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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체성

- 번호이동과 성전환

 

입법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방식은 결국 더 많은 규제조건들을 만들거나 명문화한다는 점, 기존의 법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는 점 등의 한계가 있다. 모든 입법운동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호적상의 성별변경 등과 관련한 특별법은 호적정정은 필요하지만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에게 법적 요건에 부합하도록 요구하거나, 이들을 원천 배제한다. 그리하여 "진성 트랜스젠더"이기 위한 "조건", "자격심사기준"을 더 많이 그리고 더 까다롭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법안을 제정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호적법과 주민등록법 등 관련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근본'적인/'효과'적인 "해결"일 수 있다. 입법운동은 사실상 기존의 법을 문제시하지 않으며 기존의 법/담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식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별로 없으며 (있다고 해도 결국 기존의 법/담론의 체계 내에서 이루어지고) 호적정정이 쉬워졌다고 해서 다른 불편들까지 해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성전환자가 자기 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

 

흔히 '섹스-젠더정체성-섹슈얼리티-성적 지향성-성적 행동들-성적 권력관계에서의 지위'는 함께 묶여서 남성적인 것들과 여성적인 것들로 일컬어지며, 이 모두가 '남성적 또는 여성적'이라는 수식어 아래에 적합하게 결합하고 있어야 정상이라고 간주된다. 반대로 이 중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이라고 비난받는다. 사람들은 그 결합 속에서 순수한 젠더의 개념을 찾고 그것을 불변의 사실로 인식하고 살아간다. 스톤이 제시하고 있는 '장르로서의 젠더' 개념은 고정된 일련의 연계들에 기반하고 있는 '남자 아니면 여자' 식의 고정관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며 사고방식의 전환을 제시하는 대안이다. 따라서 장르로서의 젠더 개념은 각 요소들 간의 관계를 유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적 또는 여성적'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왜 꼭 고통스럽고 힘들어야만 하는가? 즐거우면 나를 주장하고 요구할 수 없는가? 지금도 즐겁지만 더 즐겁기 위해 나를 주장하고 요구하면 또 안 되는가? 고통과 힘든 생존만 전시할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만 말할 것을 요구하는 그 지점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고민 중이다. 동시에,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건 아니란 점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고통을 말하는 것이 반드시 "관음증적 페티시"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며, 이런 발화행위가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을 주장하는 방식이기도 할 때, 고통을 통해서만 주장할 수 있게 하는 구조에 문제제기하는 동시에, 이런 고통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동시에 고민하고 있다.

 

- 성별전환의 법담론 비판

 

즉, 현행 법제상으로는 성전환을 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하기가 어렵다. 혼인해소의 사유가 본인에게 있는 만큼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법개정 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

 

- 대담

 

한채윤 ......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의 이미지나 느낌, 성별과 관련된 인식과 주변과의 관계, 규범과의 부딪힘들을 반추해보고 낯설게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 지점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채널'로 젠더 규범과 제도를 보자는, 이 책의 의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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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p

11군데 전문의를 찾아다니면서 진단서를 받았고, 나를 남자로 봐 왔고 남자로 인정한다는 진술서를 학창시절 선생님까지 찾아다니면서 33명의 지인들에게서 받았어요. 그리고 인우보증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파트너의 진술이에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나를 남자로 인정한다는 얘기들, 성관계 얘기들, 사실혼 관계에 있다는 얘기들 등을 적어 주었죠. 그렇게 라면 한 박스 정도 되는 서류를 준비해서 법원에 제출했어요.

재판이 6개월 정도 걸렸는데, 중간 중간 계속 증거자료를 요구하더라고요. 가장 뜬금없었던 것은 여자친구와의 성관계를 여자친구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를 내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호적정정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든요.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써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성관계에 대해서 진술해 줄 여자친구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그래서 영화를 한 편 찍었죠. 제가 그 여자 친구가 되어서 진술서를 작성해서 냈어요. 제가 써 놓고도 한 번도 다시 읽지 않았어요. 너무 민망해서. 참 민망하더라고요. 하여튼 그런 과정을 통해 성별을 변경한 거죠. 제가 성별변경을 준비할 때, 다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계란으로 바위가 깨진 셈이죠. (- 누군가의 삶은 그 자체가 투쟁이기도 하다.)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숨기는 것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이는 내가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판단에 따른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평생 친구로 여기지만 커밍아웃으로 헤어질 것을 염려하여(실제 이런 경험들이 있다) 커밍아웃을 하지 ㅇ낳을 수도 있고,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밝히는 것의 여부가 관계를 지속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를 알아야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것이 한 번에 끝나는 작업은 아니다. "저 트랜스 젠더에요"라고 얘기할 때, 상대방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도 있고, 이 말에 화가 나거나 당황할 수도 있고, 그러려니 하며 별다른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화를 내거나 더 이상 소통하길 거부하는 경우라고 해서, 이를 혐오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자기 자신에게 커밍아웃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상대방 역시 이런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 그렇기에 커밍아웃은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험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 그러니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일회성 통보가 아니라 '난 당신과 나의 어떤 정체성과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당신이 나의 어떤 정체성을 고민하며 나와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자, 나의 어떤 정체성과 관련해서 소통하겠다, 혹은 하고 싶다는 신호이다. ... 그러니 커밍아웃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가 이전까지 맺어 온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전까지 맺어온 관계부터 앞으로 맺어 갈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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