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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 농성장에서

해방광장을 지나 회전문을 들어서니 익숙한 붉은조끼가 공단 로비를 드문드문 메우고 있다.

낮에는 지역에서 올라온 800여명의 조합원이 집회를 마치고 흩어졌다고 한다. 순환파업이 시작되고 공단 로비는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되었다.   

 

15층 쟁대위 회의는 쓸데없이 길어지고 사람들은 무리지어 퇴근한다. 높은 천장에 설치된 4개의 CCTV를 통해 로비를 지켜보던 노무관리팀에서 나를 궁금해한다. 신입 조합원이면 표적감시 대상이다. 도청장치가 설치되있다는 것을 복직된 어느 조합원이 비밀스럽게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해고자들은 허공에 대고 소리높여 "이사장 이성재 개새끼!"라고 몇번을 고함치고는 웃는다.

 

상무와 몇몇 임원들은 아직까지도 해고자들에게 반가운척 인사를 한다. 노조에 대한 극랄한 탄압 이면에 조합원에 대한 두려움이 잔존해있다.  그것의 진원은 00년 파업.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상무와 임원진을 무릎꿇리던 그 투쟁, 조합원들의 집단적 분노에 호되게 당했던 끔찍한 기억때문이다. 공단은 이전과 다르게 대응력을 갖춰가는데 노조는 갈수록 후퇴한다. 

 

운동을 시작한 이래 '현장권력'이라는 단어를 전국회의 사이트에서 한 번, 이전 사보파업에서 한 번 들었다. 현장권력의 탈환은 허황된 꿈이 되버린 현실, 당장 탄압으로부터 노조를 방어하는 것조차도 힘든 지금, 해고자들의 눈빛은 자신감 반 피로함 반이다. 적어도 요즘 어딜가나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패배감에 찌들어 지도부 비판에만 입놀리는 활동가들에 비하면 믿음직한 모습이다.    

 

얼마전 농성장이 침탈당했다가 오늘 다시 복구하였다. 침탈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상급인 구사대들이 물러가고 공단에 의해 억지로 동원된, 대부분이 고령자들이 경비원들과의 몸싸움이 있었다. 그 중 다섯명은 며칠 전 해고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 짓은 더이상 못하겠다면서.

생존권 앞에서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선 노동자들을 강요받는다. 한쪽이 양심선언하고 물러서던가 혹은 상대를 때려눕히던가, 아니면 하나로 뭉쳐 싸우던가. 

 

철농을 해야하는 6명의 해고자 동지들을 남겨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일은 자보풀칠과 스프레이로 로비 대리석벽을 도배하겠다는 해고자들 앞에서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던 나이든 경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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