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7/01/25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25
    '떠도는 500조'가 함축하는 사회적의미
    키노

'떠도는 500조'가 함축하는 사회적의미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분석하거나 스스로의 판단을 정리할 때 우리는 보편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조건과 주변환경을 기준으로 결론짓게 됩니다.

쉽게 말해 주변에 '돈 좀 있거나 땅 좀 있거나 권력 좀 있는' 존재들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힘겨운' 존재들로 비교되는 체험된 학습이 사회의 계급을 규정짓거나 현상을 대치시키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영양가 있는 고급정보를 빼내고 로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하며 노출하지 않고 탈세하며 버텨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졸부'들은 우리의 예상을 가볍게 즈려밟을 정도로 넘쳐나고 사회적부담을 통해 지독히도 이기적인 수단을 통해 '재테크'란 명분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자본지배계급의 범위는 역시 예상보다 깊고 넓게 포진하고 있습니다.

고가의 수입외제차와 명품들의 소비가 일부 재벌가의 소비행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무렵이면 잘 눈에 띄지 않는 '돈'의 흐름은 그 구체적인 실체를 가늠하기조차 힘들어집니다.

부동산에 몰리던 지하자금이 슬슬 빠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얼마가 되었든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 경제활동에 숨통을 트게 만들어주거나 세원확보를 통해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예산으로 돌아야 할 돈은 점점 더 은밀하게 먹잇감을 찾아 떠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외부동산과 중국,인도,베트남등에 치고 빠지는 투기자본으로 성격이 변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회악'의 기능을 하는 지하자금운용의 기법이 지상에서조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침서로 활용되며 사회의 토대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도권규제완화와 강남부자들의 저항. 그리고 그 과정에 정치적영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투쟁'은 분명히 자정기능과 한쪽의 운동기능이 정지된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과 해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회가 과감하게 메스를 들지 못하는 이유는 '내 존재와 삶이 유지되는 사회의 건강성을 위한 노력'보다 '가능하다면' 우향우의 삶을 희구하는 속성 탓입니다.

착취당하던 계급이 기회를 빌어 더욱 야만적으로 착취하는 '지주계급화'하는 경험을 다들 한두번쯤은 겪었을 겁니다.


즉 조희연교수가 지적했듯 박정희의 60년대 개발주의적 드라이브 정책이나 70년대 새마을운동 등을 통한 ’우파 민중주의‘ 혹은 ’보수적 민중주의‘ 전략이 고스란히 '성장개발논리'속으로 대중을 세뇌시키고 그 여파는 여전히 잠재된 인식 속에 살아 숨쉬며 종속된 계급으로의 삶을 강요해도 순응해버리는 악순환을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이 호언한 '3만불시대'와 '2030전략'의 기만성은 결국 사회적가치와 '진보적민중의 각성된 실천적 인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정책과 정치적 구조를 고스란히 유지시킨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기인합니다.

위에 언급한 상상을 뛰어넘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부자들의 존재와 부를 확대하고 세습화하기 위한 온갖 탈법적이고 반사회적인 행태들과 비례해 독거노인과 장애인이 전기요금 낼 돈이 없어 동사하거나 한참 커나가야 할 시기에 점심마저 굶어야 하는 10만이 훌쩍 넘는다는 결식아동의 실질적인 숫자가 고급분양아파트와 서민임대아파트 사이에 쳐 놓은 철조망이 상징하는 구조로 공고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이상 진통제 몇알로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대한민국에 대한 모두의 책임을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수도권규제완화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하이닉스생산라인을 어디에 유치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이 극심해질 당시에 '거대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시민의 함성'이 지역의 체육관 광장에서 3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울려 퍼졌습니다.

하이닉스비정규직노동자들이 부당하게 거리로 내몰린지 3년째가 되도록 철저하게 외면해 오던 지역정치인들과 의원들(전체가 열우당 소속인), 온갖 관변단체와 이익단체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사랑스런 기업의 투자유치'를 염원했습니다.

지역의 언론들 역시 부화뇌동하며 '향후 몇년간 얼마가 투자되며 수천명의 고용을 창출하며...'
따위의 장밋빛 환상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었고 그 쓰나미 속에 거리에 내몰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문제나 연말성과급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현장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은 '행여 다된 밥에 재라도 뿌릴까!' 쉬쉬하며 감추어졌습니다.

규모와 성장일변도의 논리들이 구조적인 제 삶의 조건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음에도 지배계급에 순응하며 길들여져온 존재가 '중간착취자'로서의 기능을 자임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야만적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포괄적의미의 글을 올렸었지만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체제대안을 고민하고 구성원 스스로가 참여하며 제 권리를 확보해나가는 실천에 나서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아마도 올 연말 대선까지의 여정에 함께 고민해보자며 내뱉는 다소 일방적일수도 있는 주장이겠지만 사안별 이슈별로 응집되지 못하고 시한부생을 마감하는 고민들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적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혜안과 '살만한 미래'에 대한 고언들이 충돌하며 의지화하는 기회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