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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정의와 우리의 적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는 무엇보다도 먼저 ‘적’이 무엇인지 정의해야할 것이다. 적이란 위협을 가할 의도를 갖고 나의 안전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가능성을 지닌 개인이나 집단을 뜻한다. 여기에 시야를 더 넓혀 국가공동체를 단위로 한다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려는 의도를 가진 국가를 모두 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본래부터 그냥 내가/우리가 싫어서 위협을 가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은 거의 없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제의 동료가 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나/우리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모든 개인/국가는 언제든지 적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세상 모든 국가를 잠재적 적이라 볼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주적, 북한
그렇지만 굳이 가장 위협적인 적, 즉 주적을 꼽으라면, 국가법에 그 의도를 명시하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은 아시다시피 항상적인 위협요소를 가지고 있는 국가다. 그 중에서도 거대한 규모의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군사세력은 분명한 위협요소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일부만 맞다. 세뇌교육으로 인한 것이긴 하지만 체제에 강제적인지 자발적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단결된 북한사회 전체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사회 전체가 위협요소라 할 수 있다. 당/정/군과 북한주민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다.
보수/진보 세력의 대북관 비판
따라서 당/정/군만을 적으로 삼고 북한주민만을 동포라 여기는 보수세력의 인식은 매우 한계적이다. 하나의 체제를 적으로 삼는 순간, 그 체제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래서 체제와 완벽히 분리불가능한 주민들까지 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반대로 당/정/군, 북한주민을 절대적으로 포용하며,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을 부정하거나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진보세력 일부의 인식도 마찬가지로 현실성이 없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안보정책은 이와 같은 보수세력의 대북관으로부터 도출된 무조건적인 강경책과, 진보세력 일부의 인식으로부터 도출된 무조건적인 햇볕정책 또는 인식결여의 양극단을 달렸다. 때문에 보수세력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기만 한다는 비판에서, 진보세력은 무조건 적인 퍼주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둘 모두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한 모습을 지녔으며, 자기반성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의 탈피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평화’를 위한 새로운 대북정책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안보정책은 무엇인가?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안보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 목적은 바로 ‘평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대책은 견고한 군사적 방어태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군사적 대립만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여지가 있다. 특히 일부 강경한 보수세력이 외치는 군비증강론이나 어이없는 전쟁불사론은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이는 날카로운 대립만을 부추겨 최악의 경우 실제적인 군사적 충돌을 야기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버튼 하나가 수천수만을 죽일 수 있는 현재의 전쟁은 결코 게임 속 일처럼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안보전략은 결단코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군사적 방어태세를 게을리 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남북간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화해정책’이다.
무엇보다도 첫째, 북한을 하나의 주체로 인정하고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각각 남북협력사업을 유기적으로 펼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정부와 민간 뿐만 아니라 군차원에서도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군감축 등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넷째, 우리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전쟁을 반대하는 동아시아 시민들 간의 조직적 연대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강경책과 햇볕정책의 양극단을 배제한, 상황에 맞는 유연한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안보의 최종목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북한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한 상호협력적 국제사회질서구축의 필요성
하지만 이해관계가 대립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현 국제질서에서는 하에서는 누구든지 적이 될 수 있는 법이다. 특히 언제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한 국가만 ‘군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남북한의 궁극적 평화를 위해서는 현 국제질서를 상호협력적으로 재편하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먼저 세계연합(UN)을 중심으로 무한경쟁의 세계질서를 보다 상호협력적인 방향으로 재편해나가는 국가 간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각 국가의 시민사회 간 국제적 연대가 무엇보다도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얽히고 설켜 있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만을 강조하며 그에 안주하거나, 현실을 무시하고 실현가능성이 적은 원칙만을 내세우는 사이 오늘도 우리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 실현가능한 정책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할 것이다. 노력하는 자만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기억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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