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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홈에버 투쟁 다시시작 2일차.

7월 21일, 홈에버 투쟁 다시시작 2일차.


오늘은 일산뉴코아가 그 타겟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버렸다. 피씨방에서 인터넷의 사람들과 이야기가 길어져 집에 들어가 보니 새벽 4시였다. 쏟아내는 작업은 확실히 한 셈이었다. 하늘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질 듯한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를 걱정했던 몇몇 지인들이 남겨놓은 부재중 기록을 보고는 전화를 하며 안심시켰다.


조금 늦게 시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내 소속 분회의 자리가 잡혀 있었다. 뉴코아는 정문 쪽에서 업주와 협력업체 사람들로 보이는 - 하지만 실제로는 이랜드측에서 온 사람들이 대다수인 - 그런 사람들로 정문이 막혀 있었고, 그 앞을 뉴코아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옆의 다른 문을 막고 있었고, 그 뒤의 주차장 입구까지도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온 순간부터 그 정문은 서너 번을 계속 충돌했다.


유통업에서 협력업체라는 말은 물건을 대주는 외에 거의 회사 측의 직원들에 의해 더 낮은 사람 대접을 받기도 하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그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도 이 상황에서 피해자임은 분명했다. 우리 노조와 사측간의 갈등에서 그들이 현재도 보는 피해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들은 그닥 편히 봐줄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이 준비한 현수막과 들고 온 피켓은 거기 모인 그들이 정말 협력업체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거의 모든 피켓들은 민주노총을 공격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현실인식이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러한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생존권과 하등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만약 정말 생존권을 걱정했다면, 그들은 이랜드일반노조와 이랜드 사측 모두 싸잡아서 비난했어야 할 일이다. 노조와 사측 양비론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건 협력업체와 업주 분들이라는 건 재고의 여지도 없다.


하지만 업주 분들의 경우는 상암점 앞에서 시위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이 간담회를 가지자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의 생존권이 정말 경각에 달려있다면 경찰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을 헤치고서라도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떠한 해결책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회사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조차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처지조차.

그 시위 자체는 거기에 참여하고 있었던 업주분들의 상황이 어쨌든 간에, 그들의 의견이 단지 조금 있는 사람이 더 없는 사람에 대한 일방적인 의견제기라는 모양새로 끝나버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 모양새에서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해할 수 있다. 협력업체와 업주의 사측에 대한 입장은. 인터넷에서 만났던 한 업주분은 영업과 판촉에서 사측이 훨씬 많은 책임을 지고 있음을 자기도 모르는 새 이야기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부분에서 사측에 이야기해보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분의 뒷이야기는 그 피켓에 써진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성과 같은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나는 또 그분에게 물었었다. 왜 거대언론들은 민주노총이 이야기하면 그렇게들 실어주면서 노조가 하는 이야기들은 자주 실어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이미 언론의 의도야 뻔하잖은가. 전형적인 린치 가하기.

그럼 간단히 이야기해보자.

시민단체 56개가 내건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업주분들과 협력업체는 어떻게 설득을?


하지만 이런저런 반론보다도, 더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은.

진짜 없는 사람들 데려다가 우리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짓거리를 하는 괘씸한 작태였다.


결국, 이 집회에 참가한 이래 세 번째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토로했다. 업주분들, 협력업체 분들은 다 같이 따져보자고. 당신들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이랜드에, 같은 입장으로써 따져보자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비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비웃음 정도는 살 거라 예상했다.


이러한 순진성은, 여러분들을 정말 설득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시민들을 위한 정보전달의 의미와 함께 우리의 진정성에 대한 제스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듣는다면, 조소를 띄울만한 내용이니까. 


사측에서는 직장폐쇄를 할 생각이 없던 모양인지 고객들에게 1시경에 문을 열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완전 고객들을 계속 오게 해서 우리에게 싸움이 나게 하고 민폐를 끼치게 하겠다는 속셈이 보였다. 멋진 이랜드. 이게 느그들이 주구리줄창 떠들던 고객서비스였구나.


계속 진행되면서 몇 번의 몸싸움으로 계속 상황이 크게 번져나가자 경찰이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전의경들로 삼팔선을 만들어놓았다. 꽤나 센스 있는 개입이었다. 봉쇄하면서 지들끼리 정보교환도 안되고 인수인계도 안되고 봉쇄만 급급하다가 끝내는 마무리 참 더럽게 지은 상암점의 대응, 그걸 주도했던 마포경찰서와 서울시경에 비하면 너무나도 센스있는.


경찰의 개입으로 진정을 회복한 뉴코아동지들은 경찰의 라인을 따라 앉았다. 홈에버와 뉴코아의 입장은 나이대나 계층 혹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다른 부분들이 있다. 처음만 해도 일산뉴코아 조합원들의 입장은 그렇게 능동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완전히 몸싸움까지 개입하면서 독이 오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기는 홈에버나 뉴코아나 똑같이 공권력 개입으로 당한 상태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거기에 뉴코아 동지들은 이제까지 당해온 것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차고 넘쳤지 모자라지는 않다.  


다만, 지금 상황이 여론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건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측이 그런 모습들을 유도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우리 조합원 한 분조차도 화가 나서 과격한 모습을 보여줄 정도였으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유치한 행동을 한 방어자들도 있었다. 들어올거면 들어와 보라는 약 올리는 짓 따위는 그 쪽에서도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다.


이후, 계속 주차장입구를 막는 인원들을 교대해나가면서, 계속적으로 어떤 불미스런 상황이 터지지는 않는가 살펴보았다. 자신이 물건을 사지 못한다고 투덜대며 가는 아줌마 손님들은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 AS를 맡겨놓은 손님들, 물건을 찾으러 온 손님들, 스포츠센터에 가셔야 했던 손님들, 또 게다가 하필 그날 거기서 열리는 애기 돐잔치가 두 개나 있는 탓에 수없이 많은 분들에게 민폐를 끼쳐야 했다.


그래도 그 중에는 좋은 분들도 있었다. 물건을 사러 왔다가 이런 상황을 눈앞에서 보게 되자 고생하십니다 한 마디 해주는 분도 있었고, 뉴코아도 이랜드 거였냐고 묻더니 건물을 가리키곤 이런 싸가지 없는 색휘들 하며 사측을 비난하고 가주시는 분도 있었다.


한 아줌마 손님은 압권이었다. 막무가내로 우리가 앉아서 막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자길 죽여보라면서 악담을 하고 들어간 손님. 오늘의 하이라이트.

오만가지 욕지기를 던져주고 싶었음에도, 그걸 먼저 실천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잊어버리시라는 말을 하느라고 바빴다. 뭐, 이미 이런 이기적인 꼬라지들은 숱하게 당했으니까. 유통서비스 일을 하다보면 이런 일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겪게 된다.


담배를 피우려고 옆의 쓰레기통으로 걸어가던 중 생각외의 얼굴을 보곤 놀라서 다가갔다.

“너, 오랜만이다?”

“어, 여기서 뭐하냐?”

“보시다시피.”

대학 동기 녀석을 그 앞에서 본 것이었다. 그 녀석은 그 당시에도 꽤나 강한 인생을 겪었고 대학 초년 당시에도 선봉대에 설만큼 학생운동에도 매진했던 녀석이었다. 반면 나같은 경우는 그런 모습에 생경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때였고.

“아주머니들이 많다보니, 내가 많이 뛰고 있는 편이야.”

“장기화되면 힘들어 질 텐데.”

“그것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괜찮아.”

그렇게 그 녀석을 보내고, 그녀석의 인생과 내 인생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묘한 인생의 아이러니.


이후 큰 탈 없이 매장 막기는 마무리되었다. 마무리 집회를 하고 한 전경이 고생했다고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나 또한 그들에게 고생했다고 인사를 한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한 형님이 나무라셨다. 공권력 투입이 이뤄진 직후니 그런 말도 이해는 갔다. 그러나, 상암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 나온 전의경 애들은 스스로 그런 의지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간에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존재들일 뿐, 잘못이 없지 않은가. 그저 상황이 잘 안 돌아갈 때는 서로가 부딪히게 되어서 부딪힌다고 해도. 그 전까지는 그냥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애들일 뿐이다.

진짜 잘못은 권세에 붙어 추접하게 살고자 하는 이 애들의 윗대가리에 있지.


집에 오니 연행된 사람들이 풀려났다는 문자가 와있었다.

다만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도부에 대한 소식은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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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홈에버 투쟁, 다시 시작이다

결국, 우리 박지성이에게 이런 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경찰님들은 들어오시고야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밖으로 나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전날 19일 11시께 나갔다. 밖에서 분회를 잘 챙기고 조직을 하라는 분회장의 말도 있었거니와, 위원장도 나가라는 말을 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바깥의 아주머님들도 이런저런 정리가 안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결국 나갔다.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태국에 관광을 가셨다. 전부터 별러왔던 건데 내가 나가서 이런 일 하고 있다고 안 갈 순 없지. 아버지 혼자서 마루를 지키고 계셨다.
"공권력 투입한다던데."
"예, 할 것 같아요."
"그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 앞에서 버릇없이 욕지기를 두번이나 쏟아내 버렸다. 조심해야지.

다음날 아침에 그 뉴스 속보의 글자들을 보고 나서도 한참을 화가 나고 분하고 그런 마음에 떨어야 했다. 이것은 결국 자신들의 정당성을 내팽개치고라도 돈을 쫒아가겠다고 확고하게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냐, 그래. 이것이 내가 믿어왔던 대한민국이었구나. 이것이 그래도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이 살아있고 서로 웃어가면서 힘을 낼 수 있는 대한민국이었던 거구나.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원래 이런 세상이었구나.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것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일로 오늘 가양점 선전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홈에버 웃대가리들은 어찌나 친절하신지 우리가 종이만 전달하러 가도 고객분들 심려 끼칠까봐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고 고객들 나가지도 못하게 셔터문 내리는 짓을 서슴지 않는데, 뭐 아니나 다를까. 울산점에서도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종일 인상만 쓰고 다닌 날 같았다.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들어도, 너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세상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너무 화가 났다.

화를 추스를 때쯤, 다른 시작을 생각해야 했다. 그러려면 다 쏟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다음 아고라에서 말싸움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독하게 말을 하던 한 님은 결국 내 이야기를 이해해 주셨다. 우리가 이용당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셨다. 우리는 이용당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아직도 교섭의 주체는 우리 이랜드일반노조이며, 아직도 지도부는 살아남아있다. 지도부를 다 잡아가봐라. 조합원들은 충분히 아직도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할 수 있다.

다시 오마이뉴스에 와서 동영상을 보았다.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나와 함께 웃고 있던 사람들이 울고 었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억울함과 분함을 모르는 체 하면서, 행여 자기가 다칠까봐 철갑을 두른 인간들이 하나씩,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동영상을 마저 볼 수가 없었다.

다시, 시작이다. 이미 날짜는 바뀌었다. 아직도 선전전이 남아있고 사측이 직장폐쇄하게 만들 힘은 남아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다한다. 아직 선전전을 꾸릴 동지들도 남아있고, 싸움도 멈추지 않았다. 교섭의 주체를 없애면, 이야기가 안될 줄 알았던가.

이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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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20일차

이렇게까지 가겠나 싶었는데 어느새 20일을 넘겼다. 경찰의 봉쇄 때문에 집에 들러본지도 1주일이 넘어간다. 물론 나갈 수야 있다. 나가서 다른 분들과 합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식들은 더욱 흉흉하게 들려오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교섭을 마치고 와서 위원장이 보고한 내용은 아니나다를까였다. 사측은 이야기할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최종확인했다. 게다가 전국빈민연합에서 제보한 바로는 이랜드와 계약한 용역깡패회사가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구사대를 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확인도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사측에 확인해보라고 요구하자, 사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12시까지 협상안되면 결렬로 하겠다고 또 먼저 기자들에게 다 떠벌려놓고, 왜 그랬냐 물었더니 홍보이사는 우리랑 관계없다. 왜 걔가 하는 짓을 말하고 그러냐.

사측은 계속 농성점거 해제만을 고집하며 양보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야기는 전처럼 쳇바퀴를 맴돌았다. 6시간 여를 농성해제 농성해제. 그럼 농성해제하면 손배고소고발 취소해줄거냐 물어봤는데 그건 안돼. 도대체 뭘 양보하고 있나? 회사측은 어떤 생각으로 교섭장에 나와 있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전달받으면서 차라리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가야 할 길은 대강 정해진 것 같았다.

 

공권력이 으름장을 놨지만 아직 진입의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는듯 하다. 이 앞에 서 있는 의경들은 정말 얼굴에 어린티가 가시지 않은 청년들이다. 왜 이 애꿎은 애들 세금 낭비하면서 뙤약볕에, 비내리는데, 여기 세워놓는가. 명령받는 마포경찰서장이 직접 우리의 위법사항을 지적하고 나서서 전경옷 입고 지 혼자 막으란 말이다.

지침 역시 왔다갔다 하고 있다. 저항한다와 저항하지 않는다로. 개인적인 생각 같아서는 저항하면 안된다고 본다. 평화적 농성은 끝까지 평화적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농성장을 내어준다 하더라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유혈이나 폭력사태가 있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할 힘도 없는 분들이지만.

그러나. 용역깡패 새끼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이 자식들은 지들이 뭔데 경찰에 얘기하고 나가는 조합원 이름까지 물어보고 신분확인하고 가방까지도 뒤지려 하는 개같은 짓을 서슴지 않는다. 학생을 팬 것만도 모자라서 새벽에는 셔터문 차고 도망가기까지. 인간 이하의 짓들을 하고 있는 새끼들에게 인간 대접을 해주고 싶진 않다. 자고로 개가 자기를 인간인줄로 착각할 때는 그만큼의 대응 방법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노숙자들이 만약 여기에 가세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전에 동생과 전화를 걸었을 때 현실주의자인 동생은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인간들의 모든 논리를 들이댔다. 하지만 나는 그냥 단순히, 말했을 뿐이다.
"오빠는 잘못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몸도 안다치고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란 말밖에는 못하겠다."
그리고 이틀 후, 동생에게서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하루만에 939명이나 공권력투입 반대 서명을 해주셨다.
눈물이 핑 도는 걸 애써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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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19일차

오늘 새벽에 위원장이 돌아왔다. 자세한 요지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강 어떤 식으로 돌아갔는지 알만도 했다.
잠을 제대로 자기가 힘들어서 박스를 여러겹 깔고 박스테이프로 박스를 이어붙였다. 어제 동생이 와서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을 준 것이 다행이었다. 적어도 발은 씻고 잘 수 있었으니까.

다음날, 위원장은 우리에게 교섭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해주고 있을 때 급하게 일어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교섭은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얻었다. 웃기는 건 얻었다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건 당연히 해야 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첫 번째는 단체교섭을 지키려 해보겠다는 당연한 이야기, 두 번째는 부당해고로 판결난 14명 중 10명 복직시키겠다는 것.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사기질도 이런 사기질이 없다는 생각이다.

자, 생각을 해보자,
정말 이걸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부나 사측이나 가장 좋은 그림이 뭘까.

교섭을 했는데 교섭 중에 노조가 거부해서 결렬이 되고 그럼 노조가 이렇게 했다. 노조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 그러니까 공권력 투입을 한다, 라고 여론몰이를 해서 정당성 얻고 공권력 투입하고 이 농성장에서 노조원들 몰아내는 것.

까지가 딱 좋은 그림이다. 이 쪽에서 아무런 폭력행위도, 불법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진입해서 잡아간다면 그걸로 끝인 셈이니까. 그럼 그 이후에도 모든 부정적 이미지는 노조가 뒤집어 쓸 것이고, 노조를 영원히 몰아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누가 그 속셈을 모를까봐 교섭을 하는 24시간 동안, 그들은 그 속셈을 정말 뻔뻔스럽게도 아예 얼굴에 깔고 모든 것을 진행했다. 계속 급하다고 농성 풀라고 재촉을 해대고, 내놓은 의견들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까댈 수 있을 만큼 허접하기 짝이 없고.

그 중에서도 세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첫 번째, 모든 조건은 똑같았지만 위에서 말한 단체교섭을 지키는 내용 중에 3개월 이상 18개월 미만 된 직원에 대한 내용, 이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일할 만한 사정이 되지 않아서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라는 것. 그 기간의 이직률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비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그러나 이 인간들은 그걸 우리가 18개월 이상 정규직화를 주장한다고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두 번째, 사측은 노조측과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전에 기자회견에서 그 부당해고한 10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복직을 시켜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직도 500명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을뿐더러, 그 10명을 복직시켜줄 수 있는 이유가 구제신청을 한 사람에 한해서 해주겠다는 것. 전체 14명 중에 4명은 구제신청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손해배상이나 수많은 고소고발에 대한 조치는 풀어주겠다는 보장 따위는 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세 번째, 24시간동안 교섭하면서 피곤해진 노사양측이 7월 18일 오늘 7시로 교섭을 미뤘는데, 그걸 정하고 잠깐 정회를 하고 있는 그 틈에 정부 측이 나서서 이 협상은 결렬되었다고 말하고 오후 2시까지 농성장을 나오지 않으면 공권력 투입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할 교섭장 옆에서, 그것도 7시에 다시 교섭하자고 한 거 뻔히 들었으면서, 이딴 짓을 한다. 정부, 또라이도 이런 생또라이들이 없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기자가 물었다.
“부당해고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우를 하실 겁니까?”
라고 사측에 물었을 때,

“저희는 부당해고 한 적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작태. 그럼 지방노동청에서 부당해고 승인 받은 사람들은 유령이냐.

왜 이렇게 더 싸우라고 독려를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떠한 성실성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속보이는 짓과 언론플레이에만 매달리는 걸까. 지금까지 입은 손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돈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노조를 말려 죽이려고 하는 걸까.

달라진 것도 없고, 나아진 것은 아주 당연한 것들을 해보겠다는 말 뿐.

마음 속이 갑갑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도대체 이런 바보들을 상대로 언제까지 시간낭비를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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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17일차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왔다. 월요일의 세상은 잠잠해야 하건만, 우리는 새벽부터 그러지 못했다. 하기사, 주말인 어제도 그리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위원장님이 헛웃음을 짓는다. 사측과 정부가 지들끼리 멋대로 시간을 어제 저녁 7시로 정하고는 소식도 전해주지 않은 채 교섭을 하겠다는 걸 기자가 확인해서 전화를 준 것이다. 그 때 시각이 저녁 6시. 관악지청까지 오라는 말에 그렇게는 사정이 안된다고 해서 시간 조정을 하고 교섭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사측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교섭하자는 말을 했다. 전의 이랜드 사태 때에 비하면 괜찮은 반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힘빼기 전술일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투쟁의 스케줄은 계속 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권영길 의원이 도착해서 진입을 시도했을때, 경찰들이 막아섰다. 이 사태에 분개한 권영길 의원은 그 자리에서 노숙농성을 결의했다. 전에 이런 식으로 창원경찰서장이 쫒겨난 전례가 있는지라, 마포경찰서장도 몸이 달았던 모양이었다. 형사들 다 부르고 의전을 갖춘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실랑이 끝에 결국, 권영길 의원의 진입을 허가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지시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지 어쨌는지 입구 쪽에서 몸싸움의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권영길 의원과 함께 진입하는 사람들 속에서 조합원을 끌어내려 했던 모양이었다. 흥분한 남자 몇분들이 싸우려 하기 시작했고, 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뒤로 물러서라는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상황을 보면서 심하게 붙는 사람들을 일단 말렸다. 상황은 몇 명을 남긴 채 다들 들어오는 상황에서 마무리되었다.

 

권영길 의원이 참여한 간담회가 진행되었고, 취침시간이 이어졌다.

권영길 의원도 같이 1박을 하기로 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확히 새벽 4시 30분 경이었을 거다.

새벽에 용역깡패가 방화셔터 문을 쳐서 소음을 내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욕을 하면서 그 자리로 달려갔다. 쥐새끼처럼 매장의 큰 통로를 뛰어가는 덩치큰 그림자.  두어 놈쯤 되어 보이던 놈들은 끝내 도망쳤다. 권영길 의원도 윗몸을 일으켜 상황을 보려 했다.

 

주무시던 아주머님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를 비롯해 흥분한 몇몇 대원들은 그 그림자가 도망간 곳을 쫒아가 보았다. 그 놈이 도망간 길은 지하로 통해 있었고, 지하 1층 창고에서 검수과로 통하는 길은 1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경찰이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못들어가게 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경찰과 사측의 용역깡패 간 유착관계라. 한화회장의 사례가 생각이 났다.

 

하나의 문만 막으면 되는 상황이기에 그 문을 막자고 제안했으나 상암점의 보안팀과 협의한 사항이 있어서 이 문은 막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분을 뒤로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범하게 행동하자는 부위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다른 분들과 다시 취침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아주머님들은 역시 씩씩하셨다. 마구 잤다. 다큐를 찍는 분인 것 같은 무비카메라를 든 여성분이 계속 소리가 난다며 불안해서 자리를 옮기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 5시까지 상황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의 냉기와 맞부닥칠 생각을 하면서.

 

오늘 아침에는 권영길 의원의 기자회견이 있었다고 했지만 자고 있느라고 보지는 못했다.

 

박경현 목사님을 비롯한 각종 인권단체 소속의 목사님들이 오셔서 간단한 기도회와 경찰의 봉쇄에 대한 질타를 하시고 안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간담회를 하셨다.

밖에서는 입점업주들의 시위가 연이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용역깡패가 있는게 보이는 순간, 이젠 더 귀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저 시위대 중에는 진짜 답답해서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항의하려 했다면 들어오셔서 간담회라도 열자는 위원장의 그 말은

왜 무시하는 걸까.

 

지금은 교섭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보다 나아진 상황이고, 긴장을 풀 수는 없는 상황들이지만,

그래도 인간이란게 결국은 한 가닥 기대를 걸어보는 존재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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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15일차

한 번 나갔던 조합원들과 연대동지들은 어제 경찰과 충돌했다. 뉴스에서는 26명이 연행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뉴스 한 켠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점거인원이 적어진 상태에서 오늘내일 언제 쳐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모두들 그것을 감지하고 있던 때 밖에서는 충돌이 일어났고,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상황은 경찰이 사람들을 몰아냈다는 말을 들으면서, 조금의 자포자기로 바뀌었다. 할만큼 했다, 나가면 또 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대를 온 노동해방학생연대에서 얼굴이 좀 알려진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이 편의점 쪽에 있는데, 용역깡패새끼가 와서 그 학생을 패기 시작했다. 시빗거리는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고, 심하게 맞은 학생을 보호하려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경찰이 달려오더니 자기네들이 검거하겠다고 막아서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그 동안 용역깡패새끼들은 죄다 도망가 버렸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러고 있는 순간 매장에서 고성들이 터져나왔다. 그 용역인원 두명이 매장을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카트로 막아놓은 통로 너머에서 우리는 그 인간이하의 존재들이 일생동안 먹을 욕을 모두 퍼부어주었다. 몇 분은 정문의 경찰에게 따졌고, 그 경찰의 대답은 더 기가 막혔다.
"저희는 지금 용역들도 들어올 수 없게 막고 있습니다."
그럼,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에게 말까지 걸었던 그 용역은 도대체 유령이었을까.

다음날인 오늘,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뉴스에 연행소식이 들리니 이제사 걱정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출가한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제와 여동생, 어머니까지 오신 상태였다. 나오라고 했다. 나 한 사람이라도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동생은 내게 전에 물었던 명분을 다시 물었다. 내 명분은 인터넷에 모두 나와 있다고 했다. 내가 썼던 토론 글과 기사들, 그 수많은 연대와 지지들. 남아있는 조합원들.

나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현재 가능성 중에는 용역깡패새끼들이 우리를 잡아다 경찰에 인계해 주는 방식도 있다고 한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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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14일차

경찰은 버스와 전경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출입을 제한하는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가는 사람은 갈 수 있게, 들어가는 사람은 가지 못하게. 수를 줄인 후 강제로 끄집어 내겠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12일 축구경기가 있을 때는 9시 30분까지 막았다가 들여보내 준다는 말을 번복했다. 결국 힘으로 뚫고 들어갔다.

지금도 모든 통로는 막혀 있는 상태이며, 가끔 위협하려는 단전까지 하고 있다. 환풍기가 작동이 안되어서 공기를 빼지 못해 더워지는 상황도 생긴다. 그저께는 지하 주차장을 통해 침입 시도까지 했다가 좁은 통로와 인원수 한계로 도로 물러갔다. 그때마다, 계산대에 앉아 있던 조합원들은 가슴을 졸인다. 어떤 조합원 분은 남편분에게 울면서 이렇게 전화했다고 한다. "나 어떻게 해~무서워....."
우스개처럼 들렸지만, 무조건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측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그럴수밖에 없다. 박성수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실무지시를 내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뭐 대표이사한테 자기가 시킨 일 안했다고 계단 닦으라고 했던 사람이니만치 그 사람이 신이라면 신인 상황. 외국에서 어떻게 하라는 연락도 없는가 보다. 낄. 이런 촌극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래도 아직 새벽의 공기는 쌀쌀하다. 이제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질 않으면 잠이 안올 지경이 될 정도로 적응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 1930년대 겨울에 GM노동자들은 공장을 멈추고 단수단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30여일을 버텨 전미자동차노조를 세웠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보다. 그나마 다행인건 연대오는 동지들이 힘이 많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치는 구호들이 생경한 건 좀 그렇다. 한미FTA는 반대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나도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들 앞에서 그래봤자 아주머님들은 FTA가 뭔지조차 궁금해한 적도 없었으니 뚱한 분위기도 조성된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하룻밤을 새주면서 경찰들이 오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 훨씬 더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걸 가지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네 하는 사측의 거짓말, 혹은 언론의 거짓말들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다. 자기가 속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새 속는다.

하지만 더 정말로 더 큰 문제는 무관심일 것이다. 경찰이 막는 밖에서 축구경기를 보고 난 인파들은 우리의 문화제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관심은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 무관심 속에서 KTX동지들, 르네상스 동지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사측은 완전히 가족들이 걱정할 내용들로만 구성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전자우편이라서 돈이 보통우편보다 훨씬 더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럴 돈들은 있고, 용역들 고용할 돈은 있고, 우리에게 줄 돈은 없다는 논리는 둘째치고라도, 수많은 위법사실들을 저지르고도 거짓말만 늘어놓는 행태. 흠.

곧 시민들에 대한 서명운동들도 들어갈 것이다. 밖에서는 상인연합회가 와서 조합원들을 물러가라고 소리지르고 있다. 가슴아픈 일이다. 분명 이해해주는 업주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업주들도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저렇게 행동으로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두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이겠지. 정말 생존권의 문제로 나온 것이든가, 사측의 충동질로 나온 것이든가. (사측의 요구에 따라 사진까지 찍어주었던 업주도 있다고 한 사례가 있으니...)

믿음과 믿지 못함을 자아내는 것은 우리의 신뢰와 행동이 아니라 돈이라는 사실.
그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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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 투쟁 8일째

회사측에서 교섭을 하겠다고 해서 희망을 가졌던 그 때, 이랜드 측의 오상흔과 최종양은 언론에 우리가 불법투쟁을 하고 있다고, 자신들은 대량으로 부당해고를 한 적이 없다고, 7일까지 점거를 풀면 선처하겠다고 말했다.
헛웃음이 나오면서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올라 밥을 못먹을 지경이 되었다.

불법시위라는 것은 신고되지 않은 집회이다. 우리는 분명 사측과의 여러번 협상을 통해 그것들이 사측의 성의없는 태도로 결렬되어 정부로부터 쟁의권을 받아놓은 상태이다. 그 뒤로 수많은 위법적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게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랜드 측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우리가 시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객들을 매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안내해 우리에게 욕설을 하게 만들고 우리와 충돌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그럼 물어보자. 왜 이게 불법파업인데 공권력이 신속하게 투입되지 않을까? 정부의 법집행 의지 자체가 그렇게 물렁해져 있었나?

대량으로 해고를 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렇다. 이미 뉴코아 350명, 홈에버 400명이라는 명단이 나와있고 정규직 중에서도 1시간 이내의 매장위치에서만 점간이동을 시킬 수 있다는 법적 조항과 스스로의 사규를 무시하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발령을 보내고 있다. 사실상 니가 알아서 그만두세요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부당해고 승소 판결을 받은 수많은 동지들은 도대체 어느 은하계에서 온 존재들로 알고 있는 걸까.

더욱이나, 오상흔이라는 인간은 이랜드 시절 어용회사를 차려 그 회사를 부도냄으로서 이랜드에서 해고해야 할 사람들을 데려다가 실직자 만들고 지는 다시 이랜드 들어가 이랜드 리테일 근무하는 인간이고, 최종양이라는 인간은 회사에서 쓰는 물류회사에 노조가 생기자 고소를 걸고 노조를 안하면 취하해 주고 사례금도 주겠다는 방식으로 노조를 해체시킨 더러운 인간이다. (그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문건이 딱 걸려서 홍보물로 쓰이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읽어보면 말투도 분노가 치밀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대화하자고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기사를 내는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흔들어보고 무력화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얻겠다는 이야기다. 얄팍한 술수다.
그 얄팍한 술수의 정체는 다음날 교섭진행에서 드러났다.
현재 우리의 투쟁이 잡고 있는 중대한 세 가지의 현안 목표가 있다. 그건 첫째로 해고자 복직, 대규모 점간이동 중지, 비정규직 계약해지와 정규직 전환. 그런데 이런 현안 목표를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건 정식교섭에서나 할 수 있는 의제고, 그건 매장점거 풀고 파업 풀고 나면 이야기할 거다. 처음부터 임금때문에 너희가 쟁의권 받은 상태니까 그걸로 이야기하자."
아무런 보장도 담보도 없이 무조건 그만두라는 말. 그래서 임금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본 결과,
"임금은 여기서 동결이다. 우리가 리뉴얼공사 하느라고 돈을 많이 썼다."
서류? 물증? 우리를 설득시킬만한 어떤 자료는?
"그딴거 없다."

장난하는거지. 장난하는거야.

이건 대화의 태도가 아니라 사실상 싸워보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교섭은 당연히 결렬되었고, 아직까지도 재교섭의 요청은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집행부로부터 들었다. 이제는 정말 8일 총파업밖에는 남지 않았다. 이들은 8일 이후 우리가 힘이 빠질 수 있는 기회에 기름을 들이부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6일 동안 계속 여기서 자다가 처음으로 집에 가서 잤다. 낮에 들어가니 어머니는 왜 너에게 월급도 안나올 일을 하고 있느냐며 짜증을 냈다. 자신 스스로가, 예전에 영어교재 판매사원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기억은 어느새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는가 보다. 아니, 지우고 싶었을 거다. 단 3개월 일하는 동안, 그 때 어머니는 거의 매일 짜증내고 피로함을 느끼며 우울증에 걸리기 직전이었으니까.

그게 어언 80년대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그 똑같은 대물림을 하면서, 이 땅에서 살 수는 없다. 못사는 사람들이 영원히 못살게 만드는 이 구조 자체에 대한 물음. 그 안에서 아무리 공부를 하고 발버둥쳐도 기껏해야 돈많은 자들의 발때나 핥아주는 노동자의 구차한 신세란 것을 애써 자기최면으로 지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한국 시장에서 자영업자가 그렇게 많은가. 왜 한국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업가인양 생각하며 사는가. 웃기는 노릇이다.

싸울 때가 있다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설명해서 알아들으실 수 있는 분은 아니었기에.

어머니에게는 그저 화만 냈을 뿐이었다. 그러지 마시라고.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싸워보라고 하셨다. 처음엔 앞으로 나서지 말라고 하시더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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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5일째

전에도 말했듯, 시민들의 연대와 이해는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가슴아프기도 했다. 특히 조금 먼 동네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오셨다가 정보를 접하지 못해서 쇠사슬이 묶인 문을 보시고 몇마디 물어보시다가 뙤약볕에 돌아가셔야 하는 할머니분들 같은 경우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친할머니를 황망하게 보내드린 기억이 있어 눈이 찡해왔다. 이를 악물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오시면 정말 잘해드릴께요.

그동안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있었다. 금속노조는 물론이고 코스콤노조, 타워크레인노조, 공무원노조, 시민단체, 학생연대단체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묻고 대답하면서 연대했다. 민노당 마포지구 동지들, '다함께' 동지들, 사회주의학생연대, 노학동 등등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함께 심지어는 곱잠까지 자면서 힘을 보태주었다.

현재 용역들과의 신경전은 소강상태다. 원래가 용역어깨 인원들이 적기도 했거니와, 전에 여기서 몸싸움을 한 것이 KBS를 통해 방송된 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어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몇몇 보안들로부터 우리와 마찰을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치고, 여기는 점점 살림살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처음엔 바닥에 까는 돗자리 정도였던 것이 바깥에는 부엌도 설치하고 개까지 데려오는 등 다채로운 모습들이 있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조합원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에 잠도 자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있었지만 이제 다들 조심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다. 술은 금지되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첫날 이것을 어기고 말았다. 학생동지들과 이야기가 좀 길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마지막 병으로 하겠노라는 결심은 확실히 지키고 첫날을 보낸 후, 지금까지 현장에서 술은 절대로 마시고 있지 않다. (원래가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두 가지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나는 국가대표A매치가 5일, 기독교100주년 기념식이 6일에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내일부터다.

고객들이 불편을 항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들 개인적인 의견은 분분했지만 전체적인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라 한다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만 명의 인원이 기독교 100주년 기념식에 온다. 이들이 모두 뉴스를 접하고 있다면 모를까, 이랜드를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유혈사태까지 벌어질지도 모른다. 군중심리란 컨트롤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아무래도 이랜드가 제일 바라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최대한, 그들의 이성이 절대로 우리를 나쁜 눈으로 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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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4일째.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일부터 말해야 할 지 나도 잘 모를 지경이고 정리가 안될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지점부터 말해야 할 듯 싶다. FTA집회를 나간 그 때부터.

그곳은 유독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인상좋아 보이는 경찰이 한 명 탔다. 상부상조하자고 했다. 나도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했다. 마로니에 공원까지 왔을 때, 잔뜩 찌푸렸던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우리의 조합원 수도 많았거니와 거의 아주머님들이었기 때문에 통제에 신경을 쓰느라 계속 서 있으면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을 외쳤다. 금속노조 파업의 전단지에 내 얼굴이 한가운데 크게 박혀있었다. 아주머님들이 다들 나를 가리키며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 전단들은 비에 젖어 밟혔다.

그렇게 종로5가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자 아주머님들은 탈진할대로 탈진했다. 다음날의 상암점 점거를 위해 일찍 이탈하고자 위원장님이 와서 지침을 내려주고 있을 때였다. 몇몇 누님이 이상한 젊은 사람을 발견했다. 우리들의 틈에서 핸드폰과 MP3를 이용해 녹취와 사진찍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원장이 젊은 사람을 붙잡았고, 나는 그 사람이 그냥 시민인줄 알고 돌려보내려 했으나, 녹취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방을 빼앗는 걸 도왔다.
나중에 위원장님이 빼앗은 가방 속 지갑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경찰공무원증.

마포경찰서장의 밑에 있는 주병규라는 이름의 경찰이었다. 정보과 소속이라고도 한 듯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멍하니 서있던 상부상조하자는 사람을 끌고 왔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했고, 몇몇 달려온 뉴코아 동지들에게 내가 소리를 질러 상황을 설명하자 순식간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둘러쌌다. 다른 폭력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더욱 사람들을 흥분하게 했다. 처음엔 롯데호텔 노조원이라고 속이고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간부처럼 보이는 분은 보호를 했고, 흥분한 우리들은 온갖 폭언을 쏟아부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다는 생각이었다. 겉으로는 상부상조하자고 웃으면서 실제로는 이딴 짓을 하고 있다니. 사실 확인 절차에 따라 경찰에 신고를 해서 그들을 인도하게 했다. 그 상황에는 112에 신고해서 바로 인도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후에 들려왔다. 증인을 선다는 아주머님들을 책임지겠다고 하고, 흥분하신 조합원들에게 대오를 지어 버스로 이동하게 했다. 그날은 이래저래 고생이었다.

그리고 상암 점거 후 지금 4일째. 홈에버 상암점 2층은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 사실 거기에 입점한 업주들과의 트러블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 형태의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조합원들에 의해 업주 한 분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것은 싸움으로 번질 뻔 했지만, 흥분한 업주를 진정시킴과 동시에 즉시 항의를 받은 만큼의 안내문들을 갖다붙이고 간부급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하고 조합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서 원만히 마무리지었다.

지금까지 투쟁을 전개한 느낌이라면, 확실히 강남뉴코아 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강남에서도 이해를 해주시는 분들은 많았다. 하지만 여기 상암점과 비교하면 택도 없을 지경이었다.

강남뉴코아 때가 생각이 난다. 뒤쪽 중앙 입구에서 고객과 뉴코아동지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말이 곱지 못해 시작된 것이었지만, 한사코 그 두 명의 여자 고객은 들어가서 물건을 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입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왔다.
"저러니까 비정규직에 짤리기나 하지."
그 싸움은 싸움을 말리던 위원장과 되려 흥분한 다른 고객의 싸움으로 번질뻔 했지만, 나는 위원장님을 말린 후 자리로 돌아와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고객여러분,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고객 여러분이 여기서 물건을 사는 돈으로 이익을 낸 이랜드는 폭력용역을 고용해서 저희를 패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고객여러분, 단 한 번만 이해해 주십시오."
기분이 무척 썼던 날이었다.
이후에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전에 계산대에서 막 싸우는 그런 상황에서도 밥을 태연히 먹고 있는 인간들이 있었더랜다.

(또 한가지 에피소드. 어떤 두 아주머님 분이 나오시더니 이랜드 자본이 지멋대로 자신들의 아이들 통학로에 주차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연대투쟁하시겠다고 하셨다. 아파트에서 나온 많지 않은 주민분들이 연대를 해주셨다. 몇몇 분들은 그런 의식의 근저가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 때는 차라리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상암점 점거 이후, 밤늦게까지 점거를 이행하면서 지도부에서 다른 의견이 나왔고, 그 의견을 각자의 조합원들에게 묻게 했다. 분회장 이하 간부급은 분주히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으러 다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무기한 농성의 결의가 나왔다. 과거에 상암점은 문을 닫겠다고 하고 30분만에 다시 계산대를 열었던 거짓말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월드컵노조분회장님의 결의가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여기서 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조를 나누고 밤을 새면서, 다들 피곤한 기색에도 끊임없이 나와주시는 조합원들을 보며, 응원을 삼아 드링크제와 라면들을 보내주시는 시민분들이나 관련자분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가 우리들의 사이에서 박수를 치고 투쟁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나, 우리가 왜 파업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을 들어주시고는
"할려면 이렇게 해야 돼."
"꼭 승리하세요."
한 마디씩 해주시고 가는 시민분들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너무 감사할 때들이 많았다.

(죄송....지금 노트북을 빌려쓰고 있는데 요청이 들어와서 여기까지만.....다음에 더 이어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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