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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펌]관계, 우울증, 반추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한 경험, 우울 증가시켜
 
시달렸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달린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과연 마련되어 있는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하겠습니다. 시달리면서도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우울의 고통을 거쳐야만 했을 것입니다. 놀렌-혹세마는 여성들이 스트레스 환경에 더하여 고통을 배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적기 때문에 우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여성이 자기 삶을 자기 영위대로 통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만 삭히거나, 반복해서 생각만 하게 되고 행동을 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추한다’고 말합니다. 곱씹고 또 곱씹고, 내가 무얼 잘못했나, 상황은 이래야 하지 않았나 생각하며, 때로는 울분을 삭히는 것을 반추라 하겠습니다.
 
특히, 사회구조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여성은 스스로 상황을 바꾸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주로 반추하기 쉽습니다. 반추는 우울감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구체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촉구하는 생각을 막기 때문에 우울을 지속시키기도 합니다.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당한 여성은 반추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반추는 여성을 “수동성과 절망에 사로잡히게 한다”고 놀렌-혹세마는 주장합니다.
 
한편, 이성애관계 혹은 혼인관계, 가족관계 안에서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험도 심리학 문헌에서 우울 유발 요인으로 다루어집니다. 어떤 여성들은 어디로 이사한다거나, 오래 써야 하는 값비싼 살림살이를 구입한다거나, 자녀 양육을 고민하는 등,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회를 제한당하기도 합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박탈되고, 자기 마음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느낌은 우울을 증가시킵니다.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우울해집니다.
 
중장년층 여성에게는 이것이 상실감으로 이어지는 듯 보입니다. 갖은 고생을 버티고 가족을 보살피고 나니, 세월은 흘렀고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 여성은 일생에서 겪어야 했던 다양한 ‘잃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잃은 여성이 많습니다. 더하여 아이를 잃은 여성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여성도 있고, 배우지 못한 채 주기만 하여 한이 된 여성도 있습니다.
 
무릎이 쑤시고 자궁 건강이 좋지 못한데 딱히 치료법이 없어 쇠약해짐을 떠안고 지켜봐야 하는 여성도 있습니다. 친정 부모도 돌아가시고, 자녀도 출가시키고, 남편이 병들 때, 기운을 잃고 기쁨과 희망마저 잊어버리는 아주 쓸쓸하고 텅 빈 우울을 견디는 여성도 있습니다.
 
다른 삶을 살던 여성들은 또 다른 ‘잃음’을 겪어야 했겠지요. 시라노스키라는 학자는 여성들에게 대인관계는 참 중요하며, 여성은 관계를 보살피고자 하는 책임감이 크고 관계에 헌신하기 때문에, 관계를 잃거나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경우 우울감을 겪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관계는 여성을 우울로부터 보호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므로, 어떤 학자들은 여성이 관계 안에서 우울을 보다 잘 이겨낼 수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남성의 우울증
 
물론 남성들도 시달리지요. 어떤 우울한 남성들은 내면으로는 깊이 암울한 감정이 존재하더라도, 밖으로 분출하는 방식으로 고통에 대처하기 때문에 기존의 우울증처럼 보이지 않는 우울을 앓습니다. 게다가 남성은 우울감 때문에 치료받으러 올 가능성도 적고, 우울하다고 말하지 않기도 합니다. 대체로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남성들의 우울을 보살피기 위해 남성우울증 개념을 새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남성들은 같은 우울을 겪으면서도, 술이나 약물, 성적 행동 등 자극적인 활동에 몰두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으로부터 피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예전과 달리 의사 결정능력이 떨어지고, 유난히 미래를 염려하고 두려워하거나, 친구나 가족을 피하고 혼자 있으면서 자율성에 몰두하게 되기도 합니다. 실패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자책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탓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내면의 나약한 자기 모습을 외면하기 위해 겉으로 보다 거칠고 우월한 듯 행동해 보입니다. 대체로 사회의 전형적인 남성상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남성들이 이렇듯 전형적인 우울과는 다른 양상으로 우울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남성상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우울을 버티는 것이지요. 남성에게 독립심, 냉철함, 경쟁, 책임감이 중요하고, 약한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남성들은 나약한 자기 모습 앞에서 반대로 지나치게 강한 면모를 표출하고자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동형성’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내면의 고통을 부인하고, 내면의 우울을 가리게 되면서 고통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을 뵈면 고뇌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날카롭게 화를 내는 모습에서, 내면의 극한 우울과 ‘분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삶을 잘 통제하고 튼튼하게 꾸려왔건만 약해지거나 무력해서는 안 된다는 어떤 강한 당위가 얼마나 이분들에게 막중한 압력인지 전해지곤 합니다.
 
어떤 중년여성은 그릇이 깨질 듯이 큰소리로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면서 기분을 풀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여성은 남편을 늘 곁에 두어야만 마음이 놓이기 때문에 남편의 헌신과 구속을 요구하게 된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떤 중년남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버럭 분풀이를 하고 나서는 더 큰 죄책감에 괴롭다고 합니다.
 
우울해지는 까닭은 사람마다 각기 다름이 당연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나누고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곁에 있어주어야 할까요. 진심을 나누면 고통은 덜하련만, 그것이 참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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