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굳은 땅

오랜 세월 아무도 갈아주지 않았던 땅.

비가 내리면 조금 축축하게 질척해졌다

맑은 날이면 다시 마르고

바람에 휩쓸려 온 잔가지들과 돌멩이들이

성긴 땅 사이사이에 박히고

그것들이 다시 부서져

켜켜이 더 두꺼운 딱딱한 지층을 만들어온지 오래.

이제 웬만한 자극으로는

갈라지지도 파헤쳐지지도 않는 땅.

 

다락에 깊이 처박아두었던

곡괭이로 퍽! 딱! 칵! 땅을 깬다.

더, 더 내리친다.

작은 흙알갱이들이 조금씩 튕겨져 나가더니

푹, 날카로운 곡괭이의 끝이 땅에 가 박힌다.

거기서부터 힘을 주어 으어어 쩌어억

얼마간의 땅을 들어낸 후

더 깊이, 더 넓게

곡괭이질을 한다.

이렇게 바싹 딱딱하게 굳어 있던 땅 밑에

이리 부드러운 흙이 숨어있었던가 싶게

촉촉하고 맑은 생기있는 것들의 냄새가 난다.

 

다 갈아엎는다, 모두 다.

힘찬 곡괭이질로 땅이 움푹움푹

발로 밟으면 여기저기 발자국이 움푹움푹

생기는 신선한 땅이 생겼다.

아무 씨를 뿌려도 기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시원한 상상이다.

굳은 땅을 내려치는 곡괭이로

나를 내려치고 싶다.

 

감동도, 한없는 슬픔도, 넘치는 기쁨도 없이

더 두껍고 굳어져가기 전에

어서 내려쳐야 한다.

 

명백한 위기감이다.

이 작업을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실해지지 못하리라는 자명한 현실.

 

지금으로선 춤도, 참선도, 연기도, 여행도, 출가도, 스승도

나를 깨기는 커녕

나를 더 굳건히 지키고 켜켜이 켜켜이

두껍게만 만들 것이다.

 

어떡하지.

그래도 다행이다.

굳은 땅을 내려치는 곡괭이가 생각나서.

 

정진이다.

나를 완전히 해체하기 위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