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인 내 모습이 안쓰러웠을 뿐이다. 나를 보며 안쓰러워한 몇몇 사람들에게 나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애서 웃음을 만들어보고도 싶었다. 고마워요, 그렇지만 나는, 나는 당장 모든 걸 다 쳐내고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들다구요.

 

나는, 즐겁지도 않다. 경험도 없는 '주제에' 관성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정작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사람들이 부럽고, 나는 그 속에 끼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5.

 

덜렁덜렁 베인 살점 달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내가 베인 살점이 맞기는 해요? 확신은 늘 내 몫인가요?

 

6.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 그랬지.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 과정이 어디까지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왜 농활을 갔는지, 심지어 갔다 '왔는지' 조차도 잘은 모르겠다. 그래서 늘 '결국' 이고 '다행'이다. 무엇에도 확신은 없다.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것들, 혹은 잃어져버린 것들만 선명하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 왜 어두운 밤길을 달려 서울로 와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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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출정.

나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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