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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2_보성소리 수궁가 사설

 공공 도서관은 희망 도서 신청이 안 되겠지만, 혹시 대학 도서관에 가능하시다면 희망 도서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돌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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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정응민 명창과 정권진 명창을 거쳐 정회석 명창에게 이어진 수궁가, 일명 ‘보성(寶城)소리 수궁가’ 사설을 주해(註解)한 것이 이 책이다. 고(故) 정응민 명창은 20세기 중반기까지 활약했던 판소리 명창이다. 『논어(論語)』에 나온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표현처럼, 판소리의 전통을 현대로 이은 큰 스승이다. 그의 아들이자 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초대 보유자가 고(故) 정권진 명창이다. 정응민 명창의 손자이자 정권진 명창의 아들이자 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보유자가 정회석 명창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3대(代)에 이르고, 정응민 명창의 윗대인 고(故) 정재근 명창까지 하면 4대에 이르는 판소리 명문가이다. 이 명창 집안의 수궁가를 중시조(中始祖) 정응민 명창이 은거했던 보성(寶城) 지역의 이름을 따 ‘보성소리 수궁가’로 부르는 셈이다.

 이 책의 주해는, 『토끼전 전집』 1~6권(김진영·김현주 외 편저, 박이정출판사, 1997~2003)에서 150여 년 전부터의 사설을 두루 발췌독 하며 그 문맥에 기초해서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100여 년 전 유성기 음반의 복각 녹음에 실증적으로 기초하기도 했다. 끝으로,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누리집(ctext.org)과 한국 고전종합 DB 누리집(db.itkc.or.kr)과 각종 백과사전과 어학 사전 등에서 총체적으로 용례를 검증하기도 했다.
 물론, 허성도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님께서 판소리 사설 주해에 있어 한시(漢詩)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셨던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그리고, 배연형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님께서 다음과 같은 사실 등을 알려주신 것도 중요한 계기였다. 정회석·조정희가 탈초(脫草) 하고 배연형이 감수한 「<부록 1> 정응민 <수궁가> 창본 (1935)」이 정회석의 「정응민 가계 <수궁가>의 음악적 특징과 전승양상」(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한양대학교, 2014)에 실려 있었다.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스승님들의 은혜에 대해, 『당시별재집』 1~6권(심덕잠 엮음, 서성 옮김, 소명출판, 2013)과 『조선 사람이 좋아한 당시』(이종묵 평역, 민음사, 2022)와 『토끼전 전집』 1~6권 등등의 논저에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다. 끝으로, 참고 문헌을 각주로 대신한 점에 대해 너른 양해를 구한다.

 

2023년 9월 21일 목요일에

서울대학교 중앙 도서관 2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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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2_보성(寶城)소리 수궁가(水宮歌) 사설
편(編)한 『주해(註解) 보성소리 수궁가』(부크크, 2023)의 본문 부분만이지만 좀 더 다듬었습니다. dolmin98@naver.com

 

1.            ······ 1쪽

2. 별 주부 ······ 4쪽

3. 세상으로 ······ 5쪽

4. 토끼 ······ 10쪽

5. 용궁으로 ······ 13쪽

6. 세상으로 ······ 16쪽

 

보성(寶城)소리 수궁가(水宮歌) 사설

1.

 

[아니리]

갑신년(甲申年) 중하(中夏) 월(月)에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영덕전(靈德殿) 높이 짓고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야 삼해 용왕(龍王)을 청하실 제 군신(群臣) 빈객(賓客)이 천승(千乘) 만기(萬騎)요, 강한지장(江漢之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일시에 모여들어 중악(衆樂)이 필진(畢陳) 허고 굉주교착(觥籌交錯)이라. 이삼일 노니더니, 남해 용왕이 해전 열풍(熱風)을 복중에 과(過)히 쏘여 졸연(猝然) 득병(得病)허여, 약방 도제조(都提調)를 불러 주야(晝夜)로 약을 쓰되, 만무회춘지망(萬無回春之望)이로구나.

 

[진양조]

영덕전 높은 궁궐 벗 없이 홀로 누워, 애통허여 울음 운다. 천무열풍(天無烈風) 좋은 시절의 해불양파(海不揚波) 태평헌듸, 괴이한 병을 얻어 신음 중(中)의 누웠으니, 날 구헐 이가 뉘 있드란 말인그나. 애통허여 울음을 운다.

 

[엇모리]

하로난 현운(玄雲) 흑무(黑霧) 하로난 현운 흑무. 궁중을 뒤덮으며 폭풍 세우(細雨)가 사면을 두루더니, 어떠한 청의(靑衣) 도사(道士) 몸에난 장삼(長衫) 포(袍)요, 손에 옥을 쥐고 공중으로 내려와 재배이진(再拜而進) 왈, “약수(弱水) 삼천(三千) 리(里) 해당화(海棠花) 구경과 백운 요지연(瑤池宴)의 천년 벽도(碧桃)를 얻으랴 지하에 왔삽더니, 풍편(風便)에 듣자온즉, 대왕의 병세가 만만(萬萬) 위중타 허옵기의 뵈옵고저 왔나이다.”

 

[아니리]

왕이 왈 “도사 이리 오시기는 하늘의 도움이라. 원컨대 도사는 황황(遑遑)한 나의 병세를 자세히 짐작허사 선약(仙藥)을 가르쳐 주옵소서.” 도사 왈, “우선 맥(脈)이나 보사이다.” 도사가 왕의 맥을 보랴 헐 제,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으로 둔신(遁身)허여 꼭 사람과 같은 진맥(診脈)을 허것다.

 

[자진모리]

왕이 팔을 내어주니 도사 맥을 본다. 심(心), 소장(小腸)은 화(火)요, 간담(肝膽)은 목(木)이요, 폐, 대장(大腸)은 금(金)이요, 신(腎), 방광(膀胱)은 수(水)요, 비위(脾胃)난 토(土)라. 간목(肝木)이 태과(太過)하여 목극토(木克土) 허니 비위가 상하옵고, 담성(痰聲)이 심허니 신경(腎經)이 미약(微弱)허고 폐, 대장이 왕성(旺盛)허니 간담경(肝膽經)이 자진(自盡)이라. 방서(方書)에 일렀으되 비내일신지조종(脾乃一身之祖宗)이요, 담(膽)은 내일신지표본(乃一身之標本)이라. 심정(心靜) 즉(則) 만병(萬病)이 식(息) 허고 심동(心動) 즉 만병이 생(生)하오니, 심경(心經)이 상하오면 무슨 병이 아니 날까. 오로칠상(五勞七傷) 급하오니 보중탕(補中湯)으로 잡수시오. 숙지황(熟地黃) 주초(酒炒)하야 닷 돈이요, 산사육(山査肉), 천문동(天門冬), 세신(細辛)을 거토(去土) 허고 육종용(肉蓯蓉), 택사(澤瀉), 앵속화(罌粟花) 각 한 돈, 감초(甘草) 각 칠 푼, 수일승전반(水一升煎半) 연용(連用) 이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설사가 급하오니 가감백출탕(加減白朮湯)으로 잡수시오. 백출(白朮)을 초구(炒灸) 하여 두 돈이요, 사인(沙仁)을 초구 하여 서 돈이요, 백복령(白茯苓), 산약(山藥), 오미자(五味子), 당귀(當歸), 천궁(川芎), 강활(羌活), 목통(木通), 감초 칠 푼, 수일승전반 연용 삼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양감(兩減)이 급하오니 가미강활탕(加味羌活湯)으로 잡수시오. 마황(麻黃) 두 돈, 진피(陳皮), 강활, 방풍(防風), 백지(白芷), 천궁(川芎), 창출(蒼朮), 승마(升麻), 갈근(葛根), 세신 각 한 돈, 감초 칠 푼 수일승전반 연용 사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을 갖가지로 다 쓰랴다는 지레 먼저 죽을 테니 백약(百藥)을 한테 모아 작두에 모다 썰어 가마에 많이 다려 한 번에 먹어 보자. 약을 한테 모일 적의 인삼은 미감(味甘) 허니 대보원기(大補元氣) 허고 지갈생진(止渴生津) 허여 조영양위(調榮養衛)로다. 백출은 감온(甘溫) 허니 건비강위(健脾强胃) 허고 지사제습(止瀉除濕) 허며 겸구단비(兼驅痰痞)로다. 감초도 감온 허나 구즉온중(灸則溫中) 허고 생즉사화(生則瀉火)로다. 청심환(淸心丸), 소합환(蘇合丸), 팔미환(八味丸), 육미환(六味丸), 경옥고(瓊玉膏), 자음경옥고(滋陰瓊玉膏), 백고약(白膏藥), 대황(大黃), 망초(芒硝), 창출, 백출, 승마, 갈근, 세신, 진피, 계피(桂皮), 반하(半夏), 육계(肉桂), 천산갑(穿山甲), 천문동, 맥문동(麥門冬), 호황련(胡黃蓮), 당황련(唐黃連), 가미군자탕(加味君子湯), 청서육화탕(淸暑六和湯), 이원 익기탕(益氣湯), 강활탕(羌活湯), 도인탕(桃仁湯), 백사주(白蛇酒) 위령탕(胃苓湯), 황금 인분탕, 두꺼비 오줌, 곰 쓰래까지 각가지로 다 먹어도 백약이 무효로구나. 침구(鍼灸)로 다스리자. 동침(銅鍼), 은침(銀鍼) 빼어 들고 혈(穴)을 잡어서 침질헐 제, 천지지상경(天地之常經)이니 유주(流注)로 주어보고 갑일(甲日) 갑술시(甲戌時)의 담경(膽經) 규음(竅陰)을 주고, 을일(乙日) 유시(酉時)의 대장경(大腸經) 상양(商陽)을 주고 영구(靈龜)로 주어 보자. 일 신맥(申脈), 이 조해(照海), 삼 외관(外關), 사 임읍(臨泣), 오 소해(少海), 육 공손(公孫), 칠 후계(後谿), 팔 내관(內關), 구 열결(列缺), 삼기(三奇) 붙여 팔문(八門)과 좌맥(左脈)을 눌러주고 효험이 없으니, 임맥(任脈)과 독맥(督脈)과 십이(十二) 경(經) 주어 봐 승장(承漿), 염천(廉泉), 천돌(天突), 구미(鳩尾), 거궐(巨闕), 상완(上脘), 중완(中脘), 하완(下脘), 신궐(神闕), 단전(丹田), 곤륜(崑崙)을 주고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 각 대돈(大敦), 삼음교(三陰交), 음릉천(陰陵泉)을 주어 보자. 아무리 약과 침폄(針砭) 허되 병세 점점 위중(危重)허니,

 

[아니리]

용왕이 어이없어 “도사 맥을 더 착실히 보아 주옵고, 내 병명이나 가르쳐 주오.” 도사가 다시 정신을 차려 용왕의 기세를 요만허고 살펴보더니마는,

 

[중모리]

도사 다시 맥을 본다. “맥이 경동맥(驚動脈)이라, 비위(脾胃) 맥(脈)이 상하오니 복중(腹中)에서 난 병이요, 복중이 졀려 아프기는 화증(火症)에서 난 병인듸, 음황(陰黃) 풍병(風病)이라. 여섯 가지 기운(氣運)이 동(動)하야 감계신진(坎癸申辰)은 정양(淨陽)이요, 진경해미(震庚亥未)는 정음(淨陰)이라. 음허화동(陰虛火動)의 황달(黃疸)을 겸하였으니, 진세(塵世) 산간(山間) 토끼 간을 얻으면 차효(差效)가 있으려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오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동성(同姓) 삼촌이요, 동방삭(東方朔)이가 조상이 되어도, 누루 황(黃) 새암 천 돌아갈 귀(歸).”

 

[아니리] 

왕이 왈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은 어찌 약이 아니 되옵고, 조그막헌 토끼 간이 약이 되오리까?” 도사 이른 말이 “대왕은 진(辰)이요, 토끼는 묘(卯)라. 묘을손(卯乙巽)은 음목(陰木)이요, 간진술(艮辰戌)은 양토(陽土)라. 갑인진손대강수(甲寅辰巽大江水)요, 진간사산원속목(震艮巳山元屬木)이라. 목극토 허고 수생목(水生木) 허였으니 어찌 약이 아니 되오리까?” 용왕이 이 말 듣더니마는 탄식(歎息/嘆息)허여 우는 말이,

 

[진양조]

“연(然)하다, 수연(雖然)이나 창망(悵惘)헌 진세 간의 벽해(碧海) 만경(萬頃) 밖의 백운(白雲)이 구만리(九萬里)요, 여산(驪山) 송백(松柏) 울울창창(鬱鬱蒼蒼) 삼 척(尺) 고분(孤墳) 황제 묘라. 석자(昔者) 진시황(秦始皇)은 만승천자(萬乘天子) 위엄으로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인을 불사약(不死藥) 구허랴 허송(虛送) 삼산(三山) 한 연후의 일발청산(一髮靑山)의 종적이 없었으니 못 구허고 붕(崩)허시며, 만고(萬古) 영웅 한(漢) 무제(武帝)도 승로반(承露盤)이 허사가 되어, 육십삼 세의 붕허시니 성쇠흥망(盛衰興亡)이 때가 있고, 수요장단(壽夭長短) 재천(在天)이라. 토끼라 허는 짐생은 해외(海外) 일월(日月) 밝은 세상의 백운 청산 무정처(無定處)로 시비(柴扉) 없이 다니는 짐생을 내가 어이 구허드란 말이오.”

 

[아니리]

이렇듯 탄식허니 도사 이른 말이 “태산지간(泰山之間)의 유백금지사(有百金之士) 허고 요순지군(堯舜之君)의 유고요직설(有皐陶稷契)이라. 대왕의 성덕(聖德)으로 어찌 충의지신(忠義之臣)이 없사오리까? 이제라도 수부(水府) 조정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불러 일체 하교하여 보옵소서.” 말이 지자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것다. 왕이 도사 말을 옳게 여겨 수궁(水宮) 만조제신(滿朝諸臣)들을 일시에 불러들이난듸, 이 세상 같으면 일품(一品) 재상(宰相)님네가 들어오실 것이로되, 수궁이라 허는 곳은 맛진 고기가 지천(至賤)이 되야 수궁 만조백관인들이 모다 물고기 등물(等物)이었다. 모다 어명(御命)을 받고 들어오는듸,

 

[자진모리]

승상(丞相)은 거북, 승지(承旨) 도미, 판서(判書) 민어, 주서(注書) 오징어, 한림(翰林) 박대, 대사성(大司成) 도루목, 방첨사(防僉使) 조개, 해원군 방게, 감목관(監牧官) 수달피(水獺皮), 유수(留守) 광어, 병사(兵使) 청어, 군수(郡守) 해구(海狗), 현감(縣監) 홍어, 부서 찰방(察訪), 어사 숭어, 좌랑(佐郞) 병치, 대장(大將) 범치, 조 부장(部將) 조구, 비변랑(備邊郞) 청(靑)달내가오리, 금군(禁軍) 나졸(邏卒), 좌우 순령수(巡令手), 대원수(大元帥) 고래, 수피(水皮) 해구(海狗), 모조리, 원(黿) 참군(參軍) 남생이, 모래무지, 주부(主簿) 자래, 병어, 전어, 대구, 명태, 눈치, 준치, 삼치, 꽁치, 갈치, 물메기, 미끈덕 뱀장어, 정원사령(政院使令) 짜개사리, 돌 밑에 꺽지, 산 냇물의 중고기, 깊은 물에는 금잉어, 빛 좋은 피리, 망동이, 짱뚱이, 숭동이, 올챙이, 개고리, 송사리, 눈쟁이까지 그저 꾸역꾸역 들어와 대왕 전(前)의 복지(伏地) 청령(聽令)허니.

 

[아니리]

병든 용왕이 이만허고 내려다보더니마는, “짐이 경들을 본즉 용왕이 아니라 세상 팔월 대목장(場) 어물전(魚物廛) 도영수(都領首)가 되었구나. 병중에 내 입맛만 당그었지. 경들 중에 세상에 나가 토끼를 구해 과인의 병을 즉효(卽效) 헐 자 뉘가 있을꼬?” 좌우 면면상고(面面相顧)하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이로구나.

 

[중모리]

용왕이 기가 막혀 또 탄식을 허는구나. “할고(割股) 사군(事君) 개자추(介子推)와 광초(誑楚) 망신(忘身) 기신(紀信)이는 죽을 임군 살렸으니 군신유의(君臣有義) 중할시고, 원통(冤痛)타 우리 수궁 만여지중(萬餘之衆)의 일충신(一忠臣)이 없었으니 어느 뉘라 날 살릴거나?” 자탄(自歎/自嘆)을 마잔허니

 

[아니리] 

신자지도리(臣子之道理)로 저이들끼리 공론이 분운(紛紜)헐 제. “숭어 너 어떠허뇨?” “나는 세상에 나가고 싶다마는 횟감도 좋거니와 제찬(祭饌)으로 제일 위주(爲主) 허니 나갈 수 있나?” “도미 너는 어떠허뇨?”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의 풋고사리 막 난 판에 왼통 찌개 거리로 나 죽기 싫다. 뉘 아들놈이 앉어 죽지 나가서 죽어야?” 이렇듯 서로 안 가기로만 작정허니,

 

[단중모리]

정언(正言) 잉어가 여짜오되 정언 잉어가 여짜오되, “세상이라 허는 곳은 인심이 소박(疏薄)허여 수궁 신하(臣下)가 얼른허면 잡아먹기 위주(爲主) 허니, 지혜 용맹 없는 자는 보내지 못하리라.” “수문장(守門將) 물메기가 어떠허뇨?” “물메기는 장수구대(長鬚口大) 허고 호풍신(好風神) 수염 좋으나 식량(食量)이 장이 넓어 조그막한 산천수(山川水) 요기감 얻으랴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사립(簑笠) 쓴 저 어옹(漁翁) 사풍세우불수귀(斜風細雨不須歸)라. 입감 뀌어 던진 낚시 탐식(貪食)허여 집어먹고 단불요대(斷不饒貸) 죽게 되면, 세상의 이질(痢疾) 복질(腹疾) 배아피, 술병, 설사 난 듸 국 끓여 보(補)하기 약만 되니 보내지는 못하리라.” “군수(郡守) 해구는 어떠허뇨?” “해구는 신경(腎經)이 너무 좋아 호색(好色)을 허는 고로 색필망신(色必亡身)이라, 보내지 못하리라.” “하(鰕) 낭청(假郎廳) 새우는 어떠허뇨?” “낭청(郎廳) 새우는 용맹이 초등(超等)하여 뛰기는 잘 하오나 안정(眼睛)이 삼긴 것이 단명이라 보내지 못하리라.” 해운공 방게가 썩 나서며 살살 기어 복지주왈(伏地奏曰).

 

[아니리]

이놈은 중고제(中古制)로 아뢰난듸,

 

[중중모리]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신의 고향은 세상이라. 청림벽계(靑林碧溪) 산천수 모래 속의 잠신(潛身)허여 수십 년을 사올 적의, 월중퇴[月中兔] 망월퇴[望月兔] 안면이 있사오니, 소신을 보내시면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 놈의 가는 허리를 덥썩 집어 잡어다 대왕 전의 바치리다.”

 

2. 별 주부

 

[아니리]

왕이 왈 “너는 십 각이 구존(具存)허여 걸음은 잘 걸으나, 인적이 얼른하면 퇴불여전(退不如前) 뒷걸음질을 잘하기로 당대사(當大事) 믿지 못하여 보내지 못하리라.” 이렇듯 공론이 미결(未決)헐 제,

 

[엇중모리]

영덕전(靈德殿) 뒤로 한 신하가 들어온다. 은목단족(隱目短足)이요 장경오훼(長頸烏喙)라. 국궁(鞠躬) 재배(再拜)허고 상소(上疏)를 올리거날,

 

[아니리]

그 상소 받아보니 별(鼈) 주부(主簿) 자래로서 그 상소에 허였으되, 황공복지(惶恐伏地) 신(臣) 진(進) 주상(主上) 전하(殿下) 하노이다. 신은 본시 수국 충신지후예(忠臣之後裔)로 추처낭중(錐處囊中)의 탈영이출(脫穎而出) 허든 모수(毛遂)의 재조(才操/才調)와 탄탄위아(呑炭爲啞) 허고 행걸어시(行乞於市) 허든 예양(豫讓)의 충성과 육국(六國)을 종합(從合/縱合)허던 소진(蘇秦)의 구변(口辯)과 맹획(孟獲)을 칠종칠금(七縱七擒) 허던 공명(孔明)의 지모(智謀) 없사오나 당차옥체미령지시(當此玉體靡寧之時) 하와 기감불충도보(豈敢不忠圖報) 허오리까? 차의성상지위령(此依聖上之威靈)과 무궁지조화(無窮之造化)로 광피사해(光被四海) 하시니 하왕불리(何往不利)며 하구부득(何求不得)으로 진세(塵世) 일개(一介) 퇴[兔]를 하난착래(何難捉來)리까? 복원(伏願) 성상(聖上)은 파탈(擺脫) 하생(下生) 불린지덕(不吝之德) 허시고, 즉령(則令) 소신(小臣)으로 사속출세(使速出世)케 하옵시면 진세 일개(一介) 퇴를 착지어정(捉至於庭) 하여 옥체(玉體) 평복(平復)하심을 신(臣) 소원야(所願也)로소이다. 왕이 왈, “영준지신(英俊之臣)이요, 충직지언(忠直之言)이라. 미재(美哉)라! 미재라! 오늘날 주석지신(柱石之臣)을 보았구나! 그러나 여 앉어 들으니 세상 양반께서 자래탕(湯)을 제일 별미로 안다 허니 나가서 죽으면 그 아니 원통허뇨?” 별 주부 황공대왈(惶恐對曰) “신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목을 우무렸다 늘였다 진퇴(進退)를 맘대로 하옵고, 홍문연(鴻門宴) 번쾌(樊噲) 쓰던 도리 방패 같사옵고, 또한 수족이 너이오라, 강상의 둥덩실 높이 떠 망보기를 잘하와 인간 봉패(逢敗)는 없사오나,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토끼 얼굴을 모르오니, 그 화상(畫像)이나 자세히 그려주옵소서.” 그 말이 옳다 허고,

 

[중중모리]

화공(畫工)을 불러라. 화공을 불러라. 화공 불러들여 토끼 화상을 그린다. 연(燕) 소왕(昭王) 황금대(黃金臺) 미인 그리던 화공. 남극 천자(天子) 능허대(凌虛臺) 일월(日月) 그리던 명화사(名畫師). 동정유리(洞庭琉璃) 청홍연(靑紅硯), 금수추파(錦水秋波) 거북 연적(硯滴), 오징어로 먹 갈아 양두(兩頭) 화필(畵筆)을 덤뻑 풀어 단청(丹靑) 채색(彩色)을 두루 묻혀 백릉설화간지상(白綾雪花簡紙上)의 이리저리 그린다. 천하 명산 승지(勝地) 간에 경개(景槪) 보던 눈 기려, 난초 지초(芝草) 왼갖 향초(香草) 꽃 따먹던 입 그리고, 두견(杜鵑) 앵무(鸚鵡) 지지 울 제 소리 듣던 귀 그려, 봉래(蓬萊) 방장(方丈) 운무(雲霧) 중의 내 잘 맡던 코 그리고, 만화방창(萬化方暢) 화림(花林) 중 뛰어가든 발 그려, 대한엄동설한풍(大寒嚴冬雪寒風) 방풍(防風)허든 털 그리고, 신농씨(神農氏) 백초(百草) 약의 이슬 털든 꼬리 그려, 두 귀는 쫑곳, 두 눈 도리도리, 허리 늘찐, 꽁지 묘똑, 좌편은 청산(靑山)이요, 우편은 녹수(綠水)듸, 녹수청산(綠水靑山)에 에굽은 장송(長松) 휘늘어진 양류(楊柳) 속, 들랑날랑 오락가락 앙그주춤 섰는 모양. 아미산월(峨眉山月)으 반륜(半輪)퇴들 이여서 더할쏘냐. 아나, 별 주부야 늬 가지고 나가거라.

 

[아니리]

토끼 화상(畫像) 간수(看守)할 제, 목을 쑥 빼어 뒷덜미에 넣고 딱 오무라노니, 물 한 점 젖을쏘냐? 왕이 어주(御酒)를 내려 허신 말씀. “경(卿)이 세상에 나가 토끼를 잡어 과인의 병을 즉효(卽效) 헐진대, 수국을 반분(半分)한들 무슨 한이 있을꼬?” 별 주부 황공대왈(惶恐對曰), “어쪘든 신의 충성 보옵소서.” 사배하직(四拜下直)허고, 저의 집 돌아와 이별을 허는듸

 

[세마치]

“여보소 마누라.” “예이.” “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토끼를 구하러 세상에 나가되 마누라를 잊지 못하고 가네. 이웃집 남생이란 놈이 나와 똑같이 생겼고, 그놈이 우멍하기 짝이 없으니, 대관절 가까이 붙이들 말소.” 별 주부 암 자래 거동(擧動) 보소. 물뿌리 같은 콧궁기로 숨을 쉬고, 녹두(綠豆) 같은 두 눈을 깜짝거리며 책(責)하여 이른 말이, “나리님 체(體) 위중허시고 연기로(年旣老) 중허시거날 소년(少年) 경박자(輕薄子)의 비루(鄙陋)허신 말씀으로 못 잊고 간다 허시니, 마음이 도리어 미안이오. 나라를 위하여 세상에 나가시면 조그막한 아녀자(兒女子)를 잊지 못하고 간단 말이 조정의 발론(發論)이 되면, 만조제신(滿朝諸臣)들의 웃음 될 줄을 모르시고 노류장화(路柳墻花) 같이 말씀을 허시니까?”

 

[아니리]

별 주부 대소(大笑)허며, “충신지자(忠臣之子)는 충신(忠臣)이요, 열녀지가(烈女之家)의 열녀(烈女)로다. 가중 마음이 이렇게 든든허니, 내 세상에 나가 토끼잡기 무슨 걱정이 될꼬? 내 만사를 잊고 다녀오리다.” 별 주부 암 자래 문밖에까지 나오며, “창망한 진세(塵世) 간(間) 부디 평안(平安)히 다녀오오.” “그러나 이웃집 남생이를 꼭 조심하렷다.”

 

3. 세상으로

 

[중중모리]

수정문(水晶門) 밖 썩 나서 경개 무궁(無窮) 좋다. 고고천변일륜홍(皐皐天邊一輪紅/皐皐天邊日輪紅) 부상(扶桑)의 둥실 높이 떠, 양곡(暘谷)의 잦은 안개 월봉(月峯)으로 돌고 돌아, 예장촌(豫章村) 개 짖고, 회안봉(回雁峯) 구름이 떠, 노화(蘆花) 날아서 눈 되고, 부평(浮評)은 물에 둥실 어룡(魚龍)은 잠자고, 잘새 훨훨 날아든다. 동정여천(洞庭如天)의 파시추(波始秋) 금수추파(錦水秋波)가 여기라. 앞발로 벽파(碧波)를 찍어 당겨, 뒷발로 창랑(滄浪)을 탕탕(蕩蕩), 이리저리 저리 요리 앙금 둥실 높이 떠 사면 바라봐. 지광(地廣)은 칠백(七百) 리 파광(波光)은 천일색(天一色) 천외(天外) 무산(巫山) 십이봉(十二峰)은 구름 밖에가 멀고, 해외 소상(瀟湘)은 일천(一千) 리 눈앞의 경개(景槪)로다. 오초(吳楚)는 어이허여 동남(東南)으로 벌였고, 건곤(乾坤)은 어이허야 일야(日夜)의 둥실 높이 떠, 낙포(洛浦)로 가는 저 배, 조각달 무관(武關) 속에 초(楚) 회왕(懷王)의 원혼(冤魂)이요, 모래 속에 가만히 엎져 천봉만악(千峯萬嶽)을 바라봐. 만경대(萬景臺) 구름 속 학선(鶴仙)이 놀아 있고 칠보산(七寶山) 비로봉(毗盧峯)은 허공에 솟아 계산파무울차아(稽山罷霧鬱嵯峨) 산은 층층 높고 경수무풍(鏡水無風)의 야자파(也自波) 물은 출렁 깊었네. 만산(滿山)은 울울(鬱鬱) 국화는 점점(點點) 낙화는 동동 장송(長松)은 낙락(落落) 늘어진 잡목(雜木), 펑퍼진 떡갈잎, 다리 몽동, 칡넝쿨, 머루, 다래, 으름넝쿨, 능수버들, 벚낭구, 오미자(五味子), 치자(梔子), 감과(柑果), 대추, 갖은 과목(果木) 얼크러지고 뒤틀어져서 구부 칭칭 감겼다. 또 한 경개를 바래봐. 치어다보니 만학천봉(萬壑千峰)이요, 내려 굽어보니 백사지(白沙地)라. 허리 굽고 늙은 장송 광풍(狂風)을 못 이기어 우줄우줄 춤을 출 제, 또 한 경개를 바라봐. 원산(遠山)은 암암(巖巖) 근산(近山)은 중중(重重) 기암(奇巖)은 층층(層層) 뫼산이 울어 천 리 시내는 청산(靑山)으로 돌고, 이 골물이 쭈루루루루 저골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물이 한데로 합수(合水)쳐 천방(天方)자 지방(地方)자 얼턱져 굽부져 방울이 버큼져 건너 병풍석(屛風石)에다 마주 쾅쾅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이런 경개가 또 있나, 아마도 네로구나 이런 경개가 또 있나.

 

[아니리]

그때여 별 주부는 운천경(雲千頃) 기어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전후불견수목처(前後不見樹木處)의 분간(分揀)할 길이 전혀 없고, 허다(許多)히 기는 짐생 상면부지 허니, 토끼 얼굴을 알 수 있나, 한편을 바라본즉, 날짐생들이 모두 모아서 저희들끼리 상좌(上座) 다툼을 하고 노는듸, 봉황(鳳凰)새 나앉으며 허는 말이,

 

[중모리]

이내 한 말 들어보소, “순(舜)인금 남훈전(南薰殿)의 오현금(五絃琴) 가지시고 소소구성(韶簫九成) 노래헐 제, 봉산(鳳山) 높은 봉(峰) 아침볕에 내가 날아 울음을 울어 팔백년 문물(文物)이 울울(鬱鬱)헐 제, 주(周) 문무(文武) 나 계시고, 만고(萬古) 대성(大聖) 공부자(孔夫子)가 내 앞에서 탄생허고, 천 길이나 높이 날아 기불탁속(飢不啄粟) 허여 있고, 영주산(瀛洲山) 높은 봉을 기엄기엄 기어올라 소상반죽(瀟湘斑竹) 좋은 열매 내 양식을 삼었으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아니리]

까마귀 나앉으며, “그 다음 내가 상좌 앉을 일이 있소.” 부엉이 꾸짖어 허는 말이, “네 이놈 온 몸둥이 시커먼 늬가 어디 상좌를 헌단 말이냐?” 까마귀 들은 체도 아니 허고,

 

[엇모리]

“이내 근본 들어라, 이내 근본 들어라. 내 입부리가 길기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방불(彷佛)허고, 이 몸이 검기는 산음(山陰)땅 지내다가 왕희지(王羲之) 세연지(洗硯池)의 풍덩 빠져 먹물 들어 이 몸이 검어 있고, 은하수(銀河水) 생긴 후의 견우직녀(牽牛織女) 건네주고, 오난 길의 적벽강(赤壁江) 성희(星稀)헐 제, 남비(南飛) 둥실 떠 삼국(三國) 흥망(興亡)을 의론(議論)허고, 천하지(天下之) 반포은(反哺恩)을 내 홀로 알았으니 효도(孝道)는 나뿐이라, 아이고 서른지고 아이고 서른지고.”

 

[자진모리]

부엉이 허허 웃고, “늬 암만 그런데도 네 심정(心情) 불측(不測)허여 과붓집 남기 앉어 까옥까옥 또락또락 괴이(怪異)한 음성으로 수절(守節) 과부(寡婦)를 유인(誘引)허고, 네 소리 꽉꽉 나면 세상 인간이 미워라 돌을 들어 날리울 제, 너 날자 배 떨어지니 세상의 미운 놈은 너밖에 또 있느냐? 공동묘지나 찾어가지 이 좌석이 부당허다.”

 

[아니리]

까마귀 무색(無色)을 당해 나앉으며, “내 죄상(罪狀)이 그런다 허드라도 이 만좌(滿座) 중(中)에 그런 망신(亡身)이 어디가 있단 말이오?” 또 한편을 바라본즉, 그 곳에는 모다 길짐생들이 모여드는듸,

 

[단중모리]

소슬양풍석양춘(蕭瑟凉風夕陽春)의 여러 짐생 다 모인다. 공부자(孔夫子) 작춘추(作春秋) 절필(絶筆)허든 기린(麒麟)이며, 삼군(三軍) 삼영(三營) 거동(擧動) 시 천자(天子) 옥련(玉輦)의 코끼리, 옥경(玉京) 선관(仙官) 승필 허니 풍채(風采) 좋은 사자(獅子)로구나. 출림(出林) 풍종(風從) 표범이며, 비웅비표(非熊非豹) 곰이요, 복희씨(伏羲氏/伏犧氏) 양희생(養犧牲)의 길러 내든 노양(老羊), 산양, 창해력사(倉海力士) 박랑사(博浪沙) 저격(狙擊)허든 다람이며, 강수동류원야성(江水東流猿夜聲) 슬피 우는 잔나비, 꾀 많은 여우, 뿔 좋은 사슴, 돈피, 사피(斜皮), 산양, 노루, 날담부, 길담부, 날랜 토끼, 너구리, 오소리, 멧돝까지 모두 다 모일 적의 이런 장관이 또 있느냐?

 

[아니리]

“자 좌중(座中)에 통할 말 있소. 우리가 연년(年年)이 앉어 노는 자리에 상좌 없어 무미(無味)허고, 석양쯤 되면 어른 존장 몰라보고 서로 물고, 차고, 뜯고, 수라장이 벌어지니, 오날은 연치(年齒)를 따져 상좌(上座) 한 분으로 모셔놓고 좀 규모 있게 놀다 갈립시다.” “그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우리가 나이 자랑을 해 봐야제, 저기 장(獐) 도감(都監) 노루는 언제 났소?” 노루가 깡짱 뛰어 나앉더니, 나이 자랑을 허것다.

 

[중모리]

“이내 나이 들어보소. 이내 나이를 들어보소. 기경선자(騎鯨仙子) 이태백(李太白)이 날과 둘이 동접(同接)하야 광산(匡山) 십년(十年) 글을 짓다, 태백은 인재로서 옥경(玉京)으로 승천(昇天)허고, 나는 미물(微物) 짐생으로 이미 미천(微賤)허게 되었으나, 태백과 날과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아니리]

달(獺) 파총(把摠) 너구리 썩 나앉더니마는, “자네 나이 들어보니 내 큰아들하고 벗 못 하게 생겼네.” “아니 그러면 달 파총은 언제 났는가?”

 

[진양조]

“이내 나이 들어보소, 이내 나이를 들어보소. 동작대(銅雀臺) 높은 집이 좌편(左便)은 청룡각(靑龍閣)이요, 우편(右便)은 금봉루(金鳳樓)라. 이교(二喬)의 뜻을 품고 조자건(曹子建)의 글씨를 빌어 동작대부(銅雀臺賦) 운(韻)허든 조맹덕(曹孟德) 조부(祖父)와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겼나?”

 

[아니리]

멧돝이 꺼시렁 눈을 끔적끔적거리고 나발 같은 주둥이를 이리저리 두르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나오더니마는, “자내 나이 들어보니 내 큰손자하고도 벗 못 하것다.” “아니 그람 저(猪) 낭청(郎廳)은 언제 나셨소?” 멧돝 나앉으며 허는 말이,

 

[중중모리]

이내 나이 들어봐라, 이내 나이 들어보소. “한(漢)나라 사람으로 흉노국(匈奴國)에 사신 갔다, 위국충절 십구 년에 수발(鬚髮)이 진백(盡白) 허여 고국산천(故國山川) 험한 길 허유허유 돌아오던 소(蘇) 중랑(中郎)과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겠나?” 토끼가 듣고 나앉으며, 토끼 듣고 나앉으며. “재 낭청(郎廳)도 내 아랠세?”

 

[자진모리]

“한광무(漢光武) 시절(時節)에 간의대부(諫議大夫)를 마다허고 부운(浮雲)을 차일(遮日) 삼고 낚시질 힘써 허든 엄자릉(嚴子陵)의 시조(始祖)와 연갑(年甲)이 되니 내가 상좌(上座)를 못 하겠나?”

 

[아니리]

“그라면 그 토(兔) 선생(先生)이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토끼를 상좌(上座)로 앉혀노니, 체소(體小)한 데다가 이놈이 경솔(輕率)하기 짝이 없어 앞발로 귀를 떨고 야단이 났는듸, 때마침 호랭이가 한 삼사일 주린 놈인듸, “내가 어디로 가서 이 주린 구복(口腹)을 채울꼬?” 하고 먹이를 찾으로 돌아다니는 판인듸, 마침 이놈들을 만나노니 어찌 반갑든지 그저 쏜 살 들어오듯, 수르르 어헝 으르르르르. 달려드니 그저 좌우 짐생들이 똥오줌을 벌벌 벌벌 싸며, “아이고 장군(將軍)님! 어디 갔다 인자 오시오?” “음! 너 이놈들 지금 무엇들 하고 있느냐? 대관절 너이들이 뭣을 하고 있기에 나를 이렇게 시장케 했느냐?” 토끼 나앉으며 “애 저이들끼리 상좌(上座) 다툼을 하고 놉니다.” “네 이놈들 차산(此山) 중의 어른은 나 하나뿐인듸, 너희들끼리 상좌(上座)니 중좌(中座)니 하좌(下座)니 허고 논단 말이냐?” “아이고 장군님, 장군님은 용맹이 하도 출천(出天)허신께 어제 나셨더라도 그냥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그란디 그 속이나 알게 생신(生辰)이나 좀 압시다, 대관절 언제 나셨소?” “글랑 그리 허여라.”

 

[중모리]

“이놈들 내 나이 들어봐라. 너 이내 나이를 들어 봐라. 혼돈미분(混沌未分) 태극(太極) 초(初)의 사정없이 넓은 하늘 한편 짝이 모자라야 광석 따듬어 하날을 때우시던 여왜씨(女媧氏)와 연갑이 되니 내가 어른이 아니시냐?” 으르르르릉 어헝 허고 달려드니, 좌우 짐생들이 깜짝 놀래며, “장군님 상좌(上座)로 앉으시오.”

 

[아니리]

호랭이가 상좌로 앉고, 살찐 맷돝, 노루, 사슴, 너구리, 오소리 등을 요구감 내 놓고, 옹굴지게 논일 판인듸, 이때의 별 주부는 한편에 은신(隱身)허여 이 광경을 보고, “저렇게 많은 짐승들이 모였는듸, 어찌 토끼가 없을쏘냐? 어쩠든 불러 볼 밖에 수가 없다.” 자래가 토끼를 부르랴고 헐 제, 수로만리(水路萬里) 거친 파도를 아래턱으로만 밀고나와 어찌 뻣뻣 회불러 논 것이 토(兔) 짜가 호(虎) 짜로 살짝 미끄러졌것다. “저기 저기 토 토 토 호 생원(生員)!” 허고 불러노니, 첩첩산중(疊疊山中)에서 호랭이란 놈이 생원 짜 말 듣기는 전후(前後) 불견(不見) 초문(初聞)이라. 상좌(上座)로 앉고 보니 즉시 생원으로 존칭(尊稱)이 되는지라. 이 말이 어찌 반갑든지 만나보기로 작정을 하고 내려올랴고 허는듸, 거기 있는 짐생들한테 당부를 허것다. “네 이놈들 저 밑에서 나를 찾는 손님이 계시니 그 손님을 맞이해 올 때까지 여기 가만있어야 망종이제, 너 이놈들 한 놈이라도 간 놈이 있으면, 돌아온 모음 통에 사지(四肢)를 찢어 방(榜)을 내걸고 팔족(八族)을 멸하리라! 반가운 손님을 맞아들인다는 것은 공부자(孔夫子)의 도리니라. 그 손님을 모시고 올 때까지 여그 가만히 있으렷다.” 당부를 해 놓고 내려오는디, 이놈이 쓸고 내려오든가 보더라.

 

[엇모리]

범 나려온다, 범 나려온다. 장림(長林) 깊은 골로 대 한 짐생이 내려온다. 몸은 얼쑹덜쑹, 꼬리는 잔뜩 한 발이나 넘고, 누에머리를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귀 찌어지고, 새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王)모래를 차르르 흩으며, 주홍(朱紅) 입 떡 벌리고 어리렁 허는 소리 태산(泰山)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히 엎졌것다.

 

[아니리]

호랭이 내려와 사면을 살펴보며, “거 뉘가 날 불렀나? 근래에 귀 밝은 것이 장 우환(憂患) 되드라.” 잔말을 허여 가며, 발밑을 살펴보니, 꼭 쇠똥 말라진 것 같은 것이 있것다. “이것이 날 불렀나? 꼭 도리방석 같이도 생겼고, 아니 이것이 목기(木器)인가? 목기 같으면 굽이 있을 것인디, 그도 아니고, 아 이것이 방구부챈가? 방구부채 같으면 자리가 있을 것인디 그도 아니고, 오 이것이 하느님 똥이로구나. 하느님 똥 먹으면 장생불로(長生不老)헌다더라.” 크나큰 발로 자래 복판을 짠득이 눌러노니 자래가 못 젼듸어, “게가 뉘라시오?” “아이고 요것이 나보고 통성명(通姓名)을 허잔다. 그래 나는 백수지장(百獸之長) 호 생원이다. 너는 무엇이냐?” 자래가 호 생원이란 말을 듣고 자초(自招) 재화(災禍)로 잘 죽는구나. 어찌 무섭고 겁이 나든지 바로 제 이름을 대 버리난듸, “예, 나는 남해(南海) 수국(水國) 자래 새끼요.”

 

[중모리]

호랑이 반겨 듣고, “얼씨구나 내 복이야, 얼씨구나 내 복이야. 내 평생 먹은 마음 왕배탕을 원했더니 자래라니 먹어보자.” 자래가 먹자는 소리에 기겁(騎劫)허여, “아이고 소(小)는 자래 아니오.” “그러면 무엇이냐?” “먹고 죽는 철남생이요.” “남생이란 말이 더욱 좋다. 습개(濕疥)에는 단약(單藥)이요, 치담(治痰) 치습(治濕) 헌다 허니 약으로만 먹어보자.” “아이고 내가 두꺼비오.” “두꺼비란 말이 더욱 좋다. 너를 산 채 불에 살어 술에 타서 먹고 보면 만병(萬病) 회춘(回春) 명약(名藥)이라더라. 그저 먹어보자.” 으르릉, 자래가 더욱 기가 막혀 속으로 탄식(歎息)헐 제, “못 살것네, 못 살것네. 이제는 꼭 죽었네. 내의 충성이 부족(不足)턴가, 이 죽엄이 웬일이냐? 나 죽기는 설찮으나 영덕전(靈德殿) 병든 용왕(龍王) 어느 뉘라 살려 주며 옥빈홍안(玉鬢紅顔) 젊은 처자 뉘라 의탁(依託)을 허잔 말이냐?” 슬피 통곡(痛哭/慟哭)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아서라, 내가 기왕(旣往) 죽을 배 있어서는 패술이나 마지막 써 볼 밖에 수가 없다. 움친 목을 길게 빼어 고성(高聲)으로 허는 말이, “네 이놈 늬가 내 성명을 잘 모르리라. 나는 남생이도 아니요, 두꺼비도 아니요, 남해(南海) 수궁 자랑 별 나리로다.” 호랑이 무식허여 자래 ‘별(鼈)’ 모르고, “별 나리, 별 나리, 그것 참 풍신(風神) 보고, 직품(職品) 들으니 안암밖으로 꼴불견이로구나. 허, 그렇다면 별 나리께서 여기를 무엇허러 오셨으며, 모가지는 들어갔다 나왔다 으째 그리 방정맞게 삼겼는고?” “너 이놈 늬가 네 목 근본(根本)을 잘 모르리라.”

 

[자진모리]

“우리 수궁 퇴락(頹落)허여 영덕전(靈德殿) 높은 집을 천여 간(間) 지었으되, 추녀 끝 돌아가다, 한발 자칫 미끄러져 어허 목으로 내려져 이 모양이 되었더니, 명의(名醫)다려 문의(問議)를 허니 호랭이 쓸개를 열 보만 먹으면 즉효(卽效) 약(藥)이 된다 허기에, 우리 수궁서 호랭이 귀신을 잡어 타고 함경도(咸鏡道)로 내려가 백두산(白頭山) 호랑이 잡아먹고, 서울로 집어 올라 삼각산(三角山) 호랑이 잡아먹고, 이 산중 들어가 너를 보니 반가워라. 너 하나만 먹었으면 열 번을 다 채우니 어찌 아니 반가우랴? 호랑이 귀신 거 있느냐? 비수(匕首) 검(劍)으로 호랑이 배 밧비 가르고 쓸개 내오너라! 식기 전에 맛을 보자!” 이렇듯 말을 허고 앙금앙금 앙금앙금 앙금거려 달려들어 모진 이빨로 호랑이 뒷다리 가운데 달랑달랑한 놈을 꽉 물고 어찌 뺑뺑이를 처 놨던지, “아이고 조끔만 놓으시오! 제일 오장(五臟)이 땡겨 못 살것소. 쪼끔만 노시오!”

 

[아니리]

그 용맹(勇猛)이 출천(出天)한 호랑이가 꼼짝 딸싹 못 허고, 그대로 엎드러져 한바탕 비는듸,

 

[진양조]

“비나이다, 비나이다. 별 나리 전의 비나이다. 나는 오대(五代) 차(次) 독신(獨身)이오. 삼십이 넘어 사십이 장근(將近)토록 슬하(膝下)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어, 내가 만일 이 자리에서 죽게 되면 우리 가문(家門)은 영 문 닫쳐 버리오. 차라리 이것 때고 내 왼 눈이나 빼 잡수시오.” “이놈 안 될 말이로구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허니 잔말 말고 쓸개만 내놓아라.” “아이고, 여기를 놓아야 쓸개를 드리지요. 제발 덕분의 살려를 주오.”

 

[아니리]

이렇듯 통곡을 허니 자래 생각건대, 이만 했으면 이놈을 반 이상은 휘어 놓았것다. 너무 오래 가지고 있어도 이놈한테 힘이 모자라 도리어 봉변(逢變)을 볼까 싶어 그저 실그머니 놓고 뚝 떨어져노니, 이놈이 그저 도망(逃亡)을 허는듸,

 

[휘모리]

호랑이 뭉크렀다, 벌쩍 뛰어 달아난다. 큰 싸움의 화살 나듯 조총(鳥銃)의 철환(鐵丸) 나듯 초가성(楚歌聲)의 놀랜 패왕(霸王) 궤위남출(潰圍南出) 허난 격(格)으로 태산(泰山)을 넘어 강수(江水) 지내여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곳 없다.

 

[아니리]

겁짐에 어찌 뛰었든지, 해남(海南) 관(館)머리에서 이 지경(地境)을 당했는듸, 의주(義州) 압록강(鴨綠江) 변(邊)까지 뛰었제. 이때의 별 주부난 곰곰이 생각헌즉 내의 충성(忠誠)이 부족하야 아마 산신령(山神靈)이 변화(變化)하여 이리 된 것 같어 산제(山祭)나 착실히 모시리라 생각허고 산제 지낼 채비를 허는듸,

 

[중모리]

반송(盤松) 가지 꺾어 내려 광석(廣石) 암상(巖上)을 솰솰 쓸고, 추풍낙엽(秋風落葉)으로 자리 삼어 정히 깔고, 떨어진 산과(山果) 목실(木實) 삼색(三色)으로 주어다가 좌홍우백(左紅右白) 갈라 괴고, 맑고 맑은 석간수를 제주(祭酒) 삼어 부어 놓고 석하(石下)의 괘좌(跪坐)허여 분향재배(焚香再拜) 독축(讀祝)을 허였으되,

 

[축문]

“갑신(甲申) 팔월 계유(癸酉) 삭(朔) 초칠일(初七日) 기묘(己卯) 남해(南海) 신 별 주부 감소고우(敢昭告于) 산신(山神) 국수(國首) 전(前) 하노니다. 남해 용왕(龍王)이 우연(偶然) 득병허여 백약(百藥)이 무효(無效)트니, 명의(名醫)가 지시(指示)허되 진세(塵世) 퇴 간(肝)을 쓰면 비단(非但) 신병지거근야(身病之去根也)라. 겸차(兼且) 연년익수(延年益壽) 운운(云云) 고(故)로 도월(渡越) 원해(遠海) 삼만 리 하야 신궁자도 차산(此山)의 비금주수(飛禽走獸)가 만산(滿山) 왕래(往來)이 본시 해중지소생(海中之所生)으로 난변(難辨)퇴자 허여 자감민박지경(玆敢憫迫之情)을 대강(大綱) 앙고(仰告)하오니 복걸(伏乞) 신령(神靈)은 하감(下鑑) 주부지충(主簿之忠) 하사 차산 중(中) 노퇴 일 수(首)를 즉이(卽以) 치국 하옵심을 근이청작(謹以淸酌) 지천우신(祗薦于神) 복유(伏惟) 상향(尙饗).”

 

4. 토끼

 

[아니리]

재배허고 일어나 좌우를 살펴보니 지성이면 감천으로 대차 토끼 한 마리가 내려오는듸,

 

[중중모리]

그임 청택 요임[瑤林] 중(中), 그임 청택 요임 중 한 짐생이 내려온다. 저 짐생 생긴 모양 정신이 씩씩허고 이목(耳目)이 정즉허여 월중퇴 기상이라. 자래 목의 화상 내어 토끼보고 화상 보니 월중퇴 망월퇴 안면(顔面)이 있구나. “옳다, 저것 토끼로다 아까는 내가 늦게 붙여 호랑이 만나 봉패(逢敗) 보았으나, 이번은 되게 붙여 불러 보리라. 저기 저기 퇴 퇴 퇴 퇴 생원.” 허고 불러노니, 토끼가 듣고서 반긴다, 토끼가 듣고서 반긴다. “거 뉘가 날 찾나, 거 뉘가 날 찾나?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그 누구가 날 찾어? 기산(箕山) 영수(潁水) 소부(巢父) 허유(許由) 세이(洗耳) 가자고 날 찾나? 계명산(雞鳴山) 퉁소 불어 팔천(八千) 병(兵)을 흩으랄 제 풍의 청병(請兵) 날 찾나? 도화(桃花) 유수(流水) 무릉(武陵) 가자 거주촉객(舉酒屬客)이 날 찾아? 건넌 산 과부(寡婦) 토끼가 연분을 맺자고 날 찾어.” 이리로 깡충 저리로 깡충 거덜거리고 내려온다.

 

[아니리]

토끼는 위에서 내려오고, 자래는 밑에서 올라가고 서로 찌웃짜웃허다가 이마와 코를 마주 처노니, “아이고, 이마야!” “아이고, 코야!” “여보, 초면(初面)에 남의 이마는 어찌 닿소?” “오, 오비이락(烏飛梨落)이오. 인역 이마 아픈 줄만 알았지, 남의 코 아픈 줄은 모른단 말씀이오?” 자래 호랭이에게 놀랜 터라, 목을 우무리고 넙죽 업졌으니, 토끼 보고 허는 말이, “이것 두리방석 같다. 한번 앉어보자!” 팔짝 뛰어 앉어노니, 자래라 허난 게 등을 누르면 목이 나오것다. 목이 실그머니 나오니 토기 깜짝 놀래, “왔다, 이것 무엇이냐? 그만 나오시오. 그만 나와. 어떤 놈이 도리줌치 속에 배암을 잡어 넣었다. 이제 나오나 보다.” 자래 못 견디어 등을 뜰썩허니 토끼 팔짝 자빠지며, “아따, 그놈의 나무접시 같은 것이 등 심은 대단허다.” “거 뉘라시오?” 토끼 대답허되, “예, 나는 천상(天上) 월궁(月宮)의 이음양(理陰陽) 순사시(順四時) 하며, 대소월(大小月)을 가림하며, 회초(晦初)를 분별(分別)허든 예부상서(禮部尙書) 월중퇴려니, 도약(擣藥) 취중(醉中)의 장생약(長生藥) 그릇 짓고 상제(上帝) 전(前) 득죄(得罪)하여, 차산(此山) 중의 적하(謫下)함에, 세상에서 이르기를 퇴 공(公) 선생(先生)이라! 대접(待接)을 받고 사요. 게는 뉘라시오?” “예, 나는 남해 수궁 자랑 별 나리러니 즉문진세지서명 하고 불원천리이래(不遠千里而來)렷다.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천만몽외(千萬夢外)요, 구앙(久仰) 성화(聲華)려니 하산경지 매하달이오.” 토끼 욕 먹난지 모르고, “거 우리 두 문장(文章) 만났으니 문자 져룸이나 한번 합시다.” “그럽시다.”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요, 양상화매(兩相和賣)요, 법지불행(法之不行)은 장고(杖鼓/長鼓) 통 속이요, 막비왕토(莫非王土)요, 우이독경(牛耳讀經)이요, 여필종부(女必從夫)요, 숙불환생(熟不還生)이요, 여담절각이요, 세모방천(防川)이요, 아가사창(我歌査唱)이요, 어동육서(魚東肉西)요, 홍동백서(紅東白西)요, 좌포우혜(左脯右醯)요, 친사돈통가문(親査頓通家門)이요, 일구이언(一口二言)허는 자(者)는 삼천억부지자(三千億父之子)요.” 토끼 욕을 많이 먹건마는 모르고, “그 나도 유식(有識)허려니와 별 주부도 문장이오그려.” “그런듸 퇴 서방(書房) 어찌 왔소?” “아, 불르기에 왔지요. 별 주부는 어찌 왔소?” “세상이 좋다기로 구경차(次)로 나왔으나 별(別) 흥미(興味)를 모르겠으니 퇴 공(公) 좀 일러주오?” 토끼란 놈, 이 말을 듣고 지 몸을 자층 추어 자랑삼어 허는 말이,

 

[중모리]

“이내 몸이 한가(閑暇)하야 일모(日暮) 황혼(黃昏) 잠이 들어 월출(月出) 동령(東嶺) 잠을 깨어 진세(塵世) 간(間) 배회(徘徊)헐 제, 임자 없는 녹수청산(綠水靑山) 내 집 삼어 왕래(往來) 값없는 산과(山果) 목실(木實) 양식(糧食) 삼어 포식(飽食)허니 신여부운무시비(身與浮雲無是非)라. 명산(名山) 찾어 완경(玩景)헐 제 여산동남오로봉(廬山東南五老峰)과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峯) 첩고(疊高) 무산(巫山) 십이봉(十二峰)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산(瀛洲山) 태산(泰山) 숭산(嵩山) 화산(華山)이며, 만악의 천태산(天台山) 아미산(峨眉山) 수양산(首陽山) 동(東) 금강(金剛) 서(西) 구월(九月) 남(南) 지리 북 향산(香山) 가야산(伽倻山) 속리산(俗離山)을 구경허고 무산(巫山)의 낙조(落照) 경(景)과 양곡(暘谷)의 일출(日出) 경(景)을 역력히 보았으니, 등태산(登太山) 소천하(小天下) 공부자(孔夫子) 대관(大觀)인들 이여서 더할쏘냐?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도 내의 제자 삼어 두고 장생불로(長生不老) 가르치며, 이따금 심심하면 종아리 땅땅 치니, 이내 호강이 어떠헌가?”

 

[아니리]

자래 그 말 반겨듣고, “참 좋은 말씀이오! 세상의 제일(第一)가는 호걸(豪傑)이오그려. 그러나, 퇴 선비 상(相)을 잠깐 살펴보니 얼굴은 일색(一色)이나 미간(眉間)의 화망(火亡) 살(煞)이 들어 죽을 액(厄)을 꼭 여덟 번 격끄겼소.” “허, 여보쇼. 내가 설령 그런다 허드라도 그 안전에 그런 박절(迫切)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 “화(火)를 내실 것이 아니라 내가 잠깐 토(兔) 공(公) 상(相)을 일러줄 테니 들어보시오.”

 

[자진모리]

“일개(一介) 한(寒)퇴 자네 몸이 삼촌(三春) 구추(九秋) 다 보내고, 대한(大寒) 엄동(嚴冬) 설한풍(雪寒風) 만학(萬壑)의 눈 쌓이고 천봉(千峯)의 바람 칠 제, 화초(花草) 목실(木實) 바이 없어 어둑한 바우 틈, 벗 없이 앉은 모냥, 채운편월 무관수(武關囚)의 초(楚) 회왕(懷王)의 고생(苦生)이요, 일월(一月) 고초(苦楚) 북해상(北海上)의 소(蘇) 중랑(中郎)의 곤궁(困窮)이라. 주려 죽을 자네 몸이 삼동(三冬) 고생(苦生)을 다 보내고, 벽도홍행(碧桃紅杏) 춘(春) 이월(二月)의 주린 구복(口腹)을 채우랴, 심곡(深谷) 심산(深山) 기다릴 제, 골골이 묻힌 것 목다래 엄 착귀요. 지속으로 도난 것 사냥개 몰이꾼 험산곡(險山谷) 있난 것은 토끼 였난 아호(餓虎)로다. 송하(松下)의 숨은 것 잘 놓는 저 포수(砲手) 오난 토끼를 노랴 허고 왜물(倭物) 조총(鳥銃) 약(藥)을 잡어 대돈잡이 철환(鐵丸) 넣어 불 박어 손의 들고 은근이 앉졌다가 토끼 앞의 당도(當到)허면 한 눈 찡그리고 반(半)만 일어서면 불빛에 불 반짝 쾅 허 총 노니, “아익 그런 총(銃)소리 내지 마오. 우리 삼대가 총으로 다 망(亡)했소.” “그라면 어디로 갈꼬 그라면 어디로 갈꼬, 들로 내려가제.” “은(殷) 왕(王) 성탕(成湯) 가신 후의 그 그물 뉘가 들며 들로 나려 토끼 은신(隱身) 숨풀 속의 막대로 뛰다리며 워리 오호 쫓난 것 술 먹은 초동(樵童)이라. 그대 신세(身世/身勢) 생각허면 적벽(赤壁) 강산(强酸) 전패 허든 조맹덕(曹孟德)의 정신(精神)이라. 적은 눈 부릅뜨고 짜른 꽁지 뒷 찌고 험산고산 절벽상(絶壁上) 바삐 바삐 달아날 제, 목궁기 쓴 내 나고 밑궁기 조총(鳥銃) 놀 제 조생모사(朝生暮死) 자내 신세 한가(閑暇)허다고 뉘라 허며, 만산(滿山) 풍경(風景) 좋다헌들 무슨 정(情)의 완월(玩月)? 무슨 정의 유산(遊山)헐까? 안기생 종아리 때렸단 그런 거짓말일랑 날다려 다시 마소.”

 

[아니리]

토끼 듣고 넉이 없어, “여보 그러면 수궁 풍경(風景) 소식(消息) 좀 들어봅시다. 내 세상은 이렇게 복잡(複雜)허려니와 수궁 풍경 좀 들어봅시다.” “말이라 허는 것 들으면 병(病)이지요. 이러게 팔난(八難) 세상(世上) 살든 자네가 수궁 풍경 소식 듣고 가기로 하면 내가 한 등짐 헐 터이니 부질없제.” “아 주공, 그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도 있고 추우강남(追友江南)이란 말이 있는듸 벗은 몰라보고 혼자만 알려코져 허니 참 무식(無識)하기 짝이 없구만.” 별 주부 속으로 은근이 좋아라고, “오 그렇다면 내 이를 테니 들어보시오.”

 

[진양조]

“우리 수궁 장관(壯觀)이라. 천양지간(天壤之間)의 무변대해(無邊大海) 영덕전 높은 집을 천여 단 지였으되, 호박(琥珀) 기둥 황금(黃金) 주추 산호주로 난간(欄干/欄杆) 허여 수궁(水宮) 패궐(貝闕)은 영롱(玲瓏)허여 삼광(三光)을 응(應)허였고, 곤의수상(袞衣繡裳) 황홀(恍惚)허여 오복(五福)을 갖췄으니 우리 용왕(龍王) 즉위(卽位)허사 만조 귀시허고 백성이 앙덕(仰德)이라. 앵무금잔(鸚鵡金盞)의 천일주(千日酒) 천빈옥반(玉盤) 의 불로주(不老酒) 빈사과를 싫도록 자신 후(後)의 수궁 미색(美色) 수십(數十) 명(名)을 좌우(左右)로 늘어세우고 자언거수승거산(自言居水勝居山)이라. 요지(瑤池)로 들어가니 칠백(七百) 리(里) 군산(君山)들은 무산(巫山)에 빗겨 있고 삼천사(三千沙) 해당화(海棠花)는 약수(弱水)에 붉어있다. 해내(海內) 태평(太平)허여 월청명(月淸明) 추강상(秋江上) 어적(漁笛) 소리 화답(和答)하며, 경수(涇水) 위수(渭水) 회수(淮水) 낙수(洛水) 혹거혹래(或去或來) 노닐 적에, 청풍(淸風) 적벽(赤壁) 소자첨(蘇子瞻)과 애월(愛月) 허던 태백(太白)이도 수궁 풍경 보았으면 세상에 머물쏘냐? 원컨대 퇴 선생도 나 따라 수궁 가면 늠름한 저 풍신(風神)의 용호대장(龍虎大將)이 틀림없으니 무실차기(無失此機) 따라가세.”

 

[아니리]

토기 듣고 허난 말이, “수궁 천 리 먼먼 길에 일거소식(一去消息) 끊어지면 그 아니 원통(冤痛)허오.” 자래 듣고 또 다시 구변(口辯)을 내는듸,

 

[중중모리]

“수궁 천 리 머다 마소. 수궁 천 리 머다 마소. 맹자(孟子)도 불원천리(不遠千里) 양(梁) 혜왕(惠王)을 가보았고, 궁팔십(窮八十) 강태공(姜太公)도 은국(殷國)을 이별(離別)허고 멀고 먼 기주(岐周) 가서 문왕(文王) 만나 귀의 되고, 백리해(百里奚)도 목공(穆公) 따라 진(秦)국의 재상(宰相) 되고, 한신(韓信)도 소하(蕭何) 따라 한(漢)나라 대장(大將) 되니, 원컨대 퇴 선생도 염려(念慮) 말고 따라가세, 염려 말고 따라가세.”

 

[아니리]

“그 원일견지(願一見之) 수궁이라. 그렇다면 갑세.” 따라가기로 작정이 되어 내려가는듸,

 

[중모리]

자래는 앞에서 앙금앙금, 토끼는 뒤에서 깡총깡총, 원로(遠路) 수변(水邊)을 나려갈 제, 건넌 산 바우 틈에 깊이 묻힌 여우 썩 나서며, “이에, 토끼야!” “워야?” “너 어듸 가느냐?” “오냐, 나 별 주부 따라 수궁 간다.” “수궁(水宮)은 뭣 하러 가느냐?” “훈련대장(訓鍊大將) 허러 간다.” “허허, 자식 어린지고, 너희들 수작(酬酌)헐 제, 내 근처(近處) 은신(隱身)허여 다 들었다. 가지 말어라, 가지 마라. 수궁에 들어가면 칼 잘 쓰난 위인(衛人) 형가(荊軻) 역수(易水) 한풍(寒風) 슬픈 소리 장사일거(壯士一去) 제 못 왔고, 소상강(瀟湘江) 모운(暮雲) 간(間)의 제녀(帝女)도 울어 있고, 연년(年年) 춘초(春草) 푸른 곳의 왕손(王孫)도 귀불귀(歸不歸)라. 토끼 너도 수궁 가면 돌아오지를 못허리라. 수궁인지 위방(危邦)이라, 위방불입(危邦不入)이요, 난방불거(亂邦不居)라. 가지 말어라, 가지를 마라. 내말 듣고는 가지를 마라.”

 

[아니리]

“앗, 차차차 하마트면 큰일 날 뻔허였고, 별 주부 잘 가시오. 나는 오든 길로 돌아가며 맹감이나 따 먹지.” 토끼 깡총깡총 돌아가니 별 주부 기맥혀, “여보 토 공, 그 가기는 가소만은 내 말 한자리만 듣고 가소. 그런 게 아니라, 저 녀석이 일전(日前)에 남해(南海) 수면으로 가재 사냥 내려 왔다, 실족(失足)하여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때마침 우리 수궁 대장 범치 세상 구경 나갔다가 저 녀석을 건져 업고 수궁으로 돌아오니, 용왕이 보시고 풍신(風神)이 점잖다고 호반(虎班) 대장(大將) 허라 허니 마다허고, 궁중(宮中)에 무임(無任)으로 있다가, 저 방정맞은 것이 시녀(侍女) 간통(姦通)을 해서 어전(御前) 곤장(棍杖) 삼십 도(度)에 축출(逐出)허여 쫓았더니, 저 놈이 남도 못 되게 방해를 치네그려. 그러니 올라면 오고 말라면 말소.” 토끼 생각건대 대차 여우 심사를 아는지라. 그럴 법도 하것다. “여보 별 주부 같이 갑세. 하여튼 남해 수변 당도허여 물이 발목물만 지면 가려니와 허리 물만 져도 내가 못 가제.” 물은 얇은 곳이니 어서 내려가세.

 

[진양조]

남해(南海) 수변(水邊) 당도(當到)허니 세우(細雨) 중의 돛을 달고, 도용도용 떠난 배는 한가(閑暇)한 초강어부(楚江漁父) 풍월(風月) 실로 가는 밴가? 범피창파(泛彼蒼波) 높이 떠서 청강(淸江) 흥미(興味) 무한경(無限景)을 백구(白鷗)다려 문답(問答)을 헐 저, 소소한풍(蕭蕭寒風) 추야월(秋夜月)의 울고 가는 저 기럭아, 너 어듸로 행(行)하느냐? 소상(瀟湘) 동정(洞庭) 어데 두고 여관한등 잠든 나를 늬가 어이 깨우느냐? 여산동남 물결이 위르르르 출렁출렁.

 

[아니리]

“아이고 이 물 보아라! 바가지 없는 때 물 쓰고 꼼짝달싹 없이, 어복고혼(魚腹孤魂)이 되것구나. 여 별 주부 잘 가시오. 네 수궁 들어가서 용 되야도 못 가것네.” 도로 깡총깡총 올라가니, 별 주부 이제는 저놈의 자식을 한 번 질러 볼 밖에 수가 없다. 호령을 허는듸,

 

[자진모리]

“아따, 이놈아 잘 가거라. 벼슬하러 가자 허니 물 무섭다, 헌단 말과. 장부가 의심이 많으면 대소성사를 못 허는 법이라. 넷의 인중(人中) 쩌룬 운(運)이 무슨 복(福)이 있으며, 미간(眉間)의 화망(火亡) 살(煞)이 들어 내일 일모(日暮) 시(時) 김 포수(砲手) 날랜 철환(鐵丸) 한 정수리 쾅, 총이나 맞어 뒤져라, 이 녀석아.”

 

5. 용궁으로

 

[아니리]

“여보, 별 주부 수국 들어가면 화살(火煞) 면(免)하고 사오리까?” “아 수국과 화살하고는 대상극(大相剋)이라 총(銃)이라고는 그림자도 없제.” 토끼 제일 총 없단 말에 반겨듣고 아조 가기로 작정허여, 버드나무 젓가지를 앞발로 휘어잡고 뒷발을 물에 넣으니 물은 벌써 턱 밑에 오르난듸, 발 밑으로는 수만 길이것다. 겁을 내여 올라오랴 힘을 주니 가지는 점점 찌어져 물에 잠기거날,

 

[자진모리]

저 자래 거동 봐라. 토끼 두 귀를 검쳐 잡고 그져 끗고 들어가니, “이 애 별(鼈) 주부(主簿)야, 쪼금만 놓아라.” “네 이놈 잔말 마라. 짠물이 입에 들면 벙어리가 되느니라.” 이 물 고개 저 물 고개 이리저리 들어갈 제, 이놈을 딱 검쳐 업고 둥덩실 떠 들어가는듸, 소상(瀟湘) 팔경(八景) 다 구경하며 들어가것다.

 

[진양조]

범피중류(泛彼中流) 둥덩실 떠나간다. 망망(茫茫)헌 창해(滄海)이며, 탕탕(蕩蕩)헌 물결이라. 백빈주(白蘋洲) 갈매귀는 홍료안(紅蓼岸)으로 날아들고 삼강(三江)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든다. 요량(嘹喨)한 남은 소리 어적(漁笛)이 여그련만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의 수봉(數峰)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欸乃聲中萬古愁)는 날로 두고 이름인가? 장사(長沙)를 지내가니 가(賈) 태부(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汨羅水)를 바라보니 굴(屈) 삼려(三閭)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도 허시든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허니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鄉關何處是)요,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난 최호(崔顥) 유적이오. 봉황대(鳳凰台)를 돌아드니 삼산반락청천외(三山半落青天外)요,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는 태백(太白)이 노든 데요. 심양강(潯陽江)을 당도허니 백낙천(白樂天) 일거(一去) 후(後)으 비파성(琵琶聲)이 끊어졌다. 적벽강(赤壁江)을 그져 가랴. 소동파(蘇東坡) 노던 풍월 의구(依舊)하여 있다마는 조맹덕(曹孟德) 일세지웅(一世之雄) 이금(而今)의 안재재(安在哉)요. 월락오제(月落烏帝) 깊은 밤의 고소성(姑蘇城)에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 소리 객선(客船)의 뎅 뎅 들리는구나. 진회수(秦淮水) 건너가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망국한(亡國恨)을 모르고서 연롱한수월롱사(煙籠寒水月籠沙)의 후정화(後庭花)만 푸르는구나.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이 호상(湖上)의 솟아 있고 무산(巫山)의 돋는 달은 동정호로 비쳐 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이 각색(各色)으로만 푸르렀다. 삼협(三峽)의 잔나비는 자식 찾는 슬픈 소리 천객(遷客) 소인(騷人)의 눈물이라. 한곳을 점점 당도허니 악양루와 같은 누각(樓閣)의 황금대자(黃金大字)로 새겼으되 남해(南海) 영덕전(靈德殿) 수정문이라. 둥그렸이 걸렸거날, 그곳을 점점 들어가니 천지(天地)가 조용허고 엄연한 별세계(別世界)로구나.

 

[중모리]

자래 등의 선듯 내려 좌우 경개(景槪)를 살펴보니, 동을 바라보니 일륜홍(一輪紅)이 어려 있고, 서를 바라보니 일발청산(一髮靑山) 층층헌디 비취색(翡翠色)이 어려 있고, 북을 바라보니 약수(弱水) 삼천(三千) 리(里) 해당화(海棠花) 장이 좋다. 깊기는 깊다마는 들어와 보니 별천지(別天地)로구나! 이러한 좋은 곳의 글을 한수 못 지어야 훈련대장을 헐 수 있나? 토끼 글을 한 수 읊을 적에 “산중(山中) 유객(遊客)이 도용궁(到龍宮) 허니 사해풍광입안중(四海風光入眼中)이라.”

 

[아니리]

“여보 토 선생 방금 읊은 그 글이 우리 훈련대장 감 글이 분명허오. 여기 잠깐 앉어 계옵시면 우리 수궁 남여(藍輿) 내보낼 것이니 그것 타고 들어오시오.” “그리 허오.” 별 주부 충충 들어가 진세(塵世)에 나갔던 별 주부 현신(現身)이오. 용왕이 반기 허여 “만(萬) 리(里) 원경(遠境)을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는 잡어왔는가?” “예이, 대왕의 성덕(聖德)으로 만 리 원경을 무사히 왕래(往來)하옵고 진세 일개(一介) 퇴를 생금(生擒)허여 항우 수정문 밖에 대령(大令)하였나이다.” “기특타, 주부지충(主簿之忠)이여!” 어주(御酒)를 내려 치하(致賀)하신 후에, “어서 토끼 잡어 들여라” 하고 영을 내려노니, 토끼 밖에서 이 말을 듣고 있다 “아차 내가 사지(死地)를 들어왔구나! 내가 이제 도망을 가자헌들, 수로(水路) 만 리를 독행(獨行)으로 갈 수 없고 수국(水國) 중에 숨자 허니 내 몸에 표가 나니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자탄하고 있을 적에,

 

[자진모리]

강신(江神) 나졸 별군직(別軍職)과 수많은 도로목, 해(海) 모지리 청사(靑絲) 홍사(紅絲) 가막쇠를 요하(腰下)의 빗겨 차고 우르르르 “토끼 계 있느냐?” 토끼 깜짝 놀래 “아이고, 나는 토끼 아니오.” “그러면 무엇이냐?” “도둑 지키는 개요.” “개라니 더욱 좋다. 삼복(三伏)에 너를 잡어 약(藥) 개장도 좋거니와 장보간이 더욱 좋다. 이 개 바삐 말아가자.” “아이고, 내가 망아지요.” “말이라니 더욱 좋다. 요단항장(腰短項長) 천리마(千里馬)로다. 연인(涓人)도 오 백 금으로 죽은 뼈를 사갔으니, 너를 산 차 말아다 대왕(大王) 전(前) 바치면은 천금(千金) 상(賞)을 아니 주랴, 이 망아지 말아가자.” “아이고, 내가 송아지요.” “소라니 더욱 좋다. 도우탄(屠牛坦)에 너를 잡어 양기 두족(頭足), 갈비, 양(羘) 횟감 횟감이 진미로구나. 이 소 바삐 말아가자.” 이런 제기럴 헐 놈들이 동의보감을 얼마나 보았는지 저렇게 아는 놈들은 처음 보았네 “아이고, 내가 늬 외할애비다.” 여러 놈이 달려들어 청사 홍사 가막쇠를 이리저리 질끈 묶어 주장(朱杖)대 쿡 찔러 영덕전 너른 뜰의 대량대량 들이 매고 동댕이쳐 내던지며 “토끼 잡어들였소.”

 

[아니리]

용왕이 반기 허여 이만 허고 보시더니 “그것 참 약 되게 생겼다. 듣거라, 내 우연 득병(得病)하여 필사지경(必死之境)에 이르렀는듸, 명의(名醫)가 지시(指示)허되 늬 간을 쓰면 즉효(卽效) 헌다 허기에, 어진 신하(臣下)를 보내어 너를 잡어왔으니 이에 죽노라 한(恨)을 마라. 너는 일개 녹림초신(綠林草臣)이요, 짐은 수국 왕이라. 늬 간을 써 왕명을 보존할진대 무슨 한이 있을꼬. 네가 죽드라도 늬 신체는 비단으로 감장(監葬)하여 칠곽(漆槨)에 정(淨)히 담어 장풍향양(藏風向陽) 천리행룡(千里行龍) 일석지기 좋은 자리 분별(分別)해 써 줄 것이요, 또한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제사(祭祀)라도 착실(着實)히 분별해 줄 것이니 너 죽는다 한을 마라.” 토끼 하릴없이 죽게 되었구나. 우자천려(愚者千慮)에 필유일득(必有一得)이라. 한 꾀를 넌즛 생각허여 흩어진 정신을 가다듬어 조금도 안색(顔色)을 변치 않고 천연(天然)히 여짜오되,

 

[중모리]

“소퇴[小兔] 한 말씀 아뢰리다. 소퇴 한 말씀 아뢰리다. 회음(淮陰) 땅 한신(韓信) 이는 소하(蕭何) 따라 파촉(巴蜀) 가옵기는 한왕(漢王) 섬길 마음이요, 궁팔십(窮八十) 강태공도 주(周)나라 가옵기는 문왕(文王) 섬길 마음이요, 남양(南陽) 땅 제갈량(諸葛亮)도 한(漢)나라 가옵기는 현덕(玄德) 섬길 마음이요, 소퇴도 별 주부 따라 수궁 들어옵기는 대왕(大王) 섬길 마음이라. 분골쇄신(粉骨碎身)허올진대 추호(秋毫) 기망(欺罔)허오리까! 시일갈상(時日曷喪) 노래 소리 억조창생(億兆蒼生) 원망(怨望) 중의 탐학(貪虐)한 상(商) 주(紂) 인군(人君) 성현(聖賢)의 배 속의 칠(七) 궁기가 있다 허여 비간(比干)의 배 가르니 일곱 궁기가 있더니까? 소퇴도 배를 갈라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의 목숨 어찌 다시 구허리까? 당장의 배를 따 보옵소서.” 용왕이 듣고 화를 내어 “이놈, 네 말이 간괴(奸怪) 허다. 의서(醫書)에 일렀으되, 비수병즉구불능식(脾受病則口不能食) 허고 담수병즉설불능언(膽受病則舌不能言) 허고 신수병즉이불능청(腎受病則耳不能聽) 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肝受病則目不能視)라, 간이 없고 눈으로 어찌 만물을 보느냐?” “예, 소퇴가 아뢰리다. 소퇴의 간인 즉 월륜(月輪) 정기(精氣)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 되면 간을 들입니다. 세상의 병객(病客)들이 소퇴가 얼른허면 간 달라기로 보채기로, 간을 내어다가 파촛잎에다 가만히 싸서 칡 노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석상 늘어진 계수(桂樹)나무 끝 끄터리다 달아두고, 도화(桃花) 유수(流水) 옥계(玉溪) 변(邊)에 목욕차(沐浴次)로 나려 왔다, 우연히 주부(主簿)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이다.” 용왕이 또 화를 내는듸 “이놈, 그 말도 간괴허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一身之內臟)은 다를 바가 없는듸, 어찌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任意)대로 출입(出入)허는고?” “예, 소퇴가 아뢰리다. 예, 소퇴가 아뢰리다. 대왕은 단지기일(但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복희씨(伏羲氏/伏犧氏)는 어찌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었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찌 허여 인신(人身) 우수(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찌 허여 꼬리가 저리 기다란 허옵고, 소퇴는 무삼 일로 꼬리가 이리 묘똑허옵고, 대왕의 옥체(玉體)에는 비늘이 번쩍번쩍, 소퇴 몸에는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귀로 두고 일러도 오전 까마귀 쓸개 있고, 오후 까마귀 쓸개 없으니, 인생(人生) 만물(萬物) 비금주수가 모두 다 한가지라 허옵시니 답답치 아니허오리까?” 용왕이 반(半)이나 옳이 듣고 “그러면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대로 출입허는 표(表)가 있느냐?” “있지요.” “어듸 보자.” “자, 보시오.” 뻘그런 궁기 서이 늘어 있거날 “저 궁기는 어쩐 내력(來歷)인고?” “아뢰리다. 한 궁기로는 대변(大便)보고, 또 한 궁기로는 소변(小便)을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허나이다.” “그러면 간을 어디로 넣고 어디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옵기로, 만물시생(萬物始生), 동방삼팔목(東方三八木), 서방사구금(西方四九金),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 북방일육수(北方一六水), 중앙오십토(中央五十土), 천지(天地) 음양(陰陽) 아침 안개, 저녁 이슬 화하야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옵기로 으뜸 간이 되나이다. 미련허드라 저 주부야! 세상에서 날 보고 이런 이약을 허였으면 간을 보차 가지고 들어와 대왕 병도 즉차(卽瘥) 즉효(卽效) 허고 저도 충신이 나타나 양주 양합이 좋을 텐듸, 미련허드라 저 주부야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쓸데없네.”

 

[아니리]

“그러면 세상에서 네 간을 먹고 즉효 한 사람이 있느냐?” “예, 있지요.”

 

[중중모리]

“소퇴의 할애비 풍경(風景)을 좋아허여 유산유수 노닐 제, 목욕차로 내려오다 실족(失足)하여 물의 빠져 거의 죽게 되었을 제, 한(漢) 무제(武帝) 제신(諸臣)들이 구선(求仙) 허여 나왔다, 건져 주어 살았기로 그 은혜(恩惠) 난망(難忘) 허여 간 조끔 주었더니 동방삭(東方朔)이 투식(偸食)허여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아 있고, 위수로 돌아가다 간 내어 씻었더니 궁팔십(窮八十) 여상(呂尙)이도 낚시질 나왔다가 기갈(飢渴)이 자심(滋甚)허여 그 물 조끔 떠 마시고 달팔십(達八十) 더 살았고,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도 우리 간 얻어먹고 장생불로(長生不老) 허였으니, 원컨대 대왕께서도 소퇴 간 자시면 천천만만(千千萬萬) 세(歲)를 태평(太平)으로 누루리다.”

 

[아니리]

용왕이 토끼에게 아조 둘리어 “토(免) 선생(先生) 해박(解縛)하라.” 토끼를 해박하여 전상(殿上)의 앉힌 후에 용왕이 인사(人事)허시되 “퇴 공(公)은 거양계(居陽界) 허고 과인은 처수부(處水府) 하야 불상통섭(不相通涉)이러니 오날 피차(彼此) 이리 만나기는 천만몽외(千萬夢外)로시! 어서 토 선생에게 술 올려라.” 수궁 미색(美色) 전어 단정(端正)히 궤좌(跪坐)허고 동정춘주(洞庭春酒) 가득 부어 토끼에게 올리니, 토끼 황공대왈(惶恐對曰) “대왕이 이다지 관대허시니 뼈를 갈아 드린들 무슨 한이 있으리까? 그러나 소퇴는 과맥전(過麥田) 대취(大醉)로소이다.” “퇴 공이 과인을 위하여 원해(遠海) 만 리를 수고로이 왔다가 내 정이 섭섭하니 한 잔만 받게.” 토끼 사양타가 “이렇게 권하시니 사차불피로소이다.” 일성 산골 물만 먹든 놈이 동정춘주를 알 수 있나, 한 잔을 맛보더니 “참, 술맛 좋소! 거, 한 잔만 더 주쇼.” 맛에 취해서 십여 잔을 먹어노니 취흥(醉興)이 도도(滔滔)허여, 수궁 물이 발목물로 알고 한번 노니는듸, 때마침 토(免) 공(公)을 위하야 또한, 수궁 풍류(風流)가 낭자(狼藉)허것다.

 

[엇모리]

수궁의 갖은 풍류 수궁의 갖은 풍류, 왕자진(王子晋)의 봉(鳳) 피리 니나니나 니나누, 곽(郭) 처사(處士) 죽장구 찌지렁 쿵 쩡 쿵, 장자방(張子房)의 옥(玉)퉁소 띳띠루 띠루, 성연자(成連子) 거문고 슬기덩지 둥덩덩, 혜강(嵆康)의 혜금(嵆琴)이며, 격타고(擊鼉鼓) 취용적(吹龍笛) 능파사(凌波詞)의 어부사(漁父詞), 우의곡(羽衣曲) 채련곡(採蓮曲) 곁들어다 노래헐 제, 낭자(狼藉)한 풍악(風樂) 소리 수궁이 진동헌다. 토끼도 좋아라고, 토끼도 신명내어, “얼시구절시구 지화자 자 좋을시고, 약일네라, 약일네라, 내의 간이 약이여. 위수변(渭水邊) 강태공(姜太公)도 내 간을 먹고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 일백 육십을 살았고, 동방삭(東方朔)이 날 만나 간 좀 달라기에 팥알만큼 주었더니 삼천갑자(三千甲子) 만 팔천 장생(長生不老) 허였네, 대왕의 환우(患憂)도 내의 간 자시면 천천만만 세를 태평으로 누릴 터니 어찌 아니 좋을시구 지화자자 좋을 씨고.”

 

[중중모리]

앞내 버들은 청포장(靑布帳) 두르고 뒷네 수양(垂楊)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흔들흔들 우질우질 춤을 출 적에 앞발을 번뜻 추켜들고 촐랑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귀 밝은 대장 범치란 놈이 토끼 뒤로 졸졸 따라다니며 노니는 판인듸, 촐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토끼란 놈 배 속에 간(肝) 들었다.” 큰소리를 쳐노니, 토끼 깜짝 놀래 “네 이 녀석 내 배 속에 무얼 보고 간 들었다 허느냐? 내 배 속에 무슨 소리를 듣고 간 들었다 허느냐? 내가 늬그 수궁 들어와 먹은 것이 뭐 있느냐? 아, 이놈아, 빈속에 술잔이나 들어가노니, 똥 덩어리 노는 소리 듣고 간 들었다 허는구나.” 토끼 생각허되 군자(君子)는 가기이방(可欺以方)이요 견지이작[見機而作]이라. 뺀 짐에 주(走) 짜[字]가 제일 상수지, 뺀 짐에 뺄 수밖에 없다. 대왕 전 아뢰옵되 “병세(病勢) 만만(萬萬) 위중(危重)하오니 소퇴가 어서 세상을 나가 간을 가지고 들어와 왕명을 보존(保存)하겠네다.” 용왕이 반기 허사 별 주부를 또다시 진 명(命)을 허니, 별 주부는 토끼란 놈 배 속에 간이 들었는듸, 세상에를 다시 나가라고 하니 주달(奏達)을 허는듸,

 

[진양조]

별 주부 황공대왈 “신의 충성(忠誠) 다 베풀어 원해(遠海) 삼천 리를 겨우 잡어들인 토끼를 배 속에 달린 간 아니 내고 보낼진대 세상 웃음이 될 것이요, 내가 칠종칠금(七縱七擒)허든 제갈공명(孔明) 지모(智謀) 아니어든 한번 놓아 버린 토끼 어찌 다시 구(求)오리까? 배만 갈라 보옵소서, 배만 갈라 보옵소서.”

 

[중중모리]

토끼가 듣고 일어서며, 토끼가 듣고 화를 내어 “왔다, 이놈 별 주부야, 늬 말이 당(當)찬허다. 왕명이 지중(至重)커늘 늬가 어이 기만(欺瞞)허랴? 옛말을 못 들었나? 상(商) 주(紂)의 몹쓸 마음 비간(比干)의 배 가르니 칠구[七竅]도 못 보았고, 하(夏) 걸(桀)이 학정(虐政)으로 용봉[龍逄]을 살해(殺害)코 미구(未久)에 망국(亡國)을 모르더냐? 너도 이놈 내 배를 갈라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의 혼백(魂魄) 수로만리(水路萬里) 갈 수 없고, 너의 나라 원귀(冤鬼)되어 연병 시병(時病) 퍼질진대 너의 용왕 십 년 살 것 하루도 못 살터이요, 너의 수국 만조백관(滿朝百官) 한 낮 한시(時) 모두 다 멸살(滅殺) 시키리라 아나 배 갈라라 아나 였다 배 갈라라 똥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늬 보아라.”

 

6. 세상으로

 

[아니리]

용왕이 토끼 거동(擧動)을 보고 요망(妖妄)한 짐생이 사(邪)가 되어 그럴 법도 하겄다. “다시 일구이언(一口二言)허는 자(者)는 어망(漁網/魚網) 살로 정배(定配) 출송(黜送)하리라.” 이렇듯 어명(御命)을 허여노니, 별 주부 하릴없이 토끼를 업고 세상을 다시 나오는듸,

 

[진양조]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이수(二水)를 건너 백로주(白鷺洲)를 어서 가자. 고국산천(故國山川)이 어디메뇨. 삼산(三山)을 바라보니 청천외(青天外) 멀어있고,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 허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吊湘君)고. 한곳을 당도(當到)허니 한 사람이 나오는듸 푸른 옷 입고 검은 관(冠)을 쓰고 거수(擧手)에 읍(揖)을 허며, “토 공(公)은 수로(水路) 왕래(往來) 상거(相距) 천이[千里]라 하이즉차[何以至此]오?” 토끼 대왈(對曰) “기경청산(靑山) 허니 관불과제관(觀不過諸觀)이요, 탁족무림 허니 태불과봉황이요, 소무지식(素無知識) 허고 유매평생이라. 소문 강호지흥미(江湖之興味) 허고 오복풍경지측차로다.” 귀인(貴人)이 듣고 평일 장탄(長歎) 왈 “군불견(君不見) 삼려대부(三閭大夫) 어복지혼(魚腹之魂)의 내 일찍 세상에서 이충사군(以忠事君) 허옵다가 시운(時運)이 불행(不幸)허여 이물의 물에 잠겨 영불출세(永不出世) 서른 뜻과 내의 글 외웠다가 추천 일월(日月) 밝은 세상의 음풍영월(吟風詠月) 문장(文章) 재사(才士)들께 천고지원(千古之怨) 전해 주소.” 그 글의 허였으되 “제고양지묘예혜(帝高陽之苗裔兮)여 짐황고왈백용(朕皇考曰伯庸)이라. 유초목지영락혜(惟草木之零落兮)여 공미인(恐美人) 지모(遲暮)로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어든 아독청(我獨淸) 허고, 중인(衆人)이 개취(皆醉)어든 아독성(我獨醒)이라.” 창연히 생각을 허니 이난 만고(萬古) 충신(忠臣) 굴원(屈原)이로구나.

 

[단중모리]

백마주(白馬洲) 바삐 지내 적벽강(赤壁江) 당도(當到)허니,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一船) 추강(秋江) 어부(漁父)가 빈 배. 기경선자(騎鯨仙子) 간 연후(然後) 공추월지단단(空秋月之團團). 자래 등에다 저 달을 실어 우리 고향을 어서 가. 환산농명월(還山弄明月) 원해근산(遠海近山)이 좋을시고. 위수(渭水)로 돌아드니 어조(魚釣)하든 강태공(姜太公) 기주(岐周)로 돌아들고 은린옥척(銀鱗玉尺)뿐이라. 벽해(碧海) 수변을 당도하야 깡총 뛰어내려 모르는 체로 가는구나.

 

[아니리]

고고 태산(泰山)으로 올라가더니마는 “별 주부 어서 이리 올라오시오, 간(肝) 줄 테니 어서 올라오시오.” 별 주부 딱 쳐다보니 층암절벽이라. “아이고 내가 거기를 어떻게 올라간단 말이오.” “저리 돌아 올라온다 허면 수백 리나 될 것이니, 이리 막 앞으로 기어올라 오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는 못 올라가것네.” “오 그러면 좋은 수가 있소. 내가 칡넝쿨을 걷어 가지고 홀롱기를 해서 내려 보낼 테니, 목을 걸고 올라오든지 다리를 걸고 올라오든지 양 가지로 허소.” “글랑 그리 허오.” 칡넝쿨을 걷어 가지고 홀롱기를 해서 내려보냈것다. 별 주부 그저 목을 쑥 빼어 홀롱기 안에다 딱 넣어노니,

 

[느린 중모리]

토끼 놈 거동을 보아라. 홀롱기를 쥐여 들고 홰홰 돌려 젯쳐노니 나무 쟁반 떠나가듯, 해상의 배 떠나듯 공중의 둥둥 떠 하릴없이 죽었구나. “네 이놈 별가(鼈哥) 놈아 늬가 나를 살살 꼬여 너의 수궁 들어가 내 배를 갈라 간을 내어 너의 용왕 준다 허였더냐? 동풍의 음건(陰乾)허여 빳빳 말라 뒈지거라. 왕배탕이 좋을시고, 들랑날랑 허는 목을 늘여서 죽이리라!” 홀롱기 측 끈을 낭귀다 매고 산천으로만 올라가는구나.

 

[아니리]

그때여 별 주부는 하릴없이 죽게 되였는듸, 목이 딱 짤리어노니 말인즉 헐 수 있으리오마는 속으로 자탄(自歎/自嘆)허는 말이 소리가 되니 듣게 되었던 것이었다. 별 주부 기가 막혀 통곡(痛哭/慟哭)으로 우는 말이,

 

[진양조]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나 죽기는 설찮으나 내가 만일 죽게 되면 영덕전 병든 용왕 어늬 뉘라 살려 주며, 북당(北堂)의 학발(鶴髮) 양친(兩親) 옥빈홍안(玉鬢紅顔) 젊은 처자를 뉘라 의탁을 허드란 말이냐.”

 

[아니리]

이렇듯 설리 울 제. 어째 산신(山神)님이 살렸던지, 하나님이 감동을 허였던지 묘(妙)하게 홀롱기 벗어져 홰홰 둘러 내민 돌에 부딪쳐 떨어져노니 등이 난리가 되었구나. 이랬으면 그만 돌아가야 할 일인듸, 원체 충성이 지극한 별 주부라. 가는 토끼 다시 불러, “여보 토(免) 공(公) 아 이렇게 찡찡한 재담(才談) 그만허시고 간이나 좀 띠어 주고 가시오.” 가든 토끼 다시 돌아오며 욕을 한번 퍼붓는듸 대욕을 허는가 보더라.

 

[중모리]

“재기를 붙고 발기를 헐 녀석. 배 속의 달린 간을 어찌 들이고 내드란 말이냐? 미련허드라 미련허드라 너그 용왕이 미련허드라. 느그 용왕 미련키 날 같고, 나 슬기롭기 느그 용왕 같거들면 영락없이 죽을 것을, 내 밑궁기 서이 아니어든 내 목숨이 어이 살았겼나? 내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백운(白雲) 청산을 내 돌아간다.”

 

[아니리]

“내 이놈 별 주부야! 늬 소행을 생각허면, 내 발뒤꿈치로 늬 복판 콱콱 밟아 옹구 짐 뿌시거 놓듯 헐 일이로되, 늬가 만(萬) 리(里) 원경(遠境)을 날 업고 왔으니, 그 은혜로 화제(和劑)하나 해줄 터이니 그대로 약 써 보아라. 거 늬그 수궁 들어가니 이뿐 암자래 많튼구나, 하루 일천오백 마리씩 집어 다려서 멕이고, 그래도 안 낫거든 복장이 가루를 천 적을 만들어 오자대(梧子大)을 지어 무시복(無時服)으로 그져 주야로 퍼 먹여 버려라. 그러면 죽든지 살든지 일 마쳐 버리리라. 그렇지 않으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늬 할애비라도 살 수가 없다, 이 녀석아!” 토끼는 이러고 올라갔제. 별 주부 기가 막혀 “내가 이리될 줄 알았지. 내가 이제 도경(渡鯨)으로 수궁을 가자 헌들 무슨 면목(面目)으로 용왕을 배올거나.” 별 주부 하릴없이 탄식하며 도경으로 돌아가고, 토끼란 놈 살아 나왔다고 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거덜거리고 노니다 토끼 덫에 딱 걸려노니 “아이고 내가 또 죽게 되었구나! 차라리 이리될 줄 알았으면 수궁에서 죽었더라면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 제사라도 착실히 얻어먹고 백골(白骨)이라도 암장헐걸, 이제는 뉘 놈의 배 속의 장사(葬事)를 허드란 말이냐!” 죽을 것 각오하고 있난듸, 때마침 쉬파리 때가 왱 하고 달라들 제 “아이고 쉬 낭청(郎廳) 사촌님 어디 갔다 인자 오시오.” “너 일 참 잘 되었구나!” “그저 내 등에 쉬나 좀 쓸어 주면 살 도리가 있소.” “늬 아무리 꾀 많은들 사람의 손을 당할쏘냐. 사람의 내력(來歷)이라는 건 내 일(一) 장중(掌中)에 있나니 내가 이를 테니 들어봐라.”

 

[자진모리]

“사람의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이라 허난 게 엎어 노면 하날이요, 됫세 놓으면 땅인듸, 이리저리 금이 있기는 일월(日月) 다니는 길이요, 엄지장가락이 두 마디 기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요, 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정월, 이월, 삼월, 장가락이 그 중에 길기는 사월, 오월, 유월이요, 무명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칠월, 팔월, 구월이요, 소지(小指)가 그중에 저룹기는 시월, 동지, 섣달인듸,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여그 있고,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 선천팔괘(先天八卦)가 여그 있고, 불도(佛道)로 두고 일러도 감중련(坎中連) 간상련(艮上連) 여그 있고, 육도(六道)를 부려 대장경(大藏經) 천지가 모도 일(一) 장중(掌中)이라. 늬 아무리 많은들 사람 손을 당할쏘냐? 잔말 말고 너 죽어.”

 

[아니리]

“그저 죽고 살고는 내 수단에 있는 것이니, 내 등에 쉬나 좀 쓸어 주시오.” “글랑 그리 허여라.” 지 동지 수만 마리를 부르더니 쉬를 담뿍 쓸어 놓고 날아갔제. 토끼란 놈은 쉬 한 짐 짊어지고 죽은 듯이 엎졌는듸, 때마침 초동(樵童)들이 모두 아침밥 일찍 먹고 심곡(深谷) 심산(深山) 올라오며 시절가(時節歌)를 부르는듸,

 

[늦은 중모리]

“어이 가리 넘차 어이 가리 넘차, 어이 가리 너 너화로구나. 태고(太古)라 천왕씨[天皇氏]는 목(木)덕(德)으로 왕(王) 하였으니 낭기 아니 중헐쏘냐? 인황씨(人皇氏) 아홉 형제 분장구주(分長九州) 마련헐 제, 우리 곤(困)케 허였던가. 수인씨(燧人氏)가 불을 내어 화식(火食)허게 헌 연후(然後)의 우리 곤케 허였던가. 어떤 사람 팔자 좋아 삼태육경(三台六卿) 좋은 집에 부귀영화(富貴榮華)로 잘사는듸, 우리 팔자 어이허여 날이 새면 지게 갈퀴 짊어지고 심산구곡(深山九曲)이 왠일인그나. 집이라고 돌아가면 소탱 빈 방안의 곱송그려 새우잠 자니 초동 팔자(八字) 가련지고, 여보소 친구들아 자네는 저 골로 들어가고, 나는 이 골로 들어가 떨어진 낙엽 부러진 가지를 힘끝대로 뭉뚱그려 위부모(爲父母) 처자식(妻子息)의 극진공대(極盡恭待)를 허여 보세. 어이 가리 너 어 어이 가리, 어이 가리 너 너화로구나.”

 

[아니리]

이렇듯이 올라오다가 토끼 덫 살펴보니 과연 한 마리 치였제. “야 여기 좋은 것 있다. 거 모닥불 놔라 이거 꿔 먹고 올라가자.” 자세히 살펴보니 쉬를 잔뜩 쓸었것다. “아차 차차 우리가 이삼 일 전(前)에만 왔드라도 이놈을 무사히 꿔 먹고 갈 것인듸, 여 쉬를 담뿍 씰었다.” 그 중 고기 욕심 있는 초동(樵童) 하나 썩 나서며, “야 요즘에는 내음만 없어도 먹는다. 코 뒀다 어따 쓸래. 좀 맞어 봐라.” 이놈이 냄새를 위쪽에 대고 맡았으면 잘 꿔 먹고 올라갔을 것인듸, 묘하게 그놈 아랫도리에다 코를 댓던가 보더라. 토끼 때는 이때다 하고 삼년 묵은 도토리 방구를 소리 없이 내어노니, “왓다. 그것 오장(五臟) 뒤집는다. 이런 것 먹다가 설사병(泄瀉病)으로 죽는다. 없애버려라. 아나 오작(烏鵲)구 밥이나 되어라.” 뒷발목 검쳐 잡고 쉿 잡어 쏘아노니, 토끼란 놈 저 건너 깡짱 뛰어 나앉으며, “해해 사지(死地) 수궁 들어가 용왕도 속이고 나왔는듸, 무식한 너이들을 못 속일쏘냐!” 거기서 초동들 배 채우느라고 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거덜거리고 놀것다.

 

[중중모리]

관대장자(寬大長者) 한고조(漢高祖) 지혜(智慧/知慧) 많기가 날만 해, 소진(蘇秦), 장의(張儀) 구변(口辯)인들 이내 말을 당할쏘냐? 삼국(三國) 시(時) 내 낳은들 공명(公明) 선생이 나만 헐까! 전국 시 나 낳은들 김전이가 말을 헐까! 시리허고, 시리허다. 영산홍로[暎山紅綠] 봄바람, 넘노나니 도화(桃花)로다. 붉은 꽃 푸른 잎은 산영(山影) 수색(水色)을 그림 허고, 나는 나비 우난 새는 춘광(春光) 춘흥(春興)을 자랑헌다. 예 듣던 청산 두견 자조 운다 각 새소리, 타향(他鄕) 수궁 갔든 벗님 고국산천(故國山川)이 반가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깡쫑거리고 올라간다.”

 

[아니리]

이렇듯 거덜거리고 올라가는듸, 이때어 난데없는 독수리 이삼일 주린 놈인듸 어디로 가 이 주린 구복을 채울고 하고 날아다니는 판에 마치 요구감이 뙤작거리고 올라가니 우 하니 내려와 큰 쭉대로 콱 쎄려노니, 이놈이 한 뎃 바뀌 궁글어 정신을 포로시 찾어 올려다본즉, 참 정떨어지게 생겼던가 보러다. 눈 오끔한 데다가 입뿌리가 낚시 뽄으로 생겼난듸, 천간이 녹을 지경이라. 독수리 또한 좋아라고 한바탕 노난듸,

 

[늦은 중모리]

“얼씨구나 내 복이야.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구나 지화자 좋을시고, 삼사 일 주렸더니 요구감을 얻었구나, 육진비 갖은 차담 이여서 더하오며, 홍문연(鴻門宴) 놓은 잔치 주물상(晝物床)이 이 같으랴! 눈을 먼저 빼 먹을까? 코를 먼저 빼 먹을까? 배를 갈라 간을 내어 식기 전에 먹어 볼까? 얼씨구나 얼씨구나 좋구나 자화자자 좋을시구.”

 

[아니리]

토끼 아무리 생각허여도 또 죽게 되었구나! 이놈이 또 한 꾀를 비집난듸, 거지 울음을 우는듸.

 

[단중모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아이고 내 일이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나 죽기는 설찮으나 내가 만일 죽게 되면 아까운 이사 줌치 무주공산(無主空山)에다 버려두고 임자 찾어 못 전허고 이 자리에 죽게 되니, 이 아니 원통(冤痛)허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아니리]

독수리 가만히 말을 듣더니마는, “애 토끼야.” “예.” “그 의사 줌치가 무엇이간듸, 늬 죽기 보듬도 설잖탄 말이냐?” “예, 장군님 의사 줌치 내력을 들어보시오. 의사 줌치라는 보물(寶物)이 뭣인고니 쫙 피어 놓고 보면 일곱 궁기가 뚫펴 있는듸, 꼭 부채 뽄으로 생겼죠. 한 궁기를 탁 탱기면 도야지 세끼 나오너라 하면 한 번에 수백 마리가 나오고, 삥아리 새끼 나오너라 하면 일천오백 마리 아니라 일억 오천 마리가 꾸역꾸역 나오고, 개 창사 노루 창사 나오느랴 허면 그져 빨래줄 나오듯 수백 발이 나오니 이런 보물이 어디가 있소. 헌듸, 이런 보물을 저 바우 틈 속에다 넣어 놓고 내가 이 자리에 죽게 되면, 그 보물을 누가 차지헌단 말씀이오? 그러니 원통하기 짝이 없소.” 독수리 이 말 듣고 “거 좋은 보물 가지고 있구나! 그 좋은 보물을 어디서 났느냐?” “예, 제가 일전에 남해 수궁 들어가 용왕한테 가리고 나왔지요.” “늬가 남해 수궁 들어갔단 말 얼풋 들었다.” “그 용왕이 주신 보물인듸, 그 보물을 뉘게 준단 말씀이오. 장군님 제발 덕분에 살려 주오.” 독수리가 이 말 듣더니 용심이 잔뜩 나것다. “이에, 토끼야.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니 그 의사 줌치라는 보물을 나를 도라.” “아이고 장군님 생긴 것이 욕심(欲心/慾心)이 대단허여 줌치를 뺏고 나까지 잡어 잡수시랴 그러시오.” “이야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러면 너와 나와 사촌(四寸) 의형제(義兄弟)를 맺자.” “욕심 많은 장군님이 사촌을 아시리까?” “아이고 이놈아 너는 잠깐 요기(療飢)감밖에는 안 되고 그 줌치만 있고 보면 내 생전(生前) 양식(糧食)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것구나! 그런 좋은 것을 준다면 내가 너를 어째 잡아먹을 것이냐? 그러니 염려 말고 그 의사 줌치 날 다오.” “장군님 꼭 그럴 테면 저 건넌 바우 틈으로 갑시다.” 독수리 좋은 술병(甁) 들 듯 토끼 두 귀 검쳐 잡고 바우 앞에다 내려노니 토끼란 놈 이놈 의심 없이 바우 틈으로 들어갈려고 하것다. “너 이놈 내가 늬 발목 잡고 있을 테니 의사 줌치 가지고 나오너라.” “올체 그러시오 나 들어가오. 내 발목 잡으시오.” “오냐 잡었다.” “아이고 의사 줌치가 갈씬갈씬하오, 쪼끔만 놓시오.” “오냐 늬 엄지발꾸락 잡었다.” “아이고 갈씬갈씬하니 쪼끔만 더 놓시오.” “오냐 너 발툽 잡었다.” “어허 조금만 더 놓으시오.” 이놈이 탁 차고 들어가 한가한 치라고 시조 반(半) 장(章)을 썩 내놓는듸, 

 

[시창]

“반(半)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기 어려워라!”

 

[아니리]

“네 이놈 토끼야. 그 한가한 치라고 진 노래 허지 말고 어서 의사 춤치 가지고 나오너라. 내 일이 바쁘다.” “야 이놈 독수라! 죽게 된 내가 살았으니 이것이 의사 줌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 무식한 놈아 어서 다른 데 가서 일 보아라.” 독수리 어이없어 내가 이리될 줄 알았지, 내가 욕심이 많으기에 이 분(憤/忿)함을 당허는구나! “네 이놈 토끼야, 너는 인자 세상 구경 다했다. 네가 늬 굴 앞에 지켜 섰다가 나오기만 나오면 사지(四肢)를 찧을 테니 그리 알아라.” “야, 이놈아 내 나이 팔십(八十)이 되었으니 어린 손자(孫子) 자식이나 봐 주고 수신제가(修身齊家)나 헐란다.” 독수리 더욱 기가 막혀, “예이 빌어먹을 놈 잘 살어라.”

 

[엇중모리]

독수리 하릴없이 훨훨 날아가고, 그때 산신께옵서는 노퇴[老兔] 일(一) 수(首)를 보내어 대왕 병도 즉차 즉효 허고 태평가(太平歌)를 누렸더라.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러한 미물(微物)들도 보국(報國) 충성(忠誠)을 다하거날 하물며 우리 인생이야 말을 즉히 헐 수 있나, 나라에 충성허고 부모의게 효도허세. 그만 더딜 더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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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소리 수궁가, 강산제 심청가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사설 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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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m_no=1&sq=51119&thread=001001000&sec=2


판소리에 담긴 '억압에 맞선 여성', 눈으로 읽다

김경아 명창, '심청가', '춘향가', '유관순 열사가' 사설 담긴 도서 출판
19-11-01 09:20ㅣ 윤종환 기자 (un24102@nate.com) 

 

인천의 대표적 소리꾼 '김경아' 명창이 판소리 세 바탕을 담은 두 권의 도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김경아, 범우사, 2019)', '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김경아 외 편저, 범우사, 2019)'를 출간했다.

출간된 책에는 3·1운동 100주기를 맞아 '억압에 맞선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세 인물(유관순 열사, 성춘향, 심청)에 대한 판소리 사설이 담겼다.

오는 2020년이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주기이며, 최근 사회적으로 뜨겁게 진행중인 여성운동 등과 시기를 맞춰 출간했다.

도서엔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유관순 열사가'의 사설이 담겼다. 차용된 한시는 부록으로 묶어서 해설했으며 장단에 따라 소리 마디를 나누어, 책을 통해서도 판소리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김경아 명창은 지난 1998년 인천에 정착하여 인천지역 판소리 보급과 제자 양성에 매진해왔다.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로 선정됐고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인천지부'와 '사)우리소리'를 설립하여 인천의 독자적인 판소리 활동 발판을 마련했다.

김경아 명창이 직접 기획·참여한 대표적 인천 판소리 공연으론 지난 2016년에 시작해 올해로 4회째를 맞아 진행한 <청어람 - 판소리 다섯바탕 공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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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newsjournal.com/news/articleList.html?sc_area=I&sc_word=sisa2018

 

소리꾼 김경아, 판소리 세 바탕을 출간
  
 민하늘 기자 sisa2018@daum.net
| 승인 2019.11.01 07:30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김경아 편저, 범우사)
 '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김경아 외 편저, 범우사)

 

 [시사뉴스저널] 민하늘 기자 =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고 유관순 열사 순국 99주기이다. 열사 순국 100주기가 되는 2020년을 앞두고, 김경아 명창이 유관순 열사가와 심청가와 춘향가 사설을 두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성춘향과 심청과 유관순이 82년생은 아니고 ‘유관순’은 실존 인물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82년생 김지영과 마찬가지로 억압에 맞선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더구나 춘향가, 심청가, 유관순 열사가에 공통적인 판소리라는 형식 또한 조선의 천만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중성과 사회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이 세 바탕의 판소리에서 억압에 맞서는 슬기를 새삼 배워보자!

이를 위해 이 책은 자세한 주석을 달았고, 차용된 한시를 부록으로 묶어서 해설했다. 그리고 장단에 따라 소리 마디를 나누어 판소리의 맛을 살렸다.

 

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2016년 촛불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1987년 6월 투사들이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들에게 그랬을 것처럼, 1919년 3·1운동가들은 1894년의 동학농민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유관순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착한 사람들을, 3·1운동가들과 6월 투사들과 촛불들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유관순 열사가’는 박동실 –> 장월중선 –> 정순임 명창을 거쳐 소리꾼 김경아에게 이어진 것으로, 해방 직후에 창작된 유관순 열사에 대한 추모곡이다.

 

“[진양조 장단] 사후 영결허신 우리 부모님 초상장례를 뉘 했으며 철모르는 어린 동생들은 뉘 집에서 자라날꼬. 분하고 내가 원통한 사정을 어느 누게다가 하소를 허리”(“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217쪽)

 

강산제 심청가

 

심청가의 마지막 눈대목(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심 봉사가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동시에 시각 장애인인 심 봉사가 개안(開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로, 심 봉사가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눈 뜨는 대목’이다.

 

“[중머리 장단] 눈도 뜨지 못 하옵고 자식 팔아먹은 놈을 살려 두어 쓸 데 있소? 당장에 목숨을 끊어주오. ······

[자진모리 장단]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저를 보옵소서. ······ 아이고 갑갑하여라!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 두 눈을 끔적끔적 끔적거리더니 두 눈을 번쩍 떴구나!”(“강산제 심청가·박동실제 유관순 열사가”, 176~178쪽)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단중머리 장단]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불경이부절을 본받고자 허옵난디 사또도 난시를 당하면 적하에 무릎을 꿇고 두 임금을 섬기리잇가?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천기 자식이라 그리 마오. 어서 급히 죽여주옵소서.”(“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110~111쪽)

 

“[중머리 장단] 선악을 구별허로 다니시는 어사옵지, 한 낭군 섬기랴는 춘향 잡으러 오신 사또시오? 마음은 본관과 동심허여, 똑같이 먹은 명관들이오. 죽여주오 죽여주오.”(“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184쪽)

 

앞에 인용한 것은 변학도에 대한 춘향의 ‘까칠한’ 지적이다. 뒤의 것은 자신이 아닌 척하며 어사또 수청이니 들라고 춘향을 시험하는 이몽룡에 대한 춘향의 ‘지적질’이다. 변학도나 어사또나 천한 기생을 차별하려는 마음을 ‘똑같이 먹은’ 자들이라며, 그들과 달리 성춘향 자신은 ‘한 낭군 섬기려는’ 사랑꾼임을 커밍아웃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춘향은 차라리 죽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이 반복될 때마다 살고 싶다고 같이 살자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얼마나 ‘슬기'로운 환청인가? 청각 장애인가?

 

김경아는 제24회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다. 고 성우향 명창을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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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625339

 

[신간]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9.07.29 08:43

시조가 국민 가요였다면 판소리는 천만 영화였다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판소리는 한사람의 천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지면서 만들어 온 민족문화의 정수이자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인천을 대표하는 중견 소리꾼인 김경아 명창이 이를 다시 다듬어 책으로 내놓았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크게 보아 대마디, 대장단의 선이 굵은 동편제에 속하는 소리로,  조선 후기 8대 명창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김세종에 의해 시작된 소리이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찬업, 정응민을 거쳐 김경아 명창의 스승인 성우향으로 이어져 왔다.

 

중견 소리꾼 김경아 명창은 '김세종제 춘향가'를 쉽게 소개하기 위해 두 가지의 타임캡슐을 이용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춘향가가 생기던 300여 년 전으로 갈 수는 없지만, 150여 년 전 광대들의 사설이 책으로 남아 있고(‘춘향전 전집’ 1~17, 김진영 외 편저, 박이정출판사, 1997~2004)  100여 년 전 광대들의 소리가 유성기 음반으로 남아 있다.

이 두 가지 나침반을 들고 김경아 명창은 '판소리 춘향가'를 다시 한번 다듬었다. 이번에 발간된 "김세종제 판소리 춘향가"는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춘향가 사설을 정성들여 정리했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한자어와 고사성어에 주석을 달아 그 맥락을 문학적으로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는 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창본(소리책)으로 쓸 수 있도록 장단에 따른 소리 마디를 구분하여 편집한 부분이다. 정간보나 오선지로도 표현할 수 없는 판소리의 음률을 자신만의 악보로 만들어 직접 소리꾼이 되어 춘향가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사설에 인용된 한시에 대한 해석과 해설을 달아, 춘향가에 차용된 한시 원문을 부록으로 실었다. 동양 인문학의 보고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 나오는 수많은 한시는 그것을 음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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