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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_문화연구시월 신병현님과의 중구난방

신병현 선생님은 자본이 노동자들의 자생적 노동자 문화를 깨어버렸다고 하며, 그 결과로 생긴 노동자문화의 장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 둘째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셋째가 유사가족주의. 이 세가지 형태로 작업장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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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차 열린포럼 중구난방은 지난 9월 23일 문화 연구 시월의 신병현 선생님과 함께 했다. 가을이 온 듯 해가 머리위에서 쨍쨍대는 가운데 길을 잘 못 들어선 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여기가 어디죠?” 시장 골목에 있는 연구소이기에 아마, 이 길이 그 길이고, 그 길이 이길 같았을 것이다. 매번 헤매는 발제자와 발제자를 찾는 ‘나’다.


여전히 자유로운 포럼 참가자들. 조금씩 늦은 참가자들과 발제자까지 모두 10명이 모였다. 이번엔 참석한 분들이 더 다양해졌다. 노동문화 활동가, 지역 공부방 선생님, 지역 문화운동가, 학원 교사, 학생 등 중구난방의 위상이 혹시 강화된 게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신병현 선생님의 ‘노동자 운동과 문화운동’ 이라는 주제가 분명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분야에 대한 선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어떠한 내용을 듣는다는 것이 모두 생소했다. 그리고 문화운동이라는 것을 잘 못 이해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 ‘문화운동론’ 이라고 하는 것을 ‘문예운동’과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 범주에 나또한 있었다. 당황했던 서두였다.


신병현 선생님은 현 시기를 ‘주체성의 관리 통제 통치 시기’라고 이야기하며, 자본가들은 ‘수동적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문화와 정치로 노동자들을 교육, 세뇌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교육과 세뇌는 노동자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접해있는 작업장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신병현 선생님께서는 작업장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국가와 자본가는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재생산’을 끊임없이 진행한다며, 이에 대한 투쟁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직접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삶을 바꾸어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의 삶을 결정짓는 공간 또한 작업장이라고 이야기하며, 작업장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최근 나는 만도의 ‘경영전략 분석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작업장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해 보았다. 이들의 작업장에서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생활’ 그 자체였다. 10시간 노동에 생각보다 안 좋은 작업환경은 처음 대공장을 찾아간 나로서는 놀라웠다. 그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는 작업장에서의 생활과 작업장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겐 생활이자, 삶일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곧 가부장적인 태도와 군사주의적 문화의 잔재들과 직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병현 선생님은 자본이 노동자들의 자생적 노동자 문화를 깨어버렸다고 하며, 그 결과로 생긴 노동자문화의 장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 둘째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셋째가 유사가족주의. 이 세가지 형태로 작업장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노동물신주의(전문가 주의)는 ‘자부심’에 기초한다고 설명되었다. 숙련은 노조와 자본이 교섭을 통해 유지하는데 이에 따라 위계가 형성되어 이것들을 노동자들이 향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료 간의 차별 배타를 생산해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또 사회적으로 규정해 나가는데, 그것이 인사고과와 성과급이다.

두 번째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남성들 사이의 위계와 남, 여 사이의 위계를 바탕을 둔 권력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신병현 선생님은 한국적 특수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면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러한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노동자에게 차별적 형태로 대입되며 이는 곧바로 인사제도에 도입되어 작업장에서의 가장 극적인 순간인 구조조정에서 극렬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유사가족주의는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소위, ‘우리 편’ 문화인데 이는 곧 따라서 ‘다른 편’에 대한 배타적 형식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동조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이러한 작업장 내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꼈다. 특히,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는 군대문화와 섞여 강력한 유사가족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형태로 극렬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근속년수에 따른 권위주의적 문화와 작업 부서별 유사가족주의는 분명히 큰 공장 단위의 단결과 투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군대문화는 위계와 권위의 상징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기형화된 운동문화로 까지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신병현 선생님은 최근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소위 민주노조 운동 방식인 87년 노동체제는 96, 97년으로 포화, 종료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IMF 체제 이후 노동자 문화 실태에서 드러나는데, 노조에 대한 몰입이 높아진 반면, 실리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는 조합원들 즉, 노동자들의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과거 고유한 민주노조운동의 흐름 속에 저절로 흘러 들어온 특수한 이 흐름은 시효 만료가 되고 97년 IMF를 기점으로 바뀐 체제로 인해 진보운동에 장애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는 탄압과 착취의 범주였던 반면, 96,97년 이 후는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성, 창의성의 대중적 몰입으로 나타나고 기존의 대응 방식으로는 대응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곧 신자유주의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과 대응은 글쓰기 운동과 토론하기. 즉, 대화를 통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상호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 간에 소통,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한 발전. 이것이 최근 노동운동이 직면한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87년 노동체제는 96, 97년 이 후로 이미 포화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이미 확인되었다. 이미 사회는 변화되어진 패러다임에 있고 현재 노동운동의 주체는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병현 선생님은 이러한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에 대해 크리스테바라고 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의 개념어를 빌려 ‘Abjection’이라고 정의한다. ‘Abjection’이란 비열, 더러운 상태의, 분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토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로 나아가려고 하는 상태 혹은 나아가려고 하는 가능성을 뜻한다.

우리들에겐 무언가를 끊어내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해 나아가야 할 시기라는 인식은 있지만 아직도 과거의 지배적 패러다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소통’이라는 기제로 운동의 대전환의 계기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어 풍부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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