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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치 않아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치 않아.

모험 자체가 우리에겐 즐거운 도전이야.

 

전철 안에서 무가지 신문을 펼치니 리니지 게임 광고가 경쾌하게 내뱉는 말.

가끔씩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도 용납이 되지않을까 제멋대로 결론내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띄우고 울산으로 공간이동을 해보니

빗줄기 한가운데 서서 열사의 영정을 들고 반투명 우비에 가려 눈물인지 비인지 고개숙인 비정규직 활동가들이 계속 뭔가를 쏟아낸다.

거기서 '모험'이고 '도전'은 귀가 삐죽한 여신의 주문일 뿐이고.

 

현실은 어떠냐면

어제 다녀온 분향소 없는 민주노총 사무실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한 구석에서는 이수호 위원장을 점잖게 밀어내고는 답답한 듯 눈을 가늘게 뜬 동지들이, 구사대와의 결투로 벌금 500만원와 폭력난동꾼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한 동지의 어이없는 웃음을 같이 나눈다. 울지 못하니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들여다보며 열사가 난 이런 시기에 점거농성이 왠말이냐고 타박하고 한 동지는 절절하게 설득한다.

열사가 이 장면을 보면 뭐라고 할까.

운동을 가로막는 것들, 투쟁을 잠재우는 것들. 부르조아나 노동관료들이나 이제는 돈 갖고 지랄이다.

 

나는 어제, 이른바 '열사국면'이 투쟁의 시기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게 분통해도 투쟁하는 이들의 의지박약이 문제가 아니라면 숨겨진 진실, 정당성을 조합원들의 기억 속에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은가.

새롭고 결정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이제 한사람의 값진 희생만으로, 그 자체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지언정 대중의 혁명적 본능에 기대어 전부를 대체할 수 없음을 지난 최남선 동지의 분신에 이어 또 한번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패배의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다. 무력함의 원인은 그들에게 있지 않다.

그렇게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어느 쇠약한 혁명가가 강조했듯이.

 

전반적인 환멸이 극에 이르렀을 때

변함없이 굳건한 심장을 지니는 사람, 칼처럼 날카로운 의지를 갖는 사람만이 노동계급의 전사로 여겨질 수 있으며 혁명가로 불릴 수 있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치 않다.

현실에서는 모험도 없고, 도전도 없고 그것은 더더욱 즐겁지도 않다.

 

근데 울산은 비가 한없이 쏟아진다는데, 여기는 땅이 너무 말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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