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동운동가가 있다.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1990년 현대중공업 노조의 ‘골리앗 점거 투쟁’을 주도했고, 1998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그 대가로 4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다. 울산 동구청장 재임시절이던 2004년에는 전국공무원노조 총파업에 동참한 공무원을 징계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죄로 구청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누구보다 노동운동의 흥망성쇠를 잘 알고 있는 그가 자신이 지나온 길에 침을 뱉었다. 노동운동의 폐부를 드러낸 책, <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영희 펴냄)를 통해서다. 저자는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현 민주노총 지도위원).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가 아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가 이런 ‘자기반성’의 서적을 펴낸 건 처음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은 추천사를 통해 “노동운동 내부의 문제를 이렇게 솔직하게 까발린 글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고, 시인 오도엽씨는 인터넷 매체 ‘참세상’에 ‘절대 읽지 말아야 할 책’이라는 역설적인 서평을 기고했다. 그동안 유야무야 덮어두었던 노동운동의 속사정이 날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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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용 전 위원장(위)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
‘예상대로’ 이번 책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건 보수언론이다. 12월16일 동아일보가 ‘민주노총, 정파 위해 비리 은폐’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했고, 같은 날 조선·중앙 인터넷판도 ‘민주노총에 쓴소리’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다뤘다. 언뜻 보면 지난 3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뉴라이트신노동연합 상임대표가 된 故 권용목씨가 <민주노총 충격보고서>라는 소책자를 발간했을 때와 비슷하다. 보수언론은 권씨의 책 내용을 토대로 노동계를 ‘부패 백화점’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책에도 충격보고서에 실린 내용이 담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민주노총 간부가 재정사업비 5억원을 빼돌려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날린 게 발각된 ‘재정위원회 사건’이다(그는 이 사건 때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사태의 전말을 파헤치라는 지시를 내렸다. 충격보고서에 실린 내용은 사실 이 전 위원장의 지시로 당시 모두 공개된 것이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의 ‘반성’이 고 권용목씨의 폭로와 다른 점은 적나라한 사태의 전말과 함께 노동운동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어서다. 가령 재정위원회 사건 때 그는 사건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 중앙위원들이 일치단결해서 막았다. ‘정파에 따라 평소 앙숙이던 이들이 이렇게 단결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라고 그는 책에 썼다.
기막힌 일은 더 있었다. 그가 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재정위원회 사건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그를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당시 이갑용 위원장이 얼렁뚱땅 문제를 넘기려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것 아니냐”라고 되레 역공을 펼쳤다. 결국 과거 중앙위원회 회의록에 적힌 이 전 위원장의 ‘검찰 고발 입장’을 확인한 뒤에야 공격은 수그러들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그때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어야 했다. 조직 보위론자들에게 욕을 먹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게 나았다. 그때 국민의 뭇매를 맞았다면 지금쯤 민주노총은 제2, 제3의 비리 문제로 곤욕을 치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결국 내 잘못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진보진영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글이 발표될 때마다 대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다. 진보진영의 핵심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얽힌 터여서 쉬쉬하는 한편으로 그 진정성을 뒷전에서 흉보곤 했다. 그 와중에 보수언론만 재미를 봤다. 이갑용 전 위원장의 주장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었다. 누구나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 그러나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시대에 그의 쓴소리가 어떤 영감을 줄까 싶어서다. 12월16일 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옆에 있는 자택에서 이갑용 전 위원장을 만났다.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1999년에 민주노총 위원장을 그만둔 뒤부터 ‘이대로 가면 망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정파 사람끼리 서로 감싸주면서 문제를 덮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더라. 그때부터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구청장 등을 하느라 못 썼다.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자고 생각해서 2년 전부터 준비했다.
재정위원회 비리 사건 등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가 뭔가.
나는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정위 문제를 다시 거론한 것은 이 부분이 민주노총의 역사에서 아예 없었던 일로 될까 염려해서다. 우리가 밝혀두지 않으면 그로 인해 우리 발등을 찍는 날이 올 것이다. 결국 뉴라이트 측에서 이 일을 다시 들춰내지 않았나. 역사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지금도 민주노총에는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재정위원회 사건이 터진 지 10년 뒤인 지난해 또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행 사건이 터지지 않았나. 그건 사실 개인이 처벌받을 문제였다. 그런데 이걸 조직이 책임지고 덮으려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10년 전에 잘못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이 민주노총에 발을 붙일 수 없게끔 했어야 했다. 몇 해 전 금품수뢰로 사퇴한 전직 간부의 경우 형을 마치고 돌아오자 민주노총 선후배들이 “고생했다”라며 격려하는 모습도 봤다. 기가 막혔다.
노동운동이 이렇게 쇠락한 원인이 뭐라고 보나. 사람이 문제였나.
이를테면 민주노총 관계자였다가 나중에 노동 관계기관 수장이 된 분이 있다. 그런데 이분이 민주노총에 관여하던 1998년에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 도입에 합의하는 걸 보고도 눈감아줬다. 내 기억에 그분은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을 벌일 때마다 반대했다. 민주노총은 지금도 그런 분들의 이야기에 목소리를 기울인다. 그때 우리더러 ‘싸우지 말고 조금만 참아라’고 이야기했던 이들 상당수가 나중에 정권의 품으로 갔다. 그들의 책임이 크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출마한 걸 두고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고 지적했는데.
1996년 12월에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면서 이듬해에 유례없는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민주노총 대표자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일어나라 코리아’를 구호로 내걸었을 때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투쟁의 열기가 달아오른 현장조직들이 선거조직으로 바뀌면서 대오가 흐트러졌다. 결국 대선에서 30만표를 얻으며 참패했다. 그때 대선 참여가 옳았는지 치열한 평가를 해야 했는데, 그냥 넘어갔다. 선거를 주도한 민주노총 최대 정파인 ‘국민파’가 자족적 평가만 내린 것이다. 그 뒤부터 민주노총에는 잘못을 저질러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문화가 생겼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결국 이 시기에 대선자금 등을 충당하는 과정에서 재정위원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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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골리앗 농성 때 이갑용 노조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오른쪽)이 만났다. |
그 후 노동운동이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건가.
권영길 위원장 후임인 배석범 직무대행이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 도입에 합의하면서 노동계의 비극이 시작됐다. 내가 위원장이던 1999년에는 대검 공안부장이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나는 그때 ILO(국제노동기구) 총회 참석을 위해 스위스에 있었는데, 총파업을 하려고 급히 한국에 돌아와보니 각 산별연맹노조 대표자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때 민주택시연맹 위원장이 “당신 임기 다 됐는데 또 투쟁한다고 방방 뜰 것 같아서 우리가 먼저 자리잡았다”라고 말하더라. 내 총파업 선언을 막기 위해 물타기를 한 것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노동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줄줄이 옷 벗고, 정권 퇴진도 가능한 사건이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때 무조건 총파업을 했다면 최근 벌어진 철도공사 파업 유도 사건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왜 당시 지도부가 총파업에 소극적이었을까.
김대중 정부에 대한 짝사랑이 깊었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운동 출신이어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며 출범한 지 1년도 안 된 정권을 공격하지 말고 좀더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는 수많은 사업장에서 정리해고가 이어지던 때였다. 그때 싸우지 말자고 주장하던 이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노동계의 최대 문제점이 뭐라고 보나.
정파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자기 정파 소속이면 나중에 어떻게든 자리를 마련해준다. 심지어 선거 때 당선 가능성만 높다면 서로 다른 정파끼리도 이합집산한다. 적어도 정파라면 정치 노선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된 정파인가.
(민주노총 내 정파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최대 정파인 ‘국민파’는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고, 국민파의 대척점에 서 있는 ‘중앙파’와 ‘현장파’는 강경 투쟁을 중시한다는 평이다. 운동권식 구분법에 따르면 국민파는 민족해방(NL) 노선을, 중앙파와 현장파는 민중민주혁명(PD) 노선을 따른다. 지난해 성폭행 사건으로 물러난 이석행 집행부는 국민파였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현장파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지만, 이들 정파가 ‘숨은 권력의 보호막’ 구실만 한다며 비판적이다.)
민주노총 직선제를 주장하는데, 해법이 될 수 있나.
위원장 선거가 간선제인 한, 대의원만 자기 정파로 포섭하면 되기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 후보로 나와도 당선이 된다. 민주노총은 이미 2007년 4월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총투표로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후 지도부의 반대로 계속 유예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의원대회 결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직선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조직의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염려하지만, 이미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같은 전국조직도 직선제로 간부를 뽑고 있다. 민노총 상층부가 기득권을 놓치기 싫은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지금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
글쎄··· 정파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희망일 것이다. 지금 정부가 노동계를 강하게 옥죄고 있지만, 우리 중 100명만 감옥 갈 각오를 하고 결연하게 싸우면 함부로 못한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대오를 두려워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면 더 겁낼 것이다. 민주노총이 결의만 하면 나도 그 100명 안에 들어가겠다.
인터뷰 내내 이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에 대한 질타를 멈추지 않았다. 혹자는 이 전 위원장이 너무 ‘독불장군’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인터뷰 도중 한 동네에 사는 김경욱씨가 이 전 위원장의 집을 방문했다. 김씨는 2년 전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으로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비정규 노동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말했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알고 보면 굉장히 타협적인 사람이에요. 오히려 부인이 비타협적이죠(그의 아내는 노동 르포 작가 이선옥씨다). 민주노총이 초심을 잃으니까 이 전 위원장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게 아닐까요.”
<길은 복잡하지 않다>에 어떤 내용이···
이 책은 자서전이자 교본이다.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984년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본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울산 동구청장을 지낼 때까지 그의 인생역정을 기록한 한편, 노동조합이 사측과 어떻게 협상하고 싸워야 하는지도 설명해두었다. 노동운동사의 비화를 엿보는 것만큼이나 이 ‘팁’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에는 특히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는지 현장에서 느낀 바를 상세히 기술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어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도 해내지 못한 노동자 대투쟁의 의미를 명쾌하게 정리했다”라고 평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언급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선생님의 느낌이었다’라고 평했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1989년 투쟁 때 ‘악법은 투쟁으로 깨야 한다’라는 명연설로 노동자들을 설레게 했지만 이후 태도가 달라진 것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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