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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활동노선에 대하여 (문국진)

노동운동의 정치활동노선에 대하여

 

1. 들어가며


저번 칼럼에 리플을 단 한 독자는 필자가 “계급적 단결의 필요성”을 지적한 데에 대해 그러한 단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활동노선’ 혹은 ‘정치적 운동노선’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하시고, 그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고 제안하셨다.


이제 진지하게 노동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운동’만이 아니라, 그 ‘정치화’의 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그러한 차원에 이른 것 같다. 노동당이 창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제 활동으로 보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계급운동 전체 차원에서의 정치화가 또 다시 요청된다는 생각, 정치적 사상무장에 대한 필요성의 인식--이러한 문제의식이 독자로 하여금 정치적 활동노선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 것 같다.


필자는 이전에 여러 차례 노동정치운동에 관련한 글들을 써 왔지만(4월 중순에 나올 ꡔ노동해방의 논리를 찾아서ꡕ(변증법출판사)에 노동정치 관련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아직도 그러한 주제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는 여전히 지금도 현실 활동 선상에서 꼭 필요한 사상적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이하에서 이 주제에 대해 새롭게 다시금 정리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2. 노동운동의 모든 측면들이 전부 ‘정치활동’이다


노동조합의 일상활동들은 거의 전부 ‘정치적 활동’들이다. 특히 사람 만나고 관리하고 조직하는 조직활동은 사람을 대하는 정치의 실천이다.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노련함이 요구된다.

선진 노동활동가로서 대중사업을 할 경우에 반드시 정치적 고려나, 정치활동의 풍부한 경험 등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 사업을 수행할 경우에 ‘정치활동 방법론’이 반드시 요청된다.


NL 계열은 이 정치활동방법론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데 반해, PD 계열은 활동 작풍의 면에서 좀 거칠은 듯하다. 보통 PD 혹은 좌파 계열의 활동가들은 주관적 문제의식이 지나쳐서 상대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관철하려 하거나, 일방적 지도관계를 강요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잘못된 노동정치활동은 결국은 ‘관료주의적인 경직화’를 초래할 따름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NL 계열에는 이 ‘사람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 경험이 부족한 초보 활동가들의 경우 주관적 의지만 강할 뿐, 대중이나 상대방에 대한 진지하고 현실적인 고려가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를 철학에서는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이라고 부른다.


정책, 교육, 선전, 조직 등 노동운동의 모든 활동들은 결국에는 '사람을 대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즉 사람에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난다. ‘정치적 유연성’없이, 사람에 대한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고려 없이 수행되는 활동은 정치의 부재, 몰정치적 운동, 그리고 앙상한 이념에만 근거한 자기활동이라는 관념적 결과를 낳게 된다. 소위 ‘계급적 좌파’ 진영은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에는 반대하지만, 민족주의의 강점인 대중사업을 수행할 때의 노선과 작풍으로부터는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더 이상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주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중에 대한 철학적 입장과 태도’의 문제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모택동의 경우 이 ‘대중노선’의 철학적 정립을 위해 깊이 있게 논한 바 있다.)

정치적 활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 대중적 정치사업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3. 노동운동에의 매몰에서 탈피한 노동운동을 위하여--경제주의에 빠져 있는 현금의

노동운동 비판


조합에서 시작하여 조합으로 끝나곤 하는 경향을 우리는 ‘조합주의’라고 부른다. 조합원의 실리 획득에만 운동을 가두는 경향을 우리는 ‘실리주의’ 혹은 ‘경제주의’라고 부른다. 조합운동의 안정화, 조직체계의 발달, 그 고착화, 노조운동의 대리주의적 본질 등은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지금 노조투쟁의 확산과 발전에 따라 동시에 ‘경제적 실리주의’ 편향이 만연되어 있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나 최근의 3대 노동신문사--현장노동자신문, 사회주의노동자신문, 노동자정치신문 등이 거의 선보이는 경향이 바로 ‘경제주의적 투쟁관’이다. 이로 인해 사실상 남한의 노동운동은 ‘조합 중심의 조합주의운동의 일반화’에 매몰되어 있는 실정이다. ·현재 현장조직들이나 노동자정치조직들, 전해투나 전국 단위의 노동운동체들은 바로 이러한 지점, 즉 경제주의나 조합주의적 운동의 협소한 전망에서 탈피하여 운동의 정치화와 정치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갈 잠재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는 가능성일 뿐, 여전히 사상이념의 재무장이라든가, 정치노선의 명확한 확정, 조직운동의 대안 정립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4. 정치적 활동의 기초가 되는 이념 무장의 필요성


앞서 지적한 대로 정치는 사람관계이지만, 그와 동시에 또한 ‘이념의 문제’라고 하겠다. 즉 정치는 이념운동이다. 이념적 지향 없는 정치는 맹목일 뿐이다. 이념 없이 그저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만이 ‘정치활동’이 아니다. 정치활동의 내용이 되고, 지향이 되고, 활동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념적 내용’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선진적 노동활동가들도 거의 책을 읽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책 속에 길이 있다.” 소수의 대학생 운동가들은 선배들의 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해야 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필독의 사회과학서적 커리큘럼을 전수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후배는 선배에게 최신 서적 정보를 엄선해서 전수해주어야 한다.


선진 활동가들은 현재 ‘경험에만 근거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험주의적 편향’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사상의 풍부한 재무장은 판단에 합리적 기초를 제공하며, 과거 운동사의 축적 속에서 현재의 우리 활동의 성장을 위한 귀중한 보물을 얻어낼 수 있게 하며(溫故而知新)), 미래의 갈 길을 등대와도 같이 비춰주는 운동생활의 필수 사업이 바로 학습과 세미나이다.


그런데 무조건 책을 많이 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엄선된 자료를 채택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진보적 인텔리 활동가나 진보적 학자, 혹은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엄선된 커리큘럼에 따른 적합한 교재를 택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수적인 맑스주의적 자료 목록은 현재 체계적으로 작성되지도, 재대로 읽히지도 않고 있다. 반복하건대 사상사업은 가장 중요한 정치활동의 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이 무장하는 정치사상의 내용에 따라 어떤 활동방향을 선택하는가를 결정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5. 사회-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노동계급운동의 정치적 개입


경제주의에의 함몰이 가져오는 폐해 중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이 자칫 ‘노동자이기주의적 투쟁’이라는 식으로 간주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존이 달린, 노동자에게 이기적인 요구를 위한 경제파업만이 아니라, 보다 더 차원이 높은 정치파업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 숱한 노동운동의 사례들이 말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경제투쟁에서 정치-이데올로기적 투쟁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사회적 노동운동론’이나 ‘국민적 노동운동론’이 좌파 노동운동진영에 의해 개량주의이고 기회주의라고 비판된 바 있었다. 그러나 남한의 노동운동이 더욱 성장해서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면, 사회-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까지 노동자계급이 발언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그러한 이슈들을 위한 실제적 투쟁과 활동을 벌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힘의 확장이고, 사회-정치적 투쟁으로의 도약일 뿐 아니라, 여타 부문 대중과의 전략적 제휴와 연대전선의 형성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경제주의적이고 노동조합적 정치활동에 얽매여 있는 다른 저널들과 달리 다함께와 평등세상은 사회-정치-시사 기사들을 많이 다루어서 노동계급의 정치화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민노당의 역할이 기대된다. 즉 기왕 정치권에 진출했으면, 노동계급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다양한 사회-정치-경제적 사안들에 대한 투쟁을 선도하고 이를 대중적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는 그러한 정치활동을 필자는 기대하고 싶다. (그러나 민노당은 차후 ‘의회 차원의 계급투쟁’에 스스로를 한정짓기 보다는, 현장의 대중적 투쟁을 엄호하고 정치에 반영시키며, 정치적 주장과 정책면에서 사회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그러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투쟁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


6. 맺음말: 왜 당인가?


앞서 노동조합활동마저도 정치활동의 성격을 갖는다고 했지만, 사실 가장 발달한, 활동력과 사상 양면에서 고도로 발달한 정치활동가들이 결집된 최고의 정치조직이 바로 당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노당은 후진적인 노동자 당원들이 더 많고, 이념면에서 사민주의, 즉 선거/의회주의와 민족주의의 오류를 지도적 정치노선으로 채택함으로써 합법대중정당으로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조직체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남한 노동정치 지형은 현재 민노당의 지도적 정치노선에 스스로를 확연히 구별 짓는 변혁적 사회주의 정당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정당으로의 결집과정에서야말로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최고 수준의 선진적 전위들이 모인 정치적 부대--민노당과 같은 의회 진출노선, 선거를 통한 집권전략, 개량주의와 사민주의, 그리고 몰계급적 민족주의에 명확히 반대하며, 동질적인 이념과 전략을 공유하고, 전체 노동운동과 전체 진보운동을 선도할 실질적 능력을 갖춘 변혁의 기관차--우리는 이러한 당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현실 계급투쟁 속에서 미래의 당 활동가, 간부들이 변혁을 책임지고 현실운동을 책임지며 ‘변혁적인 정치활동노선’을 구체화하는 가열 찬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이미 진행 중인 현실운동 속에서 미래의 당의 맹아, 당적 관계가 싹트고 있다.///050402


<참고자료>


ꡔ맑스/엥겔스의 노동조합이론ꡕ, 새길

ꡔ마르크스/엥겔스: 노동조합론ꡕ, 시린새벽

레닌, ꡔ노동운동론ꡕ, 소나무

백태웅 역, ꡔ레닌의 노동조합운동론ꡕ, 녹두

로자, ꡔ다시 한번 대중과 지도자에 관하여ꡕ, 풀무질

트로츠키, ꡔ노동조합투쟁론ꡕ, 풀무질

캘리니코스, ꡔ노동조합 속의 사회주의자들ꡕ, 풀무질

토니 클리프/도니 글룩스타인, ꡔ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투쟁ꡕ, 풀무질

리차드 하이만, ꡔ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운동ꡕ, 연구사

김운영 편역, ꡔ노동조합과 전위당의 임무ꡕ, 아침

정인 엮음, ꡔ노동조합운동론ꡕ, 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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