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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박후건과 정세현의 프레시안 최근 기고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495

 

박근혜, '사드' 짊어지고 루비콘강 건넜다

 
2016.07.27 11:39:22
[한반도 브리핑 ] 내가 더는 글을 쓸 수 없는 이유
 
내가 <프레시안>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부터이다. 그때는 이명박 정부가 막 시작할 때이었고 나는 일본 어느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경남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고 첫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김대중 정부 때부터 기조로 삼아온 '햇볕정책'에서 탈피해 '실용'과 '실리'를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칠 것을 천명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이 '실용'과 '실리' 외교의 핵심은 한미관계의 복원에 기초해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대북정책을 세우고, 실천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국에 오기 바로 직전 '한국과 같이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강소국이 되었는가? 또 이것을 어떻게 한국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하고 '중립화 노선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책을 쓰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자각 중 하나는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증진시키는 것이라 할 때,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외교에서 어느 한 쪽에 편입되어 그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해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천명한 외교정책이 한국의 국익에 반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였고 이것을 알리기 위해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이후 <프레시안>에서 나를 '한반도 브리핑'의 필자 진에 넣어주는 덕분에 8년 동안 평균 두 달에 한 번꼴로 글을 실을 수 있었다. 8년간 작지 않은 양의 글을 썼다. 그냥 의무적으로 순서가 다가와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세계질서에서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지경학적으로도 중심에 있는 한반도가 세계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나의 글이 이것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록 한편에 원고지 30장 정도의 작은 글이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이제 이와 같은 글을 쓰기 어려울 것 같다. 필자의 얄팍한 지식과 식견이 고갈된 것도 현실적인 이유이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인 사드(THAAD)를 한국에 배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더 이상 한국 외교에서 새로운 외교 전략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는 루비콘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동북아시아라는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지라는 방정식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또는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이기를 포기하고 상수, 그것도 종속 상수로 전락해 버렸다.  
 

▲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오른쪽)과 토머스 벤달 미8군사령관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THAAD)를 남한 내 배치하는 것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사드(THAAD) 한국 배치는 단순히 북한의 핵탄두를 막기 위해 추진 된 것이 아니다. THAAD의 한국 배치는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이제 그동안 길러온 실력을 바탕으로 '제 할 일을 주동적으로 하자'라는 주동작위(主動作爲)로 바뀌고 있는 중국을 미국이 일본, 한국과 더불어 물리적으로 견제하여 중국으로의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를 저지하겠다는 미국 전략의 실질적 그리고 핵심적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변수로서 한국이 자국의 이익에 바탕을 두고 외교를 하였더라면 자국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나아가 동북아에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중계하며 협력을 촉진하는 촉매적 역할을 담당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속 상수로서 한국은 동맹국의 의지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의 전초기지로 그 역할과 임무가 결정지어 짐으로써 동북아 세력 각축장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혹자는 말한다. "중국이 한국의 가장 큰 무역국이지만 중국은 그들의 개혁개방에서 보여 주었듯이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여 다루기 때문에 한국에 THAAD가 배치되어도 경제적으로 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무지를 들어내고 몽매한 희망 사항일 뿐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면서 추진되지 않았다. 문화혁명 이후 중국지도부는 문화혁명을 비판 정리하고 다시 정통 맑스주의 시각에서 중국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재정립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었지만 역사발전 단계에서 자본주의 단계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력이 사회주의 단계에 이를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회주의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생산력 향상을 이루어야 하며 시장도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들이 당시 처한 시기를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규정했다. 중국에서 생산력 제고, 즉 시장을 활용한 생산력 향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표명되는 중국의 유일 정당인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의 개혁개방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보는 맑스주의 시각에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에 기초하여 외교정책을 펴는 것이 주권국가의 기본적 행태이고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상식이라면 자국을 견제하고 견양하고 있는 THAAD가 배치되어 있는 한국에게 아무런 보복과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을 무시한 자의적이고 몰상식한 발상이다.

또 혹자는 말한다. "우리는 국가수립단계부터 미국과 동맹관계이고 미국 덕분에 북한의 침략도 막아내고 경제성장도 이루었으니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외교의 본질과 현실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내고 국민을 호도하여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주장이다.  

미국이 한국을 가엾게 여기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되어 한국을 구하기 위해서 한국전쟁에 참여 하였고 한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국의 시장을 열었을까?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 것은 현실이며 상식이다. 그리고 위의 명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바탕으로 타국과 관계를 맺고 행동한다는 것을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야 들여야 한다.  

'미국이 왜 한국전쟁에 참가했고 자국의 시장을 한국에게 열어주었을까?'에 대한 정답은 '왜 미국이 베트남전에 참가 하고 일본에게 자국의 시장을 열어 주었을까?' 를 따져보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아니 세계 대부분의 주권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극대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타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다.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미국편에 서는 것이 무엇이 문제야!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의 패권이 지속될 터인데!" 미국은 제2차 대전 이후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프린스턴 대학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길핀의 패권안정론에 따르면 패권(hegemony)이 존재하는 시기동안 공공재(public goods)의 공급이 증가하여 자유무역 제도 등이 발전한다고 한다. 반면 패권의 쇠퇴시기에는 공공재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보호무역적 특성 등을 보인다고 한다. 길핀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미국의 패권은 분명히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 현실과 바로 맞닿은 사례들에서 간단히 확인된다. 미국이 여전히 명실상부한 패권국이라면 왜 굳이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할까? 왜 중국이 배제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일본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을까?  

또한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왜 노골적으로 미국이 맺은 모든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재검토하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협정은 폐기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을까? 이렇듯 모델스키의 패권 100년 주기(週期)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미국의 패권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THAAD의 한국배치에 대한 결정은 불가역적이기 때문에 (한국은 내년 12월 달에 대통령선거를 하는데 여기서 당선된 새로운 대통령이 THAAD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배치된 THAAD를 철폐할 수는 없을 것이다) THAAD 한국 배치를 지지하거나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입장에 대한 비판은 소용없는 일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가까운 미래에도 변화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한 어떠한 분석도, 또 여기에 대한 한국 외교에 관하여 글을 쓰기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한국은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며 그 정체와 가치가 확실히 들어난 종속 상수일 뿐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누가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지적해 주고 시원한 대안을 말해 주길 간절히 염원한다. 그동안 '한반도 브리핑'에 게재된 나의 졸필을 읽어 주신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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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269

 

"사드, 박근혜가 김정은 살렸다"

 
2016.07.20 17:57:34
[정세현의 정세토크] 위안부 합의와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 공통점은…
 
한미 양국은 지난 3월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며 공동 실무단 차원의 협의를 시작했다. 이후 4개월 만에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왜 사드를 배치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장소는 왜 경상북도 성주인지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없는, 전격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이를 두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현지시간으로 12일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결과가 나왔는데, 미국은 이 발표 이전에 중국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서둘러서 발표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정치 일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국 정부의 준비 상황과는 별개로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 문제가 복잡한 이슈가 돼버리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의도로 발표 시점을 당긴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따라간 것으로 보이는데, 사드 배치하는데 왜 중국 눈치를 보느냐며 우리의 군사 주권을 운운하고 있지만, 이번 사드 배치 발표야말로 우리에게 군사 주권이 없음을 명백히 드러난 셈"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이미 군사 주권을 포기한 정부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자진해서 무기한으로 연기하지 않았나"라며 "군사 주권의 핵심을 포기해놓고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만큼은 군사 주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사드에 대해 국익의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는 가장 큰 목적은 남한을 방어하거나 북한의 핵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을 정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이다"라며 "따라서 배치하는 순간 한중, 한러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게 정말 우리의 국익에 일치하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국익을 제대로 따져보려면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한데, '신중론'에 입각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정부에서 결정했는데 지금 와서 뒷북 두드려봐야 뭐하느냐'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외교, 안보, 남북관계가 모두 절단난 것은 물론이고 국가의 기강도 무너졌다. 이렇게 되면 웬만하면 정권은 넘어가게 돼 있다. 그런데 지금 더민주가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정권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마치 '우리라고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왜 우리보고 정권을 가지라고 해' 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3월 사드 배치를 위한 한미 공동 실무단이 협의를 시작한 지 4개월만에 사드 배치 결정이 확정됐습니다. 다소 급하게 결정이 내려진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정세현 :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지시간으로 12일에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 결과가 나왔는데, 미국은 이 발표 이전에 중국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서둘러서 발표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따라간 것으로 보이는데, 사드 배치하는데 왜 중국 눈치를 보느냐며 우리의 군사 주권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번 사드 배치 발표야말로 우리에게 군사 주권이 없음을 명백히 드러난 셈입니다.  

중국의 반대에 대해 군사 주권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군사 주권이라는 용어의 뜻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군사 주권을 포기한 정부입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자진해서 무기한으로 연기하지 않았습니까? 군사 주권의 핵심을 포기해놓고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만큼은 군사 주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을 봐도 미국에 의해 급하게 이뤄진 정황이 드러납니다. 한미 양국은 지난 8일 사드 배치 확정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3일에는 경북 성주군에 배치된다고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상적인 발표 과정은 아닙니다. 한미 양국의 공동 실무단이 협의를 다 마친 뒤에 장소도 정한 상태에서 장관에 보고한 뒤,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해서 정부의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이른바 '프로세스'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급하게 발표된 것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 발표 일정을 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득과 실을 따질 겨를도 없이,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미국이 밀어 붙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한국의 대선이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사드 배치가 어려울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미국이 밀어붙였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세현 : 8월 야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대선 주자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이후에 사드 배치 문제를 발표하면 이것이 한국 사회 내에서 더 큰 이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 사회에 아예 논의의 틈을 주지 말자는 차원에서 발표를 서두른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은 그동안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들의 대내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해 왔습니다. 터키의 실패한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돼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비교적 협조를 해주는 정권이지만, 좀 더 확실한 미국 편을 만드려고 이런 시도를 벌인 것일 수 있습니다.

종합해보면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 내에서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복잡한 이슈가 돼버리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의도로 발표 시점을 당긴 것일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준비 상황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참 서글픈 일입니다.
 

▲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오른쪽)과 토머스 벤달 미8군사령관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주한미군의 사드(THAAD)를 남한 내 배치하는 것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와 올해 2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 그리고 지금의 사드 배치 결정을 보면 사회적인 논의나 합의 없이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정세현 : 청와대가 직접 백악관이나 국무부의 지시대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미국의 소위 대중국 전략, 또는 동북아 전략의 틀 속에서 이러한 사안들이 결정된 겁니다.

결국 한국이 미일 군사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완전히 들어간 것인데, 미국과 동맹 관계인 상황에서 미국이 요청하는 군사적 협조를 안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위 체계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또 설사 하위 체계로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한테 남는 장사라면 모르겠는데 손익계산서를 두들겨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프레시안 :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하는 일종의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박근혜 정부가 어느새 동북아의 안보 불안을 높이는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물론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가지고 있는 대북 적개심이나 불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공포, 국내 정치적 목적 등도 여기에 일조했습니다.  

우선 미국의 무기가 있어야 북한과 비등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지금 남북의 국력 차이를 고려해보면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전면전을 통한 무력 통일 시나리오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음 정권도 보수가 들어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려면 사회의 보수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카드는 북한입니다. 반북 정서를 높이고 북한에 한반도 위기의 책임을 떠넘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사드라는 카드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러한 국내정치적인 수요까지 제대로 읽은 것 같습니다. 이를 절묘하게 활용해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한국을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 넣은 겁니다. 이렇게 동북아의 불쏘시개가 돼버린 건데, 이런 사실도 모르고 군사주권을 떠들고 있다는 게 참 한심합니다.

박근혜가 김정은을 살려줬다 

프레시안 : 사드가 배치되면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북한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정세현 : 사드 배치로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과 적대적인 관계가 됐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의 국제 공조는 끝난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을 살려준 것이죠.

대북제재의 성공 열쇠는 결국 중국과 러시아가 쥐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아예 제재 전선에서 이탈해버리면 김정은으로서는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확실한 협조자 또는 탈출로를 확보한 셈입니다.  

외교부는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에 사드 배치 발표를 서둘러서 하지 말자고 했을 겁니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계속된다면 오는 9월 이후에는 북한이 손들고 나온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정부는 쿠바, 불가리아 등 소위 북한과 친한 국가들을 찾아가는 외교 행보를 벌이면서 북한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도 우간다에 방문해서 북한과 우간다 사이를 벌려 놓았다고 자화자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전선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향후 북중 관계는 가까워지기 싫어도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겁니다.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이게 박근혜 정부에게는 패착인데, 아마 패착인지도 모를 겁니다.  

한편으로는 외교부가 미국의 의지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드 배치 발표 시기 문제는 단순히 군사적인 사안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대외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국방부가 아닌 국무부가 시점을 조정했을 텐데, 외교부와 국무부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안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북한이 19일 스커드와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진은 미사일 발사 장면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김정은(오른쪽) 노동당 위원장 모습. ⓒ노동신문


프레시안 : 이 와중에 북한은 스커드와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습니다.  

정세현 : 사드 배치에 북한 나름의 대응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단거리 미사일로 사드 기지는 얼마든지 때릴 수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북한은 이동식 발사대도 가지고 있구요.  

한 달 후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때 북한에게 위협이 되는, 핵무기를 실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국 무기들이 한반도로 전개됩니다. 여기에 대한 사전 견제 내지 경고의 의미도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겁을 주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 쏠 수도 있으니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는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제 북한에서 미사일을 쐈다고 해도 국민들이 놀라지도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반공 차원에서 대북 정책을 국내 정치에 계속 활용하다 보니 이제는 국내 정치에 북한을 활용할 만한 여지도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약발도 먹히지 않는 겁니다. 그 전에만 해도 북한의 이런 행동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고 국민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소위 '국론 통일' 인데, 박 대통령의 아버지도 이걸 참 좋아했죠.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 무기 협력을 강화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고차원의 핵 무기 기술과 중국의 자금력이 합쳐져서 중러가 핵무기 군사 협력 강화하면서 동북아의 긴장된 정세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세현 : 중국과 러시아 간에 외교적인 협력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군사, 기술적인 분야에서 협력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지금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때문에 위안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마당에 중국이 러시아한테 경제적으로 뭔가를 퍼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즉, 러시아가 군사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군사적 행동 차원의 협력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사드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부대를 극동 지역으로 이동시키겠다고 했는데, 시간도 많이 걸려서 쉽지 않지만, 실제 이동이 현실화된다면 중국에 많은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터키의 쿠데타가 동북아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터키와 미국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러시아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 쿠데타가 진압이 된 바로 다음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이 다음 달에 정상회담을 한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판세를 읽는 눈이 있었다면 사드 배치 문제에서 미국의 지시와 압력이 있었다고 해도 시간을 더 끄는 것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사드를 배치하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그냥 밀어붙인 셈입니다.  

박근혜 정부, 국민에 사기 쳤다  

프레시안 : 이번 사드 배치로 박근혜 정부가 취임 초기에 내걸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3년 만에 180도 뒤집혔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북한의 붕괴를 원했던 본심을 숨겼던 것일까요? 아니면 미국의 압력을 당해내지 못한 것일까요? 

정세현 :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3년 이러한 구상들이 나왔는데 연말에는 남재준 당시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2015년 자유민주주의 통일' 언급이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구상은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가 건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국민들에게 사기를 친 정권이 된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은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공개적인 것은 그것대로 있고 실제 전략과 의도는 따로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은 거짓말 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말은 근사하게 해놓고 실제 행동은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죠.

2013년 말, 2015년에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힌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을 꺼내 듭니다. 그리고 통일준비위원회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은 "사드의 한국 배치를 최근 본국에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사드의 한국 배치가 본격적인 이슈에 오르게 됐습니다. 2014년 6월은 이미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소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실행되고 있던 상황입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앞세워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고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사드 본체보다는 레이더가 필요했을 겁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에 의해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군사 행동이 위축됩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비용이 많이 듭니다. 상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소모전을 벌일 수도 있지만, 비용을 많이 들여서 힘을 키울 수 없게 만드는 억지 전략도 있는데요. 남한 내 사드 배치는 억지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드 배치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사드 배치의 논쟁 지점이 북한의 핵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로 모아지면 이것은 미국의 사드 배치 의도와는 다른 부분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셈입니다.

사드 배치의 환경영향평가나 절차 문제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 이익의 문제입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사드 배치의 가장 큰 목적은 남한을 방어하거나 북한의 핵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을 정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사드가 배치되는 순간 한중, 한러 관계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정말 우리의 국익에 일치하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꼼꼼히 따져보고 현 상황을 바꾸려면 정치권에서 나서야 하는데 지금 야당에서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더불어민주당에서 '정부에서 결정했는데 지금 와서 뒷 북 두드려봐야 뭐하느냐', '우리가 미국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살 수 있었느냐'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런걸 보면 우리는 참 야당 복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민주 내에서 원내대표를 비롯해서 사드 배치 반대로 의견이 모아졌다면 누군가는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비대위 대표와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당론도 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이 정당이 수권정당이 될 생각이 있는지가 의심스럽습니다. 공무원 보고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요즘 더민주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더 영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외교, 안보, 남북관계가 모두 절단난 것은 물론이고 국가의 기강도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웬만하면 정권은 넘어가게 돼있습니다. 보수 정권을 표방하고 있는 정부에서 법치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도덕성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더민주가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정권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마치 "우리라고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왜 우리보고 정권을 가지라고 해"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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