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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옴] 전주사파들이 수구주사파들의 급소를 찌르는 글... | |||||||
![]() 글쓴이 : 자유인간 | |||||||
등록일 : 2004-11-23 20:32:00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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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관용'마저 '관용'할 순 없다" | |||||||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상) | |||||||
2004-06-02 오후 1:4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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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홍세화(57) <한겨레> 기획위원은 살아온 궤적이 남다르다.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조국을 등진 그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망명객 생활을 20년 이상 했다. 이 망명 생활 동안 그는 '삼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가난한 외국인에게 닥친 물질적 어려움이 겉으로 드러난 고통이었다면, 고국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을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과 동포들의 외면과 따돌림은 속 깊은 상처로 남았다. 이 '삼중의 고통'은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경기중.고, 서울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한국사회에서 최상층에 속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이런 그에게 프랑스에서의 긴 망명 생활은 스스로와 한국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가 됐다. |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프레시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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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 '피상적 인식', 이런 말을 들으면 노무현 지지자들이 또 섭섭해 할 텐데. 갑갑하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일도 있다. 어제(5월21일)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은 대단한 진전이라고 본다. 앞으로도 계속 싸움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희망을 보여주는 일 때문에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고종석 : 앞으로 상급 법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역사적인 판결이었다.
홍세화 : 그런 점에서 나는 노무현 지지자들한테 정말로 궁금한 게 있다. 이제 열린우리당이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 지금이야말로 참여정부가 진짜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을 때다. 그런데 왜 개혁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주저하나? 또 노무현 지지자들은 왜 그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안 하나?
고종석 : 아직 17개 국회가 개원도 안 했다. 좀더 두고 보자.
홍세화 : 고작 얘기되는 게 언론개혁이다. 이제 충분히 할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는데 열린우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안 보인다. 또 처음부터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회의원들도 좀더 긴장을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렇게 위태위태한데 그들은 왜 문제제기를 안 하는가? 나는 이렇게 신뢰가 안 가는데. 내가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라서, 그들에게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걸까?
프레시안 : 요즘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김혁규 총리 지명'이 큰 논란거리다.
홍세화 : 그런 게 개혁 세력의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아까 말했던 공화주의, 공익성이 부재한 탓이다. 나는 일제 부역 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민족을 배반한 그들이 다시 지배 세력이 된 데서 그 원인을 찾고 싶다. 그 때문에 사익 추구 집단이 지배세력이 됐고, 그 뒤로 모든 공적 행위가 공익성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사익 추구 행위로 변질됐다. 지금은 바로 그 뒤집어 입은 옷을 바로 입을 수 있는 중요한 때이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고작 그런 논란을 벌이고 있다니......
고종석 : 나는 도무지 김혁규 씨를 총리로 지명하는 노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래 일 잘할 수 있다는 거 인정하자. 선거를 위해서 영남 출신을 총리로 지명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사고도 인정하자. 그런데 왜 굳이 한나라당에서 온 사람한테 이 개혁 시기에 총리를 맡겨야 하나? 다른 영남 출신 중에도 총리를 시킬 만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텐데. 왜 한나라당 사람을 총리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홍세화 : 그런 게 실용주의 아닌가. (웃음) 나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식 수준이 차이가 나는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능력이라는 게 뭔가? 김혁규 씨가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능력이 아니지 않는가?
고종석 : 반세기 만에 역사적 전환기라는 얘기도 들리고, 열린우리당이 의회 권력도 장악했는데, 요즘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면서 또 한번 마음이 뒤숭숭하다. 당선 후 계속 실망스럽고 그렇다.
프레시안 : 고종석 선생은 끊임없이 노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고종석 : 맞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어느 정당에서도 자유로운 것 같다. 민주노동당이 의미 있는 정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안에 있는 많은 분파들 중에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원칙주의자들도 많은 것 같고.
홍세화 : 들어와서 바꾸면 되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불평만 하고 있으면 그게 바로 시민의식이 부족한 거야. (웃음)
"패권적 지역주의, 저항적 지역주의, 덩달아 지역주의"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문제에 아주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역시 지역주의 타파를 얘기하면서 지역주의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지역문제, 지역차별의 문제는 아주 뿌리 깊다. 지역주의라는 게 사실 시민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배 카르텔이 쳐놓은 망에 포섭된 거라고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고종석 : 경제적, 정치적 이익은 아닐 수 있어도 정서적, 감정적 이익은 있을 수 있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어서 지역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다. (웃음)
나는 일단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민주당 분당 과정은 크게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논리는 민주당은 지역당, 구체적으로 호남당이어서 앞으로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남 의석을 얻기 위해서 호남 의석을 버리는 것, 이것은 기존에 한나라당이 했던 '영남 지역주의'로 가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도 실패한 전략으로 드러났다.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많은 표를 얻었는가? 결코 아니다. 또 설사 이런 전략으로 열린우리당이 영남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더라도 이것은 명백히 지역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덕분에 약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비율이 너무 낮아서 혜택을 받았다고 하기가 민망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 영남 유권자 상당수가 지역구는 한나라당을 찍고 비례대표는 민주노동당을 찍었다. 이것은 절대 민주노동당의 지지표가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니라면 그런 투표 성향을 보일 수 있겠나. 이게 과연 민주노동당 지지인가? 대단히 회의적이다.
홍세화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에 간 지역구 표야말로 영남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지역주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도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은 거의 1% 내외의 지지율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고 형은 영남의 민주노동당 표가 단순히 열린우리당을 반대하기 위한 표라는 걸 지적한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남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얘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하고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고종석 : 프랑스에서 사회당에 한 표 주고 르펭의 인민전선(FN)에 한 표 주는 투표가 제 정신인가?
홍세화 : (웃음) 그건 프랑스의 예이고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다.
일단 민주당이 궤멸한 것은 지역주의의 성격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세 개가 있다. 우선 영남의 가장 강고한 '패권적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의 어떤 부류는 구제불능 수준이다. 두 번째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은 마치 민족주의가 팽창적 지역주의와 저항적 지역주의가 있는 것처럼 저항적 성격이 있다. 호남의 그것은 당연히 독재 정권 하에서 저항적 지역주의가 가진 상대적인 건강성을 가졌다. 이런 호남의 지역주의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이 둘보다 훨씬 그 강고성이 약한 충청도의 '덩달아 지역주의'가 있다. 이것이 지역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였는데, 이번에 행정수도 이전 등이 맞물리면서 선거 결과 사실상 해소됐다. 그럼 민주당이 왜 이렇게 궤멸됐느냐, 그것은 민주당이 저항성을 갖고 있던 호남 지역주의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공조한 탄핵은 패권적 지역주의와 순방향이다. 이것은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는 완전히 역방향이기 때문에 결국 그 저항성을 스스로 배반한 결과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공백을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고종석 :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은 호남에서 표를 안 얻는 게 선거 전략이었다. 이 쪽에서 얻으면 영남에서 깎이니까. 영남 인구가 많으니 호남 표가 필요 없었다. 나는 이런 호남 배제 전략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썼다는 게 정말 실망스러웠다.
정치적 지역주의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시작됐다고 본다. 그것이 뚜렷하게 그 모습을 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1980년 5월 광주 학살이었고. 그래 좋다.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이 있다. 최소한 영남 유권자들이 전두환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알아서 제거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 그런 학살과 연루된 사람들이 들어간 한나라당은 정서적으로, 윤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화해는 가해자 쪽에서 용서를 빌 때 시작되는데, 최소한 영남 유권자들이 그런 사람들은 정치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그 때 우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반공화주의 세력은 아니구나, 이런 안심이 들고. 그런 수준이 돼야 한나라당 후보가 호남에 와서 지지를 호소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유권자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을 공천하는 한나라당 지도부도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내가 전라도 출신으로 말하기 어려운 얘기긴 하지만, 한나라당이나 영남 유권자들은 호남 몰표 이게 뭐냐, 너희들 먼저 열어라, 이런 말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물론 민주당이 탄핵으로 용서할 수 없는 정당이 되면서 나는 내심 호남 유권자들의 반 정도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거의 다 열린우리당으로 갔는데 이게 바로 호남 유권자들의 한계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호남 유권자들한테 왜 너희들은 한나라당 안 찍었느냐,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얻은 지지율이 더 높다, 이런 식의 반론은 사태를 왜곡해 보는 것이다.
홍세화 : 나는 다시 한번 민주노동당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개혁이니 뭐니 이런 얘길 하면서도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변질되고 왜곡 되는 데에는 그것을 떠드는 사람들이 왼쪽 날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흔히 얘기되듯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지금까지는 왼쪽 날개가 없었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것이 움틀 몸통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다. 날개라는 게 몸통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몸통이 없으니 당연히 내가 말했던 공익성 같은 게 있을 턱이 없고. 이제 몇 번의 유산 끝에 막 아기가 태어나려고 한다. 이제 겨우 왼쪽 날개가 움트는 순간이다. 고 형도 감당 못 한다, 이런 얘기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들어와라. (웃음)
고종석 : 홍 선배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노력해보겠다. 어쨌든 민주노동당 원내진출은 역사적이다. 진짜 잘해야 할 텐데. 기대는 하면서 계속 지켜볼 것이다. 4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이 얻기를 바란다.
"비례대표제 확대, 국민 대표성 실현 문제"
홍세화 : 아까 고 형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이익을 봤다고 하던데, 지지율 13%에 10석이면 대표성이 왜곡돼도 너무 왜곡된 거다.
고종석 : 맞다. 열린우리당이 해야 할 일인데 과연 해줄지 의문이다. 사실 열린우리당도 40%도 안 되는 지지율로 과반수를 얻은 셈이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다 현 선거제도의 수혜자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싸우고 밖에서 여론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도 정당명부 비례대표 확대에 동참하는 것이 이익이다. 거창하게 나라를 위한다, 이런 얘기 할 것도 없이 열린우리당을 위해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한나라당을 위축시키고 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홍세화 : 한나라당의 박세일 씨가 처음 정치개혁협의회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 제안했지 않느냐. 그런 수준으로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추진할지 한번 지켜보겠다. 바로 그런 게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게 개혁인지 아닌지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물론 또 그 때가 되면 열린우리당은 그것은 다른 사안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웃음)
고종석 : 한번 기대를 해 보자. (웃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국민 대표성이 얼마나 실현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학벌ㆍ족벌ㆍ파벌, '벌(閥)'을 해체하라" | |||||||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하) | |||||||
2004-06-05 오전 9: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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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지인(知人)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두 사람의 대담은 정치적 민주화는 확장됐지만 빈부 격차 등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연대'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것으로 모아졌다. 앞서 두 사람은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각종 집단주의가 독재정권에 의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 '집단 속에 숨어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재벌, 학벌, 족벌, 파벌 등 집단에 기대 있거나 집단에 숨어 있는 '벌(閥)'을 해체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 연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이번 4월 총선을 통해 의회 권력이 보수 우익 세력에서 자유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것에 일정 정도 의미를 부여했다. 단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이라면 '벌'을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특히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서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됐던 두 사람의 대담 뒷 부분에서는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관련된 얘기가 주로 오갔다.
다음은 대담 뒷 부분. "상층 부르주아로 포섭된 기자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 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 개혁이 말해진 지는 굉장히 오래됐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여전히 안 보이는 것 같다.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이 존재하고. 고종석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언론 개혁이)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별로 기대는 안 갖고 있다. 신기남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상위 몇 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해 현재의 왜곡된 시장 구도에 변화를 가하는 식의 제도적 조치들이 이뤄진다 해도 여론시장을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과점 언론들 즉 조중동 논조가 왜 그렇게 보수적이냐. 사주들이 정말 친자본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가 됐다. 그전까지는 기자들 월급이 한국 사회 평균이거나 더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에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등은 월급쟁이가 받는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상층부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얘기하는데, 기자들이 편집장을 뽑는다고 좀 다른 논조를 주장하는 편집장이 뽑힐까? 데스크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기사를 쓰라고 하면 기자들의 논조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층 부르주아에 포섭됐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홍세화 : 고 형이 잘 지적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들의 평균 봉급은 2만4천프랑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월 5백만원, 연봉 6천만원 정도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거칠게 환산할 때 한 연봉 3천만원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해볼 때 조중동이나 방송사의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 고종석 : 이미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화한 현실에서 언론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방송만 해도 그렇다. MBC는 노조가 잘 떠받들어줘서 사장이 바뀌어도 개혁적인 논조다. 개혁적 사장이 간 KBS보다 더 개혁적이다. 하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익잡지인 <한국논단>에서 사상 검증할 때 방송 3사가 다 생중계했다. 이게 1996년, 고작 8년 전 일이다. 정치적 성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 16년이 넘었다. 물론 <한겨레>가 사회를 이만큼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그 신문사에서 한 때 월급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시장점유율에서 조중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본력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한겨레>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면 <한겨레>의 성격이나 기자들의 성향이 변할 게 뻔한다. 아무래도 기자는 좀 가난해야 할 것 같다. 너무 가난해서는 안 되지만......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가 너무 안락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다. 기자들은 약간 부족한 상태가 좋은데...... 이런 걸 법으로 못 만드나. (웃음) '조선일보 품질이 좋다'는 건 '한나라당 품질 좋은 정당' 격 프레시안 : (웃음)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논란이 됐다. 고종석 :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강연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일부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홍세화 : 노회찬 씨한테 노무현 지지자들이 엉겨 붙어서....... 고종석 :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조가 초청해서 간 게 무슨 잘못이냐', 이런 식의 해명은 사태를 잘못 보고 있거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노조 가입자라고 생각이 다를까. 너무 계급 환원적인가? 물론 나는 지식인이고 계급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노 총장이 '<조선일보> 노조 초청' 핑계를 대는 것은 찝찝하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회찬 총장을 비판하기 전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조선일보> 인터뷰 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열린우리당 인사들에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 못 하나? 홍세화 :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아쉬운 게 바로 그런 부족한 균형 감각이다. '안티조선'이란 대의에서 출발했다면 그런 부분을 짚어줘야 한다. 나는 노회찬 총장 사건과 관련해서 딱 한 마디만 하겠다. 나는 '<조선일보>가 품질이 좋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한겨레>에 몸을 담고 있어서 때문은 아니다. 그런 노회찬 씨의 말은 내가 민주노동당에 있는 노회찬 씨에게 '한나라당이 품질 좋은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얘기다. 고종석 : 노회찬 씨가 잠을 못 이루겠다. (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신문사에서도 <조선일보>는 안 본다. 그래서 품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 내 경험 공간에 <조선일보>가 없기 때문에 관심 끄고 산다. "언론 개혁, 결국 국민 의식 문제다"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없나? 홍세화 : 고 형은 주로 기자들의 부르주아화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조중동은 철저한 사익추구 집단이다. 그들이 가진 자본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를 위해 언론 권력도 활용하는 것이다. 신문을 아주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본의 극대화를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그런 게 '편집이 좋다', 이런 걸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제도화를 통해서 뭐가 가능할까? 그 폭은 아주 좁디좁다. 물론 좁은 폭이라도 제도적 개선은 꼭 필요하다. 결국은 국민들 의식의 문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프랑스에서 '국민의 신문' <한겨레신문>이 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 정말 소통이 되고 올바른 여론이 만들어지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신문이나 언론이 (국민 의식을) 따라오는 것이지 언론만으로 변화가 가능한 게 아니다. 조중동은 특히 더욱더 그렇다. 언론 개혁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 신문 자체의 영향력이야 점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신문에서 인터넷 매체로 간다고 해서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거대 자본이 인터넷 매체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만, <조선일보>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 자본이 인터넷 매체와 방송에 진입할 수도 있다. 어려운 얘긴지만 언론 개혁은 작고 날렵한 게릴라 언론, 풀뿌리 언론,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만들어질 때, 결국 인터넷 매체 형태가 되겠지만, 이런 매체가 여러 가지 분야에 포진해서 각개 약진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희망은 인터넷 매체에 있다. 한 가지, 과점 신문에 바라는 건 악의적인 오보를 안 하는 것이다. '기자적 양심'에서 거짓말을 쓰지 않는 것 정도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의 시각에서 봐라', '네 계급을 버리고 존재 이전을 해라', 이건 어려운 얘기이다. 미디어가 사회를 선도하는 건 여론 투쟁인데, 연대가 독립적 개인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이듯 작은 언론들,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언론들이 많이 생겨서 덩치는 안 되니까 수로 에워싸면서 싸우는 게 필요하다. 홍세화 : 그런 면에서 독립 언론, 인터넷 신문, 비주류 신문, 공영방송의 노조가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참 힘들다. 경쟁대상끼리는 극복대상 앞에서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
고종석 : 생물체로서 감각 기관에 한계가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다. 탄핵 정국에 수만명이 모여 광화문 촛불 시위하는 등 대처를 잘 했다. 요새 며칠 사이에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시위를 했다. 오늘도 촛불 시위를 하는데 얼마나 모일지 걱정이다. 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별거 아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얘기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라고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대의 감수성이 인류 바깥으로 못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난 철저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런 면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 얼른 동감이 안 간다.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웃음) 소말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 억압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들에게 연민과 연대를 하기 위해 자기 감각을 열어놓으려고 애를 썼으면 좋겠다. 이라크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도 심각한 문제이다. 일제 시대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미국 아닌가? 이스라엘, 영국, 일본은 사실 미국의 한 주나 다름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언론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고종석 : 프랑스 <르몽드>를 보면 바깥 문제, 특히 제3세계를 다룬 기사가 1면에 실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우리 신문은 국제 소식이 크게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잘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처음 보고, <르몽드> 등을 들어가 봤더니 다들 난리더라. 근데 한국은 조용했다. 한국 신문이 그 문제를 도배할 때까지 한 2~3일이 걸렸다. 우리는 다 그리스인이고 이라크 인이다. 인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물론 자연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지만...... 홍세화 : 휴머니스트이니까 더욱더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형도 말로는 그렇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 형 지적대로 한국 언론, 특히 공영 방송이 내놓는 외국 뉴스는 전부 토픽이다. 그걸 보고 참담했다. 방금 '우린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라크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 사람은 그 부분에 있어서 한 가지는 돼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미국인' 이런 식으로. 이라크인이나 그리스인은 못 될지언정 미국인은 다 돼 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미국의 홍수, 정전 사태도 마치 한국의 일처럼 크게 다룬다. 고종석 : 내 표현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주를 붙여야겠다. '그리스를 미국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웃음) 홍세화 : 지난 9.11 테러 당시 장 마리 콜롱바니 <르몽드> 사장이 '우리는 바로 미국인이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우리는 뉴욕 사람일 수는 있지만 미국인이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고종석 :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 한 사람의 무게와 제3세계 한 사람의 무게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은 아주 정확하게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 나이지리아 한 사람이 미국 사람 한 사람의 150분의 1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이지리아 사람 1백50명과 미국 한 명이 동일한 비중, 심지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서울대 개혁, 우선 정원이라도 줄였으면" 홍세화 : 아까 결국 의식이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교육 개혁이다. 고종석 : 홍 선배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오라면 기꺼이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홍 선배 전략은 그람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헤게모니를 쟁취하자.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얻어내자.' 최근 서울대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가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현실적 권력이 온존하는 한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완전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가든가. 학부를 유지하더라도 순수 인문학, 자연과학 등 소수의 학생들만 뽑아 엘리트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대학은 평준화하는 등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고교 평준화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고 출신들이 얼마나 저항을 많이 했는데. 지금 서울대 출신들이 전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서울대에 변화를 주기란 어렵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상층부 사람들도 자기 자식들이 서울대에 갈 가능성이 높으니 더욱더 그렇다. 나는 우선 서울대 학생수라도 지금보다 확 줄였으면 한다. 서울대가 규모도 크니까 점점 엄청난 권력 집단이 된다. 아주 뛰어난 사람들인데 수가 작다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작을 텐데...... 최소한 지금보다 정원이라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서울대 개혁의 한 축이 돼야할 교수들도 너무나 기득권에 익숙해, 외부에서 서울대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홍세화 : 나는 한국에서 교육자본이란 측면에서는 특혜자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인식 못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인 내 자식들이 교육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단호하게 서울대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정원을 줄이는 수준에서는 문제해결이 전혀 안 된다. 권력학교라는 게 무너져야 한다. 서울대는 지식과 부와 지위, 이 모든 걸 독점하는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다.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로 일어나는 사회악이 너무 심각하다. 고종석 :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저항도 엄청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홍세화 : 그러니 싸워야 한다. 교육혁신위에서 공동학위제 얘기가 나오는 등 과거에 비해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 기회에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판갈이가 있어야 한다. 대학서열화로 고등학교 교육이 완전히 왜곡돼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에서 제기했듯 교육과정 자체가 인권침해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권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또 아주 심한 경쟁체제라서 연대 의식을 가질 수도 없고. "한국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생동안 두 번만 긴장"
고종석 : 끔찍한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입시는 계급투쟁이다. 궁극적으로어느 대학이든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경쟁력하고도 부합한다. 홍세화 : 동의한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경쟁의식만 가득 차고 비판의식은 갖지 못한다. 기득권 세력들은 엘리트 교육과 교육 경쟁력을 얘기하곤 하는데, 한국의 엘리트가 엘리트냐. 엘리트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는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다. 극심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선택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 심리만 있다. 이게 서울대 출신 기득권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경쟁력은 경쟁력을 외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서울대가 학문 경쟁력이 있는가? 고종석 : 입학만 하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 대학이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경쟁이 이완된다. 졸업장만 받으면 되니까 자기 성숙은 절대 모색 하지 않는다. 한국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생에 걸쳐 딱 두 번밖에 긴장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성숙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계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게 없으니 한국은 애초 석학이나 뛰어난 과학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경쟁력을 위해서도 권력 학교인 서울대는 퇴출돼야 한다. 아니면 권력과 관계없는 인문학, 기초과학 이런 부분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남든지. 그것도 자신 없으면 국ㆍ공립대 평준화를 통해 걸러진 아이들이 학문 공동체 속에서 연마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고종석 : 학벌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는 사회 전체 행복의 총량이 큰 차이가 날 것이다. 홍세화 : 프랑스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다. 대개 고교 졸업자의 70%가 시험을 봐서 70% 정도가 합격한다. 이 중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바로 올라가는 학생이 28%에 불과하다. 2년 과정을 3년 안에 마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유급은 한번만 인정한다. 결국 56%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력서에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보고 몇 년 만에 수료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기재한다. 그러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ㆍ고등학교 때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미리부터 직업학교를 선택한다. 물론 프랑스도 엘리트 교육 한다. 프랑스는 아주 소규모로 일종의 직업 전문학교를 운영해 엘리트 교육을 한다. 그게 서울대와 같은 학교는 절대 아니다. 그들이 패거리를 지어봐야 아주 작은 규모도, 또 그들끼리 좌ㆍ우 이념에 따라 경쟁을 한다. 고종석 : 권력과 학위가 유착돼 있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학교라 할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박사 학위를 못 받는다. 여기 출신은 무조건 국립 중ㆍ고등학교 선생을 일정 기간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하면 그간 받은 돈을 물어내야 한다. 그리고 학위를 받고 싶으면 일반 대학으로 가야 한다. 홍세화 : 일부에서는 서울대가 없어지면 금방 연ㆍ고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대 없앤다고 해서 서울대 졸업생이 없어지나? 서울대 졸업생이 '연ㆍ고대가 제2의 서울대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또 서울대를 없애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싸움이고, 만약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면 연ㆍ고대 중심으로 학벌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공교육 획일성, 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가 문제"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평준화를 옹호하는 전교조와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이 대립해왔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는 공교육이 자율성이나 창조성과는 배치돼 평균적인 국민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고종석 : 나는 당연히 평준화에 동의한다. 평준화가 아니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전쟁에 내몰게 된다. 평준화라기보다는 공교육이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체제가 되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사립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사학에는 국가에서 일체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교육은 철저히 평준화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홍세화 : 사회 구성원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다. 교육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소양을 갖춘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이 기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사립학교도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줘야 할 것이다. 지금 공교육이 창의성, 개성을 죽이는 이유는 평준화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국가주의 때문이다. 주입식 또는 의식화 교육, 과거에는 반공 의식화를 계속하지 않았나. 그 다음에 중요한 부분이 국가의 재정 지원이다. 이는 무상교육 문제와 결부되는데, 공화주의 관점, 시민의식이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종석 : 이게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바깥에서 국가주의가 척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가 국가주의, 애국심의 함양기관이 되기 쉽다. 학교 바깥의 시민의식이 충만해 있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국가주의가 학교를 통해 쉽게 주입되지 않나. 홍세화 : 교장 임용 제도 등 각종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 권력 요구를 충실하게 따를수록 교장, 교감이 되고 학교를 반(反)민주주의적이면서 권위적인 구조로 온존시키고 있다. 교장이 국가주의 교육의 충실한 마름이면서 단위학교의 제왕이 돼 있는 구조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고리다. 이를 제도 속에서 분쇄해내는 게 개혁정권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병영구조다. 실제 이 땅에 근대학교를 세운 게 군국주의 일본인데, 일본이 뭘 본 따서 만들었겠냐. 바로 군대이다. 정말 나쁜 의미의 국가주의 교육이다. 반세기동안 축적돼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반전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육 과잉상태, 무상교육하고도 남아"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은 아까 무상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홍세화 : 내가 연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상교육 문제다. 정말 한국의 교육계가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경제력이 커가는 것과 비례해서 무상교육이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상교육 제도는 흔히 말하는 '사회 연대'의 구체적 실현의 모습이다. 서민들의 고통의 주요 내용이 교육비 문제다. 또 사교육비 문제에 있어서도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무상으로 하는 게 그 해결의 중요한 열쇠다. 지금 50여년간 공교육 제도를 하면서 얼마나 물적 토대가 늘어났나.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무 교육화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지 않고는 사회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강제하고 있는 사회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있어야 된다. 이미 한국의 교육은 과잉상태다. 왜곡돼 있기 때문에 과잉이 된 거다.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그 얘기는 뭐냐면 무상교육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상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가능한 일이고 해야 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사회 연대'의 측면에 더 주목해서 얘기해보자. 홍세화 : 무상교육을 통해 '사회 연대'라는 중요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무상교육은 계층 간 '사회 연대'이고, 세대 간 '사회 연대'의 실현이다. 교육자본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개입할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은 각자 획득한 교육자본이 사유화 돼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또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성원들이 쌓은 교육 자본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 자본을 들여, 자기가 잘나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기대하는 것도, '사회 연대'도 불가능하다. 무상교육 제도를 갖추는 것은 그 사회의 책임 의식과 '사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고종석 : 앞에서 얘기한 레옹 부르주아도 무상교육을 '사회 연대'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홍 선배 말대로 교육과 관련해 우리사회 개혁 과제 중 중요한 두 가지는 학벌 카르텔을 타파하기 위한 서울대 폐지와 교육 자본의 고스란한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대학 교육까지의 무상화일 것이다. "계층 고착화로 '개천에서 용 난다' 불가능" 홍세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요새는 불가능하다. 계층의 고착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도 나왔다. 그러나 계층의 고착화가 돼 가는 과정에서 강남 얘들이 점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상층 계급이 경제적 자본에 의해 상징 자본도 같이 점유해나가는 문제를 지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도 불평등 구조가 더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서울대 혁파와 무상교육 문제는 더욱더 중요하다. '사회 연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고종석 : 교육 자본을 포함해 상징 자본과 경제적 자본 사이에 파열을 내야 한다. 다 고스란히 독점하는 게 아니라. 좀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김영삼 정부에서 권력과 부를 같이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면서 고위 공직자들 재산 신고를 하도록 제도화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한꺼번에 그것들을 다 갖는 게 아니라, 이런 자본이 있으면 저런 자본은 좀 덜 갖도록 하는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좀 모자르게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이것 참,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데...... (웃음) 홍세화 :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라니까. (웃음)
"경제적 민주화 진전하기 전에 '2004년 체제' 말할 수 없어" 프레시안 : 오늘 대담 내용만 놓고 보면 고종석 선생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많이 진전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개인이 이 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리가 제약받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고종석 : 최근 <한겨레21>에서 탄핵 정국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현 상황에 대해 '2004년 체제'라는 말을 썼다. '1987년 체제'가 끝나고 '2004년 체제'라는 얘기인데, 전혀 말이 안 된다. 1987년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항쟁을 통해 6월29일 노태우 씨가 6ㆍ29선언을 했고 그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틀이 만들어졌다. 또 그해 7, 8월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어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1987년 체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개의 큰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6ㆍ10으로 시작한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7ㆍ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하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은 '1987년 체제'가 꽤 진화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이 있지만... 녹음기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욕을 노골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게 아닌가? (웃음)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7ㆍ8월 노동자 투쟁이 던진 과제는 진전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유행처럼 들어오면서 또 국내 경제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노동의 유연화'니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를 점령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되는데 빈부격차는 더 거치는 과정에 서 있다. '1987년 체제'의 기둥이 나란히 가는 게 아니라 기울어서 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을 '1987년 체제'를 극복한 '2004년 체제'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87년 체제'에서 그 다음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고종석 : 맞다.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시위 이상의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가 있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 와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시위가 그 정도 열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식과 감각을 다 쏟아 부어 '1987년 체제'를 완성시켜 나가야한다.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이게 단순히 남한 민중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라크 인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웃음) 홍세화 : 지금 애기하는 걸 들어보면 민주노동당에 왜 안 들어오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웃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그것을 지향하는 당은 버겁다고 그러는지. 프레시안 : (웃음) 고종석 선생을 옹호해야겠다. 고 선생은 책에서 "집단화되지 않는 불우한 개인들"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사회 연대'는 측은지심의 일반화" 홍세화 : 결국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민권 차원의 문제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언론 개혁, 공무원들의 정치적 자유 등은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는 중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권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외 의존도 등을 감안할 때 참 한계가 많다. 거기다 이라크 파병 반대 목소리도 아주 작고. 참 어려운 과제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가 어렵다. 고종석 : '사회 연대'는 결국 자기가 있는 처지에서 사회ㆍ정치적, 상징적 자본이 모자란 사람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그걸 연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나는 '연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 못났는데 못난 사람들끼리 한번 통해보자, 이렇게 말이다. 맹자가 얘기한 어짐의 끝머리는 측은지심이다. '사회 연대'가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닐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펴냄)이라는 책에서 지적한 열림도 연대의 태도고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닌가 싶다.
홍세화 : 그런 '열림'을 '열린'우리당에 요구해야 하는데 말야. (웃음) 고종석 :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도 아니고,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라서 요구하기가 참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야겠다. (웃음) 홍세화 :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왜 연대 의식과 멀어졌나. 인권과 관련해 부채 의식이 있다고 본다. 바로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학살 문제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모르지만 민간인에 대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 왜 죽었는가. '공산당'의 '공'자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게 일제 부역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것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하나는 가해자들에게 공격성을 더 줬다. 피해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채 의식을 줬고. 어떻게든 누명을 벗겨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사회 연대'보다는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추한 자본주의 신봉자들로 몰고 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6ㆍ25 특별법 제정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고종석 :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다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백 하나 해야겠다. 나는 사실 '추빠(추미애 전의원 지지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나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다. 최근의 행보는 안타깝지만 또 연민이 가기도 한다. '추빠'로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추미애 씨가 적극적으로 그 제정에 관여했던 '4.3 특별법'도 방금 홍 선배가 지적한 그런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웃음) 프레시안 : 앞으로 한번 더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웃음)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다. |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 |||||||
'대화' <1> 전순옥 vs 조주은, '여성, 노동, 그리고 삶' | |||||||
2004-05-15 오전 9: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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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옥 이야기 동대문 창신동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인 전순옥(50)씨에게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전순옥씨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어머니 이소선씨와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씨는 22세까지 봉제의류 공장에서 일했고 그 후 노동조합 활동, 지역운동을 했다. 그녀는 35세의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 2001년 런던 워릭대에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다룬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They are not machines)>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그해 워릭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최근 출간된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동일방직노조·청계피복노조 등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 1백여명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 또 그녀들의 삶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씨는 유학을 떠나기 전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대학과 성공회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에서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하며 "저소득층 여성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씨는 또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A Single Spark)을 영어로 옮긴 데 이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의문사진상위원회 등의 한국 민주화운동사 영문 번역 작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뒤늦게 그녀의 인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 크리스 조엘(61)도 함께하고 있다. 조주은 이야기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인 조주은(38)씨는 국내에서 드물게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학자다. 노동, 노동운동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삶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조씨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쓴 울산 현대자동차 가족에 대한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펴냄)는 올 상반기에 출간된 노동 관련서 중 도드라졌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곳인 가정은 노동 정책과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상호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우리나라의 학문 풍토에서 조씨는 일찌감치 어려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런 선택에는 남다른 개인사도 한몫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깎이 운동권이 돼 만난 노동운동가인 남편을 따라 울산에 내려가 '전업 주부'로 살았던 경험은 연구자로서 그녀를 '관찰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도 '노동'과 '가족'을 화두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순옥ㆍ조주은 이야기 두 사람에게 공통된 이슈는 '여성'과 '노동'이다. 지난 6일 오후 동대문 '참여성복지센터'에서 첫 대면하자마자 둘은 서로의 연구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대담은 시작됐다. 대담을 마치면서 전씨는 조씨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남성 연구자에 의해 경제주의적ㆍ고립적 운동으로 폄하돼 왔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두 사람은 연구 대상을 '대상화'하는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연구 방법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기존의 현학적 풍토에 대한 저항 의식도 비슷했다. 조씨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고, 전씨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얘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남성,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의식도 똑같았다. 조씨는 "대기업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전씨도 "영국의 노조가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은 노조의 조직 이기주의 때문이었다"며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하는가?",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대담은 사회자가 별 끼어들 필요, 아니 끼어들 틈 없이 세 시간 넘게 계속됐다.
대담은 지난 6일 저녁 '참여성복지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 폄하로 이어져" 프레시안 : 전순옥 선생의 책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와 조주은 선생의 책 <현대 가족 이야기>는 상반기에 출간된 주목할 만한 노동 관련 책이다. 서로의 책을 읽은 소감이 있을 듯하다. 조주은 : 먼저 시작하겠다. 그간 '노동운동'의 역사는 있는데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없었다. 2000년에 개인적인 이유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정말 한 권도 찾을 수 없더라. 일제 강점기 때 부문운동의 하나로 여성노동운동이 좀 언급돼 있고,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던 강주룡 열사의 얘기 등이 부분적으로 인용될 뿐이었다. 이런 무관심은 자연히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남성이 쓴 많은 노동운동사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0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1995년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노동운동이 197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여성노동운동의 경제주의와 고립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능했다고 쓰고 있다. '그건 아닌데', 하면서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의미에서 전순옥 선생님이 쓴 이 책은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전순옥 : 나는 일단 <현대가족 이야기>라는 제목이 참 좋더라. 현대에 살고 있는 가족이 파괴되고 있잖아. 난 제목만 보고도 많이 사서 볼 것 같던데. (웃음) 책은 많이 팔렸나? 조주은 : (웃음) 거의 안 팔렸다. 전순옥 : 사실 노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많은데 실제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이 책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돋보기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라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론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복잡한 이론을 사용하기보다는 책에서 서술되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가능하면 그대로 반영하려는 노력,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본 것도 참 좋았다. 조주은 : 글을 쓸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순옥 : 그런 부분이 나랑 맞았다. 내 책의 주인공들도 내가 인터뷰를 할 때, 전에도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도대체 내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서 인터뷰하는 게 싫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주인공들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직접 자기 얘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면서 글을 썼다. 나는 학자라기보다는 노동자 출신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좀더 유리했고. 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서구 페미니즘이 제3세계 여성을 대상화한 것은 오류"
프레시안 : 책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연구에 이견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 전순옥 :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서구의 여성학자들이 아시아 개발도상국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게 됐다. 그들은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은 희생을 보면서, 여성노동자들을 '희생자로 개념화((victimization)'하곤 한다. 대부분이 이런 접근인데 나는 이렇게 제3세계 여성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제3세계 여성들은 무조건 순종적이면서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들을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떨쳐 일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우리나라의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현대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접근이 좀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현대자동차 노동자이긴 하지만 그도 노동자 출신은 아니지 않느냐, 조주은 씨도 마찬가지고. 그러다보니 조주은 씨도 노동자 가족들 속에 파묻히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본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조주은 : 물론 그런 측면에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사실 울산에서 이 책은 일종의 '금서'다. 나는 남성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했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성찰할 부분이 있다면 성찰하고, 너무 일상이나 관성에 젖었던 자기들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객관화시켜 자기비판의 계기로 삼기를 바랐는데...... 남성 노동자들은 아예 안 읽더라. 남편 동료들한테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말을 안 한다. 왜 자기들 사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까발려서 우리를 죽일 놈을 만드느냐, 자본가를 욕하고 기업을 욕해야지 왜 우리를 비판하느냐,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도 책을 보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다고 애기했다. 한 여성은 나한테 "그래 언니 말이 맞아. 내 남편이 생산직 노동자가 맞긴 한데 그 책을 보니까 갑자기 내 처지가 서글퍼지더라"고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연봉 4~5천만 원씩 받지만 그래봤자 결국 너희는 노동자다, 이렇게 규정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전순옥 : 실제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는 것을 까놓고 얘기하는 건 안 좋아한다는 얘긴데, 그게 일반 노동자의 의식이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임노동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정작 스스로 노동자 또는 노동자의 자녀라는 의식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갑갑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임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예외적인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주은 : 이견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될 텐데, 선생님 책을 보면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과 관련된 국내 여성학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전순옥 : 사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여성운동은 없었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여성평우회, 여성민우회가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여성운동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성학자들은 1970년대 '여성들이 여성의식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에서 단체교섭을 할 때 여성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거나, 여성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은 없었다는 둥. 이런 비판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조금은 무책임한 것이다. 자기들은 그 때 뭘 했나? 프레시안 : 그 당시 여성노동운동을 살펴보면 여성노동자들의 '생활 공동체' 같은 게 존재했다. 그런 모습을 '자생적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순옥 선생님도 '한국적 페미니즘'이라는 이유로 그런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여성노동운동은 어떻게 10년을 버텼나"
전순옥 : 그렇다.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어떻게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이고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10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그 힘이 바로 지적한 그런 데서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구들은 당시 교회에서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해준 것을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보다는 바로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정말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너무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다. 집에서는 말순이, 섭섭이, 끝단이, 큰년이, 막내로 불리다 공장에 오니까 시다 1번, 미싱사 3번으로 불렸다. 그런데 노동조합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줬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위원장, 교육선전부장 등 직함으로 불리고. '아, 나한테 이름이 있었구나', 이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자아, 존재를 찾은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공장에서 사장들하고 단체교섭을 하면서 사용자가 "미스 리"라고 부르면 "내 이름은 이총각이고, 지부장이다"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고 또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아 노동조합이야말로 나의 자아를 지켜주는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을 지키는 데 헌신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프레시안 : 그런 점과 연관해서,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순옥 : 맞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과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개인적으로 지도자로 우뚝 서려고 하는 성향(individual-oriented)이 있고 여성은 같이 하려는 성향(group-oriented)이 있다고 설명된다. 노동조합 운영에서도 이런 면이 발견된다. 남성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려다 보니 굉장히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운영할 때 모든 것을 조합원들과 같이 의논했다.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조합원들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려고 했고. YH노조의 최순영 씨 같은 사람은 조합원 3천 명의 이름을 다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단체교섭을 할 때는 '빠다 조건'이라는 게 있다. 노조 지도자가 사용자한테 이번에 임금을 10%에서 1%를 더 올려주면 내가 노동자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노조가 시끄럽지 않도록 하겠다고 물밑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합원들한테 는 '당신들이 나를 위원장으로 뽑아준다면 다른 사람보다 임금을 1% 더 올리겠다'고 말하고. 근데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에서는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단체교섭을 할 때 임금 인상률을 지도부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했다. 1970년대에는 소그룹이 많았는데, 그런 소그룹에서 '이번에 우리가 임금을 얼마를 올려야 하는지' 자기들끼리 논의를 한다. 조합원들이 임금 인상률을 15%로 결정되면 집행부가 논의를 해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 결정을 내리고, 공고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간부들은 교섭에 들어가서 반드시 15%를 올려야 한다. 조합원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다른 '빠다 조건'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조합원들은 그들대로 내가 주장한 15% 인상을 간부들이 사용자와 교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부에 신뢰와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여기서 지도부는 또 싸울 용기와 힘을 얻는다. "혼자 결정하다 보니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돼" 조주은 : 동감한다. 남성 노조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런 얘기들이다. 전순옥 : 맞다. 그런 남성 노조 지도자들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달려가다 보니 유혹에도 쉽게 무너진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된다. 어용이 되기 쉽다. 박정희가 1960~70년대 노조를 완전히 어용화시켜 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남자들 몇 명만 잡고 있으면 노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그런 분위기 탓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들이 중심이 된 노조는 그럴 수 없고, 비타협적이어서 오히려 박정희한테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더욱 박정희는 민주노조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YH노조가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할 때 겨우 여성 2백여 명이 농성을 하고 있는데 중앙정보부 김재규가 관여를 하지 않았느냐. 그만큼 그들의 행동을 큰 타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두 사람을 회유하는 것으로 안 되니까 뿌리째 뽑아서 노조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바로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만들어냈다. 조주은 : 당시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남성노동자들이 앞장서 방해했었다. 구사대의 대부분이 남성노동자였고 여성노동자가 출근 투쟁할 때 위협을 가하고, 머리채를 잡으며 폭력을 가했던 게 다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선생의 연구에서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순옥 : 섬유나 방직 산업에서도 총 4천 명이 일하는 공장에 남자는 한 5백 명 정도에 불과했다. 1천3백 명 있는 공장에서 남자는 1백 명 정도가 있었고, 나도 당시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당시 남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당했느냐, 같은 노동자들에게 당하는 게 더 분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대답이 놀라웠다. 그들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남성노동자들도 결국 사용자에게 고용된 희생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오히려 그런 남성노동자들을 노조 지도부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계급의식이 훨씬 강했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로 끌어가지 않았다. 만약에 그 남성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자본가들이 바랐던 '노-노(勞-勞) 갈등'이라고 여겼다. 개인적으로 이견이 있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최대한 그대로 반영하는 게 기록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책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적대적 관계'가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 노동운동 썩었다" 프레시안 : 현재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다. 두 분의 연구는 현재 이런 노동운동 경향에 대한 아픈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자기비판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조주은 : 극단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현재 노동운동은 '썩었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하면서도 '삐삐 아줌마'를 불러서 같이 놀고... 울산에서 직접 보고 들은 차마 얘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집행부를 장악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상견례를 핑계로 룸살롱을 같이 가는 경우도 많다. 사용자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아가씨들 끼고 양주 마시면서 놀고. 사용자가 용돈을 쓰라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면서 미끼를 던지면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기도 한다. 적어도 남성 노동운동가들도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전망을 가지고, 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굉장히 자괴감이 든다. 오히려 나는 노동운동의 희망이 지금 현재 가장 변두리에 있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 그 중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있는 노동자들의 활동 속에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그들의 활동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순옥 : 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조건은 자본주의화 되지 않는 것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을 많이 올리는 것은 결코 자본과 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임금을 조금씩 올려 받으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그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된 노동자라면 그런 것들을 오히려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임금을 올려 받아도 자본가처럼 잘 살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임금인상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그것이야말로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는 연봉 4~5천만 원, 심지어 6천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강연을 하러 가면 아예 노조에서 그런다. 강연 듣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임금이 올라가면 자연히 노동조합의 힘은 없어진다. 어느 정도 임금이 되면 노동자 동료들과 함께하기보다는 가족들과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각종 소비문화를 즐기고 싶어진다.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노조가 집회를 해도 '그것은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이다. 정말로 자본가들이 바라는 그런 노동운동이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영국 노동운동 조직이기주의로 망해. 현 대기업 노조 권력 다툼에 몰입"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영국 노동운동이 망했다고 본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 등 주변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추구하는 데 등한시했고 결국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다. 그것을 절묘하게 이용했던 게 바로 대처다. 1980년대 대처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조합원 수를 줄여야 했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배경에도 이런 사정이 있었다. 국영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들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한 사업장에서 반 수 이상의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영국의 노조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이런 공세를 당한 데는 노조의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영국에 처음 간 1990년 초에 노동자 대회를 갔는데, 2백 명이 참석했더라.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성공할 때가 있고 기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런 것을 똑바로 배워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 현재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서로 조직의 권력을 잡는 데 몰두해 있다. 민주노총 현대자동차 노조 자유게시판을 한번 봐라. 내가 남편하고 5년 정도를 떨어져 있었다. 남들이 남편이 '바람'을 필지도 모른다면서 걱정하곤 할 때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혹시 다른 여자하고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자유게시판에 뜬다. 눈에 띄는 신인 노동운동가가 부인하고도 떨어져 있는데, 저 뒤를 캐면 속한 조직에 흠집을 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감시를 하는 거다. 남편이 속한 조직의 상대편 조직 사람들이 내 남편을 지켜주고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웃음)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에는 이번에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나왔기 때문에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다. 다음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을 하는 것은, 이후에 누가 울산 북구 국회의원을 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 말로 못하는 사정들이 너무나 많다. 전순옥 : 사실 우리 노동운동 속에 보기에도 민망한 추악한 계파 싸움이 있다. 다들 다른 이데올로기를 표명하지만 사실 자기 조직을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지 노동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안다. 서로 자기 정파를 살리기 위해서 내분을 하고, 그 때문에 지도자들을 믿고 따랐던 노동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이렇게 지도부가 계파 싸움에 몰두해 있는 동안 조합원들과 지도부의 괴리감이 커진다. 지도부가 뭘 하고 다니는지 조합원들이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지도부 불신임'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속에서 노동운동의 노하우가 축적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도부는 능력 없는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더 계파 싸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프레시안 : 조주은 선생의 남편도 현대자동차 노조 활동가였다. 남편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 조주은 : 남성노동자들을 너무 비하하는 표현들이 있어서 걸린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면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성적인 시선으로 대한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을 "그러기 쉽다" 이렇게 고치는 식으로. (웃음) 전순옥 :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여성은 18명을 인터뷰했는데, 현대자동차 남성노동자들의 수는 적다. 일부러 아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 얘기를 쓴다고 해도, 부부 양쪽 얘기를 같이 들으면 내용이 더 풍부해졌을 텐데, 왜 그랬나? 남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 아니면 의도적이었나? 조주은 : 약간 의도적이었다. 이 연구를 하기 전에 울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부부를 같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부인은 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그런 거 보면서 같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부부를 동시해 인터뷰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일 텐데, 울산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럴 때 남자들은 대개 "나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너는 뭐라고 했느냐. 너한테 이런 질문 할 테니 이렇게 답해라", 이런 식으로 아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내의 목소리에 주목하기로 했다. 프레시안 : 혹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세대차나 또는 시각차는 없었나? 조주은 :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전순옥 선생의 책은 남성적 시각이 주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책 전체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노동자 중에도 가장 힘없는 노동자에 마음 가. 그게 바로 여성노동자" 전순옥 : 이 책을 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여성주의자인지 안다. 또 여기 창신동에 와서 '참여성노동복지터'를 하고 있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냐'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말한다. (웃음) 페미니즘을 거부하기 때문은 아닌데 어쨌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노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동계급의 성향이 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노동계급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 같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노동자 쪽에 내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항상 그곳에는 여성이 있었다. 프레시안 : 괜한 것을 물은 것 같다. 그럼 상대방에 대한 조언이나 바람이 있을 법하다. 전순옥 : 나는 오늘 조주은 선생이랑 같이 얘기를 해보니까 앞으로 같이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앞으로 빈민 여성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한번 해보고 싶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방점은 다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일을 거라고 기대된다. 조주은 : 나도 그 네트워크에 꼭 끼워 달라. (웃음) 나는 전 선생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 게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 <한겨레21>에 내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렸는데 거기에 '여성학자 조주은'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 때 기분이 참 묘했다. 내 자신부터 여성학자라고 규정되는 게 당혹스러웠다. 나는 전순옥 선생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선생이 하는 일이 가장 앞서가는 여성주의적 실천과 연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목소리 대신 알려주는 게 내 할일"
프레시안 :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전순옥 : 내가 연대하고 싶은 사람들, 이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었다.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 시간을 일했고,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가 하나도 없다. 기존의 통계들은 너무나 공평하지 못하고 자의적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통계마저도 거부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고, 노동운동도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이 사람들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살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들의 통계, 아니 우리들의 통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내 꿈이다. 영국에서 학위를 마쳤을 때, 그 학교에 자리가 났었다. 사실 고민하면서 영주권 신청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굳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마침 성공회대학에 연구교수 자리가 생겨서 가게 됐는데 거기도 딱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내가 원래 이 지역에서 여성노동자 공동체, 탁아소를 했다. 이제 외국까지 가서 박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까 주변에서 '박사까지 하고 이걸 하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바로 박사까지 했기 때문에 꼭 여기로 돌아와야 했다고 생각한다. 전태일 오빠는 70년대 노동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가 보잘 것 없는 노동자였기 때문에 아무도 귀를 안 기울였다. 만약 전태일이 대학생이었어도 그랬을까? 여기서 1960~70년대부터 노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이 16시간씩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니까 인터뷰도 하고, 한마디 하면 신문에도 실리고 그러더라. 그게 바로 외국 유학 다녀온 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주은 : 나는 아직 학위 과정 중에 있으니까 큰 포부를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노동자 가족 문제에 계속 천착해 들어갈 생각이다. 솔직히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현대가족 이야기>는 노동자 안에서도 가장 상층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가족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싶다. 또 민족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 홀대 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보고 싶다. "권력 가진 이들의 정체된 의식이 사회의 정체 낳아"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각자 영역에서 두 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나. 전순옥 : 요즘엔 현대 사회와 가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곤 한다. 가족이 어떤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서구와 달리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 동안 많이 변했더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경제 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열중하다 보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 사회도 거시적인 것보다는 좀더 미시적인 접근을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했나. 왜 우리가 그렇게 혁명을 목소리 높였나. 바로 내 삶을, 또 이웃들의 삶을 좀더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나? 그게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가치관을 어디다 놓느냐에 따라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부터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때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달려갈 것인지를 점검한 다음에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조주은 : 질문에 답하기가 막막했는데 전순옥 선생 말씀을 듣고 보니 감이 온다. (웃음) 우리 사회는 현재 엄청난 변화와 정체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여자가 법무부 장관을 하고, 그가 이혼했다는 게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 난 두 아이 엄마인데 큰 애가 '가정환경 조사서'를 갖고 왔다. 너무 놀랐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그 양식 그대로더라. 여성,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좀더 힘 있는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된 의식이 바로 사회의 정체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고 힘을 가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고. 변화의 가능성과 과거의 정체가 혼돈돼 있는 이럴 때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진 사람들부터 우선 변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 사회 남성들부터 조금씩 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
작금의 시민운동을 개탄한다 [인권연대] 무엇을 위한 운동인가 작성날짜: 2005/02/24 인권연대기자 시민단체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겉으로는 깨끗한 척 하면서 사실은 시민운동을 이용해 돈벌이나 하고 있다는 비아냥부터 시민운동은 정치적 진출을 위한 발판이다. 정권의 홍위병이다.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하는 무책임한 집단이다. 선출되지도 않았고 시민도 없는 집단이 너무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별 이야기가 다 들린다.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식상한 법인데 듣기에 좋지 않은 이야기인 탓인가, 막상 이런저런 비판을 듣는 시민운동가들은 비판에 대해 상당히 무덤덤해 보인다. 내가 당당하면 그만이지, 내가 깨끗한데 뭐. 일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하면 좋은 뜻을 갖고 고생하는 다수에게 심각한 피해가 갈 수도 있잖아. 뭐 대충 이런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여기다가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불순한 책동이란 생각까지 보태지면 무덤덤한 태도는 이내 방어적으로 변하게 된다. 비판은 모략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 에코생협 보도파문으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최 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12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환경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시민의신문 DB자료> 이정민 기자 jmlee@ngotimes.net 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비판에 대해 자주 내세우는 논리는 실용주의적이다. 명백히 범죄를 구성할 정도의 잘못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까지 엄밀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실용주의 노선의 몇가지 사례이다. 사례 1: 지역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지난해 보수적인 색채의 지역개발회로부터 약 2천만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역개발회는 개인 및 장학회 등 법인들이 그 활동가를 위해 목적기탁금 형식으로 모은 돈을 전달했을 뿐이며 ‘어떤 특정한 의도’는 없다고 했고, 활동가가 속한 단체는 “지인 등 20여명이 개별적으로 모아 지원한 후원금을 가지고 우리 단체의 감시. 견제 기능을 문제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 활동가는 11년 동안 시민단체에서 일했으며, 지난해 8월 1년간 안식년을 받아 미국의 한 대학으로 NGO 관련 연구를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이 단체는 경제정의.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평화적 시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주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례 2: 시민참여, 시민권리 찾기, 시민에 의한 권력 감시, 시민봉사, 재정자립을 주요 활동방향으로 설정하고 활동하는 지역의 대표적 시민단체에 최근 상공회의소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인사가 대표로 취임했다.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에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민단체와 상공회의소의 어색한 간극은 “지금은 보수나 진보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지역 현안을 해결할 때”라는 취임사 한마디로 얼버무려졌다. 사례 3: 환경운동연합이 최근 원자력발전소 등 감시 대상 기업들에게 물건을 강매했고, 대표가 이사로 있는 자동차 회사에도 대량납품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경련은 “기업에만 판 것은 아니다”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식의 사례는 끝이 없다. 거의 브로커 수준에서 피해자들의 ‘뽀지’나 뜯고 다니다가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시민단체의 잘못이 단순히 일부 인사의 일탈행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말로는 대안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온갖 연줄이 단체를 운영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되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학연, 지연, 혈연, 정파 등의 패거리가 판을 치고, 패거리의 이해와 요구에 충실하지 않으면 당장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적당히 밀어주고 당겨주는 구조에 충실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쉽지 않다. 패거리의 구조는 연대의 질서라고 불리기도 하고, 동지애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그 배타적이고 속물적인 속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돈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적 풍토에서 회원의 회비만으로 단체를 운영하기 힘든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힘든 것과 불가능한 것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시민단체가 이런저런 정부지원금에 눈독을 들이고, 의도가 뻔히 보이는 부당한 지원에 애써 무감각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정부지원금이나 각종 수익사업에 기대 10명이 일하는 것 보다 회비만으로 5명이 일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고통스런 선택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주 내세우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적 노선이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노선이 운동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면 당장에 폐기되어 마땅하다. 운동이 운동이기 위해서 가장 절실한 것은 원칙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운동에서 원칙이 중요하다고 하여도, 지금이 1987년이 아닌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많은 것이 변했다. 정권교체가 있었고, 역사상 가장 개혁적이라는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지도 2년이 지났다. 더 이상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는 세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과연 세상은 바뀌었나? 우리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리던 꿈은 이제 이뤄졌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소외’되고 있고, 아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있으며,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돈이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 돈이 없어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 돈이 없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당장의 죽음을 무슨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소수의 부자들이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현실은 부의 양극화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근사한 말로 포장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소비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들도 끊임없이 학대당하고 있다. 자연, 공동체, 가족 등 우리가 말로는 소중하다고 인정하는 가치들이 돈과 무한소비 때문에 파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이나 인간은 원래 그래, 현실 사회주의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망해버렸잖아’ 하면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그래도 희망을 찾아 부단히 움직이고, 큰 방향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고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것 같은 고독 속에서 투쟁에 투쟁을 거듭하는 것이 운동이 아닌가. 운동하는 사람들만이라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원칙을 제시하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가난한 민중에게 무엇이 더 유리한가,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골몰하며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이념을 갖고 원칙을 부여잡고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닌가.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 교조적인 태도만 갖고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겠냐며 유연한 대응, 즉 실용주의적 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실용주의적 노선은 꼭 운동단체가 아니어도 정부, 기업, 언론, 학계 등에서 모두 한결같이 믿고 따르는 노선이 아닌가. 모두들 실용적으로 갈 때, 그건 아니라고 말하는 원칙론자들이 있어야 세상은 그만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운동마저 실용주의적이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운동의 생명과도 같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더 넓은 사무실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인력이나, 이를 통한 더 많은 영향력과 더 많은 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운동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생명을 잃고서 얻는 더 큰 영향력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이 글은 [열린사회 2005년 3,4월호]에 게재된 내용임을 밝혀 둡니다. |
“매일 4명씩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 |||||||||||||||||||||||||||||||||||||||||||||||||||||
노동부, 산재사망 줄이기 대책 마련 나서 | |||||||||||||||||||||||||||||||||||||||||||||||||||||
노동부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를 줄이기 위해 다음달 중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등 적극 나설 방침이다. 특히 노동부는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재해에 비해 단기간 내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업무상 사고에 따른 사망재해 줄이기에 우선 초점을 둘 계획이다. 3일 노동부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에 따른 사망자수가 지난 99년 1,456명, 2000년 1,414명, 2001년 1,551명, 2002년 1,378명, 2003년 1,533명, 지난해 1,537명 등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매년 하루에 4명씩 죽어가는 셈이다.<표참조>
우리나라의 업무상 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당 사망자수)은 1.47로 미국 0.60, 일본 0.33, 독일 0.29 등 다른 나라(2001년 기준)와 비교할 때 최대 5배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업무상 사고의 상당수가 추락, 감전, 협착, 낙하 등 재래형 산재라는 점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이유이며 건설업(42.9%)과 제조업(25.1%)이 전체 사고의 68%를 차지하고 있어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들 업종의 예방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노동부는 “지금까지 사고를 유발한 사업장에 대해 사법처리, 영업정지 요청 등 사후규제 위주로 사망사고 예방노력을 유도했으나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사고가 다발하는 사망재해에 대해 근본적인 사고원인을 찾아내 개선토록 지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노동부는 양대 노총, 학계, 재해예방단체 전문가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사망재해감소대책 T/F팀’을 3일부터 가동시켰다. 대책팀은 사망사고 다발작업에 대해 현행 제도 개선사항을 마련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을 4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 |||||||||||||||||||||||||||||||||||||||||||||||||||||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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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3 오후 4:30:13 입력 / 2005-03-03 오후 5:36:04 수정(1차) ⓒ매일노동뉴스 |
명퇴를 앞둔 고릴라처럼, 살려고 날뛰는 침팬지처럼 | ||||||||||||
유원인(類猿人)의 ‘자리 만들기’…조소작가 설총식, 노동의 소외·생존경쟁 담아 | ||||||||||||
조소작가 설총식이 만든 우화적 주제의 입체작업 다섯 점 <자리 만들기>는 ‘다섯 마리의 사람들’을 엮어놓은 입체 작품이다. 유인원(類人猿)에 빗댄 유원인(類猿人)의 생존경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를 닮은 사람들이 현대사회 생존경쟁의 장에서 연출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유인원인 고릴라와 침팬지는 사람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동물인데, 이들의 골격에 사람의 모습을 담고 옷을 입힌 것이 <자리 만들기> 연작들이다.
설총식의 작업들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의인화한 동물의 형상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다섯 점은 동일한 모티브로 ‘동물+사람 이미지’를 자신감 있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위기에 놓인 직장인의 모습을 통해서 현대인의 비애를 담아내는 일, 그 가운데서도 넥타이에 서양식 정장을 입은 남성 직장인의 모습으로 현대인을 다루는 것은 해석의 여지가 그리 넓지 않을 법도 하다. 설총식이 이 식상함을 넘어서는 방식은 의인화한 우화적 요소, 입체에 그림 그리기 또는 설치구조물을 통한 일련의 이야기 구조 등이다.
‘그림 그리는 소조각가(塑彫刻家)’라는 점은 설총식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의 입체조형 작업은 그냥 덩어리와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그림을 그려넣어 회화적 일루전을 입체 작품에 가미함으로써 비로소 마무리된다. 말하자면 ‘그림 소조각(painting sculpture)’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폴리코트 작업에 색을 입히는 작업은 브론즈의 느낌을 내기 위한 단순한 채색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설총식의 작업은 입체조형 작업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그림 그리는 작업에 의해 보다 강렬한 네러티브를 획득한다. 머리카락과 잔털, 면도자국, 피부의 잔주름과 옷깃의 그림자들까지 섬세하게 그려 넣는 소조각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입체를 빚어내는 손길과 그 위에 색채와 형태를 불어넣는 붓질의 만남을 새삼 경이롭게 관찰하게 된다는 점. 이것이 설총식의 도드라지는 매력이다.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노동 개념을 묶어두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노동의 소외 현상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의 노동은 불안과 위기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설총식의 구두 진술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의 일반적인 삶의 전형을 가지고 소외된 노동의 면면을 얘기하고 있다. 설총식이라는 예술가 자신의 삶 속에도 자본주의 조직사회의 경쟁관계가 침윤되어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노동의 소외와 고용불안의 증후군을 다루는 것은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드리운 현대인의 깊은 신음을 토해내는 겸손한 성찰의 과정이다. 예술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깊은 자기 투영의 산물인지/이어야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 ||||||||||||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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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4 오후 1:33:09 입력 ⓒ매일노동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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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호 위원장이 원하청 동지들과 농성장 동지들에게 보내온 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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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비정규직노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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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 27일 14시 42분 54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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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중인 안기호 위원장이 원하청 동지들 및 농성장 동지들에게 보내온 편지] |
"대의원대회 유보" Vs "반드시 사수" | ||||||||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민주노총의 진로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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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 kctuedit@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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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 취업비리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의원대회가 거푸 유회되는 등 '조직적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달은 것. 2월22일 다시 대의원대회가 열리지만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견해차는 여전하고, '사태수습'의 처방도 엇갈리는 실정이다. 난국을 헤쳐갈 묘안은 없는가. 불행하게도 아직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안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까지 사회적 교섭을 놓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온 두 대의원의 문제의식과 민주노총 중앙위(2월15일)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을 모아봤다. 김태일 한국생산성본부노조 위원장 "지도부 투쟁의지 믿고 안건처리를" 폭넓은 투쟁조직 위해서도 필요
▲'사회적 교섭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이라면 교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충분히 논의하자'는 주장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성'이 무엇인가 묻고싶다. 회의지연을 위한 전술적 판단이라면 문제다. 부족하다면 전문가가 모여 깊이 있는 찬반토론을 벌이되 대의원들이 자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회의는 진행해야 맞다. ▲1998년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 파견법 법제화 등에 합의하는 바람에 불신이 뿌리깊다. 그 때와 정세가 바뀌었는가. 나아가 우리가 얻을 것이 있는가. =지도부가 중대한 오류를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 참여과정에서 제대로 교육, 선전, 조직을 했다면 오히려 올바른 도구가 됐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여전하지만 저항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을 수 있다. 조그마한 권익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는데 이를 성과로 챙겨야지 실리·실용주의로 몰아가고, 투쟁회피주의로 몰고 갈 일은 아니다. 또한 '얻을 것이 없다'는 주장에는 '구조결정론'적 시각과 '패배주의'가 깔려 있다. 노사정 주체의 행보에 따라 역학관계는 변할 수 있는데 이런 역동성을 보지 못한다. 물론 무엇을 얻을 것인가는 '물음표'다. 2월투쟁 관련해 악법을 지연시키면서 내부를 조직하자. ▲2월투쟁을 앞둔 시점에서 사회적 교섭이 그렇게 시급하냐는 비판이 있다. 오히려 사회적 교섭에 앞서 비정규악법, 로드맵 등의 철회를 먼저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세가 엄혹하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한번은 넘어야 한다. '2006년 큰 투쟁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믿자. 사회적 교섭에 참여하더라도 위상, 의제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투쟁으로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발목을 잡기 위해 활용하자는 전술적 판단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투쟁을 안 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있는데, 이는 지도부에 대한 신뢰 문제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 의제 또한 사회개혁, 공공성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교섭이 필요한 것 아닌가. 광범위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도 사회적 요구는 필요하다. ▲당장 2월투쟁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갈라치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질서, 체계를 올바로 갖추지 못하면 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더욱이 지난 대대에서 안건처리를 반대했던 한 대의원이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 자본이 파견했다"는 모욕적 발언을 했는데 분노가 치민다. 정부, 자본은 적대적이지만 내부 의견그룹은 적대 대상이어선 안 된다. 민주집중제 원리에 따라 질서를 세워야 한다. 지도부가 그간 과오를 범한 것도 아닌데 불신하는 것은 근거 없다. 구체적 과오와 근거 없이 선험적, 주관적 판단으로 지도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2월22일 대대를 앞두고 조정의 여지는 없는가. =지도부가 사태해결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각 단위와 만나야 한다. 지금은 조직질서를 세워나갈 국면이다. 안건처리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지혜를 모아나가자. 박승희 ddal@nodong.org 이경수 민주노총 충남본장 "내부갈등 심각, 대의원대회 유보를" 안건 폐기하고 투쟁 조직에 힘써야
▲"민주주의의 최하위원칙인 다수결만 강조하며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는데. ='민주노총의 지향점이 무엇인가'하는 추구방향에 따라 내용을 수반하는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을 다수결로 처리하는 그 형식적 측면은 맞지만 자본주의 구조를 인정하는 꼴로 가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국회가 (반노동자적 법안을 처리하는데) 다수결이라는 형식을 갖추면 민주노총이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렇게 내용과 절차는 틀리다. ▲"사회적 교섭이 더 거대한 폭력"이라고도 했는데 그 이유는? =사회적 합의(교섭)라는 것은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도 이미 역사적인 무덤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용안정이나 노동조건 확보 등과 관련해 생산성 협조 등의 유연성은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를 증명하고 있다.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것이고, 결국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변혁운동은 사회적 합의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집행부는 조직내부의 간극을 좁히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오히려 노무현정부의 틀 속에 들어가 사회적 합의를 고집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뛰어넘는 더 거대한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집행부의 의지가 뚜렷한데, 이에 대한 절충안이나 대안은 가지고 있나. =대안을 두고는 갑갑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하는 게 핵심이다. 비정규직의 투쟁동력이 없는 지금, 사회적 교섭으로 정부의 기도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판단해봐야 한다.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건의 폐기지만 굳이 말한다면 내부에서 투쟁의지를 가다듬고 투쟁을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 사회의제화(쟁점화)가 꼭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현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지 않았는가. =선거 과정을 통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할 때 꼭 공약만 보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약사항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단순히 공약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공유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2월22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이에 대한 견해를 간략히 정리해달라. =2월1일 폭력사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집행부의 의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대의원대회 사수'와 '폭력반대집회'를 내용으로 하는 문건이 나돌고 있다. 결국 대의원대회를 강행할 경우 극렬한 반대 사태가 예상되는 마당에 얻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은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언제나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투쟁성을 거세당하고 자본에 포섭되는 결과를 부르며, 민주화의 투쟁성과를 갖다바치는 꼴이 되고 만다. 대의원대회 강행은 극렬한 반대를 부를 것이다. 민주노총이 '저들만의 잔치'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존재한 이유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지향에 있다. 토론이 부족하다고 하는 의견도 분분한 마당에 집행부는 유보나 철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내부갈등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지 말기를 바란다. 강상철 prdeer@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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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02월16일 19:22:51 |
2차 중앙위 발언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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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호 정은희 kctuedit@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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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대회 유보"-"반드시 사수" 팽팽 "예정대로 열되 차이극복 위해 지도부가 최선"으로 마무리 지난 2월15일 열린 민주노총 2차 중앙위에서는 대의원대회 유회사태가 불러온 조직적 혼란의 수습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주로 2월22일로 예정된 임시대의원대회 관련 의견이었는데, 총연맹은 이와 관련해 △대의원의 정확한 발언과 의결 보장 △별도의 참관인석 마련(영상 실황중계) △산하조직에서 파견한 안전요원 배치 등의 대책을 내놨다. 이에 대해 30여명이 발언에 나서는 등 열띤 토론이 이어졌으며, '대회 유보론'과 '대회 사수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대회를 열되 첨예한 대립요인인 사회적 교섭안은 제외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다음은 이날 안건토의 발언록 요지.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물리력에 의한 성사일 뿐이다. 문제는 현재의 분열상을 수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이다. 22일 대회 이후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통합과 차이극복을 고민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맹점을 되새길 기회를 갖고 스스로 비판하고 함께 비판해야 한다. 거듭할수록 분열되는 대의원대회를 한 달에 세 번씩 강행해야 하는가. -22일 대의원대회는 사수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명예를 회복하는 대회인 만큼 안건의결 이전에 총파업보다, 임단투 결의보다 더 중요하다. 이번 대회는 참관인을 제한하고, 고의적인 회의방해에 대한 강력한 징계와 사전제재를 중앙위 결의로 채택하자. -대회사수가 신뢰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의심된다. 물리력으로 사수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걱정하는 동지들을 아울러 갈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이미 사회적 교섭안을 떠난 문제로, 22일 대회 강행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대회를 열자.('대회사수 대책'을 담은 한 총연맹 간부 명의의 문건을 거론했으나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집행부 의도와 상관없다"고 해명) -사회적 교섭은 집행부 공약으로 언젠가는 결정돼야 하지만 왜 지금 해야하는지 설득하든가, 논의시점을 재고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을 상정하면 지난번처럼 충돌이 예상된다. 총파업 찬반투표처럼 조합원 총회로 결정하자. -2월 총파업과 22일 대회를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는가. 사회적 교섭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2월 총파업은 삭제돼야 한다. 투쟁으로 갈 것인지, 교섭으로 갈 것인지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문제는 22일 대회도, 사회적 교섭도 아니고 내부분열이다. 정파적 관계를 넘어 이성과 공존의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파견된 대표자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문제다. 지난 두 차례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찬성이든 반대든 사회적 교섭안에 결론을 내러 온 것이다. 이런 대의원들의 뜻을 모아 22일 대회를 열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하고, 집행해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정에 따른 행동통일'이 요체인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의사결정 구조다. 폭력이 우려되고, 분열이 우려된다고 대회를 포기하는 건 결국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대회를 사수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과 노동조합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통합지도력을 위해선 22일 대회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하더라도 투쟁을 결의하는 대회여야 한다. -22일 대회는 반드시 열어야 한다.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지도부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믿고 따라갈 필요가 있다. 과거 노사정위의 아픈 경험에 언제까지 얽매일 것인가. 가부간에 결정을 내려 전조합원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도부 판단을 존중하고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우리 힘으로 사회의제와 당면과제를 실천할 수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므로 교섭을 전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는 예방조치를 만들면 된다. -2월 총파업이 조직되지 않는 건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게 아니라 민주노총의 권위가 깨진 탓이다. 민주노총 권위를 회복하는 대회가 되도록 정상적 절차에 따라 최대한 토론할 수 있는 대회가 되도록 중앙위원들이 결의를 모아야 한다. -안전요원, 참관인 분리 등을 통해 대회를 사수하더라도 추락한 지도력이 회복되겠는가. 내부이견과 차이를 좁히는 합의가 사회적 교섭 안건보다 더 중요하다. 칼자루는 지도부가 쥐고 있다. 회의를 주재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이견이 여전함이 확인됐지만 표결로 정리할 생각이 없다"며 정회를 거친 뒤 "22일 대회는 공지된 대로 진행하겠지만 그 때까지 차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기풍을 살릴 수 있도록 지도부가 최선을 다하겠다. 대회사수를 위해 노력해달라"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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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02월17일 12:2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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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교섭이 뭐길래 | ||||||||
|노동운동 이슈&흐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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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호 chanh@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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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오랜 견해차이는 결국 민주노총을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말았다. 지난 1월20일 정기대의원대회가 정족수미달로 유회된 뒤 민주노총은 한 달 째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터진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사태까지 겹치면서 그 동안 쌓아온 '이 사회를 대표하는 진보세력'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리사태에 따른 상처는 썩은 곳을 도려내고, 철저한 자정노력을 기울이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조직내 첨예한 이견이다. '현재 진행형'인데다 시간이 흘러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견해차이의 뿌리는 깊다. 1기 노사정위에 참여한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합의하면서 거센 내부반발을 부른 것을 비롯해 민주노총은 두 차례 참여와 철수를 반복했다. 그 뒤 불참기조가 웬만큼 자리를 잡은 가운데서도 노사정위 참여 주장은 계속 제기됐고, 지난 2003년 2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노사정위 참여여부를 놓고 표결 직전까지 갔다가 관련 안건 심의 유보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지난해 4기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4기 집행부는 주요 선거공약으로 사회적 교섭 추진을 내걸고 당선됐으며, 지난해 9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이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을 추진하고 나섬에 따라 그 직전에 열린 중앙위에서는 이를 올해 정기대의원대회로 유보했다. 그리고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렸고, 지금까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조직내 논의의 간추린 역사다. 한편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반의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정세나 조직상황에 따라 취지나 강조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공식 의결기구를 통해 제시된 각각의 논거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먼저 집행부의 방침과 찬성론. 현재 집행부가 제출한 사회적 교섭방침은 '전술적 활용론'으로 요약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아래서 교섭을 통해 제도개선 등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큰 투쟁을 앞두고 교섭을 사회쟁점화의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투쟁이 핵심이고 사회적 교섭은 전술구사의 폭을 넓히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 가장 큰 현안이자 변수로 등장한 비정규 노동법 개악저지와 관련해서도 총파업으로 맞서기에는 현장 투쟁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섭을 통해 이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찬성론 가운데는 전술적 활용을 넘어 구체적 성과를 챙기는 장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에는 일치한다. 다음은 반대론. 노무현 정권의 정책기조로 볼 때 사회적 교섭은 신자유주의 전략 즉, 각종 반노동자 정책의 들러리 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가까이는 1기 노사정위의 뼈아픈 오류, 멀리는 유럽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적 활용론'과 관련해서는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 노동법을 개악하고, 로드맵을 통해 노동통제를 강화하려하는 마당에 교섭에 매달리는 건 맞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산별·노정교섭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 교섭은 이미 그 폐해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회적 합의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론 가운데는 사회적 교섭을 활용할 수는 있으나 노사정위에서 철수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결국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린다. 모두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지만 한쪽은 '절차적 민주'를, 다른 한쪽은 '내용적 민주'를 강조한다. 그러니 사태수습의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조직의 권위회복'과 '분열상황을 해소할 통합적 지도력 발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월22일 임시대의원대회가 다시 소집됐다. 지도부는 그 때까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분명한 건 이번 대회가 더 큰 물리적 충돌을 부르고 조직의 분열을 극한으로 내몰아 수습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민주노총은 한 달만에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서게 됐다. |
이견해소가 열쇠…'낙관'은 쉽지 않아 | ||||||||
<사회적 교섭안 처리 연기> 다양한 의견에도 속에서도 "전화위복 계기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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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철 prdeer@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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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교섭안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어온 민주노총이 임시대의원대회를 한 달 가량 연기함에 따라 이 기간 동안 견해차이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대의원대회 연기를 결정한 5차 중앙집행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수의 지역본부장들이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한 내부이견 해소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힘에 따라 이것이 총연맹 집행부의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수봉 교육선전실장은 이와 관련해 "쟁점은 사회적 교섭이 아니라 실질적인 투쟁을 위력적으로 펼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대화를 통한 이견해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회적 교섭에 찬성한다고 밝힌 벽산건설노조 김동우 위원장은 "집행부가 너무 숫자의 힘에만 의존해 문제를 풀 게 아니라 소수의 단위노조와 중앙집행위원 개개인의 의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내부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사회에 책임성 논란을 부른 만큼 방법을 찾아내려면 대의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의원대회 연기는 이와 함께 '사회적 교섭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요구해온 반대론의 주장도 일부 수용된 결과여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한 달 정도 논의를 늦춘다고 해서 쟁점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찬반론 양쪽에 상당한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를 반영한 듯 낙관적 전망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해결방법은 사회적 교섭안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다. 연기된 기간 동안에 대의원조직을 동원해 사회적 교섭 찬성여론을 퍼뜨리려는 집행부의 계획은 반대론자들에게 설득이 될 수 없다"는 시설노조 이동우 교선부장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민주노총의 최근 상황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각도 다양하다.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대흥정공노조 권순화 위원장은 "매번 싸울 수만은 없으니 교섭을 하긴 해야겠지만 불법파견 등의 현실을 볼 때 사회적 교섭 내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반대론을 폈다. 반면 농협유통노조 이철이 사무국장은 "반대파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지말고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며 "폐기는 대안이 될 수 없고, 폐기한다면 대안으로 내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투쟁만 하겠다는 것은 발목잡기 위한 반대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대병원 임미경 정책부장은 "가족들하고 TV를 보면서 낯이 뜨거웠다"며 "조합원들에게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국민들은 오죽했겠느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바스프노조 백윤석 사무국장은 "이번 대의원대회 과정은 소모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민주노총 자료나 정보를 통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단위노조로서 대의원대회 준비 못지 않게 분야별로 각각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문제해결 방향에 대한 의견이 엇갈림에도 현장은 대체로 최근 사태가 '수습불능'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벽산건설노조 김 위원장은 "진짜 위기라는 것은 체제나 사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때 표현하는 것이다. 변화의 과도기에서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지만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파스프노조 백 사묵구장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 스스로가 민주적으로 커나간다고 본다. 말하자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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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환노위에서 벌어진 '노정 설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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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ddal@nodong.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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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중의 이익을…" "자본가 대중의 이해겠죠" 23일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점거'한 환노위 소회의실에 오후 3시20분께 이목희 의원 등 열린우리당 환노위원들이 들어오면서 입씨름이 벌어졌고, 환노위원장실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가시 돋친 설전은 이어졌다. 이날 '대화'는 비정규 개악법안을 둘러싼 노정간의 견해차를 극명히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목희 의원(열린우리당) :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의사일정 방해하러 왔는가.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 : 오늘 아침 브리핑을 보니 (비정규 개악안을) 2월에 통과시키겠다고 해서 사실관계 확인하러 왔다. -이목희 : 노사간 비공식 대화 협상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지켜볼 것인데, 상황에 따라 2월내 처리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겠다. -우원식 의원(열린우리당) :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는 것으로 당정 합의했다. 진전된 형태라는 생각이다. 그런 정도면 양해할 수준 아니냐. 조직되지 않은 중소영세 비정규노동자 요구도 미룰 수 없다. -이목희 : 누구한테도 '2월에 처리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노동계 지도부 어려움 잘 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서 문제 때문에 국회 심의일정을 연기하라는 것은 너무 나갔다. 일방의 요구만 만족시킬 법을 만들 순 없다. 한국경제 현실, 비정규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적절한 정책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협조해 달라.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 : 국보법은 대단히 신중히 처리하면서 비정규 법안을 서두르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노동계와 대화하고, '5당 정책협의회' 하자고 합의했다면 여기서 법안을 논의하자. -이목희 : (정규직 중심의 노총뿐 아니라) 비정규직 대중의 이익 여부도 봐야 한다. 한국경제, 노동안정성, 사회안전성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안을 봐야 한다. 대화하라면 하겠다. -심상정 : 자본가 대중의 이해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대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자리를 환노위원장실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 안 그래도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 따라하기' '민주노총 2중대' 따위의 소리를 들었는데 한국노총 입장은 없겠는가. 민주노총과 함께 하고픈 소망이 있다. 함께 재논의 구조에 들어가든 민주노총이 안 되면 4월 가서 단독으로 들어가겠다. 만약 법안을 통과시키면 모든 정부 위원회 탈퇴하겠다. 초강성으로 앞장서겠다. -이혜선 민주노총 부위원장 : 사회양극화를 노동계가 나서서 해결코자 사회적 교섭안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대대가 유회되면서 지도부가 어려움에 빠져있다. 지난 노사정위 합의 때 정리해고말고는 지켜지지 않아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똑바로 보고 나라의 중심을 세우려는 고민을 해야한다. '비정규직 대중의 정서'를 거론한 이목희 의원의 발언은 과도하다. 집권당답게 대화문을 크게 열어라. 법안통과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오길성 민주노총 부위원장 :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근본적으로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정부-여당의 통보로 볼 수밖에 없다. 3월15일 대대 열 필요도 없다. -이경재 환노위원장(한나라당) : 뭔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중재하고, 여러 채널로 얘기 듣겠다. 우선 환노위를 열자. -우원식 : 정부 입법안 고칠 부분 있을 텐데 이를 법안소위에서 하고 있다. 또 하면 된다. 우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노동, 환경운동 경험 있어 열려 있다. 오늘부터 내일, 모레 논의하면 된다. 2월엔 하지 말라거나 손대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왜 시기가 문제인가. -이혜선 : 선수끼리 이러면 안 된다. 여당이 급선회 한 지점 알고 있다. 일부 비정규직의 의견이라 하는데 여당이 비정규직과 대화를 얼마나 했나. -이목희 : 그 판단을 누가 하나. 민주노총은 60만 조합원 다 불러놓고 했는가. -이혜선 : 그래서 대표가 필요한 것 아닌가. 민주노총 대표성 부정하는 발언이다. 취소하라. -이용득 : 노사·노정문화 바꾸기 위해 민주노총이 대대 곤욕 치러가며 하고 있다. 3.15 대대가 남아있으니 시기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 내걸고 있는 것 뻔히 알면서 명분 다 빼앗아 가면 어떻게 반대조직 설득하겠나. 반대논리는 '사회적 대화틀 속에 들어가 봤자 정부가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뒤통수 맞는다'는 것이다. 2월에 강행처리하면 그들 주장이 맞는 것이고, 우리 명분 잃는 것이다. 명분을 달라. 3월까지 민주노총 결정 못하면 한국노총이 돌팔매질 맞더라도 운동의 대표성 갖고 논의구조 뛰어들겠다. -이목희 : 노사정위 합의사항을 하나도 안 지켰다고 하는데 이는 정서상 그렇지, 명백히 안 지킨 건 '실업자 초기업단위노조 가입 허용' 뿐이다. 비공식 대화, 민주노총 대대 결과 등에 따라 2월 처리 고집하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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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5.02.15 12:38:18 조회수: 107 | |
권영길 의원 선고 공판, 3월18일 이후로 연기 - 국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 처리 예정 ○ 2005. 2. 16 14:00에 열릴 예정이었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대한 제3자개입금지 등에 의한 항소심 선고공판(사건번호 2001노 1474)이 검찰 측의 심리 ‘재개’ 요청을 재판부가 수용함에 따라 2005. 3. 18. 14:00, 서울중앙지방법원 320호실에서 열릴 추가 심리 이후로 연기됐다. 따라서 권영길 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일정은 3월 18일 이후로 확정될 전망이다. ○ 검찰의 재개 요청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시작 된지 10년이 지나 상황과 조건이 많이 변했을 뿐 아니라 수 차례에 걸친 담당 검사의 변경으로 인해 사건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 졌다. 그 결과 2005. 1. 14 로 마무리된 심리가 ‘재개’된다고 권영길 의원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는 밝혔다. ○ 한편, 권영길 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 일정이 다가옴에 따라 시민사회, 노동계,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국회의원 등 사회 각계의 탄원과 의견서 제출이 계속되고, ‘권영길 의원 구하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지는 등 언론과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특히, 국회에서는 2005. 2. 4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이 단병호의원 대표발의로 제출됐다. 이 법률개정안은 2월 임시회기 중 소관상임위인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처리 될 전망이다. 법률개정의 취지와 내용은 희대의 반민주악법으로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자 민주화의 대상이었던 제3자개입금지법이 오랜 노력 끝에 사문화된 마당에 다시 적용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법률 적용의 근거가 되고 있는 부칙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 담당: 이호성보좌관 (017-245-90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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