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일

일상 2026/07/26 04:54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도 생계를 위한 노동이 되면 좀 달라진다.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공부를 잘 하는 것과 또 좋아하는 건 많이 다르다. 그래도 공부한 댓가로 먹고 살고 있고 썩 잘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견디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일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읽는 건 재미있고 즐겁지만 쓰는 일은 힘들고 고역이다. 읽고 잘 쓸 수 있어야 연구자로서 직업을 유지하고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자주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생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나는 아마 곧 그런 상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물론 읽으면서 최소한의 정리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냥 읽는 재미에 빠져 읽기만 하면 막상 글을 써야 할 순간이 되었을 때 앞서 읽은 것들이 글을 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읽은 것들이 다 나의 지식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겠지만 논문은 글을 지어내는 식으로는 쓸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다시 읽고, 정리하고, 메모한 글들을 끄집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태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읽고 쓰는 일이라는 걸 자주 잊는다.

칸트는 숭고와 관련하여 상상력의 두 가지 작용을 이야기하는데, 상상력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포착한 부분들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총괄하는 능력이다. 어떤 것을 본다는 것은 상상력이 순간적이든 연속적이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여 그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분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상상력은 순차적으로 포착하고 총괄할 수 없는 대상과 직면했을 때 좌절한다. 칸트는 이걸 상상력의 무능력이라고 부르고 상상력은 숭고의 대상과 마주할 때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고 좌절한다.

“포착은 무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총괄은 포착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더 곤란해져서, 곧 그 최대 한도에 도달한다. (...) 왜냐하면 포착이 최초에 포착된 감각적 직관의 부분 표상들이 상상력 안에서 이미 소멸하기 시작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이 계속 포착을 진행하면, 상상력은 한편에서는 얻는 것만큼 또 한편으로는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괄에는 상상력이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최대가 있는 것이다.”

상상력의 두 작용인 포착과 총괄은 다른 기능이다. 대상을 포착할 때는 무한히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총괄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한다. 대상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전에 포착한 부분들을 잊어버려 대상을 하나의 통일적 단위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것이다. 마치 공부는 무한하게 계속할 수 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록 앞서 공부한 것들을 점점 잊어버려 하나의 주제로 종합할 수 없는 사태를 맞게 되는 것과 같다.

연구자에게 공부가 노동인 이상 어느 순간 멈추고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고 총괄하여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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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 04:54 2026/07/26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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