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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14일차

경찰은 버스와 전경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출입을 제한하는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가는 사람은 갈 수 있게, 들어가는 사람은 가지 못하게. 수를 줄인 후 강제로 끄집어 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12일 축구경기가 있을 때는 9시 30분까지 막았다가 들여보내 준다는 말을 번복했다. 결국 힘으로 뚫고 들어갔다.

지금도 모든 통로는 막혀 있는 상태이며, 가끔 위협하려는 단전까지 하고 있다. 환풍기가 작동이 안되어서 공기를 빼지 못해 더워지는 상황도 생긴다. 그저께는 지하 주차장을 통해 침입 시도까지 했다가 좁은 통로와 인원수 한계로 도로 물러갔다. 그때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조합원들은 가슴을 졸인다. 어떤 조합원 분은 남편분에게 울면서 이렇게 전화했다고 한다. "나 어떻게 해~무서워....."
우스개처럼 들렸지만, 무조건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측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그럴수밖에 없다. 박성수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실무지시를 내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뭐 대표이사한테 자기가 시킨 일 안했다고 계단 닦으라고 했던 사람이니만치 그 사람이 신이라면 신인 상황. 외국에서 어떻게 하라는 연락도 없는가 보다. 낄. 이런 촌극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래도 아직 새벽의 공기는 쌀쌀하다. 이제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질 않으면 잠이 안올 지경이 될 정도로 적응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 1930년대 겨울에 GM노동자들은 공장을 멈추고 단수단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30여일을 버텨 전미자동차노조를 세웠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보다. 그나마 다행인건 연대오는 동지들이 힘이 많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치는 구호들이 생경한 건 좀 그렇다. 한미FTA는 반대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나도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들 앞에서 그래봤자 아주머님들은 FTA가 뭔지조차 궁금해한 적도 없었으니 뚱한 분위기도 조성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하룻밤을 새주면서 경찰들이 오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네 하는 사측의 거짓말, 혹은 언론의 거짓말들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 자기가 속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새 속는다.

하지만 더 정말로 더 큰 문제는 무관심일 것이다. 경찰이 막는 밖에서 축구경기를 보고 난 인파들은 우리의 문화제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관심은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 무관심 속에서 KTX동지들, 르네상스 동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사측은 완전히 가족들이 걱정할 내용들로만 구성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전자우편이라서 돈이 보통우편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럴 돈들은 있고, 용역들 고용할 돈은 있고, 우리에게 줄 돈은 없다는 논리는 둘째치고라도, 수많은 위법사실들을 저지르고도 거짓말만 늘어놓는 행태. 흠.

곧 시민들에 대한 서명운동들도 들어갈 것이다. 밖에서는 상인연합회가 와서 조합원들을 물러가라고 소리지르고 있다. 가슴아픈 일이다. 분명 이해해주는 업주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업주들도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저렇게 행동으로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두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이겠지. 정말 생존권의 문제로 나온 것이든가, 사측의 충동질로 나온 것이든가. (사측의 요구에 따라 사진까지 찍어주었던 업주도 있다고 한 사례가 있으니...)

믿음과 믿지 못함을 자아내는 것은 우리의 신뢰와 행동이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
그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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