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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국풍2006이라고 해라.

아마도 내 기억에,

그 국풍81이라는 국가주도적인 우민화목적의 관제축제는

다행히도 그때 딱 한해뿐이었던 것같다.

국풍82라거나 83...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80년 5월에

이제 막 재미난 만화 할 시간이라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6시 정각에 커다란 TV의 자바라 문짝을 열쇠로 열고서

7번 TBC를 켜놓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만화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당시의 TBC는 6시부터 딱 한시간동안만 어린이 만화를 틀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이날의 부앙부앙하고 시끌벅적한 것도

어버이날 엄마 가슴에 종이에 풀떡을 한 카네이션(이라 우기는 색종이)를 달아드리고

대충 날은 따뜻하고 별반 바쁜일도 없는 국민학생이었으니

기다리는건 만화밖에 없었겠지.

어쩌면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마징가나 캐산, 돌치, 짱가같은 그런 쌈박질 만화였을 것이다.

 

그 날은 만화를 하지 않았다.

전라도 광주에 간첩들이 침투했다고 그랬나

아니면 광주에 있던 간첩들이 난동을 부렸다고 그랬나

아무튼 간첩이 어쩌고... 광주가 어쩌고... 계엄령이 어쩌고...

그런 뉴스가 나온다.

지금처럼 큰일 났다고 하루종일 뉴스만 하는것도 아니고

딱 만화하는 시간만큼만 특보를 내보내고 어른 프로만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난, 광주에 간첩이 있건말건 왜 내 만화 안틀어주냐고 징징대면서

애꿎은 엄마한테만 닥달했다.

"얼른 방송국에 전화해~ 잉잉~ 만화 틀어달라구 그래~ 징징~"

"응. 아까 엄마가 전화했는데, 간첩이 만화 훔쳐갔댄다."

훌륭한 임기응변의 재치덩어리 울엄마,

난 정말로 간첩이 만화 훔쳐간줄 알았다.

 

 

 

딱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하던 TBC는 없어졌고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깐요!' 그러던 이주일 아저씨도

'아~ 괴롭고 싶어라!'를 중얼거리던 이기동 아저씨도

TV에는 안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컬러방송이 시작되어서 헐크가 초록색인지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집은 아버지의 실직으로 작은집으로 이사했다.

 

TV에서는 하루종일 국풍81만 나온다.

'광주사태'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던 채널이 없어진 다음부터는

어딜 틀어도 전부 KBS같고 그나마 KBS는 만화도 잘 안틀어준다.

엄마랑 같이 찾아간 여의도 벌판에는 군데군데 천막이 쳐있고

북이랑 장구랑 시끄럽게 쿵짝거리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있고

어쨌든지 사람들은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때 국풍81의 가요제에서 1등을 했다는 이용이라는 가수는

그해 말에 결국 조용필을 제치고 가수왕을 했었던가.

테레비에도 라디오에도 온통 이용만 나오더니

한쪽에서는 조용필, 한쪽에서는 이용을 가수왕으로 만들었다.

이용... 그 자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난 아직도 '만들어진 가수왕'이라고 믿고 있다.

그건 아마도, 그가 '국풍81' 출신이었기 때문일거다.

그 '국풍81'은 광주항쟁 1주년을 덮어버리기 위한 잔치였으니까.

 

 

그리고 25년이 지났다.

전두환정권이 온나라를 혹하게 만들려고 발악을 했던 국풍81처럼

지금의 월드컵 역시 그때와 똑같이 방송이 날뛰고 자본이 설치면서

인.위.적.으.로. 축제의 열기를 조장하고 있다.

물론, 어떻게 만들어진 축제든지 축제의 가운데 있을 때는 즐겁다.

그때, 여의도광장(아니, 그때는 5.18광장)에 있던 사람들도 흥겨웠다.

 

그때 이용이 국풍에 의해 옹립된 가수인 것과 비슷하게

지금의 월드컵은 윤도현을 옹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추리에 나타난 KBS, MBC 차량에도 '월드컵은 ***와' 따위의 글씨를 나부끼는 건

나에겐 '정의사회구현' 이라는 완장을 찬 '사회정화위원'들처럼 보인다.

 

지금와서 그 81년이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들이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따위 뻔한 수작에 속았던 엄마네들에게 '바보 아녔어?'라고 할 사람들 아닐까?

그런 당신네들이 남의나라에서 벌어지는, 그것도 새벽4시에 치러질 세번의 경기에

일년전부터 목을 매고 그렇게 온나라를 뻘겋게 물들이고 있나?

당신은... 전두환에게 속았던 당신 엄마보다는 똑.똑.한.가?

 

 

 

25년전이나 지금이나 내 소원은 똑같다.

난 내가 원하지 않는 TV프로그램을 강제적으로 보기 싫다.

눈을 닫아도 귀를 감아도 뇌리에 팍팍 꽂아주던 그 '국풍81'의 소리처럼

당신네들의 그 월드컵소리 이젠 듣기 싫다.

그때는 전두환 하나였지만

인제는 온 나라 지배층들이 모두 전두환같아서 치가 떨린다.

 

 

올해의 월드컵 역시

광주항쟁을 덮고,

대추리를 덮고,

FTA를 덮고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그야말로 '국풍2006' 아닌가.

 

 

p.s 오늘아침 신문을 보다 기가 막혔던 이야기 하나.

토고는 무조건 이길 것처럼 그 한 경기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난리법석이지만

"현지시각 오후 3시, 그 더운 땡.볕.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랑 90분을 뛴다."

그래도 아무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

여기, 이 미친 대한민국에서는 선선한 밤10시에, 유일하게 밤10시에 하는 경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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