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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7
    사회실천연구소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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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1/02
    [오마이펌]"마사지걸 발언, 사과부터 하라면 정치적"
    내맴
  3. 2008/01/02
    [일다펌]이혼기념 선물을 받다
    내맴

사회실천연구소 12월호

더 나은 세상 노동자-공산주의 당 강령(이란노동자공산당)

 

꽤 인상적임.

 

1. 이슬람교의 일부다처제, 부인임대 금지

 

2. (이란은 이슬람 사회) 공공 장소, 관청, 집회, 회합, 고공 수송기관에서 모든 형태의 남성과 여성의 격리 금지. 모든 수준에서 혼성 교육.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관련 속에서 정의하는 미스, 미시즈, 시스터, 또는 다른 어떤 호칭을 국가든 민간 당국과 회사에 의해 공식 문서나 담론에서 사용 금지. & 구직광고에서 젠더언급 금지.

 

3. 동거. 법적으로 등록만 해도 인정됨. 현실적 보호는 가족법률로 보호.

 

4. 자식의 성은 부모의 동의로 결정하고, 동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여권이나 자동차 면허증 같은 신분증과 다른 공식 신분 문서에서 부모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사라져야 한다.)

 

5. 성관계. 승낙연령.

 

6. 낙태. 낙태 행위에 반대한다. 낙태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임신 12주까지 합법화한다. 낙태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으나 국가와 전문가들의 만류논의와 권고가 국가에서 행해야 할 의무이다.

 

7. 성매매. 자영업으로서 개인의 성 판매 합법화. 자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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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펌]"마사지걸 발언, 사과부터 하라면 정치적"

"마사지걸 발언, 사과부터 하라면 정치적"
이명박, 여성단체에 불만 토로... 성매매업소 질문에 "2차가 뭔지도 모른다"
이민정 (wieimmer98)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30일 YWCA에서 열린 KBS 여성정책 토론회에 참석하여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자신의 '마사지걸' 발언과 관련해 "여성계가 사과를 먼저 받을 게 아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후보는 30일 오전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 여성정책 토론회에서 "무조건 (발언에 대해) 사과부터 하라고 하면 (사과 요구를)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과할 일이 아니라, 내용 잘못 들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9월 <오마이뉴스>의 첫 보도로 문제가 된 이 후보의 '마사지걸' 발언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이 후보로서는 '마사지걸' 발언이 알려진 이후, 여성계 인사들과 처음 접하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이 후보의 '마사지걸' 발언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의혹이 일었다"며 "여성계가 사과를 요청한 일도 있는데, 앞으로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 후보는 이에 대해 "사과할 일이 아니라 (여성계가) 내용을 잘못 들었다"며 발언 내용의 전달에 오해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당시 10명의 언론인이 있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직접 들은 것이 아니고 전해 듣고서 (기사를) 썼다. 나머지 9명은 (당시 발언에 대해) '그런 의도가 전혀 아니다'고 하는데, 기사가 났다. (다른 9명의 언론인은) '앞으로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여성계도 사과를 먼저 받을 게 아니라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내용을 본 뒤에 사과를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결정을 하셔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사과부터 하라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후보는 또한 "그 문제는 제 의견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40년 전 있었던 한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이라고 말해 보도 직후 당시의 해명을 되풀이했다. 이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겨레> 편집국장 "제가 걱정할 정도로 민망스런 발언이었음은 분명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30일 YWCA에서 열린 KBS 여성정책 토론회에 참석하여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김종구 <한겨레> 편집국장은 지난 27일자 칼럼에서 " ‘이 자리에 여성인 나경원 대변인도 있는데 저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나’ 하고 제가 걱정을 할 정도로 민망스런 발언이었음은 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국장은 '말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저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언어의 정직성이라고 생각한다"고 전제하고 "어쨌든 제가 정말 놀라고 실망한 것은 이 후보 진영의 사후 대응이었다"면서 이렇게 썼다.

 

"'발마사지 얘기일 뿐'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 '45년 전 선배의 이야기를 전한 것' '변명할 필요도 해명할 필요도 없는 사안' …. 끊임없이 말이 바뀌더군요. 현장 증인으로서 그런 치졸한 변명을 듣는 심정은 착잡할 뿐입니다."


한편 질문을 꺼냈던 남윤 대표는 이 후보의 답변에 곧바로 "(토론회를 지켜보는) 시청자가 오해하실지 모른다"고 전제하고 "당시 우리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며 처음부터 공개 사과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인 지난 8월 28일 중앙 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인생의 지혜'를 논하면서 서비스업에 종하사는 여성에 대해 부적절한 비유를 한 것으로 알려져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한 참석자에 따르면, 이 후보는 현대건설에 다닐 때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외국 현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선배는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은 서비스도 좋고…"라고 발언했다.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개 여성단체는 "이 후보의 발언은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고, 여성 유권자들에게 큰 상처를 준 행동"이라고 반발하면서 ▲발언의 진위 여부 ▲성매매 문화에 대한 관점 등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이 후보쪽에 보냈다.

 

한나라당은 공개 답변서를 통해 "여성을 비하한 적은 없다"며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서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을 뿐, 일부 매체에서 암시하는 특정 직종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명박 "'2차'가 뭔지도 모른다"

 

이 후보는 성매매 업소를 자신의 건물에 임대시킨 것에 대해 "(성매매 성업 사실을) 몰랐다"며 "구청에 물어봤지만 '단속 사례가 없다'고 했다,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비용을 부담하고 지금은 (업소를) 폐쇄시켰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이처럼 여유를 보여 "불법 성매매를 방조한 것 아니냐"고 되묻자, 이 후보는 "'2차'가 뭔지도 모른다"면서 "성매매업을 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한) 확실한 정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어 "신문에 난 기사를 갖고 구체적 답변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한겨레> 신문은 지난 20일 이명박 후보 소유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영일빌딩에서 여성 종업원을 고용한 유흥주점이 성업중이고 이 업소에서는 여성 종업원의 성매매까지 이뤄지고 있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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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펌]이혼기념 선물을 받다

이혼기념 선물을 받다
     
‘가문의 굴레’에서 벗어나

박상은 기자
2007-12-06 22:09:13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걸,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이상은의 노래 “삶은 여행” 중에서)

나를 열광케 하는 인생의 역할모델이자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네 명이다. 오프라 윈프리, 이금희 아나운서, 한비야, 강금실. 우연찮게도 모두 여자이며, 모두 싱글이다. 어쩌면 내 결혼생활의 종말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에너지로 충만하다!

현명하게 선택한 줄 알았던 결혼

아직도 기억한다. 언니와 차를 마시다가 아무 이유 없이 불쑥 내뱉었던 말.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기분이야.”

남자친구를 사귈 때 항상 기대고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맞춰주는 수동형이 아닌,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능동형 관계를 즐겼다. 결혼도 현명하게 선택하리라 결심하고, 몇 가지 발칙한 상상들을 결혼조건으로 내세웠다.

첫째,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을 것. 둘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줄 것. 셋째, 아이를 갖지 않을 것. 넷째, 가사분담을 철저히 할 것. 다섯째,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을 것.

친구들은 그런 남자 없다고 못박았지만, 남편은 어찌 그리 자신의 생각과 똑같냐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외쳤다. (나중엔 나와 결혼을 하려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말이라 고백했지만.)

그렇게 결혼 준비가 시작되고 양가에 인사를 드리며 다닐 즈음, 시어머니의 호출전화에 나가보니 성형외과에 예약을 해놓으셨단다. 결혼식 전에 얼굴을 미리 고쳐 놓아야 한다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상담만 먼저 받아보겠다며 의사와 마주앉았다. 그리고 결정을 종용하시는 전화에,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핑계를 둘러버렸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땐 그것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훗날 그 일이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조차 내 얼굴에 관한 농담 섞인 인격적 모욕을 당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건 알지 못한 채.

한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게 됐을 때 멈춰서다

이혼이란 단어를 처음 떠올리게 된 것은 어느 명절날 오후. 시댁에서 음식을 하다가 자고 가라는 시아버님 말씀에,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냈다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들으며 쫓겨나, 어느 건물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꺽꺽 데며 울던 그날부터였다.

패닉 상태에 빠져 지내던 나를 달래지도, 걱정하지도 않던 남편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들은 이미 끈끈한 혈연관계이지 않던가.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보고 나서 돌아서자!’ 하고 결심했다. 혼수가 부족했다며 우리 부모님과 집안을 들먹일 때도, 장볼 때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훔쳐 나오는 도덕적 결함들을 목격할 때도, 게임중독에 빠진 남편을 볼 때도 이해하려 노력했다. 물론 남편과 싸우기도 많이 했고, 대화가 단절된 채로 지내기도 했었지만, 감당할 수 없을 힘든 상처와 시련 속에서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하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걷듯 몇 년이 흐르자, 한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었다. 나는 멈춰 섰다. 아이가 없으면 헤어지기 쉽다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 섞인 소리를 늘 들어왔지만,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는 이들에게 이혼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너무나 힘겨웠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에서도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리는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렸던 내가 그들에게 정말 간절히 듣고 싶었던 건, 어쩌면 말이 아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하는 눈빛이나 토닥여주는 손길 같은 것들이었다.

엄마나 언니가 말없이 눈물만 흘렸던 것처럼 함께 울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좀더 참고 살아봐”, “애를 낳아보지 그래?” 하는 식의 반응은 또 다른 상처가 됐고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화사하게 맞이한 독립

나만의 공간을 갖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결혼 전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생활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좋은 집 구하는 방법, 이삿짐 업체 고르는 나름의 노하우와 전문가 수준 이상의 도배, 페인트칠은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생활지침서’ 같은 것을 만들어도 될 정도다.

“한국 여자들이 제사니 명절이니 해서 시댁에 쏟아 부어야 하는 가사노동과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모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썼다면, 우리 나라는 벌써 선진국이 되었을지 몰라” 하고 농담하며 낄낄대던,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단짝인 친구에게 이혼기념 선물을 받았다.

분홍색 캐노피 침대. 어릴 때부터 늘 꿈꾸어 왔던, 하지만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공주풍 침대. 그에 걸맞게 집안을 온통 꽃무늬벽지와 레이스로 도배장식을 하고, 예쁜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자가용으로 구입하며 나의 새로운 독립을 화사하게 맞이했다. 때마침 추워진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기는 싫었다.

아직까지는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물지 않은 상처를 스치는 것 같이 쓰리고 아프다. ‘결혼’이라는 관습 속에서 퇴색되는 사랑을 보았고,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으며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너무너무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고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다. 인생 계획을 다시 새롭게 세우며 홀로서기로 한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려운 마음도 앞선다.

하지만 감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시댁식구 모두를 껴안고 가야 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결혼이라는 것, 씨족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를 교환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결혼제도가 현대 사회에서도 개인의 행복이 아닌 가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깨달았으니까. 그것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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