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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5
    7월 4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5일째(4)
    네오키즈
  2. 2007/07/05
    7월 3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4일째.
    네오키즈

7월 4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5일째

전에도 말했듯, 시민들의 연대와 이해는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가슴아프기도 했다. 특히 조금 먼 동네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오셨다가 정보를 접하지 못해서 쇠사슬이 묶인 문을 보시고 몇마디 물어보시다가 뙤약볕에 돌아가셔야 하는 할머니분들 같은 경우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친할머니를 황망하게 보내드린 기억이 있어 눈이 찡해왔다. 이를 악물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오시면 정말 잘해드릴께요.

그동안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있었다. 금속노조는 물론이고 코스콤노조, 타워크레인노조, 공무원노조, 시민단체, 학생연대단체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묻고 대답하면서 연대했다. 민노당 마포지구 동지들, '다함께' 동지들, 사회주의학생연대, 노학동 등등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함께 심지어는 곱잠까지 자면서 힘을 보태주었다.

현재 용역들과의 신경전은 소강상태다. 원래가 용역어깨 인원들이 적기도 했거니와, 전에 여기서 몸싸움을 한 것이 KBS를 통해 방송된 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어쨌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몇몇 보안들로부터 우리와 마찰을 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치고, 여기는 점점 살림살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처음엔 바닥에 까는 돗자리 정도였던 것이 바깥에는 부엌도 설치하고 개까지 데려오는 등 다채로운 모습들이 있었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조합원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에 잠도 자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있었지만 이제 다들 조심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다. 술은 금지되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첫날 이것을 어기고 말았다. 학생동지들과 이야기가 좀 길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마지막 병으로 하겠노라는 결심은 확실히 지키고 첫날을 보낸 후, 지금까지 현장에서 술은 절대로 마시고 있지 않다. (원래가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 두 가지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나는 국가대표A매치가 5일, 기독교100주년 기념식이 6일에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내일부터다.

고객들이 불편을 항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들 개인적인 의견은 분분했지만 전체적인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라 한다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만 명의 인원이 기독교 100주년 기념식에 온다. 이들이 모두 뉴스를 접하고 있다면 모를까, 이랜드를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유혈사태까지 벌어질지도 모른다. 군중심리란 컨트롤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는, 아무래도 이랜드가 제일 바라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최대한, 그들의 이성이 절대로 우리를 나쁜 눈으로 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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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 홈에버 상암점 점거투쟁 4일째.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어떤 일부터 말해야 할 지 나도 잘 모를 지경이고 정리가 안될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지점부터 말해야 할 듯 싶다. FTA집회를 나간 그 때부터.

그곳은 유독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인상좋아 보이는 경찰이 한 명 탔다. 상부상조하자고 했다. 나도 웃으면서 부드럽게 대했다. 마로니에 공원까지 왔을 때, 잔뜩 찌푸렸던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우리의 조합원 수도 많았거니와 거의 아주머님들이었기 때문에 통제에 신경을 쓰느라 계속 서 있으면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을 외쳤다. 금속노조 파업의 전단지에 내 얼굴이 한가운데 크게 박혀있었다. 아주머님들이 다들 나를 가리키며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 전단들은 비에 젖어 밟혔다.

그렇게 종로5가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자 아주머님들은 탈진할대로 탈진했다. 다음날의 상암점 점거를 위해 일찍 이탈하고자 위원장님이 와서 지침을 내려주고 있을 때였다. 몇몇 누님이 이상한 젊은 사람을 발견했다. 우리들의 틈에서 핸드폰과 MP3를 이용해 녹취와 사진찍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원장이 젊은 사람을 붙잡았고, 나는 그 사람이 그냥 시민인줄 알고 돌려보내려 했으나, 녹취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방을 빼앗는 걸 도왔다.
나중에 위원장님이 빼앗은 가방 속 지갑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경찰공무원증.

마포경찰서장의 밑에 있는 주병규라는 이름의 경찰이었다. 정보과 소속이라고도 한 듯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멍하니 서있던 상부상조하자는 사람을 끌고 왔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했고, 몇몇 달려온 뉴코아 동지들에게 내가 소리를 질러 상황을 설명하자 순식간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둘러쌌다. 다른 폭력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더욱 사람들을 흥분하게 했다. 처음엔 롯데호텔 노조원이라고 속이고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간부처럼 보이는 분은 보호를 했고, 흥분한 우리들은 온갖 폭언을 쏟아부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다는 생각이었다. 겉으로는 상부상조하자고 웃으면서 실제로는 이딴 짓을 하고 있다니. 사실 확인 절차에 따라 경찰에 신고를 해서 그들을 인도하게 했다. 그 상황에는 112에 신고해서 바로 인도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가 후에 들려왔다. 증인을 선다는 아주머님들을 책임지겠다고 하고, 흥분하신 조합원들에게 대오를 지어 버스로 이동하게 했다. 그날은 이래저래 고생이었다.

그리고 상암 점거 후 지금 4일째. 홈에버 상암점 2층은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 사실 거기에 입점한 업주들과의 트러블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 형태의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부 조합원들에 의해 업주 한 분의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것은 싸움으로 번질 뻔 했지만, 흥분한 업주를 진정시킴과 동시에 즉시 항의를 받은 만큼의 안내문들을 갖다붙이고 간부급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보고하고 조합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서 원만히 마무리지었다.

지금까지 투쟁을 전개한 느낌이라면, 확실히 강남뉴코아 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강남에서도 이해를 해주시는 분들은 많았다. 하지만 여기 상암점과 비교하면 택도 없을 지경이었다.

강남뉴코아 때가 생각이 난다. 뒤쪽 중앙 입구에서 고객과 뉴코아동지 간의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말이 곱지 못해 시작된 것이었지만, 한사코 그 두 명의 여자 고객은 들어가서 물건을 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입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나왔다.
"저러니까 비정규직에 짤리기나 하지."
그 싸움은 싸움을 말리던 위원장과 되려 흥분한 다른 고객의 싸움으로 번질뻔 했지만, 나는 위원장님을 말린 후 자리로 돌아와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고객여러분,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고객 여러분이 여기서 물건을 사는 돈으로 이익을 낸 이랜드는 폭력용역을 고용해서 저희를 패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고객여러분, 단 한 번만 이해해 주십시오."
기분이 무척 썼던 날이었다.
이후에 들었던 이야기로는 이전에 계산대에서 막 싸우는 그런 상황에서도 밥을 태연히 먹고 있는 인간들이 있었더랜다.

(또 한가지 에피소드. 어떤 두 아주머님 분이 나오시더니 이랜드 자본이 지멋대로 자신들의 아이들 통학로에 주차장을 건설하고 있다고 연대투쟁하시겠다고 하셨다. 아파트에서 나온 많지 않은 주민분들이 연대를 해주셨다. 몇몇 분들은 그런 의식의 근저가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 때는 차라리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상암점 점거 이후, 밤늦게까지 점거를 이행하면서 지도부에서 다른 의견이 나왔고, 그 의견을 각자의 조합원들에게 묻게 했다. 분회장 이하 간부급은 분주히 조합원들의 의견을 들으러 다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무기한 농성의 결의가 나왔다. 과거에 상암점은 문을 닫겠다고 하고 30분만에 다시 계산대를 열었던 거짓말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월드컵노조분회장님의 결의가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여기서 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조를 나누고 밤을 새면서, 다들 피곤한 기색에도 끊임없이 나와주시는 조합원들을 보며, 응원을 삼아 드링크제와 라면들을 보내주시는 시민분들이나 관련자분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가 우리들의 사이에서 박수를 치고 투쟁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나, 우리가 왜 파업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을 들어주시고는
"할려면 이렇게 해야 돼."
"꼭 승리하세요."
한 마디씩 해주시고 가는 시민분들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너무 감사할 때들이 많았다.

(죄송....지금 노트북을 빌려쓰고 있는데 요청이 들어와서 여기까지만.....다음에 더 이어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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