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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56호>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치유와 위로의 공간 '와락센터'

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치유와 위로의 공간 ‘와락센터’

 

 

지금 이 소개글을 쓰고 있는 순간, 두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꽤 늦은 시간 한 해고자가 전화를 걸어왔어요. “재수씨, 저... 지금 하고 있는 상담에 제가 참여해도 될까요?” 실은 자신의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계속 정신과 상담을 서울로 받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비용도 거리도 만만치 않아 혹시 ‘와락’에서 아이도 상담 받을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옵니다. “물론이지요. 너무 좋지요. 토요일에 아이와 함께 꼭 오세요. 그러려고 와락이 있는거에요.” 그리고 전화를 내려놓으며 ‘아,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생기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나서 바로 다시 걸려온 한통의 전화! 파업에 참여하다 중간에 희망퇴직서를 쓰고 공장을 나와 지방 이곳저곳으로 일을 다니고 있던 한 쌍용차 노동자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전화...

 

아빠는 다른 지방에서 일하고 있고 엄마와 초등학생 아이들끼리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이틀 전부터 엄마를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아빠에게 연락을 했지만 아빠의 전화기가 고장이나 결국 이틀이 지난 오늘 오후 아빠와 연락이 닿았다고... 도착한 아빠가 본 것은 이미 숨져있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무서운 일이... 이런 무섭고 떨리는 전화가 자주 걸려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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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 가족들의 치유와 위로의 공간

 

저는 쌍용차가족대책위 대표이자 와락의 대표를 맡고 있는 권지영이라고 합니다.

 

와락센터는 2년 전인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있었던 대량해고사태로 인해 엄청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아이들을 위한 치유와 위로의 공간입니다.

 

생계의 어려움, 폭력 행위자라는 낙인,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도 이해받고 지지받지 못하는 절망감 등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돌연사로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이 이렇게 해서 19명이나 되어버렸습니다.

 

와락이 만들어진 것은 이름 그대로 여전히 힘겨운 그들에게 더 이상 죽지 말고 함께 살자고, 서로 와락 안아주기 위해서입니다.

 

한 달에 한명씩 자살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던 올해 초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선생님이 오셨어요.“쌍용차해고노동자들은 응급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위한 집단상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할 공간이 없어 시청의 협조를 얻어 직원들 쉬는 날 업무공간에서 상담을 했어요. 엄마, 아빠가 상담을 할 동안 아이들은 시청 로비에 돗자리를 깔고 놀았지요.

 

아이들의 커다란 심리적 상처

 

그런 과정에서 부모들의 문제로 아이들 역시 심각한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인 청소년 자녀들의 심리적 내상은 어린아이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컸습니다.

 

아빠가 공장안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두 달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고 있지 못한데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저렇게 공장서 불법파업하며 버티는 사람들, 저 사람들, 저거 다 빨갱이다” 아이는 아빠가 쌍용차 해고자인 것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빠가 싫어집니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안으로 숨어버립니다.

 

가족모두가 겪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공간마련과 프로그램의 준비가 시작되었지만 열정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많았어요.

 

그러나 해고가, 결코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에 공감해주시는 셀 수없이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와락이 완성되었습니다.

 

얼마 전엔 반 년 정도를 집밖에 나가지 않고, 함께 일하던 동료나 친구와 연락을 끊고 방안에서만 지내던 한 젊은 조합원이 자살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빈소에서 만난 어머니는 이렇게 상담을 해주는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데리고 갈걸 그랬다 울며 자책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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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아이들이 개소식을 준비하며 와락센터 내부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와락의 꿈, ‘함께 살자’

 

와락이 이제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파업이 끝나고 그 힘겨운 싸움을 하고 그냥 뿔뿔이 흩어져 혼자 모든 심리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내는 그들을! 그러다 좌절하고 쓰러지기도 하는 그들을! 찾아내고 만나서 ‘당신은 지지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우리의 잘못으로 이렇게 힘들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함께 손잡아주고 응원하는 많은 이들이 있으니 이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자’ 그렇게 말해주려고 합니다.

 

당장엔 응급상황에 처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을 위해 바쁘게 노력하겠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살피면서 평택이 아닌 전국 곳곳에 두 번째 와락, 세 번째 와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범이 되고자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이 넘는 시대! 계약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나라! 해고가 일상다반사인 현실! 건강하고 좋은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린 시절!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 해고 노동자 이런 이들의 헤집어진 마음과 가족과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품 넓은 와락이 되고자 합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다해야 되는 일이겠지만, 공장안에서 파업기간 내내 외쳤던 ‘함께 살자’라는 우리 남편들의 이뤄지지 않은 구호를 이제 와락을 통해 이루려고 합니다.

 

어쩌면 제 맘속 ‘우리를 이렇게 참혹한 시간으로 마구잡이 밀어넣은 저들에게 좀 보여주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고 있나? 회사, 정부! 너희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멋진 방식으로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 보란 듯이 말이죠.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가족, 동료, 동지 그들을 와락 안아주세요. 서로를 보듬고 안는 방식으로 우리 모두 함께 살아요!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와락이 꾸는 꿈입니다. ●

 

- 권지영 (와락센터 대표)

 

* 와락센터 후원계좌 : 농협 301-0089-4121-21 (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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