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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46호> 복수노조 시대 노조운동의 대응

 

복수노조 시대 노조운동의 대응

 

 

2011년 노동계 최대 현안은 복수노조 문제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도 노동조합 조직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조합의 기업단위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주도하게 되고, 소수노조의 경우 단결권은 보장되지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노조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결국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단결권조차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산별 무력화, 기업별 체제 회귀

 

교섭창구 단일화는 그 대상을 기업별 교섭으로 한정하고, 산별노조를 비롯한 초기업 단위 노조 역시 창구단일화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의 대각선 교섭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지회가 사업장에서 다수노조 지위를 상실할 경우 사용자가 산별교섭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산별교섭의 현실적인 규모와 영향력이 왜소한 상황에서 이는 결국 산별교섭의 무력화를 동한 기업별 교섭체계로의 강제 편입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단체교섭은 물론이고 조합활동의 모든 영역이 기업의 울타리 안으로 고착화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복수노조 상황이 자본에게는 어용노조 결성, 기존의 민주노조 길들이기, 노조 간의 분열 조장과 차별을 통한 민주노조 무력화 등 노조 활동에 개입할 다양한 방법을 제공해 준다. 또한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 분리 결정, 조합원 수 산정, 조합원 투표 방식 결정, 공정대표의무 이행 감독 등을 통해 노사관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즉 노조의 자율적 활동영역이 축소되는 반면 자본과 국가 권력의 노조 활동에 대한 지배와 통제는 강화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의 최종 목표는 기업별 어용노조 체제의 구축이다. 해방공간인 1947년, 이른바 ‘노동부 방침’을 통해 기업별 교섭과 배타적 교섭대표체를 실시함으로써 계급적 산별노조운동을 펼쳤던 ‘전평’을 사업장 단위에서부터 파괴하고 어용 대한노총의 세력을 확장해 갔던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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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진보신당 경남도당)

 

주체의 위기

 

복수노조에 대응하는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현실은 어떠한가.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계속 감소하여 2009년 말 10.1%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를 상급단체로 하지 않는 이른바 독립노조에 속한 조합원 수가 2000년 4만여 명에서 2009년에는 31만여 명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탈민주노조, 기업별노조 강화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사업장을 살펴봐도 전체 노동자(비정규직 포함) 대비 조합원 비율이 과반수에 미달하는 사업장이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게다가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구조적인 투쟁력 약화, 조합활동에 대한 무관심, 실리주의적 활동 관행이 더해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운동에 대한 위기의식은 조합원 대중과 함께 공유되고 있지 못하며, 간부들은 그 동안 확보된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2010년 타임오프 관련 투쟁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타임오프 대응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간부들만의 문제’에서 ‘대중적인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음에도 ‘현행 유지’에 매달린 나머지 각개전투로 전환함에 따라 산별노조의 관장력과 산별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가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모습은 2011년 복수노조 대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법조항을 잘 활용해서 7월 1일 이전에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확보하자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산별노조 대응력을 약화시키고, 기업별 노사담합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자본에게 최선은 어용 단일노조

 

한편 자본은 복수노조를 활용하여 교섭대표 노조를 장악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여러 성향의 노조들이 난립하는 것보다 아예 노조가 없거나(무노조) 있다고 하더라도 자본에 우호적인 기업별 단일노조(어용노조)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볼보, 두산인프라코어 등 작년에 연이어 발생했던 자본의 민주노총(금속노조) 탈퇴 공작이 올해에는 더욱 거세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본은 산별노조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강화하는 한편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반(反)산별노조 여론을 대대적으로 조성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금속노조 탈퇴 사업장에 대한 경남지부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그러므로 올해도 예상되는 자본의 민주노총(금속노조) 탈퇴공작에 대한 경남지부 차원의 대응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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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노동부)

 

복수노조 자율교섭의 한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철폐와 자율교섭 쟁취, 타임오프제 폐지 등은 민주노조운동의 명운을 좌우하는 과제다. 이와 더불어 산별교섭 법제화를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재의 노자간 역관계와 정치지형에서 당장은 무리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투쟁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내년이 총선, 대선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올해부터 총노동 차원의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설사 ‘복수노조 자율교섭’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일본 노동운동의 역사가 말해주듯 복수노조 상황에서는 자본의 지배 개입이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복수노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운동의 이념적 정체성과 활동 전략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계급적 산별노조 운동’과 ‘사회연대적 노조 운동’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간부 중심에서 대중적 노조운동으로

 

또한 ‘무늬만 산별노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특히 금속노조의 경우 ‘1사 1조직’을 강력히 재추진해야 한다. 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도 포괄하지 못하면서 조직 확대를 말하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간부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적인 노조운동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시기 노동조합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법개정 투쟁의 동력도 조합원 대중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고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간부, 활동가들의 결단과 실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져버린 학습 소모임 활동, 공동 실천단 활동 등을 다시 복원하는 등 노동조합 공식체계 차원의 활동뿐만 아니라 현장조직 재정비와 일상활동의 강화가 시급하다.●

 

- 김정호 (미래를 여는 노동사회교육원 소장)

 

※ 이 글은 2011. 2. 17. 진보신당 경남도당 노동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 발제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발제문 전문은 아래 첨부화일을 다운받으면 볼 수 있습니다.

[복수노조시대현장활동토론회자료집.hwp (805.00 KB) 다운받기]

 

(2011년 3월 3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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