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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25
    2말 3초(1)
    곽정
  2. 2005/02/25
    (펀글) 사회적 교섭과 조카(1)
    곽정
  3. 2005/02/10
    새해
    곽정

2말 3초

2말 3초는 항상 정신 없이 보냈던 것 같다.

학생 시절은 새터 준비에 새내기 모집 준비에 등등..

지금은 그냥  정신 없다..

배나온 아저씨는 어딜 갔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 속을 태우는지..

전화라도 좀 하지..

이렇게 하다가 어디가서 무슨 활동을 할 수 있을 런지 걱정이다..

걱정하는 거나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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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사회적 교섭과 조카

저는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으로 있는 김 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저역시 지난 설,고향으로 가는 길이 편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인천에 있는 조카는 집에 어려운 사정이 생겼는데 맏이로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무력감때문인지,휴가가 하루밖에 없다는 둥,차가 많이 막힐거라는 둥 핑계를 대면서 안가려고 하기에,그래도 명절인데 안가면 엄마가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냐,너 안가면 나도 안갈란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인천 주안역에서 만나서 차를 타자마자 조카가 묻습니다.

"이모,그게 모야?"
"이거?김셋트.니네 엄마 줄려구"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꾸러미를 궁금해 하는 줄 알고,한진동지들이 마련해준 선물셋트를 자랑스럽게 치켜보였습니다.

"아~니.저번에 내 친구가 테레비 보구 말해주든데 민노총이 막 싸웠대매.한쪽에선 뭘 하자그러구 한쪽에선 하지말자 그러구 신나두 뿌리구 그랬대매.그게 모냐구"

망할년.하구 많은 말 다 놔두고 오랜만에 만나서 가장 아픈데 부터 찌르다니..
저는 심사가 있는대로 꼬여서는, "야.너는 민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이라구 멫뻔을 말해야 알아듣냐?민주노총!" 엉뚱한 트집을 잡습니다.

"암튼.그게 모냐구?모때매 그랬는데?"
"사회적 교섭"
"엉?그게 몬데?"

사회적 교섭이 뭔지도 모르는 제 조카는 비정규직 노동잡니다. "그러니까 니가 용역이야?"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했다가,"야 그런 건 파견이야" 그러면 또 그런가부다 하는,한마디로 지가 뭔지도 모르는 한심한 까대기 입니다. 커다란 마트에서 일하는데 얘는 그 마트의 직원이 아닙니다. 라면파트에서 온종일 라면에 치여서 살면서도 얘는 그 라면회사 직원도 아닙니다. 그 마트에서 일하고 밥먹고 똥싸면서 하루 열시간이 넘게 일하는데,사실은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회사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파견업체가 얘가 속한 회사입니다.

그 마트에서는 얘한테 일 시킬거 다 시키고,물건 진열이 조금만 더뎌도 땍땍거리고,늦게 밥 먹으러 간탓에 1분만 늦게 와도 주임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지키고 서 있으면서도,얘가 사소한 요구라도 할라치면 니네 회사에 가서 말하라는 아주 편리하기 짝이 없는 구조입니다. 월급 명세표도 없는 월급 80만원을 받으면서,언제부턴가 돈이 줄어들어서 나오길래 명세표를 볼 수 없냐 했더니 니네 사장한테 달라하더라는 쫑코 이후 이 아이는 아무것도 요구하지도 묻지도 않는답니다. 나중에 다른 친구들한테 들어보니 법이 바뀌어서 생리도 월차도 없어져서 그렇게 됐다 하더랍니다.

이 아이 아침 7시 30분 부터 저녁 10시 까지 일합니다. 추석때도 일하느라 추석 다음날 잠깐 집에 다녀왔고,이번 설에 9일을 쉬는 회사도 있다고 언론에선 떠듭디다만,얘는 그나마 1년이 넘은 짬밥 덕택에 설날 하루가 휴가 였습니다.
주 5일제를 누리는 세상에서,이 아이는 토요일 일요일이 더 바쁩니다. 지 동생이 장가를 가서 얘한테도 첫조카가 생겼는데,어깨가 아파서 조카 한번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설날도 밥만 먹고는 온종일 퍼 자다가 내일 출근땜에 부시시하게 부은채로 밤에 갔습니다. 조카를 안지도 못하는 어깨로 박스를 들어 나르는 일을 하러...

온종일 박스 들어나르는 게 일이라 손가락이 퉁그러지고 어깨가 아파 팔을 들지도 못하면서도 산재 신청도 못하는 제 조카는 병신 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노조도 못 만드는 제 조카는 쪼다 입니다. 촌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년간 다니던 직장이 망하고,서른 몇살의 여자를 받아주는 데가 있다는게 감지덕지 고마워서,말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사는 제 조카는 천치입니다.

그래도 이 아이 저한테는 참 애틋한 아이입니다. 쌍둥이인 이 아이 태어났을 때.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참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 아이 엄마인 우리 큰언니가 벌어 먹고 살았는데,쌍둥이 둘을 매달고는 길에서 장사를 못하니까 둘중 큰아이인 이 아이는 우리집에서 컸습니다.우리 엄마가 아픈 날이 많아서,아예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날은 이 아이를 제가 업고 학교를 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중학교때.애기를 매는 띠도 없을때라 기저귀로 이 아이를 업고나면 왜 그렇게 흘러내리는지 궁뎅이에 아이를 치렁치렁 매달고 학교를 간 적이 몇번 있었는데,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다른 애들 다 등교한 학교에 맨 나중에 들어가서 정문옆 철봉틀에, 업고 간 기저귀로 이 아이 묶어놓고 교실로 뛰어 들어갔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저는 창문밖 철봉틀만 내다봤었지요.

쉬는 시간에도 다른 애들 눈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수업시간에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달려가보면,그래도 아는 얼굴 왔다고 입안에 모래를 가득 담고 벌쭉 벌쭉 웃던 아이입니다. 똥을 도대체 몇번이나 쌌던건지 온몸에 똥으로 매대기를 쳐놓고도 울지도 않던 그런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커서 중학교에 다닐 때.수배중인 이모 잡는다고 경찰이(정복도 아니고 신분증 제시도 안했다니 아마도 짭새였겠죠)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까지 와서 이것저것 묻고 따라다닐 때도,우리 이모는 나쁜 짓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사실을 20년이 지난 작년에야 얘기를 했던..그런 아이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 못사준 이모한테 옷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명절 때는 노자하라고 용돈도 주고 그런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저 때문에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98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제가 온몸으로 반대를 안해서 이 이이가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노사정위에서 파견법이 합의될 때 제가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내지를 못해서 이 아이가...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조가 있고,단결된 힘으로 단협에서 막아내면 솔직히 되지 않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 조카는 전노투도 아니고 좌파도 아닙니다. 다만 민주노총이 어떤 합의를 하면,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그 내용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일 뿐입니다.

계약이 해지되면서 50이 넘은 나이에 길거리로 쫒겨난 부산대 청소 아지매 경비 아저씨들,하이닉스 매그나칩 동지들,현자 비정규직 동지들,대자 비정규직 동지들,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동지들... 그분들을 만나면 죄스러움에...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냥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그분들을 만나면 자꾸 울게 됩니다.

저는 제가 민주노총이라는 게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한답시고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면서도,긍지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까지 안기부에 경찰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면서도,그까짓 상처쯤이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걸로 다 덮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는데...점점 안좋아지는 세상.지 잘난 맛에 살았던 그 잘나빠진 이모가 조카를 파견노동자로 만들어버린...아...저는 20년 동안 뭘 한걸까요. 제가 20년 동안 한건 뭐였을까요.

일요일도 없고,재고조사하는 날은 밤도 없는 제 조카앞에서 저는 이모가 열심히 싸워서 민주노총 사업장은 대부분 주40시간 이 됐다고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여금도 없고 체력단련비도 없고 효도수당도 없고 하다못해 월차도 없는 제 조카의 천만원도 안되는 연봉앞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서 그들의 성과금이 너의 1년 연봉을 넘는다는 자랑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주노총의 투쟁이건 산하노조의 투쟁이건 비난이 난무할 때,조중동만 탓하기엔 참 옹색해져 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역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노숙자, 하루 서른여섯명이 목숨을 끊는 자살행렬의 시작이었던 98년 노사정위 합의. 그에 대한 처절하고 뼈저린 참회없이는 민주노총의 어떤 정당하고 명분있는 투쟁도 고립무원일 뿐입니다.

사회적 교섭이,갈등의 당사자들이 모여서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거라고 제딴에는 열심히 설명해주고 나니,조카가 묻습디다.

"대화가 돼? 대화루 해두 되는데 근데 이모.그 아저씬 왜 크레인까지 올라가서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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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설이 지났으니 나이 먹는게 싫어 신정이 지나고도 작년나이를 말하던 사람들은 이제 에누리 없이 한살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나이를 줄여 말하진 않았지만 턱걸이 30이 되고나니 좀 그렇다.

설연휴내내 잠만잤다. 먹고자고 먹고자고 하니 2키로그램정도 체중이 는것같다.

집에 갔더니 여전히 큰조카는 나를 싫어하고 이제막 한 돓도 안지난 둘째조카는 아직 날 안 싫어하는 것같다.

큰조카가 놀이방에서 운동화를 한짝 잃어버렸다는 소릴 듣고 내가 신고다니는 신발보다 비싼 신발을 사다주었지만 그때뿐이다. 여전히 나를 피한다.

손만 잡아도 소릴지르며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간다.

큰조카 소영이가 제수씨 뱃속에 있을 무렵 아기를 지워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중에 하나인것을 소영이는 아나보다.

정말 그때는 아기를 지워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남동생은 아직 군대도 안갔다오고 직업도 없었고 했던 시절이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은 나아진 것도 없지만 날이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지나 아기가 태어났고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에 두달을 보내고 세상에 선보였을 때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소영에게 미안하다. 하마터먼 큰 죄악을 저지를 뻔 했다.

이제 다섯살이 되어 놀이방도 다니고 말도 다 할줄안다.

나를 싫어하지만 나는 좋다.

그때 정말 잘못되었더라면 나는 평생을 후회할뻔 했다.

두번째 아기가 작년 가을에 태아났다.

아들이다......

장가도 안간 놈이 두아이에게 큰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있으니 내신세가 처량하다.

 

설연휴 아버지에게 말씀을 들었다.

담배 끊어야 사람된다고 하시는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이나 정작 당신도 못끊고 계신다.

물론 나를 포함한 자식땜에 속끓어서 못끊고 계시기는 하지만 날이다.

아버지가 이제 60줄에 들어서셨다.

내년에 환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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